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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평점 :
작가님께
이렇게 작가님께 쓰는 편지 형식으로 리뷰를 대신해본 적이 이전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최민석 작가님.
관심 작가였으면서 작가님의 소설을 아직 한편도 제대로 읽지 않았답니다. 관심 작가이기 때문에 그래요. 혹시 실망하게 되면 어쩔까 하는 주저함이랄까요. 에세이는 그런 부담이 좀 덜하기도 하고, 엊그제 우연히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작가님 나오신 걸 듣게 된 것이 계기도 되고, 그래서 <베를린 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꼭 읽게 될 작가님의 소설과 아무 관련 없는 이 여행 에세이 <베를린 일기>는 2014년 가을과 겨울 동안 베를린에 90일 머물면서 쓰게 된 일기 모음이지요. 한 예술기관의 지원으로, 그것도 처음엔 다른 나라를 희망했었으나 다른 선배작가분과 겹치는 상황이 될 것 같아 의도지 않게 선택한 곳이 베를린이었고요. 베를린 자유대학에 적은 두었으나 와이파이를 맘껏 쓸수 있었다는 것 외에 딱히 학교와 관련된 어떤 일을 해야할 책임과 의무는 없으셨다니 그야말로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겠으나 그 시간들이 마냥 좋지는 않으셨던듯. 외롭고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일기였으니까요. 외롭고 심심함에 고마와해야하나요. 이렇게 한권의 책을 탄생시켰으니까요. 책을 의도하고 쓴 일기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고 아쉬운 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루를 넘기지 않은 그날 그날의 생생하고 솔직한 기록이라는 점이 장점이라면, 그렇게 가볍고 부담없는 기록의 차원을 크게 넘지는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절대 재미없는 글은 쓰지 않으실 분 입니다. 읽으면서 간혹 미국의 여행 작가 Bill Bryson을 떠올렸던 것도 아마 그런 유머 코드때문인 것 같아요.
동의합니다. 살던 곳을 떠나와서 다른 외모, 다른 언어를 쓰는 곳에 떨어지면 기본적으로 외롭습니다. 자연히 심심해지고요. 나 혼자 좀 하게 내버려 뒀으면, 나 혼자 맘대로 할 수 있었으면, 했던 일들 그 이상으로 혼자 해결해야하고 혼자 놀아야 하는 일들이 태반이지요. 그 당시는 그 시간들이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게 또 뭔가를 하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꼭 손해보는 시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가님도 인정하시지요? 물론 다시 하라면 반복은 안하고 싶을지 모르지만요.
이 책을 읽으며 베를린에 대해 알게 된것은 별로 없어요. 베를린이 궁금하다면 이 책보다 다른 책을 읽어야지요. 차라리 최민석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조금 알게 되었다 쓰고 싶지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네요. 조금, 아주 조금이라고 강조하면 모를까. 글 쓰기를 힘들어하기보다는 즐기는 사람이구나, 자신의 발견과 사유, 통찰의 결과를 진지한 문장 보다는 유머 코드 속에 표현하고 싶어하는구나, 이 정도랄까요.
밑줄 친 부분도 있습니다. 76쪽 열네 번째 날 일기 마지막 부분이요.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었다.
밑줄 친 부분이 더 많았으면 좋겠지만 위의 대목도 충분히 좋고 공감합니다.
자유로움의 댓가는 외로움이라는 것에 작가님 동의하시나요? 외로움이 생각보다 더 견디기 어렵고 힘들다는 것도요.
작가님이 출연하시는 날은 아니었지만 그 라디오 프로그램을 어제도 들었는데요. 진행자께서 "당신은 자유인입니까 노예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시고 그에 대한 청취자의 의견을 남겨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어제 제가 남긴 댓글은 이렇습니다.
"노예 근성이 있는, 엄연한 자유인입니다. 자유, 어려워요." 라고요.
이젠 본격적으로 작가님의 소설을 읽어보려고요. 무엇부터 읽어야할지 생각좀 해보고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