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모렐의 발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르헤스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작가로 알려진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겨우 스물네살 나이에 쓰기 시작하여 3년 후인 스물일곱에 출판된 작품 <모렐의 발명>은 출판되고 바로 이듬해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하었고 이후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191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상류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대학에 입학할때는 법학 전공이었지만 문학에 전념하고자 학교를 중단하고 나온다. 젊은 나이의 비오이 카사레스에게 큰 명성을 안겨다 주고 지금까지 아르헨티나 소설계의 대부로까지 불려지게 한 <모렐의 발명>은 어떤 작품일까?

'모렐'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고 중심인물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화자는 아니다. 화자인 '나'는 부당하게 사형선고를 받은 후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알려진 빌링스 섬이라는 곳으로 도망쳐온 사람이다. 천신만고끝에 도착한 섬에는 과연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고 그런 곳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무도 살지 않던 섬에 갑자기 한 떼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나는 이들 중 한 여자가 석양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단번에 반하게 되어 매일 그녀가 앉아있는 곳에 가서 그녀를 훔쳐보며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를 꿈꾸지만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도망친 사형수라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봐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다가 알게 된다. 아무리 가까이 가도 그녀를 비롯하여 섬에 나타난 사람들이 나를 보지 못하고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나누는 말을 엿들음으로써 이들의 이름도 알게 되는데 내가 반한 여자의 이름은 '포스틴'이고 늘 포스틴의 가까이에는 테니스 선수 '모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질투심을 느낀 나는 모렐을 마치 살인자, 미친 사람 등으로 여기며 좋게 보지 않는다.

어느 날 모렐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뭔가를 설명하고 해명하는 것을 듣고 주인공 내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지금 섬에 있는 사람들 (포스틴 포함)과 이들이 섬에서 머무는 이 상황 모두가 모렐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대로 일어나게 하기 위해 영상으로 만들어놓은 결과임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서는 단순히 영사기로 돌려서 재생해내는 것 정도로 표현되지만 다른 점은 이들이 시각적으로만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갖고 실제로 움직이고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요즘의 가상현실 같은 것을 상상했는지 모른다. 원하는대로 완벽한 현실을 구성한 것이다.

모렐이 원하는대로의 현실이란 주인공 나도 반한 포스틴의 사랑을 얻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꼭 그렇게 국한시키고 싶지 않다. 그러다보면 이 작품이 단순 로맨스 소설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원하지만 얻지 못하는 대상이나 상황의 한 예로서 여인을 대표로 내세운 것이 아닐까, 오히려 그렇게 보고 싶다.

제목의 모렐의 발명이란 이렇게 모렐이 발명한 영상 매체 기계를 의미할 수 있다 (너무 협의적 해석). 모렐이 설명하기를 그가 발명한 기계는 스크린이나 종이 없이 장면이나 대상을 재현할수 있는 것이 애초 기대하던 목적이었는데 힘든 작업 결과 기계의 여러 다른 부분들을 동시에 작동시키면 재구성된 인물을 얻을 수 있었고 모든 감각이 동시에 작동하면 영혼이 나타나더라고 했다. 이전에 없던 기계이니 발명인 것 맞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모렐의 발명이란 모렐이 이 영상매체기계를 통해 존재와 사물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자는 이것을 주인공 내가 모렐이라는 인물을 발명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점점 복잡해짐). 확실한 것은 이 소설 자체가 비오이 카사레스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이건 너무 일반화). 그것은 아마도 모든 소설이 소설가의 발명품인 것과 같을 것이다. '소설은 허구이다' 이것은 소설을 정의내릴때 명제처럼 배우던 말 아닌가?

이 작품에서 주인공 나는 현실 속 인물이며 주인공이 반한 여자 포스틴은 모렐에 의해 발명된 비현실적 인물이다. 주인공이 처한 배경은 현실이라면, 섬에 나타난 사람들, 이들의 임시적 거주, 박물관, 식물원 등의 건물 등은 모렐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이다. 비오이 카사레스의 이 작품이 높이 평가되는 요점이 여기 있다. 환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룬 문학세계를 구축하였다는 것이다.

짐작할수 있듯이 아무 기초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면 이해하며 따라가기 쉽지 않은 내용의 책이다. 해설에 따르면 비오이 카사레스가 도입한 환상은 SF적 환상이 아니라 일상에 숨겨진 또다른 현실로서의 환상을 그렸다고 한다. 소설가다운 환상이고 좀더 친현실적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설까지 다 읽어보았지만 아직도 의문점인 것은, 화자인 '나'와 '모렐'중 작가가 더 내세우고 싶은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하나 더. 만약 내가 모렐이 된다면 어떤 환상을 구성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건 아마 오늘 하루치 생각꺼리가 될 것 같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9-2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절대적인 기준이나 가치는 아니지만, 이렇게 이른 나이에 고전이라 불릴 작품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천재라는 건 존재하는구나 싶어요. 카사레스가 이 작품을 썼던 나이의 두배가 되었지만 저는 뭔가 이렇다할 글을 써놓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카사레스에게는 카사레스의 삶이 있고 제게는 제 삶이 있는 까닭이겠지요. 천재를 천재로 만드시고 평범한 사람을 천재 아니게 만드신 건 다 뜻이 있을 것이다...라고 스스로 위로 합니다.

저는 소설이 너무 좋은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온갖 감정들을 겪으며 사건들이 벌어지기 때문인데요, 오늘 나인님이 리뷰하신 책안에서도,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면서 자신이 반한 여자의 근처에 있는 남자에 대한 질투심을 갖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을 좋게 보지 않고요. 이런거, 너무 한심한 감정 같아 보이지만 실상 누구나 다 느끼는 감정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책에서 보면서 아, 사람이란 이토록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존재이구나, 완벽하지 못한 존재야, 생각하는 순간들도 소설을 읽는 기쁨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모렐의 발명 어쩐지 제게는 어려울 것 같지만, 그래도 읽어볼래요.

hnine 2020-09-25 12:17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말씀처럼 저도 어느 분야에든 천재성 가진 사람 있다고 봐요. 천재로 태어나기란 확률적으로 어려운 일이니까 부럽기야하지만 천재가 모든 분야에 다 천재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이 어느 한 분야에 집중되어 보통사람의 수준을 넘어설때 천재라고 하는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 보거든요. 그러니 한 분야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선 천재가 아니라 오히려 모자라보일수도 있을테고요. 그렇다면 천재로 태어나지 않길 잘했다 생각도 든답니다. 완전 제 맘대로 해석하고 제 맘대로 위로하고, 그러죠? ^^
내가 나 답게, 나의 의지에 의해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위대한 삶일것 같아요. 많은 업적을 남긴 삶이 위대한 삶이 아니라요.
이책 쉽진 않아요. 그렇다고 심하게 어렵지도 않답니다. 읽어볼만해요. 사고의 확장과 탄력은 너무 술술 넘어가는 책보다 오히려 이런 책 읽을때 일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천재들은 일하고, 우리들은 그들이 해놓은 일을 누리면 되지요. ^^

Falstaff 2020-09-2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 좋은 리뷰를 쓰시느라 시간이 필요하셨군요! ^^

hnine 2020-09-25 12:22   좋아요 2 | URL
책 뒤의 해설도 읽고, 다른 분들 리뷰도 읽어보고, 그러면서 갈피를 겨우 잡았는걸요. 그렇게해서 어쨌든 리뷰를 올려야 비로소 책을 다 읽었다고 보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요. 읽은 책 리뷰 안쓰고 다음 책 읽고 있자면 웬지 마음이 불편해요. 그래서 좋은 리뷰 아니더라도 쓰긴 써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나저나 Falstaff님 리뷰 아니었더라면 언제 읽을지 기약없었던 책이랍니다. 감사드려요.

바람돌이 2020-09-25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정이 흥미진진하네요. 이렇게 또 좋은 책과 작가를 알게됩니다.

hnine 2020-09-25 22:07   좋아요 0 | URL
말씀 그대로예요. 설정이 기발합니다. 해석도 다양할수 있고요.
잘은 모르지만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이런 쪽 문학은 특이한 것 같아요. 환상적 요소가 있다고 할까요. 복잡한 구성도 그렇고요.
한번 읽어봐주세요~

바람돌이 2020-09-25 22:46   좋아요 0 | URL
넵!!!
 
7층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도 인간이면서 과연 인간 본성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될 때가 있다. 폭력과 학대의 대상이 적이 아니라 바로 연인, 자기가 낳은 자식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때이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어느 민족, 어느 계층에 국한된 일도 아니며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유가 뭘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성장과정에서 어떤 결정적 결핍 또는 회복안될 상처가 있었기에 이런 극단적 행동 이상을 보이게 되는 것일까.

스웨덴에서 잘 알려진 여성 만화 작가인 오사 게렌발의 <7층>도 이런 생각을 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1973년생, 올해로 48세인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한다.

첫 장면은 주인공 '나'가 집을 떠나 예술 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모 곁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혼자라는 새로운 자유를 만끽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어느 날 파티에 참석했다가 너무나 이상적으로 보이는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그는 나의 모든 우울과 불안과 실패를 잊게 해주고 과거야 어떠했든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걸 도와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제목 <7층>은 나와 남자친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아파트의 층 수를 뜻한다.

그러던 남자 친구가 가끔 이상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사사로운 행동을 지적하며 이유를 따져묻는가 하면 이런 건 하지 말라며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의 비상식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더욱 잦아지고 신체적 폭력까지 가하는 일이 벌어지자 나는 점점 견디기 어려워지고 보이지 않는 족쇄에 채워져 그 끝을 남자 친구가 쥐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살게 된다. 비슷한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이 이런 상태로 상당한 시간을 끌게 되는 것에 반해 주인공 나는 이대로 버티는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용기를 낸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 선언하고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부모님 집으로 옮겨온 것이다. 혼자 견디고 삭히는데서 벗어나기 위한 이러한 행동은 좀처럼 여성들이 결단못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런 결단을 어렵게 해봤자 그것이 시원한 해결점이 되리라는 기대 대신 남들이 믿어주지 않는채 자신의 결점 폭로에서 그치고 말거라는 불안감, 즉 나의 행동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과 불확신때문이다. 이런 의심과 불확신에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우리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 책임을 나눠가지는 것이 맞다.

남자 친구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물리적 폭력을 고발하고서 주인공 나는 또한번 시련을 경험한다. 반복되는 경찰 조사는 물론이고 스스로 재건의 고된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난 그야말로 난파선과도 같았다.

내 자존심은 산산이 부서졌다.

나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73쪽)

 

그동안 서서히 잃어온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쉽고 즉각적일리 없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그보다 더 노력의 가치가 있는 일이 있을까? 그녀는 서서히 스스로 재건되어 갈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노력 유무가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말해준다.

 

하지만 언젠가 또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그를 마주치게 되리라. (79쪽)

 

이 사회에는 전 남자친구와 같은 남자가 어디든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지금도 주인공 '나'가 겪은 일을 겪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회에 아직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일깨우는 저자의 경고의 말이다.

오사 게렌발은 개인적인 불행과 시련의 경험을 침묵으로 억누르지 않고 그 침묵을 깨고 나와 이후의 삶을 자신만의 방법인 그림과 글로서 사회를 일깨우는데 일조 하며 살고 있다. 사회에 일조는 물론이고 오사 게렌발 개인적으로도 훨씬 가치있는 삶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바른 방향으로 전환해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수린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은지 오래 되었지만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다. 한국소설에 대한 내 관심이 예전에 비해 수그러들어서 인기있는 신간도 놓치고 지나가거나 뒤늦게 겨우 읽어오고 있는데, 우연히 백수린 작가의 인터뷰를 몇개 듣다보니 이 작가는 한국의 비슷한 연령대 (30~40대)의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뭔가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는 감을 잡게 되었다. 내가 어림짐작하는 한국 소설은 둘중 하나인데, 시종일관 진지하고 묵직하고 암울한 주제의 소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유머러스, 시니컬 코드를 작정하고 쓴 소설.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백수린의 이 소설은 진지 모드로 일관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풍자적, 희극적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의 어림짐작 한국 소설 분류는 이제 갖다 버려야겠다. 한마디로 백수린의 소설은 쓱쓱 잘 읽힌다. 읽어나가는데 막힘이 없이 페이지가 쓱쓱 넘어간다. 그런 책을 좀 읽고 싶어 고른 책인데 제대로 잘 선택했다 싶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았다.

첫째, 이야기가 대체적으로 시간순으로 진행된다. 현재 상황으로 시작했다가 어느 새 20년전 장면으로 이동하여 진행했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시제를 왔다 갔다 하며 진행되는 방식은 요즘 소설에서 많이 보는 구성인데 복잡하고 치밀해보여 작가들은 즐겨 쓰는지 몰라도 읽는 사람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읽게 되기 마련이다. 그에 반해 백수린의 여기 포함된 작품들은 그저 평이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거 장면으로 넘어갈땐 모호하게 처리하지  않고 웬만해선 독자가 혼동하지 않을 정도의 언급을 하고 넘어간다.

둘째, 급반전이 거의 없다. 무리한 결말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평이하게 이야기를 맺는다. 긴장할 필요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 지루하거나 읽고난 후 시시하다고 느끼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끝까지 독자의 흥미를 붙잡는데 반전이 꼭 필요한건 아님을 오랜만에 깨우쳐주었다.

셋째, 주인공들의 성격이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유별난 성격의 소유자라기보다 오히려 평범에 가까운 인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의 궤적>의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알게된 선배 언니와 한때 같은 궤적의 시간대를 보내지만 그 궤적이 영원히 같을 수는 없다. <여름의 빌라> 역시 타국을 배경으로 한다. 주아와 남편은 주아가 오래전 배낭여행할때 알게 된 독일인 부부의 초대를 받아 이들 부부가 머물고 있다는 캄보디아에서 잠깐의 여름 휴가를 함께 하는데, 캄보디아 빈민을 보는 독일인 부부와 주아 부부 네 사람의 입장은 같지 않다. 비록 빈민이지만 평화로워보이는 모습 앞에서 누구는 아름답다 느끼고 누구는 불편하다. 불편한 사람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까지 불편하다. <고요한 사건> 이라는 제목처럼 백수린의 작품 속 사건들은 대체적으로 '고요하게' 벌어진다. 폭행당해 쓰러진 고양이 아저씨와 죽은 고양이를 보고 놀란 주인공은 자기의 아버지만은 그 상황을 해결해줄거라 믿고 달려와 도움을 청했지만 그것은 그저 고요한 사건으로 침묵 속에 지나가게 방치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아주 잠깐 동안에> 역시 <고요한 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기대되는 행동과 실제 행동의 간격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하고, <폭설>에서는 폭설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모든 계획이 틀려져 버리고 속수무책이 되지만 성숙과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받는 것은 이런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다는 <흑설탕 캔디>는 독자 역시 오랫동안 인상에 남을 작품이 아닐까 한다. 화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화자의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화자는 다만 할머니를 기억하고 재해석하는 주체일 뿐. 단순히 노년의 연애 감정을 말하려고 한게 아니라 노년에도 인생에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고요하게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은 관습과 통념으로 자신을 중무장하고 있지 않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어느 외국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쓰게 되었다는 백수린 작가 설명이 있었는데 한나절 잠깐 동안의 변화, 그 변화를 경험한 엄마를 어린 아가의 눈을 빌어 마무리하였는데, 평상시와 다른 아름다움이 낯설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고 표현한 작가의 속마음을 독자가 읽어내고 감탄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도 알까?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은 소소해보이는 일들, 극적이지 않은 사건들인데 그것을 가지고 소소하지 않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량을 또한번 확인시켜준다.

우리의 삶은 시간의 궤적을 남기며 진행해가고, 잠시 머무는 여름의 빌라 같은 것이며 고요한 사건의 연속이다. 인생 이제 기대할 것 없다는 회의주의 틈틈이 흑설탕 캔디를 기대하며 살아도 좋은 인생이다. 여기 실린 모든 작품들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계, 작지만 전부인 세계를 얘기하고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0-09-2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못 읽어본 작가인데 hnìne님글 보니 또 관심이 가네요. 자꾸 보고싶은 책들이 늘어서 큰일이예요.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좋은 날 되세요

hnine 2020-09-22 22:52   좋아요 0 | URL
가독성 좋은 책이 필요한 시기에 읽으면 딱 좋을 책인 것 같아요. 무리없이 재미있더라고요.

난티나무 2020-09-2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록에 추가합니다.^^

hnine 2020-09-22 22:54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은 후 저도 이 작가의 다른 책 바로 한권 주문했답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부란 말 참 많이 듣고 자랐고 이제는 공부하란 말 많이 하며 산다. 공부가 좋다면 스스로 하면 되는데 주로 내가 하기보다 남에게 하라고 시킨다. 대상은 대개 자녀. '공부만한 투자가 없다', '평생 공부다', '공부하는 사람 못따라간다', 판에 박힌 잔소리를 할때 보통땐 듣고 마는 자녀가 어느날 "그러는 엄마는 대체 공부가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라고 되묻는다면 대답할 한마디 근거라도 마련해놓고 있을까? 정말, 공부란 무엇일까.

<아침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명쾌하고 소신있게 강의아닌 강의를 펼쳐주던 저자가 이번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무엇을 깨우쳐주려고 하나 기대하며 책장을 열었다.

책을 다 읽고난 소감은,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참 맛있게 읽었다는 느낌이다. 맛은 없지만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었을때와도 다르고, 맛도 없고 몸에도 안좋은 음식을 혹시나 하며 끝까지 먹었을때 느낌도 아니며, 맛은 좋아 다 먹었다만 첨가물 잔뜩 들어 맛을 낸 음식과도 달랐다. 옳은 말이지만 세상에 던지기 어려울수 있는 말, 공부하란 말을 학생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소신, 다독가이다보니 판에 박히지 않은 다양한 비유, 지식 충전으로 나이를 거슬러가보자는 자체적 해석, 이런것들이 만들어내는 '맛'인가보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을 때 충만한 것은 거품같은 공허뿐이다.

생각할수 있는 근력이 없기에,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대신해줄 강력한 타자를 갈구한다.

장기적인 것, 공적인 것, 엄정한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말초적인 욕망의 충족과 단기적인 이익의 추구와 근거없는 인정욕구가 남발하게 된다. (13쪽)

 

자녀들에게 잔소리하고 싶을때,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하고 싶을때 읽어보면 좋을 대목이다. 생각할 수 있는 근력, 생각의 척추기립근, 이런 말은 저자의 책에서 인상적으로 남는 말들 중 하나이다.

 

어떤 신문 기자가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이 낭가파르바트 설산을 오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메스너는 대답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의 대답에는 보통 사람이 쉽게 가지기 어려운 어떤 청춘의 기립근 같은 것이 느껴진다. (87쪽)

 

얼마전에 읽은 메스너가 여기서도 나와 반가왔다.

기립근. 똑바로 설 수 있게 하는 근육, 힘. 메스너의 이 대답은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 이용된 대답과 비슷한 맥락이다. 추석날 가족들 모인 자리에서 잔소리 하는 어른께 추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되물어보라던.

 

공부라고 할때 우리는 곧바로 성실성을 함께 떠올린다. '주기적으로 정해진 일을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말은 곧 성실성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한가지를 더 보태어 강조한다. 성실성 더하기 창의성이다. 이제 모범생의 자세로만은 부족하다면서 창의적이 되라고 한다. 창의적이기 위해 용기와 유연성이 중요한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관습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고, 관습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는 관습에 의존할수록 에너지 소비가 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다른 두 생각을 연결시킬때 생겨난다는 아시모프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상하다시피 엄청난 독서가이기도 한 저자는 서평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써놓았는데,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책에 삽입되어 있는 그림들은 내용과 어떤 관련성이 있나 읽으면서 궁금했다. 책 뒷편에 인터뷰 내용을 보니, 아침에 일어나 페이스북에 그림 한장 올리고 자기 전에 음악 링크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고 한다. 그림은 아마 그렇게 본인 페이스북에 올렸던 그림들을 책에도 포함시킨게 아닌가 싶다.

 

단테의 <신곡> 첫부분이 이렇게 된다며 인용하였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 서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 거칠고, 가혹하고,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죽음도 그보다는 덜 쓸 것이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의 나이가 되어 이 대목을 읽으니 이렇게 공감갈 수가 없다. 이 나이 정도 되면 저절로 살아질 줄 알았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이 대목이 책 중에 두번이나 나오기에 아직 안읽었지만 집에 갖고는 있는 단테의 신곡을 꺼내다가 위의 대목만 원문으로 읽어보았다.

 

 

 

 

 

그래서, 공부란 무엇이란 말인가.

공부란, 그저 살기만 하지 않는다면 그에 더해지는 모든 활동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내 생각이다 현재로서 할 수 있는.

계속 고쳐나갈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0-09-1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감있는 손글씨가 좋아요. ^^
저는 초딩글씨라서 손글씨는 아무데도 못내놔요. ㅎㅎ 저는 요새 그냥 사는게 다 공부겠거니 해요. 그래서 자꾸 관성에 빠지나싶은데 이 책을 읽으면 좀 나아질까요?

hnine 2020-09-16 19:20   좋아요 0 | URL
정감있게 봐주시니 그런가봐요. 고맙습니다. 요즘 손글씨 내놓을일 없잖아요.
(천재는 악필이래요)
이책보다 먼저 나온 <아침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이 더 낫다고 하신 분들도 많아요. 저는 그책도 좋았고 이 책도 좋았어요. 지금도 아마 다음 책을 쓰고 계실듯해요.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이런 분들은 아주 유익하게 이용하고 계시더라고요.

다락방 2020-09-1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체 정말 좋아요, 나인님.

hnine 2020-09-16 19:23   좋아요 0 | URL
참고로 저는 <쓰기>라는 교과서와 과목이 있던 때에 초등학교 (국민학교)를 다녔답니다. ㅋㅋ
요즘은 손글씨 쓸일이 예전보다 거의 없지요. 얼마전엔 친구 생일인데 어디 한번 생일 카드를 손으로 써서 우편으로 부쳐볼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필체 좋다고 해주시니 기분 좋아요.

kpio99 2020-09-16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 잘 쓰시네요.

hnine 2020-09-16 19:24   좋아요 1 | URL
영어요, 한글이요? ^^ 농담입니다. 잘 쓴다고 해주셔서 고마워요.

수이 2020-09-1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절반 정도 살지 않은 거 같은데 느낌상 딱 절반까지 왔다, 이제 딱 절반 남았다, 정말 말 그대로 딱 중년이로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계속 고쳐나갈 것이다_ 그게 어쩌면 적확한 공부의 정의가 아닐까 싶어요. 이전 책에 비해서 저는 감흥이 좀 덜했는데 다시 읽으면 좀 달라질까 싶어요. 아 그리고 한글도 영어도 진짜 잘 쓰세요! 나인님, 실로 멋져서 한참 보았어요 필체 사진 :)

hnine 2020-09-17 09:02   좋아요 0 | URL
성인이 된 후의 독서는 새로운 지식이나 생각을 알아가기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고 동의하고 있는 것들을 더 공고히 하는데 이용된다는 말 있잖아요. 이미 만들어놓은 벽을 더 탄탄히 만드는거죠. 그러다가 latte가 되어가고, 흑흑. 계속 고쳐나갈 각오를 해야할 것 같아요. 지금 아무리 확실해보이는 사상이나 생각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는 자세를 지키고싶답니다.
글씨체 칭찬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칭찬받고서 으쓱해가지고 앞으로 자주 올리게 생겼어요 ㅋㅋ
 
작가의 뜰 - 소설가 전상국이 들려주는 꽃과 나무, 문학 이야기
전상국 지음 / 샘터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 전상국. 내게는 중학생때 TV에서 한국전쟁 특집극 <아베의 가족>을 보고 처음 알게 된 작가이다. 그때만 해도 아직 어렸는지, 죽창으로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 아베라는 인물의 탄생 경위, 이후 아베 가족의 역사가 하나씩 드러날때마다 그 충격이 컸었다. 한국 전쟁이 단순히 잔혹하고 슬픈 역사적 사건으로 이미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돠어 현재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고 또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저자는 고등학생때 이미 문학상에 입상함으로써 일찍부터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고 데뷔하였지만 그렇다고 여든의 나이에 이른 지금까지 계속해서 글 쓰는 일만 하며 살지는 않았던 듯 하고 방황의 시기도 겪은 듯 하다. '소설가 전상국이 들려주는 꽃과 나무, 문학 이야기' 라는 설명이 붙은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삶을 되돌아보는 가벼운 자서전 형식이기도 하고 아내와 함께 고향에 내려가 주로 아내 몫인 꽃과 나무, 정원 가꾸기를 옆에서 도와주기도 하고 자연이 보내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내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숲은 녹색 탱크. 사람들은 생활에서 피폐하고 고갈된 에너지를 숲에서 충전받는다. (65쪽)


자연과의 만남은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상대를 노리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과 달리 항상 덧셈이었고 자기 치유의 바이블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인간은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을 뿐 이다. 인간이 인간을 대할 때 호시탐탐 상대를 노리듯이 우리 인간은 자연을 대할때도 그렇게 대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는지. 이용하는데 눈이 멀어 그것의 소중함과 무서움을 깨닫는 것은 훨씬 나중이다.



설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산을 찾아 들어간다

그 산에

너르고 착한 다른 세상 있구나


- 이성부 <산2> - 



서울에서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12년을 지내고 그는 강원대학교 교수가 되면서 다시 고향 춘천으로 돌아온다. 춘천은 그가 애정하지 마지않는 요절한 작가 김유정의 고향이기도 하다. 춘천에서 그는 교수직 외에도 많은 일에 의욕을 가지고 관여하는데 주로 김유정과 관련된 일이었다. 김유정을 기리는 문화사업에 관여하기도 하였고 김유정을 기리는 다른 문인들과의 모임을 활성화시켰으며 이들과 힘을 모아 금병산 일대에 금병산예술촌을 만들기도 하였다. 춘천이라는 지역과 김유정에 대한 사랑은 그의 작품 여기 저기에 소재로 쓰이기도 하는데 저서 <김유정>, <춘천 하는 이야기>외에 <유정의 사랑>은 소설, <물매화 사랑>은 그가 좋아하는 들꽃을 위해 쓴 단편소설이라고 한다.


책 속에는 그가 직접 찍은 많은 꽃, 나무의 소박한 사진들이 실려 있다. 멋부리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듯한 사진들이다. 김유정의 대표작중 하나인 <동백꽃>의 동백꽃은 우리가 아는 그 동백꽃이 아니라 노랗게 꽃이 피는 생강나무임을 그의 설명 덕분에 이제사 알았다. 백로가 날개를 펼친듯한 모습의 꽃을 피우는 해오라비난초는 얼마나 아름다운 꽃말을 가졌는가. '꿈에도 만나고 싶다' 란다. 군락을 이룬 노란 기린초. 작고 여린 기린초이지만 한번 쯤 줄기를 싹둑 잘라주는 용기가 있어야 여름날 더 실한 꽃을 볼 수 있다는 대목엔 밑줄을 그었다. 평소에 하얗고 깨끗한 노각나무 꽃을 보며 활짝 피는가 싶으면 어느새 땅에 떨어져 있어 왜 저리 빨리 떨어질까 의문을 갖고 있던 나인데 노각나무를 특히 좋아한다는 작가는 딱 하루만 피었다가 저녁에 툭 떨어지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들꽃, 나무, 문학 이야기가 소재이긴 하나 이 세가지가 더 잘 엉켜들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꽃, 나무, 정원 이야기와 문학 이야기가 별 관련없이, 섞여만 있는 구성에서 크게 업그레이드되진 않았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역시 노년을 정원일에 몰두하며 살아간다는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수필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정원 생활 기록이라니 이 책 만큼은 조곤조곤 부드러운 글이겠거니 하며 읽기 시작했다가, 정원을 예찬하면서도 어김없이 그의 뚜렷한 철학과 주장이 담긴 글의 힘이 느껴져서 지금도 옆에 두고 종종 들춰보는 책이기 때문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0-09-08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상국. 참 진지한 사람입니다. 이 양반이 컴플렉스가 있는데 그것 때문에 생긴 열등감을 어떻게 가려볼까, 싶어서 글을 썼다고 누군가에게 들었습니다. 열등감의 근원은..... 전상국의 트레이드 마크인 대머리도 아니고, 큰 키였답니다. ㅎㅎㅎㅎ
(춘천이 제 처가 동네라서 좀 압니다.)

hnine 2020-09-09 12:49   좋아요 0 | URL
문학하시는 분들이 진지한 분들 많으실것 같아요. 큰 키가 컴플렉스가 될 수도 있군요. 작은 키인 저도 없는 키 컴플렉스를 갖고 계셨다니. 저도 이분 작품은 <아베의 가족>을 TV말고 소설로 다시 한번 읽어본 것 하고 <우상의 눈물> 정도 밖에 없어요. <유정의 사랑> 같은 것은 한번 읽어보고 싶더군요. 소설 속에서 김유정의 연애 사건을 어떻게 그려놓았나 궁금해서요.
춘천, 저는 지금까지 딱 두번 가봤는데 두번 모두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답니다.

페크pek0501 2020-09-14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상국 작가의 소설도 읽었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책은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라는 책이에요.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것 같은데 내용이 알찹니다. 책 내용 그대로 따라하면 진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어요. 물론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죠. ㅋ

옆에 두고 종종 들춰보는 책을 만난다는 건 큰 기쁨이죠. 어쩌면 그걸 위해 제가 독서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책을 발견하기 위해서 말이죠.

hnine 2020-09-15 05:35   좋아요 0 | URL
전상국 작가의 그런 책도 있군요. 저도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지어내는 것이라는 의미로 생각해서 상당히 매력젹이고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이기도 합니다. 혼자서 재미로 끄적거려보는것과 직업소설가가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이지만 말이죠.
전상국 작가는 문학을, 소설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책 읽으면서 느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