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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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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작은 책이 본책과 함께 왔다. 필사를 해보라고 권하는 작은 노트인가보다.)

 

 

김이설 작가의 모든 소설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의 주인공은 적어도 내가 읽은 이전 작품 속 어느 주인공과도 다르다. 나 자신 일수 있고 작가 같기도 하고 그 어느 누구일 수 있을만큼 튀지 않고 도드라지지 않고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이다. 주인공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내용도 그렇다.

처음의 몇장은 주인공이 남자와 오랜만에 해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야기의 감을 잡느라 긴장하며 읽는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지나가는 모습, 계절이 바뀌는 모습, 즉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묘사한 문장들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그리고 처연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눈길을 자꾸 붙잡았다. 작가는 여자가 남자와 함께 한 시간들, 그리고 헤어지고 혼자 보낸 시간의 흐름을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었나보다.

 

계절이 변하는 걸 절감할 때마다 나는 그사람을 떠올렸다. 기어이 시멘트 틈으로 고개를 내민 민들레를 보았을 때, 후텁한 공기에서 물기가 맡아지거나, 인도에 떨어진 은행을 밟지 않기 위해 까치발로 걷다가, 창틀을 뒤흔드는 혹한의 바람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문득문득 그 사람과 내가 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넉넉하지 않은 집의 맏딸로서 하고 싶은게 뭔지 자신도 몰랐고,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고, 알아야할 필요도 없었던 시기를 보내며 자라 어른이 되어버린 주인공은 뒤늦게 시쓰기를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뒤늦게 자기의 꿈을 알게 되었다는 언니를 위해 주인공의 여동생은 언니에게 용기를 주며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고 시창작 실습을 배우러 다닐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언니와 다르게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야무지고 공부를 잘해서 집안의 기대를 안았던 여동생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획에 없던 이른 결혼을 하게 되는데 남자의 폭력으로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동생이 직업 전선에서 친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대신에 여동생의 아이 둘은 주인공인 언니의 몫이 된다. 자기가 힘들던 시절 자기 손을 잡고 용기를 준 동생의 따스한 체온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은 뒤늦게 가진 시에 대한 꿈을 미루고, 남자하고 연애도 접고, 집안 일과 여동생의 아이 둘을 건사하기 위해 지치고 소모되는 시간을 보낸다. 자기를 위해서 유일하게 해오던 일이었던, 좋아하는 시 한편 필사하는 시간 조차 짬을 내기 힘든, 암담하고 희망없는 시간이었다. 여자는 자기 꿈을 접고, 슬픔을 한쪽으로 밀고,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볼 뿐이다.

 

오늘은 쓸 수 있을까. 저 창문에 흔들리는 목련 가지에 대해서, 멀리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대해서, 늦은 밤 귀가하는 이의 가난한 발걸음 소리에 대해서, 갓 시작한 봄의 서늘한 그늘에 대해서 쓰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누워버렸다. (23쪽)

 

아이들의 엄마인 여동생이 집을 비운 동안 주인공이 아이를 건사하는 모습이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면 너무나 공감할수 있게 묘사되어 있다. 아침부터 잠재우기까지 해줘야 하는 일의 순서, 아이들과 어느 대목에서 부딪히는가 하는 것 까지.

주인공이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여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 환하게 불밝히고 있는 동네 작은 서점에 들려 시집을 읽는 것을 낙으로 삼는 대목, 그러다가 서점을 지키고 있는 젊은 남자와 말을 트게 되고 친해져 가는 대목에선 책에서 온기가 전달되는 듯,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양 체온이 따뜻해져가는 경험에 행복했다.

 

여자는 시인의 꿈을 이루었을까. 아니면 저 지지부진한 상황에 붙들려 계속 그렇게 존재의 투명성만 유지한채 살아갈까.

나는 작가가 이 소설의 결말로 선택한 방식이 개인적으로 너무 좋다. 삶이라는게 그렇지 않은가.

 

여섯개의 작은 제목중 두개를 골라 책의 제목을 삼았다. 첫번째 「우리의 정류장」과 세번째 「필사의 밤」. 둘이 만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이라는 독특하고 의미있는 제목이 만들어졌다. 제목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건 책을 다 읽고 나서였다. '정류장'이 잠시 멈춰가는 곳, 쉬어가는 곳, 바꿔타는 곳, 멈춘 시간의 의미라면 '필사'에서 느껴지는 것은 느리지만 계속해감이다. 꾸준히, 혼자서,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간다는 뉘앙스. 삶의 긴 여정을 이루는 두가지 요소일 수 있다.

 

작은 노트 첫장에 작가의 손글씨체로 써있는 글이 있다.

당신이 서있는 그길이 바로 당신의 길.

기어이 피어오르게 될 당신의 언어는 더없이 찬란하기를.

 

당신이 서있는 그길이 혹시 당신이 가고 싶던 목적지로 데려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길을 걸어온 당신의 시간은 충분히 찬란했다고, 그것까지 알게 되는 시간이 곧 온다고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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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30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나인 님의 리뷰 너무 좋네요.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지점에 눈길이 머문다는 것도 너무 좋고요.
저는 얼마전에 이 책을 친구에게 선물했거든요. 친구가 책 속 등장인물과 비슷한 상황이라서요. 제 경우엔 아버지의 말이 무책임하고 싫었는데, 친구는 읽고서 아버지의 말이 위로가 되어 눈물이 핑 돌았대요.
오늘 나인님의 글에서는 제가 딱히 생각하지 못했던 정류장과 필사를 연결시킨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제가 짚고 넘어가지 못했었는데 말예요. 이래서 같은 책을 읽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나인님. 너무 좋아요!

hnine 2020-10-30 13:04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읽는 작가 소설이라서, 다른데 한눈 팔지 않고 단숨에 읽었어요.
확실히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 느끼며 시간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되새겨보게 되었답니다. 저도 다락방님도, 그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깎이고 다듬어지고 없던 부분이 생기기도 했겠지요. 그러니 작가의 변화는 새삼스런게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같이 주문한 <잃어버린 이름에게> 바로 읽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이 두권의 책이 며칠 사이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출간되었는지.
정류장과 필사에 대한 의견은 그저 제 개인적인 해석인데 혹시 작가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짚었다면 어떡하나 소심한 걱정도 해봤답니다.
이 책에 대한 다락방님의 리뷰를 읽은 날 바로 주문했어요. 이미 읽으신 책이라서 아마 제 리뷰를 더 좋게 더 넓은 마음으로 봐주셨겠지요. 감사드려요.
또 금요일이네요! ^^

난티나무 2020-10-30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야 겠어요...ㅎㅎㅎ 버티고 있었는데 hnine 님 글 보고 ko 입니다.

hnine 2020-10-31 05:29   좋아요 0 | URL
저는 다락방님과 자목련님 글 보고 ko당했어요 ^^
같은 책을 읽고 모두 같은 소감을 갖는게 아니라서 저는 난티나무님의 독후소감도 매우 궁금하네요.
저는 참 좋았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 170여쪽 되는 분량이라서 금방 읽으실거예요.
지금 다음 책 <잃어버린 이름에게> 읽고 있는데, 어제 마침 읽은 난티나무님의 서재글이 다시 떠오르네요.

kimji 2020-11-06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 이 감사를 어떻게 전해야하는지-
그저 부족한 마음만, 감사하다는 마음과 hnine님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만 보냅니다. 감사해요!

hnine 2020-11-07 04:44   좋아요 0 | URL
우리 소설 읽는 재미를 오랜만에 다시 일깨워주신 작가님께 제가 더 감사드려요.
저 이 책 읽는 동안 마음 속으로 울고 웃고 했습니다.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 사계절 1318 문고 123
김민경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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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책이 내 손안에 들어와 오랜만에 청소년소설을 읽는다.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좋아한다. 이제 내 아이도 청소년기를 지났건만 그런 것 상관없이 내가 청소년기일때보다 어른이 되고 나서 더 많이 읽은 듯 하다. 작가의 이름이 생소하고 이 책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책이 손에 들어오자 마자 읽은 것도 여전한 그 애정때문이다. 청소년소설은 아주 좋음 아니면 보통, 이 둘중 하나인것 같은데 이 책은 과연 어떨까 기대를 하면서.

 

두명의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고등학교 1학년 새봄이 (여)와 지석이 (남). 둘은 같은 고등학교 클라스메이트인데 4년동안 학교를 쉬다나온 새봄이는 지석이보다 한살이 많다.

그런 새봄이가 지석이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준 책을 지석이가 망설이면서 읽기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 책은 다름아닌 허먼 멜빌의 <모비딕>. 새봄이는 왜 모비딕을 읽어보라고 했고 이것은 둘 각자의 인생에, 그리고 둘 사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사실 새봄이의 경우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기게 해주는 리더 역할을 이 책이 해준다.

좋아하는 새봄이가 권해주긴 했지만 두껍고 재미없어보이는 책을 앞에 두고 지석이는 처음에 망설이지만 몇장 읽어나가며 이 책의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그리고 3월초 새봄이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린다. 이후 내용은 1인칭 서술 형식으로 지석이가 모비딕을 읽으며 이해해가는 과정이 나오고 중간 중간 새봄이의 지난 일기가 삽입됨으로써 새봄이의 지난 4년에 대해 설명이 된다.

새봄이의 엄마는 4년전 새봄이가 열네살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엄마의 발인날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로 학교도 휴학할 정도로 마음을 잡지 못해 어려운 시기를 지내던 새봄이, 그렇게 4년을 보내고 마침내 다시 학교에 들어가게 되는데 여전히 적응이 힘들고 집중이 안되어 뛰쳐나가고만 싶다.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때 새봄이는 우연히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혼자 스스로 버티려고 애쓰던 어느 날 누군가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일이 일어난다. 그렇게 새봄이는 지석이와 친해지게 된다. 이러면서 모비딕이라는 책의 역할이 시작되는데, 모비딕이라는 고전 한권이 소설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인용되며 줄기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특이하다. 간혹, 모비딕이 이 소설을 위해 이용되었나, 이 소설이 모비딕을 위해서 쓰여졌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새봄이가 모비딕에 심취하게 된 경위가 그렇게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교실을 뛰쳐나와 찾아간 도서실 문 앞에 다른 아이들이 책 읽고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보게 되고 그 중 하나가 모비딕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구였다.

인간은 누구나 포경 밧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긴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던 새봄은 '삶이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라는 문구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고 무시무시한 고래 눈이 표지에 크게 그려져있는 모비딕이라는 책을 읽어보기로 한다. 또하나의 계기가 있다면 세월호 추모식 포스터에 그려져 있는 고래이다. 그 포스터에서 고래의 모습은 모비딕이라는 책 속에서의 고래와 아주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고래가 바다에 떠있고 주위에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 고래가 아이들을 태우고 날아오르는 그림이었다. 고래를 보고 한가지를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수 있는가 새봄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모비딕을 다 읽은 후 새봄은 이 책은 죽음이 아닌 '삶'에 관한 책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살고 싶어졌어. 내가 겪어 보지 못한,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았어. 나는......이미 모든 걸 다 겪었다고 생각했거든." (146쪽)

열여덟살에 이미 모든 걸 다 겪었다고 생각했던 새봄은 책을 읽으며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더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여덟살이 아닌 내 나이에도 다시 새겨보게 되는 말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것.

이 책 제목이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가 된 것에 대한 설명은 지석이와 새봄이의 다른 대화에서 나온다. 역시 모비딕에 관해 둘이 나누는 대화이다.

"맞아.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 지구라는 행성에서 수많은 종들과 살아가는 인간의 자세, 인간의 시선에 대해서 말이야." (166쪽)

 

책 전체에 걸쳐 모비딕 구절이 자주 인용되고 그 구절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나오는 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작품 전체를 한정된 틀에 갖히게 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어떻게 인용되었든 본 작품의 서사가 뚜렷하고 강렬하면 주와 부가 혼동될 염려가 없겠으나 아쉽게도 이 작품은 그정도의 뚜렷하고 독창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청소년기 주인공들답게 때묻지 않은 순수한 동기와 방법으로 자기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모습이 전형적이고 교과서적인 것 같으면서도 또 그래서 새롭게 보였다. 이 세상 청소년이 모두 새봄이와 지석이처럼 맑고 순수하고 긍정적인 영혼을 지켜나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책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해나갈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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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0-2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가 참 예뻐요.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은 느낌도 좋네요.
그렇지만 내용은 밝고 가볍지만은 않은 모양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nine 2020-10-30 04:43   좋아요 1 | URL
그래도 해피엔딩이랍니다.
다만 너무 교과서적이고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제 개인적인 소감이네요.
EBS에서 이책이 느닷없이 집으로 배송이 되어 와서 읽게 되었어요. 제가 신청한 적은 없는데 무슨 선물로 온 모양이어요.

2020-10-29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30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30 0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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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 세 단어 따로 봐도 우울하기만 한데 심지어 세 단어가 모였다.「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의 저자는 63세. 처음부터 임시직은 아니었다. 38년간 정규직으로 열심히 일했고 2016년 60세 나이에 퇴직했다. 그에게는 출가한 딸과 대학3학년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의 진로로 인해 저자의 퇴직후 노후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아들이 대학 졸업후 취업 대신 전문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대학 졸업후 적어도 3년 더 고액의 학비를 조달해야 되는데 퇴직하기 얼마전 딸의 결혼 비용으로 저축해놓은 돈의 상당한 부분을 이미 소비하였고, 퇴직금은 오래 전에 중간 정산을 통해 미리 받아 집 마련하는데 써서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상태이다. 더구나 신용대출 받은 것도 남아있어 은행으로부터 빚독촉까지 받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임시직이든 뭐든 일을 더 해서 수입을 마련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60세 (60세 다음에 노인이라고 굳이 붙이고 싶지 않다. 예전의 60세와는 다른데다가 60세에 노인 소리 듣고 싶어하는 60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의 퇴직자가 일할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저자는 직업의 귀천을 따져서 구직을 하진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예전의 자기 지위를 염두에 두고 일자리를 찾는다면 더욱더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임시 계약직 노인장으로서 겨우 찾은 일자리는 다른 말로 '고·다·자'라고 불리는 일인데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 전적으로 고용주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이렇게 찾은 첫번째 일자리는 버스터미널, 고속버스 배차원이었다. 하지만 하는 일은 말처럼 한가지 업무가 아니었다. 펀하게 밥 먹을 사이도 보장 못하는 일정을 따라 바삐 일하다가 화물 운반용 손수레에 몸이 걸려 곤두박질 치는 바람에 부상을 입고 병가를 내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해고 당하고 만다. 다음 일터는 아파트 경비원. 나의 사촌 오빠도 아들 둘 다 키워 결혼까지 시켜 독립시키고도 지금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고, 평소에 아파트 단지 청소, 화단 정리, 쓰레기 분리수거, 주차 단속 등의 일로 늘 바쁘신 경비원 아저씨들을 보며 경비원 업무로 도대체 몇가지를 시키는 것인가 의문을 가지고 있던 터이므로 더 관심을 갖고 읽은 부분이다.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형편없었다. '늙은 소의 하루'라고 저자가 이름 붙인 경비원의 일과표는 두 페이지에 걸쳐 빼곡했다. 실제로 하는 일은 그 이상이라니, 그야말로 아플 사이도 없이 정신 놓고 몸을 움직여야 겨우 하루치 일과를 마치는 일정이었다. 저자는 결국 여기서 또한번의 부상을 당하게 되고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처방을 받았으나 허락하지 않는 관리사무소의 처우에 주사와 약물 치료로 버티던 중 정작 해고는 다른 이유로 당하게 된다. 아파트 자치회장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다음으로 찾은 일자리는 버스터미널이었는데 처음 일자리와 달리 말은 보안요원이었으나 버스의 하차, 주차, 경비에 이르기 까지 살인적인 일과였고 결국 또 버티다 못해 정신을 잃고 쓰러져 해고당한다. 7개월동안 투병생활을 거쳐 지금은 네번째 임계장으로서 주상복합건물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네번째가 n번째로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최저 임금 인상, 경비업법 위반 처벌 방침 등의 변화가 있는 듯 보이지만 헛점을 더 많이 안고 있는 변화일 뿐이다.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고 임시직, 비정규직의 설자리만 더 좁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결국 아파트 주민들의 관리비 부담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대다수가 반대를 한다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좀 더 부담을 하더라도 개선의 필요성이 분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을 대우하지 않고 이렇게 막 부리면 그 결과는 결국 어디로 갈지 모르는바 아닐텐데, 인권이고 뭐고 입으로만 인권일뿐 눈 앞의 이익 추구가 최우선이다.

이분이 이렇게까지 부상 당하고 치료도 제대로 못받는 처우를 감내하며 일을 계속 해야했던 이유중엔 자녀의 진학 문제가 발단이 되었다. 대학까지 졸업시킨 후에도 이렇게 무리를 해가며까지 자식의 진로를 위해 부모는 희생해야 하는지, 그것도 갑갑했다.

한 가지 문제 뒤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그래서 더 문제 해결을 복잡해보이게 한다고 생각하니 도움이 안된다. 최소한 눈을 들어 내 주위를 좀 둘러볼 수 있어야겠다. 내 문제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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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0-22 15: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일 큰 문제는 임계장 당사자에게 있지 않을까요.
아들이 대학 졸업하면 요샌 스물여섯. 대학원 학비를 왜 부모가 내주어야 하는지 이해가 좀 덜 갑니다. 넉넉한 가정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자신이 나가서 험한 일을 하면서, 산재를 당해가며 나이 든 아들의 학비를 내준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거나 안 했거나, 난 모르겠으니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살라고 집에서 아이들을 쫓아낸 제 입장에서, 딸 결혼할 때 부모 자산 헐어 과감하게 보태준 것부터 이해가 좀 덜 가네요.
아이들 쫓아내니까 생활의 폭이 갑자기 넓어지는 게 이젠 집에서 아내 찾는 것도 휴대폰 써야 할만큼 널럴하니(여기 휴지 없네. 좀 가져다줄래?), 무척 좋기만 하네요. 아이 장가들 때, 전 현금 3천, 저와 처의 결혼반지, 이렇게만 딱 주고 알아서 하라고 했답니다. 나이 든 사람들도 바뀌어야 해요.
제 생각엔, 임계장 스스로가 불행해지기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hnine 2020-10-22 23:44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자식이 어른이 되는 시점은 부모가 자식을 놓아주는 때 라고 하지요.
언제까지나 양육하고 관여하려고 하는, 그걸 딱 끊어야 부모도 자식도 모두 자기 갈 길을 제대로 가는 것인데, 부모 입장에선 그게 어려운가봅니다.
자식 입장에서도 부모가 저렇게까지 해가며 자신의 학비를 조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요. 그간 사정을 가족들에게 자세히 알리지 않았었는지 저자가 이 책의 후기에도 썼더라고요. 책의 내용을 알고서 가족들이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요.
그나저나 Falstaff님 자녀분들 모두 독립시키셨군요. 어려운 일 마치셨습니다.
 
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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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소설 세권이 몇주만에 내 책꽂이에 나란히 꽂히게 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 <친애하고 친애하는>, <폴링 인 폴>이 차례대로 꽂혀있는데 이것은 내가 읽은 순서이고  책이 출판된 순서대로 하자면 <폴링 인 폴>, <친애하고 친애하는>, <여름의 빌라> 이렇게 되어야 맞다.

작가 백수린은 1982년생 올해 서른 아홉. 2011년 서른 나이에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으니 올해로 등단 9년째이다. 등단하고도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예작가들이 적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백수린은 그동안 수상 경력도 많고 대중에게 이름 알리는데에도 성공한 작가에 속하지 않나 싶다.

이 책 <폴링 인 폴 (Falling in Paul)>은 2010년에서 2013년 사이에 발표한 아홉 편의 단편을 모아 2014년에 출간된 단편 소설집이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등단작이 실려 있는 책이라니까 올해 발표된 <여름의 빌라>에서의 그녀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 알겸 읽게 보고 싶어졌다.

「감자의 실종」에서 실종된 것은 감자라는 물체가 아니라 감자라는 언어였다. 어린이 책이긴 하지만 미국 작가 Andrew Clements의 <Frindle>이 바로 연상되었다. 'frindle'이 무슨 뜻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이 책에서 보면 아이들이 어떤 물체의 이름을 지금까지 알려진 이름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는 내용이 나온다. 「감자의 실종」에서는 이것이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문제로 이어지지만 <Frindle>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떤 일의 발단이 꼭 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같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작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수 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자전거도둑」이 바로 작가의 2011년 등단작인데, 비슷한 처지의 세여자가 한 공간에서 한 공기를 숨쉬고 살다가 그중 한명이 궤도에서 벗어나려는 듯 싶을 때 다른 두 사람이 느끼는 심리를 그렸다.

사실 이 책을 펼쳐서 제일 먼저 읽은 것은「폴링 인 폴」이었다. 그리고 지금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남는 것도 이 작품이다. 기존 관계에 큰 변화를 일으키게될 결정적이고 도발적인 행동, 그 결과로 관계의 뒤집어짐, 이런 것은 좀처럼 백수린 작가가 시도하는 서사 구조가 아니라고 본다면 이 작품 역시 가능성과 아련함으로 남고 그래서 혹자는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고 혹자는 마음에 들수 있을 것이다.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이 알쏭달쏭한 제목의 단편에는 돌연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 여자와 베를린으로 그 여자를 찾아가는 남자가 나온다. 베를린이라는 타지, 여자 혼자 유학이라는 설정보다 주목할 것은 그것이 두사람 사이의 이해 능력에 어떻게 변화를 일으켜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서서히,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직도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은 여전하다고 믿고 있고 달라질 어떤 사건도 없었음에도, 사랑한다는 감정도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만 확신할 수 있을 뿐 얼마나 불안정한 감정의 한 상태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밤의 수족관」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는 일을 촘촘하게 구체적으로 잘 살려 작품화해내는 작가의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었다. 과연 잃어버렸다는 아이의 존재는 실재인가 환상인가. 그것은 어쩌면 둘째 문제일 수 있다. 본인마저 아이의 존재를 확신할 수 없게 되고 마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내 존재도 불확실하게 된다는 것일수 있다.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는 책 뒷편의 해설에서도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작품이다. 백수린 작가 답지 않게 모호한 구성, 모호한 의미전달로 읽혀지기 때문일까? 작품에서 '당신'이라고 지칭하는 대상은 독자, '신인소설가' 또는 '나'라고 지칭하는 것은 작가로 보인다. 작가는 3인칭관찰자가 되어 주인공 '리'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 건설회사에 입사했다가 아프리카로 파견을 나가는 '리'는 그곳에서 '킴'이라는 여자를 만나 함께 살게 되는데, 말이 함께 살기지 쉽게 말하면 얹혀 살기이다. 끝내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리는 궁에서 관광안내 가이드 일을 하게 되는데 가이드해줄 팀을 기다리던 중 킴을 연상시키는 모습의 한 여자를 보게 되어 자진으로 가이드를 해주며 그녀를 쫓아다니며 킴과의 일을 회상한다. 킴과의 관계도, 미지의 여자의 정체도, 종잡을 수 없어 혼란을 겪는 과정은 결국 천년된 은행나무를 에워싸고 앉아있는 까마귀떼를 올려다보며 끝나는데, 그것은 마치 작품 속에서 이 소설이 예술적 가치가 있을까 고민하는 것 만큼이나 모호하다.

작가의 2011년 등단작「거짓말 연습」에서 거짓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거짓말과는 좀 다를 수 있다. 말 꾸며대기, 나아가 이야기 지어내기라고 확장 해석하는게 맞을 것이다. 동시에 말 꾸며대기나 이야기 지어내기라 거짓말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가 되물어볼수도 있겠다. 외국어를 이용해 대화를 하다보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적당한 어휘를 찾아내기 어려워 비슷한 언어로 뭉뚱그려 대충의 뜻만 전달하는 수가 있고 이럴때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마음의 저 한구석에 찌꺼기처럼 가라앉아 고여있게 된다. 꼭 외국어가 아니어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은 작품 속 주인공의 엄마의 경우에 해당된다. 자신의 밝히기 싫은 과거를 자꾸 묻는 사람들에게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살을 붙이고 각색을 하여 말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런 것을 꼭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정확한 말로 적절하게 표현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것이고, 아예 입을 다물고 말을 거부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유령이 출몰할때」는 사실 등단 이전에 1년 먼저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백수린 작가 답지 않게 설정과 서사가 약간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꽃 피는 밤이 오면」꽃 피는 봄이 아니라 밤이다. 희망과 재생의 의미로서 봄이 아니라 꽃이 피어봤자 밤이라는 말인가? 궁금해하며 읽기 시작했다. 지방대 출신으로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던 한 남자가 있다. 의욕을 가지고 시작한 회사 생활이지만 경기 불황과 구조 조정의 압박 속에 일해오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실어증에 걸리는 일이 일어난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이 남자를 기다리는 아내가 있다. 형편이 좋아질때까지 아기 갖기도 미루며 동물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고 있던 아내이다. 언젠가 남편으로부터 들었던, 억울한 죽음을 당한 남편을 위해 남편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남편 회사 동료 아내를 떠올리며,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 속 동물들의 고통과 공감에 대한 것을 생각하며, 언젠가 남편의 입술이 달짝여 말이 되어나오게 될 날을 기다린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마지막 문장을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라고 맺고 있지 않는가.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괜찮을 것이다라는 말의 뜻을 나는 어떤 결과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갖기로 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희망할 것도 절망할 것도 없다. 희망이나 절망은 한 때의 느낌일 뿐, 그것 자체가 결말은 아니니까.

 

어쩌면 나는 그동안 백수린의 작품들을 통해 희망이나 절망에서 머물지 않는 법을 엿본 것일지 모른다. 희망, 절망, 그런 것들은 거쳐가는 과정이지 결론이나 결말은 아니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 속에서 극단의 절망이나 희망을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맺지도 않았다. 그것이 작품의 서사적 안정성으로 나타날 수 있었고 그녀 작품을 읽으며 편안할 수 있게 했다. 어떤 문제적 인간이 주인공이든, 그들이 어떤 불합리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되든, 예리하게 포착해낸 상황도 작가는 그것을 교묘하게 안정적으로 이끌어간다. 그것이 다른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든 그녀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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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고, 친애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1
백수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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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스로 붙였든 출판사에서 붙였든 작품의 제목은 의미있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친애하는' 이란 말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는 친밀도를 가진 경우에 쓰지 않나 싶다. 핏줄로 맺어진 관계, 즉 가족, 부부, 자식에게는 잘 안쓰는 걸 봐서도 그렇다. 이 책에서 주인공 나의 입장에서 친애하는 대상은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이다. 대상이 두 사람이기에 친애하고 친애하는 이라고 두번 연달아 썼다고 한다. 주인공 인아와 인아의 엄마, 인아의 외할머니 이렇게 3대에 걸친 이야기가 인아가 화자가 되어 펼쳐진다. 인아가 아직 아기일때 엄마는 어린 인아를 남겨두고 혼자 미국으로 유학을 가느라고 인아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아빠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텐데 엄마가 아기를 남겨두고 혼자 유학을 간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상황이랄 수 있었다. 몇년 째 불화가 지속되는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인아가 대학생이 된 후까지 이어지고, 외할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옆에서 보살펴드리기 위해 인아가 외할머니 집으로 가서 지내주었으면 하는 엄마의 말에 인아는 외할머니와의 각별한 정도 정이지만 엄마와 한집에서 안있어도 된다는 것때문에 기꺼이 짐을 싼다. 할머니의 삶을 보면, 부유한 집의 딸로 태어났지만 집에서 정해주는 집으로 시집을 가야했던 시절을 살았고,  교사였던 남편이 강화도 학교로 발령받아 홀로 가버리자 혼자 시댁에 남아 시부모를 모시며 아이를 키워야했다. 큰 맘 먹고 아이를 들쳐업고 찾아간 강화도의 남편 학교에서 할머니는 남편이 다른 여교사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학자 기질이 있고,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했던 할아버지였지만 그런 할아버니에게 할머니는 밥하고 시중드는 것, 아이를 잘 키우는 것 말고는 해줄게 없었다. 그런 할머니를 옆에서 보고 자란 엄마는 많은 딸들이 그렇듯 할머니의 삶을 한심해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며 자랐으며, 지금 엄마와 딸인 인아 사이에 거리감이 있듯이, 한번도 떨어져 살아본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할머니 사이엔 거리감과 벽이 존재한다.

할머니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상황이 예기치 않게 잠시나마 이 삼대가 한집에모여 지내는 시간대를 형성하고 인아는 자신과 엄마와 할머니의 삶, 그리고 이들 서로의 관계를 이해해보려고 한다.

 

160쪽 정도의 중편 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도 어느 정도 들어가있는 것 같고, 외국의 다른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부분도 많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전통적인 관습의 영향속에서 감히 거스르지 못하고 살아왔으나 자기의 딸은 그렇게 살지 않기 바라는 할머니, 내 가정이 소중한 것 처럼 나의 삶과 나의 목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 엄마의 기대를 한껏 받고 있지만 내가 받고 싶은 것은 엄마의 부담스런 기대보다 엄마로부터의 따뜻하고 진심어린 애정이었던 .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여름의 빌라>에 실려있는 단편 <폭설>에서도 나온다. 작가는 현대문학 PIN 시리즈 단행본 청탁 마감을 앞두고 무엇을 써야하나 고민 끝에 평소에도 관심있던 주제를 쓰기로 했다고 한다. 바로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이다. 이 세상 딸과 엄마의 이야기는 모두가 같으면서 모두가 다르다. 공통적인 부분이 있으면서 다 다르다는 것이다. 엄마는 할머니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삶이 자기의 삶에까지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것 같아 잊고 살고 싶다. 늘 자식인 자기보다 엄마 자신의 일을 쫓아 살아온 것 같은 엄마를 향한 인아의 마음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이다. 엄마의 기준으로 보면 엄마 기대만큼 성공적인 삶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주눅든 삶을 살고 있는 인아에게 엄마는 한번도 따뜻한 보금자리였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넌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던지는 엄마이다. 그런 엄마를 자식인 내가 이해하라는 내면의 소리를 인아는 들어야하는가? 결국 다 자기 몫이란 말인가?

 

화해와 용서는 말로도 쉽게 할게 아니지만 실제로 행하는건 더욱 어렵다. 마음만 너그러워서 용서와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백수린의 이 작품을 읽으며 배운다. 할머니, 엄마, 딸, 이중 누구도 악인은 없다. 악인이 될 가능성 조차 낮은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용서가 되려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동시에 한가지를 없애야 하는데 그것은 상대에 대한 기대였다. 나에게 어떤 엄마였으면, 내 딸은 최소한 어떤 딸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관계의 벽, 원망의 벽은 더이상 단단해지지 않고 조금씩 허물어질 준비를 시작한다. 문제는, 기대를 내려놓는다는게 남남 사이가 아닌 이상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게 어디 엄마이고 딸이라고 할 수 있냐는 딜렘마.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역시 백수린 다웠다. 그러나, 3대에 걸친 역사를 통해 뭔가 뚜렷하고 일관적인 작가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면, 그럴땐 오히려 좀더 강한 필치와 서사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다른 소설 <폴링 인 폴>이 이미 책상 위에서 대기하고 있다. 단편집인데 제목 폴링 인 폴은 아마도 영어 Falling in Paul을 소리나는대로 쓴 것일테고 여기서 Paul 은 사람이름이겠지? 배경으로 외국이 자주 등장하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것도 그럴까. 상상해보며 책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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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3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표를 세 개만 주셨네요.
저는 어제 박상영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참 좋았어요. 그 소설집에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이란 소설도 담겨 있는데 오늘 이걸 들어봐야겠네요.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에요. 좋은 소설이 많으면 종이책으로도 사려고요. 꼭 오디오북으로 들어 좋은 건 종이책을 사게 돼서 지출이 많아지는 게 문제예요. ㅋ

추석 연휴를 달콤한 휴식과 함께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hnine 2020-10-01 00:45   좋아요 1 | URL
요즘 제가 별점 주는데 좀 인색합니다. ^^
박상영 작가 책도 한번 읽어보려고 찜해두고 있는지 꽤 되었는데 아직 못읽어보고 있어요. 작품 활동도 활발하고 대중매체에 출연도 자주 하더라고요.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은 제가 얼마전에 읽은 <여름의 빌라>에 수록되어 있어 읽어보았지요.
이번 추석엔 집에서 차례만 지내고 산소엔 나중에 가기로 했답니다. 산소에 안가는것만해도 마음의 부담이 훨씬 덜하네요. 준비하는 것도 덜 분주하고, 또 이번엔 제가 남편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많이 했어요.
pek님도 추석 잘 보내시고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