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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1
노먼 메일러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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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같이한다. 아직 전쟁을 겪어보지 않고 간접 경험만 해온 세대인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큼 전생을 실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된 저자 노먼 메일러는 나만 모르고 있었나 싶게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적 인물중 한 사람이다. 1923년 미국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에서 항공기술학을 전공하고 우등 졸업을 했으나 평소 문학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 습작을 해오던 그는 졸업후 바로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필리핀 군도에서 복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사실주의 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를 발표한다. 발표하자마자 좋은 평을 받고 알려지기 시작하여 이후 잡지 출간을 비롯,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주목을 받게 되고 뉴저널리즘 소설이라고 하는 <밤의 군대들>로 196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주로 사회적 이슈를 담은 소설을 발표해오던 중 사형수의 실제 삶을 담은 소설 <처형인의 노래>로 1979년에는 두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나자와 사자>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는 이 소설이 2016년 새로운 제목과 번역으로 다시 선보이게 된다.

2차세계대전이 종결되기 일 년 전 스물 두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하여 미군의 필리핀 탈환 작전에 투입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노먼 메일러는 1,2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을 완성하였고 그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날이 밝으면 강습상륙정이 내려지고 선발 병력이 파도를 타고 아노포페이 해안으로 진격해 들어갈 것이었다. 탑승한 병사 전체가, 호송선에 있는 사람 모두가, 몇 시간 안에 자기들 가운데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8쪽)


전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방식을 바꿔놓았던가. 전쟁은 물론 군대 경험도 해본 적 없이 간접 경험이 전부였던 나에게 이 소설만큼 읽으면서 내가 마치 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을 줄곧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대단한 전투 장면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님에도 용병제로 군인을 모집하는 미국에서 각자 군인에 자원하여 들어온 사람들의 각자 다른 배경, 생각, 인간성, 그리고 전장의 상황 묘사를 무서울 정도로 그려놓았다. 

지리적 배경은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점령한 남태평양의 가상의 작은 섬 아노포페이. 여기에 미국이 상륙작전을 감행한다. 부대를 이끌고 있는 커밍스 소장은 초기의 소소한 전과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고 장기화 조짐이 보이자 상황을 타개하고자 무리하여 보토이 만 상륙 작전을 구상하게 되고, 이를 위해 소규모 정찰대를 파견하기로 한다. 그리고 커밍스 소장은 평소 자기에게 반기를 들고 있던 '헌' 소위를 희생이 짐작되는 그 임무에 투입시키고 무리한 정찰 임무를 지시한다. 무리한 작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는 군대라는 체계. 무리수라는 것 외에도 거기에 얽힌 국가의, 그리고 개인의 이해 관계, 무섭고 엄연한 전쟁의 본질과 원리까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뒤집어 말하면, 전투에서 병사들은 인간보다 기계에 더 가깝다. 그럴듯하고 수용할 만한 명제다. (2권, 237쪽)

기계에 가까와야하고,

전투란 지배적인 습성을 지닌 채 들판을 빠르게 내달리고 햇볕 아래에선 난방기처럼 땀을 흘리며 빗속에서는 쇳조각터럼 굳어 버리는 수천의 인간-기계들을 조직하는 장이다. (2권, 237쪽)

인간이 기계로 효율화되는 장은 '전투'이다.

우리는 이제 기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사과가 몇 개 있는가, 말이 몇 필 있는가를 따지지 않는다. 기계 한 대가 인간 여러 명의 몫을 해낸다. 영도자들이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나라에서는 기계를 숭상한다. (2권, 237쪽)

인간적인 티를 함부로 내서는 안된다.

그는 지금 로스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고 싶었으나, 그렇게 했다간 로스가 때만 되면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동정을 구할 게 분명했다. 로스는 자기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면 아무에게나 달라붙을 위인이었다. 그렇게 하도록 둘순 없었다. 결국 로스도 얼마 안 가 총에 맞을 사람 아닌가. (2권, 249쪽)

자기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며 마지막으로 잠시 어머니의 따뜻한 품 같은 것을 기대하고 울며 고마음을 전해오는 '로스'를 보며 마음을 무장하고 있는,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던 '레드'의 심리를 나타낸 부분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전쟁의 실체이고 미국 사회, 미국 병사들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 대한 밑바닥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소설이다. 계급적인 불평등과 억압이 지배하고,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반사적인 복종에 무감각해져가는 체제를 구축하는 극한 상황, 죽음의 현장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여기서 커밍스 소장은 생각한다. 파시즘은 이런 인간의 실제적 본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차라리 공산주의보다 낫다고. 파시스트적인 힘이 병사들로 하여금 인간적인 한계를 넘게 하는 추진력이 된다고. 그럴때 군사 체계는 최대화 되고 병사들은 인간에서 기계가 되어간다.

적극적인 대처로 맞서기 보다 환멸과 무기력으로 빠져들었던 '헌'을 일컬어 해설에서는 현대 지성인의 표본으로 보았고 (2권, 503쪽) 작가는 그를 '생명의 그릇임에도 결국 어떠한 생명도 잉태하지 못하는 썩은 자궁, 혼탁한 자궁' 이라고 했다. 사상적 재료가 행동으로 꽃 피우지 못하는 지성을 말하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이 전투의 결과 누구도 승자와 패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상황 타개를 위한 작전을 수행하였을 뿐, 손해도  이득도 보지 않았고, 다음 작전에서 좀 더 성과를 내리라 헌티스 소상의 다짐으로 맺고 또한 시작을 의미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내가 마치 전쟁터에 던져진 듯한 느낌을 가장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던 대목은 윌슨이라는 병사가 죽어가는 대목이었다. 길고도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 죽음마저 쉽지 않을 만큼 지리하게 모든 고통이란 고통을 다 경험시키며, 죽음 뒤에도 끝나지 않고 다른 동료들에게 짐이 되는 극도의 비참함. 이 모든 지옥 경험과 개인의 삶과 죽음의 결과는 단 하나, 작전이 성공으로 끝났냐 아니냐 하는 결론으로만 의미를 남긴다.

커밍스 소장의 생각, '역사는 우익의 수중에 있고, 역사는 이번 세기 동안, 아니 어쩌면 다음 세기까지도 우익의 것이 될 것'이라며 미래의 유일한 도덕률은 힘의 도덕률이고 군대는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는 예언은 작가가 전하는 이 소설이 보내는 경고라고 역자는 해설에서 덧붙이며 그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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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7-27 0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로 알게 된 작가와 작품 리뷰 고맙습니다 나인님. 담아 갑니다. 무더위가 절정이네요. 지치지 않고 지내세요 ^^

hnine 2021-07-27 12:17   좋아요 3 | URL
너무 반가운 프레이야님.
더위와 코로나를 어떻게 이기며 지내시는지요.
저는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고 지내는 아주 소극적 방법으로 버티고 있답니다. 오늘은 백신도 맞고 왔어요.
이 작가 작품 프레이야님도 한번 꼭 접해보시기를 추천해드려요. 이 소설 하나로 성이 안차서 저는 바로 작가의 다른 대표작 <밤의 군대들> 읽기 시작했어요.

새파랑 2021-07-27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은 결과만 남기 때문에 너무 잔인한거 같아요ㅜㅜ 저는 이 작가랑 작품 처음 알았는데 읽어보고 싶어요 😊

hnine 2021-07-27 12:20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작품으로 이 작가 처음 알게 되었고 제가 몰랐기 때문인지 미국에서의 지명도에 비해 국내에선 그정도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제가 마치 전쟁터에 있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답니다. 아마 아들이 군대 가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겠지요. 철학이나 종교를 통해 배우는 죽음과 비교도 안되게 전쟁을 통해 느껴지는 죽음은 다른 것 같아요.

stella.K 2021-07-27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 전 <예수의 일기>란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를 알았죠.
예수님이 1인칭으로 나오는 소설인데 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신앙이 좋은가 보다 했는데
안티크리스찬이란 말을 들어서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후 좀처럼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일케 h님이 소개를 하시니 읽고 싶기도한데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니네요. 이 더운 날 이 책을 우찌 읽으셨을까? 새삼 존경스럽네요.
암튼 언제 읽을지는 모르나 기억은 하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구요.^^

hnine 2021-07-28 05:23   좋아요 2 | URL
오, stella님은 오래 전부터 이 작가를 알고 계셨군요.
말씀하신 <예수의 일기> 검색해보니 흥미있어보이는데 왜 절판되었는지 아쉽네요.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닌 책들을 요즘 몇차례 읽다보니 이력이 붙었나봅니다. 그래도 1,2권으로 되어 있는 정도는 읽어보겠는데 1,2,3,4 이렇게 네권으로 되어 있는 책들은 쉽게 손이 가지 않고 있습니다.
노만 메일러는 안티페미니스트라는 말도 있던데 안티크리스찬이란 말도 있군요. 지금 읽고 있는 그의 다른 책 <밤의 군대들>에도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시위에 본인 자신이 참석하여 겪은 일을 가지고 썼기 때문에 책 속에 메일러라는 이름이 나와요. 독특한 시도를 많이 했다는 것은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해보고 통찰해보려는 시도라고 봐도 될까요.
아무튼 현재 제 관심 범위에 있는 작가랍니다.
너무 덥지요? stella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다롱이도 회복되었으면 좋겠어요.

카스피 2021-07-28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정자들에게 군인은 인간성과 같은 감정이 없어야 쉽게 살륙을 할수가 있어야 전쟁에 승리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늘 두가지 방법을 생각했는데 하나는 인간인 군인에게서 인간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이었죠.인간적인 감정을 없앤 이른바 슈퍼솔져 영화는 과거에도 참 많이 나왔지요.나머지 하나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전쟁애서 활약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터미네이터입니다.현재는 전자보다는 이른바 인간이 타지않는 무인기나 무인함이 나와서 전쟁에 이용되는 것이 대세인것 같은데 언젠가는 정말로 군인도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까 싶네요.

hnine 2021-07-29 05:36   좋아요 1 | URL
제가 터미네이터 영화를 처음 본것이 대학 입학도 하기 전인데, 그땐 말씀하신 그런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재미있는 영화 한편 봤다고 생각했지요. 군인이 기계로 대체되는 세상이 새로울 것 같지만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 많은 것들이 기계로 대치되고 있다 생각하니 두렵기만 합니다. 모르는채 스며들고 습관화 되어가고 있는게 제일 무섭잖아요.
한 인간 자체가 하나의 우주이고 하나의 세계인데, 그런 여러 인간들이 모인 군대라는 조직에서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무 가치조차 없다는 것이 너무 실감나게 그려진 소설이었어요.

페크pek0501 2021-08-06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모르는 작가의 작품이네요. 나인 님의 리뷰를 보니 제가 읽어 봐야 할 것 같네요.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더운 여름, 잘 지내시기를...

hnine 2021-08-06 14:56   좋아요 1 | URL
너무 덥지요? 그런데 내일이 입추래요. 주말 지나고나면 더위가 한풀 꺾인다네요.
요즘은 신간 제쳐두고 집에 있는 세계문학전집만 줄창 읽고 있어요. 오늘 페크님 글 오랜만에 반갑게 읽었습니다.

coolcat329 2021-11-0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작품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군요. 첫문장부터 전쟁의 아픔이 새어나오네요.
전쟁은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거 같아요.. 죽음과 고통 눈물만 있죠.
이 작가 인간성이 나빠 싫어해야지 했는데 ㅎ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21-11-09 06:10   좋아요 1 | URL
작품에 비해 작가 인간성에 대한 평이 안좋은 걸 저도 나중에 알고 놀랐어요. 작품평이 아니라 작가 인간성 평이 안좋은 것이니 그래도 계속 읽어보자고 했는데, 역시 다른 분들에게도 추천해드릴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세요~ ^^
 
Chemistry (Paperback, Reprint)
Weike Wang / Vintage Books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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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해두지만 이것은 화학 (chemistry) 교과서가 아니다. 엄연히 소설. 하지만 화학이라는 세계와 무관하지 않은 내용, 화학을 아는 사람이 쓴 소설이다.

내용은 딱히 새로울 것이 없다. 개미같이 일하여 자식에게는 자신들과 다른 삶을 열어주려는 아시아 이민 부모는 우리 나라 부모들에게서도 친숙한 모습이니까. 자신들과 다른 성공은 우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중국에서 넉넉치 않은 가정에서 자란 '나'의 아버지는 성공에 대한 포부가 크다. 갓 결혼한 부인을 데리고 미국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을 목적으로 건너오는데 생활은 넉넉치 않고 학업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약사로 일하던 부인은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해 끝내 자기 전공을 못살리고 남편 뒷바라지와 곧 태어나는 자식 교육에 전념한다. 늘 그렇듯이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은 자식에 대한 몇배의 정성과 노력과 기대로 대물림된다. 그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여 정해진 길에서 이탈 없이, 명문 대학에 입학한 '나'는 박사 학위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데 똑같은 실험을 무한반복하는 생활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대체 이런 것이었던가 그제서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사귀던 남자 친구 에릭과의 관계는 더욱더 자기의 현재와 미래를 혼란에 빠뜨린다. 한번도 자기의 미래를 자기의 뜻만으로 결정해보지 못한 나는 실험실에서 비이커를 다 집어던지는 사건으로 폭발하고 더 이상 실험실에 나가기를 중단한채 집으로 잠적해버린다. 취업을 위해 먼곳으로 떠나야 하는 남자 친구로부터 결혼해서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은 나는 그가 듣고 싶어하는 답을 못해주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을 기존의 관계들로부터 격리시킨 생활을 한다.

두가지 결정이 그녀 앞에 있다. 박사 학위를 마치기 위해 학업을 계속 해야할까. 남자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와 결혼하고 그가 새로 일자리를 잡은 곳으로 떠나야할까.

말했듯이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지만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이라면 내용 곳곳에 화학과 일상을 겹쳐서 잘 비유해놓았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티가 나지 않고 오히려 기발하기조차 한 비유와 대조가 많았다. 화학은 어찌보면 물질의 세계이지만, 그래서 생명체를 움직이는 원리는 화학의 원리와 다를 것 같지만, 생명체도 엄연히 화학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화학 반응에 의하여 생명 현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 원리는 화학이라는 학문에서 통하는 여러 법칙에 준하여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한 차이점일뿐.

또 한가지 이 소설의 돋보이는 점은 그녀의 문장 구사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한 문장을 길게 늘여쓰는 방식보다는 비슷한 내용의 짧은 문장을 여러 개 반복 나열하는 방식을 즐기는듯, 읽는 사람이 리듬을 느끼며 읽을 수 있고 덜 지루하게 하며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게 하는 효과를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복잡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끝까지 읽는 사람의 관심을 느슨하게 하지 않고 끌고 갈수 있다는 점은 작가의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해보게 한다.

그녀 앞에 놓여있는 결정은 그녀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데 스톱을 걸고 있는 장애물인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의 정체는 장애물이 아니라 삶 자체였음을 그녀도 나중에 알게 될까. 너무 늦게 알게 되지 않기를,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며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소설인데 일기 같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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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12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몰리님 페이퍼 읽고 이책 급 호기심이 생겼는데
결국 에이치 나인님 리뷰 읽고
킨들로 구매 했습니다.(방금전 완독)
몇년전에 이 작가의 글이 뉴요커에 연재 된 적이 있었는데
문장이 독특하게 연결 되는 마치 화학 원소 구조 같다고 느꼈어요.
130페이지 남짓해서 한번에 휘리릭이지만

다 읽고나니 에이치 나인님 말씀처럼 화학의 여러 법칙들을 일상의 여러 행동과 사고를 유기적으로 연결 시키면서 중간 중간 중국 속담을 넣어서 부모 세대와 자식세대의 문화적 사고와 인식의 차이까지 보여주는
이과생의 간결한 인간관계 화학 보고서 처럼 읽었습니다 ^ㅎ^

hnine 2021-07-13 03:27   좋아요 0 | URL
저도 몰리님 서재에서 알게 되어 읽게 되었지요.
내용뿐 아니라 문장을 연결해가는 방식에도 작가는 자기의 전공을 반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지요.
말씀하신 것 처럼 중국 속담으로 시작하여 한 이야기를 시작해나가는 것도 작가의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었어요.
내용이나 사건들 자체는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는 내용이었다고 썼지만 저런 내용을 소설로 쓰기까지 많은 성장의 고통이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짠 하기도 했어요. 전적으로 작가의 경험이라고 하지 않더라고 말입니다.


얄라알라 2021-07-12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거리 소개해주시는 부분 읽으며, 왠지 저자 혹은 저자와 가까운 이의 생애사를 옮겨놓은 소설인가 궁금해지네요. ^^

여담이지만 제목뿐 아니라 표지 기호조차 교과서 스러운데, 교과서 아닌 소설이라는 반전! 멋지네요.

hnine 2021-07-13 03:32   좋아요 1 | URL
실제로 작가 소개를 읽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버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박사학위를 받았고요. 이 책은 그녀의 첫번째 데뷰 소설이라는데 여러 가지 상을 많이 받았네요.
정말 표지조차 화학 교과서처럼 되어 있죠? 사람 얼굴이 원자 핵, 주위를 도는 전자까지.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세개의 전자 중 하나가 하트 모양이어요 ^^
 
Travels with Charley in Search of America: (Penguin Classics Deluxe Edition) (Paperback, 50, Anniversary)
Steinbeck, John / Penguin Group USA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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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을 내리 읽고 나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던 차에 scott님께서 이 책을 추천해주셨다. 소설 아닌 에세이 형식이니 저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을 담뿍 채워주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서 읽기 시작했다.

50개나 되는 주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거대국가 미국. 그곳 태생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 모든 주를 다 가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얻고서 한참 지나, 변화를 찾아 좀이 쑤시던 어느 날 저자는 떠냐야할 이유를 한보따리 만들어 미국 대륙 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나를 데려가는 것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트럭을 개조하여 요즘 말하는 오토캠핑 기능을 갖춘 차로 주문제작하고 로시난테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작가 아니랄까봐 떠나는 짐 속에는 읽을 거리, 쓸 거리를 잔뜩 챙기고 사람은 동반하지 않고 애견인 프렌치 푸들 찰리만 동반하여 직접 운전, 집이 있는 뉴욕을 출발하여 미국 횡단 여행을 떠난다.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탐구와 재확인을 해본다는 취지이다. 

이때가 1960년 6월. 떠나려던 차에 태풍 Donna를 만나 잠시 지체하였다가, 롱 아일랜드 주에서 시작하여 메인 주로, 일단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서부로 향하는 경로를 택한다. 여행 일정중에 의외로 호감을 가지고 빠져들게 된 곳이 '몬태나' 주라면 가장 불호감인 주는 '텍사스'. 넓은 땅, 넓은 농장을 소유한 부자들이 특히 많은 주이지만 그 당시까지도 흑백 차별이 심하고 사람들 머리 속에 뿌리 박혀 있는 보수적 사고 방식에 치를 떤다. 며칠 머문 곳, 잠시 머물고 지난 곳, 모두 합쳐서 거의 40개 주를 통과했다고 하는데 지나간 곳을 모두 이 책에 포함시킨 것은 아니었다. 

여행 가이드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여행기가 그렇듯이 이 한권을 읽은 소득은 미국의 어느 주가 어떻구나 하는 것보다 존 스타인벡이라는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좀 더 알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기독교 신앙을 기본으로 하는 가정에서 나고 자랐고, 커서도 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지켜가면서도 (방문하는 주 마다 일요일엔 그 지역 예배에 참여한다), 보수적이고 편협한 사고 방식에 매이지 않으려는 자유인 기질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기피하기 시작하는 것들에 대해 그는 양을 위해 (오래 살기 위해) 질을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호탕하게 말하기도 한다 (In my own life I am not willing to trade quality for quantity. -p.14). 60이 다 된 나이에 장거리 여행을 떠난 것도 그런 명분이다. 

여행자로서 그 지역 주민들이 하는 말을 엿듣기 가장 좋은 장소는 술집과 교회 (23쪽)라고 한 재치, 자기 얼굴에 대한 묘사를 해놓은 부분 - My face has not ignored the passage of time, but recorded it with scars, lines, furrows, and erosions. (28쪽) - 은 마치 여행중 만난 어느 지층 지대를 묘사하는 듯, 여행자다운 표현이었다.

메인 (Maine)주에 위치한 Deer Isle을 여행하면서는 친구들이 꼭 가보라고 추천하는 곳은 기대하지 않는 척 하면서 방문해보면 역시 후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동부의 다른 주들과 마찬가지로 메인 주 사람들의 과묵한 성격을 식당에서 종업원과 손님 사이의 딱 한마디씩 오고가는 대화를 인용하여 묘사해놓은 곳도 재미있었다. 

사냥에 대한 생각, 정치에 대한 생각, 도시화에 대한 생각 등, 저자의 생각과 주의를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그는 완전 보수파도, 완전 개혁파도 아닌, 적절한 선을 지키고 있는 쪽으로 보인다. 여행하는 타입면에서도 그는 꼼꼼히 지도에 체크하고 줄 그으며 다니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즉흥적이고 기분파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작가라는 성격상 비판적, 회의적이기도 하지만 (기자들의 기사내용을 현실의 거울로 신뢰하지 않는다.- 56쪽)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여행하면서 계속 이게 맞는 길인가, 이게 맞는 일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야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쓰고있다.

On the long journey doubts were often my companions. (55쪽)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저자는 결론처럼 말한다. 미국은 오랜 역사에 고픈 나라이기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기념할만한 사건이나 인물들을 의식적으로 부각시키려고 하는 경향을 방문하는 지역마다 느겼다고. 그럼으로써 역사에 대한 의심을 현실의 기록으로써 보상하려고 한다는 지적에서는 작가의 예리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It does makes for suspicion of history as a record of reality. -p.59)

저자가 이 여행기를 쓸때가 1960년대인데 그 당시 벌써 RV차량을 가지고 다니면서 미국 전역을 여행할 수 있었다는 점, 더우기 그가 여행하며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아예 mobile dweller로서의 삶을 주거 방식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은 놀라울 뿐이다.

서부로 넘어오니 그당시 벌써 Do-it-yourself 라는 새로운 경향이 생겨나고 있더라는 것도 마치 요즘 얘기 같았다. 한국의 소나무숲과는 다른 느낌의 California, Redwood숲속. 그곳에서는 성당과 같은 고요함과 정적이 있다고 했다. 

여행하는 동안의 기록도 재미있지만 여행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친숙한 길로 접어들때의 느낌을 묘사한 마지막 부분도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말을 생각나게해준다.

여행후 느낌을 그는 한마디로 a barrel of worm 이라고 표현했다 (153쪽). 여러 종류의 벌레를 채집하여 모아놓은 통. 복잡하고 다양한 느낌과 생각이 한데 모여 있어 정리와 분류가 요구되는 상태라는 의미이겠다.

미국은 출신이 다른 여러 민족이 모여 이룬 나라인 것은 맞지만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상 빠르게 '미국화 (americanize)' 되어가고 있음을 발견하였고 그것은 어디 출신이라는 것보다 더 두드러지고 의미있어보인다고 마무리하며 마쳤다. 

내가 읽은 그의 소설들은 두툼한 분량이었는데 반해 이 책은 가뿐하게 읽을 수 있어 그것도 미덕이었다. 작가답게 재치있고 재미있게 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해가며 읽는 재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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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7-08 1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cott님의 방대한 관심사와 해박한 지식, 그 인연으로 제가 에이치나인님의 리뷰를 읽고^^ 참 신기하네요.

가뿐하게 읽으셨다하니, 저처럼 영어가 부담되는 독자로서는 내지에 지도나 일러스트레이션이 많은지 궁금하네요^^

hnine 2021-07-08 13:30   좋아요 3 | URL
저도 scott님 아니었으면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을거예요.
저는 얄라알라북사랑님 서재에서 공연이나 전시 정보 많이 얻어오곤 했었어요. 그런 쪽에 관심이 많으시구나 끄덕끄덕하면서요.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가뿐하게 읽었다고 한 것은 이전에 읽은 존 스타인벡의 소설들이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서 그에 비교된다는 뜻이랍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저도 부담되지요. 내지에 지도나 일러스트레이션 전혀 없어요. 위에 올린 겉 표지 그림이 전부랍니다.

얄라알라 2021-07-08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1학년 때 말 그대로 다 읽고 나니 새벽을 맞게 했던 책이 바로 [분노의 포도]였어요. 정작, 저자에 대해서는 이름 이상 알지 못했고 더 알려해보지도 않았는데 이런 미국 여행기를 통해 저자를 알아가면 다음번 [분노의 포도]읽을 때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얄라알라 2021-07-0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공연장 전시회 다니는 게 제 일상의 일부였는데 코로나 이후 뚝 끊겼네요....^^:; 공연예술계 계시는 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나가고들 있을지...

scott 2021-07-08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펭귄 특별판 데클 엣지로 갖고 있는데 에이치 나인님 책이 더 예쁘네요
지도!

스타인벡의 따스한 시선과 유머가 인상 깊은 여행기죠
찰리!와 함께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미국인들은 구경하기 위해 여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 하기 위해 여행 한다고 ^ㅅ^

hnine 2021-07-09 03:47   좋아요 2 | URL
자기가 속한 사회나 국가, 민족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기가 참 어려운 법인데, 작가는 처음부터 그것을 인정하고 염두에 두면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가 쓰는 여행기면 자칫 너무 진지하거나 개인적인 감상문 같거나, 그렇게 흐르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유쾌하고 재미있었어요.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페크pek0501 2021-07-14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고 보니 나인 님은 대단한 능력자!이십니다. 외국어로 읽는 독서는 어떤 느낌일지...
예전 우리 애가 영어 공부를 하던 시절에 생각도 영어로 해라,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습네요.

hnine 2021-07-17 05:32   좋아요 0 | URL
여행기나 자서전 같은 책은 그나마 읽을 수 있는 정도이지 저에게도 외국어는 장벽인걸요. 높디 높은 장벽.
그래도 읽어보고 싶은 욕심에 능력을 잠시 잊고 도전해보는거랍니다.
 
암 병동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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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병동이 닮았다고 하면 목적이 엄연히 다른데 어째서 닮았다고 하냐고 반문할수도 있을 것이다. 목적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 사는 방법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며 더 잘 알게 되었다.

중학교때 겨울방학 숙제로 읽어야 하는 책 중에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가 있었다. 먼저 읽은 동생이 말하길, "언니, 이 책 한권이 하루동안의 얘기야." 라는 것이다. 숙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끝까지 읽긴 읽었지만 중학생인 내게 그 책은 지루하기만 했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다. 

<암병동>은 두번째 읽는 솔제니친의 작품이다.  

암울하기만 한 제목. 이것도 결국 암 병동이라는 특정 공간의 얘기가 아닌, 그 이상의 세상을 빗대어 쓴 작품 아닐까, 내멋대로 추측까지 하며 두권의 두툼한 책을 펼쳐들었다. 

그 옛날 읽었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보다 훨씬 길지만 더 빨리 읽은 것 같다.

1918년 솔제니친이 태어났을때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을 막 겪고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후 소비에트 정부가 수립되어 가던 혼란한 시기였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인텔리였으나 그가 태어나기 전 사망, 어머니 혼자 그를 키워야했다. 어머니 역시 문학, 예술, 외국어에 한 사람이었지만 혼자 부양해야했던 가족은 내내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솔제니친은 원래 대학에서 물리와 수학을 전공하였으나 전공외에 문학 등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문학공부를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갈 생각도 하였던 솔제니친은 전쟁의 발발로 공부 대신 독일과의 전투에 참가하였고 형무소 생활,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하였으며 수용소 병원에서 악성종양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의 전작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도 그렇지만 이 소설 <암병동> 역시 자신의 이런 경험들을 모티프로 하여 태어난 작품이다.

사회적으로 어둡고 혼란스런 시절, 암이라는 치명적인 병을 안고 모여든 환자들은 공통적이면서 모두 다르다. 입원하는 날까지도 자기는 암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 병원에서의 치료와 별개로 온갖 정보를 찾아 암을 알고 고쳐보겠다는 사람, 방사선 치료의 폐해를 의사에게 따져묻는 사람, 가망없는 상태라는 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목표하는 학업과 진로를 위해 빨리 치료받고 병동을 나가기만을 기다리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한 젊은 환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병동에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가지고 각자 자기들의 의견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환자들만 등장인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암병동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인력, 즉 의사, 간호사, 환자의 가족, 병원의 청소부까지, 암병동 자체가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 중 대장 격의 의사 한사람도 나중에 위암 진단을 받아 의사에서 환자의 신분이 되기도 한다.

작품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인 코스토글로토프가 마침내 병원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이 사는 마을, 백화점, 동물원등을 차례로 방문해보는데, 동물원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들이 종은 달라도 암병동에서의 자기의 모습이었으며, 암병동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 사회에서 제압받으며 살고 있는 민중들의 모습이었다. 

다음은 코스토글로토프가 쳇바퀴 돌리고 있는 다람쥐를 보며 하는 생각이다.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니고 먹이로 유혹하는 것도 아닌데, 다람쥐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저렇게 나무나 높은 가지도 전혀 개의치 않고 쳇바퀴 속에 들어가 돌고 있는 것이다. 헛된 행위와 헛된 운동의 거짓 이념이 다람쥐를 꾀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다람쥐는 분명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살짝 발판에 발을 대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혹하고 끝없는 놀이인 줄 몰랐을 것이다. (처음에는 몰라서, 그 후 몇천 번째 돌고 있는 지금은 잘 알면서도 여전히)

쳇바퀴의 막대 발판과 완전히 하나가 된 다람쥐는 심장이 터지도록 온 힘을 다해 돌고 있었다. 그러나 수없이 앞발을 내디뎌도 다람쥐는 한 층도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었다. (346쪽)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 많은 사람이 했었고 또 하고 있을 생각이다. 결국 허무하고 덧없는 삶이며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모르고 있다면 그런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하는. 자기 삶인데 자기가 주체가 될 수 없는 삶. 감옥과 병동의 공통점 아닐까?

암병동에서 퇴원하여 나온 그는 기대했던 환희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며 억지로 삶을 지탱해가는 동물들의 모습만 눈에 보일 뿐. 어떤 동물도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

감옥과 수용소 생활 11년, 이후 망명생활 20년을 하며 살았던 솔제니친. 그가 몸으로 겪어 쓴 소설, 그가 찾아낸 진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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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6-29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작품도 찜하겠습니다.

hnine 2021-06-29 11:51   좋아요 2 | URL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그런 의미에서 저도 다시 한번 읽어보는걸로 해야겠습니다.
<암병동>은 암울한 내용이지만 지루하지 않아요. 워낙 여러 유형의 환자들과 의사들이 나오고, 치료 과정과 방법을 어찌나 구체적이고 상세하고 표현해놓았던지.
두권짜리이지만 읽으시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거예요.

scott 2021-06-29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마어마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던 톨스토이 백작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솔제니친
그의 목소리가 담긴 수용소의 모습 그리고 암병동
작가의 기나긴 투쟁의 모습이라서 더욱 절절하게 다가 오네요

hnine 2021-06-29 12:18   좋아요 2 | URL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데다가 본인이 암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어찌나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묘사해놓았던지요. 방사선 폐해에 대한 것, 차가버섯의 효과까지, 성이 이씨인 고려인도 잠깐 나오고요.
스위스로 망명, 미국에서 오랜 칩거 생활 끝에 생의 마지막은 그래도 러시아에 돌아가서 맞았다는군요.

scott 2021-07-07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해피 수요일 ^ㅅ^

hnine 2021-07-07 21: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리뷰와 페이퍼 2관왕,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7-07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축하합니다

hnine 2021-07-07 21:56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도 리뷰와 페이퍼 둘 다 당선되셨죠.
축하드려요~ ^^

초딩 2021-07-0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달의 당선작 넘넘 축하드려요~

hnine 2021-07-08 04:42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그리고 축하해요 초딩님,
우리 함께 축하 주고 받아요~ ^^
 
위대한 몬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5
알랭 푸르니에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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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푸르니에는 1886년 프랑스에서 출생하여, 작가로써의 역량을 막 펼치던 즈음 1차 세계 대전에 동원되어 27세라는 젋은 나이에 전사함으로써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위대한 몬느>는 1913년 그가 죽기 1년 전에 출간된 책으로써 이전에 여기 저기 발표한 짧은 소설 몇편을 제외하면 그가 생전에 집필을 완료하여 책으로 출간된 유일한 소설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전에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자, 다른 제목으로 출판된 바 있으나 현재 절판된 상태로 알고 있고, 알랭 푸르니에에 관한 저서를 낸바 있는 번역자가 이 책을 새롭게 번역하여 2014년 민음사에서 위대한 몬느라는 제목으로 새로이 출판되었다. 

세 명의 남자아이와 한 여자아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열 대여섯 살 정도 되는 몬느, 쇠렐, 프란츠 라는 세 아이는 각각 다른 인물이지만 읽다 보면 셋 사이의 관계가 오묘하게 교차되었다가 분리되었다가 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알게 된다. 

쇠렐이 다니는 학교에 몬느라는 남자 아이가 전학을 온다. 잘 나서지 않고 몸도 허약한 쇠렐에 비해 큰 키와 다부진 외모의 몬느는 남들이 하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전학 첫날 부터 학교 아이들의 눈길을 끈다. 어느 날 선생님의 심부름을 핑계로 허락없이 학교를 빠져나간 몬느는 숲에서 정체모를 성을 발견하여 들어가보는데 축제 분위기의 그곳에서 몬느는 자기 또래의 프란츠라는 남자아이와 그의 여동생 이본 드 갈레를 만나게 된다. 성에서는 막 프란츠의 결혼식이 거행될 참이었고 몬느는 그 모든 환상적인 분위기에 빠져들지만 프란츠의 신부 될 아가씨가 도망가는 바람에 결혼식은 취소되고 몬느도 성을 뒤로한채 마을로 돌아온다. 

쇠렐은 어딘가 불안해보이고 비밀스러워 보이는 몬느를 따라다니며 그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몬느는 쇠렐에게 그날 성에서 있었던 일, 만났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곳에 다시 한번 가보자고 한다.

이 소설은 이렇게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이후 프란츠는 독일로, 몬느는 파리로 떠나고, 쇠렐은 고향에 남아 졸업 후 선생님이 된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쇠렐이 몬느를 다시 만나는데 몬느는 아직도 어릴때 성에서 계속하지 못했던 신비로운 모험과 만남을 이어가려는데 집착하여, 보헤미안처럼 떠돌아다니며 존재와 거처도 분명하지 않은 프란츠를 찾아나서고 싶어함을 알게 된다. 

쇠렐! 생트아가트에서의 내 이상한 모험이 나한테 뭘 의미했는지 너는 잘 알지. 그건 내가 희망을 품고, 내가 사는 존재 이유였어. 그 희망을 잃어버린 지금 내가 뭣이 될 수 있지......? 모든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모든 게 끝났고, 잃어버린 영지를 찾는 것 또한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파리에서 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 그런데 한번 낙원에 들어갔었던 사람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 다른 사람한테는 행복인 것이 나한테는 하찮은 우스갯거리로 보인단 말이야. (247쪽)

위의 인용문은 성인이 된 몬느가 쇠렐에게 털어놓는 넋두리같은 말이다.

이어서 말한다.

지금도 확신하지만, 내가 이름 없는 영지를 발견했을 때 나는 이제는 결코 다시는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차원과 완벽함, 순수함의 경지에 도달했지. 언젠가 너한테 보냈던 편지에도 썼을 거야. 오로지 죽음 속에서만 그 아름다운 시절을 다시 발견할 거야...... (248쪽)

독자는 이쯤에서 감을 잡아야하리라. 몬느와 쇠렐, 프란츠를 통해서 작가가 무엇을 나타내려고 하는지.

몬느가 잃어버린 과거, 어릴 때 꿈, 모험에 집착하는 자아를 나타낸다면, 프란츠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미래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쇠렐은 과거와 미래의 사이에서 둘을 중개하고 관찰하는 입장, 즉 현재의 나이다. 어떻게 보면 몬느와 프란츠와 쇠렐은 각기 다른 인물이 아니라 한 사람 속의 세 가지 다른 자아를 나타낸다고 볼수도 있는 것이다. 

'위대한' 몬느라고 한 것은 쇠렐, 즉 작가의 분신이 아직 과거와 동심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향을 받고 있음을 고백한 것일까. 몬느가 여전히 찾아헤매는 프란츠, 그리고 몬느가 자기 가정도 뒤로 하고 프란츠를 찾아나서는 것을 이해해주려고 하는 쇠렐은 어쩌면 동심의 낙원에서 벗어나 불안한 미래 속을 향해 나아가는 한때 우리의 자화상이다.


27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간 작가. 그래서 남긴 작품이 많이 않은 작가이지만 더 오래 살았다면 아마도 평범하지 않은 작품들을 더 남기고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 속에서 <위대한 몬느>에서 다 말하지 못한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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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14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대장 몬느>로 읽었습니다. 만일 헤르만 헤세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hnine 2021-06-15 04:41   좋아요 0 | URL
Fasltaff님 이 책도 읽으셨군요. 리뷰 올라와있는게 별로 없더라고요.
아주 독특하고 신비하고 상징적인 작품이었어요. 남긴 작품이 많지 않은데 유일하게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이 이런 작품이라는게 다행이고 또 아쉬움이 남았답니다.
저도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지와 사랑이 떠올랐는데 프르니에는 헤르만 헤세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자기의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 생각해보니 누구나 성장기에 몬느 같은 존재를 주위에서 발견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시기, 마냥 그것을 쫓아가고만 싶은 시기요.
아무튼 저는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이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1-06-2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책을 알아갑니다.

hnine 2021-06-21 16:37   좋아요 0 | URL
저도 전혀 기초지식 없는 상태에서, 그래서 더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던 책이랍니다. 요즘은 그렇게 책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그나름대로 흥미가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