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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김점선 - 개정판
김점선 지음 / 깊은샘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에게 별로 끌리지 않는다. 나와 너무나 달라 보이는 사람에게 역시 끌리지 않는다. 나는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이 일게 하는, 언뜻 감이 오지 않는 사람에게 끌린다. 아마 김 점선이라는 사람의 책이 눈에 뜨이는 대로 손에 집어 드는 이유도 그런 것일까. 책 표지의 제목은 그녀의 필치로 당당하게 <나, 김점선>, 그리고 역시 그녀의 그림 가 돋보인다. 그림과 제목으로 벌써 난 누구라고 알리고 있는 듯한.
그녀의 다른 책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쓴 구절을 읽고 밑줄 그어 놓은 기억이 있는데 그녀는 실제로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마음과 눈을 가졌다.
「나는 해가 뜨기 훨씬 전에 일어난다. 그러고는 해가 떠서 색채가 구별되기를 기다린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밥 짓고, 빨래하고, 우리 아들 도시락을 싼다. 그런 후에 나가서 가로등을 끈다. 천천히 마을을 돌면서 가로등을 끄면, 그 중 몇은 벌써 꺼져 있다. 마을 주변의 벌 언저리에서는 어둠 속에서 검은 덩어리로만 보이는 농부가 밭일을 하고 있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마을에 몇 명의 성인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이 내린 날 새벽에 산 속으로 산책을 나가 보면, 어느새 비탈길엔 눈이 치워져 있다. 모래나 연탄재가 뿌려져 있기도 하고, 더 미끄러운 길은 흙을 파서 발 디딜 자리를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그런 길을 밟고 걸으면서 나는 또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만 산골에도 하느님에게만 보이는 표지를 몸에 지닌 성인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을 완전한 성실로 채우는 사람들, 하찮은 일들을 정성껏 해내는 사람들, 사람들과 말하기보다는 하느님과 말하기를 더 즐기는 사람들」(111쪽, 일상 속의 성인들)
작가와 마음이 혼연 일치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 구절이다. 이런 느낌과 생각으로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을 이렇게 글로 남기는 사람이면 그 누구이든 기억하고 싶다.
김점선에게 글쓰기는 이미 어릴 때부터 거의 집착에 가까운 책읽기 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책 또는 그림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고 한다.
「노동에 치여서, 스러져 버릴 것만 같은 내 생명에 대한 연민의 기록,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꿈이고 뭐고를 다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에 저항하는 … 나 자신에 대한 나의 기록. 그 필요가 지친 몸을 눕지 못하게 했다. 새벽 동이 트도록 곧추세워 …… 그 몸을 책상에 앉혔다.」(프롤로그 中) ‘내 생명에 대한 연민의 기록’ 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꾸미려고 하지 않는다. 짤막짤막한 문장 속에, 바로 그때의 느낌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군더더기 없는 그녀의 글이 좋다. 마치 그녀의 그림이 그렇듯이. 복잡한 풍경이나 구상을 그리기 보다는 토끼, 꽃, 말, 오리, 거위, 코끼리, 맨드라미, 고양이 등, 어린 아이들도 대상으로 삼을 만한 소재들을 몇 가지 안 되지만 선명한 색, 복잡하지 않은 선으로 표현되어 마치 무슨 판화를 연상하게 되는 그림들이다. 하나의 그림을 위해 수없이 반복한다는 에스키스는 마침내 그런 형태의 그림이 되어서 세상에 나오나 보다.
학교 다닐 때 큰 키와 행색으로 장발 단속에도 여러 번 걸렸다는 김점선. 결혼이라는 게 싫었던 그녀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또 얼마나 그녀다운지. 내 식으로 결혼하고 내 식으로 생활하며 내 식으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각오로 시작한 그녀의 결혼 생활 얘기, 아이 낳아 키우는 얘기도 좋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떻게 자기 자신이 옳은 어른이 될까 하고 생각해야 한다. 아이는 가르칠 의도로써 가르치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기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사람을 봄으로써 더 큰 것을 얻게 된다. 가르친다는 기술이나 내용을 연구하기보다는 어른 자신이 분명하게 살길 바란다. 어른이 아주 작은 일에도 정직하고 공정하게, 바르게 행동하고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시간을 허술히 쓰지 않고 목표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면 그것으로써 엄마의 역할은 다 되는 것이다. 아이는 노예처럼 아이 주변을 맴돌며 시중이나 들어 주고 얘기 상대나 되어 주는 엄마를 원치 않을 것이다.」(273쪽, 아주 작은 일에도 정직하고 바르게 중).
아마 또 어디선가 김점선이라는 이름을 보게 되면 나는 주저없이 다가가게 될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게 될 것임을. 그것이 글의 형식이든 그림의 형식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