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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대학교 때였던가, 돈 까밀로와 빼뽀네라는 시리즈물을 참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몇 권까지 나와있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성직자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다고 해서 전혀 내용이 심각하거나 종교인에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는, 정말 따뜻한 유머를 아낌없이 던져 주던 책이었다.
재작년인가, 까칠한 가족이라는 이 책이 한참 유행할 때 과레스키라는 저자 이름이 어쩐지 귀에 익다 했더니, 바로 그 돈 까밀로와 빼뽀네의 저자라는 것을 알고 읽어봐야지 했던 것이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그렇게 따뜻한 웃음을 안겨준 소설의 작가가 이렇게 험난하다면 험난한 인생 경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 줄 예전엔 몰랐다. 평탄치 못한 그의 경력들이 오히려 그에게 웃음의 동기를 실어준  것일까.
사실 까칠한 가족이라는 이 소설의 내용은 제목처럼 까칠하기 그지 없다. 모른 체 덮어 두고 있던 가족이란 것의 한 단면, 개인의 삶의 한 단면이 웃음 다음으로 여지 없이 실체를 드러낸다고나 할까.
가족이란, 갈등의 복합체이며, 개인의 자유의 구속물이며, 가족을 이룸이 결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가족 구성원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나의 자리를 확고히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누군가는 누리고 누군가는 소외될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것일까. 
내용 중 조반니노가 기관차 136호를 매개로 구상한 소설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기관차 136호의 기관사는 어느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는 여인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지내다가 마침내 그녀를 향해 기차에서 뛰쳐 나오지만 그녀는 그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기관차 136호의 기관사를 좋아한 것이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가 이제 더 이상 기관차 136호의 기관사가 아니므로 그녀는 이제 새로운 기관사를 향해 웃으며 인사를 보낼 것이라는.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그가 내 가족 구성원의 누구이든 아니든 말이다, 그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필요성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해서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일까.
가족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늘 자신이 없고 소외감을 느끼는 아빠 조반니노, 그리고 3차원 보다 더 복잡한 정신 세계에 살고 있지 않나 싶은 아내 마르게리따,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것 같은 딸 파시오나리아, 그리고 알베르티노. 소설의 마지막에서 조반니노는 자신이 구상한 소설을 빗대어, 언젠가 자기가 타고 있는 기관차에서 뛰어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이라는 이름의 기관차에서 벗어나고 싶음을 의미하는 것.
작가의 예리함과 회의주의가 아주 교묘하게 유머로 포장되어 있는 작품이다.

(별을 네개 준 것은 역시 번역이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하며 읽은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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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1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까밀로와 빼뽀네는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 저희 언니 오빠들이 읽었기에 저도 닳도록 보았던 책입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읽는 동안 진짜 웃음을 웃을 수 있었어요.

hnine 2008-07-13 06:31   좋아요 0 | URL
앗! 승연님 초등학교 때라고요?
저는 제가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 쯤 되었을 때라고 생각했는데, 저랑 승연님 나이 차이가 그렇게나 많이 난다는 말씀? 허걱~ 제 기억이 틀렸기를... ^^

비로그인 2008-07-16 12:05   좋아요 0 | URL
어머나....제가 제 맘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정말 모르겠어요,언제인지.
그저 막연히 언니와 오빠가 보던걸 책장에서 꺼내 펼쳤던 기억밖에는.
그러고보면 저는 제가 원하는것만 기억하는 사람인가봐요.
기억이 맞고 틀리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겠지요.
그걸 어떻게 간직하느냐가....중요해요.

비오는 수요일입니다.
마음으로 님께 드릴게요,빨간 장미를.

hnine 2008-07-16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계신 곳은 비가 오는군요.
여기도 하늘이 흐리긴 헀네요. 비는 아직~
말씀대로 초등학교때인지 대학교때인지, 뭐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승연님도 저도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 웃음을 안겨준 책이라는 것, 그거면 됐지요 ^^
 
프라하에서 길을 묻다 - 혼자 떠나는 세계도시여행
이나미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프라하' 라고 하면 베를린이나 뮌헨, 런던, 파리 라고 할 때와 어딘지 다른 느낌과 정서를 불러 일으키나보다.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프라하를 여행하면서 쓴 글과 사진으로 꾸며진 이 책은 400쪽이 넘는 분량임에도 사진이 차지하고 있는 지면이 많아서인지 책장이 금방 넘어갔다. 일에 과민해지고 지친 저자로 하여금 있던 자리로부터 벗어나보기로 하며 떠난 곳 프라하. 왜 프라하? 그것은 모르겠다. 아무튼 2년 터울로 두 번이나 한 도시를 방문했으나, 읽어 보면 그만큼 여러 장소를 방문한 편은 아닌 듯 싶다. 국립 박물관을 비롯한 몇개의 대표급 박물관, 프라하에서 유명하다는 것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인형극 관람, 카프카 생가와 기념관  둘러 보기, 프라하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까를루프 다리 (Charles Bridge) 와 프라하 성, 그리고 스텐베르크 궁 등을 둘러 보며 자신의 생각을 독백처럼 많이 풀어 놓았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내용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저자는 혼자가 되어 보는 기회를 맘껏 누리고 싶었던 여행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혼자 식사를 하면서도 앞에 애인이 앉아 있다고 상상하며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 남들 다 자는 새벽에 길을 나서 돌아다니는 모습 등.
흔히 찰스 브릿지라고 말하는 까를루프 다리는 프라하에 가본 적이 없는 내게도 웬지 프라하 하면 사진으로 본 그 다리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다리만이 아니라 그 위의 사람들. 그냥 다리위를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위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행위 예술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유일까, 아니면 외로움을 잊어보고 싶음일까.
어딘지 가라앉아 있는, 무채색의 도시 프라하. 그곳에 대한 사람들의 로망의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정확히 모르겠다.
이 책은 프라하를 여행하기 위한 사람들을 위한 여행안내서의 성격보다는, 기행수필 적 성격에 더 가깝다고 해야할 것 같다. 프라하에서 지내 본 사람이 이 책을 훑어보고 하는 말이, 빠진 곳들이 너무 많다고 하는 것을 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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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8-07-0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대로 된 여행서 만나기는 힘든 것 같아요. 역시 여행서의 최고봉은 한비야님의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시리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ㅋㅋ
근데 요새 들어 유럽이 가고 싶긴 하더라구여.

hnine 2008-07-09 07:53   좋아요 0 | URL
이 책도 뭐,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권해주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어요. 뭐든 '제대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요.
유럽도 꼭 가보세요.

하양물감 2008-07-09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기를 통해 여행벙보를 얻고 싶을 때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시각을 얻고싶을 때는 분명 선택할 책이 달라져야한다고 봐요. 어떨때는 여행기를 통해 읽게되는 감성이 더 다가올때도 있거든요. ^^

hnine 2008-07-09 11:47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그런데 요즘은 두가지 목적이 따로 구분되어 있기보다는 한데 어우러져 있는 책들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저처럼 그냥 재미로 읽는 사람이야 상관없지만, 정말 여행 정보를 목적으로 읽는 사람이라면 분명한 여행정보 책을 사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싶어요.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 - 신현림 치유 성장 에세이
신현림 글.사진 / 민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신현림이 그동안 발표한 것은 시집에서부터 수필, 최근의 동시집에 이르기까지 거의 다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어딘가 나에게 와 닿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녀의 힘들어보이는 한발 한발이, 그냥 남 얘기 같지가 않았었다. 힘든 고비를 여러 번 넘으며 결국 굳건히 일어서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성장 치유 에세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은 이전의 그녀의 수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읽고난 느낌이다. 새로울 것이 없다고나 할까. 어려서 부모와의 갈등, 연이은 대학 실패, 시인이 되고 싶어 몸부림 친 세월들, 결혼과 헤어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녀의 분신을 홀로 키우느라 벌이는 악전고투, 외로움과의 싸움, 가난과의 싸움. 정말 읽다 보면 산다는 건 누구나 다 그렇다고,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 회의가 든다. 인생에 있어서 30대는 누구에게나 순탄치 않은 시기인가보다. 그런 30대를 지내고 난 후에 맞는 40대는 또 다른 회의와 갈등, 적당한 체념과 포기의 반복의 시기가 아닐까. 치열하라 30대여. 어떤 종류의 치열함이든, 그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제목이 좀 직접적이지만 책의 내용들이 그 제목 아래 잘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전 작품 <싱글맘 스토리>에 비교한다면 이 책은 제목에 좀 거품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냥 잔잔한 일상의 느낌을 엮은 수필이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

한 작가의 글이 작픔마다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전 작품과 차별화 하려면 어떠해야 할까. 그런 문제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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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음 / 황금부엉이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오 정희의 소설이 아닌 산문집이다. 그동안 작가는 소설도 그렇지만 산문집도 많이 낸 편이 아니다. 그래서 더 반갑게 집어든 책.

오 정희의 글은 쉽게 읽혀지지가 않는다.
어려운 문장을 써서가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쓰기까지 기울였을 그녀의 진지함과 어려움이 느껴져서이다.
중년을 훌쩍 넘어선 나이이지만, 다작의 작가는 아니라는 것은 그녀에게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그만큼 그녀 내부에 충분히 고인 후에야 어렵게 글 한편을 길어올리는 우물 같다고 할까. 행여나 설익은 글이 함부로 만들어질까, 충분히 고뇌하지 않고 쓰여진 글이 문학이라는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극단의 조심스러움은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자존심이고 문학에 대한 외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많은 후배 소설가들에게 얼마만한 영향을 끼쳤을지는 표지의 글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짐작이 간다. 지금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오 정희의 글.
그녀가 피와 땀으로 길어올린 우물물을 나는 참으로 쉽게 받아 마시는구나. 본문 중 40대의 딜레마에 대해 쓴 부분은 요즘 나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고민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해주고 있으니, 어째 내 고민의 핵심을 다른 사람의 글에서 발견하고 쾌재를 부른단 말이냐. 작가란 바로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무늬는 사람마다 다르리라.
문학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에 이만한 소명 의식과 애정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삶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비슷하게라도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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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8-07-0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끔 오정희 선생의 글을 읽을때 무릎이라도 끓고 읽어야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말씀하신것처럼 한문장한문장에 그녀가 기울였을 진지함과 어려움 그리고 망설임이 느껴져서 그저 눈으로 훓기에는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까닭인것같아요. 나인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사십대가 되면 꼭한번 다시 읽어야 하겠다 라는 생각을 해보게되요. 오정희 선생님의 마음의 무늬는 어떨까요? 조금은 낡았지만 만지면 보드라울것 같은 느낌일것같아요 그오랜시간동안 고뇌했던 선생의 삶의 연륜이 그마음의 무늬를 부드럽게 감싸안을것같은 예감이거든요.
좋은 리뷰 읽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나이님^^

hnine 2009-10-21 20:22   좋아요 0 | URL
저 사실은 대학교 1학년 때인가, 오 정희 님의 소설을 처음 읽어보고는 무슨 초현실 작품인줄 알았지 뭐예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상상과 현실이 뒤얽혀서는 느낌이 이상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
어쨌건 저도 얼룩이 아닌 '무늬'를 그리며 나이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약지의 표본
오가와 요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박사가 사랑한 수식>, <슈거 타임> 다음으로 내가 읽은 세번째 오가와 요코의 책이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표본실에서 일하는 젊은 아가씨가 화자인 '약지의 표본'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중년의 부인을 따라가다 알게 된 작은 이야기 방에 관한 '육각형의 작은 방' 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도 그랬듯이, 오가와 요코는 우리 사회의 특별한 계층의 인물 보다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어디서나 있을 것 같은 평범하고 눈에 뜨이지 않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택하길 좋아하는 것 같다. 표본실의 아가씨는 이전에 청량음료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기계의 실수로 약지 살점이 약간 떨어져 나가는 사고를 당하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던 중 낡고 오래된 표본실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을 시내를 지나던 길에 우연히 보고는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거기서 만나게 된 표본제작사 데시마루와 형성되는 미묘한 감정. 그가 주인공에게 벗지 말고 꼭 신고 있기를 당부한 그 구두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신적으로 그에게서 벗어나지 말고 꼭 붙어 있으라는 암묵의 표현이 아닐지. 한번 신은 구두에 길들여지면 다른 구두가 낯설어진다. 그것은 그 구두를 오래 신고 있을수록 더하다. 이 표본실에서 제작하는 표본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생물 표본만이 아니다. 악보에 담긴 소리, 예전에 겪었던 일에 대한 추억, 아픔, 슬픔 등을 의뢰자의 요구에 따라 표본 기술사는 나름의 방법으로 그것들을 표본으로 제작하고 일련 번호를 붙여 표본실에 차곡차곡 정리하여 보관해 나간다.
여기서 우리는 표본으로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잃고 싶지 않거나 잊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편, 소멸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마음에서 몰아내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주인공의 약지의 표본이 제작 되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사라졌듯이. 글에서 표본 제작을 의뢰한 사람들은 좀처럼 그 표본을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봐도 그렇다.
뒤에 실린 '육각형의 작은 방' 또한 오가와 요코의 개성을 보여주는 글이라 하겠다. 아픈 등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스포츠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한 중년 여인, 역시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녀에게 알수 없이 끌리는 주인공. 특별한 이유없이 그녀를 따라가다가 뜻밖의 장소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어느 덧 자기도 그 기묘한 공간에 들어가 마음에 담긴 말을 쏟아 낸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엄연히 이용료까지 지불하면서  육각형의 작은 공간 속에 들어가서이다. 이 특이한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생리적인 배설이 있듯이, 정신적인 배설도 있다. 표현되지 못하고 오랜 세월 사람들의 의식 속에 쌓여만 있던 것들은 어느 새 자신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모든 의식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잠식하게 되는 단계까지 올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어떤 방식으로든지 밖으로 표출되어야 하는, 일종의 배설행위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인공이 이제 그 육각형의 공간 속에서 편안함을 찾게 된 어느 날 홀연히 그곳은 눈 앞에서 사라지고. 주인공은 이제 스스로 자신만의 육각형의 방을 만들 수 있으리라. 그곳이 필요한 한계에 이르렀을때 그녀는 스스로 이야기방을 만들고 그곳에 들어가 그녀의 모든 어두움의 뭉텅이를 쏟아내리라.
우리의 어두운 의식의 세계를 털어놓아야 하는 대상은 이렇게 혼잣말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보다.

'약지의 표본'이 프랑스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것이 의외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아마 화들짝 놀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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