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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정원사의 사계 소박한 정원
오경아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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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런 저런 것들이 하고 싶다, 어디에 가고 싶다, 무엇을 배우고 싶다 등의 꿈을 가진 사람들은 많으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실제로 어떤 행동을 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라디오 방송작가 출신인 저자는, 새로 이사간 집의 정원 가꾸기에서 뜻하지 않은 마음의 평화로움을 얻고는 정원에  대한 공부를 해보겠다고 영국으로 떠난 것이 3년 전, 현재 영국의 한 대학에서 정원 디자인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꾸며진 이 책은 그래서인지 제목도 '소박한 정원'이다. 읽다보니 정원 일 자체는 그 강도로 보아 전혀 소박한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그렇다는 뜻 일것 같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만큼이나 영국에 많은 정원들 중에서도 대표적이라 할수 있는 런던 외곽의 큐 가든 (kew garden)에서 일하면서 겪은 자잘한 일상들, 느낌, 나무와의 교감 등을 잔잔히 써내려간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정원이나 나무가꾸기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매우 편하게 읽혀진다. 오히려 읽으면서 점점 더 감정이입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은 영국 사람들의 정원 사랑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것, 이 책의 글들이 쓰여지게 된 큐가든이라는 곳을 나도 몇차례 방문한 적이 있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는 것 외에도, 뜻하지 않게 부닥치는 이런 한줄의 문장 때문이었다.

새벽은 춥지만 생각보다 깊고, 푸르고, 분주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런던 행 기차를 타고 일터로 가면서의 느낌이라고 하는데 내가 느끼는 새벽과 어쩌면 이리 비슷할까.
읽으면서 덤으로  꽃나무에 얽힌 여러 가지 상식을  얻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우리 나라의 개나리, 진달래 만큼이나 영국에서 흔하게 아무데서나 볼수 있는 꽃 수선화는, 그 수액 속에 칼슘 옥살레이트가 함유되어 있어서 먹거나 피부에 닿으면 피부 트러블을 일으킬수 있고 주변의 다른 식물들을 잘 자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심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 유럽의 고딕 성당에 있는 둥근 원형 창을 '로즈 윈도우 (rose window)' 라고 부르는 까닭은 장미가 기독교에서 아름다움과 순결, 번영의 상징이자 성모 마리아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그래도 궁금해 하고 있던 것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풀렸다. 인공적으로 전혀 물을 주지 않고 자연 상태의 비로만 유지되는 정원을 '드라이 가든 (dry garden)'이라고 부른다는 것, 우리가 흔히 포플러 라고 부르는 나무는 사시나무, 미루나무, 일반적으로 포플러라고 부르는 진한 검은 색의 나무, 이렇게 세 종류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낙엽은 색이 변한 것이 아니라 색이 빠진 것이고 나뭇잎은 스스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이 말하면 나무가 잎을 잘라내는 것이라는 것은, 원리상으로 볼때 맞는 말이어서 기억해두기로 했고, 좀 전문적인 이야기이지만 식물의 프로퍼게이션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씨를 통한 것이고, 또 하나는 부모의 잎, 줄기, 뿌리 등의 일부를 잘라 재배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과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고개 끄덕끄덕하면서 읽었다. 정원에 대한 공부는 단순히 실습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이론적 바탕을 함께 학습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큐가든에는 3년 과정의 코스가 있는데 입학 경쟁율이 꽤 높다고 하는 것에서도, 이럴 때의 가든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정원'에 덧붙여 '학교'의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흙을 만지며 느끼고 배우게 되는 것은 잘은 몰라도 종이나 돈, 기계를 만지며 느끼고 배우는 것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우리가 로봇이나 기계, 무기에서 느끼는 공포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으나 자연 재해를 보고 느끼는 두려움이 다르듯이.
40대 나이에 자신의 꿈을 향해 땀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저자의 결단력과 용기때문에, 내가 영국에 가서 학교 밖으로 기차 타고 혼자서 처음 나가본 곳인 큐가든, 그 이후로도 몇 번 모두 혼자서였던 그 곳 생각에, 그리고 수선화 생각에, 다 읽고도 자꾸 눈길이 가서 들춰 보게 되는 책이다.



 

 

 

 

 

 

 

 

 

 

  

 

-- 이번 호 '행복이 가득한 집' 에 실린 저자의 인터뷰 기사에서 퍼온 저자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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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9-2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그래도 어떻게 생긴 분일까 궁금했어요. 영국의 저 장화는 너무 낯익은 모습이지요? 후후

hnine 2008-09-25 15:36   좋아요 0 | URL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 나오는 잡지이죠 ^^
우리가 장화라고 부르는 저 신발, '웰링턴 부츠' 라고 했던가요? 집집마다 식구 수대로 갖춰놓고 있는~ ^^
 
느린 것이 아름답다
이희경 / 녹두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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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관리 컨설턴트가 쓴 책이지만, 특별히 시간 관리 컨설팅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 아이를 키으며 일도 하는 워킹맘들이 읽어 보면 공감을 많이 할 내용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간간히 생활의 팁을 건네 주는, 요즘 차고 넘치는 류의 책들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나, 위킹맘들은 알리라. 그 어느 책도 읽어서 손해볼 것 없다는 마음이 드는 것을, 어떤 팁도 감사히 받을 정도로 이들의 생활은 힘에 부친 경우가 많다. 직장 생활과 아이 둘을 키우기 사이에서 부대낌 끝에 어느 하나도 충실하게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서 그만 둔 직장, 그리고 전업 주부로서의 4년의 시간 끝에 다시 직장으로 향한 이력을 갖고 있는 저자이니, 어느 한 쪽의 생활만 해본 사람과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읽어보게 되었다.
그녀는 한마디로 전업 주부라는 명칭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 직업을 가지라고 부추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안주하지 말고 '사회적'이 되라는 것이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을 가질 형편이 못된다는, 대부분의 아이를 가진 여성들이 닥치게 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그것이 곧 사회로부터의 물러나 앉음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잠시 속도를 늦출지언정, 방법을 달리할지언정 늘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마음 가짐이어야 하고, 소통해야한다고. 남들이 으례히 생각하는대로의 행로에서 벗어나면 이제 그것으로 끝인줄 아는 것도 어쩌면 획일화 사회의 한 단면인지도 모르나, 우리는 '차선책'이라는 것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계획하는 시간 두기에 익숙하지 않다. 살다보면 알게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하지만 계획은 그대로 맞춰 살려고, 통제된 삶을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상 시나리오로서 의미가 있는 것임을, 꿈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현재의 내가 갖고 있는 능력과 가용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주변의 여건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를 미래의 시간대 위에 배치해 보는 시나리오라고 일깨워 준다. 이것이 곧 시간 관리와 통하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시간 관리란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 어떤 특별한 일을 앞두고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일상에서든 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프로주부란 없다 라는 말도 백배 공감. 언젠가 다른 책에서 읽은, 이 세상에 수퍼 우먼은 없다라는 말에도 혼자 박수를 쳤듯이. 프로주부, 또는 수퍼 우먼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환상을 쫓아, 무리한 일들을 혼자, 아무  군소리 없이, 뼈가 부서져라 감수하려고 하는 무모함을 그만 두라는 것이다.
한 번쯤 인생을 베팅해보려는 도전 의식과 용기가 필요하며, 도전하는 만큼 성숙하리라는 말. 20대에 할 가장 중대한 일은 결혼이 아니라 자립이라는 말도 기억해두었다가 후배들에게 들려주리라 생각했다. 특히 여자 후배들에게.
얼굴에만 주름살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정신에 생기는 주름살을 없애기 위해 일년에 한번쯤 혼자 여행하는 시간들 꼭 가지라는 말도 허황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이런 류'의 책, 여전히 도움이 되고 있다니까.
저자는 40대에 이런 책을 '쓰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으로 142쪽에 소개되어 있는 아이젠하워의 우선 순위 결정 방법을 메모해둔다.

142  우선 순위를 찾는 방법으로는 아이젠하워의 원리가 있다. 긴급도와 중요도를 기준으로  하여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활동을 A, 긴급하고 중요한 활동을 B,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활동을 C, 긴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활동을 D 라고 할때, A -> B-> C-> D의 순서로 하는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긴급한 일 중에 중요한 일은 없고, 중요한 일 중에 긴급한 일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올바른 우선 순위란 당장 긴급한 일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은 긴급하지 않은, 즉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중요한 일을 우선하는 것이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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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블루 - 그녀가 행복해지는 법 101
송추향 지음 / 갤리온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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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에 어울리게 파란 표지를 하고 있는 책. 그래서 눈에 띄었던 책.
저자 이름을 본다. 송추향?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몇 장 들춰서 프롤로그를 읽어본다. 그리고 이 책을 그냥 놓을 수 없게 된다.
그동안 그녀가 겪었을 시간들을 짐작해보는 것도 이리 마음을 무겁게 하는데, 겪어낸 본인은 어떠했을까. 그럼에도 말하지 않는가.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고.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악수를 청하고 싶은 마음이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땐,
그게 왜 궁금하죠?라고 되물을 것
도무지 견디기 힘든 상황 속에 놓이고 말았을 땐,
어쨌든 끝나고 난 뒤를 생각할 것
대처하기 어렵고, 해답을 잘 모를 때는
무식하게 부닥치지 말고
그냥, 내 방식대로 처리할 것
조금은, 비겁하게 살 것
아쉬움은 생길지라도
몸과 마음은 상하지 않게
(본문 28쪽)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런 비겁함을 누가 탓하랴.

이 세상 모든 일은
아니, 적어도 당신 앞에 놓인 일은
단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라
당신을 유쾌하게 해주는가, 그렇지 않은가?
(본문 43쪽)

그래, 유쾌하게 사는 것도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 공감한다.

아무도
그 누구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불행하게 만들 만큼
그렇게 대단한 존재는 없다.
(본문 94쪽)

비슷한 말을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난다. 내 인생은 내가 지휘하고 싶다는 자기 주문형 구절을 이 책 여러 군데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이 글,

위장이 비면 곧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고
애인을 버리면 다른 남자들을 만날 수 있고
핸드폰을 없애면 편지가 는다.
비움은 가능성
항상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겐
더없는 에너지
(142쪽)

비움을 결핍과 이렇게 구분할 수만 있다면.

밥상을 물리고 난 뒤
냉장고를 열고
먹지 않으면 썩어서 버릴 과일 한개를 꺼낸다
사과도 좋고, 포도도 좋고, 바나나도 좋다
엄마가 챙겨주지 않으면 부러 챙겨 먹은 적이 없던 그 과일을
씩씩하게 씻어먹는다
밥그릇은 이래 먹고 살아야하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과 함께
삶을 구차하게 만들지만
과일 접시는 이래야 먹고 사는 것이지 라는 뿌듯함과 함께
삶을 부유하게 만든다
(143쪽)

곧 썩어버릴 과일을 씩씩하게 씻어 먹으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웬만한 어려움도 씩씩하게 헤치고 버텨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이 보일 뿐 아니라,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 든든함이 전해져온다.
누구에게나 고단한 삶. 삶은 거저 누리는 것이 아니라, 헤치고 나가는 용기와 의지의 과정임을 이제서 조금씩 알 것 같은 요즘, 저자 역시 그럴 때 마다 한줄 한줄 경험으로 써 모았을 글들이 마음의 양식처럼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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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9-19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이렇게 하라.."가 아니라 지은이가 스스로 그렇게 살고 또 그러기 위해 자신을 다독이며 쓴 글이라 더 마음에 와닿겠네요. 저녁에 서점갈까 하고 있었는데.. 확실한 뽐뿌질이군요 ㅎㅎ
부모님은 잘 다녀오실거에요. 스페인 8박9일이라니 와~~ 지치는 늦더위에서 벗어나 참 멋진 여행이시겠군요.

hnine 2008-09-19 14:10   좋아요 0 | URL
Manci님, 생각지도 않게 이런 책을 만나게 된 날은 정말 보물을 캔 기분이 들어요. 저녁의 서점 나들이가 지금 저로서는 스페인 여행보다 더 하고 싶네요 ^^

비로그인 2008-09-19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긴 갔는데 제목이 생각 안나서 못 찾아봤어요. 표지 색깔만 기억해도 되었을 것을..
아이만 책 다섯권 사고.. 흑흑

hnine 2008-09-19 21:48   좋아요 0 | URL
ㅋㅋㅋ...저도 지금 막 서점에서 돌아오는 길이랍니다. 저도 사고 싶었던 책이 있었는데 제목이 생각 안 나서 아이책만 세권 사가지고 왔어요. 어쩜 이리 비슷할까요 ^^
이 책은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으니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셔도 될것 같기도 해요.
 
이 그림, 파는 건가요?
임창섭 지음 / 들녘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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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기보다 미술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같은 근본적인 믈음에서부터, 어떻게 그림을 보는가,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왜 그림을 가까이 해야하는가, 누가 그림을 사고 파는가, 어떻게 그림을 사는가 등 보다 현실적인 알림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그림은 무엇인가. 그림의 정의는 계속 변하고 있고 현대미술이라 불리는 것들은 그 범위가 점차 확장되다 못해 지금은 경계와 의미 마저 모호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디까지가 미술이고 어디서부터가 낙서, 또는 그야말로 장난이냐 하는 문제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현대미술은 기술적인 면보다는 아이디어를 중시한다는 말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하나, 학교에서의 미술 교육에 관한 것인데, 미술 시간이란 그리는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중점을 둔 시간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고, 서로 이야기 할 수 있고, 남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시간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것, 즉 한마디로 감성을 키우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왜 그림을 사는가. 세계 미술계에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을 뽑은 일이 있는데 그중의 반 이상이 미술 작품을 하는 화가가 아니라 그림을 사고 파는 화상이라고 한다. 사고 파는 일이 활발히 이루어 질 때 미술계는 더욱 꽃을 피운다는 말이다. 그림을 사는 것은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서도 아니고, 즐기고 감상하는 순수한 목적에서 하는 행위여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현실적인 이야기인지는 그림을 직접 사고 팔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노는 것도 수준이 있다고 하면서, 그림을 구입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면서 작가들에게 생활을 유지하게 하고 또 다른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말하자면 예술가를 후원하는 행위라고. 화랑가에서는 흔히 그림은 돈 있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 눈이 있어야 산다는 말을 한단다.
'누가 그림을 팔지'라는 소제목하에 그림값이 책정되는 과정, 그리고 짧으나마 우리 나라 화랑의 역사에 대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림값을 사는 사람 쪽에서 매기는 것이 '경매', 파는 사람 쪽에서 정하는 것이 '견본시 (Art Fair)'라는 것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어 다행.
어떻게 그림을 사야하는가. 내가 보기에 좋으면 된다. 친구의 의견을 묻고, 화랑 주인의 확신을 구하고, 그런 것은 모두 미술을 보는 안목이 없기 때문이고 그런 안목목을 키우려면 그림을 항상 가까이 하고 감상하라고 조언한다. 잠깐 휙 훑어보고 지날 것이 아니라,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고, 자기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자에게 모든 예술은 한낮 일회성 해프닝일 뿐이겠지.
지금까지 모르던 미술의 한 분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책이었던 것에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은 그림에 대한 초보자들의 입장이 아닌, 미술계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쓰여진 느낌이 여실하다고 할까. 저자의 직책상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나, 누구에게나 아직 서투른 분야가 있고,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기 전까진 누구나 그런 시기를 거치기 마련이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잘 모르고 서투른 것을 부끄러워 하기보다는 그것을 딛고 차츰차츰 알아가는 재미를 강조하여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림을 사서 미술계의 후원에 보탬이 되는 것도 그런 작은 한걸음 한걸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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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타오르고 싶다 - 그림 혹은 내 영혼의 풍경들
김영숙 지음 / 한길아트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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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미술 관련 책들이, 읽기에 그리 어려운 책들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책은 그 중 가장 친숙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가장 유머러스한 책이기도 하다.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이었기 때문일까? 미술이 주는 선입견, 즉 무슨 사조인지 알아야 하고 시대를 알아야 하고 무슨 파인지 알아야 하고 등등의 벽을 겁내지 말라고 격려해주는 책이다. 물론 사조, 시대, 특징 모두 그림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출발점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무심코 어느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마음의 움직임은 나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내 눈을 만족시키기도 하며, 잠들어 있던 어떤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 내가 잊고 지내던 어떤 무의식의 세계를 일깨우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그림과 가까와져 가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저자의 이름. 그녀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순전히 그림이 좋아서 인터넷 사이트에 그림과 관련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누리꾼들의 인기를 불러모으게 되고 책으로까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림, 내 가슴에 턱하니 내려와 걸리는' 이라는 제목으로 써내려간 이 책의 서문을 읽어보자.

그림을 좋아하기 전, 저는 음악광이었습니다...한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무수한 음계의 높낮이에 따라 너무 쉽게 웃고 우는 게 싫더군요.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그 선율에 제 존재가 온통 뒤흔들리는 게 짜증난 거지요. 그림을 보면서부터는 마음을 다스리는 게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시간이 있으니까요. 그 시간들 속에서 조금은 절제되고 유순하게 가라앉은 채 감동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음악에 짜증났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의 다른 표현임을 안다. 음악을 들을 때와 다른, 그림을 볼 때의 느낌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것이 저자의 이 구절을 읽음으로써 확실해졌다. 음악을 들으면서의 흥분 대신, 생각할 여유를 주고, 마음을 다스릴 시간을 주며, 자신과 대화의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림이 평범한 우리에게 주는 것들 아닐런지.
시대 사조별로 그림을 배열해서 설명하는 형식이 아니라, 저자의 마음에 들어 온 그림들을, 몇 개 씩 글의 성격에 맞게 묶어 그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한 기분으로 읽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 글쓰기 스타일이다. 그림은 '우아떠는' 예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술이라는 그녀의 말 그대로이다.
그림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맨 먼저 선물로 건네주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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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8 2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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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8 2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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