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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kg짜리 희망 덩어리
안나 가발다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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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애초에 인간은 쉽게 실망하고 절망하게 만들어진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끊임없이 희망을 재충전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과업을 숙명처럼 지니고 태어난 존재들 말이다.
어린 친구들이라고 해서 늘 기분 좋은 일만 있을까. 아이들은 아이대로 나름의 불만과 걱정의 시간들이 있다.
이 글의 주인공 그레구아르는 초등학교 3학년때 처음 낙제를 받은 이래 중학교 1학년이 되어 또 낙제를 받고, 회상하기를 세살때까지는 그래도 행복했다며, 다섯살 반 되던 해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일상이 재미없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에게는 낙제가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실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라는 곳이 맘에 전혀 들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그렇게 재미없고 싫은 학교엘 매일 가야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아이에게 결국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은 바로 할아버지.
그레구아르가 계속 학교에 마음을 못 두고 낙제만 연달아 하는 것에 대해 할아버지도 실망을 하지만, 아이를 단순히 야단치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어린 충고를 한다. 행복하고 싶으면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라고. 그저 학교를 빼먹고, 달아날 궁리만 하는 것은 결코 행복과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데는 꼭 훌륭한 말솜씨가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협박성 발언은 더구나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건강이 안좋던 할아버지는 마침내 위독한 상황이 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그레구아르는 할아버지가 제발 다시 일어나시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를 하는데, 거짓말처럼 어느날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탄 채로 그레구아르의 학교로 찾아온다. 그레구아르를 마음으로 응원해주기 위해서이다. 그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은 손자에게 희망을 다시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이제 문제소년 그레구아르는 35kg체중의 희망덩어리가 되었다.
이 소설을 쓴 안나 가발다는 정말로 절망에 빠져 본 사람, 희망이 정말로 절실한 순간을 겪어 본 사람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앞 페이지, 입을 다문채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본다. 아침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게 잘못을 저지를 권리가 있는가"를 용기있게 물으라고 했다고, 역자는 후기에 썼다. 타락하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살아서, 삶 속에서 다시 삶을 창조하라고.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라> 는 할아버지의 말이 하루 종일 머리 속에 떠오르다 사라지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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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11-0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읽고 싶어지네요. 참 좋은 리뷰에요. 갑자기 대학에 떨어졌을떄 생각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그냥 긴 삶의 그저 그런 에피소드같기도 해요.

hnine 2008-11-08 11:44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이 책 짧아서 금방 읽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하늘바람님이랑 제가 좋아하는 타입의 소설이지요 ^^
 
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정택영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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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하루라 하면 어떤 일상을 기대할까. 이 책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 드는 순간까지 죽음만을 꿈꾸는 스물 다섯살 난 남자의 하루의 기록이다. 저자가 자전적 소설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아직도 살 날이 끔찍이도 많이 남았다는 것에 절망하며, 우울하고 반복되는 일상, 더 이상 아무 흥미 없는 이 세상에서 그만 떠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주인공 자신이 너무나 흥미진진한 사람이며, 번뜩이는 아이디어 창고인 것이 문제. 최신식으로 구비된 자신의 아파트가 마음에 안들어, 일부러 부식시키고 흠집을 내고, 바닥을 들어내고, 거실 한가운데 사과나무, 토마토 등을 심어서 생명력이 가득 찬 공간처럼 만들었다고 흐뭇해한다거나, 자신의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화장실 배관을 타고 클린턴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거나, 돈만 생기면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닥치는대로 사서 모으는 습관, 물리적 폭발을 일으키는 폭탄 대신, 도레미파솔라시도 같은 음계를 나타내는 음악 폭탄 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그는 마침내 휴가 기간도 자신의 아파트 건물의 엘리베이터 속에서 보내기로 결심하고 온갖 생필품을 다 엘리베이터 속으로 옮기고서, 그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지금 이국적인 휴양지에 와있다고 상상한다. 이런 재미있는 사람이니, 단조로와 보이는 세상이 따분하게 여겨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기발한 발상들, 그리고 유머로 가득찬 이 책의 저자 마르탱 파주는 파리 생으로, 대학에서 심리학, 언어학, 철학, 사회학, 예술사, 인류학 등을 전공했다고 한다. 거의 모든 인문학 계통을 섭렵한 것 처럼 보인다. 기발한 구성, 막힘없는 글솜씨 (아마 번역한 분의 자질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지루하기는 커녕 느닷없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내용들은 문득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얼까 갸우뚱 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령, 주인공이 견딜 수없는 통증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그의 몸 속에 커다란 상어가 한마리 살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그 상어를 몸 밖으로 끄집어 내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을 써보지만 상어는 쉽게 나갈 생각을 안하다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되는 모호한 상황 가운데 그 상어가 마침내 몸 밖으로 퇴출되는 것으로 끝난다. 에밀리 디킨슨이 자주 인용되고 거론되는 것은 그녀의 허무주의적 시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우리 나라에도 마르탱 파주 같은 기발하고 번뜩이는 작가가 있던가 생각해본다. 이런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한 부류로 구분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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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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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원제 On seeing and noticing을 우리말로 옮겨 보면 이쯤 될까? '보는 것과 알아차리는 것'
역시 '동물원에 가기' 편이 책 제목으로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스위스 태생이고 영국에서 수학했지만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있는 보통의 산문집이다.
무엇이 그를 '보통'이게 만들었을까. 그가 '호퍼적 공간들'이니, '영국적인 외로움' 같은 표현들을 즐기듯이, '보통적 문체'라고 말한다면 어떤 점을 들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사람의 심리를 단순히 보지 않고 꿰뚫어 알아차리는 섬세함 같은 것이라면 어떨까.
'진정성'이란 제목의 첫 번째 글에서, 사랑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잃고 마는 것이 진정성이라는 그의 말에,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단숨에 공감을 하면서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진정성을 잃게 된다는 것은 극악한 거짓말이나 과장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견대로 말하고 생각하기보다는 상대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상대방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상대의 기대에 맞춰 행동하려는 시도가 행해진다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잃어버리는 것일지도, 최소한 그런 시기를 거치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 겪었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스스로에게 실망도 했던 그런 경험들이, 보통과 같은 작가의 글에서 발견될 때, 나의 성격적 결함이 아니었군 하며 슬그머니, 하지만 강렬하게 느껴지는 위안이라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람은, 함께 로맨틱해질 사람이 없는 사람이라는, '독신남'이라는 글을 시작하는 첫마디는 또 어떤가. 버려진 순간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사랑이 없는 인간은 팔다리가 반 뿐인 생물과 같다고 말했다는 플라톤 인용에 이르기까지, 보통의 언어는 장황하지 않으면서 다양하다.
그럼 그가 생각하는 잘 쓴 책이란 어떤 책일까.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읽다 보면 나 혼자 파악하려 할 때보다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된다. 더 생생한 느낌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세계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된다.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126쪽).
 
   
그렇다면 그러한 묘사능력과 표현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보통씨.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농담의 의의에 대해 단순한 말장난과 구별지어 비판의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오만, 잔혹, 허세 등 미덕과 양식으로부터 벗어난 것들을 비판하는 방법이라고. 겉으로는 즐거움만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주는 즐거움 뒤에 남는 여운과 은근한 향기, 보통, 당신의 글이 그러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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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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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프랑스 문단의 신데렐라' 라고들 하는 안나 가발다의 소설로 처음 읽은 작품이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편, 그는 결국 떠나고 두 딸과 남게 된 끌레어는, 그녀와 어린 두 손녀들을 잠시라도 보살펴주고 위로해보려는 시아버지와 며칠을 시골집에서 보내게 된다.

우리는 한참동안 그렇게 있었다. 조용히,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면서

글 중의 그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뜻밖에 시아버지는 아내 아닌 다른 여인을 사랑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내고, 말없고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 시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놀란 끌레어는 관심을 가지고 며칠에 걸쳐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시아버지의 독백과 듣는 며느리.
아내는 언제나 가정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 같은 존재였기에 끝까지 저버릴 수 없는 상대였다면, 끝까지 사랑한 상대는 아내가 아닌 바로 그 여인이었다는 고백. 그녀를 만나는 날들의 기쁨으로 이어지던 자신의 삶을 시아버지는 '점선으로 이어진 삶'이라고 표현한다. 직선이 아닌 점선의 삶. 선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그 여인과 함께한 시간이었다면 그녀가 없는, 아내와의 시간은 그저 선과 선 사이의 빈 공간에 지나지 않았음을.
사랑이란 무엇이고, 결혼 생활이란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책의 시작은 며느리인 끌레어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다 읽고 나니 인생을 더 오래산 시아버지의 이야기가 더 주를 이루고 있다. 자신의 아들이 아내와 아이를 두고 새로운 사랑을 따라 떠나는 것을 보고 이 아버지의 마음에서 어떤 생각이 일었을까. 아들을 두둔하지도 욕하지도 않고 다만 불쌍한 녀석이라고 읖조리는 아버지는 아마 아들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보았을 것이다.

금연을 결심하고 오랫동안 굉장한 의지력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겨울날 아침 다시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십리 길을 걸어가는 것, 혹은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그와 함께 두 아이를 만들고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해, 내가 실수를 했어."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것, 그런 게 인생이다. ...인생사 모든 게 지나고 보면 한낱 비눗방울이 아니던가.

 서른 몇 살 그녀의 이 독백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우울함을 한 겹 보태주었음에도, 그래도 읽은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하는 솔직함과 담담함이 있는 책이다.

아 참, 이 소설의 마지막이 아주 맘에 든다. 바게뜨의 꽁다리를 먹고 싶어하던 딸의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를 마치고 며느리의 방을 나가면서 방의 가구와 목재들에게 던지는 물음. 그 의미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내가 느끼는 이 소설의 매력의 90퍼센트는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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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콕 탐정 세계추리베스트 20
에밀 가보리오 지음, 한진영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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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에 열광했던 시기가 있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잠시 착각할 정도로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너무나 멋진 인물이었고 나의 이상형으로 정해놓았었다. 다른 주인공이 나오는 추리, 탐정 소설도 읽어보았으나 홈즈에 비교가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작고한 작가에게서 홈즈가 등장하는 더 이상의 소설이 나올리 만무하고, 거의 모든 홈즈 등장 소설을 다 읽고 나자 추리 소설에 대한 나의 관심도 한풀 꺾였던 것 같다.
요즘도 가끔 추리 소설이라는 것을 읽기는 하지만 예전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책을 펼칠 때만큼 의 기대는 없는 것 같다.
1832년 프랑스 출생 에밀 가브리오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글쓰기에 열정을 느껴 잡지에 기고를 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보다 거의 같거나 약간 앞서서 출판된 에밀 가브리오의 작품들은 실제로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소설에 언급이 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한치의 빈틈도 없을 것 같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 셜록 홈즈에 비해, 르꼭은 그 열정이나 의지는 홈즈에 못지 않지만, 여기 저기 심심치 않게 헛점을 보이기도 하는, 젊은 탐정이다. 사건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범인에 대한 단서를 잡아 내어 이미 범인이 누군지 다 알아낸듯, 이후 과정은 확인 과정인 것 처럼 일사 천리로 진행되는 홈즈식 수사 방법. 하지만 범인은 홈즈 혼자만이 알고 있을 뿐, 글의 중간에 읽는 독자에게 미리 알리는 법이 없고 결말 부분에서나 밝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하면서 읽게 하는데 반해, 우리의 르콕 탐정,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읽는 독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가 전개해나간다고 할까. 긴장감을 덜하는 대신 인간미가 느껴진다. 결정적인 실수를 깨닫고 절망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기도 한다.
모처럼 읽은 탐정 소설, 제법 두툼한 분량이었으나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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