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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아이
오틸리 바이 지음, 진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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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다 읽은 후 우선 드는 생각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이 책의 주인공 아이가 지금은 그 상처를 극복하고 정상적으로 잘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램으로 말이다.
겨우 다섯살 난 아이가, 새 아빠의 미움을 받고 벽장 속에 갇힌다. 깜깜하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장장 아홉 달을 보낸 아이. 나중엔 눈도 못뜨고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게 되며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지 않게 되는데, 더 문제점은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새 아빠는 아이와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 치고, 아이가 벽장 속에 갖히도록 묵인한 이 엄마는 아이를 낳은 친엄마가 아닌가. 다른 사람이 아닌 엄마에게 느낀 실망과 절망, 배신감을 과연 이 아이가 후에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무 것도 안보이는 벽장 속에서 아이는 엄마의 발걸음, 목소리, 인기척 하나 하나를 귀로 느끼며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엄마의 손길 한번 더 받고 싶어 늘 그 순간을 꿈꾸며 버티는데, 그 희망마저 박탈 당한 후 아이는 언젠가 벽장에서 나갈 수 있으리란 기대와 기다림을 모두 저버리고 그저 기본적인 먹고, 배설하고, 자는 행위만을 반복한 채 혼미한 의식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읽는 내내 가여움과 분노 속에서, 내가 갇힌 그 아이가 되었다가, 어떤 때는 그 아이를 가두는데 동조한 그 아이의 엄마가 되기도 했다가, 고통과 슬픔을 느껴야 했다.
이 책에서 제일 분노르 자아낸 인간인 바로 이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면서도 새 남편으로부터의 버림이 두려워, 아이를 벽장 속에서 꺼내주지 않는다. 그럴 수가 있을까? 꺼내달라고 소리치며 울부짖는 아이의 소리를 어떻게 그냥 넘길 수 있을까 말이다. 이미 그 엄마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생각되며 그렇게 된 데에는 또 어떤 경험적 배경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자기가 낳은 아이를, 키우지 않고 단지 '보관'만 해두었던 엄마의 사연이란 도대체 뭘까.

이런 극단적인 예는 아니더라도, 아이를 키우면서 혹시 어떤 보이지 않는 벽 속에 내 아이를 가두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내 체면과 내 만족을 위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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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피오
마르탱 파주 지음, 한정주 옮김 / 문이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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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음악을 순수하게 음악으로서 즐기고 싶으면 전공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음악이 아닌 쪽으로 선택해야했던 나의 우유부단함과 주변 상황에 대한 변명이었을지도 모르나, 외골수적인 사고 경향과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고 혼자 심각해하던 시기의 일이다.
이 책에서는 예술과 상관없이 살아오던 어느 여대생이 우연한 기회에 천재적 신인 예술가로 지목이 되면서 느닷없이 겪게 되는 예술계가 그 배경이 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이 피오.
책의 시작 방식부터 평범하지가 않다. 고고학 유적지에서 만나는 신비한 피오의 미소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1980년 출생한 피오라는 여자 아이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배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는가를 이야기한다.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부모마저 여읜 후 생활의 한 방편으로 시작한 어떤 일이 우연히 어느 예술 평론가의 또 다른 계산과 목적에 이용되면서 그녀는 그야말로 어느날 갑자기, 새로이 떠오르는 미술가의 샛별로 인정받게 되고 그 때부터 이전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는 행복했을까?
프로페셔널로서의 예술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직업으로서의 예술. 그것은 예술 창작에 있어 긍정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서 작용할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치기어린 시절의 명제로 다시 돌아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음악 대신 예술이라는 단어를 바꿔 넣었을 뿐. 프로페셔널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나의 주관적인 동기만 순수하게 작용하여 어떤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을 사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게 되고, 역시 그것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올 비평가의 한마디에 만족스러워지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못하기도 하며, 평가받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하지 못했지만 하루하루의 삶이 자신의 삶이라는 것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던 이전 생활에 비해, 예술가의 신데렐라가 된후 피오의 삶은 남의 눈과 평가 속에서, 남의 기준 속에서 살아가는 '사기'이고 '도둑'이었다.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 이전의 가난을 견뎌내는 것보다 힘들었던 피오의 마지막 결단이 충격적이다.

이 책의 원제라고 하는 <여덟 살 때의 잠자리>, 그런 일화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삶의 어느 순간에 그런 기억들이 이미지로 떠올라 그 이후의 생활들에 영향을 줄 것이다.
<완벽한 하루>를 읽은 후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읽어보게 된 그의 두번 째 소설이었다. 책의 서문에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바랬듯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해줄 소설이라는 점 맞았고, 즐겁게 읽으라는 그의 조언대로, 지루하지 않게, 즐겁게 읽힌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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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8-11-20 0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군요. 찜! 해둡니다 ^^

hnine 2008-11-20 05:45   좋아요 0 | URL
예, 추천드릴만 해요. 마르탱 파주의 다른 책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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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내용을 예상할까. '그리운 메이 아줌마'의 메이 아줌마 같은 인물을 연상할까? 아직 푸릇푸릇한 세대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안겨주고 떠나는.
제목의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인물은 실제로 할머니도 아니었고, 아르헨티나 라는 나라 출신인지 그것도 명확하지 않다.  병으로 엄마를 여의고 허한 마음의 아빠는 묘한 분위기의, 사람들과 동떨어져 오랫 동안 혼자 낡고 오래된 건물에 거주하는 마을 여인에게서 뜻밖의 안정을 찾게 되고, 그런 아빠의 변화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주인공 미쓰코는 그 집을 드나들며 차츰 아빠를, 그리고 그 여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백 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분량이고, 어려운 말로 쓰여진 소설도 아닌데, 읽고 나서의 느낌을 뭐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가 없다. 혹 길고 지루하고 닌해힌 말로 쓰여진 책이라 할지라도 어느 순간부터 작가의 의도가 전해지면 그것으로도 읽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책은 도무지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지를 않는다. 미쓰코라는 인물 성격도 파악이 잘 안되고, 엄마가 죽은 후 아빠가 '만다라'라는 석조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국적이고 기이하기 까지 한 외국 여인에게서 심리적 평온함을 얻고 그 속에 안주하기 시작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이며, 왜 또 하필 아르헨티나인가? 글 중에도 미쓰코는 그 여인을 본명인 '유리'라고 부르고 있음에도 제목을 엉뚱하게 '아르헨티나 할머니'라고 붙인 까닭도 모르겠다.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는 사진 속의 요시모토 바나나의 얼굴 만큼이나 애매하고 모호한 채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의 느낌이란.
책의 중반부 정도부터 등장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삽화는 아빠가 만들고 있는 만다라를 가리키는 것인가?
결국 난 이 소설과 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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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 - 오정희 우화소설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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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책 속에 스물 네편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다. 다작의 작가가 아닌 그녀가 오랜만에 낸 소설이니 두툼한 분량을 기대했다면, 짧은 에피소드 정도의 조각글들에 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누군가. 그녀의 문장력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단편 속에도 충분히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오정희 작가의 글 속 대화 방식의 특징은 바로 이심전심 수법이 아닐까. 드러내 놓고 심사를 표현하기 보다는, 손짓, 몸짓, 표정 묘사 등을 통해 소설 속 인물의 심정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감탄하게 만든다.
달라질 것 없는 똑같은 일상들, 인생이 아주 큰 것을 선물하리라는 기대로부터, 그러한 소소하고 지루해보이는 나날들이 곧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라는 깨달음, 그래서 속상할 것도, 불만스러울 것도 없다는 자각. 이 책의 스물 네편 소설들 속에서 내가 읽어낸 작가의 마음은 그러한 것이었다. 그러한 일상들이 곧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고 작가가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실린 모든 글들이 저녁 무렵 무심하게 피어나는 굴뚝의 연기 같은, 조용하고 체념적인 내용들은 아니다. <가을여행>,<부부>,<해산>,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같은, 한자락 미소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들도 있고, <맞불 지르기>처럼 통쾌한 이야기도 있다. 제일 좋았던 것은 <색동저고리>. 입양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학적 내공이란 어떤 형식의 글을 쓰든 일관성 있게 나타나나보다. 짧은 글들 속에서도 그녀의 문학적 위치는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검은 색 굵은 색연필로 그려진 듯한 단순한 책 속 삽화들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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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11-1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고 나를 위한 책을 읽기나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hnine 2008-11-12 04:45   좋아요 0 | URL
요즘 하늘바람님께서 올리시는 책 들, 재미있어 보이던걸요?

순오기 2008-11-12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6년 초, 오정희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를 읽은 후 만나지 못했는데...
님 덕분에 '돼지꿈'의 그 맛을 느끼고 싶어졌어요. 지름신을 불러야 할 듯...^^

hnine 2008-11-12 09:00   좋아요 0 | URL
제가 빌려드릴까요? ㅋㅋ

순오기 2008-11-12 09:04   좋아요 0 | URL
흐흐흐~ 선물하고 빌려보면 다래끼 나요~
저어기 이웃동네서 구입하려고 담아놨어요.
5만원 채워서 주문하려고요.ㅋㅋㅋ

2008-11-12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8-11-12 20:27   좋아요 0 | URL
아, 그 시 좋으네요. 늘 지나고 나서 알지요 우리가 지나온 길을.
다린이는 좋겠어요. 이렇게 이쁜 누나가 안부도 물어주고 ^^
 
지구별 사진관
최창수 사진.글 / 북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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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록에 멋진 사진이 군데 군데 곁들여져 있으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사진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책이다. 어떤 경로로 어디를 여행했느냐는 발자취보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이곳은 지구별이라는 한 땅덩어리. 우리가 가본 적 없는 지구별 어딘가에서 우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애써서 잘 잡아낸 사진들이 가득한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 아래 조그맣게 표기된 지명들은 그 사진이 찍힌 장소로서의 의미일 뿐. 들어본 지명은 어디에도 없다. 책의 앞부분에 저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돌아다닌 곳 (몽골, 중국, 티벳, 인도, 파키스탄, 에멘, 에티오피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네팔) 을 표시한 지도를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한번 보고 더 들춰보지도 않았다.
수만 마일을 여행하는 것은 수만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데, 아무래도 책을 읽는 것이 직접 몸으로 겪어내는 여행을 하는 것만 할까.
군복무 중이던 저자는 어느 날,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있는 동갑내기 어떤 사람의 홈피를 보고 자극을 받아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역시 우연히 보게 된 유명한 사진가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첩을 보고, 사진에 대한 열정이 생겨 그의 여행은 더 좋은, 완벽한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이라는 목적을 품게 되었단다. 실제로 이 책에는 그가 내셔널 지오그라픽 국제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한 사진을 포함해서, 실물이 과연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싶은 사진들, 특히 인물 사진들이 잔뜩 들어있다. 겉표지 사진을 책 속에서 다시 한번 만나 보라 (215쪽). 몽골의 고비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이다. 무지개가 하늘에 어떻게 저리 걸려있을 수 있을까. 일부 인물 사진들은 연출이 가미된, 예를 들면 마을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나란히 앉혀 놓고 셧텨를 눌렀다던지, 산발적으로 달리는 아이들에게 한 방향으로 동시에 달려보라고 요구를 했다던지, 그랬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런 솔직함때문에 더 마음 놓고 사진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의 역동적인 순간이라면서, 내가 미처 모르는 얼마나 많은 풍경이 아침에 펼쳐져 있는걸까 그는 말했지만,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내가 미처 모르는 얼마나 많은 세상이 이 지구별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걸까 생각했다.
긴 여정을 마치면 무언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정작 그런 기대가 자신을 옥죄는 강박이 되더라는 말, 그런 집착과 욕심을 약간 버리자 슬슬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후기 속의 한 마디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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