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서 글 쓴다
마땅한 책상이 없어 밥상에서 글 쓴다
재경이 유치원 보내고 재경이 아빠 가게
가면 밥상을 펴놓고 글 쓴다
글 써서 밥 벌고 싶어 밥상에서글 쓴다
밥은 못 벌어도 반찬값이라도 벌고 싶어
밥상에서 글 쓴다 재경이 과자값이라도
벌까 싶어 밥상에서 글 쓴다
밥이라고 쓰면 하얀 김이 나는 밥이 나오고
반찬이라고 쓰면 갈치 콩나물 두부가 쏟아지고
아버지 칠순이라고 쓰면 백만 원이 뚝 떨어지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환상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글 쓴다
글만 쓰고 있어도 배가 부를
경지가 될 때까지 밥상에서 글 쓴다
밥상이 내게 마땅한 책상이 될 때까지
밥상에서 글 쓴다
아! 이 빌어먹을 책상물림
-- 성 미정 시집 '상상 한 상자' 중에서 --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책상은 '썬 xxx' 가구에서 나온 (지금도 이 회사가 있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대학 다닐 때 쓰던 책상이다. 의자는 예전에 쓰던 2인용 식탁에 딸려 있던 의자.
남편이 대학때 쓰던 책상이니 20년도 훨씬 넘은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로 남편은 거의 집을 떠나있던 터라 그 이후로는 남편 아닌 다른 형제 중 누군가 썼을텐데, 남편이 살던 예전 집에서 트럭에 실려 온 이 책상을 풀어놓았을 때, 오래된 티가 좀 나긴 했어도 누가 쓰던 아직은 쓸만 하겠구나 했었다. 당장 책상 하나 구입하는 것도 아쉬울 때였기에.
직장에 다니던 때, 내 자리, 내 책상, 내 컴퓨터를 따로 갖고 있던 그 때에도 퇴근해 집에 와서도 책상에서 뭔가 꼼지락거리는 것을 즐겼던 나인데, 몇년 전, 직장을 아예 그만 두고 나니 집에 있는 그 책상에 제일 많이 앉는 사람은 내가 되었다. 남편은 일터에서 자기 일을 다 보고 집에 돌아오는 사람이고,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 새로 책상을 사주었으니까.
그런데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부터 책상 서랍 하나가 손잡이가 빠져 있어서 그 서랍은 거의 사용할 수가 없었는데 좀 지나니 나머지 서랍 두 개에서도 손잡이가 다 빠져 버렸다. 그래서 서랍을 거의 사용할 수가 없어졌다. 서랍을 모두 못쓰게되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서랍이 그렇게 되고나니 그때까지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던, 책상의 거무튀튀한 색깔도 보기 싫어지고, 의자 따로, 책상 따로 구색을 맞춰놓은 모양새도 청승맞아 보이는 것이다. 그 때부터 대형마트에 장 보러 갈때마다 책상 손잡이만 따로 팔고 있나 유심히 찾아봤지만 발견하질 못했다. 남편에게 말했으나 별 반응이 없다. 마트에서 못 구한 나는 이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서 각종 손잡이, 문고리 등만 전문으로 파는 곳을 찾아냈다. 거기에 보니 사이즈, 두께, 재질 별로 각종 손잡이가 다 나와있었다. 거기서 파는 책상 손잡이 중 가장 작은 사이즈가 간격 6.4mm짜리인데, 집에 있는 책상 손잡이 간격을 재어보니 6.1mm정도 된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를 아무리 뒤져 봐도 6.1mm짜리를 파는곳은 없었고 모두 6.4mm, 9mm, 11mm... 뭐 이런 식으로 규격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 6.4mm를 사다가 끼우면 대강 맞을 줄 알았다. 그래서 배송비를 더 물어가며 손잡이 세개를 주문하다가 드라이버를 찾아 끼워봤더니 맞을 생각도 안하는거다. 이런 낭패감이라니. 그때 남편은 한창 바쁠 때였고, 그 바쁜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며칠 후 얘기를 했더니 그걸 뭘 주문했냐고 그런다. 굵은 끈 같은 것으로 묶어서 사용하면 되지. 그런 방법도 있었겠으나 그건 미관상으로도 좀 그렇지 않은가? 아무튼 이왕 구입한 것, 사이즈가 조금 안 맞으니 남편이 사무실에 갖고 있는 전기 드릴로 책상 서랍에 작은 구멍을 뚫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바로는 안되고 10월 26일에 해주겠단다. 아마 그때까지는 바쁘니까 귀찮은 일 시키지 말라는 뜻이겠지.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그 10월 26일이 되었으나 책상의 손잡이는 여전히 한쪽 구멍에만 손잡이가 어설프게 달린 채 남편의 전기 드릴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이 상했다. 내가 왜 이러나 싶었다.
이 책상 아니면 이 세상에 책상이 없나? 알아보니 세일가로 6~7만원이면 원목 책상 하나 살 수 있던데, 내가 내 돈으로 사도 그 정도는 살수 있는데 왜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나 싶었다. 다른 사람이 쓰던 물건 한번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 쓰고, 입고, 그렇게 살고 있던 내 자신이 미워졌다.
지난 주 금요일, 그러니까 10월 26일에서 2주일이나 더 지난 날, 나는 재고의 여지 없이 동사무소로 발길을 향했다. 가서는 폐기물 스티커를 4000원이나 주고 사왔다. 그 책상 갖다 버리려고.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말했다. 그래도 한때 자기 소유였으니 말은 하고 처분을 해야할 것 같아서이다. 남편은 표정과 어투가 갑자기 확 바뀌더니 멀쩡한 책상을 갖다 버릴려고 한다면서 화를 내면서 그 밤중에 집을 나가버렸다.
.......
나는 지금도 그 책상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