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케이코 (Keico Yoshida) - Depois Da Banda Passar (퍼레이드가 끝난 뒤)
요시다 케이코(Yoshida Keico) 노래 / 산토끼뮤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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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접해본 요시다 게이코의 노래는 ’카롤리나(Carolina)’였다. 

즐겨듣던 리사 오노의 보사노바가 겨울날 따뜻한 벽난로 같다면 
요시다 게이코의 노래는 봄날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느낌.

무겁지 않고 늘어지지 않고, 조금 쓸쓸하면서도 맑은 목소리가 
끊어질 듯 나긋나긋하게 잔잔한 감성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카롤리나를 포함하여 14곡의 노래가 들어있는 앨범 "Depois Da Banda Passar(퍼레이드가 끝난 뒤)".

곡 그 자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동봉된 앨범 설명을 펴보지 않은 채 일단 플레이어에 CD를 걸었다. 
아래는 제목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본 이 앨범 수록곡들의 개인적 인상들.
("☞마크" 뒤에는 앨범 설명에 실린 관련 내용 정리 및 요약)


 1.  페드로 페드레이로 (Pedro Pedreiro)  

노천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번잡한 오후의 광장.
빠른 말투로 종알거리는 아낙네들.. 뭔가 사회적인 것이 느껴진다.
여러 개의 CD를 걸어두었다면 앨범이 바뀌었음을 알리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첫번째 곡. 

☞ 전차를 기다리며 복권 당첨과 태어날 아이, 카니발 등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esperando) 있는 
’석공 페드로’의 수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이어지는 곡.



 2.  카롤리나 (Carolina)  

어쿠스틱 기타와 맑은 목소리의 울림이 있는 나지막한 서정성.
커피 한 잔 들고 맞이하는 3∼4시의 오후, 또는 해질 무렵의 차분한 분위기.
창 밖에 봄비가 내리는 풍경도 떠오른다. 조금 쓸쓸하지만 무겁지 않은.
후렴구 ’라 포라 아모(La fora, amor)’ 부분에서 느껴지는 추억의 느낌과 안타까움.

☞ 요시다 게이코가 ’오랫동안 동경하는 음악’이라고 밝힌 노래. 
지금은 혼자가 된, 시든 장미꽃 같은 여인 카롤리나를 떠올리는 내용.



 3.  마리아 조아나 (Maria Joana)  

늘어선 바코드 같이 나지막히 조잘대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 

☞ 좋은 인생 그리고 돈을 가지고 집 나간 여인 마리아 조아나에 대한 수다. 그녀는 다시 돌아올까?


 4.  메뚜기 행진곡 (Marcha Dos Gafanhotos)  

남미에 포카리스웨트 광고 음악이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하얀 집들이 늘어선 그리스 휴양지를 배경으로 라라라~ 빙글빙글 돌며 춤추는 여인의 환상.
왠지 살사를 추고 싶어지는, 한 낮의 경쾌한 햇살 같은 곡.

☞ ’메뚜기가 내 밭의 야채를 모두 먹어버렸다’는 동요를 가지고 만든 곡. 
밭에 나타나 농작물을 해쳐놓은 나쁜 메뚜기를 욕하는 노래(!)가 이렇게 신나고 경쾌할 수 있나? ㅎㅎ;
’메뚜기의 마르샤’라고 제목을 해석해 놓았던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Marcha’는 행진곡(March)라는 의미. 
’삼바와 함께 브라질의 카니발이나 행진 등에 붙여지고 연주되는 일종의 행진곡’이라는 사전적 해석을 보니 
이 곡의 경쾌한 리듬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5.  가슴이 콩닥콩닥 (Tique-Taque Do Meu Coracao)

"치키치키 치키따키"
어느 낮선 도시, 어깨를 들썩이며 신나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인.
쇼윈도에 비치는 들뜬 모습.
그러나 약간의 후회, 회한은 아닌.

☞ 노래 시작부터 뇌리를 콱 파고드는 "티키티키 티키따키(tique-tique tique-taque)"는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는 의성어. 연애할 때 콩닥거리던 가슴의 느낌이 어느새 점점 덜해지면서 
청춘이 끝났음을 아쉬워하는 듯한 내용.


 6.  14세 (14 Anos)  

아련한 기억.
하늘색 목소리가 허공에 섬세한 선율을 그려놓고는
연기처럼 흘러서 지나가버린다.

☞ 14살 때 꿈꾸던 삼바 음악가의 길. 아버지는 음악가보다는 철학/의학/공학을 공부하길 원했지만
결국 삼바의 길로 나선 주인공. 그러나 아버지가 옳았다. 지금의 나는 잘 팔리지 않는 삼바 음악가.



 7.  프레콘세이토 (Preconceito)  


쓸쓸함. 지친 느낌. 흰 색의 박하향 나는 목소리.

☞ 마음씨 착한 가난한 흑인이 쓸쓸히 세레나데를 연주한다. 
자 나의 삼바여, 그녀에게 전해다오. 마음에 색깔은 없다고.





 
 8.  라디오 가수 (Cantores Do Radio)  

기차 타고 떠나는 희망찬 여행.
낮익은 멜로디. 경쾌한 관악기 소리(클라리넷?)는 행복을 노래하는 듯.

☞ 노래하며 살아가는 라디오 가수. 
아침과 밤, 기쁨과 슬픔, 남에서 북으로 그들의 노래는 모두를 감싸고 위로한다. 
타인의 행복이 그들의 기쁨인 라디오 가수의 노래.



 9.  오피니언 (Opiniao)  

조용한 골목길에서 시작하여 봄비 내리는 놀이터가 있는 공원으로 이끈다.
레인스틱 같은 빗소리, 약간은 쓸쓸한 서정.
봄비 내리면 떠오르는 어떤 사람.

☞ 잡아가고 때려도 나는 의견(opiniao)을 바꾸지 않는 사람.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10.  어딘가 그 근처에 있다고 말해 (Diz Que Fui Por Ai)  


기타 연주가 노래를 이끌고 나간다.
기타 소리 사이를 바람처럼 떠돌다 사라지는 목소리.

☞ 나는 기타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 어디에 있어도 언제나 그녀만 생각하고 있다.


 11.  가면의 밤 (Noite Dos Mascarados)  

남녀 듀엣곡.
남자는 모카 커피 같고, 여인은 레몬 라임 같은 상큼한 목소리가 대비되는 맛.
추억은 아니야.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어쩌면 시작하는 연인들.

☞ 가면을 쓴 남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밤을 함께 보낼 연인을 찾는다.


 12.  아 히타 (A Rita)  

하늘. 하늘로 열린 창. 높은 처마.
비상하며 오르는 느낌.

☞ 나를 떠나버린 여인 히타(Rita). 모든 것을 가져가 버렸네. 나의 마음과 노래까지도.


 13.  삼바와 사랑 (Samba E Amor)

저녁식사를 마친 늦은 밤. 피곤함.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 덜 마무리된 어떤 일. 미련.

☞ 밤 늦도록 삼바를 추고 새벽까지 사랑을 나눈 뒤, 느지막히 일어나 졸음에 겨운 어느 연인의 노래.


 14.  아 반다 (A Banda)  


지나간 날을 기리며 경쾌하게 미래의 희망을 노래.
독특한 퍼쿠션 소리. 따라라락~
중간 이후 플루트 반주는 대중가요 같다.
무언가 앞서서 진행하는 듯한 느낌.

☞ ’Banda’는 일종의 멕시칸 밴드 음악(A type of Mexican brass band music). 
이 앨범의 제목도 노래 가사에 나온다. 경쾌한 행진곡이 대로 한가운데 울려퍼지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도, 슬픔도, 허세도, 삶의 피곤함도 잊고 사랑 노래를 부르면서 
퍼레이드를 벌이는 악대를 보기 위해 창가로 몸을 내민다. 
악대가 지나간 후, 마법은 풀리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내용.
1966년 MPB 송 페스티발 우승곡. 단 4일 동안 5만 5천장의 레코드가 팔렸다는 나라 레옹의 대히트곡.




메모한 것을 부클릿의 해설과 비교해 보니 가사 내용과는 영 엉뚱하게 해석한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뭔가 연관된 비슷한 느낌을 잡아낸 것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래서 음악이란 ’세계 공통의 언어’라고 했던가.  

이 앨범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나라 레옹(Nara Leao)'은 ’보사노바의 뮤즈’로 사랑받았던 브라질의 여자 가수라고 한다. 
1942년 태어나 19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비브라토 없이 메마른 듯한 창법으로 
1960년대 브라질의 군사정권과 사회현실을 노래한 지극히 현실참여적인 가수라고 하니, 
우리나라도 치면 양희은씨나 민주화 운동권 가수쯤 될 것 같다. 
따라서, 나라 레옹의 사후 20주년을 기념하며 요시다 게이코가 다시 부른 이 앨범에 
’삼바와 마르샤로 당시 브라질 군사정권에 대항하던 민중의 삶을 대변하는’ 노래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산뜻한 요시다 게이코의 목소리만 듣고 있을 때에는 몰랐던 이런 내용들은 
한 곡 한 곡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 볼 때 멜로디와 내용의 이상한 간극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가사가 왜 이렇게 어두운 내용인가 싶은 분들은 이 앨범에 들어있는 이런 역사적 배경과 
작곡가에 대한 약간의 이해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앨범에 실린 요시다 게이코의 모습은 차분하고 섬세한 미모의 가정주부 같은 인상이다. 
다음 주에 열릴 그녀의 첫 내한 공연이 잘 진행되길 바라면서, 
다시 한번 그녀가 해석하는 브라질 음악의 세계에 귀를 기울여 본다.
(2010년 4월 16일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 

쌀쌀한 바람 속에 연이어 꽃들이 피어나는 이 즈음, 감상하기 딱 좋은 봄을 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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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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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배울점은많지만 섣부른열광은금물. 이런독서법도있다는정도. 차분히읽으며돌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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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이야기 - 겸손의 미덕으로 미래를 바꾼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8
박근형 지음 / 명진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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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후진타오를 알면 현대 중국이 보이는게 맞다. 티베트 침략과 동북공정까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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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메모 달인들 - 14인 메모광들의 성공신화
최효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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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메모의 좋은 사례들. 단, [메모의기술2]에 있었던 실제 메모 사진들이 빠진 것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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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 스캔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엔론 스캔들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의 몰락 서돌 기업 다큐멘터리 시리즈 1
베서니 맥린.피터 엘킨드 지음, 방영호 옮김 / 서돌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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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는 좀 암담했다. 등장인물 소개만 8페이지에 달하는, 797페이지짜리 묵직한 양장본 '기업 보고서'라니. 띠지도 없이 배달된 누렇고 검은색의 겉표지와 그 위에 박힌 '스캔들'이라는 단어까지 한눈에도 뭔가 '구리다'는 느낌을 팍팍 풍겨주기에 충분했다 (표지가 유명한 엔론 본사인 Death Star의 실루엣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엔론(Enron)"이라는 기업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파산한 미국의 에너지 업체라는 정도 외에는. 제대로 책을 읽기 위해 웹서핑을 해보니 2001년에 여차저차한 이유로 부도가 났고(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바로 [엔론 스캔들]의 주된 내용), 이 책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2003년, 책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온 것이 2005년(도빌 영화제 카날 플뤼상 수상, 2006년 아카데미상 노미네이트), 한국에 번역 출간된 것이 2010년이니 조금 늦게 소개된 감은 있다.    

삼성을 '한국의 엔론'이라고 묘사한 기사는 물론, 부도 사태의 원인을 분석한 수 많은 자료와 인용문을 웹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엔론이 미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최고의 인재들을 보유했던 회사라는 사실은 이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GM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같은 곳만 그런줄 알았다 ^ㅅ^;), 이렇게 쟁쟁한 두뇌들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경영진의 부정행위로 지탄을 받았다는 점이 지금의 삼성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럼, 이 책은 미국판 [삼성을 생각한다]란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미국기업 엔론'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묵직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

늦은 밤, 엔론 사장의 비극적인 자살로 시작하는 본문 내용은 무서운 음모로 가득한 범죄 영화의 도입부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들은 정말로 몇 시즌짜리 드라마나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를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등장인물 정리만 8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대부분 본문에 등장하는 시간 순서로 앞부분에 정리되어 있어서 삼국지나 무슨 대하소설을 볼 때 처럼 헷갈릴 때마다 뒤적거리며 읽다 보면 어느새 훌쩍 시간이 지나있곤 했다.  

두꺼운 분량에 질려 간단히 요약한 책 내용만을 원한다면, 우선 출판사가 제공한 "책소개""리뷰"를 권하고 싶다.

사실, 엔론의 몰락에 대해서는 700페이지가 넘는 소설 형식의 이 책보다 경제신문의 기사나 인터넷 상의 다른 자료들이 더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고 있다. '무늬만 에너지 기업'인 엔론이 한때는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중 7위에도 올랐던 진~짜 엄청난 자본력의 기업이었고, 어떠한 성장 과정을 거쳤으며, 무슨 이유로 몰락했는가 하는 대략의 '줄거리'는 그런 기사나 출판사 책소개를 그대로 베껴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요약본' 내지 '줄거리'만 읽고 넘어간다는 것은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 포기하는 일이라는 것이 당연한 상식 아니겠는가? 특히나 이렇게 '소설같은' 책의 경우에는. ㅎㅎ;

대기업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실물 없이도 어떻게 막대한 자본을 움직여 이윤을 낼 수 있는지, 교묘한 회계상의 조작과 그 치명적인 결과, 로비에 의한 기업과 정치권/언론의 유착, 실질적 발전보다 자기도취에 빠진 CEO와 경영진, 자기 사업에 대한 잘못된 비전과 도덕성이 기업을 어떤 길로 이끌고 갈 수 있는지를 이 책은 방대한 자료와 인물들을 내세워 구구절절 이야기 해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풀어서 정리한 기자들이 대단하다). 무엇보다,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이 부족하다면 최고의 인재와 정보, 자금력을 가진 세계적 초일류 기업이라도(삼성은 한창 때의 엔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부에서 곪아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밤새워 미드를 보고 난 것 같은 재미와 얼얼함으로 전달해 준다.  

얼핏보면 엔론의 두 최고경영자인 '제프리 스킬링(제프 스킬링)'과 '케네스 레이(켄 레이)', 그리고 재무책임자인 '앤드류 파스토우'의 3명이 이 범죄극의 주역을 맡은 것으로 보이지만, 일련의 사태들이 벌어질 동안 이에 동참하거나 방관, 또는 무책임하게 대응한 엔론의 수많은 임직원들과 월스트리트의 분석가, 투자자, 은행들, 회계사들, 정부와 언론들이 모두 '주요 등장인물'이자 공범임은 책을 읽다보면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서술적인 전개의 특성상 '기업 보고서'라기 보다는 '대하소설'에 가까운 이 책은 기업체 종사 경험이 있거나 금융/경영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쉽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두근거리는 남녀간 로맨스나 잘생긴 재벌아들의 등장, 출생의 비밀 같은 요상한 반전 따위 없이 분식회계라든지 기업인수, 로비, 주가조작 등 금융과 기업 경영에 대한 비정하고 돈 세는 이야기들만 잔뜩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재미있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진 놀라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언급한 수많은 외신들의 리뷰를 보라).

당연히, 금융이나 재무쪽 종사자들에게 일독을 권할만 한데, 평소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두꺼운 책을 권한다는 건 조금 말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금융이나 경영에 대해 별 관심없는 일반인들이 이런 책을 소설책 마냥 흥미있게 읽기도 어려울 것 같으니.. 어쩌면 이것이 이 책 [엔론 스캔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일 수도 있겠다.

 
미국판 삼성을 생각한다? 

책을 보면서 자연스레 떠올랐던 것은 최근 읽었던 [삼성을 생각한다]와 [구글드],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같은 다른 책들이었다.

일류 기업이 저지른 부정을 추적 조사하여 고발한 넌픽션이라는 점에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하나의 기업에 대해 온갖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풀어냈다는 점에서 [구글드]를, 그리고 "인재경영"의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주에 번역 출간된 말콤 글래드웰의 따끈따끈한 신작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를 떠올린 것이다 (물론, 각각의 책과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막강한 경제력과 정보력, 뛰어난 인적 자원을 이용해 일반인은 엄두도 못낼 일들을 거침없이 저지르는 거대 기업의 모습은 엔론과 삼성을 다룬 두 책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을 생각한다]는 비리의 주범인 삼성 수뇌부에 한때 몸담았던 김용철 변호사가 쓴 일종의 내부 고발(?) 보고서인 반면, 이 책은 미국 경제지 포춘(Fortune)의 기자들이 엔론 부도 후 기업 외부에서 법정 기록, 회의록, 개인 이메일까지 샅샅이 조사하여 쓴 넌픽션 소설에 가깝다 (cf. 엔론 직원이 직접 쓴 책으로는 브라이언 크루버의 [탐욕의 실체]라는 책이 따로 있다).  

둘 다 흥미진진하게 읽힌다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삼성..]이 주로 일인칭 시점에서 비리를 고발하는 듯한 건조한 느낌이라면 [엔론..]은 인물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사건에 대한 다양한 서술적 시점좀 더 풍부한 소설적인 재미를 준다는 차이가 있다. 또 기업 자체로 봤을 때 엔론과 삼성이 모두 '인재경영'을 엄청나게 중요시한다 점은 동일하지만, 엔론이 분식회계와 장부조작 등 주로 금융 거래를 통해 부를 확장했다면 삼성은 금융 거래 외에도 실질적인 제품 제조능력과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는 차이점도 지적할 수 있겠다 (However, 결국 삼성이 최근에 문제시 된 것도 역시 '금융'과 관련된 셈이니, 돈과 탐욕과 교만은 언제나 문제를 불러 일으키는 듯).
  

◆ "The Smartest Guys In The Room"의 의미

원서 제목인 [The Smartest Guys In The Room] 은 "the elephant in the room" 이란 관용구를 변형시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직역하면 '방안의 코끼리'인 이 문장은 실제로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언급하지 않으려거나 무시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의미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엔론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완벽한 비유 아닐까 싶다. 그렇게 머리 좋은 놈들(the smartest guys)이 그 좋은 머리를 회계부정과 장부조작에 써먹으면서 벌어진 결말이 빤히 보이는 문제점들, 그리고 엔론이 파산하기 전이나 파산한 후에도 나 몰라라 대처했던 경영진과 미국 정부, 언론, 은행과 투자자, 증권분석가, 컨설팅 업체들의 무책임한 태도까지를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 절묘한 표현이 아닐런지 (어디에도 없는 개인적 해석이지만 묘하게 말이 되지 않는가). 


냄새나는 엔론의 비리를 다뤘다는 점 때문에 구리구리한 표지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원서의 표지나 영화의 포스터를 봐도 한국판 표지는 '잘 팔리기 위한' 표지로서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솔직히 '무척' 아쉽다). 칙칙한 표지 사진이 사실은 강남의 삼성 타운 뺨 칠 정도로 멋진 엔론 본사 건물이라는 걸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알 정도였으니... 가뜩이나 묵직해 보이는 책인데 굳이 심각하고 부패한 느낌을 표지에서부터 팍팍 풍겨서 첫인상을 흐리게 할 필요가 있을까? 최소한 겉표지만 더 세련되고 깔끔하게 바꾼다면, 해외에서와 같은 베스트셀러까지는 모르지만 '미국판 [삼성을 생각한다]'정도로 홍보되어 기업하는 사람들의 "반면교사" 삼아 널리 읽히기에 좋은 내용이라 생각된다. (분량이 좀 되기 때문에 휴가철에 나왔으면 딱 좋았을 것을.. 요즘 한창 [삼성..]이 베스트셀러이니 잘만 하면 지금이라도... ㅠ.ㅠ)   

출판사의 '책소개'에도 이미 잘 언급되었지만, 이 책은 오래 전에 벌어진 잘 모르는 먼 나라의 기업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도 세계 곳곳, 그리고 바로 우리 곁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기업 비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의의를 가진다. 여기서 다뤄지고 있는 "기업경영, 모럴해저드, 분식회계를 비롯한 부정한 회계 처리, 정경유착 등은 엔론에 이어 최근 리먼브라더스, 닛코, 시티그룹, 골드만삭스에 이어지며 전 세계를 경제 불황과 금융위기에 몰아넣은" 반복적 스토리라 할 수 있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회계조작, 로비를 통한 정경유착, 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마찬가지일 뿐만 아니라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유혹이 아니던가?

엔론의 "인재경영의 허울"과 "정보 과다의 위험"에 대해서는 말콤 글래드웰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에서도 두 개의 chapter를 동원하여 꽤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그 부분을 읽고나서 다시 [엔론 스캔들]을 들여다보면 소설 같은 실화 속에서 달리 보이는 것이 또 있을 것이다. (내용을 대충 알고 싶다면 링크된 다음 기사 참고→ "인재경영 몰입하다 쪽박 찬 기업?" - 2010.3.26. 한겨레신문)

첫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흥미진진한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도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구해서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제보(?)를 기다립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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