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에 사는 사람은 그 누구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매 순간 정치행위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탈정치'를 말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정치행위이다. 경제, 문화, 예술 등은 정치만큼 똑같이 중요하지만 정치의 방향과 수준은 시민의 삶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명박 정권이 출현하자 그 이전 10년과는 다른 변화가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생각해보라. (조국) -7~8쪽
오연호 :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는 정치인들이 바꾸는데, 우리 사회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정치인이 만든 틀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데, 시민들이 그들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게을리 하고 나아가 그들을 냉소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보는 셈이겠죠.
조국 : 현재 대중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일자리, 교육, 주택 문제 등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즉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성취하려면 정치가 제대로 서야 합니다. 제도를 바꿔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물론 아래로부터 운동이 일어나고 대중의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꼭지'는 정치가 따줘야 합니다. 어떠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가는 정치인이 결정합니다. (중략) 그렇다면 정치인들에게 그저 맡겨두면 될까요? 물론 아닙니다. 시민들이 풀뿌리 수준에서,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참여의식을 가지고 뛰어들지 않으면 정치인은 자신과 자기 정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게 됩니다. 정치인 개인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다는 거죠. 정치권 바깥에서 정치인과 정당에게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38~39쪽
조국 : (중략) 정치권력을 잡은 뒤 마음만 먹으면 경제권력을 분명히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중략) 창출된 부와 가치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어떤 우선순위에 따라 얼마만큼 어떤 절차에 따라 분배할 것인가는 정치가 결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바뀌면 그에 따라 경제권력이 바뀔 수 있는 거죠. (중략) 문제는 정치를 책임지는 주체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 구체적인 세밀한 계획이 있는가입니다. -54~55쪽
오연호 : (중략) 일자리 해법에서도 정의,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구체적 정책은 이후 더 많이 개발되어야겠지만, 먼저 일자리를 바라보는 철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어떤 경쟁이어야 하는가, 어떻게 놀아야 하는가, 어떤 임금이어야 하는가의 문제와 다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진보·개혁 진영이 재집권을 위해서는 "진보가 밥 먹여 주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밥을 더 인간다운 방식으로 먹게 해준다"고 답해야겠습니다. -125쪽
조국 : 어느 사회나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자원을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경쟁하고 충돌합니다. 진보·개혁 진영은 이러한 욕망의 현주소와 흐름을 정확히 포착해야 합니다. 진보·개혁 진영 내부에 '이익의 정치'나 '욕망의 정치'를 '가치의 정치'와 대립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위험합니다. 교육, 일자리, 집, 의료 등에 대하여 대중이 어떠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아야죠. 그리고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 평등, 연대 등의 진보적 가치에 따라 욕망의 내용과 방향을 재설정해야 합니다. 법과 제도를 통하여 욕망이 자기 파괴적으로, 그리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에 가득한 불안을 제도적으로 감경해놓아야 합니다. -135~136쪽
조국 : (중략) 그러나 지금 청년들이 완전히 시들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고, '이걸 어떡하지?' 하면서 고민하고 모색하는 단계 같아요. (중략) 우석훈 박사가 '88만원 세대'를 얘기하면서 논의가 촉발된 이후,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한다'는 청년들의 당사자 운동이 본격화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6.2 지방선거에서도 20대들이 투표참여 운동을 벌이면서 정치의 광장으로 나왔구요.(후략)
오연호 : 20대 청년들 스스로 자기 세대의 문제를 가지고 들고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시는 거죠?
조국 :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떤 정치 세력이든 이들의 요구에 답하지 못한다면 집권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178~179쪽
조국 : 여러 가지를 종합하면, 검찰은 삼성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삼성맨들은 자신들이 한국을 이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삼성이라는 조직과 그 수장을 위해 충성을 다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경제 외에도 정치와 사회 분야까지 삼성의 영향력을 넓히려 하고요. 요컨대, 저는 검찰을 검찰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236쪽
조국 : 그리고 진보·개혁 진영이 주의할 것은 복지가 진보·개혁 진영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비스마르크와 드골이 독일과 프랑스에서 복지국가의 기초를 놓았고, 골수 신자유주의 정당이던 스웨덴 보수당도 전격적으로 복지국가를 수용하며 집권했죠. 복지국가 모델은 사회민주주의의 비전과 투쟁의 산물이었지만, 이후 보수 진영도 이를 채택,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정책이건 먼저 주장했다고 해서 그 과실果實이 자기에게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예를 보더라도 무상급식 정책의 원조는 민주노동당이었지만,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그 과실은 민주당이 대거 가져갔죠 -294 쪽
조국 :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치인은 도덕철학자, 종교인, 지식인, 학자와는 다른 역할이 있죠. 일찍이 나폴레옹은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고 갈파했습니다. 대중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자신의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은 정치모리배라 불려 마땅합니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을 모두 갖추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큰 정치인'이 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295쪽
조국 : 베버의 말을 한 번 더 빌려 말하자면,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대중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꾼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정치인도 인간으로서 모든 한계를 다 가지고 있죠. 단점은 비판해야겠지만 그 사람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끌어내려 패대기쳐서너는 안 됩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키워줘야 합니다. 좋은 정치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좋은 지도자도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295쪽
조국 : 진보·개혁 진영이 네티즌과 공동 작업으로 진보·개혁 진영의 '드림팀'을 뽑아보는 겁니다. 현재의 당 소속과 상관없이 집권을 전제로 한 정부 구성을 해보는 겁니다. 당 중심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말이죠. 예컨대, 대통령으로 ○○○, 국무총리로 ○○○, 장관으로 ○○○, 대법원장으로 ○○○, 헌법재판소장으로 ○○○ 등을 뽑아보자는 거죠. 각 자리마다 3배수 정도로 뽑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종의 '놀이'일 수도 있는데, 이런 모습이 그려져야 새로운 정부에 대한 감도 빨리 오지 않겠어요? -296쪽
조국 : 그런데 386세대는 반독재민주화 운동의 집단경험을, 20,30대는 촛불 집회·시위의 집단경험을, 그리고 6.2 지방선거를 통한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집단경험을 공유하고 있어요. 현재 50,60대가 공유하는 집단경험과는 전혀 다르죠. 유럽의 '68세대'가 나이가 들어서도 진보를 추구하면서 사회를 견인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20,30,40대도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말씀하신 것처럼 대안미디어가 이들을 계속 묶어줄 것으로 예상해요. -310쪽
조국 :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권력혐오증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인은 악마적 힘과 손잡는 사람"이라고 갈파한 바 있어요. 정치권력은 다름 아니라 악마적 힘입니다. 이 힘과 손을 잘못 잡으면 악마에게 내가 넘어가죠. 이 힘을 포기하면 반대 정파가 이 힘을 사용하여 나를 억누르죠. 그러나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능력이 정치인에게는 필요한 겁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에 능한 것을 넘어, 그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잘 다루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거죠. 진보·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권력 행사를 혐오하는 경향을 버려야 하며, 권력을 유능하게 행사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253~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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