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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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에 사는 사람은 그 누구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매 순간 정치행위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탈정치'를 말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정치행위이다. 경제, 문화, 예술 등은 정치만큼 똑같이 중요하지만 정치의 방향과 수준은 시민의 삶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명박 정권이 출현하자 그 이전 10년과는 다른 변화가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생각해보라. (조국)
-7~8쪽

오연호 :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는 정치인들이 바꾸는데, 우리 사회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정치인이 만든 틀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데, 시민들이 그들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게을리 하고 나아가 그들을 냉소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보는 셈이겠죠.

조국 : 현재 대중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일자리, 교육, 주택 문제 등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즉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성취하려면 정치가 제대로 서야 합니다. 제도를 바꿔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물론 아래로부터 운동이 일어나고 대중의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꼭지'는 정치가 따줘야 합니다. 어떠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가는 정치인이 결정합니다. (중략)
그렇다면 정치인들에게 그저 맡겨두면 될까요? 물론 아닙니다. 시민들이 풀뿌리 수준에서,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참여의식을 가지고 뛰어들지 않으면 정치인은 자신과 자기 정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게 됩니다. 정치인 개인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다는 거죠. 정치권 바깥에서 정치인과 정당에게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38~39쪽

조국 : (중략) 정치권력을 잡은 뒤 마음만 먹으면 경제권력을 분명히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중략)
창출된 부와 가치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어떤 우선순위에 따라 얼마만큼 어떤 절차에 따라 분배할 것인가는 정치가 결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바뀌면 그에 따라 경제권력이 바뀔 수 있는 거죠.
(중략) 문제는 정치를 책임지는 주체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 구체적인 세밀한 계획이 있는가입니다.
-54~55쪽

오연호 : (중략) 일자리 해법에서도 정의,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구체적 정책은 이후 더 많이 개발되어야겠지만, 먼저 일자리를 바라보는 철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어떤 경쟁이어야 하는가, 어떻게 놀아야 하는가, 어떤 임금이어야 하는가의 문제와 다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진보·개혁 진영이 재집권을 위해서는 "진보가 밥 먹여 주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밥을 더 인간다운 방식으로 먹게 해준다"고 답해야겠습니다.
-125쪽

조국 : 어느 사회나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자원을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경쟁하고 충돌합니다.
진보·개혁 진영은 이러한 욕망의 현주소와 흐름을 정확히 포착해야 합니다. 진보·개혁 진영 내부에 '이익의 정치'나 '욕망의 정치'를 '가치의 정치'와 대립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위험합니다. 교육, 일자리, 집, 의료 등에 대하여 대중이 어떠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아야죠.
그리고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 평등, 연대 등의 진보적 가치에 따라 욕망의 내용과 방향을 재설정해야 합니다. 법과 제도를 통하여 욕망이 자기 파괴적으로, 그리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에 가득한 불안을 제도적으로 감경해놓아야 합니다.
-135~136쪽

조국 : (중략) 그러나 지금 청년들이 완전히 시들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고, '이걸 어떡하지?' 하면서 고민하고 모색하는 단계 같아요. (중략) 우석훈 박사가 '88만원 세대'를 얘기하면서 논의가 촉발된 이후,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한다'는 청년들의 당사자 운동이 본격화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6.2 지방선거에서도 20대들이 투표참여 운동을 벌이면서 정치의 광장으로 나왔구요.(후략)

오연호 : 20대 청년들 스스로 자기 세대의 문제를 가지고 들고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시는 거죠?

조국 :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떤 정치 세력이든 이들의 요구에 답하지 못한다면 집권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178~179쪽

조국 : 여러 가지를 종합하면, 검찰은 삼성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삼성맨들은 자신들이 한국을 이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삼성이라는 조직과 그 수장을 위해 충성을 다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경제 외에도 정치와 사회 분야까지 삼성의 영향력을 넓히려 하고요. 요컨대, 저는 검찰을 검찰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236쪽

조국 : 그리고 진보·개혁 진영이 주의할 것은 복지가 진보·개혁 진영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비스마르크와 드골이 독일과 프랑스에서 복지국가의 기초를 놓았고, 골수 신자유주의 정당이던 스웨덴 보수당도 전격적으로 복지국가를 수용하며 집권했죠. 복지국가 모델은 사회민주주의의 비전과 투쟁의 산물이었지만, 이후 보수 진영도 이를 채택,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정책이건 먼저 주장했다고 해서 그 과실果實이 자기에게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예를 보더라도 무상급식 정책의 원조는 민주노동당이었지만,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그 과실은 민주당이 대거 가져갔죠
-294 쪽

조국 :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치인은 도덕철학자, 종교인, 지식인, 학자와는 다른 역할이 있죠. 일찍이 나폴레옹은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고 갈파했습니다. 대중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자신의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은 정치모리배라 불려 마땅합니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을 모두 갖추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큰 정치인'이 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295쪽

조국 : 베버의 말을 한 번 더 빌려 말하자면,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대중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꾼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정치인도 인간으로서 모든 한계를 다 가지고 있죠. 단점은 비판해야겠지만 그 사람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끌어내려 패대기쳐서너는 안 됩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키워줘야 합니다. 좋은 정치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좋은 지도자도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295쪽

조국 : 진보·개혁 진영이 네티즌과 공동 작업으로 진보·개혁 진영의 '드림팀'을 뽑아보는 겁니다. 현재의 당 소속과 상관없이 집권을 전제로 한 정부 구성을 해보는 겁니다. 당 중심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말이죠. 예컨대, 대통령으로 ○○○, 국무총리로 ○○○, 장관으로 ○○○, 대법원장으로 ○○○, 헌법재판소장으로 ○○○ 등을 뽑아보자는 거죠. 각 자리마다 3배수 정도로 뽑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종의 '놀이'일 수도 있는데, 이런 모습이 그려져야 새로운 정부에 대한 감도 빨리 오지 않겠어요?
-296쪽

조국 : 그런데 386세대는 반독재민주화 운동의 집단경험을, 20,30대는 촛불 집회·시위의 집단경험을, 그리고 6.2 지방선거를 통한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집단경험을 공유하고 있어요. 현재 50,60대가 공유하는 집단경험과는 전혀 다르죠. 유럽의 '68세대'가 나이가 들어서도 진보를 추구하면서 사회를 견인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20,30,40대도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말씀하신 것처럼 대안미디어가 이들을 계속 묶어줄 것으로 예상해요.
-310쪽

조국 :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권력혐오증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인은 악마적 힘과 손잡는 사람"이라고 갈파한 바 있어요. 정치권력은 다름 아니라 악마적 힘입니다. 이 힘과 손을 잘못 잡으면 악마에게 내가 넘어가죠. 이 힘을 포기하면 반대 정파가 이 힘을 사용하여 나를 억누르죠. 그러나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능력이 정치인에게는 필요한 겁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에 능한 것을 넘어, 그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잘 다루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거죠. 진보·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권력 행사를 혐오하는 경향을 버려야 하며, 권력을 유능하게 행사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253~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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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now 2011-02-09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p.61~62에서
미셸 푸코가 TV토론회 사회자의 질문에 유머러스하게 답변한 발언을 인용.


마녀고양이 2011-02-0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구, 권력 혐오증에서 벗어나자... 이거 딱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목도 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아아,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조급증이... ^^

herenow 2011-02-10 00:13   좋아요 0 | URL
앞의 댓글도 그렇고, 마녀고양이님은 벌써 결론(?)을 알고 계시는듯... ^ ^
시사주간지 읽듯 설렁설렁 잘 읽어보실 것 같아요.


cyrus 2011-02-09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정치의 발견>이라는 책의 저자도 조국 교수의 말처럼 막스 베버의 저 말을
인용하면서 진보 진영에도 권력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더군요.

herenow 2011-02-10 00:30   좋아요 0 | URL
오, 그래요? '정치' 관련해서 꽤 유명한 말인가 보군요. ㅋㅋ
벌써 <정치의 발견>도 보셨나요? 어떻던가요?
신간평가단 추천도서용 리스트에 넣어두긴 했는데 아직 확인을 못해봤답니다.
(아, 이번달에도 20권 넘는 책이... 어느 걸 골라야할지... ㅠ.ㅠ)
괜찮은 책이면 아마 시루스님이 Top 5로 추천하시겠죠?
아니면 리뷰라도... ^-^ (오호.. 간접독서~)

cyrus 2011-02-10 23:09   좋아요 0 | URL
좋은 내용인거 같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안 좋게 보실 수 있는,,
저에게는 참으로 애매한 내용인거 같아요. 제가 정치에 대해서
깊이 있는 식견을 가지지 못해서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읽었어요^^;;
 
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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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몸으로 말야, 직접 체험해 보고,
그 중에서 자신이 느낀 것과 생각한 것,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잖아?
그런 것들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을 존경해. 신용도 하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척이나 하는,
타인이 만든 것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기만 하는 인간일수록
잘난 척만 하지.
-124쪽

난 말야, 타인에게 죽여 달라고 하고는
죽이는 법에 불평하는
그런 인생 보내기가 싫어졌어.
여길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코모리 사람들...그리고 부모님도 존경할 수 있게 됐어.
내용이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오셨구나 라고.
-127쪽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집중해.
다치기 쉬우니까.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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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강 회복 기념 선물
    from 제발 제발 2010-12-11 20:33 
                  서재 이웃 herenow님 선물, 리틀 포레스트1,2  수술하고 45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수술 자리가 남의 살 같은 느낌이라 저는 병원에서 보낸 9일을 매일 기억합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한테는 이미 멀고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이번에 서재 이웃 herenow님께서, 수술 회복 기념으로 이 책을 선물
  2. 만화책입니다. 요리책이구요, 에~ 또~ 귀농일기? 전원일기? 그 중간 어디쯤.
    from 제발 제발 2010-12-13 17:22 
    작가도 몰랐어요. 출판사도 그닥 유명하지 않아요. 처음 보는 표지라 신간 서적인줄 알았어요. 심지어,  만화책이라는 것도 책을 받고 알았어요. (저는 밑그림같은 만화, 단순하지 않고 이렇게 수채화 밑그림 같은, '만화'라는 느낌보다 '스케치'같은 이런 만화책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책엔 그런 만화 취향이 문제가 안될 정도로 저를 확- 끌어당기는 한 방이 있어요.)  이웃(herenow) 서재에 놀
 
 
잘잘라 2010-12-0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무조건 사서 봐야겠어요.
밑줄만 그어놓은 리뷰가 이렇게 강렬할수가!!!

2010-12-07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8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9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3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6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링크 - 첫 2초의 힘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무열 옮김, 황상민 감수 / 21세기북스 / 2005년 11월
구판절판


우리가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기와 첫인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알아낸 것이 가끔은 몇 달 동안 연구한 결과보다 나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신속한 인식이 우리를 빗나가게 하는 상황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해야만 한다.-116쪽

단숨에 결론까지 도약하는 뇌의 영역을 적응 무의식adaptive unconscious영역이라 하는데 최근 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한 연구를 중요한 분야로 여긴다. 하지만 이 적응 무의식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묘사한 무의식, 즉 너무 큰 혼돈에 휩싸여 있어 의식적으로 사고하기 힘든, 욕망과 기억과 환상으로 가득한 음침한 영역하고는 다르다. 오히려 적응 무의식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데 필요한 많은 데이터를 신속하고 조용하게 처리하는 일종의 거대한 컴퓨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 인간이 오랫동안 종족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극소량의 정보를 토대로 매우 민첩하게 판단할 수 있는 별도의 의사결정 장치를 발달시킨 덕분이다.-35쪽

실제로 심리학자 낼리니 앰버디는 학생들에게 교수 한 명당 10초 분량의 비디오 세 편을 음을 소거한 채 보여주었는데 이것만으로도 학생들이 교수의 자질에 등급을 매기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뒷부분을 잘라 각 5초 분량의 비디오를 만들어 보여주었을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딱 2초 분량을 보여주었을 때조차 평가는 거의 일치했다. 그 후 앰버디는 교수에 대해 순간적인 판단을 내린 학생들의 의견과 한 학기 수업을 모두 마친 학생들의 평가서를 비교하고 두 평가 모두 해당 교수의 자질에 대해 본질적으로 의견이 같음을 발견했다. 교수를 전혀 만난 적 없는 학생이 2초짜리 소리없는 비디오를 보고 내린 결론이 한 학기 내내 강의를 수강한 학생이 내린 결론과 유사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적응 무의식의 힘이다.-36쪽

우리의 무의식은 강력하다. 그러나 오류에 빠지기도 쉽다. 우리 몸속의 컴퓨터도 늘 찬란한 빛으로 어떤 사태의 '진실'을 그때 그때 곧바로 해독해낼 수는 없다. 보통 컴퓨터들처럼 시스템이 엉킬 수도, 빗나갈 수도, 고장날 수도 있다. 우리의 본능적 반응은 종종 온갖 종류의 흥미와 정서, 감정과 경합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언제 본능을 믿고, 언제 경계해야 할까? (……) 신속한 인식 능력이 엇나갈 경우 특정 집합의 이성도 일관되게 엇나간다. 우리는 그 엇나간 이성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몸속의 강력한 컴퓨터에 언제 귀를 귀울이고 언제 경계해야 하는지 터득하는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책의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임무는 순간적 판단과 첫인상을 교육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 그런 종류의 신비한 반응을 관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 가능하다. 스스로 논리적으로 심사숙고하라고 가르치는 일이 가능하듯이, 스스로 순간적인 판단 능력을 키우고 가르치는 일도 가능하다.-39쪽

고트먼은 우리에게 '얇게 조각내기thin-slicing'로 알려진 신속한 인식의 매우 중요한 부분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얇게 조각내기'란, 매우 얇은 경험의 조각들을 토대로 상황과 행동의 패턴을 찾아내는 우리 무의식의 능력을 말한다. (……) '얇게 조각내기'는 무의식을 눈부시게 만드는 빛들 중 하나다. 그리고 신속한 인식에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복잡한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일이 가능할까? 그렇다. (……) 결과적으로 고트먼이 한 작업은 우리에게 '얇게 조각내기'의 방법과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50쪽

인간 활동의 중요한 부분에는-모스 부호 메시지를 두드리는 단순한 행위든, 누군가와 결혼을 하는 복잡한 행위든-독특하면서도 변함없는 패턴이 있다. 모스 부호의 오퍼레이터를 추적하듯 이혼을 예측하는 일도 일종의 패턴 인식pattern recognition이다.-57쪽

일단 그는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하지만 고트먼은 훨씬 선택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4명의 기수Four Horsemen'라고 칭한 것들, 즉 방어 자세, 의도적 회피, 냉소, 경멸에만 초점을 맞춰도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경멸이었다. 고트먼은 부부 중 어느 한쪽 또는 둘 다 상대에게 경멸의 감정을 보일 경우, 결혼생활에 가장 중요한 적신호로 받아들였다.-60쪽

이보다 파괴적인 건 우월한 위치에서 말하는 경우입니다. 경멸이란 보다 높은 곳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냉소라고 볼 수 있죠. 그것은 모욕일 경우가 많습니다. (……) 그것은 상대를 나보다 낮은 위치에 두려는 행동입니다. 위계를 두는 말인 거지요.-61쪽

내 생각에 무의식은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 대뜸 결정을 내리거나 퍼뜩 육감을 느낄 때, 무의식은 존 고트먼이 하고 있는 일을 알아서 행한다. 정말 중요한 것에 관심을 집중하는 사이에 우리의 무의식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세밀하게 살펴 관계없는 것들은 몽땅 걸러낸다. 무의식은 이 일에 정말 능숙하다. '얇게 조각내기'가 신중한 사고방식보다 더 나은 답을 내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62쪽

외과의사의 목소리에서 우월감이 느껴진다고 판단될 경우, 그 의사는 고소당하는 그룹에 속할 가능성이 컸다. 반면 목소리에 우월감이 적고 근심이 더 배어 있을 경우에는 고소당하지 않는 그룹에 속할 가능성이 컸다. 그보다 더 얇은 조각이 있을 수 있을까?
의료사고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문제처럼 들린다. 그러나 결국 문제의 핵심이 존중심으로 귀결되고, 그 존중심이 소통되는 가장 단순한 방식은 목소리의 음조를 통해서며, 의사가 낼 수 있는 최악의 음조는 우월감이 밴 음조다.-72쪽

순간적인 판단은 굉장히 빠르다. 경험의 매우 얇은 조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무의식적이다. 아이오와의 도박실험에서 노름꾼들은 스스로 빨간 카드 더미를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훨씬 전에 이미 위험한 빨간 더미를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식하기 시작한 뇌가 상황을 파악하기까지는 무려 70장의 카드가 더 필요했다.-83쪽

절반한테는 사전에 5분이라는 시간을 줘서 '내가 교수가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적으라고 했다. 그 학생들은 문제의 55.6퍼센트를 맞혔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그냥 앉아서 축구 훌리건을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그들은 '시시한 추적' 문제의 42.6퍼센트를 맞혔다. 그렇다고 '교수' 집단이 '축구 훌리건' 집단보다 아는 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더 총명하거나 더 집중력이 뛰어나거나 더 진지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총명한' 기분을 느꼈고, 스스로 그 총명한 무언가와 결부시킴으로써-'시시한' 문제가 나간 바로 그 긴장된 순간에-문제들을 훨씬 쉽게 생각해 불쑥 정답을 내뱉았다. 여기서 55.6퍼센트와 42.6퍼센트의 차이는 굉장하다.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차이일 수도 있다.-91쪽

확실히 이 실험 결과는 매우 큰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 착각이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자동조종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셈이다.-93쪽

이처럼 의식 바깥에서 벌어지는 잘못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답은 우리가 첫인상 앞에서 무조건 속수무책인 건 아니라는데 있다. 무의식에서-우리 뇌 속의 잠긴 문 저편에서-첫인상이 솟아날 수는 있다. 하지만 뭔가가 의식 바깥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제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종 IAT나 직업 IAT는 반복하며 노력해도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다. 그러나 믿건 안 믿건 IAT를 하기 전에 마틴 루터 킹이나 넬슨 만델라나 콜린 파월 같은 이들의 사진이나 기사를 훑어보면 반응 시간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
www.implicit.harvard.edu-138쪽

첫인상은 경험과 환경에서 생성된다. 그 인상을 형성하는 경험들을 변화시킴으로써 첫인상을 바꿀 수 있다는-얇게 조각내어 관찰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뜻이다.-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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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말솜씨 - 우아한 설득에서 치명적 유혹까지
로만 브라운 지음, 이미옥 옮김 / 흐름출판 / 2009년 4월
절판


최면상태란 '실재를 한정적으로 인지'하는 것을 뜻한다.-43쪽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만프레드 침머먼 교수에 따르면, 우리의 오감으로부터 중추신경계로 흘러 들어가는 정보는 초당 1,100만 바이트다. 우리의 눈은 초당 1,000만 바이트의 신호를 뇌로 보내며, 피부는 100만, 귀는 10만, 혀는 약 1,000바이트를 보낸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적인 이성은 초당 최고 40바이트를 작업할 수 있다. 이용할 수 있는 정보의 크기가 축구장일 때 고작 우표 한 장 만큼만 의식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인지하는 양은 이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니 거의 온종일 최면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이상한 게 아니라 좋은 상태다.-43쪽

우리는 지속적으로 최면상태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주의력은 늘 어떤 것에 집중해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어떤 것이나 혹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에.-44쪽

그렇다면 상대를 최면상태에 빠질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아가 청중을 최면상태로 빠뜨리려면? 유감스럽지만 질문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그건 아니다. 청중의 최면상태로 올라가서 그것을 인도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니까.-45쪽

'감정'은 사람이 극단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인류의 역사는 모두 감정의 역사다.-21쪽

독일의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헬마 나르는 "화술이란 객관적인 정보라는 마스크를 쓰고 감정에 호소한다"고 말했다.-21쪽

만약 당신이 화술로 성공하고 싶다면, 필수적으로 감정적인 논증을 전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아래의 사항에 관해 다룬다.
◆ 감정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 어떤 내용과 형식의 이야기가 청중의 감정에 특히 효과가 있는가?
◆ 성공적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22쪽

1996년 미국의 한 잡지사에서 "누가 천국에 가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테레사 수녀가 91퍼센트라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가 80퍼센트로 뒤를 이었고,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 72퍼센트, 힐러리 클린턴이 55퍼센트, 빌 클린턴이 45퍼센트, 그리고 O.J.심슨이 22퍼센트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테레사 수녀보다 더 많은 퍼센트로 1위를 차지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응답자 자신이라는 점이다. 즉, 대개의 미국인들은 테레사 수녀보다 자기가 천국에 갈 가치가 더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결과에서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은 자신의 좋은 의도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좋은 의도를 참으로 서툴게 쓸 때가 많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
만일 우리가 우리 행동의 배후를 보고 거기에서 좋은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청중에게 알려준다면, 우리는 연설가로서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는 셈이 된다.-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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