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 C.W.쎄람의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 역사 이야기
C. W. 세람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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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큰아이가 5살쯤이었다. 박물관 강좌를 듣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 자신이 자꾸 도태되는 느낌에 무작정 신청했었다. 일찌감치 강의 장소인 강당에 앉아 있으려니 가슴은 쿵쾅쿵쾅...저혼자 열심히 뜀박질 했다. 강의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내 잠만 자는 거 아닐까, 듣는 사람이 많이 없으면 어떡하지...별의별걸 다 걱정하는 사이 사람들이 모여들고 강의가 시작됐다.







그날 나는 세 번 놀랐다. 하나, 강의 들으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린 노인들이었는데 둘, 강의 내용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셋,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를 능가하는 열정으로 목울대를 울리며 혹은 장난치듯 유머러스하게 두 시간 가량 강의하셨다. 그리고 역사와 고고학에 일자무식, 문외한인 내 가슴에 작지만 뜨거운 불을 붙이셨다.







고고학...이라 하면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쓴 사람이 맨날 무덤이나 땅만 파는 지겹고 고리타분한 학문이라고 여겼던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졌다. 오히려 고고학이란 하나의 유물이나 유적으로 과거의 삶과 생활을 상상력과 끈기로 되살려내는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자줏빛 표지의 책,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을 손에 쥐었을 때 가슴이 한참이나 콩콩거렸다.







두툼한 양장본이 무척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이 책은 ‘신비의 고대세계를 비추는 빛’, ‘영원불멸의 존재를 위하여’, ‘꿈을 캐는 모험가들’, ‘미지의 세계’.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또 그 각각의 장에 따라 다시 세부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1485년 4월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서 인부들이 석관 하나를 발굴했다.’로 시작한 1장에서  고고학의 탄생과 비롯해 도매상인이던 하인리히 슐리만이 ‘고고학에 평생을 바치기 위해’  파리에 정착해 발굴가 슐리만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2장은 이집트의 스핑크스에서부터 지금까지 발견된 수많은 미라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 유명한 투탕카멘의 발굴에 얽힌 일화에서 고고학은 발굴자의 운만큼 시간과 경제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3장에선 설형문자의 해독함에 있어 제기되어 오던 문제 읽는 방향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전혀 차이점이 없어 보이는 그 글들이 오른쪽->왼쪽이냐, 왼쪽->오른쪽이냐에 그렇게 수많은 논란이 거듭되어 왔다니...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4장엔 평소 가장 궁금했던 멕스코의 유물과 유적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중앙아메리카에도 이집트와 유사한 피라미드가 있는데 그것 역시 무덤으로 쓰였을지...추측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다. 하지만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하기엔 다소 내용이나 자료가 부족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본문 중에 ‘중앙아메리카의 밀림에는 우리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신비가 숨어 있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머지않은 미래에 숨겨진 신비가 벗겨지리라 기대해본다.







처음 책을 휘리릭 넘겨볼땐 본문에 수록된 사진이 중간의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흑백사진이라 다소 실망했다. 흑백사진으로 유물이나 유적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을까...했는데 책을 읽어가면서 흑백사진이라 여겼던 것 중 대부분이 그림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순간 어찌나 놀랐는지...카메라가 발명되지 않은 시점이니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는 일이 당연한데도  그 꼼꼼하고 섬세한 그림들에서 고고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자가 없는 시대의 인간의 생활과 역사를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학문 고고학. 고고학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인류의 기원과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이면엔 조금만 들춰보면 우리는 고고학의 어두운 측면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유물이나 유적과 관련해 항상 대두되는 문제, 원형에서 한참 벗어난 복원이라든가 도굴, 지배인에 의한 약탈은 책을 읽는 내내 무척 불편했다.







실제로 박물관 강좌에서 어느 교수님께선 이런 말씀도 하셨다. ‘발굴하기 위해 무덤 속에 들어갔더니 도굴꾼이 다녀가셨는지 @@라면봉지에서부터 나무젓가락, ##파이봉지까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고. 또 ‘일제시대때 일본 사학자가 하나의 무덤에서 꺼내간 유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수레로 몇 십번을 반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유물이 다 어디로 갔겠어요?’하고 반문하셨던 기억이 난다. 안타까움을 넘어 치가 떨리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아주 놀라운 기사를 접했다. 이집트와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고대이집트의 스핑크스 석상을 비롯한 새로운 유물들을 발굴했는데 그 주인이 다름아닌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텝 3세의 부인이자 이집트 여왕인 티위라는 거였다. 인터넷으로 그 짧막한 기사를 읽으면서 무척 설레었다. 언제쯤이면 이번 발굴에 얽힌 일화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될까. 그 전에 이 역사적인 고고학의 현장에 내 발을 디딜 수 있을까.







“상상력은 시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테오도르 몸젠. - 333쪽.









<아래사진> 최근 발견된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텝 3세의 부인이자 이집트 여왕인 티위의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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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평화를 짝사랑하다 - 붓으로 칼과 맞선 500년 조선전쟁사 KODEF 한국 전쟁사 1
장학근 지음 / 플래닛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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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이었다. 한 대형서점에서 주최하는 작가토론회에 참석했다. 조금 늦었는지 도착했을 땐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의견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일단 눈에 띄는 빈자리에 앉았다. 그때 들려온 작가의 충격적인 말 한마디. “전 조선시대때, 아니 임진왜란때 우리나라가 망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나라가 망했어야 한다니...왜, 이유가 뭔데?...순간 어리둥절해하는 참석자들에게 작가는 뒤를 이어 얘기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었는지, 문(文)은 무(武)를 업신여겼으며, 강한 자는 약한 자들을 누르고 억압하는 사회였다. 하지만 이런 점을 모르고 무조건 우리는 잘못없다, 피해자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잘못된 점은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내게 작가의 그 말은 당시 토론내용보다 몇 배나 더 인상적이었다. 깊게 남았다.




‘우리는 잘못없다. 피해자다’...는 얘긴 학창시절부터 수없이 들었던 얘기다. ‘평화를 사랑했기에 다른 나라를 단 한 번도 침략한 적이 없는, 순수한 백의민족’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나라....하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그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평화를 사랑한 게 아니라 그저 ‘오늘도 무사히’...정도의 수준이랄까.




‘붓으로 칼과 맞선 500년 조선전쟁사’란 부제가 붙은 <조선, 평화를 짝사랑하다> 이 책은 조선의 5백년 역사 중에 일어난 크고 작은 전쟁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1392년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가 조선의 태조로 즉위하기까지의 과정, 흔히 말하는 ‘위화도 회군’의 배경과 과정에서부터 시작한 이 책은 조선의 전쟁사를 ‘영토개척 전쟁’ ‘동아시아 삼국전쟁’ ‘외교의 실패가 부른 전쟁’ ‘ 제국주의 열강과의 전쟁’...크게 네 부분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마도정벌에서부터 세종의 여진정벌.북진정책이라든가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등을 전쟁전후 당시 국내외의 상황이 어떠했으며 전쟁발발 후 조선의 대응방식과 전개양상, 전후 복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배경, 문제점, 나아가 조선사회에 미친 영향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짚어서 서술해놓았다.




그 중엔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웠던 부분도 있었지만 처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학교에서 미처 배우지 못했던 역사...라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 듯하다. 내가 알고 있는 무수히 많은 전쟁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용감한 장군들은 500년 조선전쟁사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실리보다 명분과 의리를 중히 여겼던 나라, 스스로 힘을 길러 나라를 지키려고 하기보다 다른 나라에 의지하고 그 힘을 빌리려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지닌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은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왜 미리 준비하지 못했을까. 당파싸움에 열을 올리지 말고 나라를 굳건히 하고 이웃 주변국의 정세가 어떠한지에 관심을 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랬다면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더라도 능히 조선을 지켜낼 수 있었을텐데...그랬다면 조선의 왕자와 대신들이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는 치욕을 겪지는 않았을텐데....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에 관해 전쟁의 전술과 무기를 얘기하고 있는 책, <조선, 평화를 짝사랑하다>. 이 책을 읽어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내용도 다소 어려웠고 “왜?”하는 의문이 수시로 떠올라 마음이 힘겨웠다.




우리는 영화와 소설로 전쟁을 만난다. 그 간접 경험을 통해서 전쟁이 얼마나 잔인하고 파괴적인가...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핵심,  전쟁은 왜 일어나는지, 전쟁이 일어나게 된 가장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다시 한번 표지를 보니 <부산진 순절도>의 일부가 보인다. 굳게 닫힌 성문 밖엔 이미 일본군이 엄청난 수의 배와 군대가 몇 겹으로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조선군의 수는 형편없이 빈약해 보인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지금도 짝사랑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과거를 반성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역사는 조금씩 더 건강해진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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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한국사 상식 44가지의 오류, 그 원인을 파헤친다!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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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常識, common sense)이란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 ·이해력 ·판단력 및 사려분별. 깊은 고찰을 하지 않고서도 극히 자명하며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라고 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껏 상식으로 알고 왔던 것들이 왜곡되고 잘못된 지식이었다면? 더구나 그것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한 것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몇 년전에 <한국사 뒷이야기> <세계사 뒷이야기>를 흥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다닐때만 해도 국사, 역사는 따분하고 외울 것 투성이었는데 그것을 확 바꿔버릴 만큼 무척 재미있게 서술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역사가 이렇게 재밌는 것이구나...다시 한번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 박은봉 저자의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읽으면서 또 어떤 놀라운 사실들을 내 앞에 펼쳐놓을까...내심 기대가 컸다. 차례를 보니 어원, 인물, 유물.유적, 책.문헌.사진, 정치.사회.생활에 관한 잘못된 상식으로 나눠서 모두 44가지를 소개해놓았다.




고려장은 고려시대의 장례풍습이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행주대첩에서 행주치마란 말이 나온 게 아니라 각자 따로 존재했다는 것,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에 관련한 된 사실, 홍길동은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이라는 것, 포석정은 왕의 놀이터가 아니라 제사의 장소였다는 것, 태극기의 여러 모양, 베트남 파병에 관한 진실...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때까지 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잘못된 지식이라니...모두 하나같이 “어, 설~마? 이게 잘못된 거라고?” “아~니, 이럴수가!”...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한 나라를 식민지화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이 그 나라의 유적, 유물을 발굴하여 빼돌리는 것을 시작으로 역사를 뒤집고 비틀어놓는 것인데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철저하고 계획적으로 우리 역사를 조작했는데 그 때의 식민사학이 지금까지도 수정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산골짜기를 흐르는 물줄기가 모이고 모여 큰 강이 되고 그 강이 바다로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역사도 미래와 맞닿아있다....고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역사를 공부하는 건 학창시절로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계속 되어야할 숙제이자 과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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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
기획회의 편집부 엮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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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뒤늦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아니,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줄곧 알았던 사실을 이제야 인정하게 됐다. 내가 유혹에 약하다는 사실...그런데 문제는 내가 유혹을 느끼는 대상이다. 대한민국 원조 꽃미남 장동건이나 달콤한 미소와 조각같은 외모로 모든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다니엘 헤니, 터프하면서 다정다감한 공유...가 아니라 평균무게 1킬로그램 정도의 사각형 물체...책이다.




책의 유혹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거기다 지름신이 거들기라도 하면 가계부엔 커다란 구멍이 뚫리기 일쑤다. 책 읽는 속도가 구입하는 속도를 도무지 따라잡을 기색이 없음에도 나는 부지런히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고 마우스를 클릭한다.




내게 있어 책이란 무엇인가. 잠깐의 외출에도 책을 챙기고 아무리 피곤해도 잠자기 전엔 책을 읽어야 직성이 풀리면서도 책이란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이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북페뎀 - 어린이책>이었고 이번에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를 읽었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의 출판사에서 기획이나 편집, 영업을 담당한 30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인데 예전에 읽었던 <북페뎀>과 함께 지금까지 몰랐던 책의 세계를 구경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될 수 있으면 많이, 속에 담긴 깊은 의미까지 읽어내길 언제나 원하면서도 그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콸콸 나오는 게 당연하듯 책 역시 그러하리라...여겼던 게 아닐까.




이 땅의 모든 어머니가 산고의 고통을 치르듯 이 땅의 모든 출판인들이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까지 산고의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30명의 출판인이 풀어놓은 30가지 얘기들...그 속엔 숱한 회의와 매일같이 반복되는 밤샘작업, 지방출장, 책 판매량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한 홍보와 영업전략...을 거치는 일련의 과정이 직접 담당했던 이가 들려주는 것이어선지 흥미진진하고 생생하게 담겨있다. 마치 직장선배나 동료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서로 어려움을 털어놓고 격려해주는 자리에 초대를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행복한 중독에 빠진, 책 만드는 사람들.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사람들. 가장 인간적인 향기가 나는 사람들. 그러고보면 난 아직 덜 미쳤다. 아직 미완의 광기에 놓여 있지만, 사뭇 변하는 나 자신을 실감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알 듯하다. 책이 얼마나 지독한 중독성이 있는지를. - 282쪽.




그들의 얘기 속에 내게 특별한 책이 나오면 뛸듯이 반가웠고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책,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외면을 받은 것이 속상했으며 몇 년 전 논란이 됐었던 베스트셀러 조작사건은 우리 출판계의 현실이 이 정도인가....싶어 안타까웠다.




돈을 벌려면 출판계를 떠나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으면서도 책을 사랑하고 책 만드는 일이 즐거우며 무엇보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기에 출판계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빛나는 외모도 독특한 개성도 특별한 재능도 없는,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나지만 그래도 오늘의 나를 키워준 건 8할이 책이었다고.




세상에 사람을 가르는 수만 가지 기준이 있듯이 책을 나누는 기준도 수천 가지다. 잘 팔려서 회사에 서점에 도움을 주는 책과 안 팔려서 폐기목록에 오르는 책도 있고, 꼭 출판해야 하는 책과 내지 않아도 될 책이 있다. 사람에게 양심이 되는 책과 독이 되는 책. 영업인이기에 앞서 출판계 종사자로서 혹시 불량과자를 과대포장해서 팔지는 않은지, 정말 좋은 양식을 무능과 게으름 때문에 팔지 못하고 유통기한을 넘기지는 않은지, 판매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는 마음이다. -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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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 버락 오바마 자서전
버락 H. 오바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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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그의 이름을 처음 본 것은 어느 인터넷 서점의 신간안내 코너에서였다. 참 특이한 이름이네...생각하고는 곧 잊혀졌다. 텔레비전이 장식용으로 둔갑한지 오래된지라 그의 이름을 다시 접할 기회도 없었다. 인터넷으로 뉴스나 신문기사를 꼼꼼하게 챙겨봤더라면 그와의 만남이 조금이나마 앞당겨졌겠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매사에 둔하고 게으른 내가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금세 알 수 있었을텐데...




이 책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랜덤하우스>은 현재 미국 대선 예비후보인 버락 오바마의 자서전이다. 하지만 이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가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인 아버지와 미국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 출생한 아프리카계 혼혈 미국인이라는 것.




지금까지 미국에서 대통령으로 흑인이 당선된 적은 없다. 영화를 제외하면. 하지만 그 몇 편의 영화 속에서 흑인대통령의 역할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어 보인다. 전세계가 위기에 빠진 재난 상황에서 침착하게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든든한 대통령의 모습보다 당황하고 때로 코믹하게 묘사되어 있다. 백인대통령이 우주선이나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면서 지구를 위협하는 존재를 물리치는 영웅으로 그려지는데 비하면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그래서 초반에 이 책을 읽을때 버락 오바마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한반면 미국이 또 무슨 쇼를 벌이려고 하는 걸까...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록 의혹을 가졌던 처음과 달리 그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7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두께의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뿌리’에서는 외조부와 외조모를 비롯한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가 재혼한 인도네시아 출신인 의붓아버지 등 가족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버락의 부모님이 결혼할 당시의 1960년대 미국은 흑백의 결혼을 죄악으로 여겼다는 것과 그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외조부와 외조모를 비롯한 어머니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워줬으며 케냐에 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남자와 재혼을 하면서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생활하게 되는데 이 때의 경험이 그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듯하다.




2부 ‘시카고’편에서는 버락이 본격적으로 조직사업에 뛰어들면서의 생활이 다뤄지고 있다. 자신의 몸 속에 절반을 차지하고 흐르는 흑인의 피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이른바 흑인형제들을 끌어안고 빈민가에서 보잘것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버락의 노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조직사업의 내용이나 그 진행절차를 너무 상세하게 표현한 점도 있어 다소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마지막 3부 ‘케냐’는 한마디로 ‘버락의 정체성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나라 케냐를 찾아가 머물면서 그 곳에서 체험하고 느꼈던 것들이 펼쳐져있는데 그 내용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해피엔딩을 찾아가는 버락의 결혼...




내게 그의 책이 이 책이 처음이지만 읽을수록 느껴지는 것은 그의 문장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흑인과 백인, 그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어서 방황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심리묘사가 마치 소설처럼 리드미컬하게 읽혀졌다. 아, 그러고보니 그는 ‘하버드’란 학술지의 흑인최초 편집장을 했으니 그의 문장력이나 상황을 판단하는 통찰력 같은 게 어찌보면 당연한건가?




이 책을 읽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수많은 사진과 기사들이 쏟아졌다.




‘젊은 세대가 가장 지지하는 정치인, 공화당원이 가장 좋아하는 진보주의자, 백인보다 더 백인 같은 흑인….’




‘젊은 케네디’라 불리는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선거 예비후보 버락 오바마(46)에게 붙어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그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는 누구보다 준비된 대통령 후보인 퍼스트레이디 출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까지 위협할 정도다.




그가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었단 말인가.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와 경쟁할 정도로...정치에 무관심 하다못해 무지하다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온전한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고뇌하고 방황하는 속에서도 굳건한 의지와 목표의식이 존경스러웠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가 된다.




정체성을 둘러싼 내 고민의 시작은 인종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은 거기가 아니었다. - 204쪽.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간혹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번역이 잘못된 건 아닐까...싶다. 또 오자도 눈에 띄었다.




161쪽 10째줄 “...그 결정은 그들이 내리는 것이지 리는 것이 아니다” --> “...것이지 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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