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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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쳤어, 미쳤어.” 요즘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일간지에 아파트 시세표가 실리는 날엔 수위가 좀 더 높아진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10년이 넘은 아파트가 어떻게 평당 천만 원이 넘냐고!!” “미쳤어, 미쳤어. 아파트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거야.”




어릴 때 잠깐 아파트에 산 걸 제외하면 결혼하기 전까지 줄곧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지금까지 줄곧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는데 올해로 10년이 넘었다. 신혼일 때나 아이가 한명일 땐 몰랐는데 아이가 두 명이 되니 집이 예전보다 좁게 느껴졌다. 좀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지만 터무니없이 오른 아파트값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내면서 집, 특히 아파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아파트에 미치다>란 책을 손에 잡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피사의 사탑 모양 삐딱한 아파트의 이미지에 붉은 글씨로 ‘미치다’라고 적힌 표지의 이 책을 보는 순간 ‘그래 대체 아파트가 뭐길래!’ ‘아파트에서 안 살면 어디가 덧나나?’하는 생각에 불이 붙었다.




책은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집이란 무엇이며 왜 집이 중요한지로 말문을 연 저자는 아파트란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의 대표적 경관이 산이었는데 그 산이 모두 아파트에 자리를 내어줄 정도로 대한민국엔 아파트천지가 되어 ‘논두렁/밭두렁 아파트’도 생겨나고 있다면서 외국에선 서민들이 주거하는 걸로 인식된 아파트가 왜 유독 한국에서 지역을 막론하고 크게 확산되고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살기를 바라는지, 거기엔 어떤 배경이 있는지 등의 문제를 제시하고 살펴본다. 아파트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하기 시작한다. 아파트의 무엇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파트를 선호하고 열광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서구의 거주 양식인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선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파트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우리의  아파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것들을 사회현상과 연관지어 조목조목 설명해놓고 있다.




‘현대 한국의 주거사회학’이란 학술지 분위기의 부제 때문에 처음엔 책의 내용도 딱딱하고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아쉬움이 남았다. 좀 더 좋은 동네, 되도록 넓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과 문화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 대안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의문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파트에 미치다>란 제목만을 보고 내가 이 책에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책 제목의 ‘미치다’는 여기서 두 가지 의미로 쓰인 게 아닌가 싶다. ‘미치다’에는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거나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와 ‘공간적 거리나 수준 따위가 일정한 선에 닿다.’ ‘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 책에선 후자에 더 비중을 둔 건 아니었을까.




큰아이는 간혹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데 우리 집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첫마디는 “어, 집이 작네?”하는 거다. 실패한 신시가지라고 평가받는 동네지만 그 속에서도 아파트의 크기에 대한 기준은 존재했고 냉혹했다. 어느 아파트 몇 동에 사는 것만으로도 그 집의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나다니. 미처 생각지 못했다. 여고동창회에서 누구는 아파트 분양 받고 팔아서 몇 천을 벌었다더라 하는 말이 나돌아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얼마전까지는. 그저 누구에게 빚을 내서 살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는 왜 좁은 집에서 사느냐, 넓은 집으로 이사가면 안되냐는  아이의 말에.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낯선 곳에서 생활할 용기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외지로 나가고 싶다. 거실에서 조금이라도 뛰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눈초리를 치켜뜨고 주의를 주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맘껏 뛰어놀게 하고 싶다. 작지만 마당이 있어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개를 키우며 살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런 내게 있어 지금의 아파트는 그야말로 머리에 꽃을 꽂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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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세상이다 - 청소년과 가정을 위한 지식사전
피에르 제르마 지음, 최현주 옮김 / 하늘연못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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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이를 키우다보면 난처할 경우를 때가 많다.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툭툭 던지는 질문들.  내가 아는 거라 대답해줄 수 있으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그럼 아이는 몹시 실망한 표정으로 말한다. “엄만, 왜 이것도 몰라?”. 엄만 천재도, 만물박사도 아니라  모르는 거 많다고, 그래서 열심히 책도 보고 계속 공부하는 거라고 말하지만 아이의 머릿속엔 이미 ‘피...엄만, 아는 게 없어’란 인식이 박힌 상태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에게 ‘세상을 다 가져라’고 말하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인데, 그걸 몰라주니 나 역시 섭섭하다.




‘청소년과 가정을 위한 지식사전’ <이것이 세상이다>. 이 책엔 제목 그대로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내 손안의 지식사전’이란 표현이 꼭 어울린다. 지구의 나이는 적어도 40억 살이라는 것에서 출발한 책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에 대해 말한다. 총 8개의 장으로 나눠 수많은 도구와 관습이나 제도, 발명, 탈것과 종이, 의복, 의학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416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인들의 최초의 바퀴그림에 등장한 이후 형태의 변화와 육상교통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말한다. 최초의 백화점은 1837년 파리의 ‘르 프티 마틀로’였는데 대형상점과의 경쟁을 의식해선지 당시 백화점 중엔 ‘성 앙트완의 유혹’ ‘바람둥이 남자 들러리’ ‘고삐 풀린 소녀’처럼 선정적인 상호를 내걸기도 했다고 한다. 매일밤 지친 몸을 누이는 ‘침대’에 대해서도 이런 대목이 있었다.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일어나자마자 침대부터 깔끔하게 정돈했는데 그 이유는 침대의 잠잔 흔적을 칼로 찌르면 그 사람에게 해가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마크 트웨인은 ‘침대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거기서 사망하니까’란 말을 했다고 전한다. 잠깐 갤럽의 여론조사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어서 최초의 여론조사가  미국의 심리학자 조지 갤럽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대목이 기억에 남았다.




최초의 포켓북은 앙드레 모루아의 <아리엘 또는 셜리의 생애>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인데 신문가판이나 역 주변에서 담배 한 갑 정도의 가격에 판매되었으며 타자기로 최초로 소설을 쓴 사람은 마크 트웨인인데 그 작품이 <톰소여의 모험>인지 <미시시피강의 생활>인지 아직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또 정치가, 인쇄업자, 신문기자, 과학자 등으로 불리는 벤야민 프랭클린은 모든 독서가들의 꿈이자 나의 소망인 흔들의자와 이중초점안경, 피뢰침 등 실용적인 물건을 많이 발명한 것으로 유명했다. 대형여객선의 출발인 그레으트 이스턴호는 1858년 진수 당시 세상에서 큰 화물,여객선으로 기록됐지만 너무 시대를 앞선 탓에 외면받았다고 한다. 결국 1867년 200명의 승객을 태우고 마지막 항해를 떠났는데 거기에 작가 쥘 베른이 끼어있었고 그때의 경험을 <떠 있는 도시>란 작품에 묘사했다고 하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책은 한 가지에 대해 다룰 때 아무리 길어도 두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다. 때로 하나의 사물이나 도구를 그와 관계있거나 연관된 것들을 함께 묶어서 설명하기도 한다. 악기 ‘기타’를 설명하면서 북이나 색소폰, 아코디언, 오르간, 플루트, 피아노 등과 같은 여러 악기를 함께 다뤄서 하나의 궁금증에 대한 사고를 유사한 것과 연결하고 보다 넓게 확대할 수 있었다. 또 책에는 수많은 그림과 사진, 명화들이 컬러로 수록되어 있어서 책을 보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속면지에도 여러 가지 그림을 배치한 꼼꼼함이 엿보인다.




마음 내킬 때마다 손에 들고 펼쳐지는 페이지를 읽을 수 있고 부모와 아이, 모두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책 <이것이 세상이다>. 몇 년후 이 책을 아이 손에 건넬 날이 기다려진다. 그때 이렇게 말해야지. “It's World!!". 훗, 생각만으로도 벌써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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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컬처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데이비드 캘러헌 지음, 강미경 옮김 / 서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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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그러는 게 아냐~” 어느날 불쑥 가족이나 친구가 이런 얘길 했다치자. 그럼 무슨 생각을 할까. 얘가 갑자기 왜이래? 뭐 잘못 먹었나? 뜨악해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내가 얘한테 실수한 거 있나? 싶어서 골똘히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시작부터 다짜고짜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란다. 머얼? 뭘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고 하는건데? 따져서 물어보고 싶어진다. 정확히 뭘 말하는건지 모르지만 다 아는데 나만 모르면 왠지 손해보는 기분이 든다. 왜 그럴까. 참 요상하다.


<치팅 컬처,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공공정책 연구기관인 데모스(Demos)의 공동 설립자이자 수석 연구원인 데이비드 캘러헌으로 미국 사회에 만연한 거짓과 속임수, 비리나 편법이 어떻게 통용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들춰보이고 있다. 남의 못난 구석을 가지고 흉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게 인간의 심리인지라 무척 재밌는 내용, 다른 사람에게 “알고보니 미국에 말이야...”하고 괜히 아는 척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들이 많을거라 여겼다. 그런데 전혀 딴판이었다. 미국과 한국. 나라 이름은 다를지언정 그 속에서 벌어지는 얘기는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믿겨지는가. 도저히 믿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그 증거가 <치팅 컬처> 이 한권의 책에 담겨있다.


책은 총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속임수는 인간이 살아가는 어느 곳이라도  존재한다고 저자는 얘기를 시작한다. 일부 특정한 부류의 사람이 속임수를 쓰는게 아니라 직장과 학교에서 경제적으로 남보다 앞서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와 편법을 쓰고 있다고. 게다가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죄책감을 갖는 게 아니라 떳떳하게 여긴다고 한다. 왜?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만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손해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있다는 거다. 그 결과 개인주의는 극심한 이기주의로 바뀌었으며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해지게 된다고 한다. 속임수와 편법을 잘 쓰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사회시스템은 급기야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했거나 능력이 뒤떨어지는 사람을 배려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짓밟고 더욱 위축되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이 속임수와 편법을 쓰게 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속이는지, 법률회사에서 법정요금이나 변호사 수임료를 부풀리는 관행이 얼마나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지 세세하고 얘기하고 있다. 의료계는 또 어떤가. 환자의 건강을 위해 치료에 전념하는 게 아니라 다단계 판매회사의 건강보조제  같은 돈벌이에 몰두한 의사와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운동선수,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특종을 잡아 더 많은 돈과 유명세를 타려고 기를 쓰는 언론계의 가려진 이면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교육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부정행위를 하지만 학교는 이를 알면서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대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이미 속임수와 편법에 길들어버리는 아이들의 미래가 어떨까. 윤리적이고 명예로운 삶보다 부와 권력을 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게 분명하지 않은가.


처음부터 줄곧 거북하고 불편한 얘기를 쏟아낸 저자는 마지막장에서 ‘속임수 문화를 빠져나오기’라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계약을 마련하고 중요한 전문 직업의 세계를 개혁하고 직장에 새로운 행동규범을 확립하며 미국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세대의 윤리를 강화하자고. 이 세 가지를 말하면서 저자는 말한다. ‘식은 죽 먹기라고. 과연 그럴까?’


결코 식은 죽 먹기가 아니다. 속임수와 편법이 통용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그걸 뿌리뽑는 게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내가 오늘부터라도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내게 부여한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가정에서 윤리교육을 실시하라. 아이들에게 규칙을 지켜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라. 살면서 심각한 윤리 문제에 부딪쳤을 때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라. 아이들의 삶에서 돈과 지위가 최고의 선이 아닌 환경을 만들어라.’ 식은 죽 먹기라고? 과연 그럴까?




정직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도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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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인 이야기 - 서양문명을 탄생시킨 12인의 영웅들
칼 J. 리차드 지음, 박태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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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면 종류나 분야를 가리지 않는 편이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 없어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은 책도 간혹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야 속이 후련하다. 그런 내게 유독 어려워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그리스로마신화와 세계사이다. 틈나는대로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려고 눈에 띄는 책은 꼭 읽으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이윤기님의 그리스로마신화 시리즈는 중간에서 읽다 말았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는 읽으려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왜?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왠지 어려울 거 같으니까.




<한권으로 읽는 그리스로마인 이야기>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기대반 걱정반의 심정이었다. 얼마전에 세계사의 흐름과 윤곽을 크게 아우르는 책을 읽었기에  기대가 됐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그리스로마인’이라는 대목이 역시나 만만치 않을 듯했다. 책에서 말하는 12명 중에 절반, 아니 삼분의 일이라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면 성공한 책읽기라 여기고 읽기 시작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물러서지 말자고 굳은 결심을 하고 책장을 펼쳐 서양문명에 기여한 공로가 큰 그리스로마인이 누구인지부터 살폈다. 호메로스, 탈레스,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플라톤, 알렉산더 대왕, 스키피오, 카이사르, 키케로, 아우구스투스,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모두 12명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헉, 인물의 자세한 업적은커녕 이름조차 모르는 이가 수두룩...절반을 넘어선다. 순간 살짝 위축됐지만 무조건 고! 볼펜이랑 형광펜을 들고 고고!!




책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장가라 일컬어지는 호메로스부터 다루고 있다. 그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현대의 작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얘기하고 있다. 그중에 특히 인상에 남는 대목은 호메로스가 그의 작품에서 여성을 호의적인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과 그가 장님 시인이라는 사실(이번에 처음 알았다!)이었다.  서스펜스와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서양문학의 시조라 불리는 호메로스의 작품.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철학의 창시자라는 탈레스는 정말 놀라운 인물이었다. 우주를 물리적인 개념으로 인식한 그는 1년을 365일로 나누는 방법을 생각해냈고 일식을 예측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음악도 수학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걸 증명했으며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의 원조도 바로 탈레스였다고 한다.




그리고 페리클레스!! 민주주의의 싹을 틔운 개혁자라고 일컫는 그는 엄격하면서도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 공정한 태도를 보여줬다고 한다. 반면에 아테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뇌물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페리클레스가 민회에 보고한 결산보고서에 ‘불가피한 목적에 10탈렌트’란 항목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페리클레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상대편 왕의 고문에게 뇌물을 쓴 거였다. 어찌나 웃기던지 한참 웃었다.




서양철학의 시조인 플라톤 편에서는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 있었다. 플라톤의 이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다. 플라톤의 원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이라는 것. 즉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름이 같은 레슬링 선수였던 플라톤에게 어깨가 넓은 이란 뜻인 ‘플라톤’을 이름으로 한 게 아닐까.




이외에도 옥타비아누스가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하여 내란을 종식시킨 달을 기념하기 위해 8월을 ‘August'라 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임종직전에 “가장 힘센 자에게” 제국을 물려주겠다고 말하면서 몇 몇 장군들이 제국을 차지하기 위한 유혈투쟁을 벌였다는 대목이나 영화 속에서 포악하고 광기어린 인물로 묘사됐던 칼리굴라와 네로의 악행에 대한 부분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서양문명을 탄생시킨 12명의 영웅들’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책으로 만난 12명의 인물들은 문학과 철학, 과학, 정치 등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큰 공로를 세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인물 개개인의 업적이나 일대기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기엔 부족했다. 아니 한 권의 책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나 흐름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표지에 그려진 12명의 인물 캐리커처를 처음엔 한 명도 알지 못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선 호메로스, 페리클레스, 플라톤,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이사르. 5명을 알 수 있었다. 실로 엄청난 발전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로마는 그리스의 문화를 사랑했다. 서양의 문명과 문학,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리스로마의 문명과 문화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 책이 알기 쉬운 예비지식,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을 즈음 막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신랑은 이 책을 자꾸 기웃거렸다. 혹시나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신랑의 독서계획을 담당한 나로선 절호의 기회다. 신랑의 <로마인 이야기> 다음 작품은 바로 이 <한권으로 읽는 그리스 로마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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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계 - 중국의 4대 미녀
왕공상.진중안 지음, 심우 옮김 / ODbooks(오디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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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코, 그것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모든 표면은 변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이 한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클레오파트라가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클레오파트라의 외모는 소문만큼은 아니었다고 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의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그녀만의 매력이 있었기에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와 대결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지중해의 판도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상징적 인 의미였던 것에 비해 <미인계>에 등장하는 중국의 4대 미녀들은 보다 구체적이다.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돌아볼 때마다 성이나 나라가 위태롭고 기울어지게 한다 하여 ‘경국지색’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운명, 흥망성쇠의 열쇠를 쥐었던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4명의 여인은 누구인가. 바로 양귀비와 초선, 왕소군, 서시다.




책은 가장 먼저 양귀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빼어난 미인의 대명사이자 누구나 그 이름만큼은 아는 여인이 바로 ‘양귀비’가 아닐까. 뛰어난 외모뿐 아니라 가무에 능한 양귀비는 수왕과 혼인하여 수왕비가 된다 하지만 시아버지인 현종이 양귀비를 마음에 품으면서 그녀의 운명이 달라진다. 현종의 후궁으로 입궐한 양귀비는 현종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귀비’가 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양귀비’를 그냥 이름으로 알고 있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더불어 나의 무지함까지도.) 양귀비에 대한 현종의 사랑은 정말 지극했다. 하늘에선 한 쌍의 비익조, 땅에선 가지가 얽힌 두 나무가 되길 염원했단 그들의 사랑은 안녹산의 난으로 위기를 맞는다. 급기야 군신들은 현종에게 애물을 버리고 법을 바로잡으라는 ‘할애정법’을 요구하기에 이르고 양귀비는 화려한 생을 뒤로 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다음으로 등장한 여인은 삼국지를 통해 익히 알려진 초선이었다. 초선의 아름다움은 ‘취영청 밝은 달도 구름 뒤로 숨게 만들’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초선의 가족은 끼니를 잇기 어려울 만큼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왕윤이란 사람이 가족을 보살펴준다. 양아버지의 은혜를 갚기 위해 초선은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 하는 역할을 스스로 떠맡는다. 조조와 관우에게도 몸을 맡긴다. 평범한 여인으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고자 했던 초선이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남자를 거치는 모습은 무척 안타까웠다.




그리고 왕소군. 그녀의 비파 켜는 모습과 소리에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도 떨어뜨렸다고 하는데 사실 난 왕소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걸 본 지인이 책을 한번 훑어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왕소군은 경국지색이 아니지. 한족의 문화를 오랑캐족에 전파해서 그 나라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여잔데..” 지인의 그 말처럼 왕소군은 책에서 언급된 다른 미녀들과 사뭇  달랐다. 흉노족과의 화친을 목적으로 호한사와 혼인하게 됐지만 그녀를 본 황제가 왕소군 대신 다른 여인을 보내려 하지만 그게 호한사의 성미를 건드리게 된다. 자신을 희생해서 평화를 지키려한 왕소군은 호한사에게 시집을 가지만 결국 그 두 나라가 전쟁을 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




마지막으로 만난 서시 역시 앞의 세 여인과 비슷했다. 헤엄치는 물고기를 가라앉게 만드는 서시의 미모는 그녀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가 있음에도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기구한 삶을 살아간 여인이었다.




장구한 중국의 역사 한 켠에서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거나 희생해서 역사를 바꿔나간 양귀비, 초선, 왕소군, 서시. 삼국지를 통해 초선을 알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네 명의 여인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무척 설레었다. 남자의 입장에서 남자가 주도해나가는 역사에 아무리 미인이라지만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안타깝다...는 거였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여인들의 삶은 생전엔 어느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결코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소박하고 평범함 속에 깃든 아름다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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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1-1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인박명이라잖아요? ㅠ.ㅠ 몽당연필님 새해 인사가 늦었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몽당연필 2009-01-19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미인박명!! 갑자기 그 말이 생각 안 나더라구요. ㅠㅠ;;
바람돌이님 새해맞이 인사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세실 2009-01-19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한때 서시 닮았다고 했는데 자살 했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