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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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 오늘은 30마리쯤 낳았네.”

  큰아이가 4살 무렵부터 열대어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감성에 좋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처음엔 기르는데 재미를 붙이지 못하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불이 붙어버렸다. 바로 구피란 열대어가 새끼 낳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부터! 겨우 5센티미터도 안되는 물고기가 새끼를 낳으려고 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쬐끄만 알 같은 구피치어를 낳는데...지켜보고 있자니 감동 그 자체였다. 몸값 이래봐야 3마리에 겨우 2천원, 6천원어치 구입하니 덤으로 한 마리 더 받아서 10마리를 구입했었는데 그게 그런 쏠쏠한 기쁨을 가져올 줄은 미처 몰랐다. 그 후부터는 25일~30일 주기의 구피 임신기간을 계산해서 구피 치어를 받았다.

  하지만 그당시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생물학을 전공한 나조차 새끼를 낳는 건 엄연히 포유류만이 가지는 특징이자 특권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나이롱 생물학도였던 나의 무식이 탄로나는 순간이었다.

 

 최재천님의 신간 <인간과 동물>에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동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TV에서 방송했던 내용을 책으로 꾸몄다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던 게 무척 아쉬웠다. 괜히 텔레비전을 치워버렸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상천외하고 재밌는 내용이 너무 많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닭이 달걀을 낳는다고 생각하는데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오히려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닭을 매개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 꿀벌들의 춤은 단순한 춤이 아니라 춤언어라고 한다.

<적어도 몇 시간 전에 벌어졌던 일, 그것도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일어났거나 행했단 일을 기억해두었다가 그것을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부호로 전달할 수 있어야 언어라고 할 수 있지요. 벌들은 그것을 합니다.> 153쪽.

 

  그리고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데 그것엔 새들이 자기 새끼들을 전체 모습을 보고 구별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둥지에 돌아오면 모든 새끼 새들은 죄다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실제로 어미가 보는 건 새끼 새의 벌린 입뿐이라는 것. 그래서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새들은 들키지 않도록 입 안의 모습을 의붓부모의 새끼들과 닮도록 철저히 모방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사람이 소를 기르는 것은 공생의 일종이라는 것과 새끼 거위가 알껍질을 깨고 나와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을 엄마라고 여기는 과정을 각인이라고 하는데 이때 새끼 거위는 전체가 아니라 일부를 인식하는데 그게 노란 장화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무척 재밌는 부분도 많은데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하자면

<개미들 가운데 머리가 특이하게 생긴 개미가 있습니다. 보통 개미들은 머리가 동그랗고 도톰한데 머리가 편평하게 태어나는 개미가 있습니다. 이 개미의 역할은 개미굴 문을 막고 보초를 서는 겁니다. 소위 문지기개미인데 문이 좀 클 경우에는 두세 마리가 한꺼번에 동원되기도 합니다.> 148쪽.

  상상이 되시는지...자신의 머리로 집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문지기개미의 모습이...난 이 부분을 읽을때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균이 우리 몸에서 내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설명된 부분에선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열이 난다고 무턱대고 해열제를 먹는 것이 오히려 병원균한테 “어서 오십시오”하고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니....섬뜩할 따름이다.

 

  이렇게 동물들이 배우고 서로 도와주고 때로 고도의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일을 벌이기도 하는 과정들이 사진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다. 거기다 최재천님의 간단하고 알기 쉬운 문장은 책읽기에 속도를 더해준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이 우리에게 강조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연계, 특히 생명에 대해 공부하면서 절대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오직 해답만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착각 속에 살아왔는지 얼마나 오만했는지 알게 됐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긴 고리 중 어느 한 부분에 속하는 진화의 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동안 그 사실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기가 막히게 우수한 두뇌를 지녀 만물의 영장이 된 우리지만 사실 우리 인간의 역사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일천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20여만 년전에 지구촌의 가장 막둥이로 태어난 동물입니다. 그러니 우리보다 수천만 년 또는 수억 년 먼저 태어나 살면서 온갖 문제들에 부딪쳐온 다른 선배들의 답안지를 훔쳐보는 일은 지극히 가치있는 일일 겁니다> 9쪽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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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비밀의 부채 1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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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와 루이스>의 델마와 루이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잇지와 루스...그녀들을 떠올려본다. 자신을 억누르는 사람과 환경과 관습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를 추구했던 그녀들. 누구보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그녀들의 우정과 사랑에 나는 매료되고 말았다.

특히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 경찰의 추격 끝에 그랜드 캐년의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 델마와 루이스. 델마는 루이스에게 앞으로 계속 달려가자고 얘기하고...맞잡은 두 손을 높이 치켜든 둘은 벼랑 끝으로 질주한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찔하고 안타까운 이 장면이 난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 마음속엔 새로운 여인 두 명이 자리를 잡았다. <소녀와 비밀의 부채>의 두 주인공, 나리와 설화! 

델마와 루이스가 마치 투쟁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면 나리와 설화는 그 반대...안으로 안으로 조용히 잠겨드는 삶을 살았다. 중국에 관한 지식이 얕았던 나는 이 책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됐다.

우선 전족에 관해서다. 전족을 단순히 작을 발을 추구했던 여인네들이 자신의 발을 동여맸던 무척 잔혹한 풍습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 19세기 당시 중국에선 발크기가 얼마나 좋은 결혼을 할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략 엄지손가락 길이인 7센티가 이상적이라는 전족을 만들기 위해 뼈가 부러지는 고통도 감내해야했던 것이다.

<인생에서는 금련이 예쁜 얼굴보다 훨씬 중요하지. 예쁜 얼굴이야 하늘의 선물이지만 작은 발은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으니까> 42쪽

<내 작은 발은 미래의 내 시댁 사람들에게 출산의 고통뿐만 아니라 어떤 불행에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나의 자제심과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터였다.

내 작은 발은 세상 사람들에게 친정 식구들, 특히 친정어머니에게 내가 순종했음을 보여주고, 이는 장래 내 시어머니가 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될 터였다....내가 다섯 아이를 낳은 후에도...내 발을 쳐다보고 손에 쥐고 싶은 그의 욕망은 우리가 함께 사는 동안 결코 줄어들지 않을 터였다> 68~69쪽.

그리고 누슈...여자들만이 썼다는 누슈는 남자의 글자를 흘려쓴 것이었다고 한다. 또 한글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뜻이 아니라 발음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어서 ‘배’가 먹는 ‘배’일수도 있지만 타는 ‘배’일수도 있고 신체의 일부인 ‘배’일수도 있어서 문맥에 따라 신중히 해석을 해야했다고 한다.

< “모든 단어의 뜻은 문맥 속에서 찾아야 해”

숙모는 매일 수업이 끝날때쯤 이 말을 강조했다.

“잘못 읽으면 비극이 생기거든”> 134~135쪽.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라오통’이었다.

<라오통이란 의자매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여러 소녀들이 함께 의자매를 맺었다가 시집가면 해체되는 것과는 달리 라오통은 전혀 다른 마을에 사는 두 소녀가 일생동안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44쪽

이렇게 전족, 라오통, 누슈 이 세 가지가 씨실과 날실처럼 어우러져 탄생된 <소녀와 비밀의 부채>는 여든살의 여인 나리가 지난 날을 돌아보고 자신의 라오통이었던 여인 설화를 댕기머리 딸내미였던 시절, 머리를 얹은 처녀시절, 시집살이 시절, 조용히 앉아서 보낸 시절에 걸쳐 회고하는 비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가난한 농부의 딸인 나리는 전족을 할 나이가 됐을 때 중매쟁이로부터 지체높은 집안의 딸과 라오통 관계를 맺을 것을 제안받는다. 나리의 신체적인 조건이 전족을 했을 때 완벽한 금련의 발을 나올 것이란 예상에서였다. 라오통을 맺은 소녀에게서 상류층의 풍습과 예의범절을 배우면 자연히 좋은 집안과 혼인을 할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렇게해서 설화와 만나 라오통 계약을 맺고 한가족처럼 지내면서 둘은 서로를 한 쌍의 원앙새처럼 사랑하고 아끼게 된다. 하지만 나리가 결혼을 하면서 둘의 운명은 엇갈리게 되는데 바로 설화의 집안이 이미 몰락한 상태였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둘의 운명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부유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설화가 결혼을 하면서 남편과 시댁식구들에게 폭력과 학대를 당하는 등 계속된 불행에 나리의 충고는 무거운 짐이 되었고 급기야 둘의 라오통이 깨어지는데 설화가 나리에게 보낸 누슈의 글귀를 나리가 잘못 해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나리와 설화가 다시 재회하지만 그때 이미 설화의 몸은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자신의 오해가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왔는지 깨달은 나리는 남은 생을 괴로워하고 후회하며 지낸다. 자신에게 설화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오직 한 사람만이 내게 진정으로 중요했건만, 나는 그녀의 남편보나 더 야멸차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내게 자기 자식들의 이모가 되어달라고 부탁한 후에 설화는 말했다. 이 말이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나는 너만큼 착하지는 않지만 하늘에서 우리가 만날 것이라고 믿어.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을거야.”> 243쪽


이 책은 다 읽었다고 해서 그냥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가슴에 꼭 끌어안고 한참동안 마음을 진정시켜야했던 책이었다. 나리와 설화의 삶이, 그녀들의 우정과 사랑을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여기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가슴아픈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19세기의 중국을 모두 다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부모나 자식이죽었을때 무릎걸음으로 무덤까지 가는 것이나 결혼을 했더라도 자식을 낳기 전엔 친정에서 머물러야하는 것 등 내겐 생소한 것들 투성이었지만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나 과정을 다룰때 실제 누슈문자를 사진으로 소개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자도 눈에 띄었다.

<요즘같이 먹고 살기 위해서 땅을 처분해야 하는 마당에 어떻게 그럴 수 있겠> 84쪽

<--- 있겠소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야말로 옥의 티에 불과하다. ‘영원히 함께 하고 같이 늙어간다’는 ‘라오통’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그래서 나도 나의 절친한 사람들과 맺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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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5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 라오통, 새롭게 알게된 중국의 관습이네요.
님의 리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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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 어른이 돼 간다는 증거야. 맘 굳게 먹고...아버지 편히 보내 드려.."

   대학 2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넋놓고 울고 있는 내게 선배가 그랬었다. 그게 다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하나라고...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말이 이제야 절실히 가슴에 와닿는다.

   바깥공기가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지면서 부고를 받는 일이 잦아졌다. 신랑에게서 회사선배가 하루에 세 군데에서 부고가 왔었다는 얘길 들으니 순간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나? 칠순의 엄마를 도와주진 못할망정 나 산후조리한답시고 추운 날 자꾸 찾은게 마음에 걸린다. 이 겨울 무사히 지내셔야 할텐데...체력이 약한 노인들에게 겨울은 이래저래 두렵고 벅찬 계절일 뿐이다.

   미치 앨봄의 세번째 작품인 <단 하루만 더> 이 책은 전작인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나 <천국에서 만난 다섯사람>과 같이 죽음을 얘기하고 있다.

  주인공인 찰리 베네토는 한때 소망했던 야구선수로 활동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세일즈맨으로서도 낙제점을 받는다. 거기다  아내와 딸에게선 버림을 받고 실의에 빠게 살게 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곁에서 해결책을 찾아주고 용기를 주던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걸 깨달으면서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을 결심한다. 작별여행으로 자신이 자란 집으로 향하다 사고가 나면서 어머니를 만난다.

  삶과 죽음 그 사이 어딘가에서 꿈에 그리던 어머니와 꿈같은 하루를 지내게 된 찰리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어머니의 모습과 만난다. 부모가 이혼하게 된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된다. 바로 아버지에게 숨겨진 또다른 가족이 있었던 것...

  작가는 이렇게 찰리의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는 내 마음은 정반대였다. 어찌 차분할 수가 있겠는가. 찰리와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와 내 부모, 나와 내 아이의 모습이 훤히 비치는데...아마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삶을 살다보면 취소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다시 살고 싶은 순간들, 바꿀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은 순간이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그렇게 할 수 없기에 작가는 찰리와 어머니를 통해 우리에게 얘기하는 게 아닐까. 지금 자신의 삶을 용서하라고...

<어머니는 살며시 내 어깨를 눌렀습니다.  "용서해"  "여자를요? 아버지를요?"

머리가 땅바닥에 닿았습니다. 축축한 피가 관자놀이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너 자신." >  243쪽.

* 인상깊었던 대목

<삶에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어머니와 함께 보낸 하루만큼은 매순간을 뚜렷이 기억할 수 있습니다. 같이 만난 사람들, 우리가 한 이야기, 그 모두를 말예요. 어떤 면에서는 그저 평범한 하루였지만, 어머니 이야기대로 정말로 정요한 것들은 일상의 순간에서 만나는 법이나까요.>   246쪽

이 <단 하루만 더>를 읽고 떠오른 생각... 언젠가 내게도 이런 하루가 주어질까...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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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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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사람풍경> 이 책은 저자가 9개월동안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 속에서 느껴진 마음의 풍경, 심리를 담아내고 있다. 그다지 어려운 대목 없이 쉽게 쓰여진 이 책을 한꺼번에 읽어 내려가기가 어려웠다.

이 책은 기본적인 감정들, 선택된 생존법들, 긍정적인 가치들...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일 먼저 언급한 '무의식'과 '사랑'만해도 그랬다.  무의식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비밀을 쥐고 있는지 특히 유년에 만들어진 무의식이 남은 평생을 좌우한다는 첫대목에서부터 매끄럽게 넘어가질 않았다.

<우리 삶의 중요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비밀 한가지는 우리 대부분이 세살까지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여섯살까지 배운 관계 맺기 방식을 토대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생의 모든 문제가 사랑에서 시작되는데 그 이유는 기대했던 사랑이 결핍되었을때의 감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생애 초기에 엄마와 제대로 된 애착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이 갖는 문제 중에는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이 있다. ...그 시기의 결핍이 정신의 일부로 형성되어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대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모든 문제들이 유년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체 인간은 유년으로부터, 그리고 부모로부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한마디로 이 책은 유아기가 우리의 긴 생애 중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유년 시절에 받았던 상처나 분노, 불안감, 공포와 같은 감정으로 인해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그것을 깨닫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불편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리 밝지않은 내 유년시절을 자꾸 돌아보게 만들었다. 딸부자집의 3대독자로 태어난 남동생을 나보다 위하는 엄마로 인해 분노하고 홋시 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감과 공포, 예쁘고 재주많은 언니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등..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들로 인해 한껏 웅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배우자감을 고를 때도 왠지 듬직한, 내가 마음놓고 비벼도 될만한 언덕을 제일로 꼽았던 이유가 바로 내가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 추억이 그리 많지 않은 부성의 결핍이 이유라는 것, 엄마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의견 충돌을 극히 꺼리고 회피하는 것 역시 유아기때부터 외부의 고통스런 상황이나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기질이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라니....

이쯤되니 순간 무섭고 걱정이 된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내 아이의 유아기는 어땠을까...혹시 내 아이에게 나와 같은 유아기를 겪게 한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과 우려로 인해 요즘 부쩍 마음자리가 불편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 <사람풍경>을 만났다는 사실이 내겐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여정을 찾아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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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1-24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의문스러웠던 문제가 이해되기만 해도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심리적인 것일 때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꿈도 그런 면에서 재미있습니다.
꿈 속에서는 우리들의 무의식이 듬성 듬성 어떤 상징과 메세지를 가지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현실의 욕망이나 억눌린 부분들,,
아니면 좀 더 오래된 억압들도..
많은 꿈의 징후들 중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쨌거나 김형경씨는 그 아픈 유년시절을 지금이라도 맞닥뜨려서
헤쳐나가고자 하는 용기가 있는 분 같군요..

담엔 뵐 수 있기를..
 
생텍쥐페리의 전설적인 사랑
알랭 비르콩들레 지음, 호세 마르티네스 프룩투오조 자료협조, 이희정 옮김 / 이미지박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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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의 탄생 6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책! 

  한 쌍의 다정한 연인의 사진이 표지를 차지한 이 책을 손에 들고  나는 한동안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켜야했다.

이 사람이 생텍쥐페리로군...이 여자가 연인인가?  <어린 왕자>를 썼던 여린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니 얼마나 근사한 사랑을 했을까!   도대체 어떤 사랑을 했길래 전설적인 사랑이라고 한거지??

<생텍쥐페리의 전설적인 사랑>... 이 책은 생텍쥐페리와 그의 아내 콘수엘로의 사랑의 기록이다.

커다란 키에 곰같은 덩치, 쾌활한 성격, 호인 같은 외모,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으로 우울해했으며 비밀스러운 상처를 품고 있던 생텍쥐페리와 외국여자이자 이야기꾼이고 발랄했던 콘수엘로는 첫만남에서 사랑에 빠진다.

"어쩌면 손이 이렇게 작지요! 어린 아이 손 같군요. 이 손을 영원히 내게 주세요...(중략) ...난 지금 청혼을 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 손이 좋아요. 이 손을 나 혼자 간직하고 싶어요."  <-- 36, 40쪽

 하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생텍쥐페리의 가족들은 공공연히 콘수엘로를 무시했고 언제나 돈에 쪼들리는 떠돌이 생활을 해야했으며 생텍쥐페리 주변엔 늘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내 방 벽을 통해 남편 방으로 오가는 복도에서 나는 소음, 여자들의 목소리, 웃음소리, 정적을 느끼며 나는 질투에 치를 떨었고 버림받은 아내라는 고독감에 허덕였다.  콘수엘로 <-- 113쪽

 생텍쥐페리는 늘 떠나 있었고 어쩌다 돌아와도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은 순간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부부가 함께 여행을 가더라도 숙소를 따로 잡다니.... 이들 부부의 생활은 책을 읽는 내내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나?

 조종사의 아내가 된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직업이다. 작가의 아내가 된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성직이다.  콘수엘로  <-- 108쪽

 이 대목만으로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며 조각을 하고 그림을 그렸으며 남편에겐 항상 글을 쓸 것을 당부하는 아내 콘수엘로...

 그들에게선 부부가 아닌 마치 아들과 어머니와의 관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서로에게 있어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기에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를 지경에 이르고도 차마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이런 생각을 품고 있어선가... 그들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며 주고 받은 숱하게 많은 편지와 전보가 왠지 마음깊이 와닿지 않을 뿐더러 입에 발린 말을 내뱉는 것처럼 불편했다.

 그러다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나란히 있는 두 장의 그림에서 순간...호흡이 멈췄다.



 < 이 그림은 콘수엘로가 간직하고 있던 생텍쥐페리의 초상화다. 콘수엘로가 남긴 유품으로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콘수엘로의 유산 상속자인 호세 마르티네스는 이 초상화를 액장에서 빼냈다. 그런데 이 초상화의 뒷면에 콘수엘로의 초상화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부부는 이렇게 그림으로 하나가 된 것이었다.>

< 내 남편, 내 영원한 남편 > 콘수엘로  <-- 184~185쪽

그제서야 난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만남은 운명이었고...그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했다는 것을....

 *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음으로써 생텍쥐페리에 좀 더 다가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생텍쥐페리에 관해선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의 삶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길 바랬는데...  그저 지금까지 잊혀져왔고 거론된 사실조차 없는 콘수엘로의 존재가 수많은 사진으로 인해 부각됐을 뿐이다.

  게다가 편집의 오류인지 의도인지 알 수 없지만 책의 절반가량 되는 사진이나 편지 대부분이 본문의 내용을 중간 중간 끊어가면서 삽입이 되는 바람에 내용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다. 

  사진을 선정과 배치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본문의 내용과 관련있는 사진을 배치한 것이 아니라  그냥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란 느낌이 들었다.  그 예로 59쪽, 110쪽,111쪽에서의 부부 사진을 보면 의상이나 가방, 소품이 똑같다. 그들이 단벌신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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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11-1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떽쥐베리의 삶과,,,그리고 그 아내 콘수엘로의 삶이 똑같이 가슴아프네요..
단벌신사가 아니라 하루동안 찍은 사진 아닐까요..원래 옛날에 사진이 많이 없지 않을까싶어요..
꼭 읽어보구 싶은 책이에요...

몽당연필 2006-11-15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날 찍은 사진...물론 그렇겠지요.
다만 사진 편집에 좀 더 성의를 보였으면...하는 아쉬움이 남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