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조각 창비청소년문학 37
황선미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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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이었다. 동기여학생을 성추행한 것도 모자라 그것을 촬영까지 했던 이들이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바로 국내 일류대학의 의대생이었다는 것. 충격적이다 못해 경악을 금치 못할 사건에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쓴 소리를 토해냈다. 장래 사람의 생명을 마주하게 될 의대생들이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일을 벌일 수 있냐고 비판했고 같은 대학의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도 가해 학생들의 출교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른바 짱짱한 집안을 배경으로 한 그들에겐 어떤 징계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의 공판 때 누가 가해 학생들의 변호를 맡을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예비 의료인의 윤리와 도덕성에 의문을 던진 사건이 황선미의 소설 <사라진 조각>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대기업의 간부이지만 가족에게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와 우등생 오빠만 감싸고 위하는 엄마, 특목고를 목표로 한 성적도 외모도 최상위권인 오빠 신상연, 그런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딸 신유라. 책은 이들 네 명의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족에게처럼 친구들과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유라는 어느 날 엄마가 자신을 필리핀에 강제로 유학보내려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엄마에게 반항하기 위해 유라는 가출을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런 용기가 없다. 답답한 마음에 대공원을 찾은 유라는 그 곳에서 오빠가 같은 반의 재희와 함께 있는 걸 목격한다. 자신이 본 것을 확신할 수 없었던 유라는 바로 그날부터 집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느끼게 된다. 언제나 반듯한 모범생인 오빠가 아무런 말도 없이 외박한데다 그것도 모자라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보이고 낯선 아줌마가 집을 방문한 이후로 엄마는 더욱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재희마저 며칠째 학교에 결석하고 있는 상태. 우연치고는 뭔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재희가 집단 성폭행 당했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지기 시작하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전한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소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만난 저자의 이야기에 모두 만족이었기에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됐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전작들에 대한 인상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서일까. <사라진 조각>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청소년의 집단 성폭행과 막장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을 주된 소재로 끌어와서 의문의 사건을 마치 퍼즐 맞추듯 이끌어가는 시도는 좋았으나 진행과정이 왠지 허술하게 느껴졌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가해 학생의 처벌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피해자인 재희에 관한 언급이 극도로 제한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성폭행 사건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인만큼 청소년들이 아픔과 상처,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이 부족했다. 200쪽이 안 되는 분량에 그 모든 걸 담기가 어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좀 더 치밀하고 꽉 차인 이야기와 감동을 전하는 저자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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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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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낭’이라고 아시나요? 제주도의 옛날식 대문을 ‘정낭’이라고 하는데요.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텔레비전에서 바로 그 ‘정낭’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긴 장대 3개를 대문에 걸쳐놓는 방식을 달리 하는 것만으로 그 집의 주인이 있는지, 출타중인지, 언제 돌아오는지 나타낸다고 하는데요. 도시의 굳게 잠근 대문이 눈에 익어서일까요?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웃 사람들을 믿는다는 의미이니까요.


여기 이 마을도 그랬습니다. 캐나다 퀘백주, 지도에도 거의 표시되지 않을 만큼 작은 시골 마을 스리 파인즈도 범죄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범죄도 그 마을은 예외였습니다. 고작해야 마을에 남아도는 서양호박을 이웃집에 몰래 가져다놓는 게 전부였는데요. 그런데 바로 그 마을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일요일 이른 아침, 단풍나무 숲에서 제인 닐이 쓰러진 채 발견됩니다. 일흔 여섯이란 나이는 그녀의 자연사를 짐작할 수도 있었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화살이 제인의 가슴을 관통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때마침 마을에 사냥철이 시작됐기에 사냥하던 이들의 실수로 인한 불행한 사고가 아닐까 예상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하나 자신이 실수했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없는데다 전직 선생님이자 아마추어 화가로 통하는 마음씨 좋은 노부인인 제인에게 나쁜 감정을 품은 사람조차 없었거든요. 이에 경찰청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과 수사팀은 제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화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합니다. 그런 중에 가마슈 경감은 여태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거실을 공개하지 않았던 제인이 자신의 거실로 사람들을 초대하기로 했었다는 것과 제인이 [박람회 날]이라는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에 출품했다는 것과 문제의 그림이 일주일 전에 죽은 티머가 죽던 날의 박람회의 폐막 퍼레이드를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퀘백 독립운동 당시 영국의 황실주의자와 프랑스군이 대립하던 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세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한 스리 파인즈. 서로 너무나 잘 알아서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안다고 여겼던 마을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마을을 점점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오랫동안 스리 파인즈에서 살았던 제인을 살해한 이는 누구일까요? 또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조용한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가마슈 경감과 수사팀에 의해 하나씩 의문이 풀어지기 시작하는데요. 여느 추리소설처럼 눈에 띄는 개성이 강한 등장인물이나 미로처럼 복잡한 사건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소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현대의 작품이라기보다 마치 정통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이 작품이 저자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출간될 가마슈 경감 시리즈,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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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 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조경란 지음, 노준구 그림 / 톨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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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인근에 있지만 내가 그 곳을 찾을 때는 서점이나 공연관람이 유일하다. 그 외에는 백화점을 찾을 이유가 없다. 물론 이런 나도 한때 백화점을 자주 들락거린 때가 있었다. 막 결혼한 신혼이었을 때 친구들과 시내에서 약속해서 시간을 보낸 후 남편의 회사 근처의 백화점에서 만나서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간혹 세일기간이라 짐이 무거워도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당시 백화점에는 셔틀버스가 있어서 백화점과 집을 편리하게 왕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셔틀버스 운행이 금지되면서 백화점에 발길도 자연히 뜸하게 됐다.


그런 내게 조경란의 <백화점>은 새로운 시선,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왔다. 소설인 줄 알았던 책은 그러나 소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본문의 내용이 신변잡기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백화점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 백화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 권의 책에 모아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책의 구성이 독특하다. 모두 11개의 주제(?)로 나뉘어진 책은 지하 1층에서 지상 10층 건물의 백화점을 연상시킨다. 제일 먼저 1층에 들어선 저자는 시계와 향수, 명품매장에 관한 생각과 경험들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시계 취향, 시계를 고를 때 무엇에 중점을 두는지부터 시작해서 강렬하고 짙은 ‘머스크’ 향에 매료되었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슬쩍 향수의 기원을 건드리기도 한다. 또 명품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연찮게 명품매장에 들렀을 때 머쓱했던 경험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이 우리를 말해준다’는 말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2층에 오르면서는 백화점의 동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장과 매장 사이의 간격과 크기, 이어짐이 모두 치밀한 계산에 의해 설계된 것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에스컬레이터라고 한다. 위와 아래를 오고가는 엘리베이터와는 달리 이동속도는 느리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기 때문에 백화점에서 아주 중요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한때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동매장과 키즈카페에 들르곤 했는데 백화점에 아동매장이 생기게 된 과정이나 마케팅과 관련된 내용을 접하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역시 ‘책’에 관한 것이었다. 평생동안 다 읽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만큼 책을 모으는 난 수첩이나 노트를 너무나 좋아한다. 문구점이나 대형마트의 문구코너에서 한참 서성이다 작은 하나라도 건져야 직성이 풀리곤 하는데 그런 내게 저자의 ‘수집’에 관한 이야기는 기억에 남는다.


백화점에는 창과 시계가 없다고 했다. 백화점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 오로지 소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최근엔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1층에서 10층까지, 그리고 지하1층으로 향하면서 내게 낯설기만 한 백화점을 저자와 함께 쉬엄쉬엄 돌아다닌 기분이 든다. 구경꾼이자 만보객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니 얼마전 공연 관람을 마치고 우연히 찾아든 옥상에서 초록의 작은 정원이 펼쳐져있는 걸 보고 얼마나 감탄했던지. 백화점 영업이 이미 마친 시간의 옥상정원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행복감에 젖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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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아이들 2 - 가짜 이름을 가진 아이들 봄나무 문학선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이혜선 옮김 / 봄나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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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 내 이름은 루크야.”




자신의 존재조차 어두운 그늘에 숨긴 채 살아야했던 소년. 그에게 어느 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웃의 셋째아이였던 젠의 아버지가 죽었지만 신분이 살아있는 ‘리 그랜트’로 살아갈 것을 제의해왔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버려야한다는 것.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년은, 그리고 소년을 사랑하는 가족은 망설이지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식량부족으로 셋째 아이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소년과 가족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날이 밝으면 다른 이름을 받아서 살아가게 될 아이에게 엄마는 정성껏 아침을 차려냈다.




사랑하는 가족과 안타까운 이별을 하고 ‘리 그랜트’라는 이름으로 들어간 학교에서 소년은 당황한 일을 겪는다. 어느 누구도 전학생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학교의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며 숨가쁜 하루를 보낸 후 소년은 깊은밤 잠자리에서 숨죽이듯 내 뱉는다. “루크, 내 이름은 루크야.”




루크가 다니게 된 핸드릭스 학교는 여러모로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 걸핏하면 벌점을 남발하는 선생님에, 학교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복잡했다. 화장실이나 복도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는 아이가 살피는 감시원이 복도마다 있었고 무엇보다 학교의 어디에도 창문이 없다는 점이었다. 셋째 아이여서 바깥출입이 극도로 제한되긴 했지만 집 주변의 숲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지냈던 루크에게 사방이 꽉 틀어 막힌 학교에서의 생활은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매일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 때문에 루크는 더욱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루크는 우연히 복도에서 하나의 문을 발견한다. 그것은 학교 밖으로 나가는 문이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풀밭과 나무, 하늘이 보이자 루크는 자석에 이끌린 듯 문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후 루크는 틈만 나면 숨겨진 문을 통해 학교 건물 밖의 숲에서 향하고 숲에 자신만의 작은 텃밭을 가꾸기에 이른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의 텃밭이 누군가의 발길에 짓밟혀 엉망이 되어버린 걸 발견한다. 도대체 누구일까? 그 비밀의 문을 통해 숲으로 온 사람은?




인구경찰에게 발각될 경우 생명이 위태로운 셋째아이 루크. 그는 처음 들어간 학교에서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과 자신의 친구 ‘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학교생활에 조금씩 적응해나가는데, 그러던 중에 일이 벌어진다. 자신의 무리 중에 인구경찰의 스파이가 있었던 것. 우연히 그 현장을 목격한 루크는 어떻게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인가.




세계적인 식량난 때문에 셋째 아이가 금지된 사회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이 책은 충격을 안겨준다. 후반부에 이르러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던 이 학교의 설립에 얽힌 내막이 밝혀지고 루크에게는 또다시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새로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기회가. 그러나, 루크는 남기로 결정한다. 이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셋째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루크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3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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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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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에 반하다. 사랑에 빠지다.

불혹을 넘기고서 지난 시절을 돌아봤을 때 가장 아쉬운 게 있다면 바로 이겁니다. 누군가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얼마나 로맨틱합니까. 주변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고 깜찍한 하트들도 뿅뿅 날아다닐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전 암만해도 안 되더군요. 천성이 게으른데다 말주변도, 사교성도 없는지라 누군가를 만나면 일단 경계부터 하고 봅니다. 그러다 만남이 반복되고 신뢰가 쌓이면 그제야 마음의 문이 열리고 정이 들기 시작하는데요. 지금의 남편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런데 여기 저와 정반대의, 아니 제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볼 사랑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호시노 가즈히코. 그에게는 다섯 명의 연인이 있습니다. 단 둘, 양다리도 아니고 다섯 명? 네, 그렇습니다. 다섯 명. 그렇다고 이성에게 페로몬을 마구 발산하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서른 전후의 나이에 지극히 평범한 남자입니다. 카사노바 같은 희대의 바람둥이냐구요? 글쎄요,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함께하고 싶고 사귀게 게 된 여자가 다섯 명이 되었지만 그는 다섯 명의 연인을 모두 사랑하거든요. 진심으로.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다른 것도 아닌 ‘돈 문제’가 생겨서 ‘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무엇을 위한 버스인지 알 수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호시노는 말합니다. 어릴적 엄마가 장보러 갔다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로 아무런 소식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그는 자신의 다섯 명의 연인과 이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그의 진심이 통한 걸까요? 그에게 연인과 제대로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단, 거구의 여인 마유미가 감시역으로 따라붙게 되지만 말입니다.




이후 책은 호시노가 마유미를 대동하고서 다섯 명의 연인과 만나 이별을 고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여섯 부분으로 나눠지는 소설은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이별통고 이전에 호시노가 연인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그의 특별한 만남이 짧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연인에게 바람맞고 양복차림으로 무작정 찾아간 딸기밭에서 만난 히로세 아카리를 비롯해서 도로에서 차를 세워선 뜬금없이 “[프렌치 커넥션]을 본 적이 있습니까?” 물어오던 시모쓰키 리사코, 깊은 밤 로프를 둘러메고 건물에 침입하려던 기사라기 유미, 이비인후과에서 링거를 맞다가 만난 간다 나미코, 스포츠 음료 광고를 촬영하던 여배우 아리스 무쓰코. 이들은 헤어지자는 호시노에게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어떨까요? 호시노는 정말 다섯 명의 연인에게 거짓말을 한 걸까요? 호시노의 이별여정은 무사히 끝나게 될까요?




이사카 고타로. 이 사람 책을 읽어봤던가? 한참 생각했어요. 그러다 언뜻 떠오른 책이 있었으니 <모던 타임스>였습니다. 몇 개의 단어를 검색하는 것만으로 사건에 휘말리게 된 사람의 이야기가 만화 같은 일러스트와 함께 곁들여진 책이었는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를 바탕으로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의 물질문명으로 인해 인간들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코믹하고도 잔혹하게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그동안 지인을 통해 이사카 고타로는 감각있고 유머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들어왔는데 처음 만난 작품에서는 그걸 느낄 수 없어 아쉬웠지요.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드디어 안타가 터졌습니다. <바이바이 블랙버드>. 큰 스릴은 없지만 그래도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그것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바램이 있다면 호시노와 마유미의 이후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다는 거. 그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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