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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지난 5년동안 노무현 정부는 많은 부분에서 국민들을 양극화로 분열시켰다. 소득 5분위 배분율의 1분위와 5분위가 5년 전에 비해 5배나 증가한 경제적 양극화는 물론이요, 행정수도 이전과 부동산 문제로 인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적 양극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로와 위치에서 국민들을 갈라놓았다. 이러한 적지 않은 노무현 정부의 양극화 결과물들 중에 '이념'이란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소위 '보수'와 '진보'로 분리된 정치 이념 논쟁은 헌정 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극적인 논쟁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보수이며 무엇이 진보란 말인가?
220년 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인류 보편의 가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일깨웠다. '자유'와 '평등'의 인권의 절대적 기본 가치는 이후 민주주의의 태생과 발전을 통하여 더욱 공고히 다져지며 20세기 자유민주주의 만연의 핵심 아이콘이 된다. 엄밀히 말해서 보수의 태생은 '자유'이며, 진보의 태생은 '평등'이다. 그렇기에 보수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며, 진보는 사회의 역할과 기능을 강조한다. 사실 현재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는 각 나라마다의 정치적, 지리적, 민족적 특질로 인해 보수와 진보의 개념은 조금씩 달리 읽혀지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에 입각하면 보수정권이 공무원 수와 국민세금을 줄이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반면, 진보정권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우파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은 정부를 지향하고, 좌파는 크면 클수록 좋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의 가지를 추가하여 의문의 열매를 생산해보자. 과연 그렇다면, 국가와 개인은 어떠한 함수관계로 표현될 수 있을까? 국가가 개인에 간섭하고 통제하는 공권력의 한계는 어디까지 행사되어야 할까? 한 사람의 인권은 그 어떤 사람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라는 점을 응당 인정한다면, 개인의 자유는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얼마만큼 누리며 만개할 수 있는 것인가? 앞서 언급한 '보혁保革'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재차 역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질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해왔던 민주주의의 역사를 한 눈에 응시하게끔 하면서 깊이있는 사유의 공간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19세기를 살았지만 21세기적인 환경의식'을 지녔던 사람으로 평가받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시민의 불복종』을 통해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의미를 깊이있게 성찰하고 있다. 이 책이 쓰여졌던 19세기 중반은 미국에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엄존하고 있었다.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이 그것이다. 소로우는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의 비명분非名分에 항거하여 인두세를 국가에 납부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감옥에 투옥되면서 과연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억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농밀한 사유를 전개한다. 소로우는 말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p. 13>
소로우는 계속해서 갈파한다.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이며, 결국 '가장 좋은 정부는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라고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소로우가 국가를 바라보는 냉소적 시각은 개인의 자유를 가치적으로 극대화하는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 더욱 차가워진다. 2,500년 전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을 함으로써 공동체 안에서의 질서와 수용을 강조한 것과는 철저히 배치되는 신념인 것이다.
누구의 주장이 정답이라 단정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방점은 소로우가 생존했던 당시의 시대상에 있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라는 소로우의 주장이 작금의 시대에 펼쳐졌다면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된다. 하지만 그가 태어났던 18세기 후반이 강력한 연방국가 '미국'의 태동기라는 점, 그리고 개인의 능력과 자유에 대한 진보된 사색이 없었던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소로우의 신념은 과히 혁신적인 것이라 할 만하다. 어쩌면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이라 꼽히는 『시민의 불복종』이 갖는 문학적이고 사상적인 존재감은 19세기를 살았지만 21세기적인 문학과 사상의 사유를 펼친 소로우의 영향력을 여가없이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작금과 같은 다양함의 시대에 소로우의 논지를 무조건 대입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른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의무 또한 중요한 시대이다. 한 인간이 가지는 <자유>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또 다른 <자유>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빛을 발하는 법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법과 질서의 유지, 국토와 국민에 대한 보위, 치안과 안전을 담당하는 등의 국가의 기본적 역할은 한 개인의 자유가 안고 있는 불완정성을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것이리라.
가장 좋은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쌍방통행의 신뢰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은 애국심을 갖고 국가에 충성하며 국가는 개인의 행복과 안녕을 위하여 무던히 힘쓰는 것, 나는 그것이 선진국가를 추동推動케 하는 에너지임을 믿는다. 보수와 진보를 논하기 전에 개인에 대한 국가의 방향과 국가에 대한 개인의 방향이 신뢰 차원에서 공고히 일치할 때에 행복한 국민과 강건한 국가가 공존할 수 있음을 부언한다.
책 속에는 《시민의 불복종》 외에도 소로우 자신이 생전에 집필했던 자연 에세이가 몇 편 수록되어 있다. '낙엽'과 '사과'를 위시하여 식물 세계를 상찬하는 소로우는 자연에 대해 심히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에 쓰여진 가장 중요한 책들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월든』이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한 2년간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소로우 자신이 자연을 얼마나 겸허히 경배하고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자연은 그외에 다른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을 거부하지 말라. 인간은 겨우 몇 가지 자연식품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러나 자연 전체가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연'은 건강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으며, 각 계절은 건강의 각기 다른 상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p. 127>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간섭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 그리고 자연 세계에 대한 아낌없는 상찬을 소로우 자신의 메타포적 활자로 그려내고 있는 단편집 『시민의 불복종』은 19세기에 살았던 사람이 마치 21C 작금의 시대에 현현顯現하여 논설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역동적이며 강렬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와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소로우로부터 적지않은 사상적 영향을 받은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더욱이 외국에서는 소로우의 존재감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함석헌 선생은 솔깃한 추천사로 소로우의 세계를 안내한다. "《시민의 불복종》을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것이 가장 우선 해야 할 일이었다. 소로우는 역시 위대한 인물이다!"라고. 아직 읽지 않은 독서가들에게 살포시 추천한다.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의 쓸 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
<p. 16>
낙엽들은 우리 인간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인간은 자신의 불멸성을 자랑하지만 낙엽만큼의 기품과 성숙함을 가지고 죽음에 임할 날이 과연 언제쯤 올 것인가?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자를 때처럼 '인디언 여름'과도 같이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의육신을 떠날 날이 과연 언제쯤 올 것인가?
<p. 101>
Thanks to 베로니카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