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고등학생때부터 고대해왔던 마흔 살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마흔살이라고 하면 굉장히 나이가 많은건줄 알았다.
어느정도 세상도 좀 알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사회적으로도 초년 딱지를 떼고, 이 사회와 가정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참 그럴듯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20대 때도, 30대 때도 다시는 오지 않을 시절이라 최대한 살아내자 생각했지만, 그래도 40대에 대한 기대가 더 컸었다.

드디어 마흔이 된 지금, 이런 거창한 기대와 달리 지난 닷새동안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를 허둥지둥 보낸 것 같다.
1일(목) 낮 - 작년에 태어난 조카들 영세식 참석,
            오후와 저녁 - 우리 아이들 연수보낼 짐싸기,
2일(금) 새벽: 우리 아이들 3주간 연수 출발... 저녁에 퇴근해보니 집이 왜이리 썰렁한지..
3일(토) 저녁: 세계사회 포럼 참가자 준비모임이 대전에서 있어서 그 행사 준비 및 일부 진행.
4일(일) 로미 쥴리 목욕시키기, 집안대청소... 어째 좀 여유가 있는 날이었다.
5일(월) 오늘이네.

아침에 출근하니 바리바리 전화가 온다. 어제 보낸 파일들 번역을 했냐고.
파일이라니?
알고보니 어제 음성 메세지가 핸드폰에 왔었는데, 이걸 확인하는 방법을 몰라(이거 원시인 아니냐?) 어제 파일 세개 보내놓고 어제까지 번역해달라고 하는 메세지를 확인 못했었다. 세계사회포럼에서 우리 단체가 발제하는 내용을 홍보하는 파일들이었는데,  으아~~~ 오늘 점심까지가 현지의 홍보 신문 마감이란다.
월요일에다 겨울철이라 환자들도 많은데 점심도 제대로 못먹고 부랴부랴 겨우겨우 시간을 맞추었다.

이뿐이 아니다. 근 보름을 병원을 비우느라 유동성 위기가 대두되는 재정도 신경써야 하고, 대진의도 구해야 하고, 보건소, 보험공단에 병원 비운다고 신고해야 하고(아마 다른 업종은 이런 시시콜콜한 짓 안할거다. 가게 문닫는것도 아니고, 잠간 남에게 맡기는 것도 신고해야 하다니..), 게다가 집을 비우게 되니 남편 심기도 신경 써야 하고... 아예 남편도 함께 가자고 꼬시는 중이다. 여기에서 또 가치관과 강제되는 역할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고...

내일부터는 세계사회포럼 직전에 열리는 세계보건포럼에서 발제할 내용(5분짜리 짧은거지만)과 발제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하는 내용을 포럼 자료집에 넣을 내용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냥 참가만 한다고 문의한 것이 어찌어찌 엮여서 우리 단체에서 사례발표를 두개나 하게 되었다.) 부족한 관련 어휘를 초치기로 익혀야 하고....
멋있게, 분위기 있게 맞이하려 했던 사십대를 이렇게 정신없게, 많은 고민 속에, 유동성 위기 속에서 맞이하게 될줄이야...

하지만 열심히 살아내자는 결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음주 월요일인 12일에 인도 뭄바이로 떠난다. 아마 18일 혹은 20일에나 돌아올 예정이다.
겨우 1주일여에 불과한 기간이지만, 나 자신의 의지로 국내건 국외건 행사에 이정도 오랜 시간 참석하는 것은 첨이다. 그것도 많은 갈등과 고민 속에서 결정한...
(출장 맘대로 다니는 분들은 복 받은 줄 아세요. 그 흔한 배낭여행 한번 못해봤으니... 이와 관련해서는 언젠가 또 푸념글 하나 나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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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1-06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세계사회포럼! 꼭 가보고 싶었는데... 좋은 경험, 의미있는 경험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을산 2004-01-06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가능한 열심히 중계(?) 해보겠습니다.

nemuko 2004-01-0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앗, 서른이군"이네요. 저도 십년후엔 가을산님처럼 부지런한 삶을 살고 있을거라 자위해보며...ㅎㅎㅎ. 몸은 늘 게으른데 마음만 급해서 절 언제나 괴롭히고 있습니다. 가을산님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전 지금 독감에 걸려서, 게다가 약 기운에 취해서 완전히 맛이 갔답니다.

ceylontea 2004-01-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잘 다녀오세요... 큰 기대를 하고 맞이하는 해인데... 바쁜 일상에... 그 의미를 느껴보실 틈도 없으신 것 같네요.. ^^
저도 어제 출근해서부터.. 정신을 차릴 수도 없고.. 스트레스 팍팍 받아서... 꿈에서까지 업무 연장이고....... ㅠ.ㅜ
빨리 일이 정리가 되서 정상궤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4-01-0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인도에 잘 다녀 오세요...아마 음식때문에 고생좀 하시겠는데요...하지만, 꾹 참고 드세요...다 몸에 좋은 향신료니까요... 저는 그 기간에 중국에 잠시 다녀오렵니다....그리고 사십이라는 나이...남으로 부터의 유혹에서는 물론이고 자신으로부터의 유혹에서 벗어난다는 <불혹>인데....아마도 가을산님은 무늬만 사십이실것 같은데요?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루피 많이 쓰지마시고요...늦었지만...생신 축하드립니다...

sooninara 2004-01-0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전 서른만 넘으면 인생에는 도통하게되고 뭐든지 다알줄 알았는데..
스물이나..서른이나..마흔에 가까워져도 아직도 어릴때처럼 철없는 저를 보고 실망스러워한답니다..^^
그래도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생긴것이 어릴때보다는 나아지는것이라 자위합니다

마립간 2004-01-06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덕분에 세계 사회 포럼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NGO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구가 비대해지거나 영향력이 생기면서 권력화하는 경향을 보이거든요. 이런 이야기 아세요. '천사가 악마를 이기기 위해 한참을 싸우고, 다 이긴 후에 자신을 돌아 보았더니 자신이 악마가 되어 있다.' 그리고 아마추어를 지향하던 올림픽도 과연 아마추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초심을 잃기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행 잘 다녀오십시오.
그나저나 WSF가 참가인원 75000명에 10개의 주제가 있는 forum인데, 2001년도 어떻하다가 만들어진 forum이죠. (바쁘신데 쓸데 없는 질문드려 죄송합니다. 다녀오신 다음에 여행기와 함께 답변주셔도 됩니다.)

가을산 2004-01-06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하... 아직 생일은 안되었어요. 어쨌든 수수께끼님 고맙구요, 중국서 싸~~스 조심하세요.
* 마립간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우리나라ngo들은 대부분 아직도 걸음마 수준입니다 - 재정적으로도, 회원 수로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내세울만한 것은 '무대뽀 정신'일 것 같습니다. 하하...
작년에 이라크에 구호활동을 다녀온 분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는데 - 일부 단체는 저도 통화를 했는데 - 세계의 내노라 하는 구호단체들이 정작 구호활동은 시작 못하면서 책상머리에 앉아 '안전! 안전!' 을 요구하고 현지에 가지도 않으면서 현지 상황을 리포트 하고 있었답니다.
구호 사이트에 가서 '무엇이 필요한지 (volunteer, donation)' 찾아보면 '돈'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좋게 말하면 그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테고, 나쁘게 말하면 '돈이나 내고 우리가 하는 걸 지켜봐라' 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name value는 있어 기부금은 엄청 들어오지요. 회원 하나가 '국경없는 의사회' 요르단 지회 사무실에 가서 (정작 의료진은 한명도 없는데...) 사무실 바닥에 대리석이 쫘악 깔린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후일담이 있었습니다.
 

동짓날이었던 22일 저녁 대전역 광장에서 노숙인을 위한 추모제가 있었다.

2년 전, 한 노숙인이 사망한지 몇일이 지나서야 발견된 것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된 행사인데, 그간 서울에서만 진행된 행사를 금년에는 대전서도 준비했다. 집계해보니 지난 3년간 길거리에서, 쪽방에서, 그리고 행려병자로 병원에서 죽은 사람들이 대전서만 모두 24명이나 되었다.

역전에서 이들과 함께 살면서 상담, 배식, 쉼터 제공, 진료 등을 해오던 여러 단체 사람들, 그리고 쉼터에 입소한 분들까지 함께 이 행사를 준비했다. 학생 노래패는 무보수로 노래를 불러주었고, 한 식당에서는 식이 끝나고 나눌 200인분의 팥죽을 기증해 주었다. 쉼터의 아저씨들은 작은 분향대와 컵에 담긴 초를 손수 만들었다.


행사를 한창 진행하던 중, 어떤 사람이(이 지역의 양아치중 한명) 진행자들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야 이곳에 늘 있었고, 이날도 어느정도 실갱이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니네들 다 돈 보고 이러는 거 안다. 자기돈은 딴주머니 차고 있을거다. 자기 자식들은 아파트까지 다 사주고 있을거다.' '니네가 이사람들에 대해 뭘알아!' '니네 부모형제가 죽었어도 차가운 길바닥에서 이러겠냐?' 등등..

모두들 갑자기 주목한다. 지난 3년간 쪽방지역의 진료센터에서 일해온 김간사가 이 사람을 말리고 식은 무사히 계속되었다.


 

그런데 생각거리는 이제부터다.

* 김간사, 열받다.

행사장 한쪽 구석에서 실랑이 하던 김간사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아저씨! 이쪽으로 와! 이리와서 나랑 얘기해요!' 하며 광장의 변두리로 그 아저씨를 잡아 끈다.

-- 대전의 노숙자 쉼터 담당인 원목사는 스테파노 수사님과 달리 괄괄하다. 가끔씩 맞고함을 치기도 한다. 원목사나 이목사 같은 분들은 IMF 당시 2개월간 직접 노숙을 하기도 했다. 이곳의 상근자들은 늘 취하고 거친 이들을 상대해와서 평소에는 조용조용하지만, 필요할 때는 한끝발씩 한다. 여기서 원 목사만 남자지, 이 목사, 김 간사, 이*영 간사 모두 여자다. 물론 훌륭한 남자 간사들도 있었는데, 이들만큼 오래 버틴 사람들은 없다.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들도 번쩍번쩍 안아올린다. 누가 여자를 약하다 하는가?


* 아저씨가 소리친 이유

 

이분은 알고보니 고아출신이었다. 참가한 학생 한명이 행사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열받았던 것이다. 다음은 아저씨의 말.


'나 고아출신이야. 나 사진 신물나게 많이 찍었어! 손님 오는 날엔 원생들이 동원되어 청소하고, 새옷 꺼내 입고, 과자박스, 자전거 앞에 두고 사진 신물나게 찍었어. 그런데 다음날 보면 그 박스, 그 선물들 다 없어졌어. 원장이 다 착복한거야. 너희도 이거 사진찍어서 교회같은 데 대문짝만하게 붙여놓고 돈이나 얻으려는거 아니냐?" “후원이나 지원금을 바라고 하는 헛껍데기 행사는 집어쳐라.”

“니들이 고아가 되어본 적이 있느냐? 니들이 노숙을 해 본 적이 있느냐? 니들이 이사람들 심정을 어떻게 아느냐?”

이분은 어려서부터 전시성 행사, 사진찍기 위한 행사, 위선적인 선행등을 신물나게 겪어왔던 것이다.


* 그래도 좀 봐주라

 

- 우리가 대전역 광장에서 행사를 한 것은 노숙인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있는 이곳에서 한 것이다. 저 사람들을 보라. 저사람들이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느냐?

 

- 후원을 바라서 하는 행사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 이들의 죽음을 알리고 이에 대한 관심과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면은 있다.

 

- 사진을 찍은 것은 학생이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지, 선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아까 열낸 김간사는 이들과 3년간 동고동락 했었다. 이사람들을 모르면 이 근방에서 지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아까 부모형제라면... 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부모 형제마저 외면한 자들을 수발들고 있다.

 

- 난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들이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나부터도 함께하지 않는다. (교회 안다니는 것이 이럴 때 요긴하게 쓰이다니! --;; )

 

- 내년에 행사를 준비할 때는 아저씨의 지적을 반영해서 대외적인 내용보다 좀더 당사자들 입장에서 내실있는 행사가 되도록 하겠다. (실재로, 이날 불러진 노래들은 너무 '고상해서' 노숙인들이 따라부르기 어려운 노래들이었다. 내년엔 노래방 기기라도 빌려 아저씨들이 마음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라도 싫컷 부를 수 있게 해볼까 한다.)

 

- 처음부터 제대로 봉사하는 것은 힘들다. 오늘 처음 무보수로 노래해준 학생들도, 온지 몇일 되지 않은 이*행 간사도, 행사 내용에 고민을 충분히 하지 못한 우리도 완벽하지는 못하다. 당연히 노숙자들을 당사자들만큼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통해 한걸음씩 서로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어설프더라도 실수가 두려워서 나서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쪽도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 좀 봐주라.


* 새 간사

 

김 간사가 지난 달 직장을 옮긴 후, 후임을 물색했는데, 일이 거칠고 주로 밤시간에 일해야 하는 것 때문에 지원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신학대학을 갓 졸업한 자가 지원을 해왔다.

두손들어 환영해도 모자를텐데 면접때 원목사님의 ‘왜 여기에 오려고 지원했나?’라는 질문에 ‘이론, 이상과 삶을 일치시켜보기 위해’라고 대답했다고 그만 원목사님이 퇴짜를 놓고 말았다.  --;;

몇일 후 다시 찾아와서 이번에는 ‘그냥 열심히 부딪혀 보겠다’고 했고, 이렇게 해서 이*행 간사는 진료센터의 새로운 간사가 되었다. 

 

이 간사,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이 났다는데..... 남자가 눈물났다는 것도 그렇고.... 눈물난 걸 내게 말하는 순진한.....  이 험난한 곳에서 얼마나 버틸지? 이간사 파이팅!


* 활동가

 

요즘은 간사를 활동가로 고쳐부른다. 나는 진지한 고민과 함께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존경한다. 아직 그들이 더 젊고, 경험이 적고, 생각이 짧더라도.

가진 시간과 재물을 전혀 나누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나 시간과 관심의 아주 일부만을 나누는 '독지가' 혹은 '지원자'들에 비해, 이들은 자신의 시간과 관심을 거의 모두 쏟아붇는다. 현장에선 가장 궂은 일들을 맡아 하면서도 가끔 얼굴을 내미는 '회원'이나 ‘지원자’들을 오히려 반가와하고 고마워한다. 이들의 열정이 없으면 많은 운동들이나 ‘꿈’은 그야말로 ‘몽상’으로 끝나버릴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활동가로 그들의 꿈에 대한 첫 실험을 한다. 이들이 실험에서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기를, 너무 큰 희생을 강요받지 않고 꿈의 실현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 서명

 

행사 한쪽에서는 노숙자들의 주거권을 청원하기 위한 서명을 받았다. 참가자나 행인들 외에 당사자들의 서명도 받았다.

그런데 또하나의 문제.

많은 분들이 한글로 이름과 주소를 적을 줄을 모른다. 눈이 나빠 적을 수 없다고도 한다. 한글을 안다 하더라도 주소난에 적을 주소가 없다!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들은 법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아니다.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 25번째?

 

추모제를 하는 중에도 광장 한쪽에선 노숙자 중에 머리를 다친 사람이 발생, 구급차가 왔다.(참 세상 좋아졌다!) 응급처치를 했는데도 의식이 혼미해서(다쳐서? 아니면 술취해서?) 응급실로 실어갔다. 그가 25번째 사람은 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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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3-12-29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없이 살다보니 이곳을 빼먹었군요...일상과 생각이라는 타이틀을 왜? 그냥 지나쳤었는지...저 자신이 이해가 안되니 가을산님도 이해하시기 힘드시겠죠? 이제는 늘상 들러서 일상을 늘 점검하고 가겠습니다...

sooninara 2003-12-3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구제는 나라에서도 못한다는 말이 있죠..성장기에는 나누기보다는 파이를 키우기위해서..
지금같은 불황에는 나살기에도 바빠서... 선진국이라는 이름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름만 선진이라고 하지말고 실천이 뒤따르는 나라가 되려면 얼마나 지나야할지...
애쓰시는 여러분..힘내세요...
 
 전출처 : 마립간 >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anti feminist)다.-2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anti feminist)다. - 계속 말려주세요.

 # 현재 여성의 불평등이 있다면 어디에서 왔을 까요. 아마도 제 생각은 교육과 직업(경제력)이 아닐까요. 수렵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이 경제력이고 이 이유 때문에 불평등한 대우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여성이 가장 불평등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직장을 얻고 승진을 하는 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직장문화에 여자가 적합하지 않은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 부분만큼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직업 기회에 있었어도 청년층을 기준으로 하면, 맞는 이야기이지만, 노년층을 이야기하면 또 달라집니다. 노인 여성은 식당에서 일을 하던, 파출부, 아기보기 등 직업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노인 남성은 아파트 경비원 이외에 특별히 떠 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 저의 집에서 저와 여동생은 똑같은 교육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간혹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저와 여동생 중 하나만 교육을 받아야 된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제게 기회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잠재적인 이런 불평등은 잠재적인 것으로 끝났습니다. 아마 다른 가정도 비슷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에는 경제적 여유가 아주 없지 않다면, 아들 딸 구별하지 않고 교육의 기회를 주리라 생각합니다.

 * 여동생의 에피소드 : 동생이 ‘H여고’를 다닐 때였습니다. 교감선생님 방에서 전화를 대신 받게 되었는데, ‘H고’라고 말하니, 교감선생님이 다음부터는 ‘H여고’로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H 남자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동생표현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감은 어색했지만.

 * 제가 학생회 활동을 할 때에는 여성부가 있었습니다. 진짜 하는 일 없는 부서였습니다. 지금은 여성부가 없습니다. 지금 학과에 여학생이 절반 정도된 이유도 있겠지만, 여학생이 학생회 임원으로 참가하니까요. 그 당시 임원에 여학생이 적었던 이유가 학생수도 적었지만, 남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임원으로 참가하라고 권유해도 여학생들은 거절하던군요. 공부나 하겠다나. 어째든 여학생부 여자 임원 한명 뽑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 이것이 남자때문일까요. 여자때문일까요.

 *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 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어봤지요.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 시중들랴, 시집 눈치를 보랴, 뭐하러 결혼합니까. 여자의 답변이 남편 비위 조금만 맞춰주면, 평생 먹여 주잖아요. 그리고 얼마 후에 결혼했습니다. 저는 여자와 선보는 자리에서 결혼해서 나는 아내 비위맞추면서 살고, 여자가 나를 평생 먹여 주는 그런 사람이 좋다고 농담했다가(절반은 진담임) 거절당했습니다.

 * 결혼에서 여자는 자신보다 조건이 좋은 남자(학벌, 체격, 수입)을 선택해서 남자에게 의지한고, 남자는 자신보다 조건이 조금은 나쁜 여자와 결혼하여 여자를 지배하려는 것은 나만의 편견일까.

 * 제가 좋아하는 여성 중에 소피 제르맹(프랑스 여류 수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은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이 분을 소개한 분은 독신으로 산 이유를 작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 당시의 남자는 능력있는 여성을 아내로 맞이할 만한 포용력 있은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모른 것이고, 저 같으면, 제르맹에게 구혼한 남자가 많았지만 자신에 걸맞는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제르맹이 결혼을 거절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참고서적>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존 그레이 지음, 김경숙 옮김/친구미디어

우리 부부는 너무 달라요/메이홀 부부/네비게이토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바다출판사

성의 계약/헬렌 피셔 지음, 박매영 옮김/정신세계사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매트 리들리 지음, 김윤택 옮김/김영사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에스테 빌라 지음, 조선희 옮김/황금가지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anti feminist)다. - 다음 편은 사회를 보는 눈에 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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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3-12-12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누구든 자기가 겪은 일을 중심으로 선입관이 심어지고, 그런 선입관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기억을 선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봅니다.
저역시 저의 입장에서 선택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 전 84학번인데, 저희 학년에서 여학생은 30명으로, 전체의 약 25%였습니다. 보통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이 딴짓 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해서 공부를 잘한다고 불평하는데, 저희 동기들은 교내 행사 참가 비율이나, 동기들 챙기는 것, 동아리 활동에 여학생들이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저도 동아리 활동을 매주 토요일 나가던 노숙자 진료를 포함해서 5개 이상 했습니다. 학생회의 학보 편집국장도 여학생이었고, 과대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학생 혹은 여의사라서 '배려'를 받고,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저희 동기들의 공통된 생각이었습니다.

* 직장과 관련된 부분에서, 여성으로서 가장 어려운 시기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입니다. 결혼하고 임신, 출산, 육아가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남성의 경우, 물론 결혼이야 하지만, 직장에서는 가장 active하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시기이고, 가정에서도 이에 집중할 수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반면 여자 수련의의 경우, 몇일씩 당직 서고 나서 집에 가면 먼지 쌓인 집과 빨래, 다림질, 상차림이라는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편은 몇일만에 돌아온 마누라가 차려준 음식을 먹고싶어하지요. 임신하고 출산 휴가 받고, (출산휴가가 실재로 미처 한달을 채울까말까 하는 것, 선생님도 아시지요? 산전휴가? 그림의 떡입니다. 제 친구는 진통이 시작될때까지 일하다가 과장님께 인사하고 산부인과로 직행했답니다. 저도 예정일 전날까지 근무했습니다.) '시댁의 가풍'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치스럽거나 거추장스러운, '여자니까 역시 activity 떨어진다'는 핀잔을 받기 일쑤입니다. 이것은 남자들이 군대 다녀오는 것 이상으로 handicap이 됩니다. 저도 출산으로 레지던트 지원을 1년 늦추어야 했습니다.

* 선생님께서 예로 든 노년의 취업의 경우, 선생님이 든 직종을 좀 보세요. 모두다 강도 높은 육체노동입니다. 사무직이나 명예직의 경우 노년층에서 어느쪽의 취업 비중이 높을까요?

* 선생님께서 예를 드신 '비위맞추기를 통한 호구지책'에 대해서는 저도 거부감이 듭니다. 이렇게 의존적인 사람은 남편에게도 부담되고, 만약에 남편이 일찍 죽기라도 하면, 가장 대책이 없는 부류입니다. (이 분류는 저희보다 윗 세대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습니다. 그분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요.)

* 결혼에서 여자는 자신보다 조건이 좋은 남자(학벌, 체격, 수입)을 선택해서 남자에게 의지하고, 남자는 자신보다 조건이 조금은 나쁜 여자와 결혼하여 여자를 지배하려는 것은 나만의 편견일까.
==> 심정적으로는 대단히 못마땅하지만, 진화심리학상으로는 옳은 말입니다.
인간은 임신, 출산, 육아에 다른 동물보다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자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여자는 육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남자에게 수입을 의존해야 했고, 따라서 여성의 배우자 선택에서 물질적인 안정성을 중시하는 ''성향''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편, 남자의 경우는 과연 이 아이가 나의 아이인가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여자의 경우, 남자가 외도를 할 때 남자가 상대방 여자에게 '마음'을 주었는가 하는 것에 촉각을 세운다고 합니다. 마음 가는 곳에 물질이 흘러갈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주었다는 것은 조강지처에게 있어서는 큰 위협이 된다는겁니다.
남자의 경우, 여자가 외도를 할 때 '몸을 주었는가'에 촉각을 세운다고 합니다. 여자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유전자를 계승하지 않았는데, 물질적 support하는 손해를 보지 않도록 심리적으로 진화한거라나요....

덧붙이고 싶은 점은, 우리 사회, 우리 인류가 어느정도라도 물질적인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불과 몇 세대가 되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남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여유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옳다도 생각하는 것과, 진화에 의해 살아남은 우리의 성향 사이에는 큰 gap이 있습니다.
이를 '수천 수만년 내려온 우리의 성향이니 그대로 수용하자'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옳지 않고, 더이상 물질적, 물리적 제약이 문제되지 않으니 이런 관습을 개선하자'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각자의 선택 또한 자신의 입장에 따른 선호에 따라 좌우되겠지요.

저런, 쓰고나니 또 길어졌네요.

가을산 2003-12-1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려달라니 말려드리고는 있지만, ^^;;
사회 활동에 있어서 약간의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레지던트 수련을 마친 이후로는 여의사라서 그다지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인의협은 물론이고 지역 의사회나 개원의 협의회, 노숙자 진료소, 자원봉사 동호회 등의 활동에도 문제 없었습니다. (-- 쓰면서 문득, 승진이나 경쟁, 돈벌이와 별로 관련 없는 분야라서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단 한번 '난 동기 여학생을 친구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들은 그저 동기일 뿐 '친구'는 절대로 될 수 없다.'라는 해괴망칙한 말을 하는 후배가 있기는 했습니다. 아마 무언가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의 문제는 가정 내에 있습니다. 가정 내에서의 역할에 대한 구분의 벽은 상당히 높습니다. 게다가 그런 압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또하나의 여성입니다. 그 지극한 사랑의 결과, 당장의 불이익이 며느리나 여자 형제에게 가겠지만, 결국 그 부담이 아들에게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ceylontea 2003-12-1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업무가 너무 바빠서 좀 정신이 없고... 알라딘에 들어올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만...
위의 글을 일고 간략하게 몇자 적을까 합니다.
저 또한 패미니스트도 아니고, 여성운동 등등을 좋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인간이고 싶고,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싶을 뿐입니다.
저에게는 딸이 있습니다. 제가 딸 이름을 지을때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흔히들 들었을때.. 아.. 여자애구나 싶은 그런 이름은 짓고 싶지 않았습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지현이라 지었는데... 후보로 올라온 이름 중에서 그 이름이 그나마 제일 중성적인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좀더 중성적인 이름을 원했었지만... -,-
저는 제 아이가 인간으로 반듯하게 자라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게 성장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줄 것입니다.

마립간 2003-12-13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에 대해 놀란 것 3가지

* 첫 번째 놀란 일 - 여성이라는 점, 관심분야가 같다고 했을 때 당연히 남자로 생각했습니다. 저의 선입견이었습니다.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데 까지 시간이 걸린 것은 주부의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끼어들기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 놀란 일 - 의사라는 점. 의사는 타의, 자의에 의해 관심분야 및 인간관계가 제한되는데, 그외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것에 관심있다는 것은 normal variation이지, extraordinary가 아님을 주장하고 싶지만.)
세 번째 놀란 일 - 어떤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다.' 라는 글이 좀 더 길게 쓸 예정이었지만, 남녀와 관계없는 글로 짧게 3편을 썼습니다. 참고서적은 (저는 재미있게 읽기도 했었지만,) 부부가 같이 읽으면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입니다. (아마도 이책들을 읽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고 계시겠지요.)
 
 전출처 : 마립간 >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anti feminist)다.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anti feminist)다. - 누가 좀 말려 줘요.

 남녀사이의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입니다. 과연 남자는 우월한 지위를 여자보다 더 누리고 있는가. 그럴 수도 있겠지요.

 * 실화1. 남녀의 대화

 남자 ; 남자가 우월한 지위를 과거에 누렸던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육체적 노동 능력, 즉 근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과학의 발달로 육체적 노동보다는 정신적 노동이 강조되면서 남녀평등이 강조되었습니다. 아마도 남녀의 평등은 과학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예를 천재지변 등의 사건으로 다시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게 되면, 남녀평등은 후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 남자의 우월적 지위는 과거의 특히 조선시대의 유교적 전통 때문에 불합리하게 이루진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남녀평등은 평등에 대한 교육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 실화2. 남녀의 대화

 여자 ; 남자는 여자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요. 제가 아는 분은 결혼 후 아내가 직장에 나가겠다고 하니, 그러면 자신(남편)이 가정 일을 하겠으니 당신(아내)이 밖에서 돈을 버는 것이 좋겠다고 했답니다. 이것이 아내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인가요.

 남자 ; 왜 여자들은 남자들이 집안일을 하고 여자가 밖에서 돈을 벌면 안 되는 것이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직장의 어려움(상사에 대한 굴욕, 과중한 업무)을 감수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남자와 같이 일을 한다는 의미라면 그리고 여자들이 개인의 재미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와 같은 직업의식을 갖고 일에 임한다면, 남자가 가사 일을 하고 여자가 나가서 돈을 벌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 우리나라에 ‘여성부’라는 정부 부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부 부처의 영문표기가 ‘Ministry of gender equality’라고 합니다. 과연 이 정부부처가 남녀평등을 위한 정부부처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왜 여성부 장관은 여성이어야만 하는가? 이에 대한 근본의식에 여성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다고 느낀다면 이는 옳은 인사일 것입니다. 불평등에 처해 있는 사람의 실질적인 불만을 잘 반영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솔직하게 "Ministry of women'으로 하고 싶습니다. 왜 남자만 군대에 가야 하는가? 남자가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동안 여자는 학업을 하던, 직업에 종사하던 군 복무하는 남성보다 선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여성부가 이를 남녀 불평등으로 평가하고 개선하려 했던가요. 글쎄요. 남자로서 군대문제가 단편적이지만 여성부가 남자의 역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요.

 * 여자가 짐을 나른 적이 있습니다. 전철역 직원이 짐을 택시 승차장까지 옮겨 주고, 택시 기사가 트렁크에 짐을 실은 다음 직장 빌딩 앞까지 옮겨주고, 빌딩 경비 아저씨가 사무실까지 짐을 옮겨주었습니다. 만약 남자였다면 이런 대우 받을 수가 있을까요. 물론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준 것은 남자들입니다. * 남자 대학생이 같은 학과 여학생 3명과 어디가기 위해 택시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기 빈 택시가 오네요. 여학생 3명이 ‘택시’라고 소리치며 달려 택시에 올라탔습니다. 뒷좌석에 3명이 나란히 앉았습니다. 그 뜻은 남자가 앞자리에 타라는 뜻이고, 다음의 뜻은?

 * 다음은 신문의 기사입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여자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남자가 여자 보다 힘이 센 것은 여자는 몸의 35%가 근육인데 비해 남자는 41%가 근육이라는 이유밖에 없다. 여자는 십년마다 운동능력이 20%씩 감소하는데 비해 남자는 30%씩이나 줄어들고, 건강한 60세의 여성은 20살때의 운동량의 90%를 나타내지만 60세의 남성은 60% 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여자는 남자보다 산소흡수량이 적고, 에테르 마취에서 치사율이 두배나 적고 체내의 납 섭취량도 적으며 하반신이 강하고 근육내의 glycogen 소모량이 적다. 여자가 남자 보다 평균 수명이 긴 것은 생물학적 우월성을 입증하고 있다.]

 * 과거의 모계사회 - 부권사회, 이후 부계사회 - 부권사회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모권사회가 올 수도 있겠지요. 특히 생물학적 우월성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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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3-12-12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 또한 여성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여성'으로 존중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동등하게 존중받을 것을 원합니다. 따라서 '여성운동'이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는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함께, 마립간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책임있는 주체로 스스로 서야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현재의 우리 사회와 가족체제가 스스로 책임감 있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위의 몇몇 사소한 예로 인해 상쇄되지 않습니다.

둘째는, 당사자 운동도 좋지만, 만약 제가 여성 당사자로서 운동을 하게 된다면, 제가 하는 다른 활동과는 달리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동안 쌓인 응어리들이 '감정적'으로 projection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첨1. 여성운동 문제를 두고 남녀간의 대결모드로만 생각하시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많은 경우, 여권의 침해자가 같은 여자인 경우도 많습니다. '관습과 관행'이라는 이름의 벽도 있구요. 여성 자신이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혹은 자신의 상태에 안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첨2. 택시에 여성 세명이 뒤에 탄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뒤에 세명이 타야지 남자분이 뒤에 끼어타야 하나요? 택시비를 내라고 할까봐요? 오바 같습니다.

첨3. 오랜만에 들려서 아래의 의료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글 정도면 의료 제도를 상당히 단순화시킨 것이기에 저도 의견이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평소 우리 나라 의사들, 의료 단체들 간에 의료제도와 의료 행위에 대한 견해와, 같은 사안두고 내리는 해석이 참 너무도 다른 것을 봅니다. 이에 대한 답글은 다시 드리겠습니다.

마립간() 2003-12-11 17:30 가을산님의 첨언에 대한 답변

첨1. 저는 여성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의 위치가 그럴 시기가 지났습니다. 저의 친구들을 보더라도, 남녀의 불평등을 떠나 어느 정도 현재의 상황(아이들이 초등학교 내지 유치원에 다니고 있음.)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에 적대적 감정을 떠난 상태입니다. 앞서 적은 내용을 여자와 이야기해도 논쟁이라기보다 서로가 수긍하는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도 여성입니다.

첨2. 그 여자에게 제가 물어봤습니다. 그런 행동이 택시비를 남자가 지불해야 된다는 뜻이냐고. 그 여자는 그렇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뒤에 부언을 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아직도 당연히 남자가 경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반응의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이런 에피소드를 어디까지 일반화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 여자는 책을 운반할 때, ‘당연히 남자가’, 설거지를 할때는 ‘남녀 공평히’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남녀 불평등보다는 애교였지요. 오랜 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제가 남녀의 이야기를 처음 주제로 삼은 것은 남녀이야기가 보편적인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생 이후, 전공과목이 다른 친구와 만나면, 옛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통하는 것 같다가 전공과목이나 직업이야기가 나오면, 대화가 안 됩니다. 남녀이야기는 전공과목에 상관없는 이야기 거리였지요.
 

큰아들이 이번에 초등학교를 졸업합니다.

본인의 20년 후의 모습에 대해 쓴 것과 함께, 부모가 바라는 20년 후의 모습도 타임 캡슐에 담아 20년간 보관한다고 하네요.

제가 적은 내용입니다.

어머니가 바라는 20년 후의 나.

33세의 건희는...

-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심이 되어줄 가치관, 목표 혹은 방향을 찾았기를,

- 이런 가치관과 비젼을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났기를 바랍니다.

-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적성과 가치관에 맞는 일을 찾았거나, 찾기 위해 잘 준비하고 있기를 바라고,

- 자신의 꿈의 실현과, 가정과 사회일원으로서의 책임을 지혜롭게 조화시켜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궁극적으로는 자신도 행복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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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3-12-11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쓴 걸 읽다보니 일부는 제가 현재도 갈등하고 있는 부분이 섞여들어간 것 같네요.
특히, 비젼의 공유 문제,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주어진 역할에 따른 책임 문제에서.
전 가끔은 우리 아이들에게 만약 정말로 앞뒤 안가리고 평생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거나,
서로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자를 만날 바에는 차라리 결혼하거나 아기를 갖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이상 우리 세대처럼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결혼하고 아기를 갖는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습니다.

ceylontea 2003-12-1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딸에게 바라는 것이 비슷하네요... 아마 저희 세대가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바라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