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크릿 닥터 - 내 친구가 산부인과 의사라면 꼭 묻고 싶은 여자 몸 이야기
리사 랭킨 지음, 전미영 옮김 / 릿지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쓴 저자의 가장 큰 미덕은 어느 하나의 가치가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각자가 모두 다른 생각과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기꺼이 인정하고, 그러므로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는 걸 계속해서 말해준다. 출산에 대해서도 그렇다. 본인이 아이를 낳았고 거기에서 기쁨을 크게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는 것과 낳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린 일이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아이를 낳는 걸로 선택했다면, 거기에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지 않는 길을 가기로 했다면, 그 길에는 또 그 길 나름의 재미와 의미가 있다, 고 말해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현실에서 결혼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사 본인이 행복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너도 결혼해야지'를 얘기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되지' 같은 말을 지껄여대는데, 이 닥터는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항문 섹스를 너가 하고 싶어? 그러면 해. 넌 뭘 원해? 그렇다면, 니가 원하는 대로 해. '내가 해보니까 진짜 좋더라' 하면서 좋은 사람인 척 강압하는 일도 저자는 하지 않는다. 매번 선택의 기로에서 니가 니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선택하라고 말해주는 것이 내게는 참 좋더라.



부모가 되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 상황이 당신을 선택할 수도 있다) 도로 교차로에 서는 것과 같다. 한쪽 길은 그 나름의 기쁨과 슬픔이 있는 아이 없는 생활로 통한다. 당신이 그 길을 택했다면 더 자주 여행을 하고, 더 많은 시도를 하고, 소녀 같은 외모를 간직하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 것이다. 한편 어머니의 길을 선택하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을 기쁨의 순간을 자주 만날 것이다.

어머니가 되기를 '권장'하느냐고 환자들이 물어 오면, 나는 아이를 갖는 것을 조금도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나는 두 길 중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아이 없는 길을 선택했다면, 혹은 이 우주가 내게 아이를 낳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과는 아주 달랐겠지만 그래도 분명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미 나는 한 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딸이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건 흑백,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다른 것일 뿐이다. (p.295)



내일모레 마흔이 되지만, 이런 내게도 여전히 산부인과는 가기 꺼려지는 곳이다. 산부인과적 질병이 의심된다해도 자꾸만 망설이게 된다. 가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들어서서 의사 앞에 다리를 벌리는 순간은, 몇 번의 진찰 경험이 있다해도 여전히 낯설고 부끄럽다. 어서 빨리 이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남자 의사여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혹시나 싶어 여자 의사를 찾아가보기도 했지만, 여자 의사 앞에서도 다리를 벌리고 내 안을 보여준다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두 눈을 질끈 감게 되는 일이다. 그러니 사소한 내 안의 증상들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병원에 간 김에 닥터에게 질문한다해도, 내가 궁금한 모든 것을 질문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런 질문들은 아무리 오랜 세월 친하게 지낸 친구라 해도 공유하기 어렵다. 내 밑에서 나는 냄새, 내 밑에서 나오는 분비물. 이게 과연 정상적인건지, 다른 사람들은 어느정도인건지, 대체 이걸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이거 괜찮은건가? 다른 사람들도 이러나? 라는 생각만 한 채 매일매일 씻고 속옷을 갈아입는 게 전부.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해준다. 냄새가 나는 것도, 분비물이 나오는 것도 지극히 다 정상이라고 말해준다. 그곳에서는 냄새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 이 책의 저자 '리사 랭킨'은 말해준다.



하지만 여성들이여, 질에서는 냄새가 나게 되어 있다! 존경하는 이브 엔슬러가 쓴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라. 엔슬러가 여성의 질에 대해 한 역할은 마틴 루터 킹이 시민의 권리에 대해 한 역할과 맞먹는다.


내 질은 씻을 필요가 없어. 씻지 않아도 좋은 향기가 나니까. 꾸밀 것 없다고. 보지 냄새가 나는 그곳에서 장미 꽃잎 향기가 난다는 남자의 말을 믿지 마. 남들은 깨끗이 씻고, 질에서 욕실 스프레이나 꽃밭 냄새가 나게 하려고 애쓰지. 꽃, 딸기, 비 냄새를 풍기는 그 모든 질 세척 스프레이들로 말이야. 하지만 나는 내 보지에서 비 냄새가 나길 바라지 않아. 기껏 생선을 조리한 뒤 비린내를 없애겠다고 박박 씻어버리다니. 나는 생선 맛을 느끼고 싶어. 그래서 생선 요리를 주문하는 거야.


오, 자매들이여! 거기선 음부 냄새가 나게끔 되어 있었던 것이다! (p.85)




음부의 냄새와 분비물, 임신과 출산, 생리, 섹스, 오르가슴, 유방, 폐경에 이르기까지, 산부인과에 대해 다룰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리사 랭킨은 다 대답해준다. 심지어 항문섹스까지. 자위행위에 대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자위행위란 숨어서 해야 하는, 누가 보면 안되는, 어쩐지 부끄럽고 나쁜 짓, 같은 인식을 어릴때부터 받아왔는데, 리사 랭킨은 자위행위를 즐기라고 말한다. 심지어 어떻게 즐기면 되는지까지 인용해주더라. 그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쁘다고, 숨겨야 한다고, 이런 나를 아무도 모르게 해야한다고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을, 리사 랭킨은 드러내놓고 당당히 말한다. 너가 그걸 원한다고? 그러면 해! 너는 네 몸을 사랑해야해!! 이 책을 읽고나니 나도 이제 바이브레이터 하나쯤은 구매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구비해놔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즐기고 싶을 때 즐길 수 있도록. 하아- 그렇지만 나는 지금 아빠,엄마,남동생과 같이 살고 있고, 그렇다면 바이브레이터가 식구들 누구에게 들킬 위험이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식구들이라면, 보수적인 우리 부모님들이라면, 발견하는 순간 멘탈에 붕괴가 찾아오실 듯....게다가 그걸 눈으로 발견하지 못한다해도, 내가 집 안에서 그걸 쓰다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내가 잘은 모르지만, 그거...소리도 나지 않나? 그렇다면 바깥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을까? 역시, 독립이 먼저인 걸로.....




일전에 포르노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것이 그릇된 성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걱정된다고 했던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역시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 모든 여성들은, 심지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완벽한 몸을 갖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몸에 대해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다. 가슴이 너무 처진 게 아닌가, 허벅지 셀룰라이트는 어쩌지, 내 그곳은 너무 흉측하게 생긴 게 아닌가 등등. 때때로 어떤 여자들은 사귀는 남자들로부터 몸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하더라. 개놈들.. 누군 할 말이 없어서 안하고 있는 줄 아나..

어쨌든, 리사 랭킨은, 우리의 몸은 하나하나 다 아름답다고 말해준다. 자신이 산부인과 닥터로서 만나는 몸은 바로 여러분들의 몸이라며. 다들 그렇게 생겼다고.



'에어 브러싱' '포토샵' '수술'이라는 단어들을 당신이 왜 떠올리지 않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포르노에 나오는 여성들과는 음부의 생김새가 다르다. 포르노 스타들은 너나없이 음순이 깔끔하고 작다. 처지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는 음순 위로 음모가 단정하게 한 줄로 나있다. 그녀들의 분홍빛 음순은 내가 현실에서 보는 것처럼 거무튀튀하지도, 길지도 않다. 자세히 뜯어보면 알겠지만 그들에게는 셀룰라이트, 사마귀, 출렁이는 뱃살, 두꺼운 허벅지, 수술 흉터도 없다.

음… 이제야 뭔가 수상하다고? 그렇다. 포르노에는 내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진짜 모습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현실 속의 그곳은 생김새, 크기, 색깔이 모두 다르며 눈송이처럼 각자 고유한 모습이다. (p.63) 




내가 내 자신에 대해 몰랐던 걸 알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리사 랭킨은 끊임없이 '너는 소중한 사람이다' 라고 말해준다. 네가 가장 원하는 걸 신중하게 생각해서 선택하라고 말한다. 리사 랭킨은, 모성이란 것이 아이를 낳는 순간 똭-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말해준다. 아이가 예쁜 것과 별개로 우리들은 모든 걸 버리고 도망가고 싶어지고 우울해진다는 것까지도.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자들이 세상에 얼마 있지 않다는 것도 말해준다. 굳이 내가 어디쯤에 서있는건지 확인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여자들이 어떤 걸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있는지 아는 건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리사 랭킨은 본인과 본인의 친구들, 친척들, 그리고 자신이 만난 환자들의 경험사례를 계속해서 들려준다. 그리고 끊임없이 책을 읽는 독자들, 특히나 음부에 대해 수치스러워하고 숨기고싶어하고 민망해하는 여자들을 격려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여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여자가 여자에게 선물하기에도 맞춤한 책이다. 유용한 정보 또 안도감을 포함해서 재미까지 있으니까. 그러나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쌍놈이 되지 않기 위해 남자들도 읽어야할 책이다.


밑줄 그은 부분이 아주 많은데, 그건 밑에 밑줄긋기로 옮기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던 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트윗에서 누가 이 부분을 인용한 걸 보고 읽기로 결심했더랬다. 가슴이 많이 아플테지만, 다같이 이 부분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는 환자 대부분이 소말리아 난민 여성인 보건소에서 일한 적이 있다. 환자 중 대다수가 어린 시절에 통과의례의 일종으로 성기를 훼손당한 상태였다. 소말리아 등 일부 아프리카 문화권의 여성들으느 사춘기 이전에 음순과 음핵을 절단하는 의식인 '할례'를 치른다. 소변 배출을 위해 성냥개비 두께의 구멍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모두 꿰매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아야 성인 여성으로 인정받고, 다른 소녀들의 성기 절단 의식에 참여할 수 있다.

내가 만난 환자 대부분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적 의례를 옹호했다. 나도 자문화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의료 종사자로서 또 페미니스트로서 그 의식이 야만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다행히 미국에서는 여성 성기 절단이 불법이지만 음성적으로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이주 여성들을 교육하고 딸들에게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성기 절단을 당한 여성도 성관계와 출산이 가능할까? 그렇다. 하지만 아름답다고 할 만한 장면은 아니다.

성기 절단을 경험한 소마야는 남달리 의식이 깨어 있는 소말리아 여성이었다. 결혼을 앞둔 그녀는 첫날밤을 치르기 전에 수술로 막힌 부분을 열어 달라며 나를 찾아왔다.

"머리에 멍이 들긴 싫거든요."

무슨 소린지 어리둥절했다. "멍이라고요?" 음부에 멍이 든다면 그래도 이해가 되지만 왜 머리에?

"네, 맞아요. 첫날밤에 남자들이 그런 식으로 하거든요. 여자를 벽에 기대 세워 놓고 거기가 찢어져 열릴 때까지 음경으로 밀어붙여요. 난 찢어져서 열리는 것도 싫고 머리에 타박상을 입는 것도 싫어요." 그녀는 감정을 전혀 내비치지 않고 건조하게 말했다. 반면에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성기 절단 여성은 겨우 소변을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구멍만 남겨진 상태로 질이 닫혀 있다는 것을 통해 남편과 시집에 성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는 중매결혼에서 신부에게 요구하는 필수 조건이다. 남자는 첫 성관계를 할 때 흉터 조직을 힘으로 찢어서 막힌 부분을 연다.

일단 질이 열린 뒤 찢어진 상처가 아무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성관계를 하면 질은 항상 열린 상태가 된다. (그때 여성들이 견뎌야 하는 극심한 고통을 떠올리면 오금이 저린다.) 질이 열린 여성은 임신이 가능하며, 출산한 뒤에는 조직 파열로 인해 대개 질이 더 넓어진다.

당연히 성기 절단의 후유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결한 절단 기구 사용 등으로 인한 합병증 탓에 죽는 걸 용케 모면한다 해도, 많은 여성들이 만성적인 요로감염증, 성교통, 불감증, 누공(질과 방광 사이, 요도와 질 사이, 직장과 질 사이에 뚫린 구멍. 그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것은 직장과 질 사이의 구멍이다. 거기 구멍이 뚫리면 질을 통해 대소변을 흘리게 된다)에 시달린다. 성기 절단 합병증은 아기한테도 영향을 미친다. 폐쇄분만으로 인해 태아가 해를 입거나 사산될 수 있다. (p.70-71)

면도칼은 털을 절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표피층을 깎아 버리기 때문에 피부에 상처를 낸다. 그러면 우리 몸은 상처 입은 조직을 치료하기 위해 그 부위로 향하는 혈액량을 늘리고, 이 때문에 피부가 마치 화상을 입은 털 뽑힌 거위처럼 된다. 또 주름진 모낭들이 깎이고 손상돼 피부가 울퉁불퉁해진다. (p.53)

이제 사십 대에 접어든 나는 내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 느낌이 즐겁다. 우리 사회는 성생활을 젊음이나 아름다움과 결부시키지만,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성으 ㅣ완전한 풍부함을 진정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남들이 기대하는 얼굴을 떨쳐 버림으로써 참된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진정한 성적 황홀감을 느낄 수 있는 잠재력이 그제야 눈을 뜬다. 내가 그 길로 막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 단순히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어떻게 합치할 수 있는지 탐색하는 길로. (p.103-104)

섹스와 오르가슴은 건강에 좋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 (만세!) 분명히 그렇다. 아찔한 쾌감을 주는 것 외에도 섹스, 오르가슴은 물론 자위행위도 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저명한 성 연구자이며 뉴저지 주립 대학교 명예교수인 비벌리 휘플(Beverly Whipple)박사는 섹스의 검증된 이점을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장수에 도움이 된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섹스를 하면 심장병과 뇌졸중 위험이 낮아진다
-유방암 위험이 낮아진다
-면역 체계가 강화된다
-숙면에 도움이 된다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
-체력이 좋아진다
-자궁내막증 발병 위험이 줄어든다
-생식 능력이 확장된다
-생리 주기가 규칙적으로 유지된다
-생리통이 완화된다
-조산 위험이 낮아진다
-만성 통증이 누그러진다
-편두통이 완화되는 경우도 있다
-삶의 질이 높아진다
-우울증 위험이 감소한다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자존감이 높아진다
-파트너와의 친밀성이 강화된다
-정신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


이런 증거가 산처럼 쌓여 있다. 오르가슴은 그저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유익하다. (p.140-141)

(침대에서 여자들은 어떤 걸 원할까? 에 대한 대답들 중)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대부분의 여성에게 섹스와 사랑은 하나로 얽혀 있다. 섹스 자체를 위해 섹스를 즐기는 여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여성에게 섹스는 사랑의 표현이다. 소중히 여겨진다고 느끼지 못하면 당신이 아무리 원해도 여성의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를 다정하게 대하라. 그러면 쾌락은 자연히 따라 올 것이다. (p.143)

우리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모욕감을 느끼지 마라. 일부 축복받은 여성들은 야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절정에 달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삽입성교만으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우리의 오르가슴에만 에너지를 쏟는다면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만족을 안겨 줄 많은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우리를 압박하지 마라. 많은 여성들은 테크닉이 뛰어난 파트너와 섹스를 하면서도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다. (p.145)

행위가 끝나면 우리를 꼭 껴안아라. 몸을 홱 떼고 스포츠 중계를 보러 가지 마라. 우리는 섹스할 때 무방비 상태로 자신을 드러냈고 섹스 후에는 탈진한 상태가 되었다. 행위가 끝나도 당신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다. 우리를 안고 조금만 더 곁에 있어 달라. (p.147)

나는 유효성이 증명된 음핵 자극을 통해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편이고 안타깝게도 삽입성교만으로 오르가슴을 느끼는 30퍼센트에는 들지 못한다. 샐리를 비롯한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이 황홀경에 빠지는 걸 보고 한때는 나도 삽입성교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의대에서 공부하던 시절처럼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가능할 줄 알았다.
(중략)
그 일로 나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오르가슴은 자의로 만들 수 없다는 것. 그건 하려고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다른 많은 일들처럼 그저 순응할 수밖에 없다. 손에 넣으려 애쓰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 (p.149-151)

질 분비물이 골칫거리라는 건 잘 안다. 분비물은 팬티를 더럽히고, 끈적끈적 불쾌한 느낌을 주고, 음모에 딱딱하게 말라붙는다. 도대체 분비물은 왜 나오는 걸까? 우리는 왜 그런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질은 입이나 코처럼 점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점막은 세균이 득실대는 외부 세계와 우리 몸의 섬세한 내부 기관 사이에 놓인 출입문이다. 질은 해야 할 일이 있으며, 질 분비물은 그 중요한 기능의 일부를 담당한다.
분비물은 질을 깨끗하게 만든다. 분비물이 몸 밖으로 나오면서 질 속의 늙은 세포들을 제거해 새롭고 건강한 세포들이 생겨날 자리를 만든다. 또 분비물은 질의 감염을 막고 건강한 환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바람직한 산성 pH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피부의 수분을 유지하는 기능도 있다. 분비물이 없다면 질이 말라서 가렵고 아플 것이다. 그러니 질 분비물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고맙게 여기자. 모든 존재에는 다 이유가 있다. (p.179-180)

이 문제는 그냥 내 말을 좀 들었으면 좋겠다! 마사지를 받은 뒤 유산 했더라도 마사지가 원인은 아니다. 유산은 그냥 벌어지는 일이다. 당신이 한 어떤 행동과도 무관할 가능성이 높다. 비정상적인 아기를 가진 채 계속 배가 불러 가지 않도록 자연이 당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p.243)

입덧의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HCG 라는 체내 호르몬 수치 상승과 관련이 있다는 게 주된 이론이다. 원인이 뭐든 간에 입덧은 임신 초기에 나타나는 건강한 신호다. 입덧이 없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입덧을 하는 것은 좋은 징조다. 입덧을 한 여성은 유산 또는 사산의 가능성이 더 낮다. 그러니 밝은 면을 보자. 입덧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탄하지 말고 생각의 틀을 바꿔 보라. 자연은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입덧으로 당신에게 알려 주는 셈이다. (p.251)

경막외마취를 통한 분만은 경솔한 선택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경막외마취 및 그때 쓰는 진통제에는 분명 나름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자연 상태의 진통을 방치하는 데에도 역시 위험이 따른다. 진통을 통제하기 위해 의사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미국의 대형 병원에서 분만하는 여성의 70퍼센트는 그 방법을 선택한다.
그런데 아기를 낳을 때는 고통을 느끼는 게 정상일뿐더러 필요한 일이고, 약을 써서 진통을 경감시키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목소리 높여 설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그들의 개인적 신념에 대해서는 최대의 사랑과 존경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통할 때 마취제를 쓰고 싶지 않다면 당신은 쓰지 마라. 하지만 당신의 친구, 자매, 동료, 이웃이 임신했을 때는 그런 생각을 마음에만 담아 두라. 그건 당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의 몫이다." (p.267)

부탁한다. 부디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앤젤리나, 케이티, 하이디, 니콜, 할리와 비교하지 마라. 우리 대부분은 애초에 그들처럼 예쁘게 생기지 않았다. 그런 우리가 아기를 낳은 뒤의 모습이란… 잊어버리자. 자신을 슈퍼스타와 비교하는 건 불안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슈퍼마켓 계산대에 `출산 후 몸매 관리`기사가 붙어 있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속이 메스꺼워진다. 이제 막 엄마가 된 여성들인데, 아직도 압력이 더 필요한가? 산후6주 검사를 받을 때쯤엔 슈퍼모델처럼 보이기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이게 뭔 개소리야! (p.278-279)

당신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말은 흘려들어라. 느껴지는 그대로 느끼고, 죄의식, 수치, 후회에 사로잡히지 마라. 꿈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는 슬픔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런 실망감을 숨기는 것이야말로 산후우울증 같은 심각한 문제를 부른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기쁘면 기쁜 거고, 슬프면 슬픈 것이다. 필요하다면 산후 심리문제를 다루는 데 증숙한 치료사에게 도움을 구하라. 하지만 초조해하지 말자. 그런 감정을 겪어내고 나면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사랑이 당신 속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아이의 성별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p.299)

나도 조만간 폐경을 맞을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 나 역시 폐경이 두려웠다. 안면 홍조, 식은땀, 기분 변화, 머릿속 안개, 불면증, 질 건조증, 피부 변화, 체중 증가를 환영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삶의 변화가 임박해 오면서 두려움을 떨쳐 내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껏 과거로 돌아가길 바란 적이 한 번도 없다. 해마다 가르침을 얻고 성장을 경험했다. 신은 불안, 허영, 자존심, 이기적 선택으로 점철된 이십 대를 다시 살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삼십 대 때는 또 어땠나? 이십 대보다야 나았지만 진정한 소명에 눈을 뜨지 못한 채 좀비처럼 사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사십 대로 접어든 지금은 전혀 다르다. 팔자주름과 희머리, 검버섯이 생겼지만 그런 건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나이가 들면 젊음의 광채는 퇴색하고 만다. 하지만 진정 되고자 했던 존재를 향해 나아감에 따라 우리는 다른 종류의 빛을 발하게 된다. (p.300-301)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병증 없이 애널섹스를 즐길 수 있다. 내 환자들 중에도 수십 년 동안 정기적으로 애널섹스를 한 사람들이 많은데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애널섹스를 하기 전과는 배변 느낌이 달라서 변이 그냥 엉덩이에서 쑥 빠지는 느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의사인 내 눈으로 보면 애널섹스를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항문은 좀 다르다. 직장 검사를 할 때 보면 뭐랄까, 좀 헐거운 느낌이다.
항문괄약근을 억지로 벌리면 손상을 입어 변을 흘리거나 방귀를 통제하지 못할 위험이 높아진다. 한 유명 포르노 배우가 최근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에서 방귀를 끼고 말았는데(웃기려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 장면을 본 나는 애널섹스를 많이 한 탓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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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따구 2015-11-0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말리아 여성의 고통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날........ ㅠㅠ

다락방 2015-11-04 11:36   좋아요 0 | URL
너무 가슴이 아프죠. 어릴때부터 어마어마한 학대를 당하는건데 성인이 되어서도 똑같아요. 울컥 치밀더라고요. ㅠㅠ

살리미 2015-11-04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례는 정말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요. 문화 상대주의고 뭐고간에 인간을 기본적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풍습은 악습이고 폐단이죠!
다락방님이 흥분하셨을때 진작 이렇게 좋은 책일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좋군요!!!

다락방 2015-11-04 15:56   좋아요 0 | URL
네 문화라고 해도 용인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싶어요. 맙소사, 여성의 성기를 꼬매버리다니요! 이게 말이 됩니까! 일전에 [데저트 플라워] 보니, 소독도 제대로 안하고 그저 아무데서나 자르고 꼬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푸는 과정도 저토록 다쳐야 하다니...너무 속이 상했어요, 오로라님.


2015-11-04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llas 2015-11-0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라고 옹호되면서 자행되는 폭력은 언제쯤 사라질까요 ㅡㅡ

다락방 2015-11-04 15:57   좋아요 0 | URL
폭력이죠, hellas 님. 이건 문화라고 보고 넘겨야하는 게 아니죠. 이건 폭력이에요. 말씀대로 언제쯤 사라질까요..

hellas 2015-11-04 16:10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문화랍시고 포장해서 그딴 야만을 행하는거 진짜 역겨워요 ㅡㅡ

에이바 2015-11-0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막의 꽃, 책으로도 읽고 영화로도 봤어요.. 여성할례 정말 끔찍하고 야만스러운 행위죠. 문화라 포장되는, 기저의 사고방식...

다락방 2015-11-04 17:08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만 봤는데요, 여자가 병원가서 치료를 받으려고 하자, 같은 나라 출신의 남자 간호사가 절대 그러지말라고 자신의 언어로 협박하는 거 보고 진짜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나요. 하아-

단발머리 2015-11-0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방송에서 한비야씨가 여성할례에 대해 말하고 나서, 전 그 때쯤 알게 됐어요.
그 많은 여성들이 그 극심한 고통가운데 있는데,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 우리는 모르고...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나 다행이라는 안도가 오늘 이 시간 괜찮은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이런 악습이 문화의 이름아래 자행되는 나라가 많다는게 너무 슬프고,
그 희생자인 어린 여자아이들 때문에, 정말 마음 아픈 아침입니다.

다락방 2015-11-05 09:29   좋아요 0 | URL
태어나길 그런 환경속에서 태어나고 또 그런 환경속에서 자란다면, 그냥 다 그런줄로만 알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영화 [데저트 플라워]에서도, 할례를 받고 잘못된 여성이 자신의 발로 병원을 찾고 그것이 나쁜것이다,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환경을 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책을 읽고 배우고 이야기 나누고 또 다른 많은 문화예술을 접한다는 것은, 여기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할례는 정말 끔찍하죠. 정말 끔찍합니다. 저는 할례를 하는 것 자체가 끔찍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푸는 것도 저렇게 고통스러울 지는 몰랐어요...

1004ajo 2015-11-08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엔 참 어마어마한 일들이 있네요.

다락방 2015-11-10 15:2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렇습니다. 말도 안되게 나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요..
 

추억 한 토막 


한창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우리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말았네.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소녀.
아, 무척이나 아름다웠네.
그녀의 자태가 눈부시게 황홀했기에
우리는 무심히 휴가를 즐길 수만은 없었다네.


바시아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고,
크리스티나는 반사적으로 남편의 손을 꽉 잡았네.
순간 나는 생각했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리라.
-당분간 여기 오지 마.
며칠 동안 내내 비가 올 거래.


과부인 아그네슈카만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그 사랑스러운 소녀를 반겼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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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크릿 닥터 - 내 친구가 산부인과 의사라면 꼭 묻고 싶은 여자 몸 이야기
리사 랭킨 지음, 전미영 옮김 / 릿지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아직 170쪽 까지밖에 안읽었으지만, 이만큼만 읽어도 추천할 수 있다.

여자사람들이 읽어야할 책, 남자사람들도 읽어야할 책. 어쩐지 고맙고 안심이 되며 심지어 재미있다!! 밑줄 그을 부분이 많은데, 그건 나중에 한 번에 정리하는 걸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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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11-02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은이가 처음 보는 이름인데, 책 제목이랑 표지가 아주 눈길을 끄네요.
일단 다락방님 밑줄을 읽어보고 싶으니,
다락방님은 서둘러 읽어주시고,
저는 여기서 기다리시고~~~~~~ㅎㅎㅎ

다락방 2015-11-02 15:49   좋아요 0 | URL
네, 아주 흥미롭게 읽고 있어요, 단발머리님. 저자는 산부인과 의사인데요, 궁금했지만 차마 친구들과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속시원이 대답해줘요. 이를테면, 질은 원래 냄새가 나는 게 정상이다! 이런 거요. 섹스와 오르가슴 얘기도 물론! 후훗

그렇게혜윰 2015-11-02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로 출간되어도 좋겠어요^^

다락방 2015-11-02 15:50   좋아요 0 | URL
산부인과가 나왔으니 내과, 외과, 신경과 뭐 이런 시리즈로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게혜윰님? ㅎㅎ 아무래도 산부인과에 대한 게 가장 흥미롭지 않을까 해요. 그간 말해오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던 만큼 말이지요. 흣

기억의집 2015-11-0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부인과.... 진짜 가기 싫은 곳이죠. 제가 한동안 오줌소태가 있었는데, 산과 가기 싫어 민간요법으로 떼우려다 상황만 악화돼 치료기간만 늘어난 적이 있었어요. 참, 산부인과의사 친구가 진료보는 건 민망할 것 같아뇨. 묻는 거라면 몰라도....

다락방 2015-11-02 15:52   좋아요 0 | URL
네, 산부인과는 정말 가기 싫은 곳이죠. 그리고 가면 이상하게 위축되는 곳이구요. 한두번도 아닌데 닥터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다는 건 진짜 적응안돼요. ㅠㅠ 내과에서 목구멍을 보이는것처럼, 치과에서 입 안을 보이는 것처럼, 이비인후과에서 콧구멍을 보이는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어요. 이 책의 여자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것들, 그러나 차마 묻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대답해줘요. 재미있어요!

살리미 2015-11-0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상한 야동들 때문인지 제대로 된 지식도 없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꽤 있는듯해서요 ㅎㅎ

다락방 2015-11-03 09: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오로라님. 저도 읽으면서 이건 남자들이 읽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포르노 배우들만 보고 자기 여자친구 혹은 아내들의 몸을 상상하고 그러길 바란다면, 그건 제대로 된게 아니죠.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힛
 

어린아이들이 위탁부모에게서 자라는 것과 비슷한 이 그룹 홈에는 또 다른 소녀가 한 명 살았다. 앙네스 클라르스퇴룀은 소녀들의 양육을 삶의 과제인 동시에 수입원으로 삼았다. (p.220)
















의료사고로 팔 한 쪽을 잃은 앙네스는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춘기 소녀 세 명과 함께 살고 있다. 위탁부모와 비슷한 이 제도를 그룹 홈이라 부르는데, 그녀들은 자신들이 어디서부터 오게 된지도 모르는 난민소녀들이며, 온갖 불행한 일들을 어릴때부터 겪어왔다. 그런 그녀들을 다루기는 쉽지가 않고, 그런 그녀들의 불행을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일도 쉽지 않다. 앙네스는 그런 소녀 세 명과 살고 있다. 십대의 소녀 세 명.


"내가 돌보는 아이들은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 무인지대에 있어요. 아무도 그 아이들을 원하지 않아요. 쓸데없다고 내던져진 아이들이에요. 이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주하는 자기비하예요.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나길 싫어해요! 일어나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쓴맛은 대여섯 살 때 이미 아이들의 영혼을 파고들었어요." (p.229)



몇해전에 소개팅을 했었다. 우리는 서로 딱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만나는 시간만을 조용히 보내고서는 각자의 갈 길로 갔다. 소개팅남에게 어떤 매력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오래 기억남는 그의 말이 있다. 그는 지금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주변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치되어 있는 어려운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고, 방과후에도 그 아이들이 밥 먹을 곳, 놀 곳, 쉴 곳을 제공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혹여라도 우리가 계속 알고 지내게 된다면, 당신이 그런 시설을 만들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우리는 사실 그 뒤로는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지만, 그가 그런 시설을 종국에 만들게 된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고 싶다. 내가 그 당시에 생각한 것, 그리고 지금 생각하고 앞으로도 생각하는 건, 그런 시설에 책을 기증하는 것이었다. 나는 간혹 그림책을 사서 보고 아이들 책을 사서 읽기도 하니까, 내가 읽어본 책들을 기증하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아이들의 공간에 책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일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책이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유일한 대안도 아니며 또 최고의 놀잇거리는 아닐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떤 아이에게는 아주 유용한 놀이의 수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어제 상담을 공부하고 또 일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심규선의 신곡이 도착했다. 상담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듣고 많은 위로를 받은 노래라고 했다. 그래서 들어보았다.



심규선의 <피어나>



그간 심규선이 불렀던 노래와 좀 달라 앨범정보를 찾아보았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잔잔한감성의여성싱어송라이터 "Lucia (심규선)" 
디어뮤즈먼츠와한국유방건강재단이발매하는월간 [Monthly DearMuse] 의세번째앨범.

유방건강의식향상을위한핑크리본캠페인의일환으로시작된 [Monthly DearMuse] 가세번째앨범을발매하였다. 지난 7월부터시작된 '닥터심슨' X '그_냥' 그리고 '타린(바닐라어쿠스틱)' X '준모(프로젝트슈즈)' 로이어진두개앨범은수준높은퀄러티의음악과의미있는가사로한국인디음악씬에서좋은반향을일으키고있다. 그뿐만아니라수익의일부가저소득층유방암환우들에게기부된다는점에서음악을사랑하는리스너들에게는물론아티스트들사이에서도각광을받는프로젝트가되었다. 

어느덧세번째를맞은 [Monthly DearMuse] 는많은사람들에게잔잔한감성의여성싱어-송라이터로알려진 "Lucia (심규선)"의참여로더빛을발하게되었다. 심규선은 '에피톤프로젝트', '캐스커','한희정', '참깨와솜사탕' 등대한민국인디씬을대표하는아티스트들이소속되어있는 '파스텔뮤직' 싱어-송라이터로서 2010년디지털싱글로데뷔하기이전부터 "여수국제락페스티벌국무총리상대상", "제 29회 MBC 대학가요제금상수상", "개인유투브채널동영상수십만조회수기록" 등많은수상과경력으로알려져있던아티스트이다. "부디", "꽃처럼한철만사랑해줄건가요?" "어떤날도, 어떤말도" 등다수의히트곡을남기며전문가, 대중에게고루인정받고있는대한민국여성싱어송라이터 "Lucia (심규선)" 은간절하게부르는감성적인노래를통해잔잔한감동을주는것으로잘알려져있으며가사의깊이또한남다르다. 

그러한 "루시아(심규선)"의장점은이번싱글의수록곡인 '피어나' 에서도여지없이발휘되고있다. 어떠한고난과역경이우리의삶을누를지라도, 살아있는한아픔을딛고꽃처럼피어나겠다는삶의의지를담고있다. 가사를곱씹으며듣고있으면마치한편의시를귀로읽는느낌이다. 불행과가난, 병듦이구체적으로묘사되면서우리사회의약자들을대변하는노래이기도하며,누구나언젠가겪게되는비극앞에선한생명의강한에너지와같다. 결국이노래는희망을노래하고있으며깊은위로를전해주고자하는메세지가담겨있다.이는 저소득층 유방암 환우들의투병기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음원이며한국유방건강재단과함께하는 핑크리본캠페인 속에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되고자 하는 "루시아(심규선)" 의 소망이 담겨있는 곡이다. 

이번 [#DearMuse #201510A #PinkRibbon] 또한앨범의판매금액중일부는한국유방건강재단에기부되어저소득층유방암환우들의수술치료비로쓰여지며아모레퍼시픽핑크리본캠페인의일반인홍보대사핑크제너레이션이앨범아트웍디렉팅에직접참여하였다. 한국유방건강재단은국내최초유방건강비영리공익재단으로지난 2000년아모레퍼시픽이설립기금전액을출자하여설립한이후연중으로핑크리본캠페인을전개해오고있다. (네이버 앨범소개)

 

펼친 부분 접기 ▲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한 조각 햇빛도 들지 않는 그런 캄캄한 궁지에
바람을 타고서 날아왔나 작고 외로운 꽃씨
어둡고 후미진 골목에서 넌 뿌리를 내렸지
눈길조차도 머물지 않는 그런 꼭 버려진 아이같이

구둣발에 채이고 머리 위 태양은 타는 듯 뜨겁네
아침이 더디 오길 긴 밤 지새우며 달빛에 위로해
여린 줄기 사이로 잎맥을 따라서 밀어올리는 건
외로움도 아니요, 원망도 아니요
살아있다는 증거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꽃은 피어나
매일 아프고, 두려운 일들에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
멍든 가슴에 오래 맺힌 꽃 터지듯 병든 이 세상에
너의 향기로 너의 몸짓으로 디디고 일어나 피어나

메마른 바람이 허공에로 자장가를 부르면
의미조차도 알지 못해도 슬퍼 꼭 엄마의 노래같이

헛된 꿈은 쌓이고 거리 위 세상은 차갑게 식었네
안개비라도 오길, 긴 밤 지새우며 별빛에 기도해
어린 가지 사이로 잎새 끝끝마다 뻗어올리는 건
그리움도 아니요, 핑계도 아니요
살아있다는 증거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꽃은 피어나
매일 아프고, 두려운 일들에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
멍든 가슴에 오래 맺힌 꽃 터지듯 병든 이 세상에
너의 향기로 너의 몸짓으로 디디고 일어나

사람들은 그 꽃의 이름을 몰라 영원히 그럴지 몰라
누가 봐주지 않아도 너의 꽃 피워올려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도 꽃은 피어나
어떤 불행에 가난에 아무리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
너의 가슴에 오래 맺힌 꽃 터트려 멍든 이 세상에
너의 향기가 멀리 퍼지도록 고개를 들어 자, 피어나




내가 듣기에 가사는 좀 뻔했고 그래서 오글거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본디 <포기하지마>, <나는 문제없어>, <우리들만의 추억> 같은 류의 뻔한 가사를 가진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이 노래가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 노래는 만들어진 역할을 충분히 다 했다고 생각했다. 책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세상 모두의 심금을 울릴 수도 없고 세상 모두를 웃게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딘가의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웃거나 울거나 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제 역할을 톡톡히 다 한 셈이 아닌가. 마음이 묵직해졌다.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이런 노래를 만들어 준 심규선에게도 고맙고, 그런 소녀들을 돌보고자 한 앙네스도 고맙고, 이런 이야기를 써준 헤닝 만켈에게도 고마웠다. 


헤닝 만켈은 자신의 소설을 빌어 이런 얘기도 했다.



"예순여섯, 많군요. 서른셋은 상당히 어린 나이지요. 그래도 우리나라에 오늘날만큼 심각한 위기는 일찍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기에는 충분한 나이예요. 그런데 그걸 아무도 못 보는 모양이에요. 어쟀든 방향을 제시해야 할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못 보고 있어요. 이 장벽은 사람들을 갈라놓고, 불화가 깊어지게 하지요.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톡홀름 지하철을 타고 교외로 조금만 나가보세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해요. 서로 다른 세계라고 주장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같은 세계인데도 중심지에서 멀어질수록 다음 역은 곧 다음 장벽을 의미해요. 변두리로 완전히 나가면 진실을 볼 건지 말 건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요."

"진실이 뭔데요?"

"최극단이라고 생각했던 게 중심지라는 것, 그리고 그게 이제 막 스웨덴을 개조하려고 한다는 사실이지요. 축이 서서히 방향을 돌리고 있어요. 안쪽과 바깥쪽, 가까운 곳과 먼 곳, 중심지와 변두리가 위치를 바꾸는 거예요." (p.228-229)



남자는 우체부가 사흘에 한 번 찾아오는 외딴 섬에 홀로 산다. 그의 나이는 66세이며, 과거에는 의사였다. 그러나 의료사고를 낸 후 그는 오래전 자신의 조부모가 살았던 집으로 돌아와 이제 조용히 혼자 살고 있다. 겨울이면 얼음이 꽁꽁 어는 바다를 앞에 두고, 아침에 일어나 그 얼음을 깨고 얼음 샤워를 하는게 일과의 시작이다. 사흘에 한 번 보는 우체부에게도 퉁명스럽게 대하고 결코 그를 집 안에 들이지 않으며, 방 하나는 개미집으로 잠식당하고 있지만 그냥 둔 채, 늙은 고양이와 개를 각각 한 마리씩 키우고 있는, 그야말로 고요하고 적막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에게, 어느날 69세의 여자가 보조보행기를 끌고 찾아온다. 그녀는 사십년전 그가 사랑했던 여자. 그녀를 이토록 오랜만에 다시 집안에 맞아들이는 것이 마땅치 않았던 그였지만, 그는 그녀와 함께 과거에 약속했던대로 연못에 데려가고, 그간 존재를 알지 못했던 자신의 딸과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은 시절 가족을 이루고 시간이 흐른 후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면, 남자의 경우, 혼자 외롭게 지내다가 가족을 갖게 되었다. 고집스럽고 퉁명스러우며 피하기만 했던 그가, 이제는 저마다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옆에 두는 것이 소중하다고 여겨지며,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행복해한다. 이 외딴 섬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펼치는 축제는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그는 이제 누구와도 헤어지고 싶지않고,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이렇게 혼자 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노년에 대해 아주 여러번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과 많이 다른 식으로 진행될 것 같진 않다. 그러니까 갑자기 로또에 당첨이 되어 갑부가 된다거나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십살 연하의 남자와 갑자기 불같은 사랑을 진행하며 살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예외적인 삶의 형태이고, 내 삶이 그렇게 예외적으로 흘러갈 것 같진 않다. 아마도 나는 혼자 조용히 늙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남자는 집에 술을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쟁여두고는 있다. 어쩌면 내 삶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늘 냉장고에 술을 넣어두고는 필요할 때마다 마시면서 조용히 앉아있는 것이 노년의 낙이 되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얼음을 깨고 그 밑으로 들어가는 일은 결코 할 수 없겠지만, 어쩌면 도넛츠를 먹는 걸로 일과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내려마실 수도 있고, 또 모르지, 모닝 맥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될지도. 하루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 책속의 남자처럼 깊고 고독한 곳에 혼자 거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고양이와 개를 키우게 될지는 모르겠다. 별 거 없고 또 요란하지도 않았던 그들의 축제처럼, 나도 어느날에는 몇몇 사람들을 모아놓고 술을 마시고 맛있는 걸 먹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다가, 사람에겐 결국 다수의 사람들이 좌르륵 줄 서 있어 나란히 기다리기보다는, 서로의 치부까지 다 알고 있는 속 깊은 몇명만이 필요한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을, 그대로 알아주는 사람들. 그들과 어느 하루는 별 거 아닌 일들로 깔깔대며 웃으며 파티를 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예전에는 언제나 뉴스에 매달렸다. 뉴스를 읽고, 듣고, 보았다. 세상은 나의 참여를 원했다. 어떤 날은 예타 운하에서 어린 소녀 둘이 익사했고, 또 어떤 날은 대통력이 저격당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섬에서 점점 더 고립되어 사는 동안 이 습관은 서서히 사라졌다. 신문도 읽지 않았고, 텔레비전 뉴스도 이틀에 한 번 정도만 보았다. (p.75)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사실 아주 많지는 않을 것 같다. 



iReaditNow 앱에 이 책을 다 읽고 '쓸쓸하고 고독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라고 썼다. 정말 그렇다. 처음, 이 소설은 고독하고 쓸쓸하고 고집스러웠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온기가 퍼진다. 누군가의 옆에 있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있었다. 가진 게 넉넉한 이들이 아니었고, 사교적인 성격을 가진 이들이 아닌데도 그랬다. 개에 대해서도 그랬다. 



"개 때문에 전화를 드리는 겁니다. 사라 라르손의 스패니얼을 우리가 데리고 왔는데, 아무도 개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안락사를 시켜야 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개를 돌보았지요. 무척 아름다운 암놈입니다. 그런데 제가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이 사람이 개 알레르기가 있어요. 그렇다고 안락사를 시킬 수는 없잖아요.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성함과 주소를 적어둔 게 있었어요. 혹시 이 개를 돌보실 마음이 있는지 여쭤보려고요. 거리에서 그 개를 보았을 때 차를 세우신 걸로 보아 분명히 개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내 개가 얼마전에 죽었습니다. 그 개를 돌볼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곳으로 오지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사라 라르손이 개를 루빈이라고 불렀다는 걸 알아냈어요. 개 이름 치고는 무척 독특하지요? 그래도 이름을 바꿔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다섯 살이에요." (p.351-352)




지난 주는 내게 매우 혹독했다. 직장생활이란 것에 대해 아주 많이 생각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이만오천번쯤 생각했다. 왜이렇게 더러운걸까. 너무 오래다녀서 못볼 꼴을 다 본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 대안에 대해서 생각하자, 하고는 계속계속 대안에 대해 생각했다. 마침 어제 외출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걸으면서는 생각이 무척 많아진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몇해전에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엄마아빠 다 돌아가시고 나면, 동생들은 다 저마다의 가족이 있을테고, 나는 혼자일테니, 그때는 미국에 가 살아볼래, 라고. 거기가서 밥벌이를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써가면서, 그러면서 살아볼래, 라고. 어제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미국에 갈까. 다 정리하고 미국에 갈까. 그렇지만 지금은 밥벌이가 필요하다. 그러나 소박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 지금 다 정리하고나면 그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을 가지고 훅 날아가서 북까페를 차리는 건 어떨까. 그러니까 한국어로 쓰여진 한국어 북까페. 간판도 아예 한글로 달고. 그래야 내가 영어공부 안해도 되니까...내가 가진 거라곤 책밖에 없으니, 낯선 외국 땅에 한국어 책을 잔뜩 구비해둔 까페를 차리는 거다. 나는 계속 책을 읽어왔고 그래서 그 책들을 가지고 있고, 또 앞으로도 책을 읽을테고, 그 책들은 쌓여갈테니, 그걸 그냥 구비해두고 까페를 차리는 거다. 요리솜씨는 없으니 뭐 대단한 거 팔지말고, 만화방처럼 라면을 끓여주거나 하지도 말자. 라면 끓이다 세월 다 가... 커피랑 녹차, 홍차 티백만 준비해두고 그냥 조용히 앉았다 가라고.. 이걸로 대단한 밥벌이가 되지는 않겠지만, 단골들은 몇 생길것이고, 그날그날 소박하게 먹고살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런 조용하고 소박한 밥벌이를 목표로 한다면, 굳이 미국에 가진 않아도 되잖아? 라는 게 이어진 생각이었다. 지방으로 내려가도 된다. 집값이 싼 지방에다 작은 집 하나 얻고, 작은 공간도 하나 얻어서,내가 가진 책을 다 가지고 내려가는 거다. 그리고 책장에 내가 원하는대로 꽂아놓고는, 하루종일 조용히 앉아 책을 읽다가 책을 읽으러 온 손님도 받고... 



아, 그렇지만 이 수입은 어쩌면 마이너스일지도 모른다. 알라딘 중고샵에 취직할까? 그렇다면 정기적인 수입이 매달 들어오긴 할텐데. 그냥 책들에 둘러싸여 사는 건 어떨까? 중고샵에서 일하면 월급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적으면 적어졌지 많아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까페에 취직하는 건 어떨까? 아르바이트로 취직하는 건...



어떻게도 결론을 못내리고 시간은 흘렀고, 날은 밝았고, 변함없이 나는 같은 자리에 출근해 앉아있다. 별 수 없는걸까? 별 수 없어야만 하는걸까?



이 책의 마지막은 이런 근사한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더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 (p.409)




대학 입학부터 지금까지 이십년간을 쉼없이 일해왔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여기까지 온 건 정말 장하고, 더 갈 수 있다면 또 더 풍족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온 걸로 이제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의미로 여기까지 온 걸로 나는 잘했다고 다독이고 싶다. 더 가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더 가지 않아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든다. 나는 너무 오래 일해왔다.




"나는 늘 얼음이 무서웠어."

그녀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얼음장을 건너 내가 사는 섬까지 왔어?"

"무서워한다는 게 그걸 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지." (p.121-122)






<피어나> 가 실려있는 앨범은 디지털로만 나온건가보다. 알라딘에선 찾을 수 없고, 대신, 정규앨범이 새로 나왔다는 걸 알게됐다. 아! 책만 안산다고 돈이 쌓일 줄 알았냐! 음반은 어쩔거냐!! 크- 음반을 생각하질 못했네..어쩔...3개월간 순수구매금액 줄일랬더만, 책을 안산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쩝...



시마는 아득히 사라지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도 가믄하지 못했다. 지혈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함을 쳐서 아이를 깨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는 시마의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살아야 한다고, 그냥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여기 내 부엌에서, 이런 봄날에, 이제 막 하루가 시작된 아침에 죽는 건 옳지 않다고……. 내 말을 들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계속 시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p.275)

"나를 맞아줘서 고마워. 바깥 얼음장 위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몰라. 당신이 나를 못 본 척 할 수도 있었잖아."
"내가 당신을 한 번 떠났다는 게 또 그런다는 뜻은 아니지." (p.329)

죽음과 더불어 존재하던 모든 것은 소멸된다. 죽음은 내가 늘 겪던 어려움의 흔적만 남길 뿐이야. 사랑과 감정……. 하리에트가 너무 가깝게 다가와, 나는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나를 떠나겠지.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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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5-11-0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 읽고 나니 울컥해요...학교가 끝나고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 대한 생각을 했던 그 남자도 그리고 도움을 주고자 했던 다락방님의 마음도 그렇고. 지난 주 유독 힘들었을 님을 생각해도 그렇고...

나도 조금 전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는 건 원래 이렇게 항상 힘들고 머리 아픈 문제들을 껴안고 있어야 하는 건가. 그냥 좀 평화롭게 편안하게일 수는 없는 걸까.

그리고 와인. 저 큰일 났어요--;; 지금 하루에 한번씩 자기 전에 꼭 반잔 하게 되는데 이게 점점 중독으로 가는 것 같아요. 이래도 되는 건지 그런 마음이...그래도 이 힘든 나날들 중에서 라떼와 책과 와인과 음악이 있어 좀 살만해 지는 것 아닐까요? 힘내요, 부디...

다락방 2015-11-02 15:59   좋아요 0 | URL
다들 자기자리에서 사소한 고민에 부딪히고 또 큰 고민에도 놓이게 되고 그러는 것 같아요. 대체적으로 사는 게 다 그렇지, 하고 넘기게 되다가도, 왜 어떤 날은 유독 견디기 힘들어질 때가 있잖아요. 지난주가 제게 그랬어요, 블랑카님. 이제 그만하고 싶다, 라고 계속 생각했어요. 사실 지금도 그래요. 그래서 계속계속 생각할 거에요. 그만둔다면, 그 후에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요.

아니 그나저나, 와인..중독이라니. 하하하하하. 블랑카님, 그러다 금방 반 병 돼요. 저는 얼마전에 한 병을 다 마시기도 했답니다. 아, 블랑카님이 말씀하시니 지금 당장 와인을 마시고 싶어졌어요 ㅠㅠ 어제도 마셨지만 말예요.. 하하하하하.


네네, 기운낼게요, 블랑카님. 블랑카님도 기운내요. 그래서 우리 또 새롭게 맞이한 한 달을 잘 지내봅시다!

챔피언 2015-11-0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에서 힘들게 하는 사람의 무릎 꿇은 형상을 스케치 한다음에 님의 형상이 그 형상을 발로 까고 있는 스케치를 더하세요. 기분이 좀 풀어집니다. 제가 효과를 봤던 방법이니 믿을만합니다. 다만 약간의 그림 솜씨가 필요하니, 만약 그림에 자신이 없다면 드로잉과 관련된( 이충원 선생님의 스케치 쉽게하기 시리즈 추천) 책을 구매하셔서 연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상이 실물과 닮으면 닮을수록 기분이 업됩니다.

다락방 2015-11-03 09:49   좋아요 0 | URL
오,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그림 솜씨는 전혀 없지만 말이지요. 스케치 쉽게하기 시리즈까지 산다면..저는 필기체 교본과, 글씨 예쁘게 쓰기 교본에 이어 세번째 교본을 갖게 되겠네요. 다 하지 않고 쳐박아 두고 있다는 게 함정..Orz

그치만 스케치는 제가 진짜 못하는 거니까 역시 책으로 사서 공부좀 해봐야겠어요. 검색해볼게요. 고맙습니다. 흐흣.

무해한모리군 2015-11-0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직장에서 10년 근속상으로 금 한냥을 받았어요. 그리고 회사에 왔더니 감사팀에서 우울한 전화가 왔네요. 상을 받으면서 정확히 `너무 오래 일했군`이란 생각을 했는데, 이 글을 읽게 되었네요. 운명인가요? 아 직장생활 참 고단합니다... 저는 가만히 책읽고 주말엔 산타고 밤엔 노래부르고 이렇게 살고 싶은데 말입니다.

다락방 2015-11-04 08:02   좋아요 0 | URL
어제 다른 동료랑 술 마시면서 이런 얘기 또 했어요. 그 동료도 10년 다녔는데 얼른 나가야겠다, 너무 오래다녔다,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나간다고 해도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망설이게 되고, 그렇게 십일년을, 십삼년을 다니게 되겠죠. 하릴없이 우리 동업이나 할까, 뭘하면 좋을까, 이런 얘기도 해보고요.

고단합니다, 휘모리님.
저는 어제 저녁에 술 마신게 안주 탓인지 얹혔는데, 새벽에 잠 한 숨 못자고 손을 따고 여전히 속이 불편한데도 꾸역꾸역 출근해서 앉아있어요. 정말 고단하지요?
 

하는 놈들이 끝까지 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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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5-10-27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글 읽으니, 나경원아버지 학원도 예전에 학교일 시키고 그랬다는 글 올라온 적 있었는데, 충암고는 한 술 더 뜨네요. 근데 저런 학교 보내는 인근 학부모 심정은 어떨까요? 저 정도면 인근 학부모들에게 똥통이라는 소리 나올텐데...

유부만두 2015-10-27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쩜 좋아... ㅜ ㅜ 하지만 학부모들은 애 맡겨놓은 죄인이라 학교측에 암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했겠죠...

세실 2015-10-27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울 아들 충암고 다녔다면 저도 페인트 전문가를 불러야했군요. 부자도 아닌데.
.. 참으로 황당합니다.

살리미 2015-10-28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생들 상대로 뻘짓하는 사학재단들 제발 좀 정신차렸으면 좋겠어요. 저런 마인드로 왜 교육사업을 하는지!! 하긴 이 나라에서 누굴 보고 배우겠어요 ㅠㅠ

[그장소] 2015-10-28 0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자체를 재단으로 만드는 일이 더 위험한 건 아닌지..
뭐든 재단과 엮여서 일이생기는데..교육을 사업으로하는
마인드..부터..꽝 ...대놓고 돈벌겠습니다..잖아요.^^;;

transient-guest 2015-10-28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그런건 아닌데, 이런 문제학교들이 종종 사립/종교사립구조로 수익사업을 하고 있죠. transient guest nation에서 이런 자들은 사형감입니다.

붉은돼지 2015-10-2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진짜 가지가지 여러가지 해도해도 너무하네

치니 2015-10-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저도 충암고 기억 있어요.
중학교 때인가 스케이트를 타다가 어떤 오빠를 만났는데, 자신이 충암고 다닌다면서 악랄하기로 유명한 학교인데 넌 못 들었냐며 다짜고짜 학교 욕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겠다 싶어요. 자기네 학교가 얼마나 이상한지 보는 사람마다 말하고 싶었을 거야...ㅠ

낭만인생 2015-10-2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