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인 '수 로이드 로버츠'는 이 책을 마무리 하기 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이 책의 <들어가며>는 저자의 딸인 '세라 모리스'가 썼다. 




세라에게,

질문: 우리가 너희 가족이 겪는 참담한 슬픔에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수가 누렸어야 마땅할 생을 너무 일찍 마감했다는 점을 계속 괴로워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녀가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용기를 줬던 수의 놀라운 삶을 기리는 게 나을까? (들어가며, p.10, 수 로이드 로버츠가 사망한 뒤 그녀의 딸에게 도착한 메세지)



최고의 언론인이면서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던 수 로이드 로버츠가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기억하고 기리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니. 들어가며 를 읽는 순간부터 코끝이 찡해진다. 새삼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가도 실감했다. 나는 공공연하게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해왔는데, 어느틈에 시간은 나를 '여자들이 너무 좋다'고 말하는 지금으로 데려다 놓았다. 열심히 분노하고 열심히 싸우는 여자들이 이렇게 세계 곳곳에 있다. 감사와 응원과 연대의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아이쿠야, 이 책의 1장은 무려 할례에 대한 이야기다. 읽기 전부터 벌써 기운이 딸리는 느낌.



수 로이드 로버츠는 감비아에서 할례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한 여성을 인터뷰한다. 그걸 하기 싫어서, 다른 어린 여자아이들의 성기를 자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조국으로부터 도망온 여자. 그녀는 곧 영국에서 추방당할 위기에 놓였다. 수 로이드 로버츠는 감비아로 가 '이맘(이슬람교 교단의 지도자로서 학식이 뛰어난 이슬람 학자에 대한 존칭 p.27)' 을 만난다. 여성의 성기를 가지고 살아본 적이 단 일 분도 없으면서 그러나 여성의 성기에 대해 아주 잘도 지껄인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이것이 이슬람 문화권에서 받아들여져온 이유이며, 우리가 그것을 실천하는 이유, 또 그것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유입니다."

배석한 남자들이 동의의 뜻을 담아 연신 끄덕거리는 분위기에 취해, 이맘은 말을 계속했다. "FGM은 여성에게 이로운 일입니다. 할례할 때 잘라내는 것은 매우 가려운 부위예요. 너무나 간지러워서 그걸 완화하려면 철수세미로 문질러야 할 정도라고요.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말이죠, 할례를 하지 않은 여자는 축축한 분비물이 나와요. 의자에서 일어날 때마다 옷이 잔뜩 젖을 지경이라 공공장소에 있다면 정말 망신스러운 일이 될 거예요."

이쯤 되자 이 자리에 있는 유일한 여자로서, 약간의 분노를 담아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클리토리스를 가진 채 60년을 살았어요. 그리고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는 능글거리는 눈빛으로 답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요, 당신은 일반적인 여자들과는 좀 다른가보죠."

앞선 무식한 주장보다도 이 웃음에서 더 이상은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만일 그가 진심으로 어린 여성들의 성기 절제가 신의 섭리이고, 여성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웃지 않았으리라. 그는 자신이 내뱉는 말이 상식에 어긋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바로 그 점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이 상황 자체가 성기 절제는 오직 여성 통제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그가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p.28-29)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일이었다면 이맘이여, 당신이 당신 고추를 먼저 잘랐겠죠. 그러나 니 고추는 제자리에 잘 붙어있지, 온전한 형태로?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도 가해지는 할례에 대한 부분을 읽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몇 번이나 쉬었다 읽어야 해서.  



수 로이드 로버츠가 인터뷰한 감비아의 '마이무나'는 할례자가 될 운명이었고, 그것이 싫어 고국에 자신의 아이들을 둔 채로 도망쳤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지만 아이들을 보러 자신이 그곳으로 돌아가면 할례를 해야할테고, 그것은 다른 여자아이들에게 못할 짓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립지만 참아야 한다고. 마이무나가 사는 곳에서 할례자는 반드시 정해져있고, 그 사람으로부터 할례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마이무나가 없는 지금 그곳은 몇 년째 할례가 중지되어 있다. 



마이무나의 운명은 할례를 집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 할머니와 그보다 앞선 선대부터 그들은 지역사회를 위해 의무를 다해왔다. 그런데도 이 여자는,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고 여성 성기 절제Female Genital Mutilation(FGM) 에 반대하는 운동가들이 마을에 오기도 훨씬 전인데, 어린 소녀들에게 그토록 무참한 고통을 가하고 성기를 절단하는 짓이 잘못임을 깨달았다. (p.21-22)




나는 항상 스스로 깨닫는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 마이무나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 마이무나가 태어난 곳에서 할례가 멈춰있고, 그러나 마이무나는 자신의 아이들을 보지 못한 채로 살고 있다. 그녀를 인터뷰하고 기록해 이렇게 책으로 내는 수 로이드 로버츠나 그런 곳으로부터 빠져나오고자 한 마이무나 모두 얼마나 대단한지. 세상은 이렇게 스스로 깨닫고 변하고자 하는 사람들 덕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할례에 대한 1장을 다 읽었는데, 2장은 그나마 좀 수월하게 읽힐까. 오늘은 그저 1장 읽는 걸로 마치련다. 기운없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해야 한다는 신념은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훔친 이래로,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여성은 믿을 만한 존재가 못 된다고 경고해왔다. - P29

클리토리스에 대한 설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묘사는 [뉴욕 타임스]의 과학 전문 기자이자 작가인 내털리 앤지어Natalie Angier가 쓴 문장이다. "클리토리스는 목적이 분명하다. 신체에서 순수하게 쾌락만을 위해 설계된 유일한 기관이다. 클리토리스는 단순한 신경 다발, 정확하게는 8000개의 섬유질 뭉치다. 손가락 끝, 입술과 혀를 포함해 신체의 그 어느 곳보다 고밀도의 신경섬유를 갖고 있으며, 남성의 음경과 비교해도 두 배 가량 된다. 자동소총을 갖고 있는데 권총이 왜 필요하겠는가?" 여성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클리토리스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할 만도 하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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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19-04-09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맘.. 좀 패고 싶은데요..
고추를 자르지 않은 남자는 여자를 볼 때마다 발기를 해요. 바지 겉으로 드러날 지경이라 공공장소에 있다면 정말 망신스러운 일이 될 거예요. 그러니 잘라요!
라고 하고 싶네요

다락방 2019-04-09 08:03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수시로 발기하는 그 해로운 고추나 떼낼 것이지 어디 달고 살아본 적 없는 여자 성기에 대해 말하는건지, 원. 아 정말 징글징글해요.

블랙겟타 2019-04-0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읽기시작하셨네요. 저도 곧 따라갈께요.

앞 선 책 <가부장제의 창조>에서나 이 책 1장에서 보듯 종교에서도 여지없이 남성의 눈으로 멋대로 여자들을 평가하고 마음대로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죠.....ㅜ

다락방 2019-04-10 07:36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 저 어제는 2장 아르헨티나 할머니들 읽었어요.
납치된 자식들을 찾기 위해 시위를 하고 조직을 구성한 것도 다 여자들이었는데, 세상에 이렇게나 여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여왔는데 왜 세상은 남자들이 다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걸까요?

네, 곧 따라오세요. 저도 천천히 기다리며 읽겠습니다!
 















나는 비어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반드시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내 안에 있다. 그 강박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독서이다. 나는 재미있어서, 흥미로워서 책을 읽지만, 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이 모든 빈 시간을 메꾸는 데 어찌나 효과적인지 모른다. 친구를 기다리는 까페 안에서, 출퇴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서. 나는 그 시간들을 책으로 채운다. 잠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길라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어떤 책을 읽을까이다.


김진영이 입원을 해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그 시간동안 책을 읽어야지, 라고 내가 되어 생각했다. 내가 입원한다면 병실 안에 내내 혼자 있을테니, 책을 엄청 많이 읽을 수 있겠네! 라고, 애도 일기를 읽으면서 부끄럽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죽음을 앞에 둔 철학자의 가만한 내면 일기를 읽으면서, 입원에 이르기까지 그 고통은 또 얼만한 크기였을까를 생각하기보다, 책을 계속 읽을 수 있겠구나, 한것이다. 이 병의 크기를 무시한채로. 아, 나란 인간..



한 번 든 생각은 쉬이 사라지질 않아서 자꾸만 자라났다.

입원하면 하루종일 병실에 있으니 책을 많이 읽겠지, 그렇다면 그 책을 다 어떻게 마련하나. 일단은 집에 있는 책들을 좀 가져갈 수 있겠지만, 입원 시간이 길어진다면.. 병실로 책 배송을 시키면 안되겠지? 그러면 내가 가져온 책을 다 읽으면... 누구한테 가져다달라고 하지? 엄마 아빠는 무거운 거 들고 다니시면 안되는데.

남동생? 남동생한테 야, 오면서 내 방에 들러 이 책 저 책 가져와, 라고 해야할까?

친구들? 친구들이 온다고 하면, 친구야 책 좀 사다줘, 해야할까. 헌 책이라도 좋으니 책 좀 사다줘, 해야할까.

병실에 오기전에 연락해 친구들아.


어쩌면 병원 근처에 서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잠시 외출해서 여러권 사가지고 와야지.

편의점이 있다면, 그렇게 읽은 책들 차곡차곡 중고샵에 팔고 또 서점 가서 책 사오고, 책 사오고...



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입원하는 상황이면 몸이 무척 아플 거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아, 돌아다니고 책을 하루종일 읽을 수 있으려면 도대체 입원은 왜 한거냐,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입원한 거 아니냐, 하고... 나여.....




그러고보면 책만 있으면 혼자 있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것 같다.

<나는 자연인이다> 보면서 '나도 자연인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그 산 속으로 책만 잔뜩 가져가면 지내는 데 별 문제 없지 않을까, 한 것. 물론 밤에 자는 건 다른 문제..그거슨 초큼 무서울 것 같아. 그래도 낮에는 해를 벗삼아 비를 벗삼아 산새소리를 벗삼아 책을 읽으면 혼자 산 속에서 지내는 것쯤은 해낼 수 있을 듯.

그렇지만 별로 자연에서 살고 싶진않다...



원래도 책이 좋았지만 점점 더 좋아진다.

이런 일은 되게 드물기 때문에 너무 소중하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조카가 자라는 걸 계속 보면서,

와, 어떻게 어제보다 더 사랑할 수가 있지..라는 신기한 감정을 경험했었는데,

칠봉이랑 연애하던 시절에,

와, 어떻게 어제보다 더 사랑할 수가 있지..라는 감정에 스스로 벅차했었는데,

책이 그렇다.

어릴 때도 책이 좋아서 읽었지만 요즘에는 책이 진짜 더 좋다. 책 읽는 거 진짜 너무 좋아. 책 만만세다.


그리고,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뒤적인다. 부끄럽고 괴롭다. 그의 고통들은 모두가 마망 때문이다. 마망의 상실 때문이다. 그의 고통들은 타자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고통은 무엇 때문인가. 그건 오로지 나 때문이다. 나는 나만을 근심하고 걱정한다. 그 어리석은 이기성이 나를 둘러싼 사랑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사실 나는 바르트보다 지극히 행복한 처지다. 그는 사랑의 대상을 이미 상실했다. 그러나 내게 사랑의 대상들은 생생하게 현존한다. 나는 그들을 그것들을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만 하면 된다. (p.254)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그럴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

당신 자신을 잘 보살피라는 문자메세지를 따뜻하게 보내고 싶어졌다.





당신 자신을 잘 보살피도록 해요.









베란다에서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된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 P046

내 안의 텅 빈 곳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 텅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돌아다녔던 세월이 나의 인생이었다. 도서관을 헤매던 지식들, 애타게 찾아다녔던 사랑들, 미친 듯이 자기에게 퍼부었던 히스테리들, 끝없이 함몰했던 막막한 꿈들 …… 그것들은 모두가 이 텅 빈 곳을 채워서 그 바람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몸부림들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도 그 텅 빈 곳을 채우지는 못했다. 이제 또 무엇이 내게 남아 있는 걸까. 무엇으로 이 텅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걸까. 이제 남은 시간은 부족한데 과연 나는 그 텅 빈 곳의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 P144

"얼마나 걸어가야 절이 나오나요?"
라고 물으면 촌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자뿌리고 그냥 가소. 그라면 나오니께 ……" - P182

나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고 그래서 사랑받을 자격이 충만함을 알게 하고 경험케 한 부모님에 대한 기억. - P226

언젠가 어딘가에 적었던 말, 간절할 때 마음속에서 혼자 또는 누군가에게 중얼거리는 말들, 그게 다 기도란다-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나를 위해서, 또 타자들을 위해서 ……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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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
















간단히 뭉뚱그려 말해보자. 우리 주변에는 똑같은 유형의 이야기를 끝없이 복제해내는 것만으로 자족하면서, 상투적인 인물을 양산하고 감상과 선정성을 적당히 버무려 장사하려는 유의 문학이 존재한다. 나는 이를 ‘공산품 문학‘이라 부르려 한다. 말하자면 세간의 화제로부터 온갖 소재를 끌어모아 시류에 편승하는 세태 소설을 만들어내는 문학이다. 철저한 ‘시장 조사‘와 ‘경기 동향‘을 분석하여 특정한 독자층에 영업할 만한 특정한 유형의 ‘상품‘을 내다 파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나쁜 소설임은 말할 것도 없다.
왜 그런가? 그러한 소설은 창조의 결실이 아니라, 미리 짜맞춘 일련의 ‘형식‘을 복제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이 진실석(복합적이다)의 예술이라고 한다면, 그런 복제품은 단순화(거짓이다)를 추구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의식적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우리의 호기심만을 달래줄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결국 그런 책에서는 작가도, 작가가 보여주겠다고 하는 현실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정해진 틀에 짜 맞춰져 우리까지도 덩달아 그 틀에 가두고자 하는, 오로지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문학이다. (p.208)



자기 나름대로 독서의 한 단계를 거치고 있는 아이에게 억지로 다른 책을 쥐여준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겪었던 성장 과정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는 결국 아이와 우리 사이에 깊은 단절을 가져올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언젠가 아이 스스로 판에 박힌 책들을 단호히 집어 던지면서 느낄 그 비할 데 없는 뿌듯함을 배앗아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 당장은 그 상투적인 책들 때문에 아이가 정신을 못 차리는 듯이 보일지라도 말이다.

우리 자신의 청소년 시절과 화해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그맘때의 우리가 어떠했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증오하고, 경멸하고, 부정하거나 까맣게 잊어버린다면 그것 자체가 성장기를 무슨 몹쓸 병인 양 치부하는 미성숙한 태도일 것이다. (p.212)




하아-

다니엘 페나크가 굳이 나쁜 책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어도, 나는 '청소년 시절과 화해'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은 한국 소설 <남자의 향기>가 생각났다.

나는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 숱한 할리퀸 시리즈와 성인 로맨스물을 읽었다는 사실은 전혀 부끄럽지 않은데, 남자의 향기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실은 몹시도 부끄럽다. 너무너무 부끄럽다. 그 책이 아마 세 권짜리였던 것 같은데, 줄거리 자체도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기억나는 대로 써보자면, 고아인 소년이 부잣집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 그녀의 보디가드가 되는데,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그녀와 커플이 될 수 없고, 그녀는 자신의 신분에 맞는 변호사(?)와 결혼하게 되지만 불행하다..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남주가 그녀를 지키는 보디가드가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어마어마하게 싸움을 잘했기 때문이다. 그냥 어려서부터 싸움을 잘했다. 그는 주인공이니까.  하아..

그 당시에도 같은 반 아이가 깡패를 미화한다고 이 소설 싫다 그랬는데, 아아, 나는 재미있다고 답했다. 아아, 그 때의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다니엘 페나크는 그 시절의 나와 화해하여야 한다지만, 나는 도무지 화해가 안된다 ㅠㅠ 용납이 안돼.


어떤 책들은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궁금해지지만, 남자의 향기에 대해서라면 다시 읽지 않아도 너무 허접한 소설이었다 ㅠㅠ 그걸 지금 너무 알겠어. 대략 떠오르는 내용만으로도 이미 너무 잘 알겠다. 부끄럽다. 아아, 나의 청소년기 너무 부끄럽고..


게다가 너무 기억나는 게, 그 때 그 부잣집 소녀가 자신의 처녀성을 이 보디가드한테 바치는(?) 맡기는(?) 장면이었다. 아마 작가가 남자였을텐데(그러니 그런 소설이 나왔겠지), 보디가드는 너무너무 이 여자를 사랑해서 그여자랑 관계를 하는데, 하고나서 그녀가 '이렇게 하면 되는거야?' 라고 해서 남자 가슴을 후벼놨던 것. 그러니까 여자는 그를 사랑해서 섹스한 게 아니라, 섹스란 걸 어떻게 하는지 알기 위해 그를 이용한 것이었다. 진짜 부끄럽기 짝이없게도 그 때 나는 그 남자의 가슴아픔에 얼마나 이입했던가.


아아, 과거의 나여, 청소년기의 나여... 부끄럽다..


그렇지만 다니엘 페나크가 그 때의 나를 경멸하지 말라고 한다. 흙흙 고마워요 다니엘 페나크 아저씨. 저 경멸할라 그랬어요.

그렇지만 다니엘 페나크가 그 때의 나를 증오하거나 부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흙흘 고마워요 다니엘 페나크 아저씨. 저 그 때의 저를 증오하고 부정하고 싶었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남자의 향기 재미있다고 외치고 다녔던 열일곱살의 나여, 내가 너를 증오하고 경멸하고 부정하려 했어. 미안해. 화해하자. 사실..화해가 조금 힘들기는 해. 지금이라면 누가 공짜로 줘도 안읽을 소설을 그때는 니가 재미있다고 읽었잖아. 그렇지만... 그 때의 나...가 지금의 나...가 된 것이지. 화해하자. 물론 쉽지는 않아. 나는 여전히 그때의 나를 부정하고 싶어.



나여..

오,

나여......


왜그랬니,

나여?



나여..

아아,

정녕 내가 그랬단 말인가.



부끄럽다.

숨고싶다.


그렇지만..

화해하자.

쉽지 않지만.

화해하자.


아니야,

시간을 조금만 주겠니.

화해가 그렇게 금세 되는 건 아니잖니.

시간을 조금만, 조금만 줘.

결국은 화해에 이르도록 할게.

흙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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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4-0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의 다락방님도 오늘의 다락방님하고 화해를 하고 싶어하는 눈치예요??

다락방 2019-04-05 07:47   좋아요 0 | URL
제가 쇼님의 이 댓글 읽고 앗차 싶어 그때의 나에게 물었더니, 딱히 화해할 생각 없는 것 같아요. 고집이 세서... 어휴... 제가 저 때문에 힘드네요.... 킁.

syo 2019-04-05 12:27   좋아요 0 | URL
뚜드리패세요 ㅋㅋㅋㅋㅋ 전 말 안 듣는 어릴 적 syo를 종종 뚜드리팬답니다.

다락방 2019-04-05 12:57   좋아요 0 | URL
잉 ㅜㅜ 그러면 아프잖아요, 그 때의 내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안돼 ㅜㅜㅜㅜㅜㅜㅜㅜㅜ 고집세지만 그 아이도 소중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카알벨루치 2019-04-0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의 향기 , 저도 읽었더랬는데 ㅎㅎㅎ

다락방 2019-04-05 07:47   좋아요 1 | URL
그 당시에 아마 베스트셀러였을 겁니다. 윽-

감은빛 2019-04-05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하신 스토리를 보니 저도 당시에 그 책 읽었었네요.
근데 어떻게 제목을 기억하고 계신건지 신기하네요.
아, 같은 반 친구와 책에 대한 대화까지 기억하고 계시니, 제목을 기억하시는 건 당연하겠네요.

저는 어릴때 야하고 폭력적인 쓰레기 무협 소설을 읽던 내가 별로 부끄럽다 여겨지진 않아요.
그걸 읽을 당시의 저는 그걸로 꽤나 재미를 느꼈다고 기억하거든요.
재미로 읽는 소설이었으니 그럭저럭 재미있었으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어요.

다락방 2019-04-05 08:18   좋아요 0 | URL
당연히 제목 기억 못했죠! 다만 그것이 인기 있어 한은정 주연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라는 건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네이버에 한은정 넣고 검색했어요. 그랬더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적을 수 있었습니다. 기억 전혀 못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제가 어릴 때 숱하게 로맨스 소설을 읽었던 것에 대해서는 전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로맨스 소설이라면 지금도 열심히 읽는 편인데 이상하게 남자의 향기는 부끄럽습니다. 그 당시에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도 부끄러워요. 그래서 그때의 나와 화해가 필요합니다 ㅠㅠ
 
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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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소설들은 어째서 그토록 빨리 읽을 수가 있을까? 읽기 쉬워서? '읽기 쉽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가 읽기 쉽다고? 『죄와 벌』이 읽기 쉽다고? 『이방인』보다도, 『적과 흑』보다도? 결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들이 학교 교과 과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일단 시칠리아 미망인을 비롯하여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하달된 이른바 '교양 필수 권장 도서' 따위는 으레 '고리타분'할 것이라고 속단한다. (p.173)



아주 어릴때부터 이웃집에 놀러가면 그 집 책장 앞에 가 책들을 구경하고 또 빼서 읽었더랬다. 놀러간 내 형제들이나 혹은 친구들이 수다를 떨며 다른 놀이를 즐길 때 나는 꼭 그렇게 혼자 책들을 구경하고 읽곤 했다. 고모네 집에 가면 나보다 두 살 많은 사촌오빠의 국어책을 꺼내 읽었다. 소설을 다룬 부분만 읽었는데, 그게 그렇게나 재미있었던 거다. 나보다 아홉살 많은 이모네 집에 가면 이모가 없을 때에도 아무 책이나 꺼내 읽곤 했는데, 그러다보면 아직 어린 내가 읽지 말아야할 책들도 더러 껴있었다. 아니, 대부분 그랬다. 이모는 집에 오고 나서 '그건 니가 볼 책이 아닌데... '했다. 그렇다고 이모는 내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여동생이 친구로부터 빌려온 <스타킹 훔쳐보기>시리즈를 하루 꼬박 몰아 읽었더랬다. 마침 시험기간이었던지라 여동생은 도대체 왜 공부를 안하고 책을 읽는 거냐며 내게 잔소리를 했다. 그래서 너는 전교 일등 나는 일등 한 번 못해본 사람...이었던 건가보다.



내가 공부보다 소설 읽기를 즐겨한 데는 그것이 교과과정이 아니라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읽는 책이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스타킹 훔쳐보기를 열과 성을 다해 읽는다고 해서 내 성적이 오를 리가 없다. 아니, 떨어지겠지. 내가 2년 위의 사촌 오빠 국어 책을 읽는다고 해도 그것이 지금의 나의 교과과정과는 아무런 상관없다. 예습도 될 수 없다. 나는 그저 재미있어서 읽었다. 나는 소설 읽기가 재미있었다. 교과과정이 아닌 그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책 마다 펼쳐지는 다른 이야기들이, 다른 인물들의 삶을 읽는 것이 정말 좋았다. 책 좀 그만 읽으라는 소리를 들어도 도무지 끊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누가 왜 소설을 읽냐고 물어보면 '재미있어서'가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사실 그것말고 다른 이유는 어린시절에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아니 왜? 이렇게나 재미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데 책을 왜 안읽지? 안읽어봐서 재미있다는 걸 모르는 거 아닐까?



나는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좋았지만, 내가 이야기 자체를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책마다 품고 있는 다른 이야기들이 좋다고 늘 생각했으면서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게 '이야기'인 줄은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가 놀랐다.



이를테면 소설이란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설은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소설 읽기란 무엇보다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갈구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p.151)



나는 위의 문장을 읽고 내게 몇 번이나 물었다. 내가 정말 이야기 때문에 소설을 읽었던 거야? 나는 이야기 그 자체를 좋아했던 거야? 늘상 재미있어서 읽는다고 말해왔지만, 나는 '소설이란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 이기 때문에 좋아했던거야? 이야기? 이야기란 대체 무엇이지? 물론 소설은 단순히 이야기의 나열은 아니지만, 거기엔 작가 고유의 문체라는 것도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런데, 어쨌든,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래? 나는 이야기에 목마른 자란 말인가?



묻고 묻고 또물었는데 답은 '그렇다' 였다. 왜냐하면, 소설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으니까. 소설은 이야기였으니까. 소설이란 무릇 이야기이니까. 작가의 고유한 문체가 그 안에 들어있고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들어있다해도, 작가가 어떤 의도로 글을 썼다해도 어쨌든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였다.



아.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렇다면 이야기였구나.


아,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를 찾는 것 같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어. 이 사람의 저 이야기, 저 사람의 저 이야기.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거였어. 그렇다면 말이 된다. 그래, 말이 돼. 내가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것, 연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모두가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었어. 내가 기본적으로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모든 것, 그 안에는 인간들이 저마다 품고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어. 내가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소설을 계속해서 읽어대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었다. 그래,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였어. 우리는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사는 존재니까.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거였어!!




이 작은 책의 절반쯤을 읽을 때까지는, 그러니까 책 읽기에 관련된 책이라면, 게다가 청소년에게 책을 읽게 만드는 책이라면, 이 책보다는 '김소영'의 《어린이책 읽는 법》이 이천오백배쯤 낫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간을 지나면서부터, 그러니까 좋지 않은 학교의 열등생들, 자신들이 공부도 못하고 책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두꺼운 책을 이해할리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들을 책에 빠져들게 만드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 책은 반짝거리며 빛이 난다.


서른 다섯명의 아이들, 도통 책 읽기엔 흥미가 없을 뿐더러 그런건 이해할 수도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어느 책의 첫 구절을 읽어주면서부터, 그 때부터 갑자기 독서란 너무나 재미있고 아름다운 행위가 된다.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다음을 궁금해한다. 그러니까 그 다음의,




아.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이렇게 다시 이 자리로 나를 불러오는 힘이 있다. 이제 아이들은 선생님이 읽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책의 책장을 넘긴다. 읽을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책들의 책장을 넘기고, 저마다 그 안에 있는 이야기를 전하기에 바쁘다. 아, 이 과정이야말로 또한,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닌가. 너무 좋아 ㅠㅠ

책이란 나랑 안어울려, 라고 생각하다가 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그렇게 책을 읽게 되고, 그러다가 종국에는 읽은 책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아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단 말인가.



이 작은 책 한 권은 그렇게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완성한다.




게다가 책이란 것에 실려있는 사연, 그러니까 책이 품고 있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것이 하드웨어적인 것으로서의 의미, 누군가와 얽힌 사연에 대한 것도 잊지 않고 얘기해준다.



대개의 경우 우리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로부터 추천받은 책이다. 또한 책에 대한 느낌도 우선은 가장 소중한 이에게 먼저 전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아니 확실히, 감정이란 원래 책읽기의 욕망처럼 무엇 무엇을 더 좋아한다는 속성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와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눔은 우리 스스로가 자유롭게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요새에 자리 잡게 된다. 책과 친구들이 우리 안에 들어와 사는 것이다.

가까운 이가 우리에게 책을 한 권 읽으라며 주었을 경우, 우리가 책의 행간에서 맨 먼저 찾는 것은 바로 책을 준 그 사람이다. 그의 취향, 그가 굳이 이 책을 우리의 양손에 쥐여주었던 이유, 그와의 유대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증표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p.110-111)



누군가가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읽었기 때문에, 어떤 이유든 우리는 책에 대해 다른 누군가와 하나의 사연을 공유하게 되는 경험을 더러 하게 되지 않나. 이 부분을 읽는데 가슴 속에 봄이 오는 기분이었어. 크-




다니엘 페나크는 물론, 나쁜 책도 있다고 말한다. 나쁜 책을 흥분하면서 읽었던 때도 분명 있었을 거고, 그 시절을 부끄러워하기도 했을 거라고. 동시에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건너뛰며 읽어도 되고,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되고, 다시 읽어도 된다고, 아무 데서나 책을 읽고, 군데군데 골라 읽고, 소리 내서 읽고, 읽고 나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모든 권리가 책 읽는 사람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책 읽는 사람의 자유로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자유로움이 우리를 계속해서 책을 읽게 하는거겠지. 자, 읽고 읽고 또 읽자. 이야기를 만나고 또 만나자.


아,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우린 정말로 아이가 걱정스러웠다.
어찌나 걱정스러운지 시도 때도 없이 내 아이를 또래의 다른 아이와 시시콜콜 비교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친구 아무에게나 …… 가 아닌, 학교 성적이 뛰어나며 죽어라 책만 읽는다는 아이를 둔 친구에게 자문을 구해보기도 했다.
귀가 잘 안들리나? 난독증이 아닐까? 아예 학교에 안가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학습 장애가 있는 건 아닐까?
별의별 검사를 다 해보았다. 청력 검사에서도 모든 게 정상이었다. 언어 치료사도 안심해도 좋단다. 심리 검사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왜?
둔해서일까?
단지 둔해서일 뿐이라고?
아니다. 아이는 그저 자신의 리듬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리듬은 다른 아이와 반드시 같아야 한다는 법도, 평생 일정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아이에게는 저마다 책읽기를 체득해나가는 자신만의 리듬이 있다. 때론 그 리듬이 엄청난 가속이 붙기도 하고, 느닷없이 퇴보하기도 한다. - P58

열두 살인가 열세 살 때(열세 살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난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처음으로 『전쟁과 평화』를 읽었다. 여름 방학의 초입부터 형(앞서 말한 『계절풍』을 읽던 형)은 그 두꺼운 책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럴 때 형의 눈빛은 고향 생각을 오래전에 잊은 탐험가처럼 아련해지곤 했다.
"형, 그렇게 재미있어?"
"응, 무지."
"무슨 얘긴데?"
"으응, 어떤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다, 결국은 세번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는 얘기야." - P196

더욱이 한밤중에 50명의 친구가 코를 골고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기숙사 방 한가운데서, 이불을 텐트처럼 뒤집어쓴 채 손전등을 비추어가며 책을 읽는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했다.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감시 초소를 지척에 두고도, 언제나 나의 마음을 졸이게 만든 것은 오로지 사랑을 얻느냐 마느냐뿐이었다. 당시 내 손에 쥐여 있던 그 책의 두께며 무게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 P198

간단히 뭉뚱그려 말해보자. 우리 주변에는 똑같은 유형의 이야기를 끝없이 복제해내는 것만으로 자족하면서, 상투적인 인물을 양산하고 감상과 선정성을 적당히 버무려 장사하려는 유의 문학이 존재한다. 나는 이를 ‘공산품 문학‘이라 부르려 한다. 말하자면 세간의 화제로부터 온갖 소재를 끌어모아 시류에 편승하는 세태 소설을 만들어내는 문학이다. 철저한 ‘시장 조사‘와 ‘경기 동향‘을 분석하여 특정한 독자층에 영업할 만한 특정한 유형의 ‘상품‘을 내다 파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나쁜 소설임은 말할 것도 없다.
왜 그런가? 그러한 소설은 창조의 결실이 아니라, 미리 짜맞춘 일련의 ‘형식‘을 복제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이 진실석(복합적이다)의 예술이라고 한다면, 그런 복제품은 단순화(거짓이다)를 추구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의식적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우리의 호기심만을 달래줄 뿐이기 때문이다. - P208

무엇보다도, 결국 그런 책에서는 작가도, 작가가 보여주겠다고 하는 현실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정해진 틀에 짜 맞춰져 우리까지도 덩달아 그 틀에 가두고자 하는, 오로지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문학이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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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토록 부끄러운, 남자의 향기
    from 마지막 키스 2019-04-04 16:50 
    간단히 뭉뚱그려 말해보자. 우리 주변에는 똑같은 유형의 이야기를 끝없이 복제해내는 것만으로 자족하면서, 상투적인 인물을 양산하고 감상과 선정성을 적당히 버무려 장사하려는 유의 문학이 존재한다. 나는 이를 ‘공산품 문학‘이라 부르려 한다. 말하자면 세간의 화제로부터 온갖 소재를 끌어모아 시류에 편승하는 세태 소설을 만들어내는 문학이다. 철저한 ‘시장 조사‘와 ‘경기 동향‘을 분석하여 특정한 독자층에 영업할 만한 특정한 유형의 ‘상품‘을 내다 파는 것이다.
 
 
단발머리 2019-04-04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와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눔은 우리 스스로가 자유롭게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요새에 자리 잡게 된다. 책과 친구들이 우리 안에 들어와 사는 것이다. (p.110-111)

저번주에 친구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했어요. 그저께 <질의응답>을 선물받았구요.
책이 저와 친구, 저와 언니 사이에 있어요. 확, 들어와버린거죠.
너무 좋아요, 이 글!! 다락방님, 하트뿅뿅!!!

다락방 2019-04-05 14:57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께 제가 받은 하트의 정확히 두 배 돌려드립니다.

저도 제가 받았던 어떤 특별한 책들에 대해 떠올렸어요. 또한 특별하지 않고 내보내고 싶었던-순전히 그걸 준 사람 때문에-그런 책도 떠올렸고요. 책은 그 안의 내용으로도 소중하지만 그걸 선물한 사람때문에 특별햊기도 하는 것 같아요. 선물이란 게 물론 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성질의 것이지만, 책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잖아요. ‘아, 이 부분 때문에 줬구나‘, ‘어떤 이유로 내게 이 책을 준걸까?‘ 같은 거요. 그래서 더 유심히 읽게 되는.

저도 이 공간에서 단발머리님과 끊임없이 책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읽고 때로는 책을 선물로 주고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행복합니다, 단발머리님!! >.<
 
















'세르게이 폴루닌'은 우크라이나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체조를 배웠는데, 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엄마는 세르게이를 발레 학교에 보낸다. 키예프 발레학교는 등록금이 너무 비싸 이 가난한 부모는 아이 학비 마련을 위해 떨어져 살게 된다. 아버지는 포르투갈에 가 돈을 벌고 할머니는 그리스로 가 돈을 번다.


키예프에서도 실력이 다른 누구보다 앞서는 세르게이인지라 세르게이의 엄마는 여기도 작다, 런던으로 가자, 하고는 십대의 아이를 데리고 런던 로열발레단으로 가 오디션을 본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로열발레단에 아이를 입학시키지만, 엄마에게는 비자 문제가 있어 아이와 함께할 수 없다. 결국 아이를 그곳에 남겨둔 채 엄마는 우크라이나로 돌아오고 그렇게 아이는 런던에, 엄마는 우크라이나에, 아빠는 포르투갈에, 할머니는 그리스에 있는 삶이 시작되는 거다.



아이의 엄마도 아빠도 발레를 했던 사람들이 아닌데 어떻게 아이의 발레애 대한 재능을 알아보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더 큰 곳, 더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을까. 엄마의 세르게이에 대한 교육열은 정말 대단한 것이면서 동시에 엄마의 능력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재능이 있었다한들 우리 부모님이 '이것은 이 아이의 어마어마한 재능이다' 라는 걸 알 수 있었을까? 알 수 있었다해도 '이 아이의 앞날을 위해서 더 큰 곳으로 가야한다, 그곳은 여기다' 를 알 수 있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재능이 있다해도 발견되지 못한채 그저 평범하게 지내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재능인줄 모르는 주변 어른들과 설사 알았다해도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어른들만 가득해서 더 크게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엄마의 눈은 적확했다. 아이는 로열발레단에 들어가서도 두 번이나 월반을 하고 최연소로 수석 발레리노가 된다.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엄마는 아이가 어릴적부터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그토록이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았으면서도 어떻게나 그렇게 큰 미래를 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것이 세르게이의 운명이기 때문이었을까? 운명이 착실하게 그 수순을 밟도록 한걸까?



세르게이는 그렇게 자꾸만 더 크게, 더 크게 된다. 종국에는 세르게이의 발레를 보기 위해 2년 전부터 티켓팅을 해야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세르게이는 아주아주 큰, 아주아주 유명한 일류의 발레리노가 된다. 그러나,



세르게이를 그렇게 어마어마한 발레리노로 만든 가족들은 세르게이의 공연을 볼 수 없었다. 세르게이는 자신의 가족이 자신의 공연을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오지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어린 세르게이가 열심히 발레를 했던 건, 자신이 열심히 발레를 하는 것만이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과 얼른 합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열발레단에 들어간지 얼마 안돼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나 함께 살고 싶어했던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걸 알게된 세르게이는 몹시 상처를 받았다. '내가 발레하는 걸 가족에게는 보여주지 않겠어'라고 화가난 채로 마음을 먹는다. 결국 그토록 훌륭한 발레리노로 만들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가족들은 볼 수 없게 된거다. 세르게이는 가족들과 헤어져 산 것이 몹시 슬펐고 아팠고 힘들었다고 했다.



무엇이 나은 것이었을까.

세계 제일의 발레리노가 된다는 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 아닌데, 이토록이나 훌륭한 발레리노가 되도록 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을 잘한 선택이라 해야할까.

그러나 세르게이가 원했던 것 '가족들과 다함께 사는 것' 이었으니, 발레리노라는 미래 보다는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함께 있도록 선택했어야 하는걸까?



세르게이는 발레학교에 입학해 자신을 엄하게 대하는 엄마가 야속했고 떨어져 사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엄마는 세르게이가 발레 연습이 끝나도록 밖에서 기다린 것이 집에 돌아갈 차비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의 고생은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그것은 결국 세르게이를 그토록 어마어마한 발레리노가 되게 만들었지만, 그러나 세르게이에게 어린 시절은 힘들고 상처 받았던 기억들이었다.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 이 가족들의 희생은 세르게이를 세계 제일의 발레리노로 만들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세르게이가 원하는 것이었나. 세르게이가 '나는 세계 제일의 발레리노가 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어!'라는 목표를 가진 적이 있었나.


물론 지금의 세르게이는 춤을 하루라도 추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아픈 그런 댄서가 되어 있었다. 춤을 사랑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족이 떨어져 살았던 것에 대한 상처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다.

엄마는 하나의 선택을 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반드시 지어야 하는 거라 말했다. 그렇다면 세르게이가 세계 제일의 발레리노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가족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을 지고 가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이, 가족들과 함께 가난하게 사는 걸 택하고 발레리노가 되지 않는 걸 지고 사는 것이면 안되는 거였을까?




나는 뜬금없이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소설 《일곱 번째 파도》생각이 났다. 소설 속에서 레오는 에미이게 말한다. '너를 위해 선택한것이었는데, 그것이 너에게 좋은 게 아니었다' 고.






나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을 택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 자신이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어요. 유감이고 불행이에요. 기회를 놓쳤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p.242)











세르게이의 엄마가 세르게이에게 '그 때 내가 한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을까?'를 말했다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는 그저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라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그 책임은 아이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세계 일류 발레리노가 되었으니, '결과가 좋으니 다 좋은 거야' 할 수 있는걸까?


행복이란 저마다의 것이니 누가 뭐랄 순 없는 거지만, 어쩌면 세르게이에게 가장 좋은 길은 가족들이 한 집에서 사는 건 아니었을까. 물론, 세르게이의 춤을 보는 내내 나는 너무나 좋았지만, 와, 이런 발레리노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까웠을까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지만, 마지막 <take me to church>를 볼 때는 진짜 너무 좋아서 '여긴 계속 돌려봐야지' 싶었지만, 그렇지만, 결과가 좋으므로 다 좋은걸까. 결과가 좋다는 것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일까. 자꾸만 자꾸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야 늘 남는 법, 가족들과 있는 걸 선택했다면, '그때 내가 발레를 계속 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레오는 위의 문장에서처럼, '에미를 위해 뭐가 좋을까'를 선택하다가 나중에야 '내가 가장 좋은 답이 될 수도 있었는데'를 깨닫게 되는데, 이 남자는 항상 이런 식이다. 파멜라를 위해서도 '파멜라가 행복해하는 걸' 택하려고 노력하는 거다. 이때 에미는 '너 자신의 행복은?' 이라고 묻는데, 선택은 항상 '나는 어떤가',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행복한가'를 물어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두가지를 동시에 선택할 수 없기에 오는 문제이기도 하고 또 타이밍의 문제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읽은 '리안 모리아티'의 《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존과는 4년을 함께 살았지만, 그의 입에서 ‘결혼‘이라는 말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엘런은 존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엘런한테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존은 엘런하고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였다.
엘런은 정말로 상처를 입었다. 도자기 컵 여러 개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것처럼 감정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예리한 통증이 파편이 되어 온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콧구멍 속을 따끔거리게 만든 고통들이 커다란 통증이 되어 쐐기처럼 가슴 깊이 박혔다.- P192








엘런과 헤어진 연인 '존'이 다른 여자랑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될 거란 소식을 들은 엘런은 몹시 상처 받는다. 자신과 지낸 4년동안 자신에게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그런데 결혼을 한다니. 자신은 뭐였을까, 자신과 함께한 시간은 대체 뭐였나. 엘런은 상처받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 아, 결혼을 하고싶어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나랑' 결혼을 하고싶었던 게 아니구나.


이 뒤늦은 깨달음은, 비록 그들이 헤어진 뒤라도 그녀에게 몹시 상처를 남긴다. 예리한 통증.



나도 정확히 저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예리한 통증이 어떻게 엘런을 아프게 했을지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엘런이 깨달은 것이 반드시 사실은 아니라는 얘기를 꼭 엘런에게 해주고 싶다. 존은, 정말로, 어쩌면, 그간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고 하고 싶지 않았었던 걸지도 모른다. '엘런이라서'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정말로 '결혼은 관심없어'라는 태도로 살아왔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났고, 지금 다른 여자랑 사귀면서는, 자연스레 '아, 이제 나도 결혼을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엘런이 그렇게 아파하지 않아도 될만큼, 그것은 어쩌면 그저 '타이밍'의 문제였을 수 있다는 것. 물론, 이렇게 말해봤자 그 예리한 통증이 금세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이 책에서 엘런의 아버지는 ˝뒤늦은 깨달음이라. 항상 문제가 생겨야 알게 된다는 거구나.˝(p.585)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 전에 알아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레오는 에미를 위한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세르게이는 그토록 훌륭한 발레 공연을 연달아 하면서도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가족들을 위한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는다. 생애 얼마만큼의 시간을 꼭 아들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건만, 정작 그 아들의 성취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엄마와 다른 가족들의 마음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아프고 아프고 또 아프지 않았을까. 그간의 시간들이 도무지 잡히지 않아 안타깝지 않았을까. 우리가 그러면 안되는 거였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않았을까.





레오, 왜 "당신이랑 ( …… ) 하고 싶어", 이렇게 말하지 않고 "우리 ( …… ) 할까요?", 이렇게 물어요?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몰라요? 아니면 내가 원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당신도 원하지 않을 여지를 남겨두는 건가요? (일곱 번째 파도, p.280-281)




이제와 '그랬어야 하는 건 아닐까'는 어쩌면 부질없는지 모른다. 세계 일류의 발레리노가 되었으니 '사실은 어릴 적에 가족이 함께 있고 싶었어' 라는 말을 뒤늦게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 자리는 너무도 크고 높으니까. 그렇지만 선택에 있어서 중심은 '너'가 아니라 '나'가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너에게 가장 좋은 게 무얼까' 가 아니라 '나에게 가장 좋은 게 무얼까' 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세르게이가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저런 가족들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지금이 없었을 지 모르지만, 그런데 지금은 꼭 지금이어야 했던걸까. 잘 모르겠다.




마지막 하와이에서의 촬영이 진짜 눈이 부셔서, 와, 어떻게 저런 장소를 잘도 찾아냈다 싶었다. 이 영상은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다.










그나저나 인용문 찾는다고 일곱 번째 파도 펼쳤다가 또 흠뻑 빠져들어서 끝까지 다 읽을 뻔 했다. 하핫, 나란 여자는 정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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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04-05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상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9-04-08 15:13   좋아요 0 | URL
천만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