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한 십오년전쯤이었을 것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그 당시 부장은(현재는 퇴사한 상태) 결혼하지 않은 남자사람이었는데, 사무실에서 곧잘 담배를 피곤 했었다. 그리고는 침도 뱉었었지..참 더럽고 더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은 담배에 얽힌 자신의 일화를 자랑스레 얘기했더랬다. 자신이 젊었던 시절, 길에서 담배피는 여자를 보고(길이었는지 술집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처음 보는 여자이지만 싸대기를 날렸다는 것. 그 얘길 듣고 있던 직원들은 모두 여자였는데, 그 얘기를 자랑스레 하는 그를 보노라니.....그게 뭐 그렇게 자랑스러울 일일까? 그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그 일에 대해서 언제든 자랑처럼 얘기할 수 있는가보았다. 그 일은 그의 자랑이었다. 내가 진짜 몇 번이고 누누이 얘기하지만 무엇을 욕으로 하느냐와 무엇을 자랑거리로 삼느냐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담배 피는 여자의 싸대기를 날렸지, 를 이십년이 지나도 자랑거리로 삼는 남자사람이라니...


이 일은 비단 그 사람만의 무용담은 아니었다.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일화가 아닐까. 왜, 그 유명한 드라마 [모래시계]였나, 거기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왔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고현정이 그 일에 빡쳐서 그 남자랑 맞장 뜨는 걸로 끝났던 것 같지만... (기억 불분명)


내가 이 얘기를 왜 했냐면, 김현경 역시 그 일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공원이나 카페나 기차역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시민권을 가진 거주자들뿐 아니라 잠시 머무는 이방인들에게도 열려 있는 공간에서, 여성은 오랫동안(어쩌면 한번도) 남성과 동등한 정도로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였다. 여성은 인도의 달리트처럼 또는 민권운동이 시작되기 전 미국의 흑인들처럼 어떤 구역이나 건물에 출입이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옷차림이나 행동거지와 관련된 다양한 금기를 통해 더욱 미묘한 통제를 받았다. 여성이 길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규칙이 그러한 예이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무수히 쏟아지는 노골적인 비난의 시선을 각오해야 했고, 심지어 모르는 남자에게 뺨을 맞더라도 항변할 수 없었다. 그 시절의 남자들은 남자라는 것만으로도 자기에게 모르는 여자의 일탈을 훈계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슬람 국가에서 남자라면 누구든 히잡을 쓴 여자 아무에게나 다가가서 "히잡을 똑바로 써!" 라고 야단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영화 「페르세폴리스」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히잡을 쓴다는 것은 단지 신체의 일부를 가린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이런 식으로 모욕당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1980년 대의 우리는 히잡을 쓰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모욕당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히잡을 쓴 여인들과 비슷했다. -p.290



위의 인용문은 이 책의 끝에 실린 부록 <장소에 대한 두 개의 메모>의 일부분이다. 본문도 좋지만 이렇게 부록으로 여성의 장소, 환대, 위치에 대해 써둔 게 너무 좋다.



우리는 남자들과 똑같이 공부했고, 학위와 자격증을 땄고, 직업을 얻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이냐 가정이냐' 따위의, 남자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아닌 문제 앞에서 고민하지 않는가? 더 이상 우리에게 차림새나 행동거지를 보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담배를 피우고, 염색을 하고, 피어싱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폭행을 두려워하며 밤거리를 걷지 않는가?

나는 여성의 지위 향상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여성과 성공하지 못한 여성의 차이는 성공한 흑인과 성공하지 못한 흑인의 차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결국 여성이며, 흑인인 것이다. 성폭행 당하는 여성의 수가 백인우월주의자에게 습격당하는 흑인의 수보다 더 많다는 점에서, 여성은 흑인보다 못한 처지라고 할 수도 있다. KKK단의 린치가 인간의 공격 본능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처럼, 성폭행은 남성의 성욕으로 설명될 수 없다. 성폭행은 남성 지배 사회가 조장하고 묵인하는 일종의 의례이며, 린치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에게 '교훈'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환대는 여전히 조건적이다. 여성은 어디서나 모욕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며, 멋진 옷과 가방도, 자격증도, 명패와 직함도 완전한 보호막이 되어주진 못한다. 여성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이등 시민이다. 흑인 변호사나 흑인 교수 심지어 흑인 대통령의 존재가 전체 흑인의 지위를 판단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듯이, 몇몇 성공한 여성이 있다고 해서 이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성은 자리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환대의 권리-환대받을 권리와 환대할 권리-는 그러므로 당분간 우리의 어젠다를 구성할 것이다. -p.293-294



부록이지만, 이 여성에게 조건적인 환대에 대한 글은 '너멀 퓨워'의 《공간침입자》의 구절들과 통한다.















[지리학자] 도린 매시(Doreen Massey)는 젠더 범주에 따른 공간/시간을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9살인가 10살 무렵의 일인데 지금도 가끔 떠오른 꽤 선명한 장면이 있다. 당시 맨체스터 외곽에 살던 내게 ‘시내로 나가는 일‘은 비교적 큰일이었다. 이층버스에 올라타 반시간 정도를 가야 했다. 시내로 나가는 길에 머지강의 넓고 얕은 계곡을 건넜고, 내 기억으로 차갑고 안개 낀 먼 곳에까지 축축한 진흙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맨체스터 지역 전체 모든 곳이 축구경기장과 럭비경기장으로 나눠져 있었고, 시내로 나가는 토요일마다 그 방대한 공간이 공을 쫓는 수많은 아이로 가득 찬 광경을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많은 수였다(버스 꼭대기에 앉아 있으며서 마치 로리(Laurence Lowry;1887-~1996)의 거대하고 활기찬 그림을 보는 듯했는데, 로리가 그린 것보다는 좀 더 밝은 빛깔의 옷을 입은 아이들, 빨간 스타킹을 신은 그들의 다리가 보였다).
이 모든 것을 매우 정확히 기억한다. 혼란스럽고 약간 사려 깊은 어린아이의 눈에도 분명하게 각인된 또 하나의 사실은, 바로 넓은 머지강 평야 전체가 완전히 남자아이들에게만 주어졌다는 점이다. 나는 그 경기장들에 가지 않았다. 그곳은 또 다른 금지된 세계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내가 공간 침입자라는 생각과 약간의 긴장감을 품은 채 이 축구경기장 계단석에 서 있다. 나는 이것을 무척 좋아한다(Massey196: 185). - 《공간침입자》, 너멀 퓨워, p.21-22



린다 맥도웰(Linda McDowell)은 19세기 영국에 출현한 도시 생활에 주목했다.

여성들이 거리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그들은 해석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치 않은 성적 관심에 자주 노출되었다. 이를테면 후기 빅토리아 시대 케임브리지에서 초창기 여학생들은 공적 영역에 나갈 때면 도시의 많은 ‘방종한‘ 여성과 자신들을 구별짓기 위해 장갑과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의무였다(1996: 154)

이러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번번이 경계선을 넘어섰고, 그들의 움직임을 제약하려 했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새롭게 정의해낸 영역과 장소들에 진입했다(Wilson 1992) - 《공간침입자》, 너멀 퓨워,p.50-51



여성은 국가와 조금 다른 관계를 맺고 이는 시민적인 것과 가족적인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자연과 이성의 분리와 연관된다. 여성은 가족과 자연의 상(像)으로서 시민 영역의 자리에 놓인다. 신체혐오증이-일반적으로 암묵적인 남성 개인의-정치를 지배하는 한편 국가의 신체성은 여성 이미지를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의) 일가권속을 돌보는 이나 방관자로 내세운다. 국가의 강한 어머니, 국가의 용감한 보호자이자 돌보는 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모성, 땅, 정의와 연계된 제한된 범위의 여성성 안에서만 인정받는다. -《공간침입자》, 너멀 퓨워, p.54




재차 언급하지만 위의 부분은 부록으로 실려있는 것이다. 이 책은 비단 여성의 조건적 환대뿐만 아니라,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사회의 환대를 받지 못한 혹은 조건적 환대에 기댈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러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조건적 환대속에서 사람이 왜 늘 사람일 수 없는지 주장하는 김현경의 글을 읽는데,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들이 있었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 나는 그것에 대해서 개인의 복수심으로 그를 처벌하고 싶어하지 않았는가. 또한 외국인에 대해서, 난민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환대가 나에게 있었던가, 하면 아니었던 거다.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내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지도 않을테고 그럴 수도 없겠지만, 나는 여전히 복수에 치중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회 계약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었다. 이 계약속에서만이 사람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려면 환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읽는 것은 앞으로 내가 어떤 가치판단을 할 때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김현경의 말처럼 무조건 환대속의 주인공은 아니다.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것들이 분명 있었고, 그리고 내가 나이가 많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데이트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며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나는 나 이후의 여성들이 무조건적인 환대 속에서 사회에 당당히, 남자들과 동등하기 위치하기를 바라지만, 그런 시간이 더디게 올 것 같아 두렵다. 예전에 비하면 여자들의 위치가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조건적인 환대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니까.


자신이 있을 자리를 아직 찾지 못한, 여전히 찾는 중인 사람들을 생각하노라니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특히나 태어난 곳이 아닌 장소에서 머무르기를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터였다. 낯선 땅에서야말로 조건적인 환대 속에서 매일매일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길 결정하는 삶은 그 사람을 얼마나 주저앉힐까. 주저앉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이 힘을 내야할까. 김현경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이 책에서 줄곧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바르게 살아보자 힘이 나기 보다는 내내 나는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쓰였다.



'장소'를 갖지 못한 사람들, 즉 자신들이 속한 곳이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또는 그들이 머물러도 좋은 자리, 점유할 수 있는 위치를 이 세계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p.283



모든 장소에 속한다는 말은 어느 장소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말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올해는 이 나라에서 일하고 내년에는 저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 오늘은 이 도시에서 아침을 맞고 내일은 저 도시에서 밤을 맞는 사람은 아마 세계화 시대에 자본이 원하는 인간형이겠지만,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은 아니다. 현실의 인간은 그처럼 가볍게 삶의 근거지를 바꿀 수 없다. 그는 가는 곳마다 기억의 무거운 짐을 끌고 다녀야 하는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갈 때마다 이 짐은 점점 불어나기 때문이다. 쉽게 떠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쉽게 잊을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과거를 억지로 잊고 애착을 끊음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정체성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의도적인 망각과 인간관계의 급격한 재편성은 자아가 불연속적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한 장소를 떠나는 것은 그 장소에 속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며,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뿐 아니라 우리를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소'의 의미에 천찬하근 것은 이 모든 이유들에서이다. -p.285-287



기억의 무거운 짐, 불어나는 짐, 잊을 수있는 인간, 정체성의 변화, 의도적 망각, 인간관계의 급격한 재편성, 불연속적 자아, 다른 사람들의 우리에 대한 기억.. 이란 단어들을 나란히 읽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여성으로서 무조건적인 환대를 받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는 아직 아니지만, 그러나 분명 내가 단단하게 위치한 장소도 존재한다. 나는 불완전한 사람이며 완전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안정적 장소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나란히 놓인 단어들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런 단어들 옆에 내가 무조건적인 환대를 붙여준다면, 내가 장소가 되고 공간이 되고 그렇게 내 안에서 당신이 사람으로 존재하는 일이 가능해질 거라는 생각. 사회 자체가 불안정하고 불완전해서 여전히 누군가를 배제하고 환대하지 못하고 있고, 그럼에도 존재하는 것이 이 세상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체가 불완전하게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환대함으로 맞물리며 존재의 고통을 덜 수 있는게 아닐까. 나는 나 자체로 불안정한 땅을 딛고 서있고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가끔은 어깨에 힘을 주고 밀치거나 한쪽 발 먼저 들이밀어야 하지만, 또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라고 한 손을 크게 안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들어와, 당신에게 무조건적인 환대를 내가 줄게, 어디에서도 받아보지도 못한 그런 환대를.



좋은 책을 읽었는데 왜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나보다 다른 사람 때문에 더 슬퍼진다. 나 역시 온전히 환대받는 구성원이 되지도 못하면서, 그러나 환대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어딘가에서 내쳐지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슬프다.



프로이트 패러다임 읽으러 가야겠다. 프로이트 졸라 까면서 힘내야지.









이 가상의 대화는 ‘모두가 죽는 것보다 한 사람만 죽는게 낫다‘는 공리주의적 계산법의 모순을 폭로한다(고 나는 믿는다). ‘낫다‘는 것은 누구에게 그렇다는 뜻인가? 희생자는 희생이 결정된 순간부터 더 이상 ‘우리‘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말은 결국 ‘죽지 않기로 결정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죽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의미이다. 죽기로 결정된 사람에게 이 말은 완전히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사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공리주의적 계산법의 용도는 희생자들을 설득시키는 것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양심을 위로하는 데 있는 것 같다. - P275

베카리아는 오히려 범죄에 대한 처벌이 사회계약의 틀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범죄자는 사회의 바깥에서 사회와 적대하면서 무한한 복수의 가능성에 노출되는 게 아니라, 사회 안에 있으면서 그 자신도 동의하는 규칙에 따라 정해진 만큼만 처벌받는 것이다. 베카리아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사형에 반대한다. 사형은 범죄자를 사회 바깥으로 내몰고 사회의 적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사회의 적이라면, 그는 더 이상 사회의 규칙을 따를 필요가 없어진다. 그의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의 힘은 그에게 미치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멈추어 선다. 그는 법의 바깥에 있으므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다. 따라서 사형은 더이상 형벌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한 폭력일 뿐이다. 베카리아의 다음과 같은 말은 사형이 내포하는 역설을 정확히 지적한다. "사형은 어떤 의미에서도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시민에 대한 국가의 전쟁이다." - P234

나는 베카리아의 사형폐지론이 사회의 구성원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 통찰의 빛이 18세기 이래 지금까지 사법 개혁을 둘러싼 모든 논의의 지평선을 밝히고 있다고 믿는다. 법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환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환대란 타자를 도덕적 공동체로 초대하는 행위이다. 환대에 의하여 타자는 비로소 도덕적인 것 안으로 들어오며, 도덕적인 언어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환대이다. - P242

사회는 개인에게 복수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은 유사한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함이지, 사회가 피해자를 대신하여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 P230

절대 공동체에 대한 환상은 이처럼 ‘개인이냐 공동체냐‘라는 잘못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벽을 없애는 것-문자 그대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공동체에 대한 옹호는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쉽게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과 공동체는 결코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며, 공동체 정신을 추구하는 것과 사생활의 자유를 갖는 것 사이에는 본디 아무 모순도 없다. 개인에게 자리/장소를 마련해주고 그의 영토에 울타리를 둘러주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역할인 까닭이다. - P202

사외 안에 자리/장소가 없는 사람, 사회의 바깥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나서줄 제삼자를 갖지 못했기에, 사적 관계 안에서도 자신의 자리/장소를 지킬 수 없다. - P203

"가난한 노동자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익명의 기부자"라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말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찌르고 있다. 이는 증여의 논리가 환대의 논리와 전혀 다른 것임을 의미한다. 환대 역시 주는 행위이지만, 이 줌은 증여로 계산되지 않는다. 환대란 주는 힘을 주는 것이며, 받는 사람을 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 P196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또 하나의 방법은 효도나 돌봄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 가족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이다. 조금 전에 생활보호 대상자를 애완동물에 비유했지만, 한국에서는 애완동물이 될 자격조차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폐지를 주워 팔면서 혼자 사는 노인이 장성한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수급권을 얻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사례를 조명할 때 언론은 이 장성한 자녀에게 실제로 부양 능력이 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만일 부양 느역이 있는데도 노인을 모시지 않는 거라면, 그 자녀는 ‘인륜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는다. 요컨대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도덕과 풍습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의 한계‘가 논의되는 것은 자녀 역시 막노동을 하거나 몸져 누워 있는 등 극단적인 빈곤 상태에 처해 있을 때뿐이다. - P184

가부장제의 문제점은 피부양자-비대표자가 부양자-대표자에게 쉽게 인격적으로 종속된다는 것이다. 체사레 베카리아는 가족을 구성단위로 하는 국가에서는 자녀들이 가장의 전횡 아래 있기 때문에 온전한 의미에서 시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한 사외에 10만 명의 사람이 있다고 하자. 혹은 가장을 포함한 5명으로 구성된 가족이 2만 단위가 있다고 하자. 만약 그 사회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거기에는 10만의 시민이 있고, 노예는 한 명도 없다. 그러나 그 사회가 가족으로 구성된 결사체인 경우라면 그 사회에는 2만의 시민과 8만의 노예가 존재하는 셈이다." - P184

아렌트는 기독교적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하였다. "기독교인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각각의 사람이 오직 기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적, 그리고 심지어 죄인조차도 사랑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실제로 사랑받는 사람은 이웃이 아니다-그것은 사랑 그 자체이다" 아렌트의 신랄한 지적에 따르면, 기독교적 사랑은 타자에게 모든 것을 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자에게 무관심하며 어떤 의미에서 타자를 이용한다. 타자에 대한 그 같은 헌신 밑에 있는 것은 증여를 통해 자아의 결핍을 메우려는 욕망이다. - P175

걸인에게 예의 바르게 적선을 하는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걸인으로서는 거기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굴욕이기 때문이다. 그를 그 자리에 버려둠으로써 사회는 이미 그를 모욕하고 있다.
걸인의 존재는 현대 사회의 구성 원리에 내재하는 모순을 폭로한다. 현대 사회는 우리가 구조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사장이든 말단 사원이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사람으로서 서로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구조적인 위치가 남들에게 구걸을 해서 먹고살아 가야 하는 위치라면, 그는 사람으로서도 결코 다른 사람들과 동등할 수 없다. - P173

자선은 되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므로, 그 안에 이미 상대방의 명예에 대한 평가절하가 들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선을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 P172

바버라 콜로로소는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갈등 중재 위원회를 열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억지로 화해시키는 관행을 비판하면서, "괴롭힘은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경멸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해소되어야 할 갈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괴롭히는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서 귀여운 척하고, 후회하는 척한다. 이것은 각본을 바꾼 새로운 연극일 뿐이다. 괴롭힘당하는 아이들은 어떤 휴식도, 지원도 얻지 못하며, 괴롭히는 아이 역시 진정한 공감이나 사회친화적인 행도을 배우지 못한다. 괴롭히는 아이는 보복의 기회를 노릴 것이고, 표적이 된 아이는 보복이 두려워 진술을 번복할 것이다. 괴롭힘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Babara Coloroso, The Bully, the Bullied and the Bystander, New York:Harper, 2008. p.111) - P167

제도가 사람을 모욕할 때 그것은 모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분주의든 아니든, 이런 관행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동일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 P165

의례적 평등의 실현은 경칭의 인플레이션을 수반하곤 한다. 몇 해 전 뉴욕에 갔을 때 길에서 핫도그를 파는 남자에게 손님들이 ‘써sir‘라는 경칭을 붙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한국의 경우, 마트의 계산원이나 중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이 ‘여사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평등의 제스처에는 현실적인 불평등을 은폐하는 효과도 있다. 간병인들을 ‘여사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영화 「카트」에서는 부당 해고에 맞서 싸우던 계산원들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여사님‘ 대신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이들 사이에 싹튼 연대의식과 현실에 대한 각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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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0-27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읽으면서 두 가지 감정이 복잡하더라구요. 하나는 환대 받지 못하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해 말할 때 그게 뭔지 너무 잘 알겠는 거에요. 저는 이쪽과 저쪽에서 이루어지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저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이 가진 힘에 대해서는 인정받아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두 다 알고 있는 일상의 작은 면면을 약간은 평범하게 그리고 무심하게 그려냈다는 거요. 그렇게 건조한 톤으로 말했는데도 그 책이 불러일으킨 그 커다란 반항과 폭풍에 대해서두요. 이 책도 너무 힘을 쏟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상태로 약간은 덤덤하게 그런 면을 지적했다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여겨지고요.

또 하나는. 만약 이 작가가 환대받지 못한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객관적‘이라고 평가받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단일한 집단으로서 환대받지 못 했다,라고 언급하는 게, 사실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계속 논문을 쓰고 살아가야할 학자라면 더더욱이요. 참, 용기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랑스럽고, 또 고맙기도 하구요.

저도 오후에는 [프로이트 패러다임] 읽어야합니다. 오늘이 10월 27일이라고 하대요 ㅎㅎㅎ

다락방 2020-10-27 13:29   좋아요 0 | URL
확실히 읽으면서 가장 쉽게 확 오는 부분은 여성에 대한 조건적 환대의 부분이었어요. 부록으로 써두긴 했지만 어찌나 확 다가오는지, 역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 대해서 더 잘 받아들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언급해주어 무엇보다 고마웠고요. 이렇게 멋지고 근사한 책이 제대로 할 말을 하면서 꼭 해야할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싶어 좋더라고요. 단발머리님 염려대로 그러나 여성에 대한 언급 때문에 책이 저평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대체적으로 여성의 불리한 점에 대한 언급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치우친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중립기어 딱 박고 보라고, 마치 본인들은 객관적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요. 하늘아래 객관적인 사람이란 없거늘, 어디서 자신이 중립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용기 있는 저자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이렇게 명징하게 현실에 대한 분석과 또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정도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거란 생각도 들어요. 가야할 길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당연해지는 용기랄까요. 아무튼 이런 글을 써주어 너무 감사하고 또 응원합니다.

언급한 책중에서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꼭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어쩐지 좀 덜 자란 저를 성숙하게 도와줄 수 있는 책일 것 같아서요.

10월 27일이고, 저는 오후에 읽을 수 없는데, 아아, 프로이트 패러다임... 아직 펼치지도 않았어요. 어쩌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뽀샤버려야 하는데!!!!!

단발머리 2020-10-2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다락방님!! 손글씨 진짜 짱입니다! 하트뿅뿅!!😍

다락방 2020-10-27 13:25   좋아요 0 | URL
다이어리가 별로 좋은게 아니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알라딘 굿즈) 글씨가 영 잘 나오질 않아요. 만년필로는 제법 글씨가 잘써지는데 말입니다. 엣헴-

유부만두 2020-10-27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명이인 김현경 작가의 소설 <담배 피우는 여자>라는 소설이 생각나고요. 옛날 소설이라 많이 갑갑했던 기억이 나요.

다락방 2020-10-27 15:20   좋아요 0 | URL
유부만두님 김형경 소설가와 헷갈리신 것 같아요. 새들은 제이름을 부르며 운다, 그 작가 말씀하시는거죠? 김형경 작가입니다. 요즘은 심리 관련 책을 더 많이 쓰시는 것 같지만... 저 김형경 소설 몇 권 읽었는데, 대학시절 운동권하면서 같은 운동권내 남학생에게 강간 당한 여자가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결국 그 강간남과 결혼하는 걸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답답한 현실에 대해 읽었던 게 생각나요. 그 소설이 근데 어떤 거였는지 모르겠네요. [새들은 제이름을 부르며 운다] 였는지 [성에] 였는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이었는지...

유부만두 2020-10-27 15:28   좋아요 0 | URL
맞다;;; 김형경 작가에요. 답답한 상황의 주인공에 아주 힘들었어요.

2020-10-27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8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twoshot 2020-10-27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글씨가 이정도면 다락방글꼴 하나 만들어야 되는거 아닌가요? 😳 너무 감동하여 백년만에 댓글 남겨 봅니다

다락방 2020-10-28 08:14   좋아요 0 | URL
다락방글꼴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투샷님, 백년만에 나타나셔서 너무 기분 최상 만들어주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좋아죽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그러면 손글씨 또올려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0-10-2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선 장소, 고향을 떠나온. 물론 이역만리가 아니라 지방에서 도시로 온 것이 제 삶이지만 저도 이 구절에서 눈이 머물렀어요. 외롭고 낯설어서, 취약해진 채로, 환대인양 하는 관계들에 답싹 붙잡혀 결국에는 괴로워하던.. 그런 관계들 만남들이 생각나네요. 여전히 저는 제 자리를 만들어내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지만, 겨우 비집어 앉은 이 공간을 나눠쓰는 것에 인색하지 않을 환대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인간이 되어 보겠습니다!! 우리존재 화이팅! ㅎㅎ

다락방 2020-10-30 09:55   좋아요 0 | URL
쟝님, 정말 그랬겠어요.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지금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니 더 그렇고요. 우리는 결국 머무를 곳을 계속 찾아가면서 삶을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어요. 여기인가 혹은 저기인가 고민하면서 말이지요. 머물던 곳을 떠나온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는 것은, 여기에서 김현경이 말한것처럼 기억과 사람들을 새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사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진 않을테고요. 누구에게나 무조건적 환대는 저 역시 불가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 아끼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열린 마음으로 환대하면서 지내다보면 머무를 공간은 조금씩 넓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존재 화이팅입니다!
 

2020년 11월부터 2021년 2월까지의 책 리스트 공유합니다.


11월, 12월은 두 달에 걸쳐 푸코의 책을 읽겠습니다. 《성의 역사 1-3》
















두 달에 걸쳐 읽어주시면 됩니다. 읽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그때마다 기록해 주시고요. 그러면 다른 같이 읽는 분들에게도 힘이 됩니다... 여성주의 책을 읽다보니 푸코의 성의 역사를 읽고나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겠더라고요. 2021년의 더 풍부한 여성학 독서를 위해 푸코의 성의 역사를 읽자, 여러분...



2021년 1월은 캐럴 J. 아담스 의 《육식의 성정치》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부러 이 책 읽기를 뒤로 미룬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 읽어봅시다.

















2021년 2월은 '캐롤 페이트먼'의 《여자들의 무질서》입니다.

















자, 함께 열심히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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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0-27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푸코 가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분들 페이퍼 읽는 재미에 기대서 같이 가보렵니다.
열심히 읽어볼께요! (하려니 [프로이트 패러다임] 반이 남았네요 ㅠㅠㅠㅠ)

다락방 2020-10-27 12:57   좋아요 0 | URL
저 프로이트 패러다임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10월 27일이에요. 어떡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우리 다음 두달간 푸코 갑시다. 빠샤!

유부만두 2020-10-2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것이 온 느낌이에요.

다락방 2020-10-27 12:56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그 느낌을 따라갑시다!! ㅎㅎ

수이 2020-10-27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근구근_ 책을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다락방 2020-10-27 12:56   좋아요 0 | URL
저도, 2,3 권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2020-10-27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10-27 12:56   좋아요 2 | URL
참여하신다니, 환영합니다!!

네, 자신의 알라딘 서재 블로그에 글을 쓰시면 됩니다. 정해진 룰은 없고요, 11,12월 두 달에 걸쳐 성의 역사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그저 자유롭게 기록하시면 됩니다. 두달 동안 다른 몇몇 분들도 자신의 서재에 성의 역사 링크하고 페이퍼나 리뷰 혹은 밑줄긋기나 구매자평을 작성하실 거에요. 다른 분들이 읽고 쓰는 걸 보면 저도 완독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같이 읽을 때 참여하신다면 아마 완독으로 가기가 혼자일 때 보다 수월할거라 생각됩니다. 엇서오세요!! ^_________^

2020-10-27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10-27 13:24   좋아요 0 | URL
이번 기회에 푸코의 성의 역사 함께 뿌셔버려욧!!

건조기후 2020-10-28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이렇게 점점 벽은 높아져만 가고... 그래도 시작은 해봐야겠죠? 불끈!

다락방 2020-10-28 16:36   좋아요 1 | URL
건저기후님, 힘내요! 뽜샤!

블랙겟타 2020-10-3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면서 성의 역사 1권을 우선 샀어요!!
당연히(?) 땡스투 하면서요. :D

다락방 2020-11-02 08:55   좋아요 1 | URL
땡스투는 사랑입니다. 전권 모두 부탁드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11-0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락방님 성의 역사 4권까지 나왔던데요, 왜 우리는 3권까지만 읽어요? (궁금해서 소심하게 손 들고 물어봄;;;)

다락방 2020-11-02 08:56   좋아요 1 | URL
여러분의 의견을 묻다가 걍 제가 결정했습니다. 4권까지 읽는 걸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페이퍼 다시 작성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 저는 수연님의 1등을 조심스레 점쳐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래전에 한 여배우가 토크쇼에 나와 자신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얘기한적이 있었다. 여배우는 남가수와 결혼했었는데 남가수의 인기는 결혼할 무렵 어마어마하게 하늘을 찔렀던 것. 가수도 하면서 영화도 찍는등 다양한 활동을 하던 남가수와 결혼 전 연애할 때 힘들었던 얘기를 했다. 하루는 무슨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내에서 남가수가 여배우한테는 별로 신경을 안쓰고 내내 다른 여배우나 여가수들을 챙겼다는 거다. 그걸 보면서 너무 서운하고 속상했는데, 그 모임이 파한 후에 남가수가 다가와 그 때 많이 서운했지, 나 때문에 힘들었지, 했다는 것. 어쨌든 그들은 결국 결혼을 했고 이것은 오래전의 일이며 현재는 이혼을 했던가 잘 살고 있는가 모르겠다.



갑자기 이 오래전의 일이 생각난 건 오늘 나의 꿈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내게도 저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오늘 나의 꿈에는, 음, 뭐라고 쓸까... 그래, '남자1'이 나왔다. 나는 남자1을 무척 좋아했지만 그러나 꿈에서 남자1과 나는 오래전 연인일 뿐 현재는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남자1은 다른 여자에게 사귀자고 접근하는 중이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남자 1과 그 다른 여자가 함께 우리집 혹은 우리 외할머니 집.. 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셋이 나란히 앉아 티비를 보는 동안 남자1이 다른 여자에게 몹시 다정한 거다. 팔짱을 끼고 보자고 하고 왜 자기가 하는만큼 자기한테 잘 해주지 않냐고 하는등, 남자1은 다른 여자에게 몹시 신경쓰는데, 다른 여자는 내 마음을 알고 있던 터라 남자1이 그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나를 쳐다봤다. 그 다른 여자에겐 나에 대한 애정이 어마어마해서 도무지 나를 무시하고 그 관계를 시작할 수가 없었던 것. 게다가 그 남자에게 딱히 끌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면서 그 자리를 좀 힘겨워하는 여자에게 나는 입모양으로 내 눈치 보지마, 나 자꾸 쳐다보지마,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옆에서 그런 모션을 취하는 것들을 남자1은 다 알고 있을 터였다.


남자1은 자기 전에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고, 여자와 나는 잠깐 둘이 있는 틈을 타, 그가 부러 그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보라고 저러네, 하고. 여자도 응, 너무 티나.. 했더랬다. 그리고 다음날이 여자가 무슨 시험을 치르는 날이라 일찍 잔다고 방에 들어갔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으윽, 이것도 보기 힘든데 만약 내 앞에서 둘이 키스라도 하면 어떡하지, 방을 나가버려야 되나, 자리를 피해야 하나, 아 빡쳐... 이러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들은 키스하지 않았고, 또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한 방을 쓸 생각도 없었다. 아마 집 안에 다른 어른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여자는 나와 한 방에서 자기로 했고 남자는 혼자 자기로 한 터였다. 남자는 욕실에 그리고 여자는 다른 방에 자러 간 사이, 나는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베란다를 통해 바깥을 보다 들어왔고 또 소리가 들려 도대체 무슨 소리지 하고 마당에 나가 바깥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나왔는데, 샤워를 마친 남자1이 나와서 욕실 앞에 주저 앉아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 그에게 다가가니, 그는 자신의 한 신체 부위가 찢어져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보여주며, '나 너무 아프면 이따 너 부를게 잠깐 와줘' 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마 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물었고,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사고를 당해서 치료를 받았었는데 그게 잘못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신 고통스러워 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냥 그가 잠들 때부터 내가 옆에 있는게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했지만, 나는 그와 지금 아무 관계도 아니니까 그 말을 하는 것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입 밖으로 내는 걸 참았다. 그런 한편, 아직 다른 여자에게는 이런 상황에 도움을 처할 만한 관계가 되지 못했구나, 어차피 이렇게 고통스러울 때는 나를 찾네, 했다. 내가 아무 관계도 아니어서 더 찾기 편한걸까, 아니면 나는 이미 과거에 그의 몸을 다 보았기 때문에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한걸까. 그는 재차 '이따 내가 고통스러워서 부르면 와줘야 돼' 라고 나로부터 대답을 듣길 원했고 나는 그에게 알겠다고,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다가 알람이 울려서 잠에서 깼다.



이 꿈은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고 아침 출근길을 내내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건 꿈인데, 꿈이란 걸 알면서도, 그의 고통이 마음에 남아 우울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이것이 만약 실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지, 라고 나는 계속 생각해야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하지.


만약 실제였다면, 그런데 그가 고통스러울 때 옆에 있어달라 했다면 나는 기꺼이 그럴 터였다. 그러나 그의 생살이 찢어진 고통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내가 그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한들,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에 옆에 있어준다 한들, 나의 큰 애정은, 그것 만으로는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없을 터였다. 사랑은 때때로 힘이 없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사랑은 그 모든 것의 답도, 방법도 아니었다. 다른 게 필요하다. 내가 옆에 있으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내가 그의 옆에 있다는 사실, 그걸로 그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었다. 그의 살은 찢어졌고 그는 그 찢어진 살로 아파했다. 만약 찢어지고 꿰맨 자리가 아프다면 내가 연고를 발라주거나 반창고를 갈아줄 순 있겠지만, 이건 찢어져있는 고통이었다. 생살이 찢어진 고통을 내 사랑으로 막아준다는 건 말도 안되는 짓이다. 이럴 때 사랑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옆에 있어달라 한거야, 내가 옆에 있다고 고통이 사그라들지 않는데, 그 고통을 없애야 할 거 아냐, 생각하다가, 나는 오늘, 양재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그리고 버스에서 하차해 사무실을 향해 걸으면서, 그래, 병원에 가자, 생각했다.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 된다. 고통스러워 하는 그를 부축해 택시를 잡자, 택시에 태워 응급실로 가자, 응급실로 가서 지금 그의 어느 부위 생살이 찢어졌고, 여기 오기 전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잘못된 것 같다, 치료를 해달라, 하자. 수술이 필요할 것이었고 수술 전에는 수술이 가능한지 검사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수술을 하고 나면 찢어진 상처는 봉해질 것이었고, 수술 후에는 약을 먹으며 회복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고통으로부터 그는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육체에 깊은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에게 도대체 사랑이 무슨 필요야, 병원이 답이다, 병원에 데려가자! 내 사랑으로 하지 못할 것을 수술과 치료가 해줄 것이었다. 수술비가 제법 나오겠지, 그렇지만 그 수술비 정도는 내 통장에 있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그것은 가능하다. 내 사랑이 아니라 병원이 해줄 것이다. 만세!

내 속을 참 엄청 썩인 남자지만 그러나 그가 고통의 순간에 나를 찿았으므로 나는 그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천사야..앤젤.......... 아임 유어 앤젤... 샤라라랑-




꽃다발




뒤돌아보면 아름답고

너는 광장에 있었다 눈이 부셨다

꺾인 발목으로도 너는 너의 치정을

붙잡지 못하고

초라해질 적마다 나를 흔들고

밤마다 나를 불러 세웠다

아무 일도 없다고 너는 웃고만 있다



빈사(瀕死)의 섬에서

빈사의 너와 만난다



















칠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

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

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 버린 잊은 그대

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

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

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프면 병원에 가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자. 생살이 찢어진 고통 앞에 사랑은 힘이 없다. 병원이 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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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0-26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 전작 도전을 진지하게 고려하심이 어떨까 합니다. 다락방님처럼 총천연색 드라마 같은 꿈을 꾸시는 분을 제가 한 분 알고 있거든요. 그 분은 프로이트 말고 성경을 독파하고 계시지만요.
아프면 병원에 가기로 해요. 아니에요.
우리 아프지 말기로 해요. 아프지 말아요, 우리..

다락방 2020-10-26 10:51   좋아요 1 | URL
앞으로 삶에 있어서 작은 목표..아니다, 큰 목표가 되겠네요. 프로이트 전작 도전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천천히 가는 걸로... 그렇지만 어쨌든 전작 도전하는 걸로... 네, 그러겠습니다. 힘내야지

아프지 않게 평소에 건강하게 지내는 게 가장 좋지만 아프면 병원이 답입니다. 아프면, 병원!!

수이 2020-10-26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말 너무 좋은 거 아닙니까! 생살이 찢어진 고통 앞에 사랑은 힘이 없다_ 벌떡 일어나서 박수 마구 쳤어요. 병원이 답! 강추!!

다락방 2020-10-26 10:57   좋아요 1 | URL
저도 제가 써놓고 제 결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저한테 반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프면 병원이 답입니다. 빠샤!!

syo 2020-10-26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들 주제 파악을 잘 못하시는 것 같군요. 오늘 페이퍼의 주제는 이거잖아요. ˝나는 엔젤 샤라라랑˝

다락방 2020-10-26 18:45   좋아요 1 | URL
쇼님.. 진짜 글 참 잘 읽는단 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딘가로 가고 있다. 내가 만든 식빵을 들고 ㅋㅋㅋ
지하철 안, 내 앞자리 계신 분이 일어나셔서 자리가 비었는데 저기 뒤돌아 아이와 함께 계신 분이 있어 그 분 불러 앉으시라 했다. 아이는 5-7세쯤 되어 보인다. 아이 보호자분은 고맙다고 재차 인사하시며 아이를 자리에 앉히셨다. 기분이가 매우 좋구먼. ^_____^

아이야, 앉아서 가렴.
이모는 엊그제 플랭크 해서 매우 건강한 상태란다? 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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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4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5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0-10-2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효 성공 하셨군요!

다락방 2020-10-25 14:52   좋아요 0 | URL
발효는 성공했는데 맛이 없더라고요. 오늘 부족하다고 생각된 것들 더 넣어서 다시 해보고 있어요. 힛.
 

















처음 몇 장을 읽고 연애소설인줄 알고 깜짝 놀랐다. 김이설 작가가 연애 소설을 쓴건가? 단순히 여자와 남자가 만나 다정하다가 헤어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이런 이야기가 김이설의 것이라고? 고개를 갸웃하며 그 다음 장들을 읽노라니, 그렇다면 이들이 왜 헤어졌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 이야기는 결코 당신과 나의 오해와 갈등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여자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무게에 무게를 더하는 가난과 꿈의 상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시를 사랑하고 시인이 되고 싶고 어렵게 조금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시를 공부하기도 했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서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온 여동생과 조카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꿈을 정지시켜버린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돈벌이를 하지 않으므로 육아와 가사노동이 전부 여자의 몫인 것은 여자도 타당하게 생각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육아와 가사노동에 지쳐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정지해버린 것에 대해서라면 당연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치도록 집안일에 치어도 누구하나 거기에 대해 고마워할줄도 몰랐고, 그 일은 어디가서 생색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돈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집안에서 힘을 쓸 수도 없었다. 이런 삶에 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말했는데, 정작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여동생은 자꾸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니, 너의 삶을 살라고 응원을 하다가도 속이 뒤집어진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 엄마가 하란 대로 하지도 말고. (p.117)



여자는 아버지의 이 말에 힘을 얻은듯 보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이 말이야말로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주저앉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내야하는지, 그러니까 주저앉지 않을 수 있도록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은 없는데 무작정 엄마가 하란 대로 하지 마라, 고 한다면, 그녀가 필사하는 동안 집안일은 누구의 몫이 되는가. 그녀가 시인이 되기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갈동안 육아는 어떻게 되는건데. 가사노동과 육아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 가사노동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에게 주저앉지 마, 라고 말하는 것은, 유리천장을 겪지 않아도 되었던 남자가 유리천장 부숴버려, 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부숴볼까? 하면 부서지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생기지 않을 것이었다.



감당하지 못한 삶의 무게 앞에 여자는 남자에게 이별을 고했으나, 그러나 계절에 한번씩은 안부 문자를 주고 받는다. 서로가 싫어서가 아닌, 지속되는 연애를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가만 보고 있노라니, 그렇다면 대체 연애란 무엇인가, 연애란 가난하지도 않고 고통도 없는 사람들의 몫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가난한 연인들은 단칸방 싱글침대에 둘이 함께 눕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데, 그런데 그마저도 곤란해지는 것이라니, 세상에 연애하는 사람들 다들 잘 지내는지 안부가 궁금해졌다. 싫어져서가 아니니 문자를 주고 받는 것도 어색하지 않고 가끔은 만나기도 하고 또 다시, 재차 너를 기다리고 있을테니 언제든 돌아오라 따뜻하게 말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연애중에 데이트 하다 헤어지기 싫어 목련 밑동만 톡톡 차댔다던 여름밤에 대한 회상을 읽노라니, 어쩔 수 없이 박연준의 시가 떠올랐다.


















이별

                                     -박연준


천 날의 밤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밤이었다
그가 내게 이유를 물었다
구두굽으로 그저 모래를 콕콕 찍었다
모기 한 마리가 내 슬픔을 염탐하듯
발목에 슬쩍 달라붙었다
갑자기 머리 위로 비가 쏟아졌다
키 작은 나무들이 금세 흠뻑 젖었다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내 이름을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발밑으로 툭,
떨어졌다
흐느적흐느적 빗속을 걸었다
나무들이 일렁이며 저희들끼리 수군댔다





자고로 사랑할 때는 목련 밑동을 찍고 이별할 때는 모래를 찍는 법,

이라는 말은 없지만 내가 지금 만들었다. 천재다.









돈벌이 없는 가사노동에 지쳐 연애로부터 도망친 건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동생도 그랬다. 이렇게 즐거운 게 연애라니, 이런 연애는 처음이지만,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툭 까놓고 그것이 앞으로도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처지를 연인에게 숨겨야 한다. 어차피 헤어질거야, 그전까지는 조금만 즐거울게, 라니. 어른 한 명과 어른 한 명이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일이 왜 어떤 이들에겐 이다지도 어려워야 할까. 매일매일 즐겁고 앞으로도 즐거움을 보장하는 연애라는 건 이토록 어려운거란 말인가. 연애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하고 있는건가.



김이설이 쓴 이 소설은 연애 소설이 아니다. 여자로서, 양육자로서, 무임금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구병모의 해설까지 읽노라니 이 책은 김이설이 그런 처지의 사람들에게 내미는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이설의 소설이 언제나 그랬듯이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이 꽉꽉 등장인물들을 조여버리고 있지만, 그나마 그간 써왔던 소설들 중에 가장 빠져나갈 구석이 보이는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무엇보다 시를 잘 모르고 잘 읽지도 못하는 나에게 시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토로하는 등장인물을 읽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나는 시를 사랑하는 여자들이 그렇게나 좋더라.




















'캐롤 모티머'의 《발레리나를 사랑한 남자》는 김이설의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과 나란히 놓기엔 매우 민망한 책인데, 그럼에도 꼭 함께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책은 김이설의 소설과 가장 극단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이다. 책 본문에도 나오는 문장이 뒷표지에도 실려있는데, 이 할리퀸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흑표범을 닮은 듯한 날렵한 근육질 몸매'를 가지고 있고 삼십대 중반에 세계적인 기업의 보쓰이기 때문이다.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캐릭터라서, 아니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당연히 있지, 세상에 대기업들이 많고 대기업에는 반드시 보쓰가 있으니까 당연히 그런 사람 있는거 알겠는데, 그런데 사실 내 주변에 더 많은 건 김이설 소설속의 여자와 남자지 할리퀸의 여자와 남자가 아니란 말이야. 아무튼 모든 좋은 조건은 혼자 다 가지고 있는 남주가 나오는 로맨스야 말로 세상 흔한 설정이지만, 그런데 나는 '흑표범'이란 단어 때문에 너무 웃겨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흑표범..같은 거 뭐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흑표범 같다! 는 남자를 본 적이 없는데..도대체 어떻게 생기면 보자마자 '흑표범 같다!'고 생각할 수 있는걸까... 흑표범 같은 남자는 으르렁 대는걸까? 나는 그렇게 흑표범..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책속의 여자주인공인 '앤디'는 발레 공연중 부상을 당해 더이상 발레를 할 수 없게 된다. 회복기를 거쳐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습소를 운영하게 되는데, 어릴 때부터 수석 발레리나만을 꿈꿔왔기에 지금 현실에 만족한다 해도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가끔 자신을 후려치는데, 남자주인공 '다리우스'는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찾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어떻게 실패일 수 있느냐며 그녀에게 힘을 준다.


이 소설은 누구에게도 읽으라고 할 수 없을만큼 '아 내가 이거 왜 샀지, 왜 읽고 있지'하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만들었지만, 그렇지만 나는 이런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내 삶의 자세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아준다는 것, 그러니까 살아갈 방법을 찾아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 주는 것. 그것은 매우 중요한거다. 책속에서도 발레리나였던 시절의 동료가 우연히 앤디를 만나 '네 인생은 실패로구나'는 뉘앙스의 말을 하고 비아냥대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의 모습과 다른 삶이라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에게 실패의 삶일 리는 없다. 어떤 모습의 삶을 산다해도, 설사 김이설 소설 속의 등장인물처럼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고 깜깜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이미 살고있는 이상, 어제를 버티고 또 오늘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삶이라면, 그것을 실패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내 삶을 기준으로 혹은 내 이상향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실패했다고 정의 내리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다. 어쩌면 내 삶은 실패인 게 아닐까, 라고 자책할 때, 그 때 '너는 지금 네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실패니, 결코 아니야'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게다가 축복이 아닌가.



나는 그래서 내 삶에 그리고 인간 누구나의 삶에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단 절망속의 나를 일으켜세워주는 존재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더 잘 파악하는데도 다른 사람의 존재는 필요하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고 나에게 말을 걸고 나를 파악하는데 그 누구보다 능숙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해도 내가 모르는 나는 여전히 내 안에 있고 또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백개쯤 말할 수 있다해도 내가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이천개쯤 숨겨져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모르는 지점을 다른 사람들이 불쑥 불쑥 얘기해줄때마다, 나는 새로운 나를 깨닫게 되는거다.


고등학생 시절 친척의 결혼식장에서 아빠는 먼 친척에게 나를 인사시키시며 '제엄마 닮아서 할 말을 다 하고 살아요' 라고 했는데, 그 때 나는 아빠의 그 말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었다. 나는 내가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혼자 속으로 앓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대학 시절에는 친구가 '너는 욕심이 정말 많은 애야'라고 했었는데, 그 때도 깜짝 놀랐었다. 내가? 욕심이 많다고? 나야말로 욕심 없는 순둥순둥한 사람인데? 게다가 몇 해전에 친구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친구들은 내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아니야, 나는 여행 좋아하는 사람 아니야, 나는 그냥 호텔이 좋고 조식이 좋고 낯선 곳이 좋고...라고 대응했더니 친구들은 '그게 여행을 좋아하는 거야!' 라고 했더랬다. 들을 때마다 갸웃 했던 다른 사람들의 나에 대한 말들은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언제나 나의 새로운 면이었음을 알게 됐다. 내가 모르던 면. 내가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라도 삶에 다른 사람의 존재는 필요하다.'캐롤 모티머'는 현실에 존재불가한 아니 그보다는 내가 만날 가능성이 불가한 흑표범 남자를 등장시켜 뭔가 으앗 못읽겠다...하는 소설을 써냈지만, 그러나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다른 인간을 그려낸 것은 무척 좋았다. 나의 어떤 면을 알아봐 주는 사람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다. 쓰다보니 가슴이 아프네.






사랑이 시작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죽어가는 것도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김이설의 소설 속에서 여자가 시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자꾸자꾸 들여다보고 들키게 되는 것은 그녀가 그러자고 마음 먹어 된 것은 아니었다. 그 사랑이 사람에 대한 것이든 혹은 다른 무엇에 관한 것이든, 나는 사랑이 커져가는 걸 지켜보는 일이 너무 좋다.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싹튼다는 것, 그것은 천천히 진행되는 것일 수도 있고 느닷없이 진행되는 것일 수도 있다. 캐롤 모티머의 소설 속에서 앤디는 자꾸만 다리우스를 쳐다보게 되는 자신을 어쩌지를 못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많이 말한다. 숨기고 싶어하면서도 그 숨기고 싶은 마음까지도 말하게된다. 내가 지금 관심있는 게 사랑이라면 사랑에 대해 언급할 것이고, 내가 지금 열중하는 게 재이슨 스태덤이라면 재이슨 스태덤에 대해 지겹도록 말할 것이다. 내가 시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자꾸 시를 들여다볼 것이고, 이 마음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또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게될 것이다. 내가 알라딘에 있는 이유는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아마도 연예인의 팬클럽과 다르면서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무조건 좋아서 팬클럽에 가입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마음껏 말해도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팬클럽에 가입하게 되는건 아닐까. 나는 어떤 말들을 상대가 이제 더이상 듣기 싫어할까봐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들몇 개쯤은 가슴에 품고 사는거 아닐까.




앤디가 엄청난 재벌 흑표범 남자를 만나 사랑에 성공하는 이야기는 손에 닿을 수 없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안부를 묻는 일은 손에 닿을 수 있는 일이라서, 그저 손을 내밀면 되는 일이라서 좀 쓰리다. 느닷없는 사랑이 느닷없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일은 가끔 감당이 안돼. 도대체 이게 무슨 맥락의 페이퍼이길래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끝나는지 영문을 모르겠네? 퇴근 후에는 소주나 마셔야겠다.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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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0-23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흑표범을 닮은 듯한 날렵한 근육질 몸매‘를 가지고 있고 삼십대 중반에 세계적인 기업의 보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책 왜 사셨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0-23 11:40   좋아요 1 | URL
발레리노의 사랑을 읽고 싶은데 발레리노의 사랑 이야기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보니 그만.....
아니 대체 흑표범을 닮은 건 뭘까요? 저는 책속 여주보다 이십년을 더 살았는데 어떻게 흑표범 같은 남자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까요? 헛살았어 헛살았어........ Orz

단발머리 2020-10-23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페이퍼 정말 좋네요. 내가 다락방님을 왜 좋아하는지, 왜 다락방님 글을 기다리는지, 오늘 다시 알 거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내 삶의 자세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아준다는 것, 그러니까 살아갈 방법을 찾아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 주는 것. 그것은 매우 중요한거다.˝

이 문장 읽는데, 다락방님 문장인데.... 내게 있었던 어떤 일들을 막 기억나게 하고 그래요. 나도 이어서 페이퍼 써야겠어요 바로는 못 쓰지만요. ㅎㅎㅎㅎㅎ 흑표범 닮은 날렵한 근육질 몸매의 삼십대 중반의 세계적인 기업의 보쓰,라고 하니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남주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고양이상이 아니네요. 흑표범 닮았으니까 만날때마다 야옹~~~ 하는 걸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0-26 08:26   좋아요 0 | URL
매번 느끼는 그지만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것, 그리고 좋다고 감상을 말해주는 것은 정말 짜릿하고 행복한 일이에요. 액션이 있으면 리액션을 기다리는 것은 액션을 취한 자의 마땅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런 댓글은 매우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훗.

고양이상..
고양이상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고양이란 동물을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나름 고양이상이고 싶다는 .. 그런 생각은 있었는데 저는 곰상 혹은 강아지상 이란 말만 들어왔네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내가 결정하는 건 아니고 남들이 봐주는 몫인가봐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언젠가 이어지게 될 단발머리님의 페이퍼를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hnine 2020-10-23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애소설 아닌거 맞네요. 지난번 자목련님 서재에서 김이설 작가의 책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놓았었는데 다락방님의 페이퍼가 읽고 싶은 의욕을 더 보태고 말았습니다.
기억하기로 작가가 국내 시인들의 시집을 참 많이 읽고 서재에도 소개했었는데 이번 소설에서 작가가 그렇게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시를 많이 만나게 될수 있을까요?
그나저나 다락방님 독서량이 엄청납니다. 새삼 느껴요. 언제 이렇게 많은 책들을 읽으시고 이렇게 정성 가득한 페이퍼를 올리시고 (빵도 구우시고), 저 처럼 집순이도 아니고 출퇴근 하시면서 말입니다.

(자꾸 말이 많아지려고 하는 금요일 오후네요 ^^)

다락방 2020-10-26 08:28   좋아요 0 | URL
네, 김이설이 연애소설을 쓸 리가 없지않나..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였어요. 연애는 그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데 하나의 가지일 뿐이었어요. 그러나 그 가지가 또 없으면 안되는 가지이기도 했습니다. 있는 게 더 나은 가지요.

네, 저도 알라딘 서재에서 김이설 작가가 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을 알기 때문에, 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는 것을 얼마간 지켜봐왔기 때문에, 이 소설속의 주인공이 시에 대한 애정을 절절하게 토로할 때 퍼뜩 작가의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소설은 김이설을 가장 많이 담고 있구나, 하고 말이죠. 후훗.


이 책은 분량이 매우 적어요, 나인님. 펼치시면 금세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좀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은데 이놈의 직장생활이 가로막아요. 그렇지만 이것이 핑계인 것은..주말에는 책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루틴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인데 주말에는 그 모든 루틴으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인가봐요. 하하하핫.

자꾸 말이 많아지려고 하는 금요일이라니, 이번 주에도 금요일에 페이퍼를 써서 나인님의 긴 댓글을 받도록 해야겠어요. 후훗.

수이 2020-10-23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단발머리님 페이퍼도 좋고 다락방님 페이퍼도 짱이네요. 올려주신 박연준 시도 좋고, 시집 읽고 싶어지는 가을날이다.

다락방 2020-10-26 08:29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에 박연준의 시를 넣었기 때문인지 천날의 밤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밤이었다, 를 주말 내내 혼자 읊고 있었어요. 천날의 밤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밤이었다.

마침 저는 얼마전에 시집을 한 권 사둔게 있네요. 그 시집을 오늘 퇴근 길에 읽어야겠어요. 월요일 잘 보냅시다, 수연님!

syo 2020-10-23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재다‘ 뒤에 ㅋ가 하나도 없어서 그런가 결연함이 느껴진다.

다락방 2020-10-26 08: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날카로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쇼님 매우 날카로운 분이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0-10-25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이설 책 재밌겠다 - 흑 표범?? - 사람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해 - 팬클럽 - 소주
다락방님의 페이퍼는 실패하지 않는 다!!

다락방 2020-10-26 08:30   좋아요 1 | URL
김이설 책은 재미있다기 보다는 뭐랄까, 답답한 가슴을 주먹으로 치게 만드는 책입니다. 아이고 속이야, 하고 말이지요.

쟝님, 주말 잘 보냈어요? 저는 어제 식빵 세 판 굽고 일곱시부터 기절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식빵이란 무엇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0-10-26 08:39   좋아요 0 | URL
세 판이나 굽구 선물 했으면 이미 오븐 산만큼 끝판 보셨겠어요 ㅋㅋㅋㅋㅋ 좋은 한주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