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살인마 - 진화 심리학으로 파헤친 인간의 살인 본성
데이비드 버스 지음, 홍승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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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할 때도 그렇고 다른 인터넷 쇼핑을 할 때, 나는 가급적이면 회사에서 택배를 받는다. 친구들이 주소를 물어도 대부분 회사 주소를 알려준다. 집 주소는 가능하면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남자친구인 경우엔 더 그렇다. 가급적이면 애인이라도 집 주소를 알려주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알려주지 않을 수는 없다. 연애를 하고 지내다보면 부득이하게 집 주소를 알려줘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야 만다. 좋다고 사귀면서 알려주지 않는 것도 좀 뭣해서 결국엔 알려주게 되는데, 헤어지고나면 집 주소를 알려준 게 가장 걸린다. 


나는 내가 강박증을 갖고 있어서 그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서야 많은 여자사람들이 자신의 애인에게 집주소 알려주기를 꺼려한다는 걸 알게됐다. 뿐만아니라, 내가 사는 곳을 알려줬다는 거, 특히나 헤어진 애인이 나의 집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는 것도 알게됐다. 예전에 여자사람친구랑 얘기하는데, 그 친구가 그랬다. '나는 애인하고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닌데 집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까봐 무섭다' 고. 나 역시도 그랬다. 헤어지고나서 가장 무서운 건, 혹시라도 집앞에서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헤어진 연인을, 말없이, 맞닥뜨리기 싫었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물론, 사귀고 있을 때도 말없이 집앞에서 기다리는 건 오싹하다. 결코 유쾌하지 않다. 낭만을 찾는답시고 약속 없이 찾아오는 일은 연애중에도 나는 싫다. 오늘도 한 여자사람에게 물었다. 너도 혹시 헤어진 남자가 집앞에서 기다릴까봐 무서웠던 적이 있냐고. 그녀는 있다고 했다. 


어쩌면 나는 기본적으로 남자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릴 적에 폭력에 노출된 때문인지 아니면 여태 살아오면서 겪어온 생활속의 남자들의 모습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나는 아주 많이 남자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웃고 술 마시는 걸 정말 사랑하지만, 두려움까지 함께 가진 것도 맞다. 헤어진 뒤 쌍년이란 욕을 들었을 때도 두려웠고 욕을 먹지 않았는데도 두려웠던 적도 있다. 어떤 헤어짐에 있어서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 나를 아는 여자사람들 모두에게 내가 지금 이토록 두렵다, 고 다 말하고 다니기도 했었다. 혹시라도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내가 이러이러해서 두려워했었다는 걸 알아줘, 하고. 


물론 매 연애와 이별뒤에 늘 그랬던 건 아니다. 또한 나를 두렵게 했던 남자들, 내 친구들을 두렵게 했던 남자들이 유별나게 나빴던 남자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착하고 평범한, 좋은 남자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헤어지고 나니 무서운 존재가 되는 거다. 그렇다면 그런 두려움을 느끼는 내가, 다른 여자들이 유별난걸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잠시만 생각해 보자. 순간적일지라도 누군가를 살해하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는가? (p.56)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특이한 사람이 아니란다. 우리 모두 누군가 한 번은 죽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살인에 대한 판타지를 가졌다는 것을 이 책은 얘기한다.


이 책에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던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가진 것을 잃을까봐, 경쟁상대가 꼴보고 싫어서, 모욕감을 느껴서, 두려워서 등등. 각각의 이유로 사람들은 누군가를 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대부분은 그저 생각에 그쳤으며 그중 일부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니 나처럼 헤어진 연인에 의해 내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여자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됐다. 내가 유별난 게 아니었단 말이다.



우리는 몇몇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남성들은 자신의 짝짓기 전망이 희박해질 때 살인을 저지르고 싶어진다고 응답한 반면,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말했듯이, "당신을 거절할 때, 여자들은 사악해 보인다.(Women seem wicked when you're unwanted)"(1960년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킵며 히피 문화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전설적인 록 그룹 도어스의 보컬 짐 모리슨이 가사를 쓴 「사람들은 이상해(People are Strange)」에 나오는 구절이다-옮긴이) 이 불온한 생각은 남자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상황에 대한 연구 결과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p.36-37)



자신을 버린 배우자에 대한 살인 판타지에서는, 남녀 간의 차이가 그리 크게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판타지를 실행할 가능성이 주요한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성들이 자신을 버린 배우자를 살해한 반면, 여성들은 살인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될 만큼 심하게 자신을 격리하고 학대하며 위협한 배우자를 살해했다. (p.174)



간략히 말해,여성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살인의 주된 동기는 자기 보호와 위험한 결혼으로부터 도망치려는 필사적인 욕망이다. 이렇게 학대적인 관계에 처한 여성들은 자신이 처한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자신의 배우자를 떠나려 시도한,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는 많은 여성들이 수잔 라이트보다 더 운이 없었다. 적어도 수잔은 자신의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p.171)



한 남자사람을 처음 보게 됐을 때, 그리고 그저 아는 사이로 지냈을 때는 그가 '사귀면서' 어떤 남자일지 알 수가 없다. 사귀면서는 그의 새로운 면들, 내가 알지 못했던 면들이 속속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사귀면서 알지 못했던 점들이 헤어지고 나서 드러나기도 한다. 이 사람이 이럴 줄 몰랐는데, 하는 것들. 데이트폭력을 당하고 가정 폭력에 노출된 여자들에게 종종 '그런 남자랑 왜 사귀어', '그런 남자랑 왜 결혼했어' 라고들 말하는데, 사귀기 전에는 그가 때릴 줄 몰랐기에 사귀었고, 결혼 전에도 그가 수시로 내게 주먹을 휘두를 줄 몰랐기에 그렇게 되었다. 또한 '맞은 여자'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가해자보다 더 많이 피해자를 위협한다. 그런 폭력 속에 휘둘린 이상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 역시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와 사귀기 전에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남자는 여자를 때릴 남자다', '이 남자는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는 남자다', '이 남자는 집착으로 여자를 피곤하게 할 것이다' 등등. 그런 게 이마에 써있다면, 여자들이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런 남자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남자들이 반응하는 방법을 예측할 수만 있다면(누가 애걸하며 간청할지, 누가 위협할지, 누가 스토킹할지, 누가 떠나갈지 그리고 누가 살해할지) 상당한 고통을 줄이고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살인이 상대적으로 드문 사건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누가 살인을 저지를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p.139)



그는 계속 제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제가 자신을 완전히 떠나 버리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말했구요. …… 제가 사는 곳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집에 찾아와서 절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p.145)



살해당한 많은 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살해당할 걸 예측하고 있었다. 누가 자신을 죽일지 이미 두려워하고 있었고 '저 사람이 나를 언젠가 죽일거야' 하는 말을 바깥으로 꺼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두려워했던 그대로 그 사람에게 살해당한다. 멀리 도망가기도 해봤지만 결국은 그렇게 됐다. 커다란 두려움이 계속 내게 보내는 신호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7년간 살인에 대해 연구해서 이 책을 써낸 저자 '데이비드 버스'는 이렇게 오랜 시간 살인을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인 문제에 대해 만병통치약이란 없다. (p.361)



라고 말한다. 그는 그저 나의 직관을 믿으라고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것 뿐인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살해당할 위험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인지 깨달아라. 반갑지 않은 성적인 눈길을 일 초 이상으로 오래 보내는 남자를 경계하라.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걸 더 좋아할지도 모르는 계부모에게 주의하라. 당신의 성공을 배 아파 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경쟁자를 조심하라. 동료들 앞에서 당신이 준 모욕을 참을성 있게 받아넘긴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라. 방금 유혹한 이성의 전 배우자를 주의하라. 거절하기 전에 당신을 '유일한 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낭만주의자를 경계하라. 떠나지 않으려는, 스토커로 변해 버린 전 애인을 경계하라. (p.362)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한번쯤은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저자는 묻는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죽이고나면 자신이 감옥에 갈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앞으로의 삶을 암흑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고. 또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에만 그친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저자가 내게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그들에게 물었던 그대로 묻는다면, 나는 저자에게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힘이 없었고, 지금은 힘이 있지만 그가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쩌면 괴물이 됐을지도 모를 순간들을 지나쳐왔다. 나 역시도 그랬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얘기, 누군가 나를 죽일까봐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권 가득 읽고났더니 두려움보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죽이고 싶다는 욕망도-거기에 이르게 한 수치심, 모멸감, 분함 등등-,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하나같이 다 내가 알 수 있는 감정들이라 마냥 슬펐다. 이 연구를 하는 동안 저자 역시 연구를 그만둘까를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니까 살인에 대한 욕망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에 대해 믿고 있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나도 그렇다.


우리의 마음속에 살인을 저지르도록 자극하는 적응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그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고 살인을 퇴치하려는 노력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인간은 살인에 대한 적응뿐만 아니라 협동, 이타주의, 화해, 우정, 동맹 형성, 자기희생에 대한 적응들 역시 가지고 있다. 살인이 발생할 때, 인간의 본성은 문제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본성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다. (p.356)



라고 써놨건만, 조선대의전원생의 데이트폭력 사건을 듣게 됐다. 네 시간 동안 잔인한 폭력 앞에 노출되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겪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안좋았다. 피해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는데, 고작 얼마간의 벌금으로 가해자를 세상에, 피해자의 옆에 다시 내놓다니. 바로 위에 희망 운운한게 병신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출생 후 작동하는 살해 방어 기제는 바로 `울기`다. `울기`는 아기가 배고픔이나 고통을 부모에게 알리는 괴로움의 신호이다. 출생 후 6개월이 지나, 영아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비교적 갖추게 될 때까지, 영아에게서는 특화된 공포 반응이 나타난다. 바로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 반응(낯가림)이다. 영아의 공포 반응은 낯선 사람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남성에게 집중해서 나타난다. 이는 인간의 진화 역사 동안 영아에게 가장 큰 위험의 대상이었던 성별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p.30)

또 다른 문제는 비상하는 것은 종종 추락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질 때처럼 갑작스럽게 사랑에 흥미를 잃는다. 우리는 누구의 사랑이 식을지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이에 대해 몇몇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사랑에 빠질 때, 욕구의 충족이 중대한 것처럼, 욕구의 방해는 갈등과 이혼을 예고한다. 부분적으로 그가 가진 부와 야심 때문에 선택된 남성은 직업을 잃게 되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또 부분적으로 젊음과 미모 때문에 선택된 여성은 젊은 모델이 자신의 배우자를 유혹하면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자상하던 상대가 잔인하게 변할지도 모른다. 반복해서 관계를 가졌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으면 부부는 각자 다른 곳에서 더 비옥한 결합을 찾을지도 모른다.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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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 2015-12-0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고 나니 생각나는 남자가 있네요. 친구에게 직장에서 묘하게 계속 찝쩍대는, 심지어 결혼한 뒤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고요.
매일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기사들이나, 어제 4시간 감금폭행이나 여자를 무섭게 하는 일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되는 거 같습니다.

다락방 2015-12-01 09:38   좋아요 0 | URL
네, 무휘님. 제가 아는 여자들 중에서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어요.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고 심지어 `애인이 있다`고 말했는데도 무작정 들이대는 남자들이요. 소리도 질러보고 좋게도 말해봤지만 자기 말만 하고 자기 감정만 전달하기에 급급했던 남자들. 그런 남자들을 대하는 여자들은 정말로 `무서워` 했어요.

현재진행형이에요, 무휘님. 여전히요.

단발머리 2015-12-0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문기사나 방송을 통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헤어진 남자, 전 남편, 전 남친의 존재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이 글을 읽고나니 더 가깝게 느꼈어요. 제 주위에서는 실제로 많이 말하지 않기 때문인것 같아요.
헤어져서도 도망갈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헤어져야 하는지...

그나저나 저는 이 책, 읽어요, 말아요? ㅎㅎ

다락방 2015-12-01 10:29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제가 ... 그러니까.. 판단이 잘 안되네요? ㅎㅎㅎㅎㅎ

네, 단발머리님. 실제로 저도 공포를 느낀 적이 있고요, 공포를 느꼈다고 말한 지인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털어놓다 보면 꽤 많더라고요. 다들 그걸 말하기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것 같아요. 내가 사귀었던 사람, 내가 호감을 가진 남자에게 실상 공포를 느꼈었다는 걸 말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돼요. 말해야 해요. 그래서 누구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지 주변인에게 알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전. ㅠㅠ

도망을 갔는데도 따라와서 총으로 쏜 남자도 있더라고요. 왜 헤어지는 일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 된걸까요...하아-

뽈따구 2015-12-0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역시... 전.. 무한긍정인가봐요. 이 글을 읽으면서 십분 공감하면서도.... 실감이 안 나는걸보면. 긁적.

다락방 2015-12-01 13:13   좋아요 0 | URL
실감이 안 나는게 낫지 않을까요? 실감나는 순간 아프고 불편하니까요. ㅜㅜ
 
송곳 1~6 세트 - 전6권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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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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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중학생인 나를 엄마가 당분간 친척 집에 맡긴다면, 안간다고 신경질을 냈을 것이고 또 그렇게 어찌어찌 친척집에 갔다면, 뭔가 화난 상태로 계속 뚱해 있었을 것 같다. 리쿠도 그랬다. 엄마가 고모네 집으로 자신을 보낸 게 너무 싫었다. 게다가 엄마가 그토록 무시해서 그동안 만나보지도 못하게 했던 간사이 지방의 사투리를 쓰는 고모가 아닌가! 어릴때부터 간사이 지방 사투리는 천하다고 시끄럽다고 엄마한테 들어왔기에, 리쿠는 그 지방의 사투리가 혹여라도 자기에게 익숙해질까봐 치를 떤다. 엄마의 지나치게 '완벽한' 교육 때문에 공감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리쿠는, 그러나 어떤 분위기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눈물이 필요한 순간에는 운다.



음, 좀 복잡한 마음이 되었는데,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에는, 자신의 아이가 여자라는 이유로 분홍색이나 인형에 대한 선택이 필수적인 것처럼 되는 걸 막기 위해 그런 교육을 시키지 않지만, 유치원에 보내고나니 분홍색과 인형을 취향으로 갖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이 세계 안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갖게 되는 고유한 환경은, 그 안에 있을 때는 힘이 세다. 물론 바깥으로 처음 나간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고. 그러나 더 넓은 세계에 더 많은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하고, 또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엄마밖에 모르던 어린 아이에게 엄마의 말은 힘이 세지만, 아빠의 말은 진실이지만,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완전히 낯선 세계가 펼쳐지고, 그걸 보며 잠시 혼란스러워 하다가 결국은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찾아서 취하게 된다. 리쿠는 중학생인지금, 다른 세계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어쩌면 엄마 아빠가 틀린 걸수도 있다는 걸 아마 앞으로는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걸 아주 늦게 알았는데, 나의 경우에는 집에서 받는 교육과 학교에서 받는 교육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 졸업하고 나서야, 그제서야 아빠 엄마의 말과 선생님의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내가 듣지 못한 세상에서는 전혀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그래서 나는 더, 경험을 중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좁은 세계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 좁은 세계의 환경이 전부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은 넓은 세계로 자꾸만 나가게 되는데,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국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릴 때의 환경은 얼마나 중요할까? 에 대한 생각을 해보노라면, 리쿠가 그랬듯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인 것 같아 엄청 중요하게 느껴지다가도, 그러다가 결국은 다른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 다른 생각들을 흡수하게 되면서 달라지는 걸 보노라니, 결국은 인간 개개인의 잠재력이 살아가는 데 더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부모님에게 교육 받은 대로 살지 않고 또 국민학교에서 배운대로 살지 않고, 지금은 오히려 부모님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싸우기도 하니, 결국 사람은 자기 갈 길을 가는건가..



아이사와 리쿠는 '그 다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다음'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 다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또한 이 만화의 중요한 포인트 역시 '그 다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그 다음'을 얘기하기 위해 풀어놓은 이야기. 




리쿠의 엄마에 대해서도 꼭 얘기하고 싶은데, 그녀는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외로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요일에 보았던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에서 여자주인공인 '에이미'의 아버지는 몸이 아파 요양원에 계신다. 자신에게 사귀자고 말하는, 연인이 되자고 말하는 남자와 함께 있는 중에 에이미는 요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아버지가 다치셨다고. 함께 있던 남자는 닥터였고, 에이미가 통화를 끊고 아버지에게 가겠다고 하자 자신도 함께 가자고 말한다. 그래서 그와 그녀는 에이미의 아버지를 찾아가고 남자는 아버지의 이마에 찢어진 상처를 치료해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연인이 되어있었던 남자는 에이미의 옆에 있어주고 그녀가 동생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을 때도 그녀를 토닥이며 안부를 물어준다. 아, 저런 게 연인인가, 저런 게 상대를 사랑하는건가 싶을 만큼 그 장면들이 좋았다. 관심을 가진 상대, 애정을 가진 상대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거. 그리고 도움을 주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거. 그래서 그들이 서로를 너무나 좋다고 말하면서 연애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리쿠의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바람피는 걸 알고있고, 그걸 인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쿨한 척 하지 않아도 될텐데, 싶었던 거다. 남편이 '그녀와 헤어질까?'라고 물어도 그녀는 아니라고 한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이 혼자 아내를 짝사랑하는 것 같다고 외로워한다. 그렇게 강한 척 하지 않는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강한 척 하다가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고. 어차피 인간이야 결국 외로운 동물이긴 하지만, 차라리, '나랑 결혼했는데 나만 사랑해야지' 라고 으르렁거리는 편이, 너가 다른 여자를 만나니까 나는 외로워, 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너가 좋을대로 다른 여자 만나, 라고 해서 리쿠의 엄마는 자꾸만 쓸쓸함을 안에 쌓아두게 되는 것 같다. 여태 세상을 살면서 느낀 게 있다면, 이 세상에 '쿨한' 사람은 없다는 거다. '쿨한 척' 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지.


건강한 관계란 그런 것 같다. 나의 외로움, 나의 모자람을 상대에게 솔직히 드러내는 것. 그리고 상대가 그에 대해 위로와 격려 도움을 준다고 하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완벽하게 보이고 싶다',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욕심 때문에 더 부족해지는 게 아닐까.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나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내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면 아픈 걸 모르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걸 모른다. 자꾸 괜찮다고 하면 정말 괜찮은 줄로만 안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음..뭐, 나도 그리 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울면 상대가 안아주고 상대가 울면 내가 안아주고 그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웃으면 상대가 함께 웃고 상대가 웃으면 나도 같이 웃으면서 그렇게. 리코는 '그 다음'이 기대되는 중학생이지만 '리코 엄마'는 이제 변하기 힘든 어른인 것 같아서 리코보다 훨씬 더 눈에 밟힌다. 가뜩이나 사는 게 더러운데, 세상이 더러운데,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왜 유행가 가사 중에도 그런 게 있지 않나. 사랑만 하기에도 하루가 모자라.....




아침에 동료직원이 아메리카노를 사주고 촉촉한 초코칩도 줬다. 함께 먹는데 존맛..핵존맛.. 너무 맛있어서 집에 가고 싶다. 촉촉한 초코칩을 수십박스 사서 쌓아두고 아메리카노 어마어마한 냄비에 받아놓고 하루종일 먹으면서 핵존맛 핵존맛.. 이러면서 있고 싶다. 그러면 행복하겠지.. 인간..

크리스마스 계획을 짰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빠 엄마 모시고 가서 함께 갈비를 먹고!! 크리스마스 당일날에는 퍼져서 늦잠을 자는 거다!!!!! 


완벽한 계획이야...


삶의 연속성..무얼 먹을지 계속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대로 실천하면서 유지되는....삶의 연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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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따구 2015-11-2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 크리스마스 계획인데요!
계획........ 슬쩍 컨닝해갑니다.
저는 담주에 기념일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5-11-26 10:17   좋아요 1 | URL
계획 좋죠!! 맛있게 많이 먹고 퍼져서 늦잠 자는 건 진짜 지상 최고의 계획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5-11-26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11-26 15:54   좋아요 1 | URL
그림체가 좋았어요. 단순한 그림이잖아요. 이 만화책은 `그 다음`이 중요한 만화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 읽고나서 했어요. 그리고 리쿠 가족이 좀 신경쓰여요..

크리스마스에 딩굴딩굴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져요. 뭐, 저는 별 게획 없음에도 언제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왔지만 말예요. 크리스마스는 어쩐지 두근두근한단 말예요? ㅎㅎㅎㅎㅎ

건조기후 2015-11-27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맛있어서 집에 가고 싶다 ㅋㅋㅋㅋㅋ 나는 촉촉한 초코칩이랑 칙촉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왔다갔다해요. 희한하게 하나가 맛있으면 하나가 맛없더라고요.. 흐음

다락방 2015-11-27 17:11   좋아요 1 | URL
오늘은 소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에요. 일주일만에 엄마 만나는데 엄마가 저녁 같이 먹자 하시길래 소고기 먹고싶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먹자, 라고 하셔서 행복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촉촉한 초코칩이 책상 서랍에 하나 남아서...아껴야겠다 싶어, 좀 전에는 오레오웨하스를 먹었어요. 이것도 진짜 맛있어요. 행복해..초콜렛은 사랑인가봐요 ♡
 

연애는 노력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그래서 사귀는 데 왜 노력이 필요한가. 그것은 좋아하는 감정이 만들어나가는 자연스러운 관계라고만 생각해왔다. 사실 그간 나는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연애가 시작되기도 했고 진행되기도 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언젠가 친구가 '애를 써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왜 애를 써야 해?' 라고 되묻기도 했었다. 연애에 왜 애를 써야하지? 왜 노력을 해야 해?


그러나 나는 몇 번의 연애를 거치고 또 이만큼의 나이를 먹어오면서 이제 연애란 것이 애를 써야하는 것임을, 노력해야 하는 것임을 안다.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연애가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유지될 수도 없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내가 살아온 세계가 이러하니, 이 세계가 별로면 말고. 라는 식으로 그간 연애를 대해왔다면, 이제는 네가 살아온 세계가 그렇다니, 그 세계를 조금 이해하도록 해볼게, 가 된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는 적응하기 위한 노력. 그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었다. 



원제는 [Trainwreck] 인데, 왜 대한민국은 저 영화의 제목을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로 바꿔놨을까? 촌스럽게..제목 때문에 보기 싫었었다. -_-


영화속 여자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가족을 이루는 것 역시 어리석게 생각했었다.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남자친구는 남자친구고, 자유로운 섹스를 즐겼다. 남자친구에게도 당당히 말한다. '응 나 다른 남자들하고도 자'. 이 말에 남자친구가 벙쪄하자 이렇게 덧붙인다. '그렇지만 극장에는 너랑만 와' 라고. 그 말을 들은 남자친구는 말한다. 너에게 청혼하려 했었다고. 아이를 다섯명 낳아 농구팀을 만들고, 자신은 헬쓰장을 차려 일하고 싶었다고, 그리고 너도 같이 헬스장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자막은 여자도 헬스하는 걸로 나왔지만 얼핏 들리기로는 여자한테는 '크로스핏' 선생을 하라는 것 같았다.) 어쨌든 둘은 헤어진다. 헤어지고나서 여자는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와 단단히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게 무서울 정도로.


한 번 자고나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 남자가 다시 만나자고 하고, 그러더니 사귀자고 한다. 그래서 그와 연인 사이가 되었고, 그가 어떻냐고 묻는 여동생의 말에 '너무 좋다'고 답을 한다. 그러면서 무섭다고 한다. 쓸데없는 걱정들이 생긴다고. 이를테면 탐폰을 빼서 변기에 버렸는데 변기를 돌리지 않은 상태로 애인이 보면 어떡하지? 정 떨어지겠지? 같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그가 좋은데 왜이렇게 무섭지? 라고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여동생은 말한다.



언니가 그동안 얼간이들만 만나다가 이번엔 제대로 사랑에 빠진거지.



아... 여주인공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나는 여주인공이 그동안 만난 남자들이 얼간이들 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만났던 남자들도 마찬가지. 내가 얼간이들을 만났기 때문에 연애도 노력으로 유지되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 건 아니다. 여주인공은 영화의 마지막에 그런 말을 한다. 훈련을 한 거라고. 자기가 그간 그런 자유로운 연애, 일회적인 잠자리를 가졌던 것은, 지금 사랑하는 남자와 노력을 해야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었다고. 사람마다 깨달음의 계기가 다르듯이 깨달음의 순간도 다르다. 누군가는 스무살에 연애가 노력으로 유지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지만, 누군가는 나이 마흔에 깨달을 수도 있다. 영화속 여자는 몇 명의 남자와 자봤냐는 말에 '올해만?' 이라고 되물을 정도로 많은 남자들을 '만나' 왔지만, 연애가 어떤 식으로 유지되는지 또 좋은 사람과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영화속 여자도 훌쩍 나이가 많고 나도 그렇다. 여자와 나는 늦게 깨닫는 종류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가 삶에 있어서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늦게 깨닫는 것은 아닐 거다. 어떤 것들은 다른 사람보다 빨리 깨닫는 것도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깨닫기도 할 것이다. 연애가 노력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야 알았고, 또 누군가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것도, 그리고 상대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다가가고 싶게 하는 것도, 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크게 싸우고 헤어져버린 여자는 뒤늦게 '노력할게'라는 말로 남자에게 화해를 청한다. 남자 역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나도 노력할게' 라고 응답한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그 둘이 연애를 하는 것이라면, 어느 한 쪽만 일방적으로 노력을 해서는 안된다. 둘이 같이 노력하는 게 온당하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고 또 그만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게 쌓이면서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한다.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 영화를 스무살 때 봤다면 지금과는 다른 것들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볼 때는 그녀가 노력하겠다고 하는 말이 유독 다가온다. 여자의 외모가 특별히 예쁜 것도 아니고 남자의 외모 역시 출중하지 않다(그렇지만 남자는 자신의 직업에서 어마어마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다 -_-).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연애란 것이 원래 이렇다. 특출나게 잘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맞추느라 티격태격 하면서 단단해지는 것. 나는 내가 지금의 이 나이라는 것이 좋고, 이제 사랑과 연애를 이런 식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 만족스럽다. 최근에 연애를 시작한 여자사람친구와도 그런 얘기를 엊그제 나누었다. 우리가 이 나이라는 게 좋다고, 다행이라고. 아마도 그 친구도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의 연애 경험들이 우리를 조금 더 성장시켰다는 것을.


이 영화를 다 보고나서 같이 본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성장영화네' 라고.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래야 함이 당연하고.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헤어졌다면 또 그만큼 성장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 관계에서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고 힘들게 했는지, 나는 어떤 점들로 상대를 아프게 했는지. 그런 걸 돌아보고나서 다음 사람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그전보다 조금 더 단단한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 여자와 남자가 연인이 되기 전 처음 잤을 때, 여자는 옆에서 잠든 남자의 콧바람을 싫어한다. 나를 향해 눕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둘이 연인이 되고나자 남자가 자신을 안고 자는 것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비가 와서 그런가... 한 침대에서 남자와 여자가 발가벗고 다정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부럽다... 좋겠지? 좋을거야... 좋고말고.... 비오는 날은 섹스가 딱인데...... 하루종일 누워서 먹고 섹스하고 졸다가 먹고 섹스하고 졸다가 먹고 섹스하고 졸다가....그러면 삶은 얼마나 풍족하게 느껴질까... 현실은 일곱시 반이 되기도 전에 사무실에 출근한 시궁창....



영화에 대한 정보를 별로 없이 보게됐는데 오오, 틸다 스윈튼을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아, 근데 너무 예뻐! >.<



무엇보다 놀란 건 '존 시나' 였다.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영화에 존 시나 나오는 줄 몰랐네 ㅋㅋㅋㅋㅋㅋㅋㅋ 근육질의 존 시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존 시나는 WWE 레슬링 선수이다. 77년생이며 챔피언도 여러차례 먹었고 여전히 활발하게 뛰고 있다. 음, 처음엔 모두에게 환영받는 모두가 좋아하는 선수였는데, 어쩐 일인지 요즘엔 야유를 훨씬 많이 받더라. 내가 안보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존?



아아- 나는 운동해서 근육 불룩불룩한 남자들을 매력적이라 생각하고 막 푸쉬업하고 턱걸이하고 이러는 거 보면 정신이 나갈 정도로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 뭔가 막 어마어마하게 근육질은..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아, 얼마전엔 인스타에서 여자 모델이 근육질인 거 봤는데 멋져!! ♡ 팔에 알통이 뿔룩 나왔는데 아아 근사했다. >.< 


덧붙이자면, 영화속 여자주인공의 몸매는 딱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몸매이다. 나도 저렇게 되도록 해야지. 으하하핫. 그런데 언제? (  ")



















'201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고 화제작' 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영화 [변태가면]은 정말 변태스럽다. 주인공은 남자 고등학생인데 좋아하는 여자 고등학생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할 정도로 수줍은 성격이다. 이 남학생의 아버지는 정의감에 불탔던 형사, 엄마는 변태력이 충반한 에로배우인데, 이 남학생에게는 아버지의 정의감만이 고스란히 유전됐다


고 알고 있었건만, 악당 무리에게 인질로 잡힌 좋아하는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우연찮게 여자 팬티를 얼굴에 뒤집어 쓰고는, 잠재되어 있던 변태력이 풀가동 되어 정의의 용사가 된다... 는 내용이다.

변태가면은 그 이름처럼 옷차림도 평범하지가 않다. 배트맨이나 슈퍼맨 스파이더맨은 아아, 젠틀한 용사였으니.



남학생은 계속 고민한다. 나는 변태인가? 아닌데.. 변태인가? 아닌데... 나는 변태가면이지만 실제로 변태는 아니야... 아아..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어떤 감정을 가져야할지 모르겠더라. 그러니까 이 변태가면이 변태력을 파워업 시켜서 악의 무리를 소탕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입었던 팬티를 얼굴에 뒤집어 써야 하는데, 으으으윽 하면서 계속 보고 있고.. 저런 민망한 정의의 옷차림을 으으윽 이게 뭐야, 하면서도 계속 보고 있고.. 결국 거대한 악과 싸우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한 뒤에 '이런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입었던 팬티는 엄청난 파워를 줄거야' 라고 말하는....변태력...... 아아. 


남학생처럼 나도 고민했다. 이걸 으으윽, 하면서도 끝까지 보는 나는... 변태인가. 내게도 잠재된 변태력이 있는건가... 언젠가 여자들 여럿이서 모였을 때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변태성을 갖고 있다는..아아, 그 말은 사실인가. 나는 변태인가.. 변태라서 변태를 보고 있는 것인가. 실제로 연인에게 변태란 말을 들어보기도 했던 나로서는 내 안의 변태력을 이제 확신할 수밖에... 없는건가. 오우오 -0-


변태파워업!

굴욕으로 인한 엑스터시!


모두 이 영화, [변태가면]에 나오는 대사들이다. 



아아, 내 안의 수줍은 변태력,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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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5-11-2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태력이라는 말을 보면서 변태, 변화, 환골탈태, 노출, 번식, 외설, 파격 등 다른 어휘를 떠올렸어요. 본능적인 성과 무관한 삶을 생각할 수 있는 지도.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변태이구요. 덕분에 변태(력)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다락방 2015-11-26 09:15   좋아요 0 | URL
변태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글을 제가 썼군요. 흣.
월요일도 너무 빨리 오고 아침도 늘 언제나 빨리 온다고 생각했는데 또 벌써 목요일이에요. 주말이 오는 건 좋은데 다시 월요일이 오는 건 싫다고 생각하는 일이 언제나 반복되네요.
잘 보내세요!


건조기후 2015-11-2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땐 다 그랬던 거 같아요 애를 써야 이어지는 관계는 진정한 인연이 아니라는 막무가내 시절이 제게도 있었네요 ㅋㅋㅋ 노력하는 게 구차스러워 보이고 막. 내 참...

줄 바꾸려고 엔터키 쳤더니 어정쩡한 상태에서 바로 등록됐네요. 모바일은 이래저래 편하기도 하면서 불편해요.

엄청 공감하면서 간질간질 괜히 설레고 센치해졌다가 순식간에 변태가면에서 빵 터져서 산통 다 깨고 갑니다 ㅋㅋㅋㅋㅋ 아 웃겨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5-11-26 09: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건조기후님. 사랑이란 게 저절로 찾아와서 불꽃처럼 파바박 튀기다가 진행되는 거라 생각했지 내가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걸 알게 되어서 이제는 좋아요. 만족해요. 이렇게 어른이 되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나이들수록 연애가 더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해요.

변태가면 보면서 계속 생각했어요.

나는 이걸 왜 계속 보고있는가? 왜 멈추지 않는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제 변태력 때문이겠죠. 잠재되어 있는 변태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뽈따구 2015-11-25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의 수줍은 변태력, 안녕?˝ 이라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인들로부터 변태 소리를 많이 듣는 저로서도, 왠지 모르게, 마구 공감이 되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답변을 이리 남길 수 밖에 없!!!

좋은 하루 되세요! ^^

다락방 2015-11-26 09:18   좋아요 0 | URL
뽈따구님도 변태란 말을 들으시는군요! 저는 무려 애인한테 들어본 적이 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네네, 뽈따구님. 우리 좋은 하루 보내도록 합시다. 우리 안의 변태력을 잘 다스려보아요~ ㅎㅎ

transient-guest 2015-11-26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시나는 선역이 너무 길어지면서, 그리고 쇼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는데 질린 사람들이 많아서 선역인데도 욕을 많이 먹습디다. 저도 요즘은 WWE를 안봐서 잘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다락방 2015-11-26 09:19   좋아요 0 | URL
저는 숀 마이클스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에 진짜 매주 봤어요. 숀 마이클스가 너무 좋아서요. 숀 마이클스 은퇴하고나니 레슬링이 시들시들 해지더라고요...

존 시나는 한때 멋지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별로 안멋진 것 같아요..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는건가봐요...Orz

transient-guest 2015-11-26 09:32   좋아요 0 | URL
숀이 rockers란 테그로 뛸 때 참 좋아했었죠.ㅎㅎ 왠지 다락방님이 좋아한 숀은 boy toy시절의...ㅎㅎㅎㅎ

다락방 2015-11-27 10:49   좋아요 0 | URL
아, 저는 국민학교때였나..한창 비디오로 레슬링 보던 시절, 태그팀의 록커스 좋아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보이토이 시절의 숀 마이클스 좋아했고요. ㅎㅎ
바티스타를 잠깐 좋아하다 말았습니다. 아주 잠깐요. ㅋㅋㅋㅋㅋ

감은빛 2015-11-2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긴 어게인]은 재밌게 봤었어요. 이 영화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 [변태가면]은 뭐 할 말이 없네요.
저라면 아예 볼 생각조차 안 했을 것 같아요.

다락방 2015-11-27 15:24   좋아요 0 | URL
제게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내준 친구도 예고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는데, 저는 굳이 이걸 다운받아서 다 봤네요. ㅎㅎㅎㅎㅎ 아, 진짜 저는 변태인가봐요.

감은빛님, 이런 변태 친구라도 괜찮아요? (글썽)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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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요함, 이 묵직함, 이 고독함. 시간이 흐르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게 아프다.
그래도 생애 한 순간, 가장 사랑한 사람과 함께 보낼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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