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 사월의책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것인데, 그 친구는 이 책을 중고샵에서 샀다고 했다. 그러니 어디에서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의 표지는 상당히 지저분하다.




그렇지만 책의 본문을 읽기에 전혀 지장이 없고, 책의 본문에는 밑줄도 하나 그어있지 않다. 책의 표지에 별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읽기에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엔 책을 읽는 족족 중고샵에 팔고 있는데, 이 책은 표지가 너무 지저분해서 차마 팔 수가 없더라. 그래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분께 드리고자 한다. 표지가 저래도 아무 상관없으며, 이 책이 읽고 싶으신 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제가 읽었던 이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책은 한 권이니 한 분께만 드릴 수 있고요, 가장 먼저 이 책을 달라고 댓글 달아주신 분께 드리겠습니다. 택배비도 제가 부담합니다. 




어쨌든 이 책을 읽기전부터 조용히 나에 대해 생각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생각이 더 강해진다. 어느 하루,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내 내면을 가만 들여다보자. 나에 대해 계속계속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내가 가야할 방향도 보일 것이다. 사실, 방향은 이미 정해 두었지만.



죽음처럼 어쩔 수 없이 절대적으로 혼자 맞이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피할 수 없기에 `혼자라는 것`에 대한 질문 또한 우리의 인생에 부수적인 그림자와도 같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나 역시 혼자일 수밖에 없다. 물론 같이 해야 하는 일도 있다.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것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 이 두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의 삶은 쉽사리 균형을 잃어버린다. (p.12-13)

혼자 사는 사람으로부터 성적 방종을 연상하든 금욕을 연상하든 상관없이, 또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콘으로 격상시키든 버림받은 영혼인 양 동정의 대상으로 삼든 상관없이, 혼자 사는 사람에 관한 모든 이미지는 공통점을 지닌다.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거의 전부가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 낯설기 그지없다. 혼자 살지 않는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조차 낯설어하는 상상적 이미지를 혼자 사는 사람에 관해서 만들어내고, 이 이미지에 따라 혼자 사는 사람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판단하고 참견하고 간섭하고 조언한다. (p.23-24)

4인용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마치 투시경이라도 손에 쥔 것처럼 아직도 1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로맨스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충고하고 측은하게 여기고, 때로는 혼자라는 사실을 과장해 공포심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은 졸지에 혼자 사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피고인이 된다. 4인용 테이블에 있는 사람은 아무 때나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결혼하지 않은 혹은 못한 이유를 물어도 되는 자격증을 지닌 사람처럼 행동한다.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은 4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왜 결혼하였어요?"를 묻지 않는데 그 반대 경우는 언제든 허용된다. 4인용 테이블 사람은 특권이라도 지닌 것처럼, 그리고 마치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기라도 하는 양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왜 혼자 사느냐고. 1인용 테이블과 4인용 테이블 사이에는 개인 간 능력의 격차도 성실성과 책임감의 차이도 없지만, 양적 다수를 차지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궁금증 억제의 법칙을 쉽사리 잊어버린다. (p.105-106)

이 시대에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줄었다 해도 그것이 젠더마다 동일하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는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더 빠르게 줄어들었다. 벡 부부의 지적처럼 "과거의 여성들은 실망에 부딪혔을 때 자기의 희망을 버렸지만, 오늘날의 여성들은 자기의 희망을 고수한 채 결혼을 버린다." 관습적 성별 분업이 가족 내에서 지켜지는 한, 대부분의 남성에게 결혼은 혼자 사는 것보다 편리하다. 대부분의 남성에게 결혼이란 힘겹게 유지했던 1인 다역에서 벗어나 남편과 아버지라는 역할로 단순화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여성은 달라졌다. "그녀들은 자기 어머니나 할머니가 했던 것, 즉 남편의 요구에 맞춰주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방식은 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전에 응집력을 보장했던 접착제들, 즉 과거에 여성이 맡았던 역할들은 사라져가고 있다.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부정하기, 최소한 겉으로라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끝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감정 패치워크를 떠맡기 과제를, 이제 누가 수행해야 하는가? 많은 여성들은 평화의 사도가 되는 것에 싫증을 내고 있고, 많은 남성들은 아직 준비가 ehl어 있지 않다."(p.127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은 분명 고독한 작업이다. 그 성찰이 고독한 이유는 성찰이ㅡ 결과 우리가 허무와 마주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삶에 대한 성찰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아니,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때로는 삶의 성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성찰을 타인이 대신하거나 대리하도록 명령할 수는 없다. 권력을 행사하는 독단인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을 배려하지만, 단독인은 권력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는 권능의 힘에 의해 자신을 배려한다. 단독인의 권능은 타인을 제압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손이 아니라 자신을 비추는 내면을 통해 자란다. (p.174-175)

자기밀도가 분명한 사람들의 또 다른 욕구는 혼자 있는 것에 대한 욕구이다. 그것은 `은둔`과 거리가 멀다. 세상과 등을 지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세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데, 밀집된 혼란으로 인해 되돌아볼 수 없었던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을 혼자서 해내는 과정이 홀로서기이다. 분명 군집생활은 필요하다. 군집생활을 했기에 인간은 진화할 수 있었다. 군집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지 못하고 다른 종에 의해 절멸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같이 하기에 많은 것을 얻는다. 사회 분업으로 인한 편리성 증대를 생각해보라. 그러나 같이 한다는 것이 분명한 장점을 지니지만, 인간의 모든 장점을 같이 한다는 것으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 같이 한다는 것은 때론 스트레스의 원인이기도 하다.(p.190)

기꺼이 혼자가 되어 홀로서기를 꾀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자폐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과잉화된 `일반화된 타자`와 거리를 두는 능력의 획득을 의미한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입고 있는 일반화된 타자가 입혀준 옷을 벗고 잠시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190)

반면 직업과 관련 없이 행할 수 있는 활동을 우리는 `취미`라 한다. 취미는 호구지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채 개인의 기호에 따라 선택한 행동이다. 겉으로는 노동처럼 보이지만, 그 행동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취미일 수 있다. 고기 잡는 행위는 어부에게는 노동이지만, 샐러리맨이 주말에 고기를 잡으러 가면 노동이 아닌 취미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취미는 전적으로 개인의 기호에 의존한다. 어떤 취미를 가질 것인가 혹은 근본적으로 취미가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는 경제적 필요성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취미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기호에 따라 결정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취미는 자기밀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영역이다. 자기밀도가 높은 사람은 대체로 취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자기밀도는 높은데 취미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밀도가 매우 낮은 사람들은 의외로 취미가 없으면서도 삶을 그럭저럭 살아간다. 취미가 있는지 혹은 취미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지는 자기밀도를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이기도 한 셈이다. (p.198)

취미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취미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목표하지 않고,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몰입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항상 타인과 경쟁해야 하고 타인을 압도해야 하기에, 타인이 내게 없는 것을 갖고 있을 때는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는 질투심이 생긴다. 그 질투심은 착한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취미의 세계에서는 각자 자신만의 목표를 향하기에, 진정한 취미의 세게에서는 질투가 사라진다. (p.198-199)

성별 위계가 여전히 존재하고, 보이지 않은 유리천장이 있는 상황 속에서 결혼은 여성이 커리어를 쌓아 가기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성공한 여성들이 미혼인 경우는 남성 미혼에 비해 훨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혼자 살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은 이들이 갖고 있는 경제적 자율성에 있다. 만약 경제적 자율성을 지니지 않았다면 이들의 삶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된다"는 성공한 여성과 같은 특별한 집단을 설명하는 틀로만 머물러 있을 경우 큰 문제는 없지만, 만약 이러한 상식적 주장이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자격 기준`의 담론으로 변화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혼자 사는 어떤 사람을 정당화해주었던 상식적 표현인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된다"라는 말이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능력주의 및 자격주의 담론으로 바뀌면, 능력이 없는 자는 혼자 살아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평가되는 한, 혼자 사는 것에 대해 논할 대 우리의 사유 관습은 또다시 `화려한 싱글`의 스펙트럼에 갇히게 된다. (p.230-231)

독거노인, 고독사가 왜 사회문제가 되는가? 이들이 가족이 없기 때문일까? 만약 독거노인과 고독사의 문제가 가족 외부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면, 가족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은 독거노인과 고독사에 처한 사람들이 부딪히는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 독거노인과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그들이 혼자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드이 자립적인 삶을 사는데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가족과 함께 하는 삶과 혼자 사는 삶은 절대적인 충족과 절대적인 박탈이라는 양극의 이미지에 의해 채색될 필요 없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p.235-236)

모든 사람은 집단에 소속되려는 욕구만큼이나 개체가 되려는 욕구 또한 갖고 있다. 단독인의 사회란 달리 말하면, 모두가 혼자 살라고 선동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통합하는 힘과 개체가 되려는 힘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 개체가 되려는 힘을 갖고 싶어 하는 개인이 가족 환경이나, 집단의 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p.236)

기본소득에 관한 논쟁은 그것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가, 기본소득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노동의욕을 저하시키는 것은 아닌가와 같은 근본적인 대립에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인가, 얼마만큼의 기본소득이 필요한가 등에 대한 부수적 논쟁까지 다각도로 진행 중이다. 나는 사실 논쟁 중인 여러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기본소득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본소득이 단독인의 사회에 대한 구상과 가장 긴밀하게 결합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p.238)

기본소득을 구성하는 아이디어는 세 개의 차원으로 구성된다. 기본소득은 모든 구성원ㄷ늘이 개인 단위로 자산조사나 근로조건의 부과work requirement 없이 국가로부터 지급받는 소득이다. 기본 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다른 사회복지제도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에 의한 공적 부조라는 측면이라는 점에서 단연 돋보이며, 1인 가구가 지배적인 형태가 될 앞으로의 사회에 적합해 보인다. 기본소득이 엄격하게 개인 단위로 지급된다는 의미는 "지역사회의 개별 구성원들이 기본소득의 수급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개인이 수령하는 급여가 그가 속해 있는 가구 유형과 무관하게 지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 단위의 지급일 때만 개인은 가족에 속해 있지 않아도 보호 받을 수 있으며, 또는 가족에 속해 있을지라도 개인의 자율권을 지킬 수 있다. 가족구성원 사이에서도 자율권의 결정 권한은 균형적으로 배분되어 있지 않다. 기본소득은 개인이 아닌 가족에 대해서도 불균형한 가족구성원 간의 교섭력을 보완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p.238-239)

한편으로 기본소득은 어떤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났느냐와 상관없이 개인들이단독인이 될 수 있는 인큐베이터인 `자기만의 방`과 최소한의 소득을 운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한다. 또한 경제적 자립성이 없기 때문에 가족을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 불량한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자금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공유해야만 했던 개인에게도 기본소득은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독립자금이 없어서 학대받으면서도 집단을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 매 맞으면서도 가족을 떠날 수 없는 개인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것이 `기본소득`이든 `사회적 지분`이든 어떠한 구체적 형태를 지니든 상관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모두가 다 함께 단독인이 되기 위해서는 단독인을 위한 독립자금 역시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대서야 비로소 단독인이라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람은 더 이상 위인이나 특별한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p.239)

국가나 집단은 개인을 대신하여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집단주의의 가장 큰 위험은, 개인을 대신하여 집단이 판단을 내리고 최종적으로 개인은 집단이 내린 판단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설계한다는 점이다. 집단주의에 의해 판단이 내려지는 이상, 개인의 삶은 표준적 삶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집단이 내린 판단을 순응적으로 따라한 사람, 집단이 내린 판단을 그대로 내재화한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도 내재화된 집단의 판단을 후세대에게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한다. 이미 내려져 있는 판단은 언제든 적응해야 할 대상이지, 왜라는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때로는 신기루일 수도 있는 이타주의만을 일방적으로 칭송하는 사회에서는 나를 위한 최소한의 자기 배려와 나만의 방에 대한 약간의 옥심조차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치부된다. 이런 사회에 순응한 개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최소한의 방법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증에 빠진다. 이 망각증이 지나치면, 개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나 개체의 고유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이기적인 탐욕이라 생각하며 자기 통제의 덫에 빠지게 된다. (p.249-250)

얼치기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탐욕만을 알고 있기에, 그가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채택하는 방법은 경제적 이기주의이다. 경제적 이기주의는 시장 경쟁에서 자신이 유일한 승리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목표로 삼는다. 운이 좋거나 혹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 경쟁에서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경제적 이기주의의 길은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 이기주의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소수의 사람만이 승리자가 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이 길을 향해 자신의 인생을 모두 건 도박이나 다름없는 삶을 산다. 하지만 진정한 이기주의자는 자기에 대한 배려와 자기만의 방에 대한 구체적인 욕구를 뼛속까지 알기에 자기를 탐욕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한다.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p.251)

자기애를 회복하는 문제를 스피노자는 이기주의의 틀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상상이 가져다주는 기쁨이라 생각했다. 자기에 대한 관심이 항상 경제적 이기주의라는 결론을 가져다줄 필요는 없다. 또한 혼자 산다는 것이 곧 세상으로부터의 은둔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남는 문제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9칸트는 이를 윤리적 문제라 불렀다)이다. 은둔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홀로서기를 통해 자기 고유의 내면과 마주친 사람은 자신의 고유성을 또다른 고유성을 지닌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자신의 고유성에 대한 인정을 우리는 타인에게 강제할 수 없다. 강제라는 폭력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타인에게 자신의 고유성의 고귀함을 호소하고 설득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호소와 간청이 설득이라는 결말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경제적 이기주의가 요구하는 개인이 타인을 자신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형식이 아니라, 서로가 목적이 되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p.255)

두렵다고 해서 힘겹게 얻은 자기만의 방과 자기에의 배려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해지는 길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힘겹게 독립을 이룬 사람이라면, 자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또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 단독인의 사회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만의 방`이 서로 연락선도 닿지 않는 고립된 섬으로 흩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이어진 사회를 의미한다. 그 네트워크를 다른 단어로는 연대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연대의 필요성을 민감하게 느끼는 두뇌의 촉수를 지니고 있다. (p.271)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겟타 2016-04-01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ㅎㅎ 저 이책 나중에 사려고 보관함에 넣어놨긴 했던 책이긴한데 저 읽어보고 싶어요. ^^;;

다락방 2016-04-01 18:41   좋아요 0 | URL
드릴게요!! 주소삼종셋트 비댓으로 알려주세요!! >.<

2016-04-01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4-01 21:39   좋아요 1 | URL
책이 회사에 있어서 다음 주에 보내드릴게요. 나중에 경상도 가면 소주나 한 잔 사주세요. 아니, 한 병 ㅋㅋㅋㅋㅋ

2016-04-02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6-04-0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좋죠!!

다락방 2016-04-01 23:31   좋아요 0 | URL
네 좋았어요. 기본소득에 대한 얘기와 경제적인 능력(?)에 대한 얘기 모두 좋더라고요.

2016-04-02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4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4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4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4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터 2016-04-0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애를 회복하는 문제를 ...이기주의의 틀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상상이 가져다주는 기쁨이라 생각했다...라는 말에 힘을 얻어요.

다락방 2016-04-05 09:46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를 가졌다는 사실도 참 다행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끝의 시작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앞으로 나아가거나 가던 길을 계속가거나 더 좋은 길을 향하고자 할 때 그 모든 걸 멈추는 것은,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가 두려워하던 것보다 더 잘해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두려움에 밀려 주춤거려, 고작 이만큼밖에 못온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사는 것만이 건강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석현을 만난 뒤로는 달라졌다. 꿈을 꾸듯 살면 어떤가, 현실을 망각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때의 심정에 취해 살면 어떤가. 어떻게 살든 사랑 없이, 사랑하지 않고 사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랑한다는 건 뜨겁게 살아 있고 싶다는 것, 상대를 향해 타오르고 싶다는 뜻이다. 석현은 닫아 잠근 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여진을 흔들어 깨운 셈이다. (p.141-142)





소정은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리의 힘이 스르르 풀렸다. 사랑이 자신을 구원하고 이 시궁창에서 건져 내 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결혼에 얼마쯤 기대고 있던 건 사실이었다. 사랑에 매달리고 의지하는 자신을 진수가 부담스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짐작 속에서도 마음을 쏟고 자신을 잡아 줄 무언가가, 삶의 확실한 기반이, 결혼이라는 동아줄이 필요했다. 칼에 베인 것처럼 쓰라린 건 배신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책감과 열패감이 그녀를 두루 할퀴었다.
진수에게서는 밤이 깊도록 연락이 없었다. (p.137)

어떤 사랑은 쉽게 변질되고 어떤 사랑은 쉽게 바닥을 드러내고 어떤 사랑은 흐지부지 막을 내린다. 그래도 그 모든 걸 사랑이라고 불러야겠지.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 소정은 자신에게서 떠나간 것이, 자신이 잃은 것이 사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p.137)

그 만남은 언제부터였을까. 그 여자가 눈에 들어와서 마음이 바뀐 건지, 소정에게 어떤 불만이 생겨서 틈이 벌어졌고 거기에 새로운 감정이 자리 잡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행히 눈물이 나오지 않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걷기가 수월했다.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p.137)

진수의 문자메시지는 일요일 자정쯤에 도착했다. 만나서 얘기하자는 것도 아니고 전화나 메일도 아닌 몇 줄의 문자메시지는 미안하다로 시작해서 미안하다로 끝을 맺었다. 그렇게 헤어진 뒤 며칠 동안 소정은 어딘가 고장 난 사람처럼 멍하게, 그러나 마구 헝크러져서 지냈다. 사랑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소정을 텅 비게 만들었고 진수가 자신을 속였다는 배신감은 내부의 회로를 뒤죽박죽 꼬아 놓았다. 상실감과 배신감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분리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두 개의 감정 중에 자신을 더 괴롭히는 게 뭘까 집요하게 생각해봤다. 처음에는 배신감 때문에 생긴 구멍이 컸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을 묶어 주던 믿음과 사랑이라는 유대관계가 깨졌다는 게 더 마음을 괴롭혔다. (p.139)

그날부터 석현은 미용실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어떤 연락이나 변명도 없었다.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일주일 동안 여진은 미용실 안에서 새벽까지 노크 소리를,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석현의 모습을 기다렸다. 바늘에 찔리거나 살짝 베인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연의 상처에선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손님의 머리를 말리다가, 고객 카드에 도장을 찍고 나서, 소파에 앉아 쉬며 커피를 한잔 마시다가 여진은 피투성이가 된 손을 내려다봤다. 석현과 비슷한 뒷모습을 보거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환부는 와락 벌어졌다. (p.1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얼마간 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집에서 혼자 홀짝 홀짝 술을 마셨다. 때로는 와인이었고 때로는 소주였다. 그게 뭐든 일단 까면 한 병을 다 마셨다. 안주는 뼈해장국일 때도 있었고 방울 토마토일 때도 있었다. 아, 어제는 피자였구나. 친구들이 만나자고 해도 다 거절하고 그저 퇴근후 집에 가서 초라한 술상을 봐서는 홀짝홀짝 했다. 어느날의 안주는 너무 빈약했는지 다음날 아침에 속이 너무 쓰렸다. 평소에 숙취가 없던 나로서는 아아, 이건 뭔일이야 싶어서, 이러다가 술 못마시겠네, 걱정스런 마음에 당장 컨디션 한 박스를 주문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속쓰리지 않게 컨디션 마시자, 하고. 술을 그만 마실 생각을 하진 않았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지낸걸까, 남동생으로부터 알콜중독자 되겠다는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또 이미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 이 짓을 그만둬야겠구나, 생각했다.


라지만 그만두지 못했다. 술은 사랑이잖아요... 다 떠나가도 술은 남잖아요....


어쨌든, 

그 시간동안, 내가 술 마시는 동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곁에는 나와 함께 술마셔주는 일일드라마가 있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그 존재도 알지 못했던 일일드라마를 틀어두고, 그 앞에서 술을 마셨다. 평소에 텔레비젼을 보지 않고, 그래서 어느 연예인이 인기인지, 왜 인기인지 같은 걸 전혀 알지 못했던 나였지만, 어쨌든 최근에는 그렇게 집에 돌아가서 씻고, 술상을 보고, 일일드라마 앞에 앉았던 거다. 그래서 <우리집 꿀단지>라는 드라마의 고정 시청자가 되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그 드라마는 엉망진창이다. 어쩌면 엉망진창이라서 뼈해장국과 소주를 앞에 두고 보기에 적절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적절한 게 무슨 상관이야. 뭐, 뭐라도 좋았다. 뭐가 하든 해라. 앞에서 떠들어라, 이런 심정이었으니까.






어쨌든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주인공 '봄'이는 전통주 회사에 다니는 절대미각의 소유자이다. 나이도 어린데 술에 대한 미각이 장난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술을 잘도 연구해낸다. 그녀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마루'와 결혼을 약속했다. 둘다 여차저차한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었지만 어쨌든 현재 봄이는 이 전통주 회사 사장의 딸이고 마루는 가장 큰 주주의 아들이다. 이 둘은 젊은데 일에서도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한다. 술을 연구하든 영업을 하든 완전 짱이다. 게다가 착실한 마음 씀씀이며 어른을 공경하는 태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도 진국이다. 뭐 하나 모자란 게 없는 젊은이들인 것이다. 이 회사에서 봄이 엄마가 누명을 쓰고 쫓겨나게 되고 다른 사장이 취임하는데, 그러면서 어마어마한 인재를 미국으로부터 스카웃 해오게 된다. 그 인재는 '제니'라는 이름의 마루 '전여친'이다. 아하하하하. 말도 안되는 드라마가 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이제부터 뿌려대는데, 이 '제니'는 스카웃 제의를 그냥 수락한 게 아니다. 다 전남친 마루를 다시 찾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 회사에 오자마자 봄이를 마루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수를 쓴다. 업무상 봄이가 위기에 처했다며 마루를 자기가 머무는 호텔로 불러서는 그 자리에 봄이를 불러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하는데, 이로 인해 봄이와 마루는 오해가 생겼지만 어쨌든 지금은 푼 상태다. 그런데 어제는 마루가 봄이에게 주기 위해 보석가게에서 귀걸이 산 걸 몰래 보고는, 제니가 바로 들어가 '방금 저 남자가 사간 거랑 똑같은 거 주세요' 해서는, 봄이 앞에서 똑같은 귀걸이를 한다. '마루는 나한테 줬던 거 다른 사람한테도 주네' 이딴 소리 해가면서.... 이게 어제 본 장면인데, 내가 보는 걸 옆에서 보던 남동생은 


누나 이런 거 보냐...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뭐 너무 말이 안되는 거라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거기서 끝이 아닌게, 마루가 봄이한테 오늘 할 얘기 있으니까 꼭 나와줘, 하고는 초대장을 줬는데, 이 제니라는 여자가 봄이 책상에서 그 초대장을 보고 봄이의 핸드폰도 보더니, 초대장에 쓰여져있던 장소인 까페로 자기가 가는 것이다. 마루는 거기에서 봄이에게 프로포즈를 할 작정이었고, 그 이벤트 준비로 바빴다. 촛불 여러개에 불을 붙이고 풍선을 불어놓고 하면서. 아마도 그 까페를 빌린 모양인데, 어쨌든 그 프로포즈 자리에 양가 식구들을 다 불렀었다. 이 자리에 제니가 먼저 나타나서는 '나 이제 미국으로 돌아갈게, 그래도 우리는 친구지' 하면서는 마루를 끌어 안는 거다. 그리고 그 때 봄이를 비롯한 식구들 등장하여 이 포옹장면을 보게 되고.......



남동생은 빡치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이게 뭐냐 진짜 허접하다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그러지마, 내 술친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서 여자주인공이 가수라고 했다. 아 그래? 누구? 물었더니, 아 누구지 뭐지, 하면서 '너는 내 별빛' 하는 애들 있잖아, 그러길래 검색해보니 '시크릿'의 멤버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오오, 여주가 가수였구나, 남주도 가수야? 물었더니 그건 모르겠단다. 어쨌든 그런 드라마를 나는 몇 주간 봐왔던 것이다. 봄이랑 마루 화이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니에 대해 생각했다.
헤어졌던 남자를 다시 차지하기 위해 그가 있던 곳으로 왔던 여자를. 그런데 이미 그에게는 여자가 있다. 자신은 그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그 남자 옆에 있는 여자를 '치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꾸 계속되는 오해를 만든다. 이 드라마의 가장 말이 안되는 점 한가지는, 이런 억지 생각을 하는, 말도 안되는 유아적 발상을 하는 여자가, 외국으로부터 스카웃해와야할 어마어마한 인재이며 팀장이라는 것이다. 다들 나보다 십 년이상 어려보이는 애긔애긔 한 사람들인데, 도대체 어디서 뭘 어떻게 공부하면 저 나이에 팀장이 되고 유능한 한 축이 되고 그러냐...뭐, 능력 차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치자. 어쨌든, 그래서 제니는, 그런 오해에 오해를 만들어 마루와 봄이 사이를 떼어놓으면,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야광토끼'의 노래 <can't stop thinking about you> 가사에 보면,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라는 부분이 있다. 크- 절절하다. 그렇지만 저게 사실인 것이다. 극중에서 봄이는 제니에게 '나랑 마루가 헤어져도 마루가 너한테는 안가'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가 나에게 '아니'라고 말했을 때는, 내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지, '다른 사람 때문에'가 아닌 것이다. 


















영화 [세렌디피티]에서 남자는 결혼을 사흘 앞두고, 7년전에 잠깐 만났던 여자를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녀가 갔던 백화점에 가고, 그녀가 장갑을 샀던 매장에 가 어쨌든 그녀가 살던 집을 알게 된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그녀가 사는 곳으로 갔다가 허무한 장면을 맞닥뜨리는데, 결국 기운이 빠져서는 잔디에 누워, 자신과 함께 고생하고 비행기를 타준 친구에게 묻는다. 


내가 왜 이러는걸까?



그러자 친구가 대답한다.



넌 결혼하기 싫은 거야.



남자는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7년전의 그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꼭 한 번은 다시 만나야 했다. 결혼이 다가올수록 그런 마음이 더 강해졌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랬을까? 왜 그녀 생각이 간절했을까? 그는 물론 결혼을 약속한 여자를 나름대로 사랑했겠지만, 충족되지 않았던 거라고 본다. 집중하고 충족할만한 상대는 아니었던 거라고. 어딘가 공허하고 비었던 거라고. 꽉 채워주지 못했던 거라고. 그래서 자기의 결혼이 정말 해도 되는건지, 확신을 갖고 싶었던 걸거다. 그건 결혼을 약속한 여자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그런 거다. 여자도 마찬가지. 남자친구한테 프로포즈를 받았고 예스라고 말했지만, 7년전의 그 남자를 꼭 만나고 싶었다. 여자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반드시 그래야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처음 만났던 장소를, 상대가 있다고 생각되는 장소를 무작정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여자 역시 그게 필요했다. 그를 꼭 한 번 다시 만나는 게. 이 또한 약혼한 남자의 잘못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상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겐 꽉 차는, 완벽하게 충족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각자의 약혼자가 자신과 결혼할 상대를 충족된 상대로 여겼다면, 그때 벌어진다. 나는 너로 인해 충만했고 충족했고 꽉 찼어, 그런데 너는 내게 결혼을 취소하자 말해, 라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한 쪽은 충족되고 한 쪽은 충족되지 않는 일이?



남자와 여자는 서로 만났다. 우연이 반복되고 어쩌면 운명이었을지 모를 그들은, 서로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상대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까지 더해져서, 결국은 서로를 만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만남을 기념하여 기념일을 되새기고 축복한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다른 사람을 찾지 않도록 서로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은 상대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어쩌면 '잘됐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래 우리에겐 이 헤어짐이 나았을 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또 어쩌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서 이런 일이 생긴걸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또 어쩌면 '나에게 그(녀)는 더할나위 없이 충만한 상대였는데 이제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없으니 내 삶도 여기서 그만 정리해야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는 내게 속한 남자가 아니라 그녀에게 속한 남자였다. 죽자, 나는 생각했다. 죽자. 내게 닥친 고통에 맞서 죽음만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p.105) 












다시 <우리집 꿀단지>로 돌아가서, 제니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내가 혼자 마시는 술을 끊는다면 아마 제니를 다시 볼 일도 없을 것이고,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영화였다면, '모니카 마론'이 [슬픈 짐승]에서 그랬듯, 죽자, 내게 속한 남자가 아니라 그녀에게 속한 남자이니 죽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애를 써서 봄이와 마루 사이를 떼어놓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떨어뜨려놔서 자기한테 설사 온다해도, 그 이후의 삶이 행복할 것 같지가 않아서다. 그리고 그렇게 좋지 않은 일에 자기의 에너지를 쏟지 않기를 바란다. 일에서도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그녀인데, 거기에서 받은 긍정적 기운을 다른 연인의 불행에 다 쏟으려고 한단 말인가. 그녀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한편 묻고 싶어진다. 그렇게 해야만, 그래야만 당신이 후회가 없겠냐고, 그게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일이냐고. 만약 그녀가 '그렇다'라고 답한다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그녀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른 사람의 불행에 쏟아 붓는다해도, 그저 바라볼 밖에.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16-03-29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혼자 술마시는거 이거 중독의 전조증상입죠...사실 뭐 중독 아닌게 있습니까만은....다들 밥중독, 일중독이고, 잠중독이고 독서중독이고 그렇지요...뭐

혼자 술 마시는 거 나름 의미(무슨 의미? 하여튼)도, 재미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소생이 뭐 주당도 주류도 아닙니다만은...제가 소싯적에 취업 준비할 때... 해 떨어지고 밤 깊을 때까지 도서관에 앉아 뭉게고 있다가 마지막 버스 타러 가기 전에 정류장 근처 포장마차에 서서 혼자 마시던 잔 소주 생각이 납니다. 잔 소주 2~3잔에 닭꼬치 1~2개, 아니면... 오뎅...과 국물....그 잠시잠깐의 순간이 하루 중 가장 마음 편안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소주 두어 잔에 취해 졸다가 꿈결에 누가 `학생~` `학생~` `학생~`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 보면.... 버스종점...ㅜㅜ

그나저나 `평소 숙취가 없`다니 놀랍습니다. 타고나신 듯. 주당계의 금수저 ^^

다락방 2016-03-29 11:47   좋아요 2 | URL
주당계의 금수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빵터졌네요.
붉은돼지님 댓글 읽고나니까 해봐야지 생각했는데 못해본 게 딱 떠올랐어요. 강변역 포장마차에서 혼자 우동에 소주마시기요. 이거 계속 해봐야지 했는데 못해봤네. 생각난김에 이번주에 해봐야겠어요. 그러면 뭔가 다 하는 것 같은 완성된 느낌이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평냉, 수육에 소주까지는 혼자 해봤거든요. 포장마차를 아직 혼자 안해봤네. 아, 도전할 것이 있다니, 신나는 세상입니다! ㅎㅎㅎ 지금 읽는 책에서 `홀로서기`에 대한 게 언급되는데, 완벽 홀로서기를 위해 포장마차 혼자 술마시기에 도전하겠어요!! >.<

2016-03-29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30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월 2016-03-30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드에 영화가 많은데도, 술을 마시려고 보면 너무 서정적인것, 진지한 것, 줄거리가 복잡한 것 다 제치다보니 볼게 없죠. 얼마전엔 비포선라이즈를 틀었는데, 점점 취하면서 대사를 따라갈수없어서 포기... 일일드라마 한 번 시도해봐야겠네요.

다락방 2016-03-30 11:14   좋아요 1 | URL
네, 좋은 영화 같은 건 특히 술 마시면서 보기에 무리가 있고요. 개그프로그램 다시보기로 볼랬더니 여성비하, 외모비하가 너무 심해서 보다가 화가 나더라고요. 저는 주로 일일드라마를 비롯해서 <나는 자연인이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다시 보곤 해요. 나는 자연인이다와 걸어서 세계속으로도 술마시면서 보기에 좋아요!

2016-03-30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3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30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사IN 제445호 2016.03.26
시사IN 편집부 엮음 / 참언론(잡지)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이번엔 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中 에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기 2016-03-3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라라가 남편 하버의 심장에 방아쇠를 당겼다면?
 
시사IN 제445호 2016.03.26
시사IN 편집부 엮음 / 참언론(잡지)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제445호 시사인에 실린 '임재성(평화 연구자)'의 글 중 일부를 옮겨온다.



체벌을 당한 아이들의 감정을 조사한 한 연구에서, 그 어떤 아이도 체벌 이후 '반성'이나 '미안함'을 느꼈다고 응답하지 않았다. 체벌을 당한 아이들이 품었던 감정은 당연하게도 무서움·화남·끔찍함·창피함·외로움이었다.

.

.

.

사랑의 매와 분노의 매가 다르다는 것은 전형적인 가해자의 논리다. 자신의 의도에 따라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 아이들에게는 맞는 이유가 사랑이든 분노든 다를 바 없다. (시사인 제445호, 임재성, <사랑의 매와 분노의 매, 과연 다른가> 中)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넷 2016-03-2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학창시절은 평범하게 지낸 축에 속해서 그런지 어떤 체벌을 많이 받은 편은 아니였지만 몇번의 체벌은 기억이 나네요. 그 가운데서도 이 선생님이 정말 선생님 자신이 `분노`해서 때리는 건지, 정말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매인지는 구분 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단순히 제 개인적인 경험이니 그런지 모르겠네요. 여튼 당시의 제가 그렇게 구분 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결국 평상시에 그 선생님이 얼마나 학생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냐에 따른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도 체벌의 방법이 육박전을 방불케 하는 것이라면 그냥 이 선생이 `분노`해서 나를 때리네 라고 생각했지요(그렇게 매를 선사했던 선생님은 평상시에는 온화 하고 그래도 나름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많으셨던 분인데 예전 분이라 그러신 것 같네라고 지금은 생각되네요 ) 그래서 그런지 저런 이야기에 매우 공감이 가면서도 판단을 유보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시 생각해보니 제 성격에는 그렇게 매를 안들고 말로 했어도 알아 먹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선생님 말이면 무조건 들었던 `차칸??`학생이였다 보니...ㅋㅋㅋㅋ

다락방 2016-03-29 08:09   좋아요 0 | URL
저는 `사랑의` 매 라는 거 자체가 모순된다고 생각해요. 매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사랑일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너 잘되라고 그러는거야` 라든가 `너 잘못했으니 이러는거야` 라는 논리라면, 맞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뇌당할 수 있도록 하니까요. `아 잘못하면 맞는거구나` 라고요. 그러면 그 사람은 그 논리를 똑같이 행하게 되겠죠. 나중에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 `너 잘못했으니 맞아야 해` 하고요. 결국 이렇게 폭력은 대물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폭력의 악순환이 일어나고, 부모에게 맞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때리는 일이 발생하는 거고요. 잘못했으면 맞아야 한다, 이 논리 자체가 저는 논리 성립이 안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맞는 행위, 때리는 행위가 `사랑`일 순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들이 거기에 `사랑`이란 이름을 포장해도 결국은 `때리는` 거고요, 그 때리는 건 자기 기분, 자기 감정인 거죠. 사랑해서 그러는거야, 라는 건 자기 위로, 자기 만족이고요. 만약 정말로 `사랑의 매`라는 게 존재한다면, 사랑의 매가 올바르게 나아가게 하는 거라면, 그게 옳은 거라면, 왜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매를 들지 않을까요?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을 가졌을지언정, 그것이 엄연한 폭력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옛날 선생님들 정말 많이도 때리셨죠. 와, 진짜 저는 여고였는데 남자 선생님이 학생 발로 차는 것도 봤어요. 중학교때는 선생님이 학급 여자에 머리를 자르기도 했고요. 뺨 때리는 건 기본이었죠. 뺨과 머리를 때리는 걸 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의 매일 수가 없어요. 그건 상대보다 자신이 더 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것 밖에 안된다고 생각해요. 일례로 같은 잘못을 했을 경우에 자신과 동등한 위치의 사람을 때리진 않잖아요. 회사 동료가 잘못했다고 그 잘못을 고치기 위해 때리진 않잖아요. 자신이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제자를 때리고 어른이 아이를 때릴 때는 맞는 자가 자신보다 약한 존재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거죠. 그건 폭력이고요.

저도 가끔 조카가 말을 너무 안들으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마음은 `이렇게 해서라도 말 듣게 하고 싶다`는 충동인 것 같아요. 그건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보여지고요. 그래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8-3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말씀 100%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