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잘 지내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중심을 잘 잡아도 내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만 있다면, 나 혼자서 중심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주변사람들, 내 가족, 내 연인, 내 친구들이 어떤 사람인가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애정과 사랑을 주고받는 것도 나에게 영향을 주지만 또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그들은 어디를 바라보는지도 어쩔 수없이 내게 영향을 미치니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이니 말이다.


연인관계야말로 특히 그러한데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내 가치가 크게 땅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건 진짜 내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상대가 나를 하도 후려쳐서. 그래서 연애를 하면서 나는 못났네, 얘 아니면 나는 안되겠네, 내가 무식하네 등등, 자기중심성과 자기애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런 관계는 그야말로 서로에게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이 사귀는 사람을 후려치는 게 도대체 무슨 득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건 결국 자기가 형편없다는 걸 인증하는 거 아닌가. 아주 많은 관계들이 호감으로 시작하고 사랑이라 말하고 발전하면서,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바닥만 보게 되기도 한다. 가장 필요한 게 가장 어려운 법인데, 그건 서로가 서로를 만나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또 함께 즐거운 것. 가끔 만나는 경우라면야 이럴 수 있겠지만, 매일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함께 즐거우며, 또 나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고 그렇게 느끼게 만들어주는 경우는 정말 드문 것이다. 그렇기에 소중한 것이고.



며칠전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려고 펼치자마자 이런 문장을 만나게된다.



고전에서도 이르기를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란색이 되고,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란색이 된다고 했다. 지도자가 소인을 가까이 두면 정치가 소인스러워지고, 군자를 가까이 두면 군자다워진다는 뜻이다. (p.7)



내 고유의 색은 분명히 있지만, 다른 색을 만나는 순간 그 색과 섞여 나는 다른 색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색과 그리고 저 색이 섞여서 아마도 나는 지금의 이런 색이 되었을 것이고, 또 다른 색과 앞으로 만나 지금과는 또다른 색이 될 수도 있다.


살다보니 최종적으로 내 곁에 남는 친구는, 지금의 나와 가장 잘 맞는 부분의 친구들인 것 같다. 알아오며 사귀며 지내다가도 어라 이건 좀 아닌데, 하는게 여러개 나오다 보면 결국 내치게 되니까. 내가 내치기도 하고 또 내쳐지기도 할텐데, 내쳐지지 않고 오래 내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색이 비슷해서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색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에 대해 공통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스며들었을 때 발현되는 색이 나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게 좋아서' 우리는 이렇게 곁에 두게 된 것일테다.


그렇기에 이반 일리치의 이 말은 옳다.






사실 내 인생은 대부분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 결과이다.-71쪽














내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나는 가끔 엉망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큰 실수를 저질러 후회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는, 몇 해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며 '내가 참 잘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는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었고, 그 상황에서 그럴 수 있었다니 대단하다..하는 생각이 들어서 셀프 쓰담을 좀 해주었다. 그 때의 나 잘했어. 나는 내 즐거움과 내 행복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어. 그 때의 나, 칭찬해, 잘했어. 오구오구.



나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을 것이고, 또 내가 그들에게 그걸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랑한다면 상대로 하여금 사랑받는다는 걸 확신할 수 있게 해줄것이다. 세상 모두가 등을 진다 해도 '이 사람만큼은 계속 내편일거야' 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다. 특히 나의 조카들에게. 이 아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든든한 조력자이고 싶어. 친구들에게는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이야기 나누고 싶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고, 연인에게는 여기에서 나는 가장 행복하구나, 편안하구나, 하는 자신의 자리를 확신할 수 있게끔 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예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되었듯이, 내 주변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또 오늘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만.




그렇지만 그렇게 내가 만나는 사람들 틈에서도, 내가 나임을 잊지 않고 잃지 않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는 내 주변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필요한 거 아닌가. 그래야 작은 물결에도 휩쓸려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래 문장을 읽다가는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법가를 세운 한비와 이사는 젊은 시절 순자에게서 같이 수학했다. 그런데 이사의 재주가 한비를 따르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사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 진의 시황제가 《한비자》를 읽고 크게 감동해 한비를 만나 함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한비가 시황제의 부름을 받아 진나라로 가자, 한비 때문에 황제가 자신을 신임하지 않을까 두려워한 이사는 그를 모함해 죽게 만든다. (p.192)



이사에게 얼마나 재주가 있었는지 혹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사는 결코 한비가 될 수 없다. 한비를 따를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이사는 한비와 어차피 다른 사람이니까. 한비를 죽인다고 이사는 진의 시황제를 감동케 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각자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그것은 다른 사람의 것과 같을 수 없다. 한비를 죽인다고 해서 황제의 총애를 받고 가장 으뜸인 사람이 될 수 있는걸까? 아니야, 거거 아니야. 왜 야광토끼도 아는 걸 너는 몰라...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아..갑자기 글의 슬픔의 새드니스로 흐르고 있다...

밖에는 매미가 우는데!!




아아 더우니까 일하기 싫다.

추울 때도 일하기 싫었지만..


나는 맨날 일하기가 싫어 두구두구둥- 딩가딩가~

우리가 쓰는 경제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 사전에는 경세제민 또는 경국제민經國濟民 등의 줄인 말이라고 나온다. 간단히 해석하면 ‘경세‘란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며, ‘제민‘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경세제민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다스리는 일과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여기에서 새겨봐야 할 점이 바로 경세와 제민의 관계이다.
경세제민이랑 녁에솨 제민이 따로 있거나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의 핵심이 바로 백성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좀 더 강하게 표현하자면, 백성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왜 세상을 다스리려고 하느냐는 뜻이다. 이처럼 동양의 경세제민 사상에는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 임금(요즘으로 표현하면 국가)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라는 윤리적인 측면이 담겨 있다. (p.14-16)

한때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선구자이자 민족주의자였다가 자진해서 친일 지식인으로 전락한 춘원 이광수 1892~1950 가 자신의 변절을 변명하기 위해 쓴 글이 <민족개조론>이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뜻밖에도 이런 궤변을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다. 가령 근대 이전까지 우리에게는 ‘민족民族‘이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민족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그렇다. 민족이라는 말이 근대에 와서, 그것도 일본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말이 없었으니 민족이 없었다는 주장은 마치 우리말에 그제,어제,오늘,모레,글피는 다 있지만 내일이란 말이 없으니 우리 민족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주장처럼 황당하다. 어째서 내일은 알면서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을 뿐 우리 말에 ‘하제‘가 있음을 모를까?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말이 있기 전에도 우리는 겨레나 나라라는 말을 썼다.
물론 사회,민족,국가 등과 같은 사회과학 용어들이 만들어지고 개념으로 정립되면서 사회과학이 더 발전하게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라는 말이 없었다고 정치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경제‘라는 말이 없었다고 경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p.44-45)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은, 그들 머릿속에 이런저런 지식이 가득하지만 그것들 모두가 화석처럼 굳어버린 죽은 지식일 뿐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p.45)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흉악 범죄가 자주 일어나다 보니 법은 무조건 엄격해야 하고 형은 무조건 가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형벌이 아무리 가혹해도 죄를 짓고도 이리저리 빠져나가 형벌을 받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죄를 짓는 사람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백성들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면 형을 가혹하게 할 것이 아니라 법의 집행을 공정하게 해야한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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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는 이 방에 있는 책장을 저 방으로 옮기고 저 방에 있는 옷장을 이 방으로 옮기는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책장의 책들을 다 빼야했고 다시 꽂으면서 팔 책과 보낼 책등을 가려냈다. 일단 다시 읽지는 않을 것 같은 책을 몇십권 추려내어, 밤에는 이것들 중에서 알라딘에 팔 것과 여성의전화에 보낼 책들을 가려내는데, 그간 내가 아껴서 꽁꽁 싸매두었던 산드라 브라운의 책 몇 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산드라 브라운의 책이라면 국내에 나온 걸 모두 사들이려고 했던 터라 중고로 구입했던 것도 많았고 그래서 아주 낡은 상황. 이건 팔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주었다가도 욕먹을 것 같았다. 이렇게 낡은 책을 보내다니, 버릴 거 준거냐고. 그래서 큰 맘먹고 '버리자!' 생각했는데, 막상 버리려고 하니 아아, 너무 아까운 거다. 버리겠다고 큰소리치고서는 '나중에 내놓을게' 하고 침대 옆으로 가져왔다. 아아 산드라 브라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른의 로맨스를 쓰는 작가. 어른들의 성적 욕망을 잘 그려내는 작가... 내가 얼마나 좋아했던지..그러나 책장은 한계가 있고, 게다가 너무 낡은책이야, 안녕...하면서, 버리려고 추려두었던 책들 중에 한 권을 어젯밤에 들춰보았다. 헤어지기 전에 잠깐 볼까? 하고... 어떤 것들은 헤어지기 전에 특히 미련이 남는 법이잖아.


















책과 내가 만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어제 이 책을 다시 훑어보는데 너무 유치하고..뭐랄까..너무 말도 안되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물론 나는 여전히 산드라 브라운이 좋고, 아직 산드라 브라운의 모든 책들을 버린 것도 아니고 일부만 버리려고 한거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뭔가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아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고 ㅋㅋㅋㅋㅋㅋㅋ(응?)


아무튼 내가 어린 시절에, 사랑에 눈뜨면서(?) 이 작가를 알게된 게 아니라면, 그러니까 만약 지금 처음 알게된 거라면, 게다가 그 책이 이 책이었다면,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예전에 읽었던 책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또 다르고 ... 그래, 다르다. 이제는 정말 다른 게 보였다.



일단 여자 '슬론'은 혼자서 숙박업을 하고 있다. 자신의 집을 숙박업 장소로 정해두고 손님을 받는건데, 식사와 청소를 호텔처럼 책임지는 거다. 집이다 보니 받는 손님의 수도 한정적이고 또 항상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도 아니라서 사실 운영이 어렵고 돈도 없어...그래서 그 모든 일을 혼자 맡아할 수밖에 없다. 집 청소며 정리며 손님 대응이며 장보고 음식 만드는 것까지. 게다가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큰 가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리기에 급급하고 남자를 만나 데이트도 하지 않고 어쨌든 약간은 우울하고 쓸쓸한 삶을 살고 있는데, 이 집에 자신의 친한 친구의 약혼자인 남자 카터'가 글쓰기 작업을 마무리 하겠다며 온다는거다. 집중해서 글을 써야 한다고..그렇다..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의 뒷면에는 '에로틱하고 감동적이며 진실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 책이 감동적인것 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에로틱하기는 하다. 내가 산드라 브라운을 좋아했던 건 성인들의 사랑을 쓰기 때문이었어. 어쨌든, 그런데 이 슬론과 카터는 보는 순간 서로에게 아주 강한 육체적 끌림을 느끼게 되는 것이야. 아주 그냥 서로의 신체 부분 하나하나마다 매력을 느끼고 막 상대가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것 같고, 안고 싶고 안기고 싶고 막 이렇게 된단 말야? 그러다보니까 서로의 눈에 이글거리는 욕망도 읽게 되고, 그래서 뭐랄까 둘만 있게 되면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서로의 육체를 서로에게 비벼대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장면을 쓰는 중인데 그 뒤에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으니 한 번 해보자 이러면서 육체적 싸움하는 장면 같은거 해보는 건 너무 말도 안되지 않냐. 이건 너무 비상식적인데, 그런데 만약 이게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해보자 그러는 거라면, '에이 말도 안돼' 이러면서 한 번 해볼 수도 있고 뭐 그렇게 되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뭐랄까, 너무 뻔한 수작이잖아?


아무튼 그래서 이 둘은 둘만 있게 되면 막 어쩔 수 없이 서로 포개어지고 끌어안고 입맞추고 난리가 나는데, 그리고 결국 서로를 사랑한다는 확신까지 얻게 되는데, 그런데 이들은 뭐랄까 섹스를 마칠 수가 없고 항상 하다가 '제기랄' 이러면서 멈추어야 되는 것이다. 서로 물고 빨고 핥고 난리가 나다가 어느 한쪽은 자꾸 마지막까지 이르기전에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우리가 이러면 안돼'


하고 말이다. 위에 언급했듯이, '카터'는 슬론 친구의 약혼자이다. 그런데 친구의 약혼자와 물고 빨고 하다니...그것은 안될 일이잖아. 그런데 보기만 하면 막 너무 물고빨고 싶고 그래... 슬론은 우리가 이러면 안된다는 이유로 '당신은 친구랑 결혼할 사람' 이라 말하지만, 그런데 카터가 중간에 멈추는 이유는 그게 아니다. 약혼자가 있다는 건 그에게 사실 별 문제는 되지 않고, 이런식으로 급작스럽게 안고싶지 않다, 제대로 침대에서 천천히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게 그의 요지. 뭐가 됐든 어쨌든 그래, 아무리 성적 욕망 이끌리지만, 너 약혼자 있고... 그런데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말고 우리는 서로 사랑해' 같은 거 하면... 개새끼잖아? 그러니까 슬론이 얼마나 힘드냐. 머릿속에서는 '이 새끼 개새끼 그런데 졸라 사랑해' 이렇게 되어서 막 '아아 오늘도 물고빨고 내일도 물고빨고싶다' 이러면... 하아- 얼마나 힘들겠어. 세상 양심없이 '나는 오늘의 물고빨고에 충실하리라' 하면 사실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왜, 미미여사가 자신의 소설 [화차]에서 착한 사람들은 돈을 갚으려고 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잖아? 슬론도 친구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애인 있는 남자와 섹스하는' 자신을 막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자꾸만 '우리가 이러면 안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거 줄거리만 얘기하라고 하면, 너무 단순한 막장이다. 애인 있는 남자가 다른 싱글여자 만나 서로 강하게 이끌린다는 것인데, 이거 이렇게만 말하면 그냥 뭐랄까, 의리없는 개새끼 이야기 같은 것이잖아? 그런데 이게 또... 사람이 말이야... 참....아무튼지간에 그러해가지고, 그러니까 카터는 제대로된 책을 쓰기 위해 여기에 왔는데, 타자기 앞에 계속 슬론이 아른아른 거리고 너무 안고싶고 미치겠고 슬론 가슴만 보면 대환장일어나고 이렇게 되고, 슬론은 슬론대로 너무 안고싶고 미치겠고 같이 자고싶고 너무 사랑하고 사랑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방 정리해주다가 베개에도 사랑 느끼고 벗어둔 스웨터 몰래 냄새 맡고 막 이렇게 되어가지만, '당신 나 사랑하지?' 물으면 '응 그래 사랑해요' 이러면서, '그런데 우리가 섹스하면 안되잖아 엉엉' 이렇게 되어버리는 슬픔의 새드니스...



아 쓰다가 기운 빠진다.



이미 예전에 다 읽은 내용이고 알고 있는데, 그런데 어제 다시 읽으면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성인1이 성인2를 만나 첫눈에 호감을 느끼고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것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뭐랄까, 처음부터 보기만 하면 찰싹 달라붙고 싶은 욕망, 자고 싶은 욕망같은 걸 서로 상대에게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대체적으로 성인1과 성인2가 만나 연인이 된다고 하면, 자연스레 밟는 수순같은게 있지 않나. 물론 모든 커플이나 연인들이 그 순서를 밟는 게 아니라고 할지라도, 뭐랄까, 호감 있으니 만나보자->계속 만나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그러면서 호감이 커지고->그러면서 손도 잡다가 포옹도 했다가 키스도 했다가->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섹스도 해보고->한 번 하면 계속하고 이렇게 되는 수순..은 뭐랄까 너무나 내가 .. 오래된 사람 티나는 것인가.



'크리스티나 로런'의 《낯선 살냄새》도 마찬가지. 여자와 남자는 만나서 섹스부터 한다. 섹스부터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는데 사랑해... 너 사랑해, 정말 사랑해, 너랑 이야기나누는 거 너무 좋아..이렇게 되는데,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세상을 살아본 사람들은 알 거라고 생각한다. 섹스도 좋은데 이야기도 좋은 상대는 사실 그렇게 자주 만날 순 없다는 것을.. 섹스를 잘하면 맞춤법을 틀린다거나 이야기를 잘 나누면 섹스엔 관심이 없다거나,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고 불안정한 존재이니까, 이야기도 섹스도 맞춤법도 다 들어맞는 커플은 존재하기 넘나 어려운 것인데... 음.... 이야기가 어디로 가려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아무튼,



그런데 슬론과 카터는 '어? 너 한 번 만나볼까?' 이게 아니라, '아아 뜨겁게 원한다 육체적으로' 막 이렇게 먼저된 것이야. 그런데 이게 그런 것 같다. 그냥 육체적으로'만' 원하면 사실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은 것 같아. 그걸 당장 못채우면 그걸 채워줄 다른 사람을 다시 찾으면 그뿐이니까. 그런데 카터는 슬론을 뜨겁게 원했지만, 그것이 그녀를 안고싶다는 욕망이기도 하면서, 같이 자고싶다는 욕망이기도 하면서, 또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쓴 작품이 책으로 나오기전에, 그러니까 완성된 원고를 약혼녀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지만, 슬론에게는 읽어봐달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이런 마음이 작동해서, 그러니까 단순히 섹스하고 싶다는 욕망 이외에, 다른 것들, 당신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고 자주 만나고 싶고 친해지고 싶고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싶고 .. 이런 것들이 만나서 '당신과 자고싶다'를 극대화시켰던 게 아닌가 싶다. 이 모든것들이 뒤섞여있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처음부터 상대에게 강하게 이끌렸고, 자꾸 둘만 있게되면 엎어치고 메치고 난리가 났던 것 같아.



"당신이 필요해, 슬론. 당신의 조용한 용기와 내 글에 대한 탁월한 견해가 필요해. 잘 되지 않을 때는 당신의 이해와, 모든게 무너져 내렸을 때는 당신의 찬사가 필요해. 당신의 달콤한 육체의 양분이 필요해." (p.264)



그러니까 사실(그런데 나 '사실'이란 단어를 매우 잘 쓴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됐다..), 카터가 슬론에게 원하고 슬론이 카터에게 원한건 육체 그 이상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에는 뜨거운 육체에의 반응으로만 나타났어. 당신은 왜이렇게 처음부터 나만 보면 자고 싶어했을까...를 고민해보면,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잘 되지 않을 때는 당신의 이해가, 모든게 무너져 내렸을 때는 당신의 찬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당신의 이해와 당신의 찬사. 당신의 격려와 당신의 관심. 쉽게 말하면 당신의 오구오구와 우쭈쭈 같은 거라고나 할까. 아마도 처음 본 순간부터(그러니까 진짜 그건 되게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상대로부터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음을, 나 역시 상대에게 그런 상대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에 자꾸 상대만 보면 내 모든 육체가, 그러니까 사지와 몸통이 내 의지와는 다르게 흐물흐물 막 이케이케 되고 막..




이렇게 서로 강하게 이끌리고 서로에게 모든 걸 원하는 두 사람이 시작한 이 사랑은 그러나 안된다. 남자에게 애인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를 볼 때마다 그리고 그를 원할 때마다 '안된다'고 슬론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그에게 말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침대에서 같이 보내지 않았을 뿐, 볼 때마다 물고빨고 했는데, 결국 같이 자지는 않았다는 것은 빠져나갈 이유가 되는걸까. 애인이 있는데도 다른 여자에게서 계속계속 욕망을 느꼈잖아. 어쨌든 그런데 산드라 브라운은 이들을 계속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방법이 어처구니가 없긴한데, 카터의 애인이 먼저 '나는 카터를 사랑하지 않고 카터 역시 나에게 친절하지만 우리는 서로 이성적으로 끌리는 게 아니고, 사실 나는 다른 남자를 만나서 불꽃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라고. 그래서 결혼식을 앞두고 카터의 애인은 카터에게 결혼하지 않겠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로 두고 결혼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도, 카터는 하지 못했어.






나는 이런 식의 해결방법이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너무 싫다. 너무 착하게 해결됐다. 주인공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입히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먼저 다른 사랑에 빠졌다는 해결방법이라니, 너무 빠져나갈 구멍을 주는 게 아닌가. 이런 결말도 싫었고, 게다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라는 말을 끝내 카터는 약혼자에게 하지 못했다는 거다. 카터는 그 결혼을 그냥 진행하려고 했다. 세상 머저리.. 세상 찐따.. 그런데 정말이지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애인이 먼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라고 말하니, 얼씨구나 좋다하고 슬론에게 달려가서는 '우리 이제 떳떳하게 사랑할 수 있어!' 이러는 거다. 물론 '그녀에게 말할거야' 라고 할 때, '그러지말라'는 슬론이 있었긴 했지만... 하여간 이 결말 부분에서 다 너무 싫었던 것... 그런데,



오늘아침엔 이 책의 결말을 생각하다가 좀 다른 식의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카터도 그리고 카터의 애인도, 슬론이 아니었어도 서로가 서로를 '그런식으로' 사랑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것. 만약 카터가 애인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면, 그녀로부터 인정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또 똑같이 그녀에게 해주고 싶었다면, 그랬다면 슬론을 보고 그렇게 복잡하고 다양하고 뜨거운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 않았을까 했던 거다.



어제 자기전에 이 책을 다시 훑으면서, 슬론과 카터가 서로에게 처음본 순간부터 강하게 이끌리고 계속 자고 싶어하고 서로에게 또 인정받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걸 보면서, 또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고 싶어하는 걸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어떻게 그들에게 그런 게 가능했을까.

어떻게 그들에게 그런 게 가능했을까.

어떻게 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걸까.




버리자고 뽑아놓은 책인데 이렇게 페이퍼를 적고보니 버릴 수 없을 것 같은데..어쩌지. 게다가 침대 옆에 버리기전에 다시 한 번 훑어보자고 둔 산드라 브라운의 책이 이 한권 뿐만이 아니었어... 여러권이야. 나는 앞으로 이 뜨거운 여름밤을 대체 어떻게 보내려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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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1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어떻게 이렇게 감칠맛나게 ㅎㅎ

다락방 2018-07-17 13:3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맙습니다! 카알벨루치님 좋은 분 ❤️

바지락 2018-07-1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섹스를 잘하면 맞춤법을 틀린다거나 이야기를 잘 나누면 섹스엔 관심이 없다거나....에서 빵터졌습니다. 우연히 들어왔다가 너무 재밌게 글 쓰셔서 홀린듯 읽었네요!! ㅎ

다락방 2018-07-18 11:23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주변에 맞춤법 틀리는 남자친구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여자들이 많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여러가지 육체노동을 하고 땀에 쩔은 냄새를 실컷 맡은 뒤에 샤워를 하고 밥을 먹었다. 엄마가 새로 담그신 열무김치는 세상 맛있어서, 점심엔 엄마가 그거 넣고 냉면 해주셔서 천국을 맛봤고, 다시 열심히 육체노동 한 뒤에 저녁엔 열무김치,고추장,콩나물,참기름 넣고 슥슥 비벼 신음소리 내면서 먹었지. 게다가 떠먹는 국물은 삼계탕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땀을 내고는 술 한잔이 얼마나 달콤하겠는가. 나는 와인을 한 잔 가득 따라 아빠가 사온 체리를 씻어서는 거실에 자리잡고 앉아 방송중인 <도전 골든벨>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는 일요일에 꼭 보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국 노래자랑>, <동물의 왕국>, <도전 골든벨>이 그것이다.


평소에는 나는 텔레비젼을 보지 않지만, 어제만큼은 휴식이 너무나 간절해 아빠랑 같이 도전 골든벨 보면서 답 맞히고 있는데, 내가 의외로 술술 맞히는거라? 그렇게 36번 문제가 나오는데 철학문제였다. '사르트르'가 주장한 것이고,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한 철학이라고 했다.


아직 문제를 다 얘기하기도 전, 철학문제, '사르트르'라는 단어만 듣고, 나는 아직 [소피의 세계]를 읽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아아, 이거 예전부터 계속 장바구니에 있다가 늘 뒤로 밀렸던 책, 읽으면 철학을 알 수 있는 책, 나는 학교때 공부도 못해서 철학이 뭔지 몰라, 그러니 답을 맞힐 수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얼마전에 나의 친애하는 syo 님도 이 책을 언급한 터라, '이번엔 반드시 질러야지' 해두었지만, 아직 결제 전이었단 말야. 아아, 진작 사서 읽을 걸, 그러면 나는 철학을 맞힐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대학 때 학사경고 받고 다녔던 사람이 철학은 무슨 철학, 아아 그렇지만 사르트르라니, 내가 맞힐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보부아르, 사르트르..아아, 이러면서 자책과 후회를 하던 가운데, 어라? 내가 나도모르게 정답을 말하고 있는거라?


"실존주의!"



이렇게 말하면서 그런데 설마 내가 맞힌 게 답일까, 만약 이게 맞는다면, 이것은 순전히 독서의 힘이다, 공부 못하는 내가, 철학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내가, 그런데 이 답을 맞힌다면.. 그것은 그동안 읽어온 이 책 저 책의 힘이다!!!



최후의1인인 학생은 찬스를 쓰겠다고 했고, 그렇게 다른 아이들은 한 글자씩 적힌 공을 던져줬고, 그 공에는 '실'과 '존'이 들어있었고. 얼라리여, 나는 답을 맞히겠구나, 했는데.... 답을 맞힌 것이다!!


내가

철학 잘알못이던 내가

실존주의를

맞혔어!!


이것은 학교 공부가 아닌, 나의 독서의 힘! 내가 지식을 차곡차곡 쌓기 위해 독서를 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독서는 내 학창시절의 공부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나에게 주었다. 여러분 독서하자!!



그렇게 41번 문제가 나왔는데, 역사문제였다. 나는 아직 문제를 듣기도 전부터 '아아, 역사는 내가 진짜 못하는데', 하였고, 문제는 '왕의 일상을 기록하는 관직이 무엇이야'는 거였고..나는 '서기'라고 답했다. 답은 '사관'이었고...... 똑 떨어졌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골든벨을 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41번에서 똑 떨어졌어...


인생..



역시 독서로 골든벨 까지는 무리였나..아니면 더 많은 독서가 필요한 것인가...



내가 이 일을 기뻐서 얘기하자 친구가 말했다. '보부아르 읽는 네가 실존주의를 못맞힐 리 없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여러분 책,책,책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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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7-16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만화)을 읽으시면 사관도 맞힐 수 있지요ㅎㅎㅎ 역사알못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책이어요~

다락방 2018-07-16 11:51   좋아요 0 | URL
제가 그걸 본다고 맞힐 수 있을까요? 그거 한 권 본다고 맞힐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아마도 숱한 독서가 반복이 되어야 맞힐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무언가 책 한 권 읽고 실존주의를 말할 수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제가 암기는 형편없어서 ㅠㅠ 한 번 본다고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고 반복해서 쌓이고 쌓여야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쨌든! 독서는 좋은 것입니다. 저도 조선왕조실록 읽어봐야겠어요. 역사알못.. 그게 바로 접니다!!

철학알못 역사알못...
그러고보니 제가 잘 아는 건 없네요. -0-

비로그인 2018-07-1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숱한 독서가 있어야 되는 건 맞는 것 같아요ㅠㅠ 한 번 읽는다고 다 기억나는 것도 아니고....크흑
다만 저걸 읽으면 ‘사관’은 맞힐 수 있다고 한 이유가요.... 암기는 반복학습 아니겠습니까? 저 책이 한 권이 아니거든요~~ㅎㅎ 10년 만에 완간된 20권 짜리여요- 물론 읽고 나도 조선 역사가 다 기억에 남진 않지만...(저도 역사알못... 이미 거의 기억이 안나요 ㅠㅠ 왜냐면 기본 배경지식이 적다보니... 더 빨리 휘발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한두 개 정도는 남더라고요 ㅎㅎ 여튼 저 시리즈는 진짜 강추요^^

다락방 2018-07-16 15:37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 검색해보고 20권 셋트가 나와서 화들짝 놀랐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역사를 잘 모르는 저이니만큼 도전!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만화로 되어있다니 좀 더 읽기 수월하지 않을까 싶고.. 1권부터 천천히 사서 결국엔 20권 완독에 이르겠스니다!

아아 세상은 넓고 읽어야할 책은 왜이렇게 많은걸까요 ㅠㅠ 좋은건지 싫은건지 모르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18-07-16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아스테릭스>와 더불어 저희집의 애정 만화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박시백의 관점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어요. 조선왕조실록을 꼼꼼히 읽고 기존의 해석 또는 당대의 야사도 살짝 정리해주면서도 자신의 판단을 보여주었거든요. 특히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의 그림이라 더더욱 감탄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아~~ 물론 전 내용이 기억난다는게 아니구여. 왕의 얼굴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정조랑 성종이 잘 생겼었다는게 기억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실존주의~~~ 오우~~~!!!

다락방 2018-07-18 11:26   좋아요 0 | URL
아스테릭스는 또 뭐람... 아아, 세상은 왜이렇게 책이 많은건가요. 제가 건드리지 못한 책, 존재도 모르는 책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건가요.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나 많아서 좋으면서 싫으네요. 이렇게나 읽을 게 많다니 너무나 좋구나 했다가 그걸 다 언제 읽는단 말이야 하면서 싫었다가... 아아 변덕스런 독서인의 마음..

조선왕조실록은 이번에 책 살 때 꼭!! 넣겠습니다.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도록 한 권씩 사서 읽어야겠어요. 필승!


(으쓱) 저 실존주의 맞히는 여자에요! (으쓱으쓱)

비연 2018-07-1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책, 책을 읽자..^^

저도 <소피의 선택> 사놓고 아직 안 읽고 있네요. 후회. 읽자. 책장에서 빼둡니다..
그러고 머리맡 탁자에 놓으니... 헉. 읽겠다고 빼둔 책이.. 쌓여... 있... 휘릭 =3 =3

다락방 2018-07-18 11:26   좋아요 1 | URL
비연님은 일단 사두기는 하셨군요. 저도 이번에는 꼭! 사두기는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긴 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사긴 해야죠. 사야 읽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몇 해전에 (아마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한 방청객 여자가 그런 말을 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다가와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 언니랑 사귄다, 언니가 좋아서 나에게 접근한거더라, 라고. 마음이 좀 아팠었다는 얘길하는데, 이런 얘기는 사실 무수히 많다. 당장 나폴리 시리즈에만 해도 릴라랑 친해지고 싶어서 레누에게 접근했던 새끼가 있었지.. 쩝..




















물론 '펄'은 '트립'에게 접근하기 위해 '무디'와 친해진 건 아니었다. 무디와 펄이 친해진 건 우연이었고, 그리고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둘이 친하게 지내는 동안 둘은 서로에게 충실했고 딱 붙어 다녔다. 매일같이 펄이 무디의 집에 놀러가서 그집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무디의 형인 '트립'에게 마음이 끌린 건, 처음부터 계획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 혹은 호기심 혹은 욕망..같은 것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버리는 수가 많다.


만약 무디가 펄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친구가 아닌 다른 감정, 이성으로서의 욕망 혹은 끌림 같은 걸 느끼지 않았다면 딱히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디는 펄을 좋아했고, 더 가까워지고 싶어했다. 이렇게 늘상 붙어다니고 펄이 무얼 좋아하는지 알고 펄이 여가시간에 뭘 하는지도 알고 그래서 펄에게 너가 쓰고 싶은 걸 쓰라면서 몰스킨 노트-펄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를 선물하기도 했으니까. 펄은 그런 무디의 마음을 눈치챘지만 사실 펄에겐 무디에 대한 어떤 이성적인 호감 같은 것은 없었다. 친한 친구 단짝 친구 좋은 친구지만, 욕망을 느끼는 대상은 아니었다. 펄은 무디의 형인 트립을 좋아했다. 무디의 집에 놀러가서는 아무도 모르게 슬쩍 트립의 옆에 앉곤 했다. 그런데! 트립이 움직였어..트립의 마음도 펄에게 움직였고, 그렇게 둘은 서로의 가족들 몰래 따로 만나게 된다. 이 청소년들은 그러나 단둘이 있을만한 공간을 찾을 수 없어, 트립의 친구네 집에 가기도 하는데, 어느 하루, 펄의 집 펄의 방에서 관계를 갖고 나오다가, 문 밖에서 '설마... '하고 의심하던 무디와 마주친다. 요즘 계속 집에도 같이 안가고 자기를 만나는 시간이 줄었던 펄이, 그 시간에 자신의 형을 만나고 있었다니. 게다가 서로에게 다정한 저 친근한 행위들-머리카락을 떼어준다든가 몸을 다정하게 붙인다든가-이, 그들이 이미 여러차례 섹스를 했음을 암시했다. 무디는 절망했다. 무디는 슬펐고 무디는 화가 났다. 그렇지만, 무디가 슬펐고 무디가 화가났고 무디가 절망했다고 해서, 펄이 트립대신 무디를 좋아할 순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기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리고 그 말은 진리이듯이, 세상엔 아주 많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딱히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일이 발생한다. 언젠가는 저 사람도 나를 봐주겠지, 나를 사랑해주겠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바란다고 해도, 나의 그런 기도에 신이 혹은 상대가 응답해주는 일도 딱히 많지 않다. 나의 짝사랑은 그저 나의 짝사랑으로 끝날 확률이 훨씬 높다. 또한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이천번 넘게 말하고 아무리 선물 공세를 퍼붓는다 해도, 나의 마음이 그저 저절로 '네가 나를 좋아하니 나도 너를 좋아해줄게' 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 것들은 좋은 관계, 다정한 사이가 될 순 있게 도와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적 욕망과 끌림으로까지 가게 되지는 않는 거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 너무 고맙고, 나 역시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가게 되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연애감정으로 이어지는 건 다른 문제. 거기엔 무언가 다른 것이 끼어들어야 하는 것 같다.



무디는 펄에게 실망했다.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랐다고 생각했던 펄이, 다른 여자아이들과 똑같이 트립을 좋아한다는 것에 실망했다. 바람둥이 트립과 사귀다니, 너무 화가났다. 너무 화가나서 둘은 이제 말하지 않는 사이가 된다. 무디는 펄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선물했던 몰스킨 노트를 몰래 다시 가져간다.




무디는 자신이 누구보다도 펄에게 가장 실망했다고 생각했다. 결국에는 펄도 하고 많은 사람 중에 트립을 택할 정도로 경박했다. 물론 펄이 자기를 택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여자아이들이 반할 유형이 아니었다. 하지만 트립이라니, 그 점은 용서할 수 없었다. 깊고 맑은 호수로 알고 뛰어들었다가 그것이 무릎까지 차는 얕은 연못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래서 무엇을 했나? 그래, 일어섰다. 진흙이 묻은 무릎을 씻고 진창에서 발을 빼냈다. 그 뒤에는 더욱 조심했다. 그때부터 무디는 세상이 예상보다 작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수학 수업 중에 펄이 화장실에 가자 무디는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펄의 책가방을 열고 몇 달 전에 자신이 펄에게 준 조그마한 검은색 몰스킨 수첩을 꺼냈다. 의심했던 대로 책등은 갈라진 자국 없이 말짱했다. 그날 저녁, 무디는 방에서 홀로 수첩을 한 움큼씩 찢어내 꼬깃꼬깃 구긴 다음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휴지통이 구겨진 종이로 수북해지자 무디는-옥수숫대에서 벗겨낸 겉껍질처럼 이제 속이 텅 비어 축 늘어진-수첩의 가죽 표지를 맨 위에 떨어뜨리고는 휴지통을 발로 차 책상 밑으로 집어넣었다. 펄은 수첩이 없어진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왠지 그것이 무디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p.407)




하아-



무디의 마음이 가장 아픈 이유로 나도 가장 아팠다. 그러니까 너무 화가나고 실망해서 자신이 주었던 수첩을 다시 뺏어왔는데, 그런데 정작 펄은 자신의 수첩이 없어진 사실조차도 몰라..그러니까 애초에 몰스킨 수첩에 딱히 의미도 관심도 없는 거였어.. 나는 생각하고 고민해서 마음을 담아 선물했는데 상대에겐 받았는지도 모를 물건이여... ㅠㅠ


나도 이 점이 가장 가슴 아팠다. 그토록 친하다고 생각했고 그토록 소중했는데, 그리고 내가 그러듯이 상대 역시 나를 그렇게 여길거라 생각했는데, 만약 상대가 나에게 몰스킨을 줬다면 나는 거기에 소중한 글들을 쓰고 간직하고 내내 가지고 다녔을텐데, 그런데 자신이 받았다는 사실, 그래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다니... 이것은 정말이지 비극..슬픔의 새드니스 ㅠㅠ




무디가 펄에게 몰스킨 수첩을 선물했던 건, 그가 나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했던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펄은 그 몰스킨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잊었고, 나는 몽블랑을 매일 지니고 다니며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다. 나는 몽블랑을 너무나 갖고 싶어했고 그런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계속 지니고 다닐 이유는 충분했다. 내가 이걸 가지고다니는 만큼 계속 이걸 준 상대를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건 잊을 수 없는 부분이니까. 그래서 내가 그에게 줬던 것들이 결국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최근에는 가슴 아팠다. 사라지지 못할 것, 팔아넘기지 못할 것, 그런 것을 줄걸..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걸 주었다면, 그랬다면 오래오래, 평생, 영원히 기억하고 살 수 있을텐데. 빌어먹을, 죄다 팔아치워버릴 수 있는 것들이어서 공중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어...




'이도우'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보면 라디오작가 '공진솔'이 자신은 글을 쓰고 싶은데 라디오 작가를 하고 있고, 그래서 방송되는 말들은 기록되지 않고 사라져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내가 준 선물들은 그 사라진 말들 같은 거 아니었을까. 기록되지 못하고 남아나지 못하고 그저 사라지고 지워질 것들. 뭔가 하나라도 내내 지니고 다닐 것이 있어야 했어. 뭐가 좋을까......문신????.............. 내 얼굴, 그 넓은 어깨에 문신으로 박아넣게 할 걸.. 어깨는 자기는 못보겠구나..그러면 배는 어떨까. <피파 리의 마지막 로맨스>에서 키에누 리브스가 자신의 몸에 예수님 얼굴 문신 했던 것처럼, 나는 가슴에, 그러니까 그의 한 쪽 가슴에 혹은 왼쪽 젖꼭지와 오른쪽 젖꼭지 그 사이에 크게 내 얼굴을 문신해놓는 거지... 샤워할 때마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옷 벗고 잘 때마다 보게...음.... 그러면...... 음..... 다른 여자랑 잘 때 그 여자도 보겠구먼? 좋은데? 변태같다...... 킁킁. 어쨌든 그 때 '이 건' 피디는 공진솔에게, 말하여지고나면 그게 왜 의미가 없는 거냐고 오히려 되묻는데, 그냥...무디, 몰스킨, 펄, 몽블랑, 다락방, 공진솔, 이건, 생각나고,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이해경'의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생각나고, 뭐 그렇다. 어젯밤, 나는 진하게 무디가 되었어... 응답받지 못하는 사랑의 주인공..........나는 언제나 그들의 편. 



(말없이 운다)





지난번에 조카와 홍콩 디즈니에 갔을 때 기념품 가게에 가서 나를 위해 작은 인형을 샀더랬다. 여기에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가지고 다니려고 했는데, 매일 가지고 다니는 건 어쩐지 좀 부끄러워, 사무실 책상에 두고는 출근하고 퇴근할 때마다 인형의 코를 가볍게 건드리며 인사하고, 또 수시로 말을 건다. 음.............역시 변태같은가..........


그 때 조카랑 투닥대며 이름을 지었었는데, 내가 지은 이름을 조카가 반대했고(사람 이름 붙였다고.. 역시 나는... 변태 ㅠㅠ), 그래서 결국...뭐라고 지었더라? 김말이었나??????????? 왜 기억이 안나지?????????? 조카에게 물어봐야겠다. ㅠㅠ


조카야, 학교 끝나고 이모한테 전화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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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컬러 부부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일곱번을 유산을 했고, 이제 그들에게 남은 가장 좋은 선택은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입양하기로 하고 신청해두었지만 그들 부부의 나이가 딱히 젊지도 않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들에게 아이가 입양오는 일은 좀 먼 일 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가 걸려온다. 소방서에 버려진 아기가 있다, 이 아이를 데려가겠느냐, 하는 전화. 매컬러 부부는 가서 아이를 데려온다. 예쁜 동양인 여자아이었고, 부부는 보는 그 날 바로 아기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아기와 함께 살면서 입양절차를 밟고 그것이 완벽히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가 이 집에 온 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 날 파티를 열었고, 사람들을 초대해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부부는 아이를 사랑했다.



사실 매컬러 부인은 아기 이름을 알았다. 아기는 옷 여러벌을 껴입고 1월 추위를 막아줄 담요 여러 장에 겹겹이 싸인채 판지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쪽지도 있었는데 매컬러 부인은 사회복지사를 설득한 끝에 결국 쪽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아기의 이름은 메이 링입니다. 부디 이 아기를 데려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해주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첫날 밤 아기가 매컬러 부부의 무릎에서 잠들자 부부는 인명사전을 뒤적이며 두 시간을 보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 한 순간도 아기가 옛 이름을 잃게 되어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매컬러 부인이 말했다.

"새 삶의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아기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는 게 더 적절하다고 느꼈어. 미라벨은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란 뜻이야. 예쁘지 않니?" (p.170)



버려진 아기에겐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매컬러 부인은 아기에게 다른 이름을 준다. 매컬러 부부의 집은 부유했고 아기에게 뭐든 부족함 없이 해줄 수 있었으며 지역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백인 부부였다.



이 파티에 참석한 소녀 '펄'은 이 얘기를 자신의 엄마 '미아'에게 하게되는데, 이에 미아는 그 아이가 자신과 함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중국인 여성 '베베'의 아기라는 것을 직감한다. 베베는 마침 자신이 버린 아이를 찾고 있었다. 어떻게든 찾고 싶었다.



"그 때 너무 무서웠어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일하러 갈 수 없어요. 잠잘 수 없어요. 온종일 아기를 안고 울기만 해요."

"아기 아빠는 어디 있었어요?"

미아가 묻자 베베는 가버렸다고 말했다.

"내가 아기 가졌다고 말하고 이 주 뒤에 그 사람은 사라졌어요. 광저우로 돌아갔다고 누가 말해줬어요. 난 그 사람을 위해 이곳으로 왔어요, 그거 알아요? 그 전에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나는 치과 의원에서 접수 직원으로 일했어요. 수입도 좋고 상사도 정말 친절했어요. 그런데 그이가 이곳 자동차 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고, 클리블랜드는 싼데 샌프란시스코는 너무 비싸다고, 클리블랜드로 이주하면 집 살 수 있고 마당도 가질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이를 따라 이곳으로 왔는데 ……."

베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젓가락과 포크와 나이프를 안에 넣어 깔끔하게 둘둘 만 냅킨을 더미 위에 얹은 뒤 말을 이었다.

"여기에는 아무도 중국말을 안 해요. 접수 직원을 하려고 면접 봤더니 사람들은 내 영어가 별로 좋지 않대요. 어디에서도 일을 찾을 수 없어요. 아기를 돌봐줄 사람도 없어요."

미아는 베베가 적어도 산후 우울증을 앓았거나 어쩌면 산후 정신질환에 걸렸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젖을 못 먹었다. 베베의 젖이 다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으러 입원할 때-일자리를 잃어서 분유를 살 녿도 없었다. 결국-이 점이 바로 미아가 우연일 리 없다고 느낀 부분이었다-베베는 절망에 빠진 채 어느 소방서로 가서 아기를 문간에 두고 떠났다.

며칠 뒤 경찰관 두 명이 탈수와 굶주림으로 의식을 잃은채 공원 의자 밑에 쓰러져 있는 베베를 발견했따. 그들은 베베를 보호시설로 데려갔고 베베는 그곳에서 씻고 먹고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받고는 삼 주 뒤에 풀려났다. 하지만 그때는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베베는 소방서, 소방서에 아기를 놔두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어느 소방서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베베는 아기를 팔에 안고 걸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열심히 생각하며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마침내 어느 소방서를 지나게 되었고 캄캄한 밤에 따뜻하게 빛나는 소방서 창문들을 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소방서가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아무도 베베를 도와주지 않았다. 아기를 두고 떠났을 때 당신은 권리를 포기한 거라고 경찰은 말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아무 정보도 줄 수 없다고.

베베가 딸을 다시 찾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미아는 알았다. 베베는 마음을 다시 추스른 뒤 이미 몇 달째 딸을 찾고 있었다. 이제 벌이는 얼마 안 돼도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겼다. 새 아파트도 찾았고 기분도 안정되었다. 하지만 아기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아기가 그냥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p.176-178)




베베는 아기 아빠가 도망가버리고 중국어도 통하지 않고 영어로는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던 곳에서 아기를 혼자 낳아 키우느라 너무나 힘들었다. 게다가 일자리도 잃어 아이를 먹일 수도 없게 되어 소방서에 아이를 두고 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안정되자 아이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미아를 통해, 일년이 흐른 지금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었다. 베베는 매컬러 부부를 찾아갔지만 매컬러 부부는 베베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이 아이는 자기들의 아이라고 말했다. 베베는 미아의 조언대로 언론에 이를 알렸고 변호사를 고용했다. 친모인 베베와 양부모인 매컬러 부부가 '메이' 혹은 '미라벨'을 두고 서로 자기의 아이라며, 상대에게 양보할 수 없다며 싸우고 있다. 당연히 이 일이 벌어지는 마을에서도 뉴스로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둘로 갈린다. 친엄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쪽과  아기에게 부족한 것 없이 다 해줄 수 있는 매컬러 부부가 계속 키워야 한다는 쪽으로.



매컬러 부부의 친한 친구는 당연히 아이는 매컬러 부부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들과 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그들 부부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이 책의 주요내용이 이 얘기로만 가득찬 건 아니고, 미아와 그녀의 딸 펄을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인데, 나 역시 이 부분에서 어떤 게 아이를 위해 더 나은걸까,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매컬러 부부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고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들을 해줄 수 있다. 베베는 친엄마이지만 가난하고 계속 일을 해야 하니 아이를 잘 돌볼 수도 없다. 사실 나는 그녀가 또다시 직장을 잃거나 우울증에 걸리면 다시 또 아이를 어딘가에 두고 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렇지만 베베는 아이의 친엄마이고, 그 때 자신이 너무 힘들어 아기를 두고 갔지만, 생활이 안정되자마자 아이를 다시 데려올 정도로 자신의 아이를 사랑한다. 반면에 매컬러 부부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 생겨난 시점이 먼저라기 보다는, 그들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간절히 원할 때 찾아든 아이이다. 일 년동안 정성스레 아이를 돌봤으니, 그 사이에 분명 사랑과 애정이 커졌을텐데,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이는 누구에게 가야할까?


나로 말하자면, 그러니까 내 개인적인, 순전히 내 생각으로만 보자면, 이 셋이 같이 키우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모는 친모대로 아이를 사랑하고, 매컬러 부부는 아이가 자라는 데 뭐든 부족함이 없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니, 이 셋이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아이를 위해서도 그 편이 가장 좋지 않을까. 아이 하나 키우는데 어른 셋이 뭐 많은 건 아니잖아?


아이가 모자람 없는 지원을 받는 부유한 환경에 있다는 게,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게 아이를 위한 거라고 감히 다른 사람이 생각해도 될까? 너무나 혼란스러워지는 거다. 동시에 이 싸움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가 아직 어릴 때. 아이가 지금보다 더 자라서 주변 환경을 미묘하게 인식하게 되면, 자신을 키우고 싶은 어른들이 자기를 두고 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아직 읽고 있는 중이라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매컬러 부부의 친구가 아이의 친모인 베베에게 이 사실을 알린 것 때문에, 미아를 미워하고 있어...


















렉시는 예일대에, 렉시의 남자친구는 프린스턴 대학에 곧 입학을 앞두고 있다. 렉시는 백인이고 남자친구인 브라이언은 흑인인데, 이들은 사귀다가 처음 섹스를 하게 됐고, 한 번 하고나서는 자주 하게 된다. 종종 둘이서만 모습을 감춰 사랑을 나누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피임을 안 하고 한 적도 몇 번 있고, 아아, 이야기는 이렇게.... 렉시가 임신을 하게 되는 거다.


렉시가 임신진단 테스트에 줄 두 개를 보며 임신을 알게 되고, 곧 대학에 가야하는데 이를 어쩌나 싶고, 아기들은 너무 작고 예쁘고, 아기를 낳고 대학 입학은 반학기 미뤄도 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브라이언에게 운을 띄운다. 벌써 아기들은 너무 예쁘지 않냐고 여러차례 말해온 터다.



"우리도 당장 아기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 안 들어?"

브라이언이 너무 갑자기 일어나 앉는 바람에 렉시는 침대 너머로 떨어질 뻔했다.

"너 미쳤구나. 내가 들어본 중에 가장 정신 나간 소리야.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브라이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상상해본 것뿐이야, 브라이언."

렉시는 목이 메었다.

"너는 아기를 상상하지. 난 클리프와 클레어가 날 죽이는 모습을 상상해. 두 분은 날 건드리려고도 하지 않으실 거야. 부모님이 날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난 이미 죽은 목숨이지. 즉시. 바로 죽음이라고."

브라이언이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부모님이 뭐라고 할지 알아? 우리는 너를 그보다 더 잘되라고 키웠어."

"그게 정말 그렇게 끔찍하게 들려? 우리가 함께하고 작은 아기를 갖는 게?"

렉시가 손톱으로 잡지 모서리를 꼬깃꼬깃 접으며 말했다.

"난 네가 나와 영원히 함께 지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는데."

"맞아, 어쩌면. 렉시, 우리는 열여덟 살이야.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알아? 다들 이렇게 말하겠지. 아이고, 저기 좀 봐요, 또 어떤 흑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여자애를 임신시켰네요. 십대 부모가 늘었어요. 이제 중퇴하겠죠. 모두 이렇게 떠들어댈 거라고."

브라이언은 책을 덮어 탁자 위로 던지고는 말했다.

"난 절대로 그런 놈이 되지 않을 거야. 절대로." (p.256-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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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놈이 되지 않을 거라면서....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면서, 그런데 왜....왜 십대에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십대 부모 되기 싫은데 왜 십대에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중퇴하기 싫은데 왜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열여덟살인데 왜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부모님한테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지금의 임신은 정신나간 미친짓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임신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으면, 미친 짓이었으면, 여자친구가 콘돔없이 섹스하자고 해도 '그것은 안될 일이여' 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왜 콘돔없이 섹스를 해놓고 임신은 미친짓이라고 하는 거지요? 



렉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펄에게 전화해 낙태수술 받으러 함께 가달라고 말한다.




참...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이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와락 기억들이 덮치는 데 별 수 있나, 휩쓸려 가는거지. 나 역시 콘돔없이 섹스를 한 적이 있고, 또 설사 콘돔을 사이에 두고 섹스를 했다고 하더라도, 생리가 하루라도 늦어지면 가슴이 쪼그라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설마..' 하는 걱정으로 끙끙댄 적이 있으니까. 지금보다 훨씬 어린 나이이긴 했었는데, 그 때 좋다고 섹스한 남자가 '나 생리가 좀 늦어..'라고 말했을 때 '야, 넌 그런거 체크도 안했냐! 니가 그런걸 체크 했어야지, 나 겁 많아!' 했던 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만약 그 때 내가 임신했다면... 그랬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이십대였고, 월급도 적었던 나는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를 키울 수 있었을까? 아무도 몰래 낙태하려고 했을까? 그 때 사귀던 남자는 기꺼이 나랑 낙태수술 하러 가주었을까? 내가 아는 여자중에도 임신했단 말에 바로 연락 차단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결국 그 여자는 다른 여자랑 같이 낙태 받으러 갔고. 수술에 같이 안가주는 게 다 뭐야, 연락 자체가 안되는데... 나 역시 쌩까는 남자친구 대신 한 여자의 낙태 수술에 같이 가준 적도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 때 너무 화가 났었는데, 그렇게 화났던 일이, 만약 내가 임신했다면 내게 일어날 일이 될지도 몰랐다.




국제학부의 여성학 수업 시간, 피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여자였고, 유학생이었다. 프랑스에서 온 학생이 분통을 터뜨리며 이렇게 질문했다. "대체 왜 한국 남자들은 콘돔을 쓰지 않는 거죠?" 그 이야기를 들은 미국, 일본, 영국 등지에서 살다 온 학생들이 입을 모아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한국 남자들의 문제가 유학생들 사이에서 종종 화제가 된다고 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남자들이 하도 사정하고 회유하고 설득하기에 한두 번 콘돔 없이 섹스를 했는데 임신이 되어서 고통을 겪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며 분개했다. 만약 자국의 남성이 그러자고 했으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텐데, 한국 남자들이 너무 자신만만한 태도로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뭔가 신비한 아시아적 '비기(秘器)'라도 있나 싶어서 넘어가버렸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 남자에 대한 성토장처럼 되어버린 수업 시간에서는 뒤이어 한국의 '어메이징'한 성 산업에 대한 증언들이 속출했고, 소수를 제외하고는 한국 남자는 대체로 매너가 없다는 불평도 이어졌다. 한국 남성은 자신이 먼저 데이트 신청을 했으면서도 고압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으며, 한국 드라마와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며 분개했다. 원하는 것(주로 섹스다)을 얻기 위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집요하게 굴다가, 끝내 얻지 못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며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사례는 너무 많아서 학생들을 잠시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권김현영, 근대 전환기 한국의 남성성, p.68-69)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사귀었던 남자는 너무 형편없는 남자였는데, 그 당시에는 그걸 몰랐다. 다행히도 나는 그 후에, 더 나이가 들어서는 점점 더 나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하나의 연애가 끝나고 그 일로 가슴 아파하고 그 다음 연애가 시작될 때에는 더 나은 관계를 맺고 더 나은 사람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콘돔 없이 하자고 내가 말해도 안된다고 단호히 말하며 먼저 콘돔을 꺼내드는 남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지. 인생...


그러고보면 나는 내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연애로도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나은 관계를 만들고 있다.




이별의 고통은 우리의 일상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우리를 무의식적 충동이 담긴 어두운 지하 창고로 끌고 내려갑니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얻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사랑의 실패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어떻게 나아가기를 원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인생을 새로이 설계하게 만들죠. 인생 설계를 재조정하도록 촉구하는 것으로 실연만 한 것은 없습니다. 상실로 인한 번민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적극 참여하게 만들죠. (p.194)









지난 토요일에는 남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나의 아홉살 조카와 여섯살 조카도 예쁘게 차려입고 왔는데 결혼식 끝나고는 우리집으로 왔다. 다음날 조카들과 놀이터에 가 놀려는데 아홉살 여자 조카가 구두를 신어서 발이 불편하겠는 거다. 내 덧버선을 신었는데 발등에 닿는 끈 부분이 아무래도 더워서 땀나면 상처날 것 같아.. 나는 놀이터까지 걷다 말고 조카에게 내가 신은 발목양말과 바꿔신자 말했다. 폴짝폴짝 뛰어 노는 조카에게 저 양말은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걷다가 멈추어 내 양말을 주었는데 신발은 내 신발을 줄 수가 없는거다. 흐음.. 가면서 슬리퍼 하나 살까? 했는데 오전 열시가 되기 전이라 문 연 곳도 없고... 여동생은 괜찮아,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데 슬리퍼보다는 구두가 낫지, 하며 놀이터까지 갔는데, 구두를 신고 조카는 정말이지 팔짝팔짝 잘도 뛰어논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조카에게 앞으로 구두를 신고 올때 슬리퍼를 스스로 챙기라고 말했다.



-타미야, 이제 이모 집 올 때 슬리퍼나 운동화 꼭 챙겨와. 구두 신고 놀면 불편하잖아.

-이모, 그러면 내가 슬리퍼를 갖다 놓으면 어때?

-이모집에?

-응!

-그러면 너무나 좋지! 그런데 이모 집에 슬리퍼 놓으면 타미 집에선 슬리퍼 못신잖아?

-하나 더 있어. 새로 샀거든.

-오! 그러면 너무 좋네! 낡은 거 이모집에 갖다 놔.

-응!



아, 진짜 이 별 거 아닌 대화가 너무 좋아서 계속계속 생각한다. 내 안에 사랑이 가득차게 되는데, 나란 인간은 그 포지션이 '이모'일 때 가장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이 생에서 이모가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는 그 이모에 최선을 다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게 이모로서 조카를 사랑하는거라면, 그 역할에 충실할 것. 이것이 이 삶에서의 나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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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7-1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어디서 사는것이 더 좋은 것일까를 보니 가라 아이야 가라 가 생각나네요

다락방 2018-07-12 10:12   좋아요 0 | URL
아아 이런 댓글이라니..저로 하여금 ‘왜지?‘ 라는 궁금증을 유발하시어 결국 이 책을 읽게 만드시네요. 장바구니에 넣으러 갑니다. 가라 아이야 가라.

다락방 2018-07-12 10:15   좋아요 1 | URL
이 책 전자책 있네요. 꺅 >.<

psyche 2018-07-12 10:16   좋아요 0 | URL
켄지와 제라로 시리즈는 제가 애정하는 것이라서... 다락방님도 좋아하실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는 저 책 좋아하구요. 영화로도 있어요.

비연 2018-07-12 19:56   좋아요 0 | URL
저도 켄지와 제라로 시리즈 좋아하는데.. 요즘엔 나오지 않고 있죠.
작가가 안쓰는건지, 번역이 안되는 건지.. 갑자기 급궁금해지네요.

다락방님. 저도 이 시리즈 애정하는데, psyche님과 함께 한번 보시라고 조심스럽게 추천...^^

psyche 2018-07-12 20:03   좋아요 1 | URL
켄지와 제라로는 문라이트 마일에서 켄지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시리즈의 끝을 냈죠. 너무 아쉽더라구요. 다른 시리즈들은 몇십권씩 계속 내던데 딱 6권으로 끝내다니... 정말 너무해요ㅠㅠ

비연 2018-07-12 22:11   좋아요 0 | URL
앗. 문라이트 마일을 안 읽은 것 같아요 ㅠ 지금 바로 찾으러 갑니다...

다락방 2018-07-13 10:06   좋아요 1 | URL
아니, 이분들이..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가뜩이나 사두고 안읽은 책들이 많은데 대체 왜 여기서 또 뽐뿌를 넣으시는 겁니까! 아이 몰라. 당장 사러가야겠어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