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게 필요한 일이 살면서 얼마나 될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원하는 일은 종종 일어나지만 그러나 그것이 필요할까? 어떤 사람들에겐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겐 필요로 누군가를 원하는 일은 좀처럼 없을것이다. 나의 경우엔 필요하다는 걸 사람에게 잘 쓰지 않는 편인데, 필요라는 것은 메모를 해야 할 때 펜이 필요하고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이 필요한 것.. 정도가 아니던가.

그러나 나 역시도 아주 가끔, 정말이지 아주 가끔은, 아주 소박하게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하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건 어떤 절박함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가끔 튀어나오는 외로움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에는 며칠전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았을 때, 그 때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럴 때는 누군가 필요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 소식을 듣자, 누군가 내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그러니까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 소식을 접하고는 어? 락방이가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이 나왔네, 알려줘야지, 라고 마음을 먹고는 쪼르르 나에게 와서 "마사 누스바움 신간 나왔던데, 알았어?" 하고 말해주는 순간이 필요한거다. 그러면 뭐랄까 인생의 소소한 행복이 찾아올 것 같았어.

















그렇지만 그런 순간은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훅- 하고 사라졌다. 내가 아니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온 거, 내가 이렇게나 잘 아는데 뭘. 게다가 마사 누스바움 책은 집에 여러권 있는데 쌓아두고만 있다. 무릇 독서인생이란 그런것이 아니던가...


아무튼 그런 순간이 내게 있었음에...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가 또 평온한 날들을 살다가, 바로 어제, 어젯밤에, 아, 너무 누군가 필요해서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건, 내가 자기전에 이 책을 다 읽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어제 이 책 너무 읽고 싶어서 내가 요가도 안갔다. 월요일도 안갔는데 화요일도 안갔어. 일요일도 안갔고 토요일도 안갔는데.... 아무튼 어제 어쨌든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침대로 훌쩍 뛰어 올라가(응?)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요가도 안갔겠다, 일찍 자야지, 열시.. 아니 늦어도 열시 반에는 자자. 책읽기 똭! 멈추고 그 때 자는거야.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하는 사람이니까... 하고 읽었지만, 아아, 우리는 알잖아요. 책이 너무 재미있으면 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고, 열한시가 넘어버리고 말았고, 그러면 책장을 덮자마자 바로 잤느냐 하면, 또 그게 안됐어.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덮고 슬픔속에 빠져 허우적거렸기 때문이다. 그 감정이 나를 너무 후려패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내가 요가 대신 독서를 하기로 선택했던 순간을 후회했다. 차라리 요가를 갈걸, 이 책을 자기 전에 끝까지 읽지 말걸, 이게 지금 뭐야, 나 어떡해.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 너무 아파서. 아프다. 슬프다고 썼는데 아프다고 읽어야 해. 트윗에서도 이 책을 친구들에게 추천했고, 그리고 이 공간에서도 그러했고, 나는 역시 샤론 볼턴을 사랑하지만, 이 책이 너무 아파서 지금은 추천하지 않겠다. 여러분 읽지 마요, 슬픔과 아픔이 여러분을 후려갈긴다.


어제 그 감정에 너무 허우적거려서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이 나왔을 때처럼, 아, 이 책을 읽고난 뒤의 나에게 누군가 필요하다. 누군가 옆에서 나를 좀 다독여줬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어쩔 줄을 몰라 침대위에서 허우적거리고 뒤척거리는 나의 어깨를 좀 다독다독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괜찮다고 책일 뿐이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볍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아, 누군가 필요하다, 절실해졌다.



그러나 그 감정도 이내 훅- 가버렸다.

이 책을 읽은 것도 내가 혼자 한 일이고, 그러니 이 슬픔과 아픔도 나 혼자만의 감정이다. 누가 옆에서 쓰다듬어주고 다독여준들 그 슬픔과 아픔은 시간이 지나야 나을 것이었다. 누가 나를 만져준다고 해서 응 슬픔이 뿅하고 사라졌어, 하게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온전히 내몫이었다. 견뎌내야 할 내 몫. 이건 누가 나눠가질 수도 없고 대신해줄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누가 대신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잠도 못자는 감정을 어떻게 누군가에게 대신 해달라고 해. 게다가 이걸 나눠가지다니, 말도 안된다. 나 하나로 족하다. 충분히 허우적대고 뒤척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야. 내가 읽은 책으로 내가 힘든데 누가 어떻게 나를 달래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 해줄 일이 아니었다. 내가 견뎌내야 하는 일이었어. 나는 내 안의 이 감정을 침대의 내 옆자리에 누울 사람에게도 이해시킬 자신이 없다. 아 여러분, 이 책을 읽지 마세요.




샤론 볼턴의 소설 속 배경이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이 소설의 배경 역시 한적한 시골이다. 이 시골에 목사와 한 가족이 새로 이사왔다. 이곳 역시 대부분의 시골들이 그런것처럼 이 지역 전체를 가지고 있다해도 좋을만한 부자가족이 살고 있다. 이 지역의 실세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비는 거기에서 조금 차타고 가면 있는 동네의 정신과 의사이다. 그녀는 자신의 옆마을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아이를 잃고 괴로워하는 엄마 '질리안'과 상담 중이다. 시간이 지나도 질리안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게 있는 것 같고 좀처럼 질리안에 대해 명확히 무언가 잡히질 않아 질리안이 사는 동네에 말을 타고 가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 마을에 새로 부임한 목사 '해리'를 마주치게 되고, 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해리의 부임 얼마 전에는 플레쳐 가족이 이사를 왔다. 플레쳐 가족에게는 톰,조,밀리 라는 삼남매가 있다. 톰과 조는 어느날부터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소녀를 본다고 말하고 그녀가 자신들의 귓가에 계속해서 말을 한다고 얘기한다. 톰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 혹시나 조현병인걸까 의심하는 톰의 엄마는 이비에게 톰을 보내 치료를 받게 한다.


톰은 '밀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행동한다. 실제로 누군가 데려가려는 밀리를 구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의 무덤이 붕괴하면서 묘지가 파헤쳐지고 그곳에서 영아 세 명의 시신이 나온다. 무덤은 하나인데 시체가 셋. 게다가 다 어린 소녀들이다. 경찰들은 신원 파악에 나섰고, 그 세 명이 몇해에 걸쳐 사라졌거나 화재로 잃었던 어린 여자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톰과 조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소녀를 본다는 것, 해리 역시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기척을 느낀다는 것, 한 무덤에 시체가 셋이라는 것들은 모두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런 초자연적인 이야기로 이 소설이 시작되고 진행되지만, 나는 그간 샤론 볼턴의 책을 읽어왔던 사람이라, 이것이 초자연적인 것은 아닐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었다. 분명 이것은 현실적이고 또 실제적인 누군가가 관련된 일일것이다. 유령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샤론 볼턴은 그런 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일로 시작하지만, 그러나 인간이 그러한 것이라고 계속 말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책도 그러할 거라는 걸 짐작하며 읽었다. 어린 여자아이들의 시체라는 점 때문에 너무 힘들었지만, 그러나 이정도의 스포일러는 괜찮겠지, 책을 읽는 동안에는 어린아이의 죽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나는 이게 샤론 볼턴에게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물론 시체도 있었고 그 시체들이 왜 발생했는지도 말하지만, 소설속의 현재를 살고 있는 아이에게는 어떤 일이 생기지 않게 해줘서. 살아있게 해줘서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게다가 '여자아이'들이라는 것 때문에 짐작되는 고통이 있어 그게 너무 아팠다. 샤론 볼턴의 책을 읽다보니 나는 초반부터 '아마 범인은 이들일 것이다'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된건지, 왜 그렇게 된건지 그 사연은 모르지만, 분명 이들이 관련되었을거야, 생각한것이다. 샤론 볼턴은 항상 그런 얘기를 해왔으니까.


내가 읽어온 샤론 볼턴의 전작 《뱀이 깨어나는 마을》,《희생양의 섬》과 이 책이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맨스였다. 해리와 이비의 달달한 사랑의 투닥거림 때문에 나는 미치는 줄 알았네? 샤론 볼턴이 어쩐 일로 로맨스를 넣었을까, 뭔가 생뚱맞지만, 그런데 너무 로맨스 잘 써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막 좋아하면서 읽었단 말이야? 아아, 이것은 여느 로맨스 소설보다 더 좋다, 아니 이렇게 로맨스 잘 쓰는데 왜 그렇게 항상 쿨싴했나요, 샤론 볼턴님. 히죽히죽 하면서 읽었는데, 아, 샤론 볼턴이여.. 나한테 이러기 있긔없긔...


샤론 볼턴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루면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해리와 이비의 이야기가 흐르면서 이 마을의 사건이 같이 흐르는 것.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는가. 내가 쌍으로 슬퍼하는 일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슬펐던 것은, 이 책의 살인범 때문이었다. 살인범이 살인범이 된 이유가, 물론 그런 이유로 그렇게 다 영아살해범이 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아파서 울고 싶었다. 그 사람이 살아왔을 시간들은 .. 생각해보려고 해도 이미 너무 아파서 내 몸을 한껏 쭈구리고 싶어지는 거다. 그런데 ㅠㅠ 이비 때문에, 해리 때문에도 내가 아파야 했어. 슬퍼야 했다. 아니, 샤론 볼턴 이렇게 잔인하면 어떡하나...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고 살인범 때문에 아프고 이비 때문에 아프고 해리 때문에 아프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결국 졸라아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렇게 되어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눙무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난번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샤론 볼턴은 희생양의 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글쎄, 이곳에선 적응을 잘 못한 것 같고, 그 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말이 맞아요. 이곳 섬들은 작지만 강력한 패거리가 다스리고 있거든요. 체격이 큰 금발의 남자들 말이죠. 모두 같은 학교를 나오고, 같은 스코틀랜드 대학을 다녔고, 노르웨이 부족의 침략이 있던 시절부터 가족끼리 서로 알고 지낸 사람들 말이에요. 토라, 생각해봐요. 병원의 아는 의사들이나, 학교의 교장이나, 경찰이나 치안판사, 또 상공회의소, 지역 시의회까지, 그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다고요."

그 점에 관해서는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꽤 많은 섬 주민들이 눈에 띄게 비슷한 외모를 지녔다는 사실을 나도 이미 여러차례 실감한 터였다. (p.249)





뱀이 깨어나는 마을에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고.




˝어머니가 술을 드셨어요. 아주 오랫동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요. 음악가셨던 어머니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시골의 성직자와 결혼하면서 경력을 포기하셔야 했죠. 나중에야 성직자 아내로 사는 게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셨고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숀은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둠이 더욱 짙어진 까닭에 나는 그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도 힘드셨겠죠. 치료도 받으시고, 몇 년동안 병원도 다니셨죠.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몇 달을 버티기도 했는데, 그러다가도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하셨어요.˝- p.424







그리고 이 책, 《피의 수확》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이비, 남자들은 수천 년 동안 부와 권력을 위해 딸들을 팔아왔어요. 20세기가 되었다고 그게 멈출 것 같아요?" (p.532)



그렇다. 남자들은 수천 년 동안 딸들을 팔아왔고 여자들을 팔아왔다. 어제 점심 식사 하면서 들은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꿈의 제인> 편에서는 온라인채팅앱에 대해 이수정 박사님이 공공연한 미성년자 성매매 통로라는 얘길 하셨다. 남자들은 유료이지만 여자들은 무료라는 것. 남자들이 돈내고 이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급되는' 여자가 많아야 했다. 이건 클럽 문화와 마찬가지다. 나는 버닝썬 때문에 클럽에서 여자들이 돈을 내지 않고 심지어 맥주가 무료로 제공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됐다. 클럽에 자주 가는 동료가 '물 좋은 곳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런 클럽이 많다'고 얘기해준 거다. 나는 그걸 들으면서 너무 이상했다. 그건 불공평하잖아? 한 쪽은 돈을 내고 한 쪽은 돈을 안내? 이거 너무 이상하잖아? 아, 그건 클럽에 남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자들이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참... 이렇게 여성의 성을 팔고 있는 거였다. 샤론 볼턴이 자신의 소설을 빌어 말한것처럼, 20세기가 되었다고 그게 멈추지 않았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폭넓게 진행되고 있을 뿐.



샤론 볼턴은 이렇게, 해야할 말들을 늘 하고 있었어.



소설 읽고 어떻게든 수습이 안되는 나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보부아르 언니가 랩하는 책, 《제2의 성》2권을 들고 왔다. 지하철에서 꺼내 읽기 시작하는데, 마침 이런 구절이 보인다.





전보다 더 불안정하고 더 불확실한 현대생활의 조건 때문에 젊은 총각의 결혼 부담은 매우 가중되었다. 반대로 결혼의 이득은 오히려 감소되었다. 남자는 쉽게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고, 성적 만족도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결혼하면 물질적 만족-'음식점보다 자기 집에서 먹는 쪽이 더 낫다'-과 함께 성적 만족-'남자는 집에 상주하는 매춘부를 갖게 된다'-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개인은 고독에서 해방되고, 가정과 아이를 얻음으로써 공간과 시간 속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것은 그의 생존을 위한 결정적인 목적 수행이다. 그렇지만 역시 전체적으로는 결혼을 바라는 남성의 요구가 청혼을 기다리는 여성의 공급을 따라가지 못한다. 아버지는 딸을 준다기 보다 치워버린다. 남편을 구하는 젊은 처녀는 남자의 부름에 응하는 식이 아니다. 남자를 성적으로 부추기는 것이다. (p.540)





젊은 처녀는 완전히 수동적이다. 그녀는 부모를 통해 혼담이 '이루어져서' 신부로 '주어진다.' 총각은 결혼'하'고 아내를 '얻는다. (p.537)




여자를 사고 파는 남자들, 그러나 그 돈은 여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여자는 그저 여성성을 가진 수단으로 존재할 뿐.



첫째, 지참금은 신부가 아니라 신랑 가족에게 전달된다. 시부모는 지참금의 분배에 관한 완전한 통제력을 갖는다. 둘째, 내가 아는한, 토지는 절대 지참금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여성에겐 재산이 없다. 이른바 그녀의 재산으로부터 아무런 부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젠더에 따라 특정된 성격이 만들어진다. 남자들은 국가 경제에 공헌하고 생계비를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남자에게 의존하고, 외부세계에 대해 무지하며, 자녀양육과 가사에 몰두한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지참금 마녀 사냥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다. (p.231-232)




딸을 팔아치우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건 딸만 팔아치운걸까? 인간이기를 팔아치운 것이기도 하다. 돈에 딸을 넘기고, 자신의 영혼을 넘긴것이나 다름없다. 단언하건대, 그런 남자의 영혼은 딸의 육체보다 가치가 없다.




이렇게 나를 아프고 힘들게 만든 책이지만 언제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희생양의 섬도 다시 사서 재독해야지. 끝까지 읽으면서 너무 아팠지만, 아, 역시 샤론 볼턴은 결코 실망시키는 법이 없구나, 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 이비랑 해리 때문에 아프게 할것까진 없잖아요. ㅠㅠ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잖아요? ㅜㅜ 세상은 역시 장밋빛이 아닌것이야.. ㅠㅠㅠㅠㅠ


더 슬픈 건 내가 정확히 이비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비의 끌리는 마음, 그리고 '그러나 이것은 이러면 안되는거야' 라며 스스로를 자제하려는 마음, 지킬 것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 윤리적으로 옳은 걸 선택하려고 자기의 욕망을 애써 죽이려는 그 마음이, 내게는 정말이지 생생하게 손에 잡힐듯해. 서른한살 그 날의 내가 꼭 이랬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러분 이 책을 읽지 마세요. 슬픔과 아픔이 여러분을 후려갈길겁니다.. ㅠㅠ




"여긴 웬일이시죠?"
그가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뺐다. 대화가 시작된 지 십 초만에 그는 벌써 에비 작전까지 꺼내 들었다.
"이거, 당신건가요?" 그가 물었다. 파란색 돌로 장식된 작은 은팔찌가 빛에 반짝 빛난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뇨." 고개를 흔들며 그녀가 대답했다. 관자놀이 주변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축축했고 승마 모자에 눌려 머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여자가 손을 머리로 올려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얼굴은 분홍빛이었다. 닷새 전에는 낙마로 창백했던 얼굴이었다.
"길에서 찾았나요?"
"아뇨. 이틀 전쯤에 로튼스털 시장에서 제가 산 겁니다." 그가 실토했다. 뭐, 조금 많이 위험한 고백이었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여자 입가의 꿈틀거림이 미소에 가까울 정도로 커졌다.
"조금 성급하셨네요. 당신하고는 색깔이 안 맞는 것 같은데."
"맞는 말씀입니다. 저는 뭐랄까 연한 레몬색이 더 스타일에 맞는 남자죠. 하지만 구실이 필요했어요."
됐다! 미소였다. 확실히 그랬다. - P99

해리는 제니를 따라 옛 양치기의 벤치로 갔다. 이비와 함께 앉았던 그 벤치. 그녀는 아직도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 P184

두 사람이 경사 지대의 정점에 다다를 무렵, 해리는 이비가 지쳐가는 걸 느꼈다. 말수가 줄었고 걷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여기까지 차로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어째서 못 하게 한 걸까. 잠시 멈춰서 쉬자고 제안하면 화를 낼까?
"잠깐 앉아서 쉬어도 될까요?" 이비가 물었다.
다람쥐처럼 귀엽고 당나귀처럼 고집스럽다. 정말로 골칫거리인 여자였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느껴도 되는 걸까?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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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1-0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만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은 전에 제가 알려드렸는데요..... 정확히는 곧 나온다고 알려드렸지만.....😟

다락방 2019-11-06 09:21   좋아요 1 | URL
아니.. 그러니까 그게 내 말은..... 그게 그게 아니고..... 뭐 그렇다는 거에요. 응? 알죠?

아 댓글 읽고 육성 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11-06 09:23   좋아요 0 | URL
네.... 알죠.... 뭐.... 알죠. 알아야죠.... 제가 뭐.... 🙁

다락방 2019-11-06 09:45   좋아요 0 | URL
표정 좀 어떻게 해봐요. 미안해 죽을 것 같잖아 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11-06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지 말라는 페이퍼가 이렇게 근사하면, 어쩌란 말입니까ㅠㅠㅠㅠㅠ
다락방님 진심은 뭐예요? 읽지 말라는 거예요, 읽으라는 거예요? (feat. <제2의 성>)

다락방 2019-11-06 10:06   좋아요 0 | URL
뒷일은 제가 책임질 수 없다... 정도로 요약하겠습니다. 엣헴-

마음이 너무 아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별은 다섯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19-11-06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0쪽이 넘는 책을 거의 하루 만에 다 읽으신 것 같아서 대단한 흡인력의 책인가보다 했어요.
예전에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다락방 2019-11-06 10:05   좋아요 1 | URL
잠자냥 님, 샤론 볼턴을 읽어본 적이 없으시다면 정말이지 추천합니다.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먼저 시작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진짜 압권이에요, 압권!!

비연 2019-11-06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2의성 ‘II’ 만 눈에 들어오네요 ㅜㅜ

다락방 2019-11-06 13:46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시작한 것입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비연 2019-11-06 13:47   좋아요 0 | URL
샤론 볼턴 책을 보관함에 숑숑 밀어넣으며 생각합니다. 제2의성을 끝내야 읽을텐데.. 나는 전체 1000페이지 중 이제 겨우 200....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락방 2019-11-06 13:50   좋아요 1 | URL
오오 그래도 열심히 오고 계시네요, 비연님. 한 400까지 오시면 스스로에게 상을 좀 줘도 되지 않을까요? 일단 샤론 볼턴의 뱀이 깨어나는 마을로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9-11-06 13:51   좋아요 0 | URL
앗 좋은 생각인듯!

카스피 2019-11-07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피의 수곽이라 더쉴 해밋의 작품인줄 알았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이었네요^^;;;

다락방 2019-11-08 17:2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 책 검색하다가 대실 해밋의 작품도 있다는 걸 알았네요.
 
피의 수확
샤론 볼턴 지음, 김민수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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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오래전부터 남자들은 여자들을 학대하고 팔아먹었다. 그런 세상에서 여자가 미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렇지만 샤론 볼턴님, 너무 슬프잖아요. 잠들기 전의 제 이마음을 어쩌실거에요. 아ㅜ미치겠네 ㅜㅜ 일찍 잘라고 했는데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자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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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모임은 만남에 앞서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아니, 진작 만들걸, 이 단톡방을 통해 수시로 어디까지 읽었냐 서로 체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단톡방 개설을 한 후로 나는 계속 일등을 달리고 있다. 학창시절에도 못해본 일등.. 내가 그것을 하고 있는데, 아아, 나란 여자, 겸손이란 것을 모르므로, 한없이 잘난척 뿜뿜중이다. 게다가 나란 여자, 정말이지 겸손이란 것을 모르므로, 2,3등을 상위권으로 쳐주지도 않아, 나란 여자, 2등부터 모두 하위권으로 후려치기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매일매일 매번매번 새로운 잘난척을 해, 멤버중 1인은 "(잘난척)어쩜 그렇게 잘하냐" 라고도 내게 물었던 것이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잘난척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데, 잘난척을 너무 잘하기 때문에, 괜히 그래서 사람들한테 미움 받을까봐 신은 나를 학창시절 일등 못하게 하셨는가보다. 울아빠도 진작에 내가 이런 걸 알아보고, 너는 잘난척을 심하게 할 사람이라서 자만하지 말라고 외모도 요정도로 태어나게 한 거라고 하셨지.. 네, 아빠... -.-



아무튼 계속 일등하고 있는 나는 하위권들이 따라오느라 애를 쓰고 있는 지금, 잠시 여유를 부리느라,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설을 읽고 있다. 이야- 소설 원래 재미있었지반, 보부아르 님의 속사포같은 랩을 읽다가 소설 읽으니 세상 재미있는 것. 그렇게 엊그제는 《우먼 인 윈도우》를 읽었는데, 어휴, 이 여자가.. ㅠㅠ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어 집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데, 자꾸 술과 약을 함께 먹어서 취해버린다. 이웃집 살인까지 목격했는데 그걸 신고했지만 이 여자가 술과 약에 의존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고는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지구상에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1도 없다, 1도.. 별거중인 남편 조차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내가 책 읽으면서 술 좀 그만 마셔 이 여자야 ㅠㅠ 이런 잔소리를 얼마나 했던지, 그 약 술하고 먹지 말라고 닥터가 그랬잖아 왜그래 ㅠㅠ 이런 잔소리까지... 휴....



(지금 사무실 책상에 소세지빵 있는데 너무 한 입 깨물고 싶은데 먹을까 말까 내적갈등중..)




그리고 어젯밤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꺅 >.< '샤론 볼턴'의 《피의 수확》이다.

















샤론 볼턴이니까, 샤론 언니 좋을 줄 알았지만, 아니 세상에 너무 좋고요. 어제 자기 전에는 30페이지 가량 읽고서도 흑흑 초반 긴장감 쩔어, 밤에 악몽 꾸면 어떡하지 무서워 ㅠㅠ 막 이렇게 되었더랬다. 샤론 언니의 전작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읽고도 나는 무서워했더랬는데. 뱀 나오면 어떡해 으악 진짜 집안에 뱀 들어오면 개무서움 ㅠㅠ 막 이러면서 ㅠㅠㅠ 진짜 긴장감 쩐다. 게다가 초반에 등장하는 아이 둘이 학급의 친구들한테 괴롭힘 당하는 거 너무 힘들고 ㅠㅠ 어떻게 이렇게 긴장감을 잘 쓰나 진짜 천재천재 이러면서 어제 잤는데, 오늘 출근길에도 또 새삼 샤론 언니의 천재성에 내가 감탄을 한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주인공을 드러내는 방식이 너무 좋다. 애초에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 라고 던져주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그 사람의 일상을 드러내면서 나중에 이런 특징이 있지, 를 보여주는 식인데, 이게 너무 좋은 거다. 게다가 주인공의 성격, 결코 사교적이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성격, 그러나 일에는 열중하는 성격을 보여주면서 그 성격 안에 메세지까지 담고 있어. 진짜 세상 좋다. 이 책, 피의 수확에서는 정신과 상담의인데 그러고보면 샤론 언니는 다 의사인 사람을 주인공으로 썼네. 뱀이 깨어나는 마을에서 주인공은 수의사였고 《희생양의 섬》에서는 산부인과 의사였지. 아아, 희생양의 섬 읽고 팔아버렸는데 다시 사야겠다. 책장 한 칸을 샤론 볼턴 전용으로 만들어둬야겠어. 오만년전에 하루키 책장 두 칸 만들었다가 한 칸으로 줄여뒀는데, 샤론 볼턴을 위한 책장도 만들어야겠다.



자, 오늘 읽은 부분을 가져와보겠다.




'미안하지만, 아가씨' 라고? 이비는 길로 시선을 돌렸다. 안 그러면 그를 노려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삼 년 동안 그녀가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다친 사람은 화를 낼 자유도 없다는 점이었다. 비장애인이 화가 날 때 짜증을 낸다 해도 그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장애인이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면 뭔가 문제가 있고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p.73)



이비는 말을 타고 가고 있었는데 말을 놀래켜주려는 짓궂은 장난을 치는 소년들 때문에(사실 이건 짓궂은 장난이라기보다는, '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떤 소년들은 악을 품고 있는 걸까.)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그 때 근처에 살고 있는 남자가 와서 그녀를 일으켜주고 도와주고 물을 가져다주는데, 그는 키가 크고 강인하고 사지를 모두 잘 쓸 수 있는(p.73) 남자였던 것. 이비는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짜증나고 그렇지만 도움을 받고 있고 뭐 여러가지로 빡치는 상황에서 이 남자가 너무 얄미워..

그래서 이 남자한테 좀 뭐랄까, 틱틱거린다고 해야하나.




이비가 항복의 뜻으로 양손을 들어올려 보이고 다시 앉았다. 남자는 교환원에게 사과를 하고 주머니에 전화를 넣었다. 이비는 시간에 관심도 없었고 자신이 유치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란 듯이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남자가 그녀 옆에 앉았다.

"차 한잔할래요?" 그가 제안했다.

"아뇨, 괜찮아요."

"물 한 잔 더?"

"가져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부탁할게요."

남자가 겸연쩍은 듯 낮게 킥 웃었다. "나 참. 사촌 결혼식에 갔을 때 잔뜩 취해서 목사 들러리한테 토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숙녀분께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 건 처음인데요."

"아, 그래요. 그 숙녀분만큼 저도 기분이 좋네요."

"그 숙녀와 저는 열여덟 달 동안 사귀었는데요?"

침묵. 이비는 다시 손목시계를 보았다. (p.7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는 이런거 너무 좋다. 투닥투닥대는 거. 사실 이 뒷이야기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저 남자가 이야기가 흐르면서 어떤 남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저 장면 너무 좋았다. 뭔가 서로 갈구는데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쓰벌 연애의 시작은 갈굼이련가... 



아무튼 그래서 엄청 재미있게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샤론 볼턴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갈지 너무 흥미진진하다. 묘지에서 발견된 시체가 아주 어린 아이의 그것이었다는 것 때문에 내내 좀 마음이 안좋지만 ㅠㅠ 전체적인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흘러갈까. 정말이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 샤론 언니만 믿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이것은 순전히 그냥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주인공의 이름이 '이비'인 것은 매우 불만이다. 개인적으로 그 이름을 매우 싫어하므로.. 왜 하필 이비인 것일까. 쩝..

그러나 주인공이 락방인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그것은 내가 직접 써야하는 것이겠지.

지난번에 조 올로클린 책에서 '비비안' 이란 이름 보고도 확 빡이 쳤는데 이비 라는 이름에도 딥빡이 올라온다..

진정하자...

책은 책일뿐

책은 책일뿐

책은 책일뿐

책은 책일뿐




아직 초반이라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지만, 얼른 이 책 읽고 다시 제2의성 하권으로 돌아가야만 나는 계속해서 일등도 유지할 수 있고(빼앗기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이 잘난척하는 걸 볼 수 없어!!), 완독도 가능해지겠지. 자, 부지런히 책을 읽자. 그러나 여기는 사무실... 시무룩.........




회사 그만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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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11-05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회사 그만두고 싶습니다!! 2


다락방 2019-11-05 15:15   좋아요 1 | URL
언제 그만둘 수 있을까요? 에휴..
열심히 돈벌어서 더덕구이나 사먹읍시다 ㅠㅠ

단발머리 2019-11-05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평생 소설 읽고 쓰는 이런 리뷰를 이렇게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 (feat. 일등의 맛)

다락방 2019-11-05 15:16   좋아요 1 | URL
일등은 해볼만한 것 같아요. 잘난척하는 맛이 일품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19-11-05 19: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동감!! 다른 책 맘놓고 읽는 모습 넘나... 부러워요! 물론 저도 다른책 엄청 두리번 거리고 있지만 뭔가 압박이...(꼴지의 심리)
 
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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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야, 술 좀 그만 마셔, 술하고 약을 함께 먹지좀 말라고!

속으로 이천번쯤 잔소리를 했다.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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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냥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었다. 여성으로 태어나다보니 십대의 어느 시절에는 말로만 듣던 생리를 시작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쭉, 그러니까 이십년 이상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하고 있으며, 그렇게 며칠씩 내 몸밖으로 피를 내보내고 있다. 일회용 생리대를 한 시간이 길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몸이 일회용생리대를 받질 않아 면생리대를 사용했었고, 면생리대는 그 사용의 불편함 때문에 몇 해전부터는 탐폰을 사용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탐폰을 편하게 사용하고 무리없이 사용하고는 있지만, 탐폰은 오랜 시간 사용하면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산드라 블럭'과 '멜리사 매카시'주연의 영화 《히트》를 보면 여성혐오를 일삼는 남자 경찰이 그런 말을 한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태어났는데, 그걸 가지고 비하를 하면 어떡해' 라고. 그는 백색증을 앓고 있었고, 그 상태에 대해 멜리사가 약올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선택한 병이 아님에도 그것에 대해 놀리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지 않은가. 그는 바로 그걸 지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시 상대가 여성인 사람들을 여자라는 이유로 계속해 혐오하고 비하했다.















생리는 내 선택이 아니었고 내 의지도 아니었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생리대를 사는 데 많은 돈을 쓰는 것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생리전마다 이러저러한 여러가지 통증들을 겪으면서 약을 먹는 것 역시도 내가 선택한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의 <신화> 편에서 생리에 대해 얘기한다. 정확히는, 생리에 대해 그동안 세상이 얼마나 많은 부조리한 증상을 보였었는지. 얼마나 구린 태도로 여성과 여성의 생리를 저급하게 취급했는지를.



특히 <레위기>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자기 몸에서 피가 흐르는 여자는 7일 동안 부정하다. 여자에게 손을 대는 사람도 누구나 하루 종일 부정하다. 그녀가 눕는 침대나, 그녀가 앉는 자리는 모두 부정하다. 그녀의 침대를 만진 사람은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하며, 그날 하루 종일 자신도 부정하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 글은 임질(淋疾)에 걸린 남자의 부정을 다룬 내용과 똑같다. (p.199)



어떻게 생리를 임질과 똑같이 다룰 수가 있는가.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부정하다고 말할 수가 있어. 부정한 거라면 인간의 몸이 왜 그런 시스템으로 되어 있겠냐고. 부정하다면 그걸 없앨 수 있어야 하잖아.




가부장제 사회가 출현한 뒤로는 여성의 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그 수상한 액체에서 불길한 효능만 인정하게 되었다. 플리나우스(로마의 장군, 관리, 저술가.)는 《박물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월경이 시작된 여자는 농작물을 못 쓰게 만들고 밭을 황폐화시키며, 싹을 죽이고 과일을 떨어뜨리며, 꿀벌을 죽인다. 만일 그녀가 술에 손을 대면 포도주는 식초가 되고 우유는 시큼해진다 ……." (p.199)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 그러면 내 집 와인 냉장고에 있는 와인들에 내가 생리 때 손을 대면 그것들 다 식초 되는 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세상의 절반이 여자고 여자들은 한달에 한번씩 며칠간 피를 흘리는데, 그렇다면 세상은 진작에 망해 없어져버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농작물도 밭도 성치 못하다는데, 싹도 죽인다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성으로 '태어난' 것, 흑인으로 '태어난' 것이 어떻게 놀림감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혐오와 비하의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보부아르가 이 책을 쓴 것은 1940년대의 일이고, 생리에 대한 구절을 가져온 것이 성경의 레위기에 대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생리에 대해 비웃고 농담하고 약올리는 것이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렇지 않은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책 《섹스와 거짓말》은 최근에 나온 책이다. 모로코의 여성들이 직접 얘기하는 것을 듣고 쓴 책인데, 여기에서도 생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마하 사노' 라는 여성이 들려주는 이야기.



모임 중 한 여성으로부터 들은, 믿기 힘든 한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 "해방이 뭐 있나. 만일 처녀막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다면 그게 곧 해방이지." 이런 종류의 여성 모임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저소득층 사회에선 여성들은 오후만 되면 서로서로 모여 가족, 아이들 그리고 ……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털어 놓습니다. 간혹 성적인 이야기를 아주 공공연하게 노래하는 가수를 초청하는 일도 있지요. 성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억압된 나라에서 이러한 시간은 숨쉴 수 있는 시간이자 동시에 여가 시간인 것이죠. 여성들에게 그들의 섹스에 대해 말을 건넬 때 우리는 "그들의 문제"를 감추라거나 생리에 대해 지극히 폭력적으로 말합니다. 생리는 이렇게 뭔가 불순하고 더러운 것, 원초적인 저주의 형태와 연결되는 거죠. (섹스와 거짓말, p.159)




그렇다면 이것이 모로코이게 가능한걸까? 아니,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심지어 대통령이 되어도 생리에 대해 함부로 입을 턴다.


















2015년에 진행된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을 보면서도 피가 끓어올랐다. 사회자였던 메긴 켈리가 당시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에게 여성을 상대로 여성혐오 및 성차별적 발언을 한 적이 없느냐고 추궁했다. 트럼프가 여성을 두고 "뒤룩뒤룩 살찐 돼지들"이라는 둥 "역겨운 동물들"이라는 등 했다고 그녀가 지적하자 트럼프는 불필요하고 "우스꽝스러운"질문이라고 응수했다. 자신의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한 해명을 이끌어내려는 켈리의 결연한 의지를 두고 트럼프는 훗날 이렇게 발언했다. "그 여자 눈에서 피가 나오는 것 같았지 …… 아마 몸 어디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을걸." 몸 어디라고? 트럼프는 정당한 질문을 던지며 사회자로서의 역할을 다한 켈리를 조롱했을 뿐만 아니라 월경중일지도 모른다며 그녀의 질문을 폄하했던 것이다!

물론 트럼프의 발언은 첨예하게 비판받았다. 트럼프가 월경을 여성의 지나치게 감정적인 이상 행동의 원인으로 언급한 일도 처음은 아니었다. 나중에 트럼프는 자신은 켈리의 코피를 말한 거였다며 미국의 소위 '정치적 올바름' 앵무새들을 트위터에서 강력히 비판했다. "우리 모두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누구보다도 권력을 많이 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발언하거나 생리에 대해 '농담'한다. 월경이 마치 감정이나 지성을 저하시키기라도 하는 양 미국 대통령 집무실에서부터 초등학교 복도에 이르기까지 월경중인 사람들은 혹시 그날이냐며 놀림받아왔다. (생리의 힘, p.20)




여성은 월경을 하니까 남성처럼 권력을 쥐거나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할 역량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에 월경에 대한 문화적 시각을 바꿔놓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도 이를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힐러리 클린턴은 생리를 하기 때문에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했다.(힐러리는 예순아홉 살이라 이미 완경했을 텐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힐러리는 믿을 수 없어. 그녀가 생리할 때 전쟁을 일으키면 어떡해?" 물론 정치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비판받지만, 생리를 한다는 이유(비록 가상의 생리라 해도)는 그 근거가 될 수 없다. (p.19)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매달 생리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직장을 다니고 있다. 생리는 여자가 어떤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할 거라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의 레위기에서부터 생리 하는 여자는 부정한 존재이며 뭘 해도 잘 못할 존재일거라는 생각이 너무 뿌리박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트럼프는 정당한 지적에 대해 여성혐오로 응답했다. 생리 중이라 저런 걸거라며 상대를 오히려 비약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받은 질문에 대해 논리적으로 답할 수 없기에 나온 멍청한 대응이다.


이 일은 영화 《롱 샷》에서도 지적해주고 있다.















젊은 여성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앞에 여자 아나운서를 앉혀두고 남자 패널 둘이서 생리 중에도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겠느냐며 비약하는 거다. 심지어 여자가 대통령인데도 그랬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앉아있는데도 방송에서 생리로 농담을 하고 ㅣ있다니. 영화속에서는 이에 발끈한 아나운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생리를 놀리고 혐오하는 것은 너무 오래된 역사인지라 어디에서나 뿌리깊이 박혀있는가 보다. 모로코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랬는데, 프랑스 작가가 쓴 소설 《루거 총을 든 할머니》에서도 여지없이 생리에 대한 발언은 나온다.

















베르트가 목제 식탁에 포크를 꽂았다. 열이 올랐다.
˝아, 젠장! 나한테 생리 핑계 갖다 붙이지 마. 당신만은 제발!˝
˝그게 당신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인정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신의 너절함이야.˝
˝천박하게 굴어서 이로울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여자가 권리만 주장했다 하면 그 즉시 생리대를 들고 나오니, 이거 원. 저질에, 비루하고, 생산적이지 못하기 짝이 없네.˝
˝생산적이지 못한 건, 당신이 잘 알겠구나.˝
궁지에 몰렸다고 느낀 노르베르가 비겁한 무기를 선택했다.
˝그 부분은 건드리지 마, 노르베르, 특히 그건 하지 마.˝
˝난 그저 당신이 보부아르를 읽고서 들떴을지 모르겠지만, 단신은 크게 불평할 처지가 아니란 얘기를 하는 거야. 이렇게 아늑한 집도 있고, 가게도 잘 굴러가잖아. 난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며 내 예술을 팔고 있어. 누가 더 불평을 해야겠어? 이건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생존자와 그 밖의 사람들의 문제야.˝

˝왜, 당신이 보기에 난 생존자가 아닌 것 같아서?˝
방 안의 온도가 핵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당신은 그리 고생스러워 보이지 않는데?˝
˝내가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해.˝
(루거 총을 든 할머니, p.285)




이 책에서도 베르트가 얘기하는 것처럼 여자가 화난 건 '남자들의 너절함'인데, 남자들은 이에 대응할 때 '그건 니가 생리중이라서 그래' 라는 거다.


아, 우리 여자들은 정말이지 '너 생리중이야?'라는 말을 얼마나 한심하게 들어왔던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역시도 '아, 내가 생리중이라 이렇게 화가 나나'하는 자기반성을 얼마나 했던가.

일전에 여자동료랑 밥을 먹다가 여자동료가 얘기했다.


"그 일이 너무 화가 나서 미치겠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혹시 생리중이라 그런가 곰곰 생각해봤거든요. 생리중이라 예민한건가. 그런데 생각해보니까요, 차장님, 그건 제가 생리중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이에요. 그건 제가 생리중이든 아니든 화가 날 일이 맞아요."


정말 그러하다. '너 생리중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의 그 상황, 그러니까 '너 왜이렇게 예민해' 라는 말을 들을 때의 그 상황은, 내가 예민해서 화가 나는 게 아니라 화가 날 상황이라 화가난 거였다. 《루거 총을 든 할머니》속의 베르트도 남편이 돈은 안벌어오고 가사노동도 하지 않으니 빡이 쳐서 따졌더니 남편은 생리중이냐고 물었던 거다. 너는 왜 여성비하를 하느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그 여자 생리중인가보다, 라고 대응하는 거다. 정확히 대답해야 할 질문을 받아놓고서는 그런 식으로 넘어가는 거다. 너절한 행동을 한 당사자는 자신의 너절함을 들여다보는 대신 상대의 생리를 보고 있는 거다. 진짜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이것은 대체 얼마나 오래된 역사인지!




여성으로 '태어나' 생리를 하는 것을 두고 놀리는 것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어디서나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나 사회가 변하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생리를 두고 놀리는 것은 잘못됐다고 모로코의 여성이 얘기하고 프랑스의 소설가가 얘기하고, 그리고 미국의 젊은 월경권운동가가 얘기하고 있으니까.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지면 점점 달라지지 않겠는가. 생리로 모든 것을 여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됐다. 생리를 부정하게 보는 것도 잘못됐다. 보부아르가 이미 1940년대에 얘기했고 그리고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다. 심지어 《생리의 힘》을 쓴 젊은 운동가 '네이디아 오카모토'는 전세계의 월경빈곤층들을 위해 생리대를 공급해주고 있다.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다른 출판사의 책을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너무 글자가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해서 으윽, 이 책 읽을 때마다 보부아르가 랩하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야. 나는 랩음악을 싫어한다. 나는 발라드 좋아해... 랩 싫어..... 내가 들을 수 있는 신해철의 <안녕>까지가 적당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읽는다,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남성들이 장악한 경제적인 특권, 그들의 사회적 가치, 결혼의 영예, 남성의 후원 효과, 이 모든 것이 여성들로 하여금 남자의 마음에 들기를 열렬히 원하게 만든다. 여성들은 전체적으로 아직도 종속상태에 놓여있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 자신으로서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정의하는 대로 자기를 인식하고 선택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남자가 꿈에 그리는 여자를 묘사해볼 필요가 있다. ‘남자의 눈에 비친 여자의 존재방식‘이 여자의 구체적 조건이 되는 기본요소들 가운데 하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P187

여자는 그 출생부터가 자주적이 아니었다. 신이 자발적으로 여자를 만든 것도 아니고, 여자를 만드는 대가로 여자로부터 직접 숭배를 받기 위해 여자를 창조한 것도 아니었다. 신은 남자를 위해 여자를 만들었으며, 이는 아담을 고독에서 구하기 위해서였다. 여자의 기원과 목적은 자기 남편 속에 있다. 여자는 비본질적인 존재로 남자의 보충물이다. - P190

장식품의 기능은 매우 복잡해서 일부 미개인들 사이에서는 종교적 성격까지 지닌다. 그러나 일반적인 역할은 여자를 우상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모호한 우상이다. 남자는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기를 바란다. 그 아름다움은 꽃이나 과일 같은 아름다움이기를 바라면서도, 그것은 또 조약돌처럼 매끄럽고 단단하며 오래 가야 한다. 장식품의 역할은 여자를 보다 자연과 닮게 하는 동시에 자연에서 떼어놓는 것이다. - P211

단장한 여자에게는 ‘자연‘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이미 남자가 원하는 대로 인간의 의지에 의해 개조된 것이다. - P212

생명이 아무리 매력적인 외형으로 꾸며져 있더라도, 그 생명에는 언제나 늙음과 죽음의 씨앗이 살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부리는 그 자체가 여자의 가장 고귀한 정절을 파괴하는 것이다. 즉 임신으로 몸이 무거워지면 여자는 성적 매력을 상실한다.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갱년기에 이르면 매력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병이 잦고 추해지고, 늙은 여자는 배척당한다. 그런 여자를 두고 마치 식물처럼 시들었다거나 퇴색했다고들 말한다. - P213

원시인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성의 성기는 세속적인 데 반해, 여자의 성기는 종교적·마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보다 더 근대적인 사회에서도 남자의 성적인 잘못은 죄가 없는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너그럽게 봐준다. 남자는 사회법규를 따르지 않더라도 여전히 사회의 일원이다. 그는 집단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짓궂은 아이에 불과하다. 반대로 사회에서 탈선한 여자는 ‘자연‘과 악마에게 돌아가 제어할 수 없는 마력을 집단에 풀어 놓는다. - P249

그는(몽테를랑) 니체로부터 ‘여자는 영웅의 노리개다‘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여자를 노리개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이 이런 식이다. 코스탈이 말하듯이 ‘결국 이 얼마나 장난 같은 짓인가!‘ - P278

가부장제 사회에서 최고의 창조주는 남성이기 때문에 여자는 먼저 아내로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인류의 어머니이기 전에 이브는 아담의 배우자이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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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10-3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오래전에는 남성들이 여성의 ‘생리‘를 보고 자신들에게서 볼수 없었던 것때문인지 한편으론 자신과 다른것에 대한 공포심도 있었던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지금 보면 말도 안되는 뭔가 부정하고 위험한 저주의 상징인 것처럼 해석해왔었죠. 오늘날에 들어와서 제대로 ‘생리‘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알게 된 뒤에도 여전히 남성들은 진지하게 알려고 하지 않다보니 아직도 ‘생리‘가 트럼프의 수준낮은 혐오적 발언이랄지 많은 남성들이 하는 농담같지도 않은 농담의 소재로 쓰여지는거겠죠? ㅜ

그건그렇고.. 다락방님, 맞아요. 가독성이 너무 떨어지다보니 눈이...ㅠㅠ 그래서 오랫동안은 못읽고 쪼꼼쪼꼼씩 읽고 있네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9-11-01 09:01   좋아요 2 | URL
생리하는 게 죄짓는 것도 아닌데 그걸 하는 걸 숨기고 감추고 생리란 말을 입밖에 내지도 못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 같아요. ‘그 날인가?‘ 이러면서 물어보잖아요 ㅎㅎ 아 짜증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대답하기 되게 부끄러워했던 그런 기억들이 있네요. 크- 부끄러운 나의 어린시절이여..


아 진짜 이 책 아직 1권도 다 못읽었는데 너무 양도 많고 글도 촘촘하고 보부아르 언니 랩해주시고 ㅠㅠ 읽기 싫어요 우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같이 읽기 때문에 그나마 여기까지 읽었지 혼자 읽었으면 진즉에 포기했을 것 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언제 다읽죠 이 책?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단발머리 2019-11-01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 책은 오로지 <제2의 성>만 있는 것처럼 그 책만 읽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대요. 참 신기해요.
정희진샘이 안드레아 드워킨의 <포르노그래피> 서평에서 ˝서양사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제2의 성>에 비견할 만하다. 내가 처음 여성학을 공부할 때 외워버린 책이다˝ 하셨던 게 기억나네요. 직접 들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생생한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리의 힘> 인용해주신 부분 읽어보니 ‘여성혐오‘ 분야에 관해 정말 트럼프는 매일 기록 경신하네요. 허어.... 참.....

다락방 2019-11-01 09:03   좋아요 1 | URL
아 진짜 안읽히고 느리고 미치겠어요. 저 이거 상하권 완독할 때까지 다른 책 안 보려고 했는데 그렇게는 못살 것 같아요. 주말에 소설책 읽어야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이걸 외워버리셨다고요? 정희진 쌤은 정말이지 대단하세요. 이걸 외우시다니..전 읽기도 벅차서 미치겠구먼 ㅠㅠ 뭔가 정희진 쌤이 외우셨다니 나도 외워볼까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잽싸게 억눌러야겠죠? ㅋㅋㅋㅋㅋ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단발머리님....아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진짜 ㅠㅠ


근데 제2의성 언제 다읽죠?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단발머리 2019-11-01 09:10   좋아요 1 | URL
제가 혹시나~~~ 해서 정희진샘 글 다시 찾아봤더니... 외우신 책은 <포르노그래피>이네요. 생생한 기억이 틀려서 댓글 수정했습니다.

전... 진짜 이 책만 읽는데.... 열심히 읽는데 진도가 안 나가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1-01 09:15   좋아요 1 | URL
아 다행이다. 포르노그래피는 번역서가 없어서 제가 못읽어서 못외우는 거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이 책만 읽다가 독서에 손을 놓게 생겼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연 2019-11-03 14:03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만 부여잡고 주말을 나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ㅎㅎㅎㅎ

<롱샷>과 <루거총을 든 할머니>에서의 저 대목들. 소위 ‘빡쳤었죠‘.
<롱샷>은 비행기 안에서 봤는데 짜증이 치솟아 확 껐다가 다시 켰던..ㅜㅜ

아, 읽기도 힘든 이 책을 시몬 드 보부아르는 썼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일요일입니다.

다락방 2019-11-04 09:17   좋아요 0 | URL
저는 토요일은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지만 일요일인 어제는 이 책을 끈질기게 부여잡고 놓지 않아 결국 다 읽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하권 시작하기 전 좀 쉬기 위해 소설을 읽고 있어요. 소설 한 세권쯤 읽고 하권을 잡아볼까 합니다. 아하하하하.

맞아요, 비연님. 이 읽기도 힘든 책을 보부아르는 무려 썼습니다. 대단한 양반... 어휴.....

- 2019-11-0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2의성과 주말을 보내는 아름다운 흔적들..... ~~

다락방 2019-11-04 09:17   좋아요 1 | URL
저는 일요일을 통해 상권을 다 읽었음을 전합니다!! >.<

지금 소설 읽는데 세상 재밌고 세상 쉽고 세상 빨리빨리 넘어가네요. 으하하하하.

- 2019-11-0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다른 책을 사랑하게 하는 보부아르님 ㅋㅋ

Comandante 2019-12-0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2의성 번역은 어떤지요? 현재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번역본이던데 즐겁게 읽을 수 있을지...

다락방 2019-12-03 18:18   좋아요 0 | URL
을유문화사 번역본도 구입하실 수 있는데요, 을유보다는 이백배쯤 낫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을유문화사 번역본으로 읽던 친구와 같이읽기 진행한건데, 동서문화사가 더 나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