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왜이렇게 서문 안끝나 ㅠㅠ
책은 또 왜케 무거운거야 ㅠㅠㅠ
여러분 서문은 짧게 짧게 쓰도록하자 ㅠㅠㅠ 서문 읽다가 나 늙어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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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하우스 레이크
레이철 케인 지음, 유혜영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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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저지른 건 남자지만 도망치고 숨고 피하고 두려워하는 건 여자의 몫이다. 온갖 협박과 욕을 온 몸으로 받아가며,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강하게 단련하고, 아이들을 지킨다. 그리고 그녀 자신을 지킨다. 용기를 내고 앞으로 다가올 것에 지지 않기로 한다. 올 상반기에는 이 소설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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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누구나 악플을 들어요, 엄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요. 그냥 무시해 버려. 그럼 가 버릴 거야.˝
이 말은 아주 많은 관점에서 날 미치게 한다. 마치 인터넷이 가공의 인물들이 사는 환상의 세계라는 듯이. 마치 우리가 애초부터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듯이.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반사적으로 안전을 추정하는 말은 저렇게 어린 수컷이나 하는 말이다. 여자들은, 래니 나이 정도 되는 소녀조차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세상이 정말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맹목적이며 특권적인 무지를 드러냈다.
- P53





지나는 자신의 어린 딸과 아들을 사랑하지만, 자신이 안전에 대해 가진 두려움 그리고 피해의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이 '어린 수컷'이기 때문임을 안다. '맹목적이며 특권적인 무지', 바로 그것이다. 물론 남자사람들도 당연히 어떤 두려움들을 갖겠지만 여자들은 거기에 남성이란 성별이 내게 가할 위험에 대한 두려움까지 추가해야 한다. 낯선 남자 혹은 익숙한 남자, 늦은 밤, 술자리.. 모르겠다, 남자들도 나름대로 꽃뱀을 만날까봐 두려워서 여성에 대한 특별한 두려움이 있을지. 아니면 스타벅스 가는 여자에 대한 두려움? 명품백을 사는 여자가 내 돈을 다 쓸까봐 갖는 두려움? 자기관리 하지 않는 뚱뚱한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책속에서 지나는 자신에 대한 스토킹을 의심한다. 그녀의 많은 걱정, 초조함, 불안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의식으로 보일 수 있다. 또한 지나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일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 스토커는 진짜로 있었다. 그녀가 짐작한 스토커는 가짜가 아니었다. 그녀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녀가 가진 두려움은 실재 일어날지도 모를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범죄는 그녀의 남편이 저질렀는데, 도망은 그녀가 치고 있다. 그녀는 범죄를 저지른 남편으로부터도 살해 협박을 받고, 남편의 추종자들로부터 살해협박을 받고, 그리고 그녀의 무죄를 믿지 않은 세상의 모든 남자들로부터도 살해 협박을 받는다. 그녀는 남편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몰랐는데. 그러나 그녀는 계속된 죄책감을 갖고 있다. 남편이 살인을 저지르는 걸 모르는채로 그의 아내로 살아서. 살인을 도운 것도 아닌데, 살인한다는 사실을 자기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한다. 그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내가 그걸 왜 몰랐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도 저것도 다 이상했는데. 그러나 그녀가, 한 남자의 아내로 살고 또 아이들의 엄마로 살면서 그 남자의 살인을 눈치채지 못한게, 그래서 피해자들을 만든게, 그녀가 이렇게 도망다니고 숨고 두려워하고 강박증에 걸릴만큼 잘못인가. 애초에 그녀의 잘못이 있기나 했나? 그녀 역시 피해자였다. 남편은 그녀와 결혼함으로써 정상가족을 이루고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한 가장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는 이 점을 이용했다. 그녀는 이용당했다. 살인자에게 이용당했다. 그녀 역시 피해자였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자기 가족을 사랑했다. 그러나 이제는프로포즈 받았던 순간부터 함께 살며 겪었던 순간순간들이 '그게 그게 아니었구나', '그건 잘못이었어'를 깨닫는다. 그녀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이용당했다. 그녀는 철저한 피해자였다. 그러나 이제 신분증을 위조하고 이름을 바꾸고 보안에 철저한 신경을 써야 한다. 아이들까지 지켜야 한다. 범죄는 남편이 저질렀는데 고통받고 우울하고 도망치고 초조한건 아내의 몫이다. 



왜 잘못은 남자가 했는데 도망은 여자가 쳐야할까?



범죄에 있어서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쉬쉬하고 욕먹는 일이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터다. 룸싸롱에 다녀온 코로나 확진자보다 스타벅스 다녀온 코로나 확진자가 더 욕을 먹는다. 성폭행 가해자보다, 그 성폭행 가해자에게 '꼬리친' 혹은 '같이 술마셔준' 여자가 욕을 먹는다. 세상은 어떻게든 여자를 욕하기 쉽고, 그렇게 욕먹은 여자는 꼬리표를 오래 혹은 평생 달고 다닌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 세상 쌍년이 된다.

범죄에 있어서만 그런것도 아니다. 우리는 무수히 들어오지 않았나. 학교에서, 동아리에서, 회사에서 사귀다가 헤어졌을 경우(혹은 결혼했을 경우)관두는 건 거의 대부분이 여자였다.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피하는 건 여자가 해야 했다. 같이 있던 자리에서 누군가 나가야 한다면, 그건 대부분 여자의 몫이었다.





나는 몇 번의 연애를 했다. 모두 이성이었다. 일하다가 만나면서 사귀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된 경우도 있었다. 자주 보고 만나면서 서로에 대한 호감을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가능하지만 랜선으로 만난 인연으로도 가능했다. 당연히 아주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후회되는 만남들도 역시 가지고 있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왜 내가 그런 사람과 사귀었을까, 하는 후회도 하지만 이럴 줄 몰랐는데 했던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요며칠간은 온라인에서 만난게 잘못일까, 를 오래 생각했다. 온라인이 문제인걸까. 내가 온라인으로 남자를 만나서 이렇게나 오래 힘들어야 하는걸까, 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온라인의 문제인가?


아니었다. 호감을 가지는 것은 어떤 식으로 만나든 어떻게든 시작될 것이었다. 어떤 수단이 당신과 나 사이에 있을지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서는 거다. 내 친구는 학교 동창과 사귀었고 또 어떤 친구는 데이트앱으로 사귀었다. 어떤 친구는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강력계 형사(!)를 만나 결혼했고 또 어떤 친구는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알게된 남자와 결혼했다. 어떤 수단이 되었든 사귀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고 그게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온라인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만해도 온라인을 통해서 사귀게 된 남자를 아주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그는 벼락같이 내게 내려진 기쁨이라고도 생각했으니까.




오래전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헤어졌음에도 나를 끊어내질 못한다. 문자를 보내길래 핸드폰에서 번호를 차단했다. 왓츠앱을 보내길래 왓츠앱에서 차단했다. 트윗에서 멘션을 보내길래 차단했다. 인스타를 팔로잉하길래 차단했다. 네이버 블로그에도 댓글을 달길래 내가 히스테릭한 증상을 보였더랬다. 아주 사적인 글들은 그래서 그곳에 감춰가며 쓰고 있다.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차단할 수 있는 모든 것, 모든 곳에서 차단한 셈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 알라딘에서 그를 차단하지 못했다. 알라딘에는 차단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끔 내게 알라딘에 댓글을 단다. 내가 다른곳에서 차단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댓글을 단다. 그래서 생각한거다. 온라인이 문제인걸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온라인의 문제는 아니다. 온라인으로 사귄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다만, 온라인으로 만나 사귀게 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기가 용이하다.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되고 그저 컴퓨터나 핸드폰 앞에 앉아서 주소만 치면 되니까. 온라인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니까. 어쩌면 즐겨찾기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가 얼마나 내 글을 자주 읽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때에는 다정한 댓글을 달지만 어떤 때에는 비꼬는 댓글을 단다. 이번에는 화가난 것 같았다. 여러곳에서 차단을 당했음에도 글을 읽는 걸 절제하지 못하고 글을 읽으면 반응하지 않는 것을 이루어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나는 그로부터 댓글을 받으면 손이 덜덜 떨린다. 너무 두렵다. 그와 내가 사귀었던 사이이기 때문에 두렵다. 나의 어떤 사적인 면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렵다. 내 의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내 글이 그를 흥분시키기 때문에 두렵다. 너무 두려워서 정말로, '이럴거면 그냥 다시 그를 만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그와 다시 만나야 하는건 아닐까''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게 아닐까' 를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면 싫다는 내게 자꾸 말을 거는 게 아니니까. 너무 싫어서 그런 생각까지 했다. 어쩌면 그게 나은걸까, 를 묻는 내 말에 친구들이 나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말했다. 그와 헤어진후 빈번하게 고민했다. 알라딘을 탈퇴해야 할까? 알라딘에서만 탈퇴하면 나에게 말을 걸 수 없을 터였다. 물론 다른 SNS 를 하는 이상, 그는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차단했다고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차단했지만, 그는 아마 다른 계정으로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알라딘을 탈퇴해야 할까? 알라딘에서 친구에게 공개로만 글을 써야 할까? 내가 그래야 할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이곳에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알라딘에 차단 기능이 없지만, 나는 알라딘에 차단 기능이 나 때문에 생기기를 원하지 않을 뿐더러, 궁극적으로는 '차단으로' 이 모든일을 해결하고 싶지가 않다. 이것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의지가 필요하다. 내가 알라딘을 탈퇴한다면, 그것이 헤어진 남자친구가 두려워서가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헤어진 남자친구가 두려워서 내가 오래 글을 써온 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내가 이곳을 떠난다면 다른 이유여야 했고, 모두에게 건강하게 작별인사를 말한 뒤여야 했다. 나는 헤어진 남자가 댓글 다는 게 너무 끔찍해서 이곳을 떠나는 걸 하고 싶지 않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어느 한 곳 만큼은 모두에게, 대상을 가리지 않고 보이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처음에 알라딘이었던 것처럼, 나중까지도 알라딘이기를 원한다.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면 그가 내 글을 읽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데 왜 '내가' 그 일을 해야 하는가. 나는 그러고싶지 않다. 내가 책을 읽고 내가 글을 쓰는데, 그럴 때마다 '혹시 그를 자극해서 댓글다는 건 아닐까?' 같은걸 걱정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항상 머릿속에 내가 말할 상대가 있고 그 상대에게 말하면서 글을 쓰는데, 거기에 그런 걱정 따위를 끼워넣고 싶지 않다. 그의 댓글이 달렸을 때 손을 덜덜 떨면서 심호흡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언젠가 내게 '너는 나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두렵다. 대체로 남자들이 '~하겠다' 하는 말들은, 대부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싶지 않다. 나는 숨고 싶지 않다. 나는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내 공간에서 그를 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가 내 공간에 오는 일은, 온라인이기 때문에 너무 쉽다.


왜 온라인으로 만난 남자를 사귀었을까. 주말 내내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자책하고 있어서 속상했다. 왜 나는 그것이 마치 내 잘못인양 생각하는가. 그와 사귄 일, 그와 헤어진 일, 그리고 계속 이곳에 글을 쓰는 일이 나의 잘못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자꾸 내가 잘못한 걸 떠올린다. 일전에도 친구를 만나 '어디서부터 잘못한걸까', '뭘 잘못한걸까'를 얘기했더니, '니가 니 탓을 하는 게 잘못이야' 라고 했다.



이렇게 버티는 게 무슨 소용이야, 그냥 친구공개로 쓰거나 다른 계정을 만들거나 플랫폼을 옮기는 게 최선일거야, 를 빈번하게 고민했지만, 더 오래 생각했다. 아니, 그러지 않을 거라고.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떠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헤어진 남자 무서워서 이곳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온라인으로 관계를 시작하는 일은, 이제 내 인생에 없도록 하자고. 여전히, 아직까지도, 조금은, 나는 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한다. 온라인으로 만나지 말걸 그랬나, 글을 너무 쎄게 썼나. 자꾸 내게 묻는다. 그게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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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0-04-1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이 글 쓰기까지 얼마나 용기를 끌어모으셨을지 감도 안잡히네요. ㅠㅠ 응원합니다!!

다락방 2020-04-13 10:43   좋아요 0 | URL
네. 등록하기까지도 많이 망설였고 쓰고 나서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해요. 혹시 이 글이 나에게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되면 어떡하나 하고요.

진심으로 잊히고 싶어요.

moonnight 2020-04-1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ㅠㅠ; 제발 좀 내버려두라는데 그게 왜 안 되는지ㅠㅠ;;;;; 다락방님 용기 존경합니다ㅜㅜ

다락방 2020-04-13 17:3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를 좀 무시했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0-04-1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다락방님이 내 잘못일까... 생각하는 그 순간이 너무 속상해요.
속상합니다, 너무너무 ㅠㅠ
글을 쓰고 용기내는 다락방님, 존경합니다!!!

다락방 2020-04-13 17:36   좋아요 0 | URL
저는 몇해전부터 도덕 코르셋을 그렇게나 없애자고 제 입으로 얘기하면서도 결정적 순간에 자꾸 내 잘못인가, 내가 어디에서 잘못한건가를 돌이켜보게 돼요. 살아온 습관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 같아요.

피곤합니다.

2020-04-13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13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20-04-18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이 얼마나 힘들게 이 글을 쓰셨을까. 너무 마음아프고 속상해요.ㅜㅜ

다락방 2020-04-19 19:46   좋아요 0 | URL
이제 이렇게 여기에 글 쓰는 것 말고 더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ㅠㅠ
 
스틸하우스 레이크
레이철 케인 지음, 유혜영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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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월요일이니(아니 벌써 오늘이다) 일찍 자려고 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지나'는 아이 둘을 낳고 함께 살아왔던 다정한 남편 '멜빈'이 젊은 여자 열두명 이상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끔찍한 살인은 그들의 집 차고에서 일어났는데, 그녀는 남편이 그곳에서 여자를 죽이고 있을 줄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에게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며 그녀 역시 공범이라고 얘기한다. 그녀는 그렇게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난다.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가 무방비 상태에서 남편으로부터 살해당한 여자를 목격하게 되고, 그리고 우연히 그가 그 한 사건의 범인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녀는 그 일 자체로도 이미 충격적이었지만 그녀의 무죄를 세상이 믿지 않기 때문에 삶이 지옥이 된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계속 거주지를 옮겨야 하고 신분을 바꿔야 했다. 그렇게 거주지와 신분을 바꿔도 감옥에 있는 남편은 계속해 편지를 보내온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가족이었는지, 아이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그리고 아내를 얼마나 찾아가서 죽이고 싶은지.

지나와 아이들에 대한 협박은 비단 남편으로부터만 오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수많은 트롤들은 그녀의 행적을 쫓으며 그녀를 죽이자고, 그 아이들을 죽이자고 한다. 살인자의 아내, 살인자의 공범, 살인자의 자식들. 지나와 아이들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에서 뿌려지고 다른 잔인한 사진들과 합성되어 돌고 있다. 


그녀 자신과 그녀의 아이들을 지킬 사람은 그녀 혼자 뿐이다. 그녀가 재판을 받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맡아준 적이 있었고, 그때 아이들은 할머니와 다정하게 지내며 친해졌다.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가끔 통화해서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해야 한다. 그들이 어디있는지, 어떤 이름으로 살고 있는지 할머니에게 조차도 알려서는 안되니까. 어떤 식으로 그것이 그들을 향해 적의를 가진 이들에게 들어가게 될지 모르니까.



아이들이 자꾸 학교를 옮기는 것도 그리고 친구가 없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게 아니어서 지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갈등하는데, 마침 스틸하우스 레이크가 바로 앞에 호수가 보이고 한적하며 좋다. 어쩌면 이번에는, 이곳에는 정착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녀는 뛰면서 체력을 키우고 사격을 열심히 배운다. 그러나 호숫가에서 여성의 시체가 떠오른다. 그 시체는, 전남편이 여성들을 살해했던 방식으로 살해되었고, 이에 지나는 용의자로 지목된다. 익명의 제보가 그녀가 호숫가 보트에 있는걸 봤다는 거짓을 말한탓이다. 이 살인으로부터 취조를 받고 집에 돌아왔는데 며칠뒤 또 호수에서 시체가 떠올랐고, 이제 그녀는 확실한 용의자가 되어 다시 경찰에게 잡힌다. 그녀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경찰서에 잡혀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의 집에는 빨간 페인트로 온갖 욕이 써있었다. 



지나는 이제야 비로소 남편과의 생활에서 잘못된 것들이 인식된다. 사실 그 때도 그게 좀 이상했더 거였는데, 그런데 내가 그냥 견디기만 했어, 하는 것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가 아이들에게 다정한 아빠라고, 그리고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녀가 아내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지 않았다는 것들을 그녀는 이제 안다. 남편의 거짓을 그녀는 그 당시에 볼 수 없었다. 남편과 함께 있지 않을 때, 이제 그녀는 남편이 자기에게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안다. 남편은 그녀에게 살인을 연습했고, 그녀를 길들였다. 남편은 그녀가 남편에게 의존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그녀의 싫다는 말을 무시했다. 



얼마전에 읽었던 '게일 다인스'의 [포르노랜드]의 내용이 이 책에 겹쳐졌다. 남자친구 혹은 남편의 이상한 요구에 갈등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 포르노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따라하는 남자들이었는데, 왜 이런 이상한 요구를 하는지 몰라 어떤 여자들은 갈등했고, 어떤 여자들은 거부했고, 어떤 여자들은 견뎠다. '지나'는 견디는 여자였다.



멜은 자심이 숨결 놀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했다. 내 목에 끈을 감고 조르길 좋아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국이 남지 않도록 부드럽고 푹신한 재질의 끈을 사용했고, 그걸 사용하는 데 전문가였다. 난 그게 너무 싫어서 그에게 자주 풀어 달라고 이야기했고, 노골적으로 거절 당했을 때는 눈앞에서 뭔가 번쩍 하다 .... 캄캄해졌다. 다시는 싫다고 거절하지 못했다.

절대 기절할 정도로 세게 조르는 법은 없었지만, 그런 상태에 매우 근접했다. 그리고 난 그걸 견디고 또 견뎠다. 섹스하는 내내 내가 산소를 갈망하는 동안 그에 의해 땅 위로 들렸다 내렸다 하면서 올가미와 사투하는 여자를 그가 떠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학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게 잘못됐다고 느꼈던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돌아보면 그가 자신의 살인 놀이에 나를 반복해 이용했다는 생각에 .... 오싹 소름이 돋도 구역질이 난다. (p.118)



포르노를 연구한 책들을 읽으면서 항상 드는 의문이었다. 영상 속에서 여자가 남자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장면, 그러니까 항문에 고추를 넣고 입안에 넣고 얼굴에 정액을 싸고 여자를 때리고 묶고 목을 조르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어떻게 한쪽 성은 '저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이것을 활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그 영상들 속에서 그것을 '서로의 쾌락'으로 표현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쾌락이 아니라는 건, 그냥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아는게 아닌가. 트윗에서 그 수많은 짧은 영상들을 신고하면서 내가 느낀건 괴로움이고 고통이었다. 여자들이 당하는 일들은 성적 학대였다. 그런데 그런 영상을 많은 남자들은 심지어 돈을 주고 본다고 하니 미쳐버리겠는거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학대하는 걸 보면서 쾌락을 느끼고, 그리고 그걸 직접 해보고 싶어한다니. 


지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 거다. 남편은 섹스 도중 그녀의 목을 조른다. 그녀는 싫었다. 이게 좋을 리가 없잖아. 난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고 끔찍한데, 나랑 섹스하는 남자가 내가 사랑하는 남자이기 때문에 이걸 견뎌야 하는걸까? 지나는 무서워서 견뎠다. 거절했다가 눈앞이 번쩍 했기 때문에. 섹스할 때 자신의 쾌락을 위해 혹은 서로의 쾌락이라는 명목으로 한 쪽의 목을 조른다는 것의 그 폭력성, 그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건가? 그 불안정을 그 불안함을 그 공포를? 어떻게 다른 쪽의 목을 조르면서 쾌락을 얻고자 하는걸까.  설마 부드럽게 졸랐다고 다정하게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걸까? 쾌락이 그렇게나 중요한건가. 한쪽을 고통에 빠지게 할만큼. 그리고 '나는 분명 상대의 허락을 받았고 상대도 좋아했다'고 하는 남자들은 천번 만번 스스로에게 솔직히 묻고 답하기를 바란다. 여자가 정말 자유의지로 그것을 원했을지. 예스라는 답을 받기 위해 자신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를 정말이지 진지하게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녀는 죄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살인에 한 번도 공범인 적이 없었고 심지어 남편이 살인범인지도 몰랐다. 그건 상상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 죄책감은 무섭게 따라붙는다. 왜? 그녀가 몰랐다는 것 때문에. 한 남자가 살인범이라는 걸 모르면서 그와 함께 살았고,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 때문에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된다. 세상은 그녀에게 돌을 던진다. 여자들을 납치해 살인한 건 남편인데, 오히려 남편에게는 추종자가 생기고 팬레터가 쏟아진다. 그러나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죽일년이 되어 있다. 세상은 여자의 말을 믿지 않고, 세상은 여자의 죄를 더 가혹하게 평가한다. 이 책의 작가 레이철 케인은, 이 모든 여성혐오를 누구보다 인지하고 있다. 그게 이 책을 이 밤에 끝까지 읽게 만들었고, 그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남자 연쇄살인범에게 어떤 광적이고 불건전한 끌림을 느끼는 반면, 공범인 여성은 훨씬 더 증오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여성 혐오와 독선적인 분노, 다른 이들은 안 되지만 이 여자는 망가트려도 괜찮다는 단순하고 맛있는 사실이라는 독이 들어간 수프다. 

난 결코 무죄가 아닐 테니 무죄가 된 것을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p.246)




레이철 케인은, 죄없는 여자가 죽일년이 되어 계속 도망쳐야 하는 이야기를 써냈다. 아니라고 수십번 외쳐봤자 아무도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경찰도 믿을 수 없었다. 여자는 자신의 돈으로 보안장치를 설치해야 했고, 사격 훈련을 받아야 했다. 자신을 지키는 일은 오로지 자신만이 가능했기 때문에. 게다가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눈앞의 적들을 물리쳤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의 삶에 안전을 위협하는 놈은 결국 한 명이 아니기 때문에. 여자가 스토커로 의심했던 건, 여지없이 스토커였다. 레이첼 케인이 쓴 건 지나라는 인물을 만들어내 진행한 소설이었지만, 현실과 아무것도 다른 게 없었다. 여자는 죄인이 되기는 쉽고 무죄가 되긴 어렵다. 여자는 누구를 믿기도 힘들고 자기 안전은 자기가 책임져야만 한다. 




결론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지만, 그랬기에 더 현실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현실을 직시한 소설이었고, 그리고 주인공은 거기에 굴하지 않는다. 스스로 강해지고 또 강해지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가 겪었던 일과 그 일로 인한 트라우마까지, 소설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레이철 케인은 이걸 알고 있고, 그래서 아주 좋은 소설을 써냈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악플을 들어요, 엄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요. 그냥 무시해 버려. 그럼 가 버릴 거야."
이 말은 아주 많은 관점에서 날 미치게 한다. 마치 인터넷이 가공의 인물들이 사는 환상의 세계라는 듯이. 마치 우리가 애초부터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듯이.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반사적으로 안전을 추정하는 말은 저렇게 어린 수컷이나 하는 말이다. 여자들은, 래니 나이 정도 되는 소녀조차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세상이 정말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맹목적이며 특권적인 무지를 드러냈다. - P53

코너가 30분 뒤 나를 이곳에서 찾는다. 난 호수의 이 조용한 침묵, 물에 비친 달빛, 머리 위에 뜬 청명한 별들을 사랑한다. 불어오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소나무에게 속삭인다. 위스키가 연기와 햇살의 기억이라는 근사한 대위법을 제공한다. 난 이런 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길 좋아한다. 내가 그럴 수 있을 때. - P84

"여러 가지로 감사해요."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것은 진심이다. 그는 처음부터 내게 잘해 주었다. 그냥 나 자신으로 대우받은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의 인생에서.... 그것은 중요하다. 난 아버지의 딸이다가 멜빈의 아내가 되었고, 그러고 나서 릴리와 브래디의 엄마가 되었고, 그런 다음에는 많은 이들에게 법망을 피해 간 괴물이 되었다. 내 고유의 권리를 지닌, 한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나 자신을 온전히 느끼고, 그것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나는 그웬 프록터로 지내는 게 좋다. 그 신분이 진짜건 아니건 그녀는 충만하고 강한 사람이고, 난 그녀를 신뢰할 수 있다. - P115

멜은 자심이 숨결 놀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했다. 내 목에 끈을 감고 조르길 좋아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국이 남지 않도록 부드럽고 푹신한 재질의 끈을 사용했고, 그걸 사용하는 데 전문가였다. 난 그게 너무 싫어서 그에게 자주 풀어 달라고 이야기했고, 노골적으로 거절 당했을 때는 눈앞에서 뭔가 번쩍 하다 .... 캄캄해졌다. 다시는 싫다고 거절하지 못했다.
절대 기절할 정도로 세게 조르는 법은 없었지만, 그런 상태에 매우 근접했다. 그리고 난 그걸 견디고 또 견뎠다. 섹스하는 내내 내가 산소를 갈망하는 동안 그에 의해 땅 위로 들렸다 내렸다 하면서 올가미와 사투하는 여자를 그가 떠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학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게 잘못됐다고 느꼈던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돌아보면 그가 자신의 살인 놀이에 나를 반복해 이용했다는 생각에 .... 오싹 소름이 돋도 구역질이 난다. - P118

손을 써서 일하고, 요리를 좋아하고, 준수한 외모.... 난 이 남자가 왜 이곳 호수에 혼자 와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두가 ‘사랑/결혼/아기‘라는 인생길에 순응하지는 않는다. 난 우리 아이들을 낳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단지 그 아이들을 낳게끔 한 결혼을 후회할 뿐이다. 여전히 나는 대부분의 삶보다 나은, 외롭고 고독한 삶을 이해할 수 있다. - P148

사람들은 남자 연쇄살인범에게 어떤 광적이고 불건전한 끌림을 느끼는 반면, 공범인 여성은 훨씬 더 증오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여성 혐오와 독선적인 분노, 다른 이들은 안 되지만 이 여자는 망가트려도 괜찮다는 단순하고 맛있는 사실이라는 독이 들어간 수프다.
난 결코 무죄가 아닐 테니 무죄가 된 것을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 P246

"왜 날 돕고 싶어하죠?"
"당신은 도움이 필요해요. 아버지 부탁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린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었던 일로 평가받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니까요."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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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랜드 열다 페미니즘 총서 5
게일 다인스 지음, 신혜빈 옮김 / 열다북스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다코타 존슨' 주연의 영화 《하우 투 비 싱글》에 보면 여자1이 여자2와 싸우나에 가서 그녀의 음모를 제거하지 않음에 대해 언급한다. 니가 거기의 털을 제모하지 않았다는 것은 연애(섹스)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인즉슨, 섹스를 위해서라면 음모를 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성인여자가 연애를 위해서 좀 더 정확히는 섹스를 위해서 보지의 털을 밀어야 하는가.

'게일 다인스'는 그것이 세상에 만연한 포르노 때문이라고 몇 번이나 사례를 들어 언급한다.

한 대학에서 여자 대학생들이 '그건 내가 원한거야' 혹은 '나를 위해서야'라고들 말했지만, 얘기하다 보니 '보지 털을 밀지 않으면 남자친구가 섹스 하기 싫어해' 라는 대답이 나왔던 것. 그것을 마치 부수적인 것처럼 얘기했지만, 여자들이 자신의 신체를 변형하면서 포르노를 산다고 얘기하는 거다.


몸에 대해 변형을 가하는 것은 모든게 끔찍하지만, 특히나 보지털을 미는 것에 대해서라면 나는 더 끔찍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성인 여성에게 온 몸의 털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보지라고 다를 것도 없다. '게일 다인스'는 이 책에서 여러가지 포르노를 다루면서 당연히 '아동 포르노'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자, 음모 제거에 대해 보자.



여자의 몸을 아동화하는 또다른 기법 하나는 음모를 전부 제거해 외음부가 사춘기 전 여자의 그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수년간 포르노에서 여자의 외음부 전체 제모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이 기법이 그 표지의 기능을 크게 상실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한 한가지 결과는, 현재 사실상 모든 여자 포르노 배우가 아동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려스러운데, 이용자가 유사-아동 이미지를 검색할 마음이 없더라도 포르노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그런 이미지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p.291)



나는 많은 여자들이 자신이 원한다는 명목으로 음모를 제거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걸 얼마나 자신이 원하는지도 얘기한다. 위생과 청결을 언급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음모 제거가 시작된 건, 포르노였다는 것을. '김이설'의 소설 [환영]을 봐도 남자가 여자에게 '거기 털을 밀어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까 남자와 섹스하지 않는 여자라면,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여자라면, 감히 '흐음, 보지털을 밀어볼까' 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누군가는 거기에 대해서 충분히 싸인을 보냈기 때문에, 그게 반드시 내 남자친구가 아니라도, 내 여성친구를 통해서 그리고 이렇게 영화나 책을 통해서 남자가 여자에게 더 즐거운 섹스를 위해 보지 털을 미는 것을 요구하는 걸 보기 때문에, '자, 왁싱샵에 가볼까' 로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싸인들이 없었다면 내 성기의 털을 대체 왜 민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진정 '내가' 원한 것이 맞는가. 왜 여자들은 포르노를 본 적도 없으면서 포르노속의 여자들을 닮아가는가. 예쁘게 보이고 싶고 섹시하게 보이고 싶은 그 모든 기준이, '내가 꾸미는 걸 좋아해, 이러면 기분이 좋거든요' 하면서 가꾼 내 외양이, 어째서 포르노 속의 여자들을 닮아가는가. 아이처럼 입는 것도 마찬가지. <유사 아동 포르노>라는 포르노의 장르는 성인을 미성년자처럼 꾸며 만들어지는 포르노다. 그 포르노를 보는 남자들은 거기에서 보여주는 내용(이랄 것도 없지만), 설정, 고통을 본다. 저 미성년자가 나이든 남자 어른의 꼬임에 넘어가서 처녀성을 빼앗겼어! 이 자극은 좀 더 큰 자극으로 더 큰 자극으로 옮겨간다.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 감상 후기 게시판도 수시로 찾아 들어가본다. 거기에 보면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더 큰 고통과 울부짖음을 표현할 때 쾌락을 느끼고 명장면이라 일컫는 감상이 수두룩하다. 처음에는 여자들이 진짜 고통스러워 보여 그것을 보는게 힘들었다고 말했던 남자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이제 그거야말로 명포르노다, 라고 감탄하는 것들이 바로 그 안에 있었다.


무엇보다 포르노 감상후기를 올린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건 본인이 포르노를 본다는 사실이 곧 숨겨져야 할 것이 아님을 의미했다. 포르노 감상후기 게시판에서 남자들은 서로 좋았던 포르노를 공유하고 추천한다. 그리고 '토론'한다. 한 여자에게 두세명의 남자가 들러붙어 얼굴에 정액을 뿌려대고 그걸 먹고, 목구멍에 고추가 들어가 여자가 오바이트를 하면서 울면, 그걸 보고 좋다고 환호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야 말할 것도 없고, '사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세게 박아주는 걸 좋아해' 라는 고정관념부터, 그렇게 박히고 우는 여자들이 '걸레이고 창녀' 라고 말하면서 이분법을 강화하고, 미성년자 역시 순진하지만 큰 자지를 좋아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루밍이 필요하다는 것도 포르노가 알려준다. 겁먹은 미성년자가 성인 남자의 어떤 그루밍에 쭈뼛쭈볏 옷을 벗는지. 인종 차별도 마찬가지. 인종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도 포르노가 강화한다. 흑인들은 대물을 가졌고 아시아인들은 작은 고추를 가졌으며 백인은 그 중간 어디쯤. 포르노가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편견, 인종에 대한 편견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영상을 보는 이용자들에게 침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공유된다.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광고까지. 포르노가 깔리지 않은 곳이 없다. 영화속에서도 포르노를 이용하는 것은 공공연히 등장하고, 포르노에서 설정을 가져온 뮤직비디오들도 나온다. 포르노를 보지 않았던 여자들도 그런 영상들을 본다. 저렇게 허리를 비트는 게, 저런 옷을 입는게, 저런 표정을 짓는게 남자들한테 사랑받는 것이라는 걸 여자들도 습득한다. 아이들도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고 괴로워하고, 나를 위한 것이라며 털을 민다.


만약 여성이 아닌 다른 대상이, 그러니까 흑인이나 유대인이 맞고 입에 이물질이 들어가 토하는 영상이 반복적으로 보여진다면, 사람들은 집단으로 항의를 할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그 일을 당하는 영상에 대해서는 환호하며 이용된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아주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서양 남자와 교제하는 여자들을 보며 한국남자들이 욕했던 것, 유학이나 어학연수에 다녀온 여자들을 놀았던 여자로 표현했던것, 어린 여자들에게 다가가 그루밍했던 것. 모두 포르노의 영향이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던 내 많은 여자친구들은 한국에 와 교제한 남자들로부터 '너 거기 갔다 왔다며, 그럼 너도 서양놈 좀 알거아냐' 하면서 큰 좆을 맛본 여자로 후려치기 했다. 아, 이게 다 포르노 영향이구나.

섹스 도중 정액을 먹으라고 했던것도, 목구멍 깊숙이 고추를 넣는 것도, 항문에 넣고자 한것도, 얼굴에 싸면 안되느냐 묻는 것 모두, 포르노를 보았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들이었다. 포르노를 전혀 접하지 않은 남자라면(현실속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의 얼굴에 정액을 뿌려댈 생각을 감히 어떻게 할까.



'조셉 고든 래빗' 주연의 영화 《돈 존》에서 남자는 포르노 중독에 걸려있다. 그는 당연히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는 것에만 능하고, 그래서 '젊고 예쁘고 쭉빵한 여자'를 사귀게 되었을 때 뿌듯해한다. 그 여자를 집에 데려갔더니 아버지는 '니 여친 귀엽다'며, 당연히 성적 대상으로만 평가한다. 그러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라도 돈 존을 만족시킬 수 없다. 돈 존은 여자친구와 섹스 후에 여자친구가 자는 틈을 타 포르노를 본다. 포르노를 찾아 봐야만 비로소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일은 비단 영화에서만 보여주는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 게일 다인스도 이런 남자들에 대해 언급한다. 좀 더 큰 자극, 좀 더 큰 자극을 찾는 남자들.



포르노는 강간문화를 형성한다. 여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고 여성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좋아한다고 보기 때문에 여성에게 그렇게 고통을 가하는 것을 해보고 싶어하게 만든다.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를 본다'는 것이 곧 '강간범이 된다'는건 당연히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포르노는 강간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한다. 유사 아동 포르노도 마찬가지. 유사 아동 포르노를 만드는 이들 조차도 '아동에 대해 이러면 안된다'고 동참하지만, 그러나 이게 얼마나 모순인가. 여자를 아동처럼 꾸며서 딸로, 순진한 옆집 소녀로 만들고 성적 폭력을 가하는 일을 보여주는게. 유사 아동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진짜 아동 포르노를 찾게 된다는 것도 역시 아니지만, 그러나 유사 아동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이 진짜 아동을 성학대 하는 영상으로 가게 될 확률은 매우 높다는 거다. 역시, 현실 폭력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 포르노를 보는놈이 강간범이다, 라고도 말할 수도 없고 유사아동 포르노를 보는 놈들이 아동 성학대범이 된다는 것도 아니지만, 게일 다인스는 실제 아동성학대범 재소자들과 만나면서, '원래는 성인과 정상적 연애를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남자들의 경험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포르노는, 성학대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일전에도 SNS 를 통해 아주 짧은 여성학대(포르노) 영상을 보고 신고하면서, 한 사람(여자)이 다른 사람(들, 남자)에게 고통을 당하는 장면을 도대체 왜 보고 싶어하는지, 이런걸 만들고 보는 사람들의 영혼이 괜찮은건지 오래 생각한 적이 있다. 그날 밤에는 엄마 옆에서 자면서, '엄마, 이나라 남자들... 정신이 찢어진 것 같애, 건강한 정신이면 그런 걸 보면서 어떻게 견뎌'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엄마, 남자들 다 영혼이 찢어졌어.



한 여성이 고통을 당하는 걸 '보면서' 자위를 한다는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거 아닌가. 이게 왜 '나의' 상식이기만 해야할까. 토하고 똥구멍에 찔리고 얼굴에 배설물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는게, 그게 어떻게 건강한 삶을 형성할 수 있을까. 지나가는 여자를 보는 시선을 대체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당신들의 영혼은 파괴되었다.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에 한 번이라도 노출된 남자는, 그 이전으로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전과 같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당신들의 영혼은 찢어졌다. 그리고 보고, 보고, 또 볼때마다 영혼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거다.




나는 포르노를 보는 남자들이, 포르노를 '소비하는' 남자들이 '누구 좋으라고' 그걸 보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걸 보는 그들 자신을 위한 걸까? 포르노를 제작하는 사람들, 그들이 아주 큰 돈을 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포르노 '제작자'들이다.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도 '저 영상속의 여자는 괜찮을까' 같은걸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걸 만드는 제작자들은 그걸 보는 남자들에 대해서도 역시 아무 생각이 없다. 더 큰 쾌락을 너희에게 안겨줄게, 라고 광고하지만, 그것은 남자들의 정신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게일 다인스는 십대 포르노를 구글에 검색하면 몇백개가 뜬다고 했다. '십대 포르노'라는 게 말 자체가 형성되어서도 안되지만, 그런데 몇 백개나 된다고?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구글을 열어 똑같이 검색해보았다.




관련 글이 20억개가 뜬다. 이 책이 2010년에 쓰여진 책이니 그로부터 십년이 지났고, 십년동안 이렇게나 급속하게 확산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영상속의 여자들 역시 더 많음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게일 다인스'의 멘탈은 괜찮을까, 를 걱정했다. 활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언급되는 포르노의 장면들은 내 멘탈을 찢어지게 만들었는데, 이걸 직접 연구한 게일 다인스는 괜찮을까. 남자들과 연애하면서 '이 남자가 내가 보기엔 황당한 요구를 하는데' 라며 걱정하는 여자들을 보면서 괜찮았을까. 포르노는 그저 판타지일 뿐이에요, 우리는 조금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죠, 라고 말하는 남자들을 보는게 괜찮았을까. 무엇보다 그 영상들을 보았던 것들은 괜찮았을까.



이 책의 결론은 기운이 빠진다. 게일 다인스 역시 해결책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집단으로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




우리 문화의 포르노화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내게 마법 같은 해결책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다. 우리는 거대한 경제 구조와 맞닥뜨리고 있다. 포르노 산업과 싸우려면 개인으로서, 그리고 집단적 운동으로써 저항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저항은 개인적 층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희망적인 시작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는 포르노를 이용하는 남자와 데이트하지 않겠다는 여자 청년, 자녀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길러주는 모부, 체계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교사, 섹슈얼리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포느로를 보이콧하는 남자도 있다. 더 넓은 층위의 사회적 움직임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러한 개인적 형태의 저항이 현재로서는 가장 의미 있다. (P.320)



하아- 한숨부터 난다. 할 수 있는게 고작 이것뿐이란 말인가.


다시, 영화 《돈 존》에서 남자도 나이든 여자를 만나 '눈을 보고 대화하는'것의 기쁨을 아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서서히 포르노 중독을 치료해가는 것. 섹스를 위해 섹스를 했던 사람이 진정한 교제를 시작하는 거다. 그건 그 남자에게 그전까지 몰랐던 일이었다. 사실 이거야말로 판타지 아닌가 싶지만, 그러나 대화의 기쁨을 알아가는 것, 눈을 마주치고 애정을 담는 것이야말로 포르노에 저항하는 방법일 것이다.

몇년전까지 나 역시 포르노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이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건 내가 생각하는 포르노가 그저 섹스를 위한 섹스 정도였기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섹스하고 싶어서 섹스하는 걸 보는게 뭐가 잘못이야, 라고 생각한건데, 그건 내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영상을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와 또 많은 여성들이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칠게 저항하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편에 서게 되는 거다. 현실을 몰랐다. 아주 몰랐다.



나의 개인적 저항,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그런 포르노를 보았던 남자이면서, 그러나 포르노를 옹호하는 새끼들에 대해 경멸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일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봤자, 학대당하는 여자를 보는 걸 즐기는 놈들임에 틀림 없으니까. 나는 그런 놈들의 영혼이 말짱할 리 없다는 타당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게일 다인스는 자신과 같이 포르노를 연구했던 '로버트 젠슨'에 대해 언급하는데, '로버트 젠슨'을 검색해보니 국내에는 그의 저서가 번역된 게 없는 것 같다. 《절정의 순간:포르노그래피와 남성성의 종말》의 저자라는데, 이 책도 꼭 읽어보고 싶으니 누군가가 어서 빨리 번역해서 내주었으면 좋겠다.



포르노는 혐오 표현이다. 여성과, 인종과, 아이에 대한 혐오 표현이다. 표현의 자유로 허락할 수 없는, 혐오 그 자체이다. 여성차별을 견고히하며 아동학대를 인정하고 인종차별을 강요하는 혐오 표현이다. 포르노를 보고 또 보는 당신들은, 강간으로 가는, 아동성학대로 가는 바로 그 중간을 살고 있다. '나는 그런 놈이 아니야'라고 확신하는가? 지금 감옥에 가있던 아동성학대범들도 그랬다. 당신들은 강간범이 되기 직전에 놓여있다. 아동성학대범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2008년 3월 나는 코네티컷주 교도소에서 아동 포르노 소지죄로 수감 중인 남자 일곱 명(이 중 셋은 아동 성폭력 가해자였다)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들 중 누구도 소아성도착자의 정의에 들어맞지 않았다. 일곱 명 전부 자신은 성인 여자와의 섹스를 선호하지만, 일반적인 포르노에 질렸다고 말했다. 이 중 다섯 명이 처음에는 PCP(pseudo-child pornography) 사이트에 접속했고, 그러다가 실제 아동 포르노로 넘어갔다. 이는 소아성도착자와 비소아성도착자 모두에게 PCP 사이트가 "성인 포르노와 아동 포르노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는 러셀과 퍼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현재 이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실증적 연구가 없으므로 특정 연구 결과를 지목해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러셀과 퍼셀의 주장이 맞는다면, 그리고 일화적 증거가 그 주장의 타당성을 뒷받침한다면, PCP의 인기가 계속되고 또 더 많아지는 현상이 아동 성폭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실제 아동 포르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 제작 과정에서 학대당하는 아동의 수가 늘어날 것이다. 둘째, 아동 포르노를 실제 아동과의 섹스를 시도하는 데 디딤돌로 삼는 남자들에게 성폭력을 당할 위험에 노출되는 아동의 수가 증가할 것이다. (P.314)



대규모 연구가 그 뒤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일 다인스의 이 주장은 현실이 됐다. 위에 내가 검색해본 것처럼, 십대 포르노의 영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우리는 어제, 오늘의 뉴스에서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자들에 대해 지겹게 듣고 있지 않은가.


퀘일과 테일러는 아동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일부 응답자에게 포르노는 실제 가해를 대체하는 대응물이었지만, 다른 일부에게 그것은 실제 가해를 위한 청사진이자 자극제로 작용했다." 아동 포르노 이용자 중 실제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비율은 연구마다 다르며 낮게는 40%, 높게는 85%까지 나타났지만, 이러한 증거가 중요하게 시사하는 바는 아동을 성애화한 이미지를 보고 자위하는 행위는, 상당 비율의 남자에게 있어 실제 아동 성범죄와 연관된다는 점이다. (P.315)





 

남자들은 자신의 의지로 포르노를 살고 있고, 여자들은 의지는 아니었으되 끌려가서 포르노를 살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두 혐오를 살고 있다.


나는 포르노에 반대한다.

그리고 포르노의 편을 드는 사람들에 반대한다.

나는 반포르노주의자다.

나는 포르노를 살고 싶지 않고, 다른 사람들 역시 포르노에 살지 않기를 원한다.

나는 포르노에 반대한다.



이 실험의 설계자는 포르노 제작자로, (대부분)남성이며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은 시장을 형성하고, 팔릴 만한 상품을 찾아내고,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장기 사업 계획을 구상한다. 이 책에서도 곧 다루겠지만, 한 마디로 말해 포르노 제작자는 철두철미한 사업가지, 우리의 성적 자유를 위해 힘쓰는 혁신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 P18

컨벤션홀 내부를 돌아다니며 포르노 제작자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이들이 섹스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는 점이 매우 분명해진다. 이들을 흥분시키는 건 돈이다.
(…)
내가 인터뷰하는 포르노 제작자 중 많은 이들이 이 산업에 종사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지, 우리에게 성적인 힘을 부여하거나 창조성을 증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다.
(…)
나와 대화를 나누는 이 남자들 중 그 새로운 극단이 어떻게 실제 여자의 몸에 작동하는지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 P29

"고급화 상품이 밀려나고 더 수위가 센 아마추어 느낌의 영상물이 그 자리를 채우면서 우리가 형성한 이 시장은 내가 보기엔 ‘포르노 올림픽‘의 현장이다… 이제 중요해진 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다. 영화 한 편에서 얼마나 많은 남자와 동시에 섹스할 수 있는지, 구멍에 페니스를 얼마나 많이 집어 넣을 수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정액을 먹을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이다. - P39

야동의 세계에 사는 여자는 자신에게 경멸과 혐오만을 표출하는 남자와의 섹스를 진심으로 즐기는 것처럼 보이며, 대개는 그 모욕이 심하면 심할수록 당사자 모두가 더욱더 황홀한 오르가슴을 느끼는 듯하다. 이곳은 여성에게 동일 임금, 의료 및 보육 서비스, 은퇴 후 계획, 자녀를 위한 양질의 교육, 안전한 주거 환경 같은 건 필요치 않은 단순한 세계다. 이 세계는 일차원적 여성, 구멍의 집한에 지나지 않는 여자들로 가득하다.
포르노가 전달하는 남자에 관한 메시지는 사실 훨씬 단순하다. 포르노 속 남자는 영혼도, 감정도, 도덕 관념도 없이 발기한 음경만을 위해 존재하는 생명 유지 체계로,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여자를 이용할 권리를 갖는다. - P42

"나는 남자들이 진짜 보고 싶어 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 여자에 대한 폭력이 바로 그거다. 그걸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센 수위가 얼굴 사정이다." - P46

포르노 문화에 의해 변화화는 집단은 남자뿐만이 아니다. 여아와 성인 여자는 모두 포르노의 주 소비자층은 아니지만, 10년 전만 해도 소프트코어 포르노로 분류되었을 이미지가 대중문화에 범람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6장에서는 여아와 성인 여자에게 던져지는 여성성의 이미지가 얼마나 획일화되어 가는지 진단한다. 그러한 이미지에 따르면 매우 엄격한 문화적 기준을 충족하는 대상은 ‘섹시한‘ 몸뿐이다. 일부 집단은 이 과잉성애화가 여성에게 힘을 부여한다고 찬양해 마지않지만, 이 유사-힘키우기는 진정한 권력의 모습과 동떨어진 빈약한 대체재일 뿐이다. 진정한 권력이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성적 평등으로, 여성에게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제도를 통제할 힘을 주는 것이다. - P51

내가 「걸스 곤 와일드」에 출연한 여자들(대부분 십대 후반)과 얘기를 나눈 후 분명히 알게 된 점은 프랜시스와 촬영팀이 이들을 교묘히 조종하여 자기 상품을 위한 원재료로 이용하는 데 실로 전문가라는 사실이었다.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들이 자신을 성적 대상물로 보도록 하는 문화에 이미 길든 상태라는 점이다. 프랜시스와 촬영팀은 이를 발판으로 삼아 그들이 얼마나 예쁘고 섹시한지, 몸매가 얼마나 끝내주는지 등의 찬사를 퍼부으며 그들을 압도한다. - P102

나와 대화를 나눈 여자 청년 중 많은 이들의 삶이「걸스 곤 와일드」출연 이후로 180도 바뀌었으며, 일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가까운 증상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중 어떤 사람은 친구와 ‘여-여 섹스‘장면을 촬영하고 나서 "멍청한 걸레"가 된 기분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자꾸만 쳐다봤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학교에선 지나가는 남자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고 그건 정말 끔찍했다." 무모했던 한순간이 영상에 담겼고, 그들은 그것이 남은 평생 그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른 모든 요소보다 우선해 자기를 규정할 거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 중 일부는 다른 학교든 새로운 직장이든 어디를 가도 「걸스 곤 와일드」이미지를 털어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자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며, 실로 많은 이들이 깊은 수치심을 느낀다. 이들은 학업이나 커리어 계획이 좌절되면서 삶이 틀어지기도 했다. - P107

미디어가 내보내는 제임슨(포르노 업계의 간판 배우)의 인생 이야기에서 그의 실제 삶이 어떠했는지는 대부분 빠져 있다. 그의 실제 삶은 대외 이미지보다 훨씬 덜 화려하다. 『포르노 스타처럼 사랑하기』에서 그는 방임과 학대로 얼룩진 유년기와 초기 성년기를 상세히 기술한다. 두 살 때 어머니가 사망한 후 그의 유년기는 혼란으로 가득했는데, 이는 아버지의 방임 탓이 컸다. 십대 때 집단강간과 폭행을 당한 후 그 자리에서 죽도록 방치되었으며, 후에는 학대를 일삼던 남자친구의 삼촌에게 강간당했다. 열여섯 살 때는 아버지에게서 쫓겨나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그에게 스트리퍼로 일하라고 부추긴 사람이 그 남자였다.
- P110

기사에서도 가끔 그가 받은 학대를 언급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느 정도였는지, 그러한 경험이 이후 그의 삶의 선택과 결정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는 대충 얼버무린다. 가정에서 방치된 십대가 집에서 아버지에게 쫓겨나 남자친구의 강권으로 스트립쇼에 서게 되었다는 인생사는 포르노 산업을 긍정적으로 그려내기에는 너무 추한 이야기다. 그 대신 기사는 대부분 그의 부유한 라이프스타일과 포르노 제국을 건설한 1인 여성으로서의 면모에 초점을 맞춘다. - P110

경험을 통해 남자에 대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묻는 말에, 제임슨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남자를 조금은 증오하게 되는데, 왜냐면 남자를 정말 끔찍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죠. 다들 취했고, 무례하고, 완전히 통제 불능이에요. 거기서 술을 조금 더 먹이면 정말로 추해지죠." 그는 이어서 스트리퍼로 일했던 경험을 통해 "그들[남자들]이 뭘 잘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한다. 리건이 "뭔데요?"라고 묻자, 제임슨은 답한다. "철저한 폄하요." 그 후 제임슨의 갑작스러운 시인이 이어진다. 폄하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리건의 질문에, 제임슨은 이렇게 답한다. "네, 아직 어리고 지금 뭐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으면 그렇게 되죠.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몇 번 겪었고, 그러다가 금방 철이 들어서 내가 한 일에 대해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이해하게 됐어요." - P112

『맥심』같은 남성잡지-십대를 겨냥한 조악한 콘텐츠 때문에 영국에서는 ‘청년잡지lad mag‘라고 불린다-도 유사한 방식으로 젊은 남자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핀업 사진 같은 이미지와 섹스, 술, 스포츠에 관한 기사를 통해, 이들 잡지는 여자가 오로지 성적 대상물로만 존재하는 남성 판타지 세계를 구축한다. 이런 잡지의 기조는『맥심』의 창간 멤버인 숀 토머스Sean Thomas가 잘 설명했다. "『맥심』같은 잡지는 뉴스 보도를 위한 잡지가 아니다. 그런 건 신문이나 텔레비전 방송사의 일이다. ‘청년잡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남자들에게 남자답게 굴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맥주를 마시고, 다트 게임을 하고, 여자를 쳐다봐도 된다는 거다. 『맥심』을 창간할 당시 우리는 페미니즘의 과도한 조롱에 반격하는 흐름의 선봉에 있다는 의식을 갖고 시작했다. 나는 우리가 성공했다고 믿는다." - P123

포르노 산업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설립된 또 하나의 단체로는 아동보호를 위한 웹사이트 협회(ASACP)가 있다. 1996년 발족한 ASACP는 다음과 같이 홍보된다. "인터넷에서 아동 포르노를 근절하기 위해 힘쓰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ASACP는 아동 포르노 신고 핫라인을 구축함으로써, 그리고 극악무도한 아동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온라인 성인 산업의 노력을 조직함으로써 아동 포르노와 싸우고 있습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들이 온라인으로 연령 등급에 맞지 않는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한편 표현의자유연합은 2002년 아동 포르노 관련 법 개정을 위한 로비에 성공했고, 포르노 업계에서 18세이기는 하나 그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여자를 배우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이 ‘아동보호를 위한 웹사이트 협회‘의 회원 중에는 「허슬러」도 있는데, 이보다 더한 위선이 또 있을까? - P143

「허슬러」는 『베일리 리걸』을 운영하며 "십대 미녀들의 최대 컬렉션을 보유한 세계 1위 틴 매거진"이라고 홍보하는 그 「허슬러」가 맞다. - P143

어떤 집단을 비인간화함으로써 그 집단에 속한 개인에게 가하는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방식은 포르노 제작자들이 처음 생각해 낸 게 아니며, 이미 수많은 압제자가 그 유효성을 증명했다. 나치 선전기구는 유대인을 ‘카이크kike‘라고 부르며 폄하하는 데 성공했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아프리카게 미국인을 인간이 아닌 ‘깜둥이nigger‘로 규정했으며, 동성애 혐오자들은 레즈비언과 게이에게서 인간성을 벗겨내는 용어를 거의 무제한으로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폄하되는 집단에 속하는 개인의 인간성을 일괄적으로 비가시화하면 그들에게 폭력적인 행위를 가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 P158

남자들은 포르노 이미지가 뇌에서도 ‘판타지‘라고 표시된 구역에 갇혀 있으며 현실 세계로 새어 나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나, 나는 남자친구가 점점 더 포르노 섹스를 요구한다는 여자 학생들의 사연을 지겹도록 듣는다. 그것이 얼굴 사정이 되었든, 항문성교가 되었든, 이 남자들은 현실 세계에서 포르노를 해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남학생의 경우, 처음에는 그 두 세계를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산업이 생생한 포르노 이미지가 실제로 자신의 사적 관계에 스며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점점 더 많이 들린다. - P162

이들 중 많은 팬들이 느끼는 쾌락은 여자가 자기 입에 뭘 넣어야 하는지 깨닫는 바로 그 순간 얼굴에 잠깐 스치는 날것의 불신과 역겨움, 혐오감을 보는 행위에서 오는 듯하다. 이것은 누군가가 완전히 비인간화되고 굴욕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얻는 쾌락이다. - P165

아이러니하게도 "포르노는 판타지"라고 주장하는 측이 놓치고 있는 점은, 실은 포르노가 우리의 상상력과 성적인 창조성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포르노가 전달하는 이미지가 사고를 마비시킬 정도로 내용이 반복적이고, 정신이 둔해질 만큼 단조롭기 때문이다. - P189

해방을 위해 싸워 온 집단이라면 누구나, 미디어 이론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깨달은 사실, 즉 미디어 이미지가 억압당하는 집단을 체계적으로 비인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안다. 이 이미지는 결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집단에 가해지는 지속적인 억압을 합리화하는 메시지의 더 광범위한 체계 안에 연루되어 있고, 그것이 가진 권력은 대개 태도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묵인하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정상화하는 데서 나온다. - P194

남자가 처음 포르노를 접할 때쯤이면 대부분은 우리 문화의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이미 내재화한 상태고, 포르노는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대신 그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생각을 굳히고 공고히 한다. 게다가 이는 그들에게 강렬한 성적 쾌락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성ㅇ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섹시하고 화끈한 것으로 프레이밍하는 행위는 포르노에, 다른 형식이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여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할 자격을 부여한다. - P194

텔레비전에서 예컨대 흑인이나 유대인을 계속해서 인종차별적, 혹은 반유대주의적으로 그리는 드라마나 시트콤이 쏟아져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백인 남자가 이들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얼굴을 가격하고, 목을 조르며 그들의 입에 이물질을 집어넣는다면 어떨까? 추측건대 격한 항의에 부딪힐 것이고, 그러한 이미지는 단지 판타지라는 이유로 옹호받지 못할 것이며 보이는 그대로 간주될 것이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가하는 가혹행위다. 포르노는 폭력에 성적인 외피를 덧씌우며 그것을 비가시화하며, 결과적으로 그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은 반폭력주의자가 아니라 반섹스주의자로 규정된다. - P195

내가 남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자기가 성적으로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얘기다. 그들은 대학에 가면 섹스 기회를 쉽게 얻을 거라 기대했고, 당연히 다른 남자들은 "하고 다닐"거라 생각하며, 결국 자기한테 뭔가 문제가 있거나 혹은 자기가 한 번 해 보려고 시도하는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결론 내린다. 그들은 자기가 충분히 잘 생기지 않아서, 말주변이 없어서, 혹은 남자답지 않아서 점수를 따지 못하는 걸까 봐 걱정하며, 포르노의 세계관이 여성을 언제나 접근 가능한 존재로 그리는 탓에 거절에도 몹시 당황한다. 그들은 대개 여자와 자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에 깊은 수치심을 표출하며, 이 수치심은 ‘야동녀‘와는 다르게 ‘싫어‘라는 어휘를 가진 여자 학우들을 향한 분노로 바뀐다. - P196

음모는 분위기를 깨는 요소가 되었고, 특히 오늘날에는 여자 청년이 많이들 음모를 제거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며, 그렇기에 음모를 ‘관리‘하지 않은 여자는 매력이 떨어진다. 조시는 지난 수년간 자신이 선호하는 여자 신체 유형이 점점 포르노 배우와 닮아가고 있다며, "제모하고 오일을 바른 탄탄한 몸"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여자친구의 몸이 그런 몸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으냐고 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기 관리를 안 한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좀 더 자신을 가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현실 세계의 여자들이 포르노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도 불만의 원인 중의 하나다. 거친 섹스를 해달라며 애원하지도 않고, 만질 때마다 오르가슴을 느끼듯 반응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 P200

여태껏 강연하면서, 발표가 끝난 후 내게 찾아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기가 어린 시절 당했던 강간 장면이 찍힌 사진이 분명 화면에 뜰 거라 생각했다고 말한 여자가 최소 스무 명은 있었다. 이 불안감에서 이들이 겪은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지가 드러난다. 나는 강연에서 아동 포르노 사진을 보여주지도 않을뿐더러,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수백만 장의 사진 중에서 특정 사진을 고를 확률은 극히 낮다. 하지만 확률의 법칙은 트라우마를 겪는 개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이들은 자기를 강간한 사람이 전능하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찍힌 사진이 의심의 여지없이 반드시 수면 위로 떠 오를 거라고 확신한다. - P207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는 포르노를 여성,아동, 일부 남성을 대상으로 나쁘게 사용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들었다. 나는 포르노를 본 남자에게 삶을 파괴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들 생존자에게 있어 포르노는 판타지가 아니라 악몽 같은 현실이다. - P208

포느로를 이용하는 남자들이 모두 이러한 강간 신화를 통째로 삼킨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식의 주장은 이용자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포르노의 영향에 관한 논의를 단 하나의 영향-강간-으로 축소하게 될 것이다.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그러한 신화가 홍보하는 문화가 수많은 방식으로 남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일부는 강간을 저지르겠지만, 더 많은 이들이 파트너에게 섹스 혹은 특정 성행위를 해 달라고 애원하고, 조르고, 강요할 것이며,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다른 인간 존재와의 섹스 그 자체에 흥미를 잃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여자를 이용하고 다 끝나면 그를 무시할 것이며, 또 어떤 이들은 파트너의 외모나 성 기능을 평가할 것이고, 많은 이들이 여자를 일차원적인 섹스 대상이자 남자만큼 존중할 필요도, 존엄하지도 않은 존재로 볼 것이며, 이는 침실 안이든 밖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 P210

그 영향이 무엇이든, 남자가 포르노 이미지를 접한 이상, 다시 멀어진다 한들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 P210

남자(그리고 여자)대다수는 성 불평등이 자연스러우며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현실인 것처럼 느낄 정도로지배적인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매일 주입당하며 살아간다. 포르노는 이 이데올로기를 최대한으로 뽑아 먹을 뿐 아니라, 그것을 포장해서 고도로 성애화한 형태로 남자에게 돌려준다. 그것에 대항하는 반이데올로기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같이 달콤한 성차별 이데올로기는 지배적 사고방식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포르노는 사회화의 유일한 행위자는 결코 아니지만, 그 강렬한 이미지와 우리 신체에 미치는 영향 덕분에 강력한 설득의 도구가 되었으며, 남자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자기가 당연히 갖는 인권을 마찬가지로 당연히 가지는 존재로 보는 능력을 잠식하고 있다. - P211

현실에서 여자들은 포르노를 보지 않고도 그것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데, 오늘날 포르노의 이미지, 재현, 메시지가 대중문화를 통해 그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자들은 여전히 하드코어 포르노의 주요 소비자층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게 모르게 포르노의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하고 있으며, 대개 이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하면 섹시하고, 도발적이고, 쿨하게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지(또 가능하다면 붙잡아 둘 수 있는지)에 관한 충고의 모습으로 위장한다.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음부 왁싱이다. 음부 왁싱은 포르노에서 처음 보급되어 『코스모폴리탄』같은 여성 매체로 흘러 들어갔는데, 이 잡지는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려면 해야 할 ‘자기 관리‘방법에 관한 기사와 팁을 정기적으로 싣는다. - P217

거의 추종자에 가까운 팬층을 형성하며 대성공을 거둔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도 왁싱을 소재로 삼았다. 예컨대 「섹스 앤 더 시티」영화에서, 미란다는 음부를 제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맨사에게 "막 나간다"는 꾸지람을 듣는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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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4-1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내가 원하는 일이야˝의 범주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확장될 수 있을지 생각하면 할수록 더 절망하게 됩니다. 남자친구가 샵에 다녀오라고, 자꾸 다녀오라고, 그게 좋겠다고 할 때 좋아하는 사람의 그 ‘권유‘를 계속해서 거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구요.
이 모든 일이 가장 개인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많은 여성들이 ‘똑같은‘ 강요 속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정치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뷰를 읽는 것 마저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힘드네요.
다락방님도 그러셨을 것 같아요. 쉽지 않은 독서였을텐데, 이렇게 기록으로도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읽는 것만으로도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희진쌤이 그러셨죠. 우리, 읽는 이 일을 통해 연대합시다, 다락방님!!!

포르노에 반대합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포르노에 반대합니다.
포르노 속 학대당하는 여성의 소비에 찬성하는 모든 의견에 반대합니다.

다락방 2020-04-10 12: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단발머리님.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아니‘라고 말하는 게 결코 쉽지 않죠. 결국 그렇게 서서히 어느 정도까지 원하는 바대로 해주게 되는것 같고, 결국 그래서 지금은 브라질리언 왁싱샵이 따로 생긴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식으로 대부분의 것들이 서서히 침투하게 된거겠죠.
최근에 반포르노 삼종셋트 읽으면서 앞으로도 계속 읽자 다짐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렇게 읽고 쓰는 일이 어떤 효용을 가져올까 좀 회의가 들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이렇게 읽고 글로 쓰는 일이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칠거다, 라는 생각이 들면 또 게을리 할 수 없기도 해요. 아무튼 계속 하겠습니다.

단발머리님 이 책 사셨다니, 어휴... 힘든 길 가시겠습니다. 영상 묘사 하는 거 읽으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성인 여성들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미성년 그루밍 성폭력은 울것 같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읽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 때문에 펑펑 울것 같았는데 말예요. ㅠㅠ

포르노에 반대합니다. 반대합시다.

잠자냥 2020-04-1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개 드리고 싶은 리뷰입니다.

현실적으로 이 포르노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반포르노주의자들이 많아지는 방법밖에는 없군요. :(
야동이라고 부르면서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하던 문화도 정말 잘못 되었고, 여자들도 포르노 보는 남친(또는 자신)에 대해 관대한 자신이 ‘성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갖고 있는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포르노는 혐오표현이라는 말, 여성, 인종 아동에 대한 혐오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해요.

다락방 2020-04-10 12:52   좋아요 0 | URL
반포르노주의자들이 많아지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지만, 그 방법은 너무 느릴 것 같아요, 잠자냥 님. 그래서 답답합니다. 포르노를 전파하고자 하는, 돈욕심에 눈이 먼 제작자들이 활개를 치는데, 과연 개인이 반포르노주의자가 되는것이 어느 속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맞아요, 잠자냥 님. 야동이라고 부르면서 별 거 아닌 것처럼 취급하던 문화가 결국 이렇게 만든게 아닌가 싶어요. ‘주체적 섹시‘가 정말로 ‘주체적‘인것인지에 대해서, 여성들도 스스로 끊임없이 물어보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포르노문화가 없었다면, 사방천지에 포르노가 침투해있는 게 아니라면, 과연 우리는 주체적으로 ‘섹시하고‘ 싶었을까요?

책 뒷표지에 영국 페미니스트 저술가 ‘줄리 빈델‘의 한 줄이 실려있거든요.

<단 한 번이라도 포르노가 혐오 표현이 아닌가 의심해 본 적이 있다면 『포르노랜드』를 반드시 읽어볼 것.>

이라고요. 저도 보면서 확 오더라고요. 포르노는 혐오 표현이라는 말, 깊이 공감했어요.

(그리고, 별 다섯개 접수합니다!)

건조기후 2020-04-10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본 트윗이 생각나서 보고 그대로 옮겨봐요. 물론 다락방님도 보셨을 거에요...

진짜 나라 꼬라지하고는. 미성년자 애들은 성착취물 만들고, 젊은 성인 남성들은 그거 사고, 그러다 걸리면 국가기관 전반에 걸쳐 온갖 결정권 다 쥐고 있는 늙은 남성들이 ‘남자가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부둥부둥 무마하고 용서하고 기회주고...

진실로 무엇이 잘못된 것인 줄을 전혀 모르는 거죠, 과거에도 지금도. 얼마나 뿌리가 깊고 튼튼한지... 종종 암담해요.
단발머리님 말씀처럼, 이렇게 리뷰만 보아도 힘든데 책을 끝까지 읽어내시고 기록으로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성주의 책읽기 꾸준히 해오시고 이렇게 훌륭한 리뷰를 쓰고 계시다니 너무나도 리스펙이에요, 다락방님.
함께 하기로 말만 얹어놓고 바로 하차해버렸던 저도 -_ㅜ 부지런히 곁눈질이라도 해가면서 열심히 공부할게요.

별 다섯 개 받으셨으니 이번엔 하트 백만 개 받으세요! :)

다락방 2020-04-12 11:28   좋아요 0 | URL
이 리뷰에 대해서는 다들 긴 댓글을 달아주시네요. 아마도 그간 포르노에 대해 나름 생각했던 것들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 책도 그렇고 다른 책에서도 그렇지만 ‘외모 권력‘에 대해서도 언급하거든요. 그러니까, ‘여성의‘ 외모권력이요. 그런 포르노배우 같은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가 마치 여자들의 권력인듯 보이지만, 그것은 전혀 권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잠시 그 앞에서 숭배하는듯한 모양새를 보일 수는 있으나, 자기랑 자주지 않거나 사귀어주지 않으면 금세 강간해도 좋을 성적대상이 되어버리니까요. 애초에 네 미모가 너무 아름답다 하는 것은 성적대상으로서 최고의 가치다,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것이고요.

사람마다 끈기를 보이는 방면이 다르잖아요. 저의 경우만해도 모든걸 이렇게 계속하진 못하고요. 방통대는 반학기 다니다 말았고, 외국어 공부는 하겠다고 교재만 수두룩하게 사놓고 펼쳐 보지도 않았는걸요. 그런데 여성학에 대해서라면 제가 하면 할수록 갈증을 느껴요. 여성학에 대해서라면 흡수도 빨라지는 것 같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계속 해보고 싶어요. 포르노에 대한 책도 더 읽어보려고 장바구니에 더 담아뒀어요. 저는 제가 좋아서 하는것이니만큼 모두가 저처럼 할 순 없겠죠. 그렇지만 단발머리님이 말씀하셨듯이, 이렇게 누군가가 읽었던 기록이라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보다는 더 나으니까요.


건조기후님의 하트 백만개도 접수합니다. 후훗.
세상이 좀 나아지면 제육볶음 먹으러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