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이 책을 매해 읽는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지점에서 내가 웃고 또 새로운 지점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너무 여러번 읽어서 더이상 새로운 지점이 없지 않을까, 했는데도 또 새로운 지점들을 나는 찾아내고야 말았다. 이 책 속의 주인공 '에미'는 내가 아는 가장 '마음이 열린'사람인데,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나와 비슷하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그녀는 열린 상태였다'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나는 마음을 닫고 싶었다. 나야말로 에미처럼 늘 열려있는 사람이었는데 닫아야겠다 결심하니,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환기도 시킬 겸, 최대한 활짝 열어놓아야겠다고 생각한거다. 마음을 열어둔 상태라는 게 무엇인가, 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에미가 떠오르고 나는 그렇게 책장을 넘긴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책은 에미가 잘못 보낸 이메일을 통해 '레오'라는 남자와 소통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에미는 정기구독을 취소한다는 메일을 잡지사에 보내는데, 태어날때부터 왼손잡이인 그녀가 중간에 오른손잡이로 교정을 당해야 했고, 그래서 피치 못하게 왼손과 오른손이 싸우면서 키보드의 e 와 i 를 경쟁하듯 눌러대, 그녀의 메일은 엉뚱한 언어학자 레오에게 닿는다. 당연히 잡지의 정기구독은 취소되지 않았고, 그래서 에미는 재차 취소 메일을 보내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이번에도 역시나 경쟁하듯 e 와 i를 눌러 또! 레오에게 닿는다. 이에 레오는 너 아마도 스펠링 잘못 써서 실수하는 것 같아, 나는 잡지사가 아니라 사람이다, 하고 답을 보낸다. 에미는 그런 레오에게 알려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바로 여기서 이 메일의 왕복은 끝났어야 한다.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런 수순이다. 이런 일 자체가 흔한 건 아니지만, 만약 이런 일이 나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생겼다면, 이렇게 잘못을 인지하고 나서, 그래서 상대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나면, 그러면 더이상은 진행되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이메일을 보낸 이력이 남아, 9개월후 에미는 또다시, 의도치 않게, 이런 메일을 레오에게 보내게 된다.




9달 뒤

제목 없음

즐거운 성탄절과 복된 새해 맞으시기를 에미 로트너가 빌어 드립니다. -p.11



에미는 홈페이지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었고, 고객들에게 이렇게 단체메일을 보낸 거다. 레오는(하하) 이 메일을 받고 그냥 넘길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마도 대부분이 그냥 넘겼을 테지만, 이런 답을 보낸다.



2분 뒤

Aw:

에미 로트너씨, 우리는 아는 사이라고도 할 수 없는데, 이렇게 지극히 독창적인 단체메일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저는 제가 속하지 않은 집단 구성원에게 보내는 단체메일을 좋아하거든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레오 라이케. -p.11



하하하하, 나는 만약 레오로부터 저런 이메일을 받았다면 웃었을 것이고-이렇게 지극히 독창적인 단체메일!-, 그리고 역시 답장을 보냈을 것이다. 에미 역시 레오에게 답장을 보내고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두어통쯤 왕복한 뒤에 또 끊어질 뻔했다. 끊어지는 게 역시나 더 자연스러웠겠지만, 우리의 에미는 38일 뒤에, 또다시 이메일을 잘못 보낸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는 에미를 좀 답답하게 생각한다. 이 부분만큼은 너무나 내 취향 아니다. 내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걸 안다면 나는 그 뒤에 '나는 여기서 실수했었지'라고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부러, 내 의지를 담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실수를 할 순 있지만, 스펠링 잘못 써서 이메일 자체를 잘못 보내는 일을 이렇게 여러차례 반복하는 건 정말이지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했던 잘못 또 하는 거 싫어하고 했던 실수 또 하는 거 싫어하고, 그래서 상대로 하여금 잔소리 하게 만드는 걸 지독하게 싫어하기 때문에, 내가 상대에게 그런 식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인거다. 나는 했던 말 또 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그런 일이 몇차례 반복되면 애정 자체가 식어버려서, 아무리 연애상대라고 해도 정나미가 떨어져버려. 반면 한 번 말했을 때 캐치하고 다시 그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설사 잘못을 했을지언정 고치려고 노력하는 점을 높이 사서 매우 애정이 증가하게 된다. 이런 부분은 상대와 내가 주거니받거니가 잘 되어야 되는데, 그런 점에서 과거 나의 어떤 연인은 매우 훌륭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가 어떤 잘못 혹은 실수를 했을 때 그 지점에 대해 그애게 얘기했고, 그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너는 한 번 지적했으면 다시 말하지 않네' 라고 시간이 흐른 뒤에 얘기했었고 나는 그런 그에게 '한 번 말하면 니가 다 알아들으니까'라고 했었다. 그런데 또 이메일을 잘못 보내는 에미라니...



어쩌면 에미도 이런 실수를 평소에 하지 않는 사람일런지도 모른다. 하늘이 혹은 신이 혹은 운명의 흐름이 그녀로 하여금 평소 하지 않던 실수를 또 하게 만들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에미의 인생 지금 이 시점에, 에미의 운명 지금 이 흐름에 맞춰 레오를 만나게 하기 위해. 네 인생 지금 이쯤에서 레오를 만나렴, 하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에미와 레오는 이메일을 주고 받기 시작한다. 그들의 메일은 서로의 나이나 직업을 추측하면서 진행되기도 하고 우습지도 않은 우스개 소리들을 늘어놓기도 하고 또 좀 관심이 생기려고 한다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오래전에 이 책을 읽고 매우 좋아하는 나의 다정한 친구는,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이 독일 소설이, 한국 번역가 '김라합'에게 단단히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했다. 제목부터 다정하게 바꿔놓아 그렇기도 하지만(원제는 '북풍'이다), 이런 문장들은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잖아.



당신은 '진부한 크리스마스 단체메일' 신경증을 앓고 계시는군요. 어쩌다가 그런 신경증이 생긴 걸까요? '즐거운 성탄절과 복된 새해'라는 말을 들으면 죽도록 마음이 상하나요? -p.27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죽도록 마음이 상하나요, 같은 표현은 너무 좋지 않은가. 나도 언젠가 꼭 써먹을테다. 언젠가 메일이나 문자로 혹은 내 목소리를 통해 상대에게 '죽도록 마음이 상해?'하고 놀려야지. 잊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서로의 나이도 잘 모르고, 싱글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거의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주고받는 메일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레오는 자신이 그렇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에미, 변명부터 할게요. 사실 당신에게 날마다 메일을 썼어요. 보내지 않았을 뿐이지요. 아니, 보내지만 않은 게 아니라 다 지워버렸어요. 말하자면 제가 우리 대화에서 힘든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제가 당신, 신발 치수 37인 에미라는 여자에게 서서히, 그저 얘기 상대라는 틀에 맞는 선을 넘어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겁니다. -p.29



아마 대부분이 그런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관심있는 상대(뭐 이런걸 썸남이나 썸녀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겠다)와 주고받은 이메일이나 문자메세지를 허구한날 들여다보는 일. 시간만 나면 들여다보고 사실 누가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내용인데 피식피식 웃게 되는 일. 아마도 연애과정을 통틀어 가장 반짝거리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경우는 그런 순간들이 너무 좋아서 그런 이메일이나 문자를 내버려둔다. 나는 아직도 2007년의 이메일까지 가지고 있다. 문자메세지 역시 마찬가지인데, 아이폰이 망가지면 다시 아이폰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는 건, 내가 유료서비스로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사람이고 간직하고 또 간직하는 사람이며 되새기고 또 되새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오히려 지워버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레오가 위에서 말한것처럼 차라리 다 지워버리는 사람이 있는 거다. 자꾸 들여다보게 되니까. 다른 일 해야하는데 자꾸 들여다보게 되니까 차라리 지워버리는 거다. 볼 걸 없애버리는 거야. 이것도 너무 귀엽지 않나. 하하하하하. 지워야만 보지 않을 수 있는 어떤 쪼꼬미 의지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에게도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자꾸 들여다보게 돼서 부러 다 지워버린다고 했던 남자가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귀여워. 밥은 먹고 다니니? 오늘 누나는 동태탕에 곤이를 추가해서 먹었어. 아주 맛이 좋았단다. 밑반찬들도 오늘은 다 너무 좋았어. 오이고추도 쌈장에 찍어 맛있게 먹었는데, 아이고 두번째 고추는 맵지 뭐니?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언젠가 모든게 괜찮아지면 동태탕에 곤이 추가해 사줄게. 아마도 그간의 인생이 어땠는지를 얘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소주도 좀 시켜야 할 것 같구나. 회사 앞으로 와....동태탕 맛집 있어. 알도 좋아해? 나는 알은 좀 싫어. 그 많은 생선의 후손들이 뱃속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잔인해도 너무 잔인해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왜 동태탕을 얘기하고 있지?




다시, 에미로 돌아가면.

나는 에미가 더 큰 행복을 바랐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에미는 현재 행복했다. 남편과 아이들과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일도 있었고 정해진 일상이란 것도 있었으며 남편과 역할분담까지 익숙하게 되어 있었다. 누가 묻는다면 에미도 거리낌없이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고 할것이고 누가 보기에도 에미는 나쁘지 않은 삶을 산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과 타인이 보는 것 다 무슨 소용일까. 우리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시점에 '그러나 더 행복해지고 싶다'고 요구하기도 하지 않는가. 나는 에미가 잠정적으로 더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을 활짝 열어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을 열어두면서 즐겁거나 기쁜 일이 다가오려고 할 때, 거기에 대한 방어책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에미가 이메일을 실수로 보낸 것은, 말그대로 의도치 않았던 실수였지만, 하필 그 메일이 레오에게 날아들었고, 그리고 레오가 답장을 보냈고, 그리고 그 뒤의 일들이 일어난 것, 에미가 레오의 이메일을 결국 죄다 출력해 가지고 있게 된 것, 그 모든 것은 그 순간순간 에미가 원하던 바였고 에미의 의지였다. 에미는 레오를 알고 나서, 레오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나서부터는 레오와 이메일을 주고 받는 시간을 행복해했다. 남편 베른하르트가, 차라리 쟤네 둘이 만나는게 이걸 끝내는 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에미와 레오는 이메일에 집중했다. 이메일을 보내고 답메일이 오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삶의 가장 큰 중심이었다. 에미는 결코 불행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더 큰 행복을 원하는 사람이었음에는 틀림이 없고, 그리고 무언가 자신에게 찾아들려고 할 때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며 낚아채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요구하고 원하고 바라는 게 무언지 아는 사람은, 그래서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도 아는 법이다. 베른하르트도 레오도 다 에미에 대해 판단 실수를 할 때, 에미만큼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에미는 레오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자신이 지금 하는 게 뭔지 분명히 알고 있다. 에미는 열려있고, 열려 있었다.



자, 뭐든 와봐, 뭐가 됐든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거라면, 나를 더 즐겁게 만들거라면, 기꺼이 받아주마.



라는 마인드가 장착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에미가 좋다. 에미는 레오를 좋아하면서 한 순간도 비굴해지지 않는데, 그건 에미가 에미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미는 어느날의 레오의 이메일을 받고서는 이 이야기 좋네요, 라고 말한다. 레오의 지난 시간에 관한 메일. 여자친구를 만나고 헤어지게 된 메일. 이 이야기 좋네요, 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들려주는 얘기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더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다시 읽어도 너무 재미있고 즐겁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만세만세 만만세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을 준비를 한다. 일단 활짝 열고서.

열어야, 닫을 수 있으니까.







밤새 방안엔 눈이 많이 쌓였어 

난 자장가에 잠을 깨어 눈을 떴지만 넌 이미 없었어 

밤새 마당엔 새가 많이 죽었어 

난 종이돈 몇장을 쥐고 전화를 걸어 천국을 주문했어

노래는 반쯤 쓰다 참지 못하고 태워버렸어 

나는 재를 주워 담아 술과 얼음과 마셔버렸어 

오 - 미안 오 -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지 

내 마음을 닫을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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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28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로 일 년 전에 이 책을 읽었어요. 그래서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이라 좋네요. 며칠 전에 어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와, 다락방님 최애소설이야, 했어요. 누군가에게 어떤 책으로 기억되는 건 나름 흐뭇한 일 아닐까요? 예전엔 그런 시도로 같은 책을 열 명 넘게 선물하는 (줘봤자 읽지도 않을 거 부질없는) 짓도 해봤는데. 마음을 닫는다. 접는다. 놓는다. 왠지 슬픈 말들이네요.

라로 2020-07-29 03:38   좋아요 1 | URL
˝누군가에게 어떤 책으로 기억되는 건˝ 바로 이부분 읽고 어느새 반열 님 댓글에 또 댓글달고 있;;;
나는 어떤 책으로 기억될까? 생각해 봐도 없네요,,,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그전에는 <올리브 키터리지> 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대프니 드 모리에의 책,,,이러니 나는 다락방 님과는 다른 사자자리였어. 그런데 나도 그런 책 있게 하고 싶어요....

반유행열반인 2020-07-29 07:39   좋아요 1 | URL
라로님 감사합니다. 저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만 읽어봤는데 좋다는 분 많으셔서 올리버 키터리지도 곧 읽어봐야 겠어요.

다락방 2020-07-29 11:52   좋아요 1 | URL
어떤 책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라는 건 너무 근사하지요. 그걸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사람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게 되잖아요. 그러니 저절로 그렇게 되는가 봅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도 이곳에서 재차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이었어요. 하도 추천하길래 읽어봤다,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올라오면 득달같이 달려가 보았더랬죠. 아련...
책이라는 게 저도 선물 받아보아서 알지만, 선물 받았다고 막 좋아서 바로 읽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읽고 같이 좋아해주면 기쁘겠지만 그런 일은 정말 드물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제가 좋아하는 책을 같이 좋아하는 일도 드물고요....


Breeze 2020-07-28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척 좋아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후속작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일곱 번째 파도>라고.
벌써, 읽으셨겠지요? ^^

다락방 2020-07-29 11:55   좋아요 0 | URL
당연하죠! 후속작 나오자마자 읽고 후속작도 여러번 읽었어요. 처음 읽었을 때는 뭔가 팬서비스 같은 책이구나 했는데 나중에는 가장 완벽하게 쓰여진 후속작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 일곱 번째 파도 너무 좋아해요! 그 책으로 검색해도 제 페이퍼가 우르르 쏟아질 겁니다. 후훗.

라로 2020-07-29 0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다락방 님 덕분에 열심히 읽었던 그 오래전 일이 떠오르네요!!!ㅎㅎㅎ 와~ 생각해보니 정말 오래되었는데 다락방 님은 매년 이 책을 읽으신다니!!!@@ 저 정말 너무너무너무 놀랐어요. 이 책을 정말 좋아하시는 군요! 갑자기 다락방 님에 대한 애정이 막 생기는 것 같아요. 어떤 책을 좋아하는데 (나도 아는 책) 그 책을 좋아한다고 하는 글을 자주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줄은,,,이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락방 님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니까 진짜로 자꾸 가까이 하는 그 마음이요. (뭐래?ㅎㅎㅎㅎㅎ)

다락방 2020-07-29 11:54   좋아요 2 | URL
저는 몇해전에 라로님이 좋아하셨던 [딸과 함께 오르는 산]을 땡투하고 구매한 기억이 나네요. 사둔지 오래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 중에 역시 한 권입니다. 저는 라로님을 생각하면 딱, 딸과 함께 오르는 산이 생각나요. 그 책을 언급하셨던 게 너무나 인상적이었는가 봐요!

제가 위에 반유행열반인 님 댓글에도 달았지만, 좋아하면 어쩔 수 없이 자꾸 언급하게 되잖아요. 누가 시킨 게 아니어도 자꾸 말하게 되고 자꾸 보게 되고 그러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하고 하고 또 해도 할 말이 넘쳐나잖아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저에게 그런 책인것 같아요. 자꾸 읽어도 늘 자꾸 할 말이 떠올라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로맨스 소설일 수 있을텐데 저한테는 볼 때마다 할 말이 생각나는 책이에요. 그래서 라로님의 말이 어떤 뜻인지 압니다. :)

2020-07-29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0-07-30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매년 업데이트 된다는 세벽세시 리뷰 이군요.. 올해에도 만날 슈 있다니 ㅋㅋ 정말 애정이 느껴져요 ㅎ 전 이 소설이 연애소설일 줄 알았는 데, 뭔가 그렇게 정리하기에는 다른 영역의 관계인 듯 하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그런 친구(정도가 좋겠어요.) 들이 있어요. 어떤 관계는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범주에는 들지 않아도, 참 절실하기도 마음을 웃게하게도 하지 않나요. 다락방님의 그런 관계에 대한 감상같기도 하다는 ㅎㅎ 아침에 촉촉해졋다..

다락방 2020-08-08 16:54   좋아요 1 | URL
이 소설은 사실 연애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긴 하지만요, 그렇지만 그 연애 소설이 저에게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감정에 빠져들게 해서 제가 너무 좋아해요. 저는 에미도 레오도 그리고 에미의 남편까지도 모두 이해할 수 있거든요. 저는 이 책에서 에미의 행복에 대한 욕망을 보고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것도 생각해보게 돼요. 과욕과 판단 실수가 어떻게 사람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요.

우리 계속 촉촉하게 삽시다, 공쟝쟝 님!

에이바 2020-08-0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벽세시 리뷰 기억나요! 아마도 다락방님 리뷰 읽을 때 쯔음에서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레오로 열연을 펼쳤던(!) BBC 라디오드라마도 막 듣고 그랬던 기억이 새록새록...

혹시 에미였던가요? 남편(혹은 남자친구)이랑 집안일 가지고 티격태격하게 되는데, 세탁바구니에 양말을 뒤집어 넣는 걸로 싸우다가 결국 이별까지 가는 주인공이요. 문득 그 장면이 떠올라요. 주인공이 그 양말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막 털어놓는데요. 에미였는지 누구였는지...

야식으로 벨지안 초콜릿 와플 한입, 커피 한모금 하면서 읽는 다락방님 글, 정말 좋아요!!

다락방 2020-08-08 16:53   좋아요 0 | URL
야식으로 벨지안 초콜릿 와플에 커피 한 모금이라면 거기가 어디든 세상 천국일 것 같은데요, 에이바님! 게다가 저는 이렇게 에이바님을 알라딘에서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저는 기다림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기다림을 잘 해내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한자리에 버티고 있으니 에이바님이 다시 오셔서 글도 써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양말 뒤집어 넣는 걸로 싸우는 에피소드는 생각이 안나는데 만약 그렇다면 에미였을 확률이 높네요. 후훗.
저는 2권에서 레오에게 오랜만에 이메일 보내는 에미가 떠오르네요. 내 핸드폰을 안가져왔는데 네 집에 있는 옷에서 좀 찾아봐줄래? 하던 에미요. 저는 그 순간의 장면도 너무 좋아요.

BBC 라디오 드라마도 있었군요. 저는 연극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이메일만 주고받는 편지, 1권이 끝날 때까지 서로의 얼굴도 모르는 상태로 진행되는 건 문학으로 만나는 게 최고의 수단일 것 같지만 연극과 드라마 궁금하네요. 으흐흐흐.

비 많이 오는데 잘 지내고 계십니까?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8월 도서는


'캐슬린 배리'의 《섹슈얼리티의 매춘화》입니다.


8월 한달동안 읽으면서 리뷰, 구매자평, 페이퍼, 밑줄긋기 등의 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다음주초에는 아마도 이 책을 일곱권 나란히 쌓아두고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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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7-28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 완료!! 땡스투 완료!!!!

다락방 2020-07-28 14:06   좋아요 0 | URL
구입도 베리 굿 땡투도 베리 굿입니다!

단발머리 2020-07-2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의 책도 기대되네요. 선행 금지! 학습 진도 엄수!!!

다락방 2020-07-28 14:06   좋아요 0 | URL
선행 금지! 학습 진도 엄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월이 요이땅! 하면 시작하는 겁니다, 단발머리님. 네? 아셨어요?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7-2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상품검색하면 표지가 선명히 잘 나오는데 글쓸때 이렇게 검색하여 상품을 링크하면 표지가 흐릿하다. 고객센터에 수정해달라 문의넣었다.

2020-07-28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8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8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조기후 2020-07-2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식적(?) 참여는 어렵지만 혼자 띄엄띄엄이라도 따라가보려 노력하는데 힘드네요 ㅜㅜ 그래도 끄트머리의 끄트머리엔 꼭 붙어있겠다 불끈 다짐해봅니다!

다락방 2020-07-28 15:59   좋아요 0 | URL
어쩌면 공식적 참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힘드는지도 모릅니다, 건조기후님. 순전히 자기 의지니까요. 그러나 공식적 참여를 하면 강제성이 들어오죠. 물론 강제성이라고 해서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말예요.
건조기후님은 건조기후 님의 삶을 사느라 나름 바쁘시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셔요.
그리고 조만간 그 때 말씀하셨던 제육볶음 먹으러 갑시다!!

건조기후 2020-07-28 20: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락방님. 공식적인 참여로 의지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제가 특히 바쁜 달이 있고 조금 괜찮은 달이 있다보니 들쭉날쭉 분위기만 흐릴까봐... 최대한 가능한 달이라도 따라잡아보자 하고 있는데 역시 쉽지 않습니다 흙. 그러나 마음을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보려고요, 다락방님 말씀처럼.

다락방님, 너무 슬프지만 그 제육볶음 집은 없어져버렸답니다. 어느 날 가보니 디자인 편집샵?인가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친구들이 우리 동네로 오면 항상 가던 곳이었는데... 정갈했던 한 상 차림이 종종 그리워요. ㅜㅜ

어디서든 한 번 봐요 다락방님! :)

블랙겟타 2020-07-2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 완료!! 땡스투 완료!!! (2)

다락방 2020-07-28 17:05   좋아요 1 | URL
구입도 베리 굿 땡투도 베리 굿입니다! (2)
 


















"고통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네. 인간이란 죽을 고비를 만나더라도 고통을 참고 버티어내는 경우가 있지. 그러나 누구에게나 참을 수 없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것이 있기 마련일세. 그건 용기나 비겁함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 만약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밧줄을 잡는다면, 그건 비겁한 짓이 아니네. 깊은 물속에서 나와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고 해도 비겁한 짓이랄 수 없고 말일세. 그건 단지 본능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행동일 뿐이지. 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네. 자네에게는 쥐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이지. 그것들은 자네가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압력인 셈이네. 자네는 자네한테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될걸세." -p.398

'조지 오웰'의 《1984》 에는 감시 체제하에서 사랑을 나누는 '윈스턴'과 '줄리아'가 나온다. 그러나 그들이 숨어서 사랑하는 것은 영원하지 못했고 그들은 결국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게된다. 이때 윈스턴은 버티려고 했지만 '쥐'를 이용한 고문 앞에서는 간절하게 외친다. 줄리아한테 하라고. 자기 대신 이 고문에 줄리아를 바치겠다고 하는 거다. 쥐는 윈스턴에게 견딜 수 없는 어떤 한가지였고 그는 '쥐는 안돼', '쥐만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윈스턴이 비겁하다던가 옳지 못한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누구에게나 참을 수 없는 게 있고, 윈스턴에게는 그게 쥐였던 것이다. 그는 온몸이 꽁꽁 묶여 갇힌 자신의 앞에 쥐를 든 상자를 가져온 고문자가 그의 앞에서 육식동물인 쥐를 풀어놓으려고 하자,

그와 쥐 사이에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의 몸뚱이를 갖다놓아야 한다! -p.400

라고 생각하고 결국 줄리아의 이름을 댄다. 그와 쥐 사이에 그는 줄리아를 호명한거다.

시간은 흘렀고 윈스턴은 어느날 줄리아를 마주친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줄리아는 기존에 자기가 알던 줄리아가 아니었다. 얼굴빛도 눈빛도 변했다. 영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줄리아에게도 고문은 있었고 그건 사람을 이렇게나 변하게 했다. 줄리아는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서 나는 그리고 당신은 서로를 배반했을 거라고.

우리에게는 각자의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은 대체적으로 자기 기준에서 옳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그걸 바탕으로 옳은 행동을 하게할 것이다. 신념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짓은 스스로에게 쪽팔려서 할 수가 없어, 그런 짓을 내가 하게끔 나에게 허락하지 않겠어, 그런 비열한 짓은 안돼, 그런 비겁한 짓은 안돼, 그런 치사한 짓은 안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된다'는 말은 그러므로 사실이 아니다. 내가 살고자 한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는게 아니어도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조차 꼿꼿할 순 없는 법이다. 평소라면 기회주의자로 보일까봐 취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 나의 상황이 급박해지고 급박해지고 급박해진다면, 어쩔 수 없이,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선택할 수도 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은, '내가 결국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구나'로 바뀌는 지점이 온다. 그러나 그것을 비겁하다거나 비열하다고 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오면 별 수 없지 않나. 내가 죽을것 같다면, 살기 위해서 하는 선택이 내 신념에 위배된들 별 수 없잖나. 살아야 한다.

윈스턴은 쥐가 너무 끔찍했다. 그러므로 쥐 앞에서 줄리아의 이름을 얘기했다. 줄리아에겐 어떤 것이 내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줄리아 역시 치명적인 약점으로 공격하는 바람에 역시 윈스턴을 배반했다. 서로가 서로를 배반한 뒤에 우연히 만난 그들은, 이제 그들이 예전과는 같지 않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전과 같지 않게 돼요."

"그래. 전과 같지 않게 돼." -p.410

그러나 이건 윈스턴과 줄리아의 케이스다. 저 사람은 그리고 나는 이런 경우 서로를 배반했네, 라는 생각 때문에 그들은 전과 같지 않게 되어버렸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잔아, 라고 말하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수 있다. 내가 한계에 이르러서,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 선택이 평소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을 것이었다면, 자신을 너무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 마음이 너무 아프거나 답답할 때, 슬픈 기억이나 아픈 기억이 떠올라 괴로울 때, 가만 누워서 손으로 내 윗가슴을 살살 쓰다듬는다. 그러면 손의 온기가 가슴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한동안 쓰다듬고 나면 조금은 괜찮아진다. 살기 위해 신념과 다른 선택을 하고 그래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가만 누워서 자신의 손의 온기로 자신의 가슴을 쓸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 일을 내가 해주고싶다. 내 손의 온기로 가만가만 당신의 온 몸을 쓰다듬어주고 싶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괜찮아.

그런 결정을 어쩔 수 없이 내렸다해서 눈빛과 낯빛이 변하지 않도록 해. 그래도 여전히 당신이 당신임에는 변함 없으니.





- 주말에는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헛짓거리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삶의 의미가 대체 뭘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내가 살아야 하는 목적 자체가 내게 닿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살아가는 것 역시 부질없지 않은가. 내 삶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친구와 만난 저녁, 여동생으로부터 사진 한 장이 날아들었다. 조카가 잠든 모습이었다. 졸리다고 자네, 하면서 보내준 사진. 그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면서 예쁘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수십번 느끼면서,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는 이 조카의 잠든 얼굴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얘가 왜이렇게 좋으니.


다음날 오전에는 눈뜨자마자 동생들에게 사랑한다고 톡을 보냈다. 내 동생들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맙다고. 남동생은 아침부터 왜이래? 물었고, 나는 '사랑은 아침부터 하는거야' 답했다.




- 그때 당신이 메일에 답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나는 알겠다. 이해하겠다.

당신은 내게 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답할 것이다. 




- 점심에는 비빔국수에 돈까스 셋트 먹어야지. 여동생은 왜 언니는 점심을 매번 셋트로 먹냐고 했다. 글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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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열린 책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보이는 단조로움과 보이지 않는 치열함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이고 삶이며 그런 인생들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이다.
루시아 벌린은 곧 터질 것 같은 긴장감과 작은 한 방을 품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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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1월에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을 읽고 한나 아렌트에게 너무 푹 빠져서 이 책을 읽으려고 계속 마음먹고 있었는데, 너무 읽고 싶어서 자꾸 뒤로 미루게 됐다. 읽던 소설책이 지지부진하고 지루하고 도저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아서 매우 초조했다. 한나 아렌트의 말 읽고 싶은데... 결국 다 끝마치지 못한 채로 어제 이 책을 들고 외출을 했고, 지하철안에서 펼쳐 읽으면서 뭔가 땀 많이 난 육체에 포카리스웨트 부어주는 느낌이랄까. 막 너무 좋아서, 으윽 정말 좋다, 했다.


나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던 친구는 내가 이 책을 딱히 좋아하지 않을거다, 한나 아렌트의 어떤 말들에 내가 실망할거다, 라고 얘기해주었더랬다. 나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읽자, 하고 시작했는데, 친구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다음의 문장을 보고 알아챘다. 여성주의에 대한 말이었다.



사실 나는 상당히 고루한 사람이에요. 세상에는,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여성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들이 있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여자가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모습은 그냥 보기가 좋지 않아요. 여성스로운 존재로 남아있고 싶은 여자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마땅해요.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여부는 나도 몰라요. 나 자신은 거의 무의식적으로-아니, 거의 의식적으로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네요-늘 이런 사고방식에 부합하게 살아왔어요.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그 자체로는 내 인생에서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어요. 단순하게 말해, 나는 늘 내 마음에 드는 일들을 해왔어요. -p.23


한나 아렌트는 여성해방women's emancipation을 자신의 문젯거리라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자가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한다. 나는 물론 그녀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정체화하고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고 여성해방에 힘을 쏟는 사람이었다면 더 좋았을거라고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는 매우 큰 사람이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니 만약 페미니스트였다면 여성주의에 더 힘을 실어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녀가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또 이래라저래라 하는 여성의 모습을 올바르지 못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해서 내가 그녀에게 실망하거나 그녀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한나 아렌트이고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접 가서 보고, 사유하고, 책을 쓰고, 최종적으로 살았던 미국에서는 매우 인기있는 대학교수였다. 이런 것들이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 행동, 천재적이고 사유를 하고 강연을 하는 등의 이런 행동들로 자신의 이름을 드높인 여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다. 그녀가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철학자가 아닌 정치이론가라고 불러줘, 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 자체로 그녀가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드러낼 수 있었던 그런 행동을 우선시한 사람. 나는 이런 여자들이야말로 세상에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 다른 여자들에게 본보기가 되니까. 올해 1월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서 나는 정치이론가의 자리에 그녀의 이름이 있고, 그녀의 책이 여전히 읽힌다는 게 좋았다.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이런 행동에 반한다. 이런 행동을 취함으로써, 실제 행동을 함으로써 어떤 자리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여자라는 것, 그것 만으로 나는 한나 아렌트가 진짜 너무 좋은 거다. 



이수정 박사님도 그러한데 이수정 박사님도 오디오방송이나 인터뷰에서 본인이 여성주의자라고는 정체화하지 않으신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얘기하신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에서는 그 누구보다 이름을 알린 프로파일러가 아닌가. 나는 한나 아렌트와 이수정 박사처럼 '나는 **이다'라고 말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걸 보여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말보다 행동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말로는 무엇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자기정체성은 사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말보다 행동이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다 정체화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야, 나는 불의를 보지 못해, 나는 한결같은 사람이야, 나는 용감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좋다. 행동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많은 남자들을 보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여성의 인권을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아무것도 본 게 없다. 말로는 뭔들 못할까.



말이 아닌 행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나는 너를 아껴, 너를 사랑해 라는 말들. 말로는 하늘의 별도 따다줄 수 있다. 그러나 행동은 사람을 움직인다. 너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오고, 너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너에게 맛있는 걸 사주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너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너의 옆에 오래 머물기 위해 운동을 하고. 이런 행동들이 사랑을 보여주지 나는 너가 너무 좋아서 하늘의 별도 따다주고 싶어, 라는 말은, 별을 한 개도 따오지 못한다면 말짱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런 남자들에게는 언제나 정나미가 떨어졌다. 무수히 말, 말, 말을 하는 남자들. 연애를 시작할 때, 연애의 도중, 세상 달콤한 말들을 주절대지만, 그러나 스스로의 행동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 말보다 행동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한나 아렌트와 이수정 박사는 내가 어떤 사람이다, 라고 말로 드러내는 사람이기 보다는 행동으로 어떻게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고, 나는 정말이지 이런 사람들이 자지러지게 좋다. 그리고 결국 내가 추구하는 바도 이런쪽이다. 나는 말로만 그치는 사람이기 싫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고, 내가 말하는 바에 일치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고자 한다. 또한 말을 수십개 해놓고 지키지 않는게 세상 꼴보기 싫어서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하지도 않을 것들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 




사람이 자의식에 사로잡혀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행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은 그가 보여주는 모든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요. 말하기도 행위의 한 형태예요. -p.71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말하기도 행위의 한 형태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은 옳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행위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말을 해놓고 그 다음을 어떻게 하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행위의 한 형태라고 본다. 그래, 나는 너를 위해 하늘의 별을 따줄거야, 라지만 별따러 하늘을 가지 않는다면, 하늘의 별을 따주겠다는 말하기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주는 한 형태가 아닌가. 아, 나는 한나 아렌트가 너무 멋지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에 대한 책을 하나씩 사서 모으고 죄다 읽어보고 싶다. 천천히. 































저기 두번째 링크의 전3권 셋트..깔맞춤으로 사고 싶은데 읽어본 사람들이 도저히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라고 한다. 한나 아렌트 책은 다른 책들도 그렇고 번역이 별로라는 평들이 워낙에 많다. 한나 아렌트 자체가 워낙에 어려운 문장들을 써서 그것들을 제대로 옮겨내는 게 쉽지 않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읽어낼 수 있을 것인가.. 좋은 번역이라고 평을 얻는 작품이 있다면 그걸 먼저 읽어 보고 싶다. 내가 1월에 읽었던 이 책은 좋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 같은데, 그래서 그렇게 잘읽혔나...


















위의 책을 읽고 쓴 페이퍼는 여기 https://blog.aladin.co.kr/fallen77/11436712



그리고 얘들아 이것봐...




칸트를 읽고 키르케고르 읽고 야스퍼스 읽었던 한나 아렌트 나이 열네 살... 아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천재란 무엇인가 보통 사람이란 무엇인가..나는 위의 부분을 읽고 너무 놀라서 ..열네살에 뭐라고요? 내가 열네살에 무엇을 읽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늘상 책을 읽는 나란 아이, 열네살에 버지니아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를 마스터했고... 그렇게 내 닉네임은 다락방이 되었고....그 책내용은 다락방에 갇힌 아이들, 독약을 먹여 아이를 죽이는 엄마, 그리고 근친상간.... 꼬꼬마 다락방 어릴 때 도대체 어떤 책을 읽은거야. 한나 아렌트를 봐, 키르케고르를 읽었대잖아. 키르케고르라면, 나는 아직도 안읽어봤는데. 아아.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한나 아렌트이고 다락방은 다락방인가 봅니다.....







토요일인 어제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를 만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트라우마가 내 생각보다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상처와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내 안에 있다는 것도 들여다보게 됐다. 결국 나는 울었고, 친구는 나를 달래주다 함께 울었다. 어린 시절의 어떤 한 순간에 갇혀서 어쩌지를 못하고 괴로워하는 나를 달래주며 친구도 안타까워 울었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이것에 대해서 분명히 극복을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 좋겠구나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내가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한 권의 책 때문이라는 얘기를 친구에게 했는데, 친구도 이미 그 책을 읽었다고 해서 너무 씐났다. 내가 읽은 책을 친구도 이미 읽었다니. 이런 일은 너무나 신나고 경이롭지 않은가. 만세!

















친구와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고 기분좋게 레스토랑 1층에 자리한 까페로 내려왔다. 따뜻한 커피와 티라미수를 먹다가 문득 하늘을 보았는데 너무 예쁜거다. 나는 부랴부랴 달려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내 옆에서는 한 젊은 여자가 나처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름다운 하늘에 대한 감탄과 옆에서 함께 사진 찍는 낯선 여자에 대한 어떤 동지의식이 느껴져셔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다락방: 이렇게 예쁜게 사진으로 잘 안나오네요.

낯선그녀: 눈으로 보는 만큼 안나와요.

다락방: 저기 달 떴어요!

낯선그녀: 정말이네요!



너무 씐나는 저녁이었다.





쓰고 싶은 말이 더 있는데 엄마가 냉면 해놨다고 부르셔서 냉면 먹으러 간다. 쓩-

아, 그리고 마음의 문을 닫기로 한다. 빗장도 건다.








내 기억력이 내 생각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 좋다면 나는 글 쓰는 작업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나 자신이 무척 게으른 인간이라는 걸 잘 아니까요. 나한테 중요한 것은 사유 과정 자체예요. 나는 무엇인가 철저히 사유하는 데 성공할 때 개인적으로 상당한 만족감을 느껴요. 내 사유 과정을 글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할 경우에도 만족감을 느끼고요.
내 저작이 남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물어봤죠? 비아냥조로 말하자면, 그건 마초적인 질문이에요. 남자들은 늘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어 해요. 나는 남자들의 그런 성향을 이를테면 허울만 그럴싸하지 실속은 없는 문제로 봐요.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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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26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위의 분홍색표지 <한나 아렌트>를 읽어보려 했는데, 왜 그 책이 만화라고 생각했을까요? 실망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한나 아렌트 매력 넘쳐요. 그 자리에 있어준 것 만으로도 대단하지만, 그냥 사람 전체가 매력 넘쳐요. 하이데거와의 씬 빼고 전부요.

수이 2020-07-26 20:32   좋아요 0 | URL
하이데거와의 씬조차 저는 좋았어요, 나 변태인가;;

단발머리 2020-07-26 21:10   좋아요 1 | URL
진짜 그런가? 하고 댓글 달면 나 변태인가 : )

다락방 2020-07-27 07:48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 너무 좋아요! 저는 감히 한나 아렌트처럼 될 순 없겠지만(천재도 아니니까 ㅠㅠ) 한나 아렌트처럼 되고 싶어요.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하는 사람요.
저는 하이데거와의 씬 싫지만(그래서 링크된 거에도 엄청 하이데거 까놨죠! ㅋㅋ) 우리는 누구나 어릴 적에 나쁜 사랑 한 번쯤은 해보지 않나 싶으면...(저만 그랬을지도..)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그래요.

저 분홍색 책은 만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 읽혀요. 한나 아렌트 입문서로 매우 좋습니다. 오히려 [한나 아렌트의 말]이 더 어려워요. 히융 ㅠㅠ

- 2020-07-28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표지속 그의 모습이 더 놀랍습니다.. 뭔가 진짜 포스 작렬이당🦖

다락방 2020-07-28 11:32   좋아요 1 | URL
저도 포스 작렬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리 포스를 품고 살아갑시다. 으르렁-

- 2020-07-28 20:27   좋아요 0 | URL
크르렁!!!!!

라로 2020-07-29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멋져요! 글은 더 멋지고!!

다락방 2020-07-29 08:55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감사합니다, 라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