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 점프를 하다 - 할인판
김대승 감독, 이병헌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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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남자 조연이 하는 말마다 다 개짜증나고 남자 주인공이 우산 부수는 장면부터는 더이상 참고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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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유혹 SE - 아웃케이스
김태균 감독, 강동원 외 출연 / 베어 엔터인먼트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강동원의 매력을 나도 한 번 느껴볼까 싶어서 선택한 영화인데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이십분쯤 봤는가... 이게 뭐여??????????????????? 하는 장면들의 연속이라 어이를 잃어버렸...............
하필 이 영화를 선택한 내가 잘못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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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0-09-02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강동원이 우산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 하나가 다 입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0-09-03 07:47   좋아요 0 | URL
강동원이 아무리 잘생겨도 이 영화 끝까지 못보겠더라고요. 넷플에서 다운 받았다가 삭제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리뷰를 두 개나 썼기 땜시롱 페이퍼 쓰기를 자제해야 겠지만, 어제(아니, 오늘 새벽이구먼) 내가 이상한 꿈을 꾸었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꿈에 그와 나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아마도 한 동네에 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횡단보도를 건너 자신의 집을 향해 가는 그에게 나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조심히 건너, 내게 당부하던 입모양까지..) 그렇게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뒷모습도 좋아...이러면서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까지 쳐다보다가 뒤를 돌아 나는 내 집으로 향했다. 얼마 걷지 않아 내 집이 나왔고 뭔가 약간 가게 같은 느낌의 내 집 앞에 있는 평상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다. 여기서 좀 쉬다가 들어가야겠다, 하고. 그런데 갑자기 내가 앉은 왼쪽 옆에 누가 와 앉는거다.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헤어진 그였다. 앗 깜짝이야, 당신이 여기 왜있어? 왜 왔어? 무슨 일이야? 물었는데 그의 표정이 안좋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왜냐고 물으니 (아마도 엄마 때문에)힘들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울먹이는 거다. 아이고 이를 어째. 그렇게 토닥토닥 해주다가 이제 그가 가겠다고 일어섰다. 바래다줄까, 물으니 괜찮다고 혼자 가겠다고 하는데, 그가 울면서 가는 거다. 하아. 따라가야 할까, 저 사람 괜찮을까, 생각하는데, 그 때 내 오른쪽 옆에 앉아있던 그의 자아가 일어선다.

그렇다. 그의 자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의 자아가 맞다. 그의 자아가 내 옆에서 일어섰다. 그 자아는 그로부터 분리된, 형태를 갖춘 자아인 것.


그러니까 그와 똑같이 생겼고, 그냥 그인데, 그렇다고 쌍둥이거나 이런 거 아니고 그로부터 분리된 자아인거다. 꿈 속에서 나는 내 오른쪽에 앉아있던 그를 그의 분리된 자아로 확연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만나든 헤어지든 그의 분리된 자아를 항상 내 옆에 두고 있었던 거다. 그런 그의 자아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보며 '내가 갔다올까?' 묻는다. 나는 그게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 네가 낫겠다, 하고. 지금 그 사람 힘든 것 같은데 분리된 자아가 그에게로 가 슝- 합체해주면(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의 Rev-9처럼) 그가 좀 더 힘이 생기겠다 싶었던 것.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다녀와, 했고, 그(분리된 자아)는 그(원래의 그)와 합체하러 갔다. 아마도 그가 기운을 차리면 다시 분리되어 내게 오겠지, 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의 자아를 그 자아의 주인에게 보내놓고 내 집으로 들어왔다가 깼는데, 깨고나서 이 꿈의 의미를 생각하다가, 이것은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같다.... 라고 생각했다. 그림자 사나이 같은 뭐 그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튼 이 꿈 꾸고 나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인가, 생각했고, 다니엘 글라타우어 소설의 이 부분이 생각났다,

까지 썼다가 인용문 가져오려니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 생략하겠다. 내가 아무리 뻔뻔하기로 이렇게 노골적인 문장을 가져올 순 없지. 생략한다.



다만 어떤 책인지는 올려두어도 되겠지. 후훗.
















어떤 문장인지 찾아보는 건 여러분의 몫........... =3=3=3=3=3=3=3=3=3=3=3=3=3=3=3=3




어제 출근길에 파리바게트에 들렀다. 너무너무 빵을 먹고 싶었으므로.

아침 일찍이라 선택할 수 있는 빵은 얼마 없었는데, 어쨌든 그렇게 사고 티멤버십 할인 받고, 해피포인트 적립하고, 카카오페이로 결제를 했는데, 직원분이 본인 인식 큐알코드를 대달라고 리더기를 가리킨다. 앗, 나 이거 알아. 어제 네이버 들어가서 다운 받아놨지. 후훗. 이라고 생각하면서 리더기에 내 얼굴 갖다 들이민 거는.. 왜때문일까.

리더기의 화면에 내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뭔가 빛과 선이 깜짝이는데 삑- 이라든가 찰칵- 같은 소리가 나지 않아서 왜 안읽히나, 난처했던 나는


"이거 어째야 하는거죠?"


직원분께 물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분은


"손님, 큐알 코드요. 큐알 코드 대주세요."


하시는게 아닌가. 앗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큐알코드라고 들어놓고 대체 왜 얼굴을 갖다 들이밀었던거지? 오 마이 갓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부랴부랴 폰에서 큐알코드 찾아서 인증하고 빵집을 나서는데 너무 쪽팔려서 웃음이 터질라고 하는거다.  하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쪽팔려. 다시 생각해도 쪽팔려. 회사와서 얘기했더니 한 동료는 이제 자기 아는척 하지 말라고 했다. 부끄럽기 짝이없다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이 부끄러움, 이 쪽팔림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오늘 또다시 빵집에 들렀다!(응?) 그래서 또 빵을 샀고, 이번엔 제대로 큐알코드를 인증했다. 나이쓰~~



이제 빵먹어야지. 눈누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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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0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QR코드 대신 얼굴을.... 역시 다락방님은 시대를 앞서가시는겁니다. 우리 인류가 얼굴에 qr코드를 새길 날이 얼마남지 않았어요. ^^

다락방 2020-09-02 14:1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지난번에 거리를 걷다가 한 까페에서 체온측정을 기계로 하는 걸 봤거든요. 그냥 그 앞에 서있으면 체온 측정이 되는것 같더라고요. 저도 빵집에서 순간 얼굴 들이밀어 체온 측정한다고 생각한것 같아요. 분명 큐알코드란 말 들었는데 얼굴을 들이밀다니....아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9-02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아가 여러개면 그 사람을 좀 이상하게(?) 보겠지만 이렇게 애인 옆에 두고 가는 자아는 좀 환영하고 싶네요.
저는 오늘 뚜레쥬르에 다녀왔지요. 큐알코드 안내도 있었지만 전 그냥 수기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02 15:59   좋아요 0 | URL
맞아요,단발머리님. 자기는 자기대로 행동하고 갈 길 가면서 자기의 분리된 자아 제 옆에 두고 가는거 좀 좋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낭만적이야. 인간에게 분리된 자아를 허하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오늘은 당당하게! 큐알코드를 뽝- 찍었습니다.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는 차가운 도시여자입니다! 움화화화화화화화핫.
 
판사와 형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3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는 결국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있다. 어떤 예술이든 그 예술 장르의 특성을 통해 예술가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거지만, 프리드히 뒤렌마트의 이 시도가 조금 더 특별한 것은 추리 소설이지만 추리 소설 자체로서는 그렇게 큰 매력은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추리 소설속 등장인물들이 세상은 똥이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엄청 장광설을 늘어놓는데, 그게 재미있다. 읽는 내내 '교고쿠 나츠히코 ' 생각이 났다. 미스테리+장광설 하면 교고쿠 나츠히코가 아닌가! 덕분에 교고쿠 나츠히코 다시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떠올려보니 그 뭣이냐..항설백물어 였나...사두고 읽지 않았다는 게 퍼뜩 떠올라버리네. 뭐든 읽고 싶다고 생각하면 집에 이미 갖추어놓은 나란 능력자... 차가운 도시여자로 태어나 차가운 도시여자로 늙어가고 있다.


추리에 대해 잠깐 언급하자면, 무슨.. 이 노(老)형사는, 뭐랄까, 지가 마음속으로 감으로 똭- 범인 찜해놓고 있어서 ㅋㅋㅋ 넘나 마음에 안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다보면 촉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아무래도 오래 형사로 일한 경력이 있으니 더 뛰어난 촉이 있겠지마는...... 좀.. 그렇잖아요? 독자가 같이 읽으면서, 흐음, 이랬으니 이 사람이 범인인 것 같군, 저랬으니 여기에서 뭔가 함정이 있겠군...같은 걸 할 수가 없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튼 차가운 도시여자는 이제 푸시킨을 읽으러 간다. 이만 총총.



사람들이란 항상 똑같은 존재지요. 일요일에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중심 교회)에 가든 베른의 성당에 가든 간에. 거물 악한은 풀어주고, 조무래기 악당은 가둡니다. 요컨대 세상에는, 신문에 날 만큼 눈에 띄는 살인보다 단지 약간은 유미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도리지 않는 범죄가 한 무더기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범죄들도 환상을 갖고 엄밀히 살펴보면 신문에 난 살인과 똑같은 범죄란 말입니다. 환상, 바로 그겁니다. 환상을 가져야지요! 환상의 결여 때문에 한 착실한 상인이 식욕 항진제를 먹으며 점심 식사를 하는 사이에 흔히 어떤 장사에 휩쓸린 범죄를 저지릅니다. 어느 누구도 예상 못하고, 상인 자신은 꿈도 못 꾸는 범죄지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그것을 들여다볼 환상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소홀함으로 인해 그릇되었고, 소홀함 때문에 몰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 P148

이 같은 위험이 스탈린 전체와 그 밖의 요제프(스탈린의 이름) 집안을 몽땅 합친 것보다 더 크단 말입니다. 나 같은 늙은 사냥개한테는 국가에 봉직하는 일이 이미 마땅치가 않아요. 너무나 많은 사소한 사건이 있고, 너무나 끝없이 냄새를 맡고 킁킁거려야 하니까요. 그런데 정작 추적해야 할 돈벌이 야수, 진짜 거물급 짐승들은 마치 동물원 안에 있는 것처럼 국가의 보호를 받는단 말입니다. - P149

선과 악은 다시 떨어지기에는, ‘이것은 잘됐고 저것은 잘못되었다, 이것은 선으로 통하고 저것은 악으로 통한다‘라고 말하기에는 이 인류가 낳은 지옥과 천국 간의 저주받을 결혼의 밤에 너무나 깊이 서로 엉켜버렸습니다. 너무 늦었어요!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을 이미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복종이나 우리의 항거가 어떤 사건을 초래하는지, 우리가 먹는 과일, 우리가 자식들에게 주는 우유와 빵에 어떤 착취, 어떤 유의 범죄가 들러붙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희생자를 보지도 않고, 그에 관해 아는 바도 없이 살인을 하지요. 그리고 살인자가 알지도 못하는 새에 살해당합니다.
너무 늦었어요! 현세의 유혹은 너무나 크고, 은총을 누리기엔 인간은 너무나 보잘것없거든요. 알고 보면 은총이란 결국 살아가는 것, 그리고 헛된 존재로 머무는 것, 그 이상이 못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행동의 암에 부식당해 불치의 병을 앓습니다. 세게는 썩었어요, 경감님. - P246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든 것, 올바른 행동과 그릇된 행동은 요행을 바탕으로 일어납니다. 선과 악은 추첨의 경우처럼 우연한 운명에 의해 우리 품 안에 덜어지지요. 우연에 의해 우리는 정의롭기도 하고, 우연에 의해 우리는 그릇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허무주의자라는 거창한 단어를 쉽게 쥐고, 뭔가위협적인 낌새가 느껴지는 누구에게나 그 단어를 던지지요. 거창한 포즈를 하고는, 머릿속에는 더욱 큰 확신을 갖고서. - P272

우리는 개인으로선 세상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그건 가엾은 시시포스의 작업처럼 희망 없는 일일 겁니다. 세상은 우리 수중에 놓여있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한 권력자나 한 민족, 또는 그래도 가장 막강한 악마의 수중에도 놓여 있지 않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손에 놓여 있으며 신만이 결정을 내립니다.
우린 오로지 낱낱의 개인으로서만 도움을 줄 수 있지 전체로서는 도움이 안 돼요. 이것이 가엾은 유태인 걸리버의 한계이며 모든 인간의 한계랍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구제하려고 애를 쓸 게 아니라 세계를 버티어 이겨내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나마 남은 유일하게 진실한 모헙이지요.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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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9-0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제 길게 뭐 이어지나 했더니 걍 끝이네요! 너무 짧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02 14:12   좋아요 0 | URL
원래 백자평으로 쓰려다가 밑줄긋기 해야해서 리뷰로 그나마 늘린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딩 2020-09-0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도 남겨 주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이렇게 또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맘에 드네요 ㅎㅎㅎㅎ 좋은 밤 되세요

다락방 2020-09-02 21:33   좋아요 1 | URL
저 초딩님께 쓰겠다는 말을 안했다면 리뷰 안남겼을 겁니다. 읽고 저 쪽에 치워뒀다가, 내가 뭐라도 쓴다고 초딩님께 약속했으니 지켜야한다! 하고 하루 지나 이렇게 쓴것입니다!!!!

초딩 2020-09-02 21:51   좋아요 0 | URL
아 너무 감사하고 멋지세요~ 더 감사하고 싶은데 방음이 생각보다 굉장히 안되는 벽 때문에 옆 사무실의 어린 아주 어린 친구들이 소식적 고등학교 이야기를 한시간 넘게 하고 있어
귀를 틀어 막고 노래를 듣고 있는데
온통 기가 다 빨려 가고 있어요.
내일 아침에 자전거 자물쇠를 구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싶네요.
기력을 보충해서 또 감사드리겠습니다~
🍱
 
성노동, 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 한권으로열다 1
박혜정 지음 / 열다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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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업소에 다녀왔던 경험을 남자들은 부끄럽지도 않게 떠벌린다. 성매매가 불법인 우리 나라에서 성매매를 하고 벌금을 냈던 일들이 매스컴에 터져 나와도, 남자 연예인은 다시 활동을 재기할 수 있다. 게다가 다른 남자 연예인들은 남자들이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편들어주기 바쁘다.


성매매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면 많은 남자들이 '그러면 강간이 늘어날 거다' 라고 말하며 반대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성매매업소 없어지면 너는 여자들 강간하고 다닐거야?"


나로부터 그 물음을 들었던 남자들은 백이면 백, 그게 누구든, '나는 아니지!'라고 흥분하며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되묻는다.


"그런데 왜 다른 남자들은 그럴 거라고 생각해?"



여기에는 또다른 모순도 있다. 만약 성매매 업소가 사라져서 강간을 할거라면, 성매매를 하는 것 자체는 강간을 대신한다는 게 아닌가. 이 책의 저자 '박혜정'은 성매매를 '상업적인 성착취'라고 칭한다. 그것은 성매매에 대한 적확한 용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도 그것은 증명된다. 성매매가 있기 때문에 강간을 하지 않는다면, 성매매는 과연 뭐란 말인가. 강간하지 않기 위한 수단 혹은 장치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강간과 무엇이 다른가? '성매매 못하게 하면 남자들이 강간한다'는 것은, 성매매가 강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과 5.6년전만 해도 나 역시 성매매 비범죄화를 찬성하는 쪽이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지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에게는 분명 선한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그들에게 낙인을 찍어서는 안된다는. 그 선한 의도는 그러나 결국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생각이었을까? 그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와 그들을 분리하는 것은 아니었나.


일전에 나는 포르노를 보거나 만드는 남성들 뿐만 아니라, 포르노를 보지 않는 여성들도 포르노 세상을 살 수밖에 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성매매 역시 마찬가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성을 파는 것에 대해 묵인하는 것은, 성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전제를 허락하는 셈이다. 그 안에서 과연 나는 성착취 당하는 여성들과 아예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그런 삶을 산다면 세상의 모든 다른 여자들도 그런 세상을 살게 된다. 성판매 여성보다 성구매 남성이 훨씬 숫자가 많은데, 자랑하듯 성매매 후기도 올리는 나라에서, 과연 그들이 자신의 가족이나 동료를 포함한 다른 여자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게 될까? 돈 주고 살 수 있는 여자와 돈 주고 살 수 없는 여자라는 구분 자체를 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성매매되는 세상 안에서 구성원 전체를 그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게 아닌가.



우에노 치즈코는 자신의 책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빌어, 아동 포르노는 안되고 폭력적인 포르노는 안되지만, 포르노 자체를 불허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여줬다. 어떤 건 안되지만 어떤 건 허락해도 되지, 라고 한다면, 그 기준은 과연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아동을 실제 배우로 쓰는 포르노는 안되지만, 그러나 성인을 배우로 쓴다면 아동화 시켜 내보이는 것은 괜찮은가? 어떤 포르노는 되고 어떤 포르노는 안된다면, 우리는 그 안에 안되는 요소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는 게 아닌가.


성노동을 주장하는 이들도 성매매 안에서 폭력이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것이 나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자발적으로 노동하는 것을 불법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그 자발적인것과 강압적인 것은 과연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레이첼 모랜'은 《페이드 포》에서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돈을 받으면서 스스로가 허락한 것보다 더한 것들을 수용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항의할 수도 신고할 수도 없다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자유의지일까. 그것이 자유의지라는 걸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성매매(상업화된 성착취)에 있어서 이건 되지만 저렇게 하면 안되지, 라는 기준은 과연 누가 어떻게 적용하고 그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과연 그 구분은 성착취 피해 여성들에게 얼마만큼의 효용이 있을까?



나는 성매매를 성노동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선한 의도는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성을 사고파는 것이라는 것에 전제하는 셈이며, 성착취를 하는 남자들을 가해자로 부르는 대신 구매자로 부르게 되는게 아닌가. 선한 의도는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 그리고 그 선한 의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선한 의도였을까. 성매매 여성을 성노동자로 부르는 자신에 대한 선한 의도는 아니었을까. 성매매를 성노동이라 칭하고 그 안에서 폭력적인 것에 대해서만 처벌하자고 하면, 그러면 성매매가 순수하게 안전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실질적으로 이 세상을 남자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성이라면, 단순히 선한 의도를 갖는 게 아닌, 정말로 여자들을 위한 게 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성적대상이 아니라, 물화되는 게 아니라,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과연 선한 의도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오히려 성착취가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없다면, 그것은 과연 '선한' 의도일까?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선한 의도일까?



책 한 권 전체에 밑줄을 긋고 싶었다.




쉽게 말해서 돈 몇만 원을 내고 여자를 자기 배 밑에 깔고 자기 멋대로 이용해 그 여자의 가장 사적인 부분을 침해해 본 남자가 직장에서 자기 여자 동료를, 가정에서 자기 아내나 누이 혹은 딸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 P11

내가 레즈비언 임에도 게이 남자들이나 트랜스젠더의 여성혐오를 이야기하면 소수자 혐오라거나 폭력적이라는 평가를 들었고, 이런 환경에서 퀴어 정치학이 ‘성노동‘ 담론과 연결되는 지점에 대한 토론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 P16

첫째로 성착취는 남자가 여자를 보고 대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둘째로 여자 전반의 성생활과 건강을 침해하며, 셋째로 ‘당해도 싼‘ 여자 집단을 만들어 모든 여자의 행동을 통제한다. - P25

여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여 상품화하는 대중 매체, 그리고 그 극단인 포르노에 노출되면서 남자들은 여성의 신체를 물화시키는 데서 성적으로 흥분을 느끼도록 사회화 된다. - P26

포르노로 학습한 여성 신체 비하를 몸소 실천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상업화된 성착취다. - P27

상업화된 성착취(성매매)는 남자들이 이처럼 취약한 상태에 있는 여성들에게 돈을 내고 그들의 성적 경계를 침범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그 영향은 해당 여성 뿐 아니라 모든 여성들에게 끼친다. - P31

상업화된 성착취는 강간을 당해도 괜찮다고 전제되는, 성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여성 집단을 만들어 남자 지배 체제가 전체 여성을 비하하고 통제하는데 사용한다. 예전에 성착취 집결지에서 만난 피해 여성이 "남자들이 길거리에서 아무 여자나 잡아다 강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데가 없으면 안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나는 활동가로 일하는 동안 이 말을 여러 여성에게서 들었는데, 이는 여성들만이 아니라 성착취의 존속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주장이다. 성착취 피해 여성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여성들이 이런 사회적 시각을 내면화해 자신의 고통과 비참함을 위로하는 데 사용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여성들이 받는 ‘손님‘이라는 남자들이 하는 행위가 사실상 강간버모가 다르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 P31

수전 브러운밀러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서 "모든 여성은 강간의 피해자다. 실제로 강간당했든 당하지 않았든, 여성들에게는 언제 강간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도사리고 있다. 강간 가능성만으로 여성의 행동 반경은 위축된다"라고 하며남자 지배 사회가 여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강간을 사용함을 지적했다. 강간 뿐만 아니라 상업화된 성착취도 마찬가지다. 아무 남자나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창녀‘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 여자들은 남자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재단한다. 헤어진 여자친구의 나체 사진이나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는 행위도 이 여성을 아무 남자에게나 ‘딸감‘(남자의 자위에 사용되는 도구)으로 소비될 수 있는 여자로 ‘창녀화‘시키는 폭력 행위이다. 이런 행위를 통해 남자는 여자에게 "네가 나의 요구를 거부하면 나는 너를 ‘창녀‘로 만들 수 있다"는 권력을 보여준다. - P32

성착취 생존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낸 작가 봄날은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폭력은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던 나의 일상에서는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폭력이라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참아내야 했던 순간들이었다. 세상은 구매자들이 그 돈으로 나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알려고 들지 않았다. 돈을 받은 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손가락질했다. 그 돈은 구매자들의 권력이다. 구매자들은 그 돈으로 내 영혼까지 산 것처럼 굴었다.

성폭력을 당해도 저항할 수 없는 여자, 저항해도 세상이 피해자로 보아주지 않는 여자. 이런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엄청난 공포다. - P35

반성착취 단체에서는 여성들이 아래에서 설명하는 여러 기제로부터 해방되어 성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법률 지원, 의료 지원, 직업훈련 지원, 상담 지원 등을 한다. 보통 피해자들은 한 가지 지원만이 아니라 여러 지원을 동시에 요하는 경우가 많다. 상업화된 성착취를 직업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세상 어느 직업도 그 직업에서 빠져나오기 우해 이토록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없다. 여성들을 성착취에 묶어 두는 아래와 같은 장치들을 살펴보다 보면 상업화된 성착취는 일이나 직업이 아니라 착취라는 것, 그리고 여성 개인이 가진 모든 자원을 갉아먹고 황폐화시키는 구조적 여성 폭력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47

사실 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 대부분이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들을 피해로 인지하기 시작하면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이고, 주변 누구도 자기를 피해자로 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 피해가 이해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피해를 신고하러 경찰서에 가도 경찰이 여성을 피해자로 보지 않고 "자기 선택으로, 자기가 좋아서 성매매하다가 빚 갚기 싫어서 피해를 주장하는 여자"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성노동론자들이 여성들을 ‘피해자화‘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피해자가 아무리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 사회에서 누가 이 여성들을 ‘피해자화‘ 할 수 있단 말인가? - P60

상업화된 성착취는 다른 직업과는 다르게 여성이 일을 오래 할수록 낮게 평가되고 값이 떨어진다. 그래서 업소에서 오래 일한 여성일수록 피해 경험이 누적되었음에도 오히려 포주에 대한 심적 의지나 충성도는 커질 수 있다. 대우가 더 나은 업소를 가기 힘들고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 P70

남자의 여자에 대한 성적 지배, 그리고 이를 통한 수익 창출을 위해 고안되고 창조된 상업화된 성착취에서는 이런 목적에 순응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자는 있을 수가 없다. 이 공간의 창조와 유지를 추동하는 것은 남성 수요이며 여자는 동원되고 이용된다. 상업화된 성착취는 구조적으로 남자의 지배와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팔리는 여자는 일할수록 자원이 없어지고 피해가 누적된다. 따라서 문제를 제공하는 자, 즉 수요자로서 성착취 산업을 추동하는 남자와 이용당하며 피해를 감당하는 여자를 구분해서 취급해야 한다. - P71

성착취 경험이 있는 남성 101명을 인터뷰한 연구에 따르면 성착취를 단념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남자들은 성법죄자 등록을 들었고 그 다음으로는 구속 수감이었다. 자신의 성착취 사실이 가족이나 직장, 공공에 알려지는 것, 그로 인해 불이익을 보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구속 수감 기간에 대해서 3일 수감에 대해서는 71%가, 3주 수감에 대해서는 83%가, 한 달 수감에 대해서는 100%가 단념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연구에서 보듯 사회봉사 명령이나 교육으로는 단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 P77

소위 섹스 치료서들은 노골적으로 여자들에게 성착취의 재현물인 포르노를 보고 따라하도록 조언하는가 하면, 남자의 성적 요구에 맞춰 주기 위해 여자들에게 일정 성행위가 유발하는 불쾌감이나 고통을 간과하거나 참으라고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자에게 구강 섹스를 해 줄 때 구역질이 나지 않도록 여자들에게 미리 술을 마시거나 인후염용 사탕을 먹어서 목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이런 책들은 하나같이 여자들에게 능동적으로 섹스를 추구하고 섹스를 즐기라고 말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남자의 쾌락을 위해 여자가 자신의 욕구를 부차시하도록 주문하고 있으며 자신이 느끼는 고통이나 불쾌감조차 무시하거나 참아내도록 하고 있다. - P92

수백 명의 성착취 피해 여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원해 온 사람으로서, 나는 이들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성노동‘을 주장하는 데 심히 모욕감을 느꼈다. 페미니즘은 여자도 인간이라는 주장이고 여자가 성착취를 당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여자가 남자에 의해 대상화되고 물화되는 남성지배체제를 해체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중요한 목표인데, 이들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성착취 당하는 것을 ‘디폴트(기본값)‘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P102

여성들의 행위성이 무시될까 봐 걱정하는 학자들의 우려와는 정반대로,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스스로 인정하고 이를 여성단체에, 경찰에 말하는 일은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신 더 큰 용기와 위험 부담이 요구된다. 우리 사회는 돈 없는 여성이 몸 파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피해라고 여지기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이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하는 순간 포주와 성착취남을 가해자로 지목하고 그들에게 맞서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는 그들의 폭력을 직접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엄청 무섭고 어려운 일이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미디어와 친‘성노동‘페미니스트들은 포주와 성산업에 맞서는 여성들이 아니라 성산업에 순응하고 포주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당사자‘만을 당당한 주체로 묘사한다. - P106

피해자가 피해를 말하는 것은 가해자를 지목하는 행위이므로 그 자체로 저항성을 가진다. 이들의 목소리를 주체적인 저항이 아니라 ‘피해자 서사‘로 규정하고 무시하면 남자 지배 체제에 이로울 뿐이다. - P107

성착취 근절주의자들이 상업화된 성착취는 본질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근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성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신매매는 나쁘지만 ‘자발적인 성매매‘는 괜찮다고 한다. 성착취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은 나쁘지만 ‘성매매‘ 자체는 괜찮다고 한다.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성매매‘는 나쁘지만 성인의 ‘성매매‘는 용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성착취를 용인할 수 있는 ‘성매매‘와 그렇지 않은 ‘성매매‘로 나누는 것은, 상업화된 성착취 자체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 위하미다. 근절주의자의 시각으로 보면 이런 주장은 괜찮은 성폭력과 나쁜 성폭력을 구분하자는 말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는다. - P113

상업화된 성착취를 인신매매와 ‘자발적 성매매‘로 나누어 일부를 합법화하는 것이 성착취를 줄이는 데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은, 성산업을 좌지우지하는 남자 수요, 즉 ‘손님‘들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돈을 내고 신체 침해권을 갖게 된 여자가 합법적으로 등록한 ‘성노동자‘인지, 다른 나라에서 인신매매되어 온 여자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착취남의 목적은 자신이 돈을 낸 시간 내에서 여자의 신체를 이용해 사정하는 것이며, 같은 돈을 주고 성착취를 한다면 그 제한된 시간 안에 가능한 한 여자의 신체를 많이 침해하는 것이 이들에게 이익이다. - P119

성착취남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가성비 좋게‘여자를 침해할까이지, 그 여자가 어떤 인생사와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가 아니다. 성착취 경험이 있는 남자들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난다. 이들의 3분의 2는 성착취 피해 여성 다수가 포주에게 꼬임을 당하거나 속아서, 또는 인신매매 당해서 성산업으로 유입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P120

우리가 ‘성매매‘를 그 현실에 맞게 성착취로 개념화하고 성착취로 부르기 시작할 때, ‘윤리적인 성착취‘와 같은 모순적인 말이 성립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래서 문제의 본질을 짚는 것, 그 본질에 맞는 제대로 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운동에서 매우 중요하다. 성착취 문제를 ‘성매매‘라고 부르면 윤리적인 성매매도, 성매매 합법화도 가능하게 여겨지지만 윤리적인 성착취, 성착취 합법화는 말 자체로 모순이 되어 버린다. - P123

우리나라는 유흥주점, 룸살롱에서 여자를 접대부로 고용하는 것이 합법이라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옆에 앉혀 놓고 술 따르게 하고 성희롱을 하는 행위가 합법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에 제정된 식품위생법 및 그 시행규칙에서 유흥종사자를 처음 명시했고, 현재 유흥종사자는 법에서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로 정의되어 있다. 법 규정상의 순화된 언어와는 달리, 실제로는 남자들이 얌전히 접대부 옆에 앉아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거나 접대부에게 정중히 노래나 춤을 요청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유흥주점이 ‘성매매‘가 이루어지거나 알선, 연결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사실 법 제정자들도 유흥주점이 성착취의 장소라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위생분야 종사자 등의 건강진단 규칙‘에 따르면 유흥접대부는 의무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 P137

실제로 성착취 피해 여성들을 때리고 살해하는 것은 성착취남들이지만 성노동론자들은 여성들을 죽이는 것은 사회적 낙인이라며 남자가 여자를 성착취 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판단도 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성노동자‘ 운동이라고 하면서 포주들도 ‘성산업인‘이라며 ‘성노동자‘에 포함시키고 그들의 후원을 받는다. 또한 성노동론은 성착취가 가지는 폭력적 성격을 무시하고 이를 ‘노동‘으로 포장하여 피해자들이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 P167

근절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성착취 문제를 논할 때 ‘억압‘, ‘착취‘, ‘폭력‘, ‘가해‘, ‘피해‘ 등 남성 수요와 포주에 대한 적대가 분명한 단어들을 사용하는데 비해, 입장이 없거나 친‘성노동‘인 페미니스트들은 ‘낙인‘, ‘차별‘, ‘소수자‘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남성 수요와 포주의 폭력적, 착취적 본질을 가리고 ‘성판매자‘들이 건강권이나 기타 시민적 권리에서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하자는 쪽으로 슬쩍 화살을 돌려 버리게 만든다. ‘소수자‘와 ‘차별‘의 관점으로 성착취 문제를 보는 것은 성착취 자체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고 ‘성노동자‘, 또는 ‘성판매자‘가 당하는 차별 대우만 문제시하며 근절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 P174

여성을 ‘피해자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포주와 성착취남을 ‘가해자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연결된다. 저자(원미혜)는 글에서(「성판매 여성의 ‘인권‘탐색을 위한 시론」‘성판매 여성‘이라는 용어가 더 중립적이라서 이 용어를 쓴다고 했는데, ‘성판매 여성‘이라는 말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성판매‘는 성이 사고 팔릴 수 있는 것을 전제하는 단어이며 성착취 피해자들이 돈을 받고 자신의 몸을 타인이 성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것이 폭력 피해나 피착취가 아니라 ‘거래‘행위임을 전제하는 용어이다. 가해자, 착취자들을 지우고 여성들의자발성, 행위성만을 가해자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것은 페미니즘 학문이 아니다. - P179

‘성노동자‘ 운동 진영은 성착취 근절주의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스워프SWERF‘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성노동자를 배제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라는 뜻이다. - P183

게이 남성들은 일면식도 없는 다수의 타인과 즉석에서 하는 성관계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게이 활동가들은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낙인 때문에 벽장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같은 동성애자이지만 레즈비언들은 이러한 찜방 문화가 없다는 데서, 이것이 동성애자라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 ‘남성성‘에서 오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 P193

이제 반동 세력은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라는 언어를 사용해 남자들의 성착취 및 남성우월주의적 섹슈얼리티의 정상화를 정당화한다. 이들은 여자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성을 팔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여성을 위한 것,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성별 권력을 행사하는 남자들을 가려주고 결국 남자들이 더 많은 여자에게 성적으로 접근하고 착취할 기회를 보장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착취 피해자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 선한 의도에서 ‘성노동자‘나‘ 성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런 용어가 착취를 서비스 소비로 둔갑시켜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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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9-02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목을 통해 아주 정확히 보여주는 것 같아요. 성매매는 노동이 아니라 착취다.
저도 곧 이 책을 읽게 될 것 같아요^^
앞뒤 살펴보니 열다북스 책이네요. <여자는 인질이다>, <젠더는 해롭다>, <포르노랜드>의 열다북스가 열일하네요.
힘내라, 열다북스!!!

다락방 2020-09-02 16:24   좋아요 0 | URL
제목부터 아주 세지요?
책 한 권 전부 밑줄 긋고 싶은 책이었어요. 읽노라면 우리가 이미 읽었던 [페이드 포], [포르노랜드], [섹슈얼리티의 매춘화]가 계속 생각난답니다, 단발머리님.
저에게 이 책을 읽는 건 좋은 독서였는데 단발머리님께도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