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퇴근후 남동생과 술을 마시며 뉴스를 함께 보고 있을 때였다. 뉴스에서는 뜨거운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입 안에 안좋다는 당연한 얘기를 기사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기사를 내보내는 기자가


"뜨거운 음식을 먹기전에는 후후- 이렇게 불면 온도가 좀 내려갑니다. 이렇게 식힌 후에 드세요."


라고 하는게 아닌가. 나와 남동생은 너무 깜짝 놀랐다. 아니, 뭐 저렇게 당연한 얘기를 뉴스에서 내보내지? 그러면서 둘이 깔깔 웃었더랬다. 뜨거운 음식 후후 불어 식혀먹는거 우리 어린 조카들도 다 아는데! 어떻게 저렇게 배고프면 음식을 먹으세요 같은 당연한 말을 하지?? 저거 하면서 기자도 웃기지 않았을까? 남동생과 나는 계속 웃었다.


















'안똔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소설선집'이다. 분량이 저마다인 단편들을 여러편 묶어두었는데, 이 책이 좋다는 건 오래전부터 빈번하게 들었던 바, 얼마전에 친애하는 서재 지인의 페이퍼에서 소개받았던, 이 책의 표제작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제일 먼저 찾아 읽었다. 아니, 제일 뒷편에 있더라. 흐음, 제일 뒤에꺼 먼저 읽게 생겼군, 하고는 읽는데 아, 진짜 너무 좋은거다. 체호프는 예전에도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바지만, 그려내는 인물들이 생생하고 판타지를 집어 넣지 않는다. 나는 소설에서 이런 부분들이 정말 좋다. 등장인물들이 그냥 나같은, 우리같은 인간인 거다. 사랑을 하더래도 24시간 쉼없이 상대가 맨날 예뻐보이는 건 아니잖아, 때로는 순간순간 어휴, 저 옆으로 좀 사라졌으면, 싶을 때도 있고, 아오 귀찮게 지금은 말 좀 걸지 말지, 할 때도 있지 않나. 오늘은 늙어보이네, 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할 때도 있고, 으, 저런 점은 좀 싫다..할 때도 있고. 기본적으로 어떤 싫은점이나 단점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기는 하지만, 사랑은 24시간 내내 예쁘기만한 그런 판타지가 아니잖아.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좋았다. 몹시 지친 하루 퇴근해 집에 가서는 와인을 개봉해서 입에 물었다 삼킬 때, 입 안 가득 떫은 맛이 퍼지고 그리고 목구멍을 타고 넘어 들어가서 온 몸에 퍼지는 느낌이 들면서, '하아, 바로 이거야' 하는 그런 식의 느낌이, 체호프의 소설 속에는 있다. 너무 좋아요 ㅠㅠ



그리고 <문학 교사>란 단편에서 풋- 하고 웃었다.

화자인 '니끼찐'은 교사이고 마을의 '마냐'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어하는데, 그런 니끼찐이 같이 사는 룸메이트로 동료 교사인 '이뽈리뜨 이뽈리띠치'가 있다. 이 이뽈리뜨 이뽈리띠치가 내가 위에 언급한 저 뉴스같은 사람이었다.


「오늘 날씨는 정말 좋았습니다!」니끼찐이 그의 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이런 날 어떻게 방 안에만 앉아 있을 수 있는지 놀랍군요.」

이뽈리뜨 이뽈리띠치는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 말없이 지내다가 가끔 말을 한다 해도 누구나 다 오래전에 아는 그런 이야기나 했다. 지금도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 멋진 날씨로군요. 지금이 5월이니까 곧 진짜 여름이 올 겁니다. 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겨울에는 난로를 때야 하지만, 여름에는 난로가 없어도 따뜻하답니다. 여름에는 밤에 창문을 열어 놓아도 따듯하지만, 겨울에는 이중창을 해도 춥지요.」

니끼찐은 그의 책상 옆에 1분도 앉아 있지 않았지만 따분해졌다. -<문학 교사>, p.22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 어젯밤에 자기 전에 읽다가 너무 웃겨서 ㅋㅋㅋㅋㅋㅋ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겨울에는 난로를 때야 하지만 여름에는 난로가 없어도 따뜻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된다는거잖아. 너무 웃긴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사람들의 대화라는 게 사실 다 뻔한 말들의 연속이기는 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라고 하는데 너무 웃긴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사와 지리 교사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아, 그러고보니 말야, 예전엔 날이 더울 때 이런 일이 있었대, 라면서 특유의 지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도 있을텐데.... 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라니. 뜨거운 음식은 후후 불면 온도가 내려갑니다, 라는 것과 같다. 얼음은 실온에 두면 녹는다.



이뽈리뜨 이뽈리띠치의 너무나 당연한, 그래서 웃긴 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니끼찐은 드디어 마냐와 결혼을 했고, 이뽈리뜨 이뽈리띠치는 그 결혼식에 와서 축하를 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거다.



역사와 지리 교사이며 언제나, 누구나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이야기만 하는 이뽈리뜨 이뽈리띠치가 가장 다정한 표정으로 내 손을 꼭 잡고 감격스럽게 말했다.

「지금까지 당신은 독신으로 홀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신은 결혼도 했고, 이제 둘이 함께 사는 겁니다.」-<문학 교사>, p.23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터졌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이 캐릭터 근데 너무 단역이라 조금밖에 안나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그 프로그램보다 웃겨... 아아, 나도 나중에 결혼식장가면 결혼하는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지금까지 혼자 살았지, 그렇지만 지금은 결혼도 했고, 이제 둘이 함께 사는거야.


그러다 자식을 하나 낳으면 이렇게 말해줘야지.


너는 지금까지 둘이 살았지. 이제 자식을 하나 낳았으니 셋이 사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큰웃음 주시는 이뽈리뜨 이뽈리띠치 되시겠다.



이 책의 모든 단편이 좋았지만 <어느 관리의 죽음>은 첫부분에 나와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인상적이다. 총 다섯페이지의 짧은 단편인데, 와 , 대단하다. 그러니까 회계관리인 주인공이 오페라를 보다가 갑자기 재채기를 해서 앞자리의 통신부 장관에게 침을 튄다. 으이크 이를 어쩐담 싶어서 작게 사과의 말을 건넨다.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고. 이에 장관은 괜찮다고 하는데, 주인공은 연신 사과를 하는거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그러자 장관은 알았으니까 좀 조용히 하라고, 오페라를 듣게 좀 그만하라고 하는거다. 주인공은 너무 당황한다. 그래서 휴식시간에 가서 다시 사과를 하고 장관은 아니 아까 다 끝난 얘기를 왜 또 하냐고 빡이 쳐서 대꾸를 하는데, 주인공은 아아, 이것봐 화가 나있어...하고 걱정해서 집에 가 아내에게 이 일을 얘기하는 거다. 아내는 아이쿠 이를 어째, 용서를 구하세요, 하고, 주인공은 직장에 찾아가 또 용서를 구하고... 장관은 아예 무시해버리고...아아 왜 무시하실까, 소심하게 걱정하다가 또 기다렸다 사과를 하고.... 이에 장관은 나를 놀리는거냐며 더 화를 내고.....



아아 읽는 내가 다 쪼그라든 소설인거다. 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소심한 사람들이여,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물론 나도 어느 부분에서는 소심하기 짝이없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재미있는 소설집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곧 다시 한 번 읽어볼거다.



벌써 9월 중순이다. 여름에 무풍으로 에어컨을 틀어놓고 잤었는데 이제 에어컨 없이도 잘 잔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야 시원하지만 가을에는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어제는 뭣때문인지 졸려서 미치겠는데 잠이 오질 않았고, 에잇, 누워있어봤자 뭘하냐, 싶어 다섯시에 일어나 20분간 요가를 했다. 고작 20분이었지만 등 한가득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그리고 출근을 하는데 날씨가 너무 시원한 게 좋았다.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니 지금 다들 뭔가 좀 쌀쌀하게 느끼는 것 같았지만, 나는 요가 덕인지 몸에 여전히 열이 있는 것 같았다. 오는 길에 까페에 들러 내가 먹을 간식과 커피를 샀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해서 정원에 나갔는데 바람은 시원하고 새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아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고 그렇게 이십년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늦잠 자는 걸 꿈꾸곤 하는데, 매일매일 '퇴사하면 맨날 늦잠잘거야' 같은거 생각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퇴사한다면,


1. 머리를 빡빡 민다

2. 매일 늦게 일어난다


정도가 목표이다. 지난번에 <비긴 어게인> 보는데 가수 이소라가 너무 편해 보이는거다. 저 머리 딱히 신경쓸 것도 없고, 걍 샤워하면서 훅- 감아치우면 되겠구먼, 생각이 드는 거다. 좋았어!


어쨌든 그렇게 매일 일찍 일어나는 게 싫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침형인간으로 살아오는 게 싫다고 몇 번이나 말해왔지만, 아침엔 아침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더군다나 여름이 지나면 아침이 좀 더 고요해진다. 나는 여름의 이른 아침, 활기, 밝은 빛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이 가을의 아침 고요함도 너무 좋다. 아침 바람, 아침 소리, 아침 빛. 겨울에는 또 겨울만의 아침이 있다. 겨울에는 출근할 때면 아침이 너무 깜깜한 게 싫지만, 그래도 회사에 도착하면 해가 뜨면서 세상이 밝아지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가슴가득 만족감을 준다. 늘 아침형 인간 되기도 싫고, 퇴사하는 즉시 벗어나는 인간이 될거라 말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아침 특유의 성질 때문에 아침을 좋아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쉼없이 이렇게나 아침형 인간으로 살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퇴사할 때쯤이면 나이가 많아서, 내 육체가 나도 모르게 아침 일찍 눈을 뜨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나 할머니 보면 새벽같이 일어나시던데, 나도 퇴사 후에는 나갈 직장이 없어도 새벽부터 눈뜨게 될지도 모르지.



어제는 주문한 책들이 도착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kg 빼고 평생 유지합니다》친구 서재에 올라온 거 보고, 오잉 뭐야, 하고 잽싸게 주문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거 본다고 내가 빼고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혹시 아나, 내가 뭔가 달라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톤 체호프'의 책을 읽기 위해 작가소개를 보면 그는 모스끄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고, 의사가 되기까지 생계를 위하여 필명으로 단편을 썼다고 한다. 아니, 본업이 의사고 그걸 하기 위해 부업으로 글을 썼는데 이렇게 잘 쓰다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일전에도 체호프의 단편을 읽었었는데, 뭐 다른게 더 없나, 봤더니 이런 책이 있어서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간식으로 사온 보늬밤 몽블랑 데니쉬도 있고, 아메리카노도 있다. 그리고 오늘 또 주문한 책들이 올거다.

매일 시간이 흐르는 걸 간절한 마음으로 붙잡고 싶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저 사는동안 즐겁게 사는 것밖에는 없겠구나 싶다. 그래도 나이들어가는 건 좀 초조할때가 있다. 나 괜찮은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초조하고 걱정될 때가 더러 있지만, 이렇게 순간순간의 날씨나 온도, 습도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산다. 그리고 간식 때문에...






그는 언제나 자신의 경우처럼 남들을 판단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았고, 누구나 밤의 덮개 같은 비밀 아래서 자신만의 가장 흥미로운 진짜 생활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각자 개인의 생활은 비밀 속에서 유지되며,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에 교양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예민하게 사생활의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지도 몰랐다. -<개륻 데리고 다니는 부인>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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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9-15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 예찬 너무 좋으네요. 사는 동안 즐겁게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되구요. 다락방님 덕분에 좋은 아침 되었어요. 헤헤!

오늘의 명언 : 뜨거운 건 후후 불어서 식혀서 먹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15 12:07   좋아요 0 | URL
아침과 밤은 다릅니다. 아침은 불 안켜도 환하지만 밤은 불을 켜야 환해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아침도 너무 사랑하고 오후도, 저녁도, 밤도 사랑하는 사람이라서..가슴 안에 사랑이 가득 넘치는 사람이라서 사는 일이 순간순간 즐겁습니다. 물론 때로는 슬프고 우울하고 절망이 찾아오지만... 분노는 그보다 더 많이 찾아오지만...디스 이즈 더 시티 라이프..... 이것이 차가운 도시 생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뜨거운 건 후후 불어서 식혀 드세요, 단발머리님!

2020-09-15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5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0-09-1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사 전과 퇴사 후는 다르지요. 퇴사 전에는 머리를 길러야 하지만, 퇴사 후에는 머리를 밀고 시원하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체홉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완전 마음에 드셨다니 흐뭇합니다. 저도 체호프 단편집은 열린책들, 민음사, 그리고 저 펭귄 클래식 버전 갖고 있어요.

10킬로 빼고 평생 유지했다는 저 책 혹하네요. ㅋㅋㅋㅋㅋㅋ 읽고 *실천*하고 알려주세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15 09:36   좋아요 0 | URL
머리 밀면 너무 시원하고 편할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도 한 번 밀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얼른 그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잠자냥님, 체호프 왜이렇게 소설 잘써요? 표제작도 그렇지만 다른 단편들도 다 너무 좋아요! 야, 이런게 소설이구나, 이런게 소설가야..나따위, 소설 쓸 생각을 하질 말자, 막 이런 마음도 생겼어요. ㅋㅋㅋㅋㅋ

10칼로 빼고 평생 유지했다는 책, ‘읽기만‘ 하고 알려드리면 안되나요? 실천..은 제가 자신 없는 분야라서 말입니다. 킁킁.

잠자냥 2020-09-15 09:41   좋아요 0 | URL
체호프 그는 우리의 소설 쓰고픈 의지를 꺾는 무정한 사나이..... 저도 체호프 읽으면 나 따위가... 하고 아주 겸손해집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15 09:45   좋아요 0 | URL
우리는 체호프의 소설을 읽고 이렇게 겸손을 배웁니다.....

blanca 2020-09-15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빡빡 미는 것 ㅋㅋㅋ 머리는 저도 숏커트라도 시도해볼까 생각중입니다. 체호프 천재죠! 그런데 제가 어디선과 읽어보니 톨스토이가 과도하게 체호프를 좋아해서 데리고 다녀서 아내가 둘 사이를 엄청 의심했대요. 너무 놀랐어요. 책상에도 젊은 체호프 사진 있고 막 그랬다고.

시간. 올해 유독 그렇죠. 그냥 순간 순간 즐겁게 사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커피를 다시 시작했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0-09-15 12:06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제 머리는 이미 숏컷인지라..물론 지금 코로나 때문에 미용실을 안가서 엉망진창 머리가 되어버렸지만요. 이러다 앞머리 묶고 다니는 단발 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톨스토이가 체호프를 그렇게나 좋아했다니 ㅋㅋㅋ 아니 근데 톨스토이도 잘쓰고 도스트예프스키도 잘쓰고 체호프도 잘쓰고 러시아는 대체 무슨 난리가 난거랍니까. 다들 왜그렇게 천재적으로 소설을 잘 쓰죠? 소설 쓰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지만 역시 접어야 할 것 같아요. 안돼 안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피 다시 시작하셨다니, 블랑키님, 즐겁고 행복하고 아름답고 복된 커피 생활 즐기시기 바랍니다! ㅎㅎ

수이 2020-09-1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삭발하면 시원하고 좋아요. 스물일곱인가 충동적으로 삭발했는데 시원했어요. 한겨울이라서 좀 춥긴 했는데_ 다시 삭발할 일이 없으면 좋겠다 싶은데 인생은 알 수 없는 거니까! 다락방님 삭발하면 예쁠 거 같아요. 잘 어울릴 거 같고. 체홉은 읽고 읽고 읽어도 좋아요. 자고 있겠다, 잘 자요, 다락방님!

다락방 2020-09-16 08:32   좋아요 0 | URL
오, 수연님이야말로 삭발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수연님 되게 훤칠한 이미지여서 삭발하면 되게 근사할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상상해보니까 수연님은 수녀복 입어도 엄청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뭐든 잘 어울릴 듯요.

22:23 이면 저 자고 있었네요, 수연님. ㅋㅋ 잠이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끄고 누워있을 시간인 건 맞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0-09-1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다락방님 글만 봐도 웃기네요
그 기자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닌가요 ㅋㅋ
저렇게 뻔한말만 하는 지루한 사람이 소설에서는 웃음을 주다니 아이러니하네요.
저도 아침형인간이 아닌데 타의에 의해 아침형인간으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 한명인데요 아침을 좋아하기도 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이렇게 살지 않고 맘대로 살 수 있었다면 아침의 매력은 영영 몰랐겠지요ㅎㅎ 아 그래도 주말만큼은 늦잠 좀 자고 싶다으아ㅠㅠㅠ

다락방 2020-09-16 12:12   좋아요 0 | URL
독서괭 님의 이 댓글은 인생의 진리를 알려주는 댓글이네요.
이렇게나 뻔한 소리만 늘어놓는 인물인데 소설 속에서는 큰 웃음을 줬다는 것도 독서괭 님의 댓글로 깨달았어요. 정말 그렇네요.
강제적으로 아침형 인간으로 살지않았다면, 저 역시 아침의 매력을 모르고 살았을 것 같아요. 이른 아침을 경험해보지 않았을테니 말예요. 그러고보면 어쩔수없이 먹고 살기 위해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온 것도 거기에 다 나름의 의미가 있는건가 싶어지네요.

저는 주말에 늦잠도 좋지만 낮잠도 너무 좋아요! 평일에 허락되지 않는 낮잠이 주말엔 허락되잖아요. 저는 항상 오후에서 초저녁 사이에 졸린데, 주말엔 그 시간에 거리낌없이 잘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ㅠㅠ

han22598 2020-09-17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퇴사ㅋㅋ 하고 대학교 들어가자 마자 머리를 밀고 노랗게 염색한 적이 있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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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머리때문에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이 생겼어요...즐거운 경험이었어요.
하지만계속 그 머리 스타일로 유지하지 않을거면 다시 머리 기는 동안 참아내야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ㅠㅠ 그래서 저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ㅋㅋㅋ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얼렁 사서 보고 싶어지네요 ㅎㅎ

다락방 2020-09-17 07:46   좋아요 0 | URL
퇴사하고 집에서 쉰다면 사실 저는 머리 삭발을 유지하며 살면 될것 같아요. 바리깡 사다가 좀 길면 밀고, 또 밀고... 저는 지금 아주 짧은 단발인데 매일 감는 것도 너무 귀찮고 머리 말리는 것도 귀찮거든요. 이것좀 그만하고 살고 싶어요 ㅠㅠ 회사를 그만둠과 동시에 머리 감고 말리는 것도 그만두고 싶습니다 ㅠㅠ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 실린 모든 단편이 다 좋아요! 추천합니다! 으하하하.

로제트50 2020-09-17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른 표지의 <개를 데리고...>를
가지고 있는데 이 가을에 읽어야겠어요^^
아, 어제 자런의 새 책을 받았지요~
비록 여성주의 책은 아니지만 이런 데서
공감의 작은 기쁨을 느끼며~^^;;

다락방 2020-09-17 13:08   좋아요 1 | URL
제 페이퍼 읽고 호프 자런 신간 산 친구로부터 어제 연락이 왔어요. 정말 재미있고 좋다고요. 너무 좋아서 추천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었대요. 히히히히히.
저도 아직 읽기 전이지만, 재미있게 읽읍시다, 로제트50님.
같은 책을 읽는다는 건 정말 짜릿하지 않나요? 전 같은책 읽고 이야기나누는 거 너무 좋아합니다. 후훗.
 

"내가 충실하거나 충실하지 않았을 때에도, 언제나 사랑에 빠져 있는" 남자. 이 고백을 남겼을 당시 아렌트는 쉰네 살이었고 하이데거는 일흔을 넘긴 나이였다. (p.11)

















나는 이 사랑의 당사자가 아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그들의 사랑을 이렇게 간접적으로나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다. 독자이자 관찰자로서의 나는 하이데거가 너무 밉고 짜증난다. 이미 부인과 아들 둘이 있으면서 어린 제자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지점부터가 싫다. 게다가 한나 아렌트가 매우 영민한 학생이었다는 것도 싫다. 하이데거는 그렇게 어린 나이의 상대가 자신과 대화할 수 있음을 즐겼다. 자신의 가르침을 흡수하고 또 거기에서 확장되는 사유를 할 수 있는 학생.

애시당초 열일곱살이나 어린 학생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고백까지 할 수 있는 그 지점이 정말 역겹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아렌트와의 관계를 놓고 싶지 않고 자신의 아내와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랐던 것도 싫다. 그 무딘 감성이 싫고 이기적인 감성이 싫다. 아렌트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잘못된 말들을 했을 때, 그것이 그의 아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아내가 악처이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나 변질된 거라고. 그러나 그의 아내는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을 존경하고 신뢰했다. 하이데거는 그러므로 아내를 잃을 수도 없었다. 아내가 있어야 자신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서, 그러면서 동시에 아렌트를 잃고 싶지 않으니, 그 둘이 사이좋게 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거다.

아내 엘프리데와 연인 아렌트는 그렇게 만나고 서로를 질투하는 가운데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느 시점부터는 제자인 한나 아렌트가 스승인 하이데거를 뛰어넘었다. 아렌트의 책이 세계 각국에 번역되어가는 것에 몹시 질투한 하이데거지만, 그러나 유명한 한나 아렌트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바꿔가고자 시도한다. 나치의 편을 들었던 자신에 대한 변명을 한나 아렌트를 대신해 시켰던 셈. 독자이자 관찰자인 나로서는 '그딴말 들어주지 말고 네 앞길을 가!'라고 하고 싶지만, 몇 번이나 부르짖게 되지만, 나는 한나 아렌트가 아니고 이 사랑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가슴을 칠 뿐이다.



이렇게 관찰자이자 독자인 내가 아무리 화를 내고 억울해해봤자, 당사자인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만난 순간부터 눈감을 때까지 하이데거를 사랑했다. 그간 읽어온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들을 통해 한나 아렌트가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엄마는 어린 한나에게 다정한 사람도 아니었고 신경써주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아버지는 한나 아렌트가 어린 시절부터 매독을 앓다 사망했다. 이 책의 저자 '엘즈비에타 에팅거'도 한나에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없었음이 하이데거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언급하는데,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고, 그래서 더 짜증난다. 하이데거가 한나 아렌트의 약점을 너무나 제대로 짚고 접근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게 너무 화가 난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도 다른 사랑을 해보고자 해서 결혼하지만 그 결혼은 얼마 못가 끝난다. 그렇지만 그 뒤에는 영혼의 안식처이자 동반자인 블뤼허를 만난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블뤼허는 하이데거를 세계 제일가는 철학자로 확신하기 때문에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만나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 알면서도 아렌트가 하이데거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깊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까지, 그러니까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블뤼허는 하이데거를 좋아했다. 블뤼허가 하이데거를 싫어했다면, 자신의 아내에게 그렇게나 믿고 의지하는 남사친이 있다는 걸 싫어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됐든 아렌트에게 하이데거는 일생의 사랑이었다. 부재속에서도 존재했던 사람. 잘못을 했다면 기꺼이 용서받아야 할 사람.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인 사람. 얼마나 사랑했으면 부인과 함께 만나는 것도 받아들이고, 유대인을 혐오하는 것도 받아들이고, 자신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토록이나 아렌트에게 하이데거는 진실한 사랑이었고 강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의 당사자인 아렌트가 그 사랑을 오래 유지하고 또 잊지 않는데, 독자이자 관찰자인 내가 그거 안된다고 부르짖는 건 어디서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내가 한참 부족한 사람을 한껏 추어올렸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적이 있다. 아마 그때가 눈에 덮인 콩꺼풀이 벗겨진 때였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에게 하이데거에 대한 콩꺼풀은 한 번 덮인 이상 벗겨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 시절에 '이정도는 그럴 수 있지', '그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닐거야' 라고 애써 나를 달랬던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한나 아렌트 역시 하이데거에게 있었던 약점을 굳이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인간은 무릇 모두다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여기에서 굳이 이사람의 약점을 들춰보며 미워할 것 까진 없지 않나, 라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시절에 모든걸 덮고 가려고 했던 것처럼, 한나 아렌트도 덮고 가려고 했던 걸지도. 어떤 사랑은 모든 걸 덮게도 하니까. 그게 옳든 그르든 말이다.



하이데거가 처음에 한나 아렌트에게 접근하고 사랑을 고백한 건 징그러웠지만, 그러나 나는 순간순간 한나 아렌트가 되어서 나라면? 나라면?을 생각했다. 이토록이나 나에게 강력한 영양을 미친 사람, 사랑이었고 친구였으며 지성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게다가 나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놓고 싶지 않다면, 나 역시도 그 사람의 아내와 굳이 친구가 되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쏟아넣을 수 있을까. 사랑은 내가 가진 자원을 쓰는 일이다. 돈이며 시간이며 에너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쓰게 된다. 미국에 있으면서도 가끔 독일로 날아가 하이데거를 만나는 시간이, 가끔은 그의 아내의 눈을 피해야 했고, 또 알면 안되기에 어떤 편지에는 답장도 보낼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을 한나 아렌트가 견뎠다는 것은, 하이데거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세상에 자신과 토론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지혜로운 여성이었음에도, 그러나 어떤 굴욕을 견뎌가며 하이데거를 사랑했다는 것은 인간이란 이렇게나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존재란 생각을 하게 한다.



굴욕을 견디고 싶진 않은데, 그러고 싶진 않아..  내 존재를 숨기는 일에 내가 동참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나는 한나 아렌트가 이 모든 걸 감수하고 그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너무 어릴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것이 아주 큰 축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한나 아렌트가 서른에 하이데거를 만났다면 좋은 친구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어쩌면 순간 불타오르는 열정을 나누는 연인이 될 수 있었을지언정, 자기 자신과 토론하는 한나 아렌트가 서른에 만난 하이데거에게 자신을 숨기면서 자신을 허락하는 일을 수락할 순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답장을 보내지 말라는 편지가 너무 빡쳐... 하아- 지 할 말은 다 해놓고 .. 하아-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든, 이 책은 좋았다.

엘즈비에타 에팅거의 어쩔 수 없는 자기 시선이 드러나지만, 나는 그 시선이 좋았다. 엘즈비에타 에팅거는 하이데거의 아내가 나쁜 여자가 아니라, 아렌트의 시선에서는 자꾸 그녀를 나쁘게 보려만 했던 것에 대해 언급해준다. 엘프리데는 엘프리데 나름의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남편을 대했다. 게다가 그녀가 아내인이상 남편의 연인을 인정한다해도(이것조차 불가하지만) 질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닌가. 오히려 그런 아내와 애인을 모두 다 갖고 싶어했던 하이데거에 대한 미운 감정이 드러나는데, 그런 시선이 좋았다.



이제 한나 아렌트에 대한 다른 책을 사서 또 읽어봐야겠다. 천천히.
























두 사람의 편지로 미루어보아 하이데거는 강의실에서 어린 제자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이데거의 정열은 차츰 사그라졌지만, 아렌트의 우상이 되고자 했던 그의 욕망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 P14

비록 아렌트가 미리 망명을 계획하고 있었고 베를린에서 경찰에 의해 잠시 억류된 적도 있었지만, 히틀러를 향한 하이데거의 공개적 충성서약은 그녀가 그대까지 간직하고 있던 하이데거에 대한 환상을 낱낱이 부수었고 망명의 결심을 재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 P15

블뤼허는 아렌트의 두 번째 남편이 되었고, 그녀의 영혼의 동반자이자 안전한 안식처가 되었다. - P18

하이데거의 반유대주의 혐의와 친 나치행적에 대해 아렌트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이것은 두 사람의 재회에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방문하여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하이데거는 모든 혐의가 단지 모략일 뿐이라고 그녀를 손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아렌트는 행복하게 모든 의혹을 극복했다. 비록 예전과는 달라졌지만, 친구이자 스승이며 자신이 여전히 사랑하는 남자에게로 돌아가려는 그녀의 결심은 옳은 것이었다. 하이데거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아렌트는 만약 두 사람의 삶의 연속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면 자신은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었을 거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하이데거로서는 아렌트의 용서가 필요했다. - P18

1941년, 아렌트는 미국으로 이주했고(미국은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우선시하고 기술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하이데거가 경멸하는 나라였다.) 사랑하는 남자와 새로운 삶을 꾸렸다. 그러나 아렌트의 옛 제자가 관찰한 바대로 "심지어 그의 부재의 존재 속에서도"하이데거는 그녀에게 권위자로 남아 있었다. - P47

하이게더의 품안에는 이미 또 다른 여성이 있었다. 하이데거가 "사랑하는 리시"(liebe Lisi)라고 부른 엘리자베스 스로흐만(Elisabeth Blochmann)은 양친 중 한 사람이 유대인이었고 아내의 학교 친구이기도 했다. 브로흐만은 아렌트보다 열네 살 연상이었고 학자로서의 경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1927년에 하이데거는 "베를린에서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대해 그녀에게 애정어린 감사 편지를 보냈다. 1928년에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했고, 삼 년 전에 아렌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volo ut sis"(나는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한다)를 인용하여 편지를 보냈다. - P54

그녀는 스스로에게 부과환 외로운 그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살아가는 유일한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하이데거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당신에 대한 사랑을 잃게 된다면 저는 살아갈 권리를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이 모든 게 극적인 드라마 같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절박한 편지였다. - P55

세월이 흐르면서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연애에 관해 충분히 되새겨볼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연애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아렌트는 하이데거가 자신을 사랑했음에도 자신에게 굴욕감을 안겨주었고, 교묘한 술책으로 가차 없이 닫힌 상자 속으로 밀어 넣었으며,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일이란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뿐이었다고 믿게 되었다. - P67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렌트가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지난 수년 동안 아렌트는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내주었고,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불화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블뤼허는 사랑이나 우정에 있어서 이러한 타협이 양립할 수 없다는 걸 몸소 보여주었다. "마침내"하고 아렌트는 말했다. "행복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나는 알게 되었어요." 사랑은 그것이 얼마나 열정적이든 간에, 그 자체로, 삶의 현실과 유리되어 성적 충동이나 권력의 행사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면 파괴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서서히 알게 되었다. 확실히 지난날의 사랑은 그녀에게 그러했다. - P71

엘프리데 하이데거는 독립 정신과 엄청난 활력과 상당한 내적 자산을 갖춘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우상화하지도 않았고 과소평가하지도 않았다. 엘프리데는 남편을 존경했고, 마찬가지로 자신도 존경받길 원했다. 두 아들이 소련에 전쟁포로로 잡혀 있고 하이데거가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몇 년 동안에도 그녀는 정신적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엘프리데는 프랑스 군 당국에 의해(그들은 하이데거를 전형적인 나치당원으로 분류했다.) 압류된 집과 하이데거의 도서관을 되찾기 위해 맹렬히 싸웠다. 하이데거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P96

하이데거는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삶에서 결코 아내를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1950년, 하이데거는 아렌트와의 연애에서 유일한 회한이 있다면 아내에게 즉시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아내를 속였던 점이라고 아렌트에게 토로했다. 만약 자신이 그렇게 했더라면 아내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거라는 것이었다. 하이데거에게 고독이 필요하다는 것을(혹은 동반자가, 이 경우 그러했을 것처럼)엘프리데가 이해했고, 그를 홀로 내버려둔 채 일상의 모든 짐과 아이들 양육을 기꺼이 떠맡았던 점은 하이데거를 감동시켰다. - P97

하이데거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렌트는 그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 남자의 삶에서 아내와 애인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아렌트는 너무 어렸다. 하이데거가 자신은 아내를 사랑하며 또한 아내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엘프리데에 대해 피상적으로나마 알게 되었을 때 아렌트는 그녀에 대해 점점 더 나쁜 견해를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도 두 여성은 서로를 질투하게 되었다. 하이데거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아내와 옛 정부가 서로 친한 친구가 되기를 바랐다. 실제로는 동시에 두 여성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아렌트는 자신이 하이데거의 삶에 있어서 ‘유일한‘ 여성이ㅓ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P98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하이데거는 아렌트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햇다. 그와 아렌트가 우정을 되찾도록 도와준 사람이 바로 엘프리데이며, 그와 아렌트의 사랑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도 바로 엘프리데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두 여성이 헤어질 때 서로 포옹했던 이미지는 하이데거가 미래에 보기를 원했던 모습이었다. 즉 하이데거를 향한 사랑으로 뭉친 두 여성이 서로 정서적인 유대를 맺는 것이었다. 이후 하이데거가 보낸 거의 모든 편지에는 아렌트에게 키스와 인사와 안부를 보내는 엘프리데가 등장한다. 이제 세 사람은 새로운 경험의 문턱에 서 있었고, 그 안에서 아렌트는 마틴과 엘프리데 하이데거 두 사람 모두에게 속해 있었다. - P114

하이데거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자신에게는 홍보대사가 필요하며, 아렌트가 그 역할에 꼭 들어맞는다고 즉시 그녀를 이해시킬 수 있었다. 아렌트는 자신의 임무를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렌트가 저명한 유대인이고, 그러므로 아렌트의 지지는 하이데거를 향한 지속적인 반유대주의 혐의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 P115

하이데거에 대해 아렌트가 느끼는 감정은 성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의 정의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블뤼허는 아렌트의 또 다른 자아였다. 아렌트는 하이데거 없이 살아갈 수는 있었겠지만 블뤼허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었다. 아렌트는 블뤼허를 신뢰했던 것만큼이나 하이데거를 불신했고, 그녀에게 있어서 신뢰란, 진정한 결합의 토대였다. 하이게러를 향한 비논리적인 감정과는 별도로 아렌트는 자신이 존경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아렌트가 하이데거의 무죄를 선언한 것은 충성심이나 공감, 혹은 정의감에서라기보다는 그녀 자신의 자부심과 존엄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 P123

아렌트의 내부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하이데거는 그녀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었고, 그녀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었다. 아렌트는 변함없이 하이데거와의 우정에 매달렸고, 하이데거의 개입이 없는 상황을 견디고 있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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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날이 무르익는 다락방님의 아렌트에 대한 애정💕 아침부터 촉촉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20-09-14 10:15   좋아요 1 | URL
저는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하루 잘 보내요, 쟝쟝님. 아프지말고!!

잠자냥 2020-09-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씩씩거리면서 페이퍼 쓰신 겁니까! 첫줄 인용부분에 오타요. ‘싸랑‘

다락방 2020-09-14 10:36   좋아요 0 | URL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차분하고 우아하게 썼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싸랑이 뭡니까, 싸랑이... 하아- 나란 인간은 대체.... ㅠㅠ

수정했습니다. 우아하게 ‘사랑‘으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9-14 10:37   좋아요 0 | URL
근데 왠지 ˝싸랑˝이 다락방 님에게 어울립니다. 뜨겁고 열정적이고 싸랑 많으신 다락방 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14 10:39   좋아요 0 | URL
글이란 것은 어쩔 수 없이 글쓴이를 드러내는가 봅니다....... ㅎㅎㅎㅎㅎ

잠자냥 2020-09-1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한나 아렌트는 대체 왜... ㅠㅠ 휴 저는 사실 하이데거 생긴 것도 싫거든요;;; 아무리 똑똑해도 얼굴 내 취향이어야 함...;;;;

다락방 2020-09-14 10:38   좋아요 0 | URL
저는 왜 나중에라도 하이데거를 내치지 못했는지 너무 속상해요. 하이데거는 한나 아렌트에게 각인된 사람인것 같아요. 한나 아렌트 본인이 좋다는데 저는 막 가슴을 칩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0-09-1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생긴것도 아니라면 그 사랑의 비밀은 지성이 아닐까요. 보통 사람들, 일테면 교수들조차 이해할수 없는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수 있을 정도의 지성. 말이 통하는 사람. 그래서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평생 사랑한 거겠죠. 전 그런 생각이 드네요.

다락방 2020-09-14 12:05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는 매우 지적인 학생이었고, 그런 한나 아렌트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지적인 사람이 하이데거였던거라고 저도 생각해요. 그러니 그 때부터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었던 거겠지요. 그리고 그 때의 가르침이 계속해서 한나를 이끌어주었던 것 같아요. 분명 어느 시점부터 한나가 스승을 뛰어넘었지만, 한나는 그조차도 하이데거 때문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걸 보면 그 어린 시절에 만난 지성인이 지적으로도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사이었기 때문에 평생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적으로 보여요. 그래,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으면서도 저는 제삼자이니 또 속상하기도 하고...

사랑한다면 사랑해야겠죠. ㅜㅜ
 















급진주의 부분을 먼저 정리하고 갔어야 하는데 앨리슨 재거 얘기를 하고 싶어 사회주의 먼저 가져온다.

이 책의 3장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다.

2장 <급진주의 페미니즘> 읽으면서 역시 나는 급진주의 쪽이구나, 생각하면서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해 기대를 가지고 읽어보았다. 저자 서문에서 요약한 바로는 나는 어쩌면 사회주의 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주의까지 읽어본 결과, 어느 주의에 가깝냐 하는 것은 내가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성매매와 성착취, 성적 대상화와 포르노에 가장 관심이 큰만큼, 거기에 대해 가장 크게 분노하는 급진주의에 마음이 더 갈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급진주의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고, 일단 사회주의.


마르크스 주의 페미니즘과 그것을 좀 더 개선한 것으로 보이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해서라면, 마르크스를 읽고 아는 것이 당연히 더 쉬울 것이다. 이 부분 읽으면서 이미 마르크스와 철학에 대해 많이 공부한 멤버는 이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자본, 계급, 유물론 등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다면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더 쉬울 터. 게다가 자본, 계급, 유물론에 대한 개념을 이미 알고 있다면 이미 거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뜻할텐데, 관심이 있는 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애초에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해서 우리는 더 파고들어가고 더 알고 싶어하니까.


각 주의마다 주요 학자들이 등장한다. 급진주의 문화 페미니즘에서 캐서린 매키넌과 안드레아 드워킨의 포르노 반대관점을 끌고온 것처럼,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도 역시 여러명의 학자를 얘기하는데, 나는 그중 '앨리슨 재거'에 동그라미를 쳤다. 다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자본주의와 계급이 여성 억압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면, 앨리슨 재거는 '그렇지만 가부장제도 가져와야 해!'라고 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여성들을 노동자로서 억압하지만 가부장제는 여성들을 여성으로서 억압하는데, 이 억압은 여성의 활동은 물론이고 여성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성은 심지어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항상 여성이다. -p.155



으앗. 이런 부분은 정말 너무 짜릿하지 않은가. 굉장히 명철하다는 것이 뽝- 오잖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키워드는 '소외'라고 한다면, 앨리슨 재거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생산품에서 소외되는 것처럼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도 단순히 여성으로 간주될 때 자신이 전형적으로 만들어 내는 '생산품'인 그들의 몸에서 소외될 수 있다. 여성들은 단지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다이어트하고 운동하고 옷을 입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주로 남성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몸매를 가꾸고 장식한다. 게다가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혹은 누구에 의해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 최종적으로나 전체적으로 발언권이 없다. 왜냐하면 남성의 시선에서 성희롱 혹은 강간에 이르는 행위들을 통하여 여성의 신체는 갑작스럽게 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자지로 임금 노동자들이 자신의 신체를 사물, 즉 노동력이 추출되는 단순한 기계처럼 느끼기 시작하면서 점차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당하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여성들도 점차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 겨드랑이 털을 면도하고, 허벅지 살을 빼고, 가슴을 보강하며, 손톱을 칠하고, 머리 염색을 하는 등 신체를 열심히 가꾸는 정도에 따라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가 하나의 대상물 또는 상품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임금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칭찬과 보상을 놓고 서로 경쟁하듯이,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칭찬과 보상을 놓고 서로 경쟁한다. -p.156



다양한 주장과 다양한 학자들에 대해 다루다 보니 이렇게 어느 학자에 대해 언급을 해도 충분히 길게 다루지 못한다. 앨리슨 재거에 대해 나는 너무 궁금해졌다. 좀 더 읽고 싶다,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 그래서 앨리슨 재거의 책을 검색해보았다.
















1999년의 이미지도 안뜨는 옛날 책과 위의 링크한 책, 《여성주의 철학 1,2》권이 검색된다. 여성주의 철학이라니, 제목부터 되게 재미없게 생겼지만, 표지만 봐도 교과서 같고 흥미를 전혀 끌지 못하지만, 그러나 앨리슨 재거라니... 앨리슨 재거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너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다. 그런데...



2005년도에 나온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이 책의 상태는..괜찮을까?

다른 책들과 달리 절판되지 않은 건 다행스럽지만, 그렇지만...색이 바래고 낡지 않았을까.

읽고 싶은데 너무 낡은 책이 올까봐 겁나..

그래서 1권만 살까... 생각하고 있다.

1권만 일단 받아보고..괜찮으면 2권도 살까?

이런 고민을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1,2권 있으면 두 권 다 사서 깔맞춤 해야되지 않느냐고 내게 말했다.

그치..깔맞춤 너무 중요하지..그런데 너무 낡은 거 두 권 올까봐 겁이나..

서점 가서 직접 보고 싶은데 이 책이 오프라인 서점에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고 더더군다나 지금 같은 때 서점을 갈 수가 없어.

그러므로 나는 삽니다, 1권을... 앨리슨 재거, 당신은 왜 나로 하여금 당신을 궁금해하게 만들었나요? 네?




자유주의, 급진주의, 사회주의까지 읽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읽으면서 노트에 딱딱 정리해주면 매우 좋을 것 같다.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가며 읽고 있는데, 나중에 다시 밑줄 그은 부분 훑어보면서 제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봐야겠다. 지금은.. 너무 다이어리에 휘갈겼어..작가들의 이름만.........



이제 미국의 유색인종 페미니즘에 대해 읽을 차례다. 아마도 우리가 얼마전에 읽었던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부분들이 많이 등장하겠지.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을 이미 여러 권의 페미니즘 책들을 읽은 후에 읽어주니 매우 좋다. 자기가 알아서 다 정리해주고 있어. 유용하구먼.



자, 열심히 읽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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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9-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트로 정리하고 있는데 썩 마음에 들진 않네요. 저도 사람들 이름만 나열... 마음이 급해서리.
일이 쌓여서 사회주의 도입까지 읽고 손놓고 있는데... 영차영차. 다락방님 글보니 얼른 읽어야겠다 싶습니다.

다락방 2020-09-10 10:44   좋아요 1 | URL
저도 사람 이름만 나열해놔서 이래가지고선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중요한 쟁점이라든가 키워드 같은 것들을 같이 정리하고 싶어졌어요. 한번씩 쓰면서 정리하면 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을까...

저도 유색인종 부분 읽어야 하는데 다른책도 읽고 싶어서 오늘 퇴근길에 뭘 읽게될지 모르겠네요.
영차영차. 같이 열심히 갑시다, 비연님!

단발머리 2020-09-10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백소영의 <페미니즘과 기독교적 맥락들>을 읽을 때였어요. 그 책은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책인데, 페미니즘 역사를 쭈욱 살펴주거든요. 제가 그 책 읽을 때, 자유주의 페미니즘 읽으면, 어머, 나 이쪽이야, 그러고요. (제가 전업주부니까 현재 제 위치와 비슷한 면이 있죠) 급진주의 페미니즘 파트 읽으면, 어머, 나 여기네, 여기야. 이러고요. 사회주의 페미니즘 읽는데 야, 이거다, 이거. 이러면서 갈피를 못 잡았던 제가 떠오릅니다.
정희진 선생님께서 여러 글에서 여러 번, 페미니즘을 무슨 무슨 주의로 이렇게 나누지 말라 하셨잖아요(무슨 책인지 제목 알면 뽀대날텐데... 모르겠네요, 그 책 제목을요) 입장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돼요. 저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성매매나 포르노에 대해 그렇게 상반된 의견으로 그렇게 야무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혁명이 가능하기까지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일까,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연대하는 방법이 과연 존재할까... 좀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전, 오늘 내일은 진도 쉬거든요. 어서어서 가소서. 금방 따라가리^^
참, 앨리슨 재거 책 오면 인증샷 부탁드려요!!

다락방 2020-09-10 17:39   좋아요 0 | URL
제가 안그래도 페미니즘 역사를 쭈욱 살펴주는 책이 읽고 싶어서 단발머리님의 조언대로 그 책을 샀는데, 역시나 안읽고 쌓아두고 있... 하아..나란 인간...........오늘 책 사려던거 안사야겠어요. 나는 책 살 자격 따위 없는 인간이얏!!

저도 만약 지금이 아니라 몇 년전에 읽었다면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맞아 맞아 바로 이거야 했을 것 같은데, 지금 이 책을 읽으니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제가 진작에 저리 치운 것 같아요. 급진으로 오는 순간 자유주의랑 함께 갈 수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상반되어 버리는 지점들이 있어서...
그렇지만 정희진 쌤 말대로 무슨 주의로 나누지 말라는 것에도 동의함니다. 읽다보면 어느쪽에 가깝다 혹은 어느쪽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백프로 온전히 다 일치하진 않더라고요. 사안에 따라서 동의하는 것들을 체크하다 보면 저는 급진쪽에 체크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정리합니다.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연대라... 잘 모르겠네요. 정말 그런 방법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성평등을 지지한다고 해도 사안마다 분명히 다른 관점을 갖게 되는데 말예요. 왜 읽으면 읽을수록 더 어려운거에요, 단발머리님? 왜 읽으면 읽을수록 갈 길이 먼 것 같나요, 단발머리님? 왜죠?


저는 오늘 독서를 쉬려고 합니다. 내일은 쉴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쉬겠습니다. 피곤해... 소주도 마셔야 되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0-10-0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했다! 앨리슨 재거!!!!! 제가 베스트5에 올리면서 어디서 봤는 데? 했던 페이퍼가 다락방님 페이퍼였다리요..
 














책을 사두고 읽지 않는 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도 너무나 다양하겠지만, 이 책의 경우는 사두고 안읽은 게 표지 때문인것 같다. 이거 실물로 똭 보면 뭔가 읽기 싫게 생겼어. 물론 표지 보고 안읽었다는 건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사두고 안읽은 책이 어디 한두권이어야 말이지. 어쨌든 몇 년만에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내들고 읽으면서도, 그리고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참 표지가 지루하게 생겼다고 거듭 생각했다. 이 책은 내용은 전혀 지루하지 않은데 표지 정말 지루하게 생겼다.. 만약 서점에 직접 가서 사려고 했다면 안샀을 것 같아.. 나는 표지보고 책 사고 표지보고 책 읽고..하는 것과는 거리가 좀 먼 사람이기는 한데, 왜냐하면 표지가 어떻든 그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표지가 지루하게 생겨서 손이 안간건 사실이야. 이쯤하고.



'윌리엄 켄트 크루거'의 《철로 된 강물처럼 Ordinary Grace》은 '추리/미스터리' 소설로 분류되어 있다. 화자인 열세살 소년 '프랭크' 주변에서 일어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범인을 찾는 것이니 그 분류에 맞는 내용이라 하겠는데, 그런데 문체가 좋다. 이것은 원서의 문체 자체가 그러한 것인지 번역에서 그렇게 된것인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읽는 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문체. 살인범을 찾고 프랭크는 호기심이 많고 말도 안듣는 소년인데도 책은 가만가만 조용히 흘러간다. 나는 이렇게 가만히 조용한 문체를 좋아해서 이 책을 읽는게 좋았다. 책의 원제는 ordinary grace 인데, '철로 된 강물처럼' 이라고 철교에 대해 비유하는 문장이 본문에 나오긴 하지만, 굳이 제목을 그렇게 해야 했나 싶다. 


프랭크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 한 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연달아 그 동네 떠돌이가 죽고 그리고 주인공의 누이도 죽는다. 이 모든 죽음들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범인을 찾아가는데, 읽으면서 자연스레 과연 누가 죽인걸까 마을 주민인 사람들을 나 역시 차례로 의심해보기도 했다. 중간을 지나면서부터 살인 도구에 대해 언급되는 걸 보고 아, 이거 누가 썼더라, 하면서 막 생각도 하고 그랬어. 그렇지만 어쨌든 이것은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살아가야 하는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가능할까. 딸의 죽음으로 엄마는 무너진다. 속이 빈 계란껍질 같이 망가져버리는데, 그런데 그런 엄마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은 가능할까? 누나의 죽음으로 프랭크와 동생인 제이크가 상실감에 허우적거리고 또 같은 상실감으로 자신들을 돌보아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외로워야 하는 것들을 표현한 것은 이 책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바가 아닌가 한다.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죽었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실감을 느껴야했어,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그들은 남아있는 자들끼리 다시 결속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 상실을 계기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것들. 그렇다해도 지나치게 많은 죽음이 나와서 좀 과하다 싶었지만, 그러나 죽음이란 것은 인간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기에 어쩌면 죽음과 죽음과 그 다음 죽음을 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최근에 강한 태풍으로 산사태가 일어나는 뉴스를 보면서, 산이 무너지고 있는 현장의 근처에 있던 사람들, 아파트 주민이나 공장 직원들은, 저 산이 무너져 내가 다칠 수도 있다, 죽음의 위험에 놓일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라고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인간이 태어나 살아가면서 죽음은 필연적으로 찾아올 것인데,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죽음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 늙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죽는 것, 아프지 않고 죽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우리는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자연 재해로 죽을 수도 있다. 때때로 어차피 죽을 거라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걸까, 라고 되묻게 되지만, 제대로된 답을 내리지 못하면서도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산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이 책에는 사랑이 나온다. 왜 아니겠는가. 어느 책에서든 어느 영화에서든 사랑을 다루지 않는 것이 있던가. 그러나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사실 필요를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는가,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는가. 사랑이란 이름을 덮어 씌우면 그것이 마치 아름답고 긍정적인 무엇이 되는 것처럼, 사실은 가지지 말아야 할 감정에 대해 사랑이라 이름 붙이지 않는가. 그렇게 사랑은 집착을, 폭력을 숨겨버리지 않는가.

어느 순간부터 사랑은 집착이 될까. 어느 시점에서 사랑은 집착이 될까.



일전에 읽었던 프랑스 소설에서 자신은 상대를 사랑하고 헌신하는데 그것이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돌아오지 않자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이 나왔더랬다. 사랑은 그대로의 사랑이어야 할 것인데 지나치게 자기 희생적이 되는 순간부터 망가져버리는 것 같다. 사람은 자기가 준 것만큼 받고 싶어한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내가 하나 주었으니 너도 하나를 주렴, 하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나같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하나를 주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를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대체적으로 그런 일은 가장 공평해보이고 가장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내가 하나를 주고 두 개를 주고 열셋만큼 주어야 비로소 하나가 오기도 하고, 내가 스물만큼 주어도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반대로 내가 둘을 주었는데도 나에게 열일곱이 돌아올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그 차이인 열다섯을 어딘가에서 얼만큼은 쓰고 있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나 너가 나에게 하나, 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세상이 굴러가는 건, 너가 나에게 열일곱 내가 너에게 둘, 내가 저사람에게 넷, 다른 저 사람에게 서른,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열넷... 하는 식으로 굴러가는 거다. 그러다보니 내가 많은 걸 준 상대가 내게 적게 주었을 때 억울하고 속상한 사람이 생긴다. 그럴 때 내가 상대에 대해 가졌던 선한 감정은 변질되고 만다. 내가 이만큼이나 했는데 너는 왜?


필요도 있다. 필요.

사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는 데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누군가는 '내가 너에게 이만큼이나 필요한 존재지'를 느끼면서 그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너가 없었으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란 말로 자기 인생을 긍정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나를 이만큼이나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을 유지하는 가장 큰 축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무너질 것 같다던가 위태롭다던가 하면, 그걸 바로 세우기 위해 나는 잘못된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저지르는 가장 일반적이고 큰 실수가,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에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못견디기 때문에 일어난다. 나는 너에게 우선순위어야 해, 나는 너에게 일순위어야 해, 나는 너에게 유일해야 해. 그것이 유지되어 오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이 꼭 내가 아니어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면 마음이 난장이 되어버려..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는순간 파국을 불러온다. 그래서 내가 누누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한결같이, 한 사람만으로는 안된다고 하는거다. 그 사람만 보는 걸로는 삶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가 없어. 우리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려면, 내 인생에 너만이 유일해서는 안된다. 네 인생에 나만이 유일해서도 안되고. 그렇다면 그 다음에 일어날 예기치 못한 일들에 우리가 대처할 수가 없단 말이다. 주저앉고 무너지고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야. 휴우-




프랭크 아버지의 직업은 목사다. 프랭크의 어머니는 목사랑 결혼한 게 아니었다. 변호사 지망생과 결혼했고, 남편은 제일가는 변호사가 될 줄 알았는데, 참전후에 돌아온 남편이 갑자기 목사가 되어버린다고 하는거야... 빡이 치는거죠..나는 변호사랑 결혼하는건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신앙은 대단했고 언제나 신앙을 중심으로 세상을 살았고, 아버지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은 하나님이었다. 가족의 상실을 같이 겪었는데 아버지는 신앙에 기대려하고, 딸을 잃는것에 있어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하나님 아버지를 내 앞에서 언급하지 말라고 엄마는 말한다. 한 번만 더 하나님 찾았다가는 당신을 떠날거야, 라고 말하고, 직업이 목사인 이 신앙인은, 아아, 하나님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거 알면서 어떻게 그래, 라고 하는 바람에 엄마는 짐을 싸들고 떠나버려.. 프랭크는 이런 부모님을 보고 엄마가 하나님과 아버지를 같이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얼마전에 읽은 '안정혜'의 《비혼주의자 마리아》가 겹쳐졌다. 그 책에서는 영적 아버지에 대해 언급한다.






















하나님 아버지, 친아버지, 영적인 아버지의 트라이앵글, 이라고 이 책에선 표현하는데, 아마도 목사는 하나님 아버지를 대신하는 존재라고 교회 자체가 씌어놓은 이미지에 많은 신앙인들도 그렇게 겹쳐보지 않나 싶다. 《비혼주의자 마리아》에서 성폭행의 피해자들이 목사를 혹은 교회를 떠나면서 영적인 아버지를 배신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철로 된 강물처럼》에서 아내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 목사인 남편이 꼴도 보기가 싫다. 하나님이 뭘 해줬는데? 라는 아내 혹은 엄마의 말은 네가 뭘했냐, 기도말고..의 다름 아니다.



프랭크의 아버지는 참전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가족들도 그 상처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지 않지만, 목사가 된 이후의 그는 신앙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감싸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나쁘다고 욕하거나 차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편견을 갖지 않으려한다. 마땅히 그래야 할 자세이지만,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하다. 아마 나도 속된 인간이라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서 아버지인 목사님이 장례를 집전하며 했던 말씀이 좋더라. 이런 말씀을 특히나 상실감에 쌓였을 때 듣는다는 것은 좋을 것 같다. 길지만 좀 인용해 보겠다.




아버지는 시편 23편을 읽은 후 롬 8장 38절과 39절 말씀을 읽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버지가 성경을 덮었다.

"우리는 자꾸만 우리가 걷는 인생길을 홀로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 남자조차도 하나님께는 알려져 있었고 하나님은 줄곧 이 남자와 함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쉬운 삶을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고통 받지 않게 하겠다고, 절망과 고독, 혼돈, 자포자기의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우리를 고통 중에 혼자 있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로는 우리가 눈이 멀고 귀가 먹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고 듣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우리 주위에,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모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바로 끝이 있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아픔에, 우리의 고통에, 우리의 외로움에 끝이 있게 하겠다고,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게 하겠다고 그리고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고, 그래서 그곳이 천국이 되게 하겠다고 얏곳하겼습니다. 살았을 땐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을 이 남자도 이젠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살았을 땐 끝없는 기다림의 나날을 보냈을 이 남자도 이젠 더 이상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자기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입니다." (p.112-113)



기뻐하기까지 하는 건 좀 오버인것 같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는 나랑 같지 않을 것이다.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이미 죽은 자에게는 죽음 자체가 슬픔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은 남은 자의 몫, 누군가를 상실한 살아있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



프랭크는 누나를 잃고 자신의 가족이 이대로 붕괴되어 버릴것 같다는 느낌에 두려워한다. 아버지와 엄마가, 자신과 동생이 모두 마음적으로 뿔뿔이 흩어질까봐. 그러나 그들은 그 가족 내의 구성원이었고, 모두의 공통된 슬픔에 각자의 슬픔을 얹어 괴로워한 후, 흩어지는 대신 결속하게 된다. 하나님은 끝이 있게 하겠다 약속하셨다는데, 그 약속에 대해서라면 잘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상실감이, 끝이 있긴 한걸까?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는 건 아닐까? 그러나 혼자 있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이 가족에 대해서라면 지켰다고 해도 좋겠다. 각자의 고통을 겪고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상실감 속에서도, 그러나 그들에게는 서로가 있었으니까.



"행복이란 게 뭘까, 네이선? 내 경험으로는, 길고 험난한 길을 가는 중간중간 잠시 쉬었다 가는 것, 그게 행복이던데. 항상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행복이 아니라 지혜라는 변덕스럽지 않은 미덕을 갖게 되길 바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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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9-0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거 친구 공개글이네요? 락방 님 글에 친구공개 글 있으니까 이상하다. ㅎㅎㅎ

2020-09-14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0-09-0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다락방님 글 뒤에 친구로고가 붙어있었군요. 전 그게 왜 붙어 있는줄 궁금궁금하고 있었더랬죠. ㅎㅎ
저는 책 표지의 아름다움을 많이 많이 따져요. 책의 만듦새가 맘에 들면 책이 더더더 좋아지고요. 맘에 안 들때는 책을 읽는 내내 우울해요. ㅎㅎ 철로 된 강물어럼 저 책도 읽으려고 했었어요. 제목이 진짜 멋지잖아요? 근데 정말 표지가 뜨악....ㅠ.ㅠ

2020-09-14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9-0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교회에서, 선교단체에서 워낙 많이 들었던 이야기라.... 참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드네요. 페미니즘 책 읽다가, 남성적인 신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여신의 존재와 영향력을 말살하기 위한 시도와 의도에 대해 읽을 때도 그랬죠.
복잡합니다. 복잡하고 다단하고... 복잡다단 ㅠㅠ

다락방 2020-09-09 13:56   좋아요 0 | URL
저는 십대 시절에 교회에서 벗어난 사람이고 이제 교회에 대해서는 악감정만 남은 사람인데.. 그래서 여성혐오에 대해서만 볼 수 있는데, [비혼주의자 마리아]에서는 신앙을 간직하면서 성경을 여성혐오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오히려 예수는 여성에 대한 족쇄를 끊어내려고 했던 존재라는 의견들도 보여주더라고요. 저자 안정혜가 신앙인인데 사회에서 보는 것과 내부에서의 해석에 대해서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쓰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어요. 그래서 저에겐 되게 의미있는 독서였어요.
결국 기독교의 여성혐오적인 시각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시킨게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고 전파하는 교회 내의 남성집단들이 한거라는 거죠. [비혼주의자 마리아] 에서는 ‘예수가 끊어내기 시작한 저주의 사슬을 교회가 다시 옭아맸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공교롭게도 [철로 된 강물처럼]도 목사가 나와서 비혼주의자 마리아 랑 연결되는 독서를 할 수 있었는데요, 목사인 아버지가 하는 말씀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들이 좋았어요. 저런 말씀이라면 듣고 사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여성혐오는 기독교에만 있는게 아니라 모든 종교에 해당되고, 종교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정치며 교육에도 해당되죠. 우리는 계속 복잡하고 갈 길이 멀게 느껴지고..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더 아는 게 많아지도록 합시다. 머릿속에 넣을 걸 죄다 있는 힘껏 넣어보자고요! 그게 어떤 상황에서든 맞서 싸우는 힘이 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0-09-09 14:54   좋아요 0 | URL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나의 기억력 ㅠㅠ).... 거다 러너의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인가요. 그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종교 창시 초창기에는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또 실제로 여성들이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요. 그런데 종교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그 때 다시 가부장제의 피바람이 불어와, 여성들은 자신들의 자리에서 쫓겨나 보조적인 역할만을 맡게 된다는 거죠.

예수님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로 여성에 대한 태도가 파격적이셨죠. 문제는 그 다음이고... 그 다음에는 말하는 사람이 남성들이니까, 예수님의 메시지는 수정 & 변형된 형태로 전해질 수 밖에 없었던 거죠. 남자의 목소리로요.

다락방 2020-09-09 15:53   좋아요 0 | URL
[비혼주의자 마리아]에서는 실제 사례를 가져왔거든요. 제가 백자평에 기사 링크 올리기도 했지만, 그 목사는 청소년들을 상대로 성교육, 성상담을 주로 해줬고 혼전순결에 대해 강조했다고 해요. 혼전순결을 강조한 목사가 그런데 미성년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른거죠. 자기가 하는 말, 자기가 전하는 가치와, 자기가 행하는 것이 달랐던거에요.
어느 조직 내에서든 그 조직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어떤건지 아는 것과는 별개로, 남자들이 그 안에서 권력을 쥐면 행동은 아는 바와 다르게 하게 되죠. 정말 지긋지긋해요.

잠자냥 2020-09-0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표지 보고 예전에 제가 읽다만 소설 표지랑 너무 비슷해서 깜놀했어요. ㅋㅋㅋ
다시 보니 별로 안 닮은 거 같네요;;
그 책 표지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4408298

다락방 2020-09-09 14:17   좋아요 0 | URL
저 링크 가보자마자 오옷!! 했어요. 닮았어요, 비슷해요! ㅋㅋㅋㅋㅋ 착각하기 쉬울듯요 ㅋㅋㅋ
근데 링크해주신 책은... 듣도 보도 못한 책이네요. 아아 책의 세상은 너무나 넓어서 저는 그 안의 한 줌 먼지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잠자냥 2020-09-09 15:25   좋아요 0 | URL
이제부터 이런 이미지는 뭔가 지루한 책 표지의 대명사로;;; ㅋㅋㅋㅋㅋ
근데 제가 읽다만 그 책은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던 터라.... 기간 만료료 걍 갖다 줬는데요. 언젠가는 다시 읽을 생각이에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0-09-09 15:55   좋아요 1 | URL
‘헝가리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소설 분야에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세계적으로도 약 20개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라고 하네요. 이 소설은... 음...... 저도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는 쪽으로 해야겠어요. ㅋㅋㅋㅋㅋ ‘언젠가‘ 다 읽게 되시면 리뷰 부탁합니다, 잠자냥 님!
 
비혼주의자 마리아 -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안정혜 지음 / IVP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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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여성혐오를 주제로 토론하는 독서모임 회원들이 자신이 겪었거나 목격한 교회내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목사, 전도사의 청소년에 대한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교회의 보호, 영적 아버지라는 호칭까지.
징그러운건 종교가 아닌 그 안의 남자인간.
균형적인 시선을 위해 애쓴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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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0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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