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찌질해지는 건 사람이 변하기 때문일까, 환경이 변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간이 흐르기 때문일까?
이 책에는 요절한 많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손상기가 있다.
손상기孫詳基, 1949-1998 구본웅에 이어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린 곱추 화가. 자신이 소유한 유일한 것을 '지독한 열등감'으로 꼽았던 사람. '돌출된 가슴뼈, 외봉낙타처럼 생긴 등, 5척에도 못 미치는 키'. 그러나 그 신체적 불구를 정신적 불구로 평생 간직하기를 거부했던 화가. 불구인 탓에 역설적으로 자부심 하나로 당당하게 세상과 대면했던 인물. 그러나, 그러나, 속일 수 없었던 것은 자기연민이다. 열등감은 전혀 지치지 않고 분열, 증식한다.
손상기는 전혀 지치지 않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준'이라는 여인을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되고 강하게 이끌리게 된다.
그는 첫 만남 이후, "생 이후 최초의 사랑의 동의자 준. 가을 빗속을 달려온 준. 내 아이-내 방 작업대 귀퉁이에 꺾어온 억새꽃 한 다발, 환한 기세 다칠세라 두렵네. 준의 웃음과 음성. 내 눈과 내 귀에는 쇼팽의 즉흥환상곡. 피카소가 마지막 여인 에바를 위해 제작한 미완성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네" 하며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로 사랑의 흥분과 열정을 표현했다. (pp.58-59)
누가 뭐라고 하든 그 둘의 사랑은 굳건했고, 그렇게 그 둘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생활고 속에서 여전히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결국 준은 아이를 남겨두고 그를 떠난다. 그들은 결혼해서 3년, 3년을 같이 살았다.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그토록 뜨겁게 사랑했는데 그들이 서로 헤어지게 된건 그들이 잘못된 상대를 만난 탓일까? 그들이 원래는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인데 잘못본걸까? 시간이 그들을 그렇게 변하게 만든걸까?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아니면 본디 사랑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던 걸까?
그녀가 떠난 뒤 3개월 후 그는 새로운 여성 연우를 만나 의지했는데, 그것은 두 여성 모두에게 슬픔이었다. 준은 그가 자신 몰래 벌써부터 한 여성을 사랑하고 있었다고 오해했다. 더구나 공식적 인터뷰에서 가난 탓에 아이까지 버린 냉혹한 여성으로 자신을 왜곡 발언하는 그에게 진저리를 쳤다. 한편 연우는 아직도 첫사랑 준이를 가슴에 담아둔 그가 야속했다.(pp.62-63)
그런 그에게 죽음이 닥쳐온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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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을 앞에 두고 시도했던 준과의 전화는 끝내 불통이었다. (p.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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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음의 순간에 가장 기억하고 싶은 사람을 곁에 두는게 이렇게 어려운걸까?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데이지'를 찾기 위해 언제나 파티를 하고, 개츠비의 파티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러나 정작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그 파티에 참석했던 그 누구도 오질 않는다. 나는 이 『요절』을 읽으면서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까지 신문에 기사가 날 정도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나혜석의 죽음의 순간이 외로웠던 걸 읽으면서는 특히 더했다.
정말 찌질한게 사람인지 사랑인지 알 수가 없다.
오늘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메론을 꺼내 먹으면서 불현듯 깨달은건데, 나는 메론보다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먼저 먹어봤다.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먹고야 비로서 아, 메론은 이런 맛이겠구나 했다. 방금전 메론을 한입 베어 물면서 음, 역시 그 아이스크림과 맛이 같아. 했다. 망고맛 쥬스를 마셨는데 아직 망고를 먹어보지 못한 것 같다. 아냐, 먹어봤던가? 이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그게 아니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로 경험들도 하나씩 늘어간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메론을 먹을 수도 있다는 뭐 그런 얘기.
그런데 이석원은 나이 들면서 할 수 없는 것들도 늘어간다고 얘기하고 있다.

미국의 프로야구선수가 오랫동안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서른이 넘어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게 되면 신문에 나게 돼.
그야말로 신문에 날 일이라는 거지.
하지만 나이 마흔에 데뷔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니?
그건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잖아.
요즘 사람들의 평균 수명을 대략 여든이라고 봤을 때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돈 나이에 불과한데도 40이란 숫자는 이처럼
여러 가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어.
어느새 명예퇴직을 권고 받을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
로맨틱 코미디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접어야 해. (보통의 존재, 113)
무슨말인지는 알겠는데, 나도 끄덕거리기는 하는데, 쳇, 나는 그래도 꿈꿀테닷.
이 책 『보통의 존재』가 내게 보통 이상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는 당황했다. 제목부터 어쩐지 내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 되어줄 것 같았는데! 나는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그 음반을 사고싶어질지도 모르겠다고 기대했는데, 다 읽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그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책 『보통의 존재』는 내게 그저 보통의 존재였다. 그렇다고 해도 눈에 띄는 구절, 격하게 공감하는 구절이 없을수야 없지.
두려움
세상의 수많은 두려움 중에서
아주 일상적으로 언제나 마주치는 것.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p.308)
나도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아주 심하게 가지고 있다. 나는 그래서 누군가에게 먼저 만나자고 제안하는 것이 꽤 힘들다. 상대가 아니, 라고 말을 했을 때, 그 때 나는 대체 뭐라 말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