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머리카락 색깔 때문인지 나이에 비해 꽤 젊어보이시는 편이다. 머리카락이 숱도 많고 건강하다. 숱도 별로 없고 두피도 건강하지 못한 나로서는 대체 왜 아빠 두피 안닮고 엄마 두피 닮은건가 원망하기도 여러번이었다. 작은아버지 두 분 모두 흰머리가 머리의 절반을 채울 때도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건강해서 형제 자매들도 부러워했는데, 이것은 아버지에게 꽤 큰 자부심을 가져다 주었다. 내 머리카락은 남들보다 건강하다, 새까맣다 등의 아버지의 자랑이었고, 그게 자랑이었으므로 그것을 잃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는, 혹여라도 흰머리가 보일라 치면 어김없이 나를 불러 뽑으라 하셨고, 어린 마음에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도 머리 크면 하기 싫어지는 법, 늙으면 머리 쇠는건 당연한 거라며 나는 언젠가부터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명절때 놀러오는 이모의 어린 딸에게 뽑아달라 했고, 그 아이는 한 개에 오십원~ 이라고 외치며 뽑아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버지도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가 없었던 터라, 머리카락에 대한 자부심을 꺽어야 한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셨다. 그래서 이제는 염색을 선택하신 거다. 한계,      를 인정하셨다고 해야할까. 


아버지의 흰머리를 뽑는 게 그렇게나 싫었으면서도 아버지가 흰머리를 못견뎌하는 그 마음만은 이해했다. 본인의 외모에서 모두에게 칭찬을 듣고 인정을 받는 게 그것인데, 그것이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주는데, 그렇기에 그것을 얼마나 지키고 싶었을까. 그래서 결국 미장원으로 향해 염색을 해달라고 하는 아버지를, 혹은 어머니께 염색을 해달라 부탁하시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씁쓸했지만, 결국은 한계를 인정했다는 사실이 건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염색을 한다는 것 자체도 언젠가는 포기해야겠지만, '나는 염색할 정도로 흰 머리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 되는거니까.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집인 《대답은 필요없어》에 실린 단편중 <배신하지 마〉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여자가 나온다. 젊음과 그 젊음으로부터 오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자랑으로 삼았던 여자, 그러나 그것이 사라지자 견디기 힘들어했던 여자, 더욱이 옆집에 사는 여자는 여전히 젊고 아름답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녀는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분하게 여긴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는 것에서 자격지심에 시달린다. 자격지심이란 말 그대로 누군가가 불러 일으킨 것이 아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느끼고 마는것이다.


"저, 그 여자애가 밉살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크리스마스에 그녀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쓰레기봉투를 뒤진 적도 있어요. 밉살스럽고 샘도 나서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죠. 왜냐하면 그 여자애는 젊으니까!"

당신도 아직 젊다. 취조하는 형사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웃었다.

"전혀 젊지 않아요. 젊음만으로 좋은 일이 생길 정도는 아니에요. 형사님, 지금 회사에서 저는 이미 아줌마예요. 누구도 돌아보지 않아요. 회사에서도 번화가에서도, 길을 걷고 있어도. 이미 길가에 널린 돌멩이 신세지요. 오우라 씨와 똑같은 옷을 입어도, 어떻게 화장을 해도 그녀에겐 이길 수 없어요. 그런 그녀가 옆에 있어요. 옆에서 살고 있어요. 옛날엔 저도 갖고 있었던 걸 그녀가 지금 전부 갖고 있어요. 그것을 제게 보란 듯 과시하죠. 저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구요." (pp.205-206)



자신을 이미 '아줌마'라고 부르며 젊은애에 대한 시기심으로 불타는 이 여자 조차도 나보다 다섯살 이상이나 어리다는 슬픔..은 말하지 않기로 하고. 

그녀가 무너지는 과정에 머리카락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나의 아버지가 생각났던 것.



"긴 머리는 내 마지막 보루예요. 예쁘고, 여자답고, 남자에게 사랑받는 여자의 마지막 증표죠. 젊으면-좀더 젊으면 잘라도 끄떡없어요. 하지만 나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머리까지 자르면 여자이기를 포기해야 해요. 그 여자애는 그걸 알고 일부러 짧은 커트를 해서 내게 과시한 거야." (p.207)



커트 머리가 여자가 그녀 앞으로 가 과시한 게 아니어도 그녀는 그것을 과시라 느낀다. 긴 머리가 마지막 보루였는데, 그것조차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그녀. 그녀가 절망한 까닭은 젊은 여자가 자신에게 과시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을 과시로 보는 자신의 나약함 때문이었다. 늙었는데 머리까지 길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그 절망감, 그것은 외로움으로 부터 왔을것이고, 자기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이유가 비단 그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고 사회로 나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전파를 타는 모든 매체들은 젊고 아름다운 것을 칭송하니까. 자신이 그런 주류에 있었다가 밀려났다는 사실, 그걸 그녀는 견뎌내지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무너질 수도 있고 망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털고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며칠전 출근길에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육체가 건강해야 고통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말이 나왔다. 정신의 건강은 육체의 건강으로부터, 라는 말이야 불변의 진리이며 아주 오래전부터 누구나 다 알고있는 말이지만, 그 말이  그 순간처럼 내 귀에 쏙- 꽂힌 적은 없었다. 라디오에서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져 슬픈데 그 말을 듣던 상대가 '운동을 하라'고 조언해주는 거였다. 남자는 슬퍼하며 운동이라니 웬말이냐 물었고, 상대는 멘탈이 건강해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데, 그 멘탈이 건강하려면 육체가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거다. 맞다, 맞구나. 나는 내 정신이 무척 건강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내 건강한 몸으로부터 온 것이겠구나, 했다. 나는 저 단편 <배신하지 마>의 주인공처럼 '마지막 보루'라고 할 만한 신체적 장점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치명적인 약점 또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머릿결도 나쁘고 두피도 약하며 피부도 엉망인데다 모델과는 거리가 먼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매스컴에서 온갖 미녀들이 성냥개비 같은 몸매를 가지고 왔다리갔다리해도 '그녀들처럼 되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람이 초라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내가 나 자신을 초라하게 느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나를 초라하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내가 '초라해 보인'다고 해서 내 자신이 초라한 건 아니다. 단편 <배신하지 마>의 주인공은, 머리를 컷트한 예쁜 여자를 마주쳤을 때 자신의 옷차림 때문에 자신을 초라하게 느꼈다.



"그 여자애, 짧은 커트 머리를 했어요. 그러면서 우쭐거리는 얼굴로 가슴을 펴고 걷고 있었죠. 모델 같은 차림새로, 정말 모델이나 탤런트 같이 보였어요. 그런데 나는 평상복에 편의점 비닐봉투를 들고 있었고. 주말도 다 됐는데."

마주쳐 지나갔을 때 미치에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고 한다.

"무시당한 걸 그때 알았죠. 나를 깔보고 있었어요. 주말인데 어디 갈 곳도 없고, 아무도 초대해 주지 않는 불쌍한 아줌마. 나같이 짧은 커트를 하고 싶어도 이미 그런 모험도 할 수 없는 불쌍한 아줌마는 어디 가?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비웃고 있었어요. 확실히 알았죠." (p.206)




물론 나도 저 느낌을 너무나 잘 안다. 우연히 지하철안에서 아는 후배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그때 얼마나 아름답던지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던 거다. 그녀는 나보다 키가 크고 젊었고 예뻤다. 게다가 샤방샤방한 원피스를 입고 반짝거리는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내 옷차림이 나를 너무 후지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그녀가 내게 뭐라 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블라우스가, 치마가, 구두가 엉망인 것 같았고, 이 모두가 엉망이니 나라는 인간 자체가 구리게 느껴지는 거다. 그녀와 우연히 만난 반가움에 몇 마디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앞으로는 매일매일 찬란하고 이쁘게 하고 다닐거야, 라고 거듭 다짐했던 기억조차 선명하다. 물론 그 다짐이 지켜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러나 평상복, 약속 없는 주말, 편의점 봉투. 그것들이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사발면을 사들고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질질 끌어신고 감지 않은 머리를 노란 고무줄로 동여매도, 그래도 집에 들어가 콕 박혀서 내가 좋아하고 만족할 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지 않은가. 아마, 거기서 갈리는 것 같다. 저 여자와 나는. 나는 '그렇지만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며 만족할 만한 시간을 보내지' 로 충분히 행복해할 수 있는 사람이고 단편 속의 저 여자는 '초라하게 보인것'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는 바로 그 차이. 


자신이 만난 화려한 여자가 속이 얼마나 곪아있는 지는 모르는채로 마냥 그녀를 시기했다. 찬란하고 젊은 미모를 과시하듯 뽐내고 다니기 위해서 옆집 여자인 미치에는, 자신이 도무지 갚을 수 없을 정도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신용카드를 돌려막기 해가며 빚을 지고 있었고, 부모님 조차도 더이상 그녀의 돈을 갚아주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는데. 미치에도 역시 '화려해 보이는 것'에 더 많은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안으로는 자꾸 빚을 지고 더이상 안되자 친구의 이름으로 또 신용카드를 만들고...남아있는 건 빚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 같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분노로 들끓던 여자도, 카드 빚이 어마어마했던 여자도 모두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두었다. '내'가 아니라 '타인'이 내 삶의 주요지표가 된다면, 그들이 행복하기는 힘이 들지 않겠는가. 



머리카락을 최후의 보루로 삼을거라면, 나는 그 외에 손톱과 발톱 손목과 발목 귀의 모양새와 목의 단단함까지 모두 보루로 삼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이든 '단 하나'인건 위험하니까. 나의 사랑이란 감정 자체도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면, 무너지기가 쉽지 않은가. 그 사람이 없어도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사랑 역시 여러명의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쌓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내 신체중 어느 한 곳의 아름다움으로 버텨낸다면 그것은 얼마나 안타깝고 아슬아슬한가. 엉덩이를, 허벅지를, 종아리를, 겨드랑이를, 심지어는 온 몸의 털까지도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으면 어떨까. 편의점 봉투를 들고 오는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했다면, 집에 돌아와 사발면을 후루룩 맛있게 먹는 자신에게 집중하면 어떨까. 아, 조낸 맛있어 눈물이 난다, 라고 그 순간에 행복해하면 어떨까. 초라한 나 자신이 금세 만족을 느끼는 내자신으로 바뀌어있지 않을까.



뭐, 이렇게 써봤자 나 역시도 허벅지가, 종아리가, 겨드랑이가, 온 몸의 털이 자랑은 아니다. 머리카락도 손목도 발목도 마찬가지. 





같이 일하는 동료가 그만뒀다. 갑작스런 일이어서 지난 목요일 멘붕이 찾아왔고, 그 일이 당분간 모두 내 일이 된다는 사실에 앞으로의 내 직장생활이 걱정되고 두려워졌다. 그외에도 그 안에 숨은 사정들 때문에 혼자 있을 때마다 힘들어서 눈물이 자꾸 비져나오는 상황. 얼마나 힘들까, 언제까지 힘들어야 하나, 답답해하며 퇴근을 했다. 내 소식을 듣고 아빠는 집에 돌아온 내게 기운내라며 밥을 퍼주셨고 국을 데워 덜어주셨다. 남동생은 회식으로 늦게 돌아오고 엄마는 여동생 집에 가있는터라 밥 먹는 식구는 우리 둘 뿐이었고, 그래,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밥을 다 먹어갈 때쯤, 아빠가 내게 그러셨다.



"설거지는 니가 해."



아놔. 진짜 폭발할 뻔 했다. 설거지는 물론 내가 하려고 했다. 설마 아빠랑 나랑 둘 뿐이데 내가 아빠한테 하라고 할까. 게다가 나를 위로한다며 밥과 국을 퍼준 게 아니라, 저렇게 말하는 순간 '차리는 건 내가 했으니 치우는 건 니가 해' 가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아빠는 늘 이런 식이었다. 다같이 술상이라도 봐서 놀다가 치울 때가 되면 


"락방이가 치우느라 고생하겠구나"


해버리시는 거다. 당연히 치울건데 저렇게 말해버리는 순간 그 맥빠지는 느낌이라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한 번도 아빠한테 상 치우라고 한 적이 없는데, 대체 왜 저럴까. 왜 늘 해왔는데도, 설거지며 빨래며 밥하는 거며 청소하는 것까지, 엄마가 안계실 때는 동생과 내가 다 해왔는데, 물론 아빠도 그중에 어떤 것들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엄마가 며칠 집을 비워도 문제없이 지내오고 있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걱정이 되서 미리 저렇게 초를 치는 말을 하는걸까. 다 할테니까 미리 말하지 말라고 몇 번 소리 높여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왜 화를 내냐는 식이다. 아..나는 요즘 아빠를 미워하는 시기인가 보다. 



대꾸해봤자 싸움만 될 게 뻔하므로 묵묵히 설거지를 마치고 가방을 챙겨 '운동갔다올게'라고 말한 뒤 집을 나와버렸다. 그길로 헬쓰장에 가서 런닝 머신 위에서 걸었다. 우울하고 짜증날 때는 나는 운동 대신 가만히 있기를 선택하는 사람인데, 그러고 싶었는데, 편해야 할 집이 불편한 장소가 되어버려서 도무지 그 안에서 아빠랑 둘이 있을 수가 없었다. 아홉시를 넘기면 아빠는 주무신다. 런닝 머신위에서 좀 걷다가 샤워를 하고 돌아가자, 라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했다. 



나는 설거지를 싫어한다. 아주 많이 싫어한다. 끔찍하게 싫어한다. 할 때마다 우울에 시달린다. 그래서 '설거지는 니가 해' 이 말에 더 폭발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위에 말했다시피 아빠를 미워하는 시기인가보다. 그래서인지 요즘 독립에의 생각이 자꾸 치밀어 오른다. 나가살까, 혼자살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거다. 돈이 없다..에서 늘 막히지만 설사 대출을 받아 독립해서 나온다 해도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의 독립을 막는데, 그런것들도 어떻게든 다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되어버리는 찰나, 참, 독립하면 매 끼니의 설거지가 내꺼잖아?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씨발설거지..


어떡하지?


오늘 출근길 내내 설거지에 대한 생각에 시달렸다. 지구를 위해 뭔가 한 가지를 더 하기로 하고 독립한 뒤의 내 끼니는 모조리 다 일회용품으로 해결할까? 밥도 반찬도 일회용 접시, 물도 일회용 컵, 술도 안주도 모두 일회용 용기에...하아- 그렇지만 지구를 위해 뭘 한 가지를 더 해야할지 생각도 안날뿐더러, 일회용 그릇들을 써대는 것이 맛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면에서 끔찍하게 느껴진다. 나는 와인이 와인잔에 마셔야 더 맛있다는 걸 안다. 소주는 소주잔에 맥주는 맥주컵에. 스테이크는 넓다란 접시에 담긴 게 맛있다는 걸 안다. 그릇에 욕심이 있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그릇이 음식의 맛을 한층 업그레이드 해준다는 걸 알고, 그래서 집에서 와인을 마실 때도 굳이 와인잔에 마시는 거다. 그 맛을 설거지 때문에 포기할 수 있을까?



없.다.



그렇다면 설거지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없.다.



그렇다면 어쩌지?




일전에 타부서 차장님이 '해결해야 겠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 이라며 다른 직원들 앞에서 나를 추켜세워 준 적이 있었더랬다. 그런 나는 역시 방법을 찾아냈다. 


결혼. 그래 결혼을 하자. 



결혼해서 설거지는 남편의 몫으로 하자. 대신 설거지로 인해 남편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와 함께사는 게 기분 좋지 않을테니 설거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남자를 골라서 설거지를 하라고 하자. 그리고 이왕 사는거 즐겁게 먹고 마시며 사는거다. 술도 맛있게 먹고 고기도 맛있게 먹고, 제대로 된 그릇에 제대로 먹고, 그리고 설거지는 남편아, 니가 해. 이렇게 즐겁게 사는 거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 물론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대신 나도 뭔가를 해야겠지. 지금 당장은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지만, 뭐 쇼부를 칠 수도 있는거 아닐까. 아니다. 쇼부고 뭐고 다 떠나서, 나한테 홀라당 빠지면 나는 아무것도 안해도 되지 않을까. '설거지를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없다면 나는 결혼을 생각하지 못하겠는걸?' 이라는 나의 말에 기쁜 마음으로 그것은 자신의 몫이라며 나설 수 있는 남자랑 결혼을 해야겠다. 아,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도 한 채 얻으라고 해야겠다.  한강이 안보인다면 울산 앞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아파트라도..아, 그 아파트는 가급적이면 욕실이 두 개이면 좋겠고, 욕실 하나에는 드레스룸과 연결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꼬박꼬박 고액의 월급이 입금되는 남자면 더 좋겠다. 팔 다리에 적당히 모양 좋은 근육이 자리 잡아 있다면 좋겠다. 설거지를 할 때도 근육들의 움직임이 보이면 좋으니까. 키도 좀 크면 좋겠다. 웃는 모습이 브래드 피트를 연상시켰으면 좋겠다. 스테이크를 잘 굽는 남자였으면 좋겠다. 잘 굽고 설거지도 잘하는 그런 남자..



음...

그냥 내 성격을 개조하는 게 더 빠른가..Orz



오늘이 아직 반나절 밖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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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14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저...식기세척기라는 편리한 물건이 있습니다만..
설겆이를 싫어하지 않을 만한 남자를 만나는것 보다
식기 세척기 한대 놓고 편히 사는것이 더 나을듯 ^^::

2.혹시 '그런 남자'라는 노래 들어 보셨나요?
들어보세요...왜 식기 세척기를 사야하는지 알수 있을껍니다....


3.여름같은 봄날입니다.
더워서 사무실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 놓았더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폭풍 미세먼지가 쿨럭쿨럭~


다락방 2014-04-14 13:28   좋아요 0 | URL
1. 저 지금 완전 뒤통수 맞은 것 같아요 아무개님. 식기세척기...왜 생각을 못했죠? 헐. 결혼할 필요가 절대 없네요. 식기세척기의 존재를 저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멘붕오네요. ㅎㅎㅎㅎㅎ

2. 누구의 '그런 남자' 란 말이죠? 설거지를 못하는 바보같은 남자가 나오나요?

3. 여름같은 봄날인지 겨울같은 봄날인지 나가보질 않아 알 수가 없네요. 사무실에 콕 처박혀 있었더니.. ㅠㅠ

아무개 2014-04-14 14:41   좋아요 0 | URL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저렇게 좋은 남자....
그런 남자가 왜.... 널 만나냐? ...이런 가사의 노래였어요.
검색이 안되는 관계로다가 가수가 누군지는 모르겠으요.
우야둥.
식기 세척기가 있으니
기운내요!!!!!! ^0^

Forgettable. 2014-04-14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남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터지는 노래임.. 하지만 슬픔 ㅠㅠㅠ

아 어제 만난 남자가 자기는 전업주부가 체질에 맞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설거지하고 청소돌리고 요리하는 게 너무 좋다고 하심. 그런거 할 때 자긴 가장 행복하다고 ㅋㅋㅋㅋㅋ 그래서 제가 조언을 해주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일"로 만들면 오히려 힘들 수가 있다고 ㅋㅋㅋ 이렇게 싫어하는 일을 하는 걸 합리화.....;;

여튼 전 더 나이들기 전에 머리를 길러보려고 지금 꾹 참고 있는데, 잘라야 젊은 건가. 싶기도 하고. 혼란스러움..

다락방 2014-04-14 17:21   좋아요 0 | URL
저도 머리가 좀 길어 어깨에 닿고 목이 답답해서 이걸 더 잘라버릴까 아님 웨이브를 넣을까 하다가...걍 질끈 동여매고 있습니다. 역시 머리는 묶는게 진리 -_-

전 남자가 설거지하고 청소기 돌리고 이런거 즐거워하면서 전업주부 하는것도 좋고 그런 남자가 저한테 어울린다고도 생각은 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말이죠, 양복입고 각 잡힌 남자를 보면 반해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래서 한 여자에 두 남자는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0-

blanca 2014-04-1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설거지!!! 저도 진짜 싫어요. 그래서 식기세척기도 고민했었는데 어차피 애벌세척이 필요하다는 얘기에... 그래서 저는 커다란 반찬나눔접시를 준비했어요. ㅋ

다락방 2014-04-14 17:22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보니 집에도 식기세척기 있는데 엄마가 그거 몇 번 써보시더니 걍 설거지 직접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당연히 식기 세척기=안쓰는 거 라는 생각이 들었나봐요. 머릿속에서 존재를 지웠음.

아..설거지 너무 싫어요 진짜 싫어요. 전 집에서 제가 밥 차려 먹을때는 설거지를 가급적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답니다. 이를테면 국그릇에 국을 담고 그거 그대로 들고가 거기다 밥 말기...같은걸 실천함으로 해서 말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밥그릇 하나 세이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4-04-1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설거지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ㅎㅎ 더러운 그릇들이 많을수록 얼른 이것들을 깨끗하게 만들어줘야겠다는 의지가 불타 오릅니다. 그래서 친구네 놀러가도 설거지는 제가 해요 ㅎㅎㅎ

다락방 2014-04-14 17:23   좋아요 0 | URL
전 개수대에 설거지 거리가 있고,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요.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오고 우울해져서...하아- 설거지 해야해..라고 울것 같은 기분이 되어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설거지를 좋아하는 건조기후님이라니, 아, 우리는 이렇게나 다르군요! 그래도 싫어하는 제가 있고 좋아하는 건조기후님이 있어 다행이에요. 세상 모두가 싫어해봐요..세상은 지금보다 한층 더 더러워졌을 거에요. ㅠㅠ

레와 2014-04-14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시간 남았어요!!!!!!!!


책상밑에 [658,우연히]가 있는데, 305페이지를 읽었는데, 보스는 오늘따라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하아.............................................

다락방 2014-04-14 17:24   좋아요 0 | URL
하여간..자리를 지키는 보스들이 문제야. 너무 싫어.. -0-
658,우연히 라면 독서에 다시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될겁니다! >.<

moonnight 2014-04-14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와 결혼해 주세요. ^^; 저는 설거지를 아주아주 좋아하거든요. +_+;;;;; 스폰지에 거품을 풍풍 내서 더러워진 그릇을 쓱싹쓱싹 닦고 깨끗이 헹구어서 그릇 건조대에 착착. 생각만 해도 개운해지는 느낌이에요. +_+;;;;;;;;;;;;;;; 다락방님과 소주 맥주 와인 차례로 마시고(물론 여러가지 맛있는 안주들과! 메뉴의 선택은 다락방님께 맡길께요! ) 설거지는 제가 도맡는 행복한 상상을 해 봅니다. 호호 ^^

다락방 2014-04-14 17:26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진심입니다! 우리 함께 살아요!! >.<
멋져, 문나잇님. 잘 먹고 잘 마시고 설거지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근사해요! ♡ 하트뿅뿅뿅이에요~

자작나무 2014-04-14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인지 모르지만 저 역시 설거지를 좋아합니다. 전 밥을 먹자마자 즉시 설거지를 해요.
그런데 밥도 직접 하죠.
스테이크도 직접 굽고.
그러고보니 뭐든지 직접하네요. 월급은 별로 없는데. 킁킁.

다락방 2014-04-14 17:27   좋아요 0 | URL
우연인지 몰라도 니가 눈물 흘릴 때마다 하늘에선 비가 내렸어~

라고 노래를 부르는 저는 뭘까요..순수 또라이인가.. 여튼,

설거지를 좋아하신다니.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월급이 별로 없다니.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

네꼬 2014-04-15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거지 좋아하고 식기세척기 있는 권위자로서 (응?) 한마디 하겠어요. 식기세척기가 있어도, 넣는 게 일입니다. 그리고 관건은 큰 그릇과 냄비 등이므로 작은 것보단 큰 거 있는 게 좋은데, 큰 식기세척기를 채우려면 혼자 한 끼 먹는 걸론 어림도 없을 거예요. (내 건 작은 세척기.) 그러니까 설거지를... 합시다. 대신 설거지 한 번 할 때마다 보상을 걸어요. 와인 한 잔, 이런 식으로. 또는 다락님은 문나잇님과 결혼합니다.

다락방 2014-04-15 11:55   좋아요 0 | URL
큰 식기세척지를 채우기 위해 혼자 한 끼 먹는 걸로 어림도 없을 것 같진 않은데요, 제 경우엔 말이죠.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와인 한 잔, 이런 식으로 보상하면 또 설거지 거리가 나오잖아요. ㅠㅠ 역시 결론은...문나잇님과 결혼하는 것 뿐이로군요! >.<

관찰자 2014-04-1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을 읽고, 이어 댓글까지 읽으니 이 페이퍼의 논조는 단연컨대 '설거지'인듯 싶네요.낄낄.
자존감이 초특급 울트라로 낮은 저 여자 이야기를 읽으니,
지금은 이름이 가물가물하지만 미미여사의 <솔로몬의 위증>에 나왔던 여선생의 옆집사는 여자가 생각나네요.
암튼,
자존감 낮은 사람들은 상대하기 어려워요.ㅠㅠ

참고로 저는 남이 볼때는 우아(?)한 커피숍을 하고 있지만,
설거지는 정말 백만번. 끙.

그래도 다락방님은 가족을 위한 설거지이니 마음 푸세요.ㅠㅠ

다락방 2014-04-16 18:01   좋아요 0 | URL
자존감 낮은 사람들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계속 해오고 있었는데,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 역시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최근 새움의 이방인 논쟁을 보면서 말이지요. '번역에는 하나의 정답만이 있다', '내가 한 번역만이 옳다'는 데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번역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 글은 눈과 귀를 막고 그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을 상식없고 이성 없는 사람으로 몰아부치다니..이 세상에 가장 잘난건 나다! 라는 것 역시 상대하기 무척 어렵네요. 그건그렇고,


저는 오늘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신 컵을 씻었거든요. 어제도, 엊그제도.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싫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거에요. 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사무실에서의 청소나 설거지는 스트레스 없이 묵묵히 받아들이는 걸까요? 그런데 왜 집에서는 도무지 못하겠는걸까요? 하아-
관찰자님, 저는 설거지가 용납이 안돼요. (응?) ㅎㅎㅎㅎㅎ

비연 2014-04-1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그런 결론을 내리곤 해요. 결혼을 하자. 결혼을 해서 다 줘버리자..ㅎㅎㅎㅎ

다락방 2014-04-16 18:02   좋아요 1 | URL
역시 결혼이 답인겁니까? 이제부터라도 좀 생각해볼까요?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4-04-16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답은 필요없어> 이야기를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읽어 내려갔는지, 다락방님 모를거예요.
요즘에.... 부쩍 늙어간다는 생각에 얼마나 우울했던지.
간만에 한 파마는 완전 이상하게 나오고, 살은 찌고, 피부는 울긋불긋, 눈에는 염증...
그래, 늙었어.... 젊음이 부러워. 아하, 하면서 읽고 있었는데, 설겆이ㅋㅎㅎ

설겆이 좋아하는지는 결혼전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신랑은 설겆이 두번 시키니까(하지도 않더니만), 식기세척기 사왔더라구요. 그 때가 십수년 전이라 식기세척기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때인데, 거금을 들여서.. 키햐..
결혼 전에 물어보세요.

"설겆이를 좋아하세요?"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4-04-16 18:03   좋아요 1 | URL
당연히 결혼전에 물어봐야죠. 그리고 확답을 받아야죠. 설거지를 좋아하며 반드시 설거지는 자기가 하겠다는 강한 다짐 말입니다. 그러지 않을거라면 저는 결혼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요즘에 저도 부쩍이나 '아, 나잇살 이라는 게 이런거구나...'하고 깨닫고 있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자유 2014-04-19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문을...끝까지 다 읽었을 땐 왜 식기세척기를 못 떠올리나...답 달아드릴까...하다가.
이어진 댓글+답글에..하.하.하.
1. 식기세척기 애벌세척은, 흐르는 물에 건더기 쓸려보내면 되는 정도이고
2. 그런남자. 예, 저도 동감~!! ㅎㅎ
3. 설거지를 하겠다는 남자가 아니라, 집안밖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지 네일내일 쓸데없이 나눌 것들이 아님을 알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남자를 고르시옵고...
역시 '그런남자'랑 '그런녀자'가 되도록 노력하시면 되시는 것이옵고...
4. 나잇살..허.허.허...그 연세들에 나잇살 운운...

...아줌마한복판...이라고, 로긴 안 하고 댓글 달았다가 <- 알라딘서재관리 안 하니까 ^^
로긴하고 옮겨 달아요~~ <- 로긴안한상태프로필사진칸이...맘에안들어서. ^^

다락방 2014-04-21 09:0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자유님.

흐르는 물에 건더기 쓸려보내면 되는 정도라니, 흐음, 그렇다면 설거지는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겠군요. 요즘 독립에의 욕망이 커지는지라 설거지 해결이 정말 중요해요.
그리고 자유님..하하하하하하하하.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는데요 ㅠㅠ 저 나이 아주 많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잇살을 퐉퐉 느끼는, 그런 나이인 겁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주현 2014-04-25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식기세척기는 구조가 간단한 식기는 그나마 잘 닦이는데, 조금만 틈이 있는 반찬통이나, 말라붙은 고추가루, 약간 큰 냄비들, 컵입구에 묻은 립스틱 자국같은 것들은 따로 처리해야돼서...두번 일을 시킵니다. 주부들은 거의 있어도 안 쓴다고 봐야죠. 적은 양도 일단 한번 가동하면 40분에서 한시간은 돌려야 하고, 더운 물 쓰니까 습기잘차고, 여름엔 바퀴벌레도 한번씩 나오고...식기세척기 빌트인 된 아파트, 싫어합니다. 아주 조금의 도움은 받을 수 있겠죠.

다락방 2014-04-24 12:53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저희 엄마도 식기세척기를 안쓰시는가봐요. 역시 식기세척기는 답이 아니네요. 흐음- 무엇보다 바퀴벌레라뇨! 아이쿠야.. ㅠㅠ
 
고전으로 읽는 자본주의 - <유토피아>에서 <위대한 개츠비>까지
조준현 지음 / 다시봄 / 2014년 2월
절판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어떻게 정의하든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풍자한 인클로저 운동의 의의는,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토지에 묶여 있던 농민들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으로 나뉘었다는 데 있다.-22쪽

'좀바르트'는 『사랑과 사치의 자본주의』에서 십자군전쟁이 유럽사회에 미친 영향을 남녀 관계의 변화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출현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설명했다. 십자군전쟁은 유럽인들의 가치관과 윤리적인 태도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사랑'이었다.-48쪽

로크는 사유재산이 개인의 노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여기서 사유재산은 귀족이나 지주들이 상속으로 받은 재산이 아니라 신흥계급들이 스스로 축적한 재산을 가리키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로크의 견해를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르크스의 비판처럼 부르주아계급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생산수단, 즉 자본은 노동의 산물이 아니라 노동을 지배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자기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의 노동을 착취한 결과라는 뜻이다.-74쪽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세계 10대 소설문학을 선정하면서 제일 윗자리에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꼽기도 했다. 반면에 문학사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제인 에어Jane Eyre, 1847』를 쓴 여류 작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1816~1855는 "오스틴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에는 열정이 빠져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작가나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 영국 사회에서 젠트리의 삶에는 이미 열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84쪽

그런데 수공업자들이 상인들의 전횡에 맞서 권력을 쟁취하자마자 이번에는 수공업자들 내부에서 다시 갈등이 일어났다. 수공업자 조직의 가장 상위에 위치한 장인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그 아래에 위치한 직인들을 억압했다. 당시에는 장인들만이 자신의 이름으로 가게를 열 수 있었다. 장인들은 직인들이 독립해 장인이 될 자격을 갖추어도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직인들을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통제를 '길드 guild 규제'라고 하는데, 길드란 상인이나 장인들의 협종조합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논촌에서는 봉건영주들의 규제가, 도시에서는 상인과 장인들의 규제가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억압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그 본질상 똑같은 봉건적 억압이었다.-100-102쪽

『국부론』에슨 너무도 유명한, 스미스 사상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말이 나온다. 바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다. 그런데 이 말처럼 스미스를 유명하게 만든 것도 없지만, 이 말처럼 스미스를 오해받게 한 것도 없다. 왜냐하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란 사람들이 흔히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미스의 말을,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대개 가격을 가리킬 때가 많다)이 있어서 저절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 시장에 맡겨놓으면 최상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
애덤 스미스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전혀 의도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 하는 일은 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 전체의 이익에 기여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시장에 맡기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등의 이야기는 『국부론』어디에도 없다.-108-109쪽

세상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스미스는 사람은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고 자기 향상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개인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면 그 결과로 사회도 발전하고 국가의 부도 증진된다는 것이 『국부론』의 핵심적인 사상이다.-110쪽

요컨대 스미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스로 더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말라. 네가 더 행복해지면 타인도 더 행복해질 것이고, 사회도 더 행복해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모두를 더 행복해지도록 이끌어줄 것이기 때문이다.-112-114쪽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고 말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그가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을 동정심, 즉 '공감sympathy'의 존재라고 말한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사람이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동기에 반응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물질적 보상이나 이익이 없더라도 누구든 타인의 불행을 보면 슬퍼하고 타인의 행복을 보면 기뻐한다. 공감은 이익의 판단에 선행하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116쪽

지금도 대개의 경제학 교과서들은 '수요'라는 말을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의사로 정의한다. 그러나 맬서스는 아무리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더라도, 실제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고 있는 것이다.-142쪽

지금이나 옛날이나 독일은 광업이 발달하고 탄광촌이 많은 나라이다. 그래서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는 난쟁이가 아니라 탄광에서 일하던 어린이들을 비유한 것이며, 백설공주와 왕자는 어린이들까지도 중노동을 시키며 착취했던 그 지역의 영주와 그 부인을 비유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168쪽

지금 우리는 이미 그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보되고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게 느끼지 않는 분도 많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노예제는 분명 야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토록 야만스럽게 보이는 노예제조차도 실은 긴 역사로 보면 진보의 한 갈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인류가 단지 노예제로 진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야만스러움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더 이성적인 문명을 건설해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이다.-177쪽

러다이트 운동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일으킨 최초의 집단 저항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영국의 공장 제도와 노동자들의 생활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
사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러다이트 운동에 나선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대해 거의 무지했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자본가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계의 자본가적인 사용이다. 기계가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된다면 노동시간이 줄고 노동의 강도는 낮춰질 것이다. 그러나 기계가 자본가를 위해 사용되면 노동시간은 더 늘어나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은 더 줄어들 뿐이다. 당시 노동자들은 기계가 아니라 기계의 자본가적 사용이 자신들을 착취한다는 사실을 아직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다.-179-181쪽

러다이트 운동이 실패한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저항은 각지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노동 운동이 점점 확대되면서 그 지도자들 가운데 며몇 선구자들은 이렇게 자생적이고 산발적인 저항으로는 사회체제를 개혁하고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는 자각을 했다. 자본가들의 힘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있는 반면에 노동자들의 힘은 오직 단결에 있다는 자각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노동조합 운동이 나타났다.-181쪽

노동은 인류에게 내린 그 어떤 저주보다 더 끔찍한 저주가 되고 말았다. 기술은 진보하고 사회는 더 발전하는데 노동자들은 왜 더 많이 일하면서도 왜 더 빈곤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과 축적을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노동자들의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이 되고, 그 생산물이 노동자들 자신의 풍요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저주일 수밖에 없다.-197쪽

물론 헨리 조지와 마크 트웨인의 시대에는 철도회사들만 온갖 악덕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대부분 남북전쟁에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이르는 시기에 부를 축적했다.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를 비롯해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등이 바로 그들이다. 흔히 이들을 부르던 말이 바로 강도귀족이다. 강도귀족이라는 말은 이들의 부가 합리적인 기업 활동과 정당한 거래로 쌓은 것이 아니라 기만과 협잡, 부정부패, 심지어는 범죄단을 동원한 노골적인 폭력과 범죄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들에게 고용된 폭력단은 총을 들고 다른 회사에 침입하고, 경쟁자를 협박해 회사를 빼앗는 일도 예사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록펠러와 카네기는 그나마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치부 과정에서 쌓은 악명을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다.-228쪽

강도귀족들의 행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은 1869년 8월 9일 밴더빌트의 하수인이었다가 경쟁자가 된 금융투기꾼 제이 굴드와 모건의 하수인 조지프 램지가 철도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유혈 사태이다. 굴드가 800명의 폭력배들을 동원해 열차에 태우고 쳐들어가자 램지도 450명의 폭력배를 마주 오는 열차에 태우고 대항했다. 두 열차는 충돌해 전복했고, 10여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결국 이 싸움은 램지 측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한 것은 모건은행이었다. 지금은 후손들이 경영을 맡고 있지만, 미국의 10대 기업은 모두 '록펠러의 것이거나 모건의 것이거나 또는 록펠러-모건의 것'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이들 기업이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228-230쪽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계급들도 마치 유한계급들처럼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새로 나온 상품들을 경쟁적으로 소비한다. 얼핏 보면 이런 대중 소비사회는 과거 어느 사회보다 더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이제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에서만 자본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생활에서조차 그들의 이윤을 늘려주기 위해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 아니라 자본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충분히 더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들을 바꾸고, 자동차를 바꾸고, 평범한 사람들이 살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복합상가를 짓는다. -274쪽

케인스Jhon Maynard Keynes, 1883-1946 를 비꼬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이런 것도 있다. "만약 어떤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 여섯 사람에게 질문하면 일곱 개의 답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가운데 두 개는 케인스 씨의 것입니다." 케인스는 자기가 했던 말과 전혀 다른 주장도 한다는 뜻이다. 달리 보면 이런 면모야말로 케인스 경제학의 현실성을 잘 보여준다. 상황이 다르면 대답도 달라져야 하는데, 주류 경제학자들은 똑같은 대답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관념이 현실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인스에게는 언제나 현실이 관념 위에 있다.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완전무결함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연구실에 파묻혀 있을 동안 현실에서는 빈곤과 시업으로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과연 무엇을 해야 옳은가?-280쪽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1924 은 당시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 대신 '경제학'이라는 이름을 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경제학 교과서의 기본 체계는 모두 마셜의 《경제학원론》에서 온 것이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 독립된 학과로 경제학과를 처음 개설했으며, 케인스를 비롯한 수많은 경제학자의 대가들을 양성했다. 한때 신고전학파라는 말은 케임브리지학파와 동의어로 이해되기도 했다. 마셜의 연구실 방문에는 "런던의 빈민가를 가보지 않은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경제학은 약자를 위한 학문이어야 한다는 '경제 기사도', 경제는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경제 생물학'등의 개념을 창안하기도 했다.-282쪽


"이렇게 추운데 우리 집은 왜 난로를 켜지 않나요?"
"아빠가 실업자가 되어서 석탄을 살 수 없단다."
"아빠는 왜 실업자가 되었나요?"
"그건 석탄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서란다."-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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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할인행사
에이나인미디어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랑이 무엇인지에 관한 정의는 아주 다양하게 나올 수 있을테고, 그 형태 또한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겠지만, 중요한 건 사랑에 대한 코드가 맞아야 당신과 나의 사랑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 그런면에서 토멕의 코드는 나와 아주 많이 어긋나고,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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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절판


고통은 그 나름대로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이 없는 인류는 두려움이나 동정을 느끼지 못한다. 두려움이 없으면 겸손함도 없을 것이고, 모든 사람은 다 괴물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고통과 두려움에 대한 인식은 우리들 내부에서 동정심이 일도록 한다. 그러한 동정심 속에 자비와 구원이 존재하는 것이다.-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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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09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Y "NO!"

다락방 2014-04-09 15:16   좋아요 0 | URL
딘 쿤츠의 저 인용문을 읽으며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 상황에서 선물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지나치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딘 쿤츠의 소설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온갖 시름을 싹 잊게 해주거든요. 이 양반 책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들에 비하면 나한테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웬디 웰치, 《빅스톤 갭의 작은책방》 中


'딘 쿤츠'의 책이라면 《남편》한 권을 읽었을 뿐이었는데,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여자가 딘 쿤츠의 소설을 읽고 시름을 잊는다는 말에 딘 쿤츠의 책을 어디 한 번 다시 보자, 하고는 다른 책을 골라 읽었다.
















읽으면서 빅스톤 갭의 책방에 찾아들었던 여자가 굳이 왜 딘 쿤츠의 소설을 읽는지는 이해했다. 이 책, 《벨로시티》에는 평범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온갖 역경을 다 겪으니까. 아휴, 내가 이런 지경이라면 정말 살 수가 없겠다, 싶으니까. 그런 부분이 아마도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그녀에게 '나한테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 부분이 그녀에게 위로와 위안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아는데, 아는 건 아는 거고, 나는 딘 쿤츠의 책을 두 권 읽은 현재, 이제 딘 쿤츠는 그만 읽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이 재미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얼른 책장을 넘기고 싶은것도 맞고, 대체 누가 주인공을 이토록 괴롭히는지 궁금하고 애가 타는 것도 맞다. 그가 이 위기의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그렇지만 약간 억지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고 할까.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한국영화 《뚝방전설》에서 주인공 '박건형'이 내뱉았던 말이 떠올랐다. '범죄 신고는 112' 라고 했던 그 말이. 쉽게 말해, 경찰에 신고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했던거다. 이미 자신이 살인의 용의자로 지목받을 것 같아 늦어버린 그 상화에서라면, 진작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게 위험을 자초했다면, 그러면 FBI 를 찾아가도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여튼 해결해내는 그 모습을 보고 싶으면서도 근데 왜 혼자 해결하려고 이리 똥줄을 태울까, 경찰에 신고하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든거다. 신고해도 또 신고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죽는다면, 신고해서 그 일을 자신의 문제로 내버려두지 않고 경찰에 넘겨도 됐을텐데, 하는 생각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건 알고있지만, 여튼 저렇게 사는 주인공을 보자니 답답했다. 경찰에 신고를 하지..이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나의 경우, 바바리맨을, 술에 취해 쓰러진 아저씨를, 고장난 신호등을, 같은 학교의 교복입은 학생들 사이에 둘러쌓인 한 아이를 보고 죄다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은 우리 주변에 있어요!!



《벨로시티》를 시작으로 딘 쿤츠는 평범한 남자가 악몽 같은 현실에 빠져드는 연작을 발표했습니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에서 출간된 《남편》이 두 번째 작품. 그리고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The Good Guy》가 세 번째 작품이죠. 미국에서는 이 세작품을 '평범한 남자 3부작' 이라고도 부르더군요. -모중석 인터뷰 중에서(책 뒤)



난 이 평범한 남자 3부작 중 두 권을 읽은 셈인데, 음, 나는 평범한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킁.




















영화로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책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100쪽쯤 읽다가 중단했다. 문체가 산만하다고 해야하나.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문체여서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던거다. 그래도 영화는 봐야지 하고 별렀지만 상영관도 시간도 좀처럼 맞출 수가 없어 놓쳤다가 뒤늦게 보게됐다. 그리고 오, 보기를 정말 잘했다!!!!


여자 '엠마 몰리'는 남자 '덱스터'를 학창시절 내내 흠모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졸업식날 밤, 덱스터와 엠마는 사이 좋은 친구가 되고 그렇게 그들은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내며 같이 여행을 다니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서로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가 되어준다. 


어딘가에서 그런 말을 본 적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친구로 지내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짝사랑이 존재한다고. 물론 그 말은 백프로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짝사랑을 혹은 그의 짝사랑을 숨겨서 우리는 이성인 동시에 친구로 존재하는 가능성이 아주 높으니까. 그리고 그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신의 감정을 계속 숨기게 되고, 그것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우정을 더 오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이 말이 맞든 틀리든 어쨌든, 엠마와 덱스터에게는 맞는 말이었다. 엠마는 덱스터에 대한 연정을 품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부터. 덱스터가 자신의 이름을 외우지도 못했던 그때부터, 엠마는 덱스터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이, 그로부터 간혹 애정을 확인하는 말을 듣는것이 그렇게나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친구란 무엇인가. 그의 연애를 다 지켜보고 마찬가지로 그 연애에서 오는 헤어짐까지 다 지켜보는 사이가 아닌가. 그가 사귀는 여자들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도 알고, 그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알면서, 그렇게 덱스터가 여자들을 바꿔치는 걸 묵묵히 지켜보며, 엠마 역시 다른 남자를 사귀고 동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절망적으로 확인하게 된 건, 자신이 동거하는 남자를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또한 연애에 있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둘 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연애는 지속되기는 커녕 시작되지도 않겠지만, 어느 한 쪽의 사랑만 있어도 일단 연애는 성립할 수 있다. 남자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그 사랑에 기대어 그 연애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내 사랑이 너무 커 남자가 아직 사랑하지도 않는채로 앞으로 사랑할 수 있겠지, 하며 연애를 시작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좀처럼 상대에 대한 사랑이 자라지 않는다면, 결국 나도 또 상대도 그걸 알 수밖에 없다. 사랑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숨길 수 없는거니까. 사랑은 거짓으로 말할 수 있을 지언정, 그 거짓은 상대도 알 수밖에 없다. 만약 상대의 사랑한다는 말을 믿었다면, 그건 믿고 싶었던 본인의 의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물론 엠마의 동거남 '이안'도 안다. 엠마가 덱스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함께 살고 있다고 해서, 하루중의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것이 증거는 아니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 마음속으로 다른 남자를 사랑하며 나도 모르게 시선을 그를 향하며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사랑한다는 남자와 살을 섞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될 수 없다. 그것이 오래 지속되는 건 나에게도 그리고 나를 한없이 사랑해주는 그에게도 못할 짓이다. 


이안은 덱스터에게 말한다.


당신하고 있을 때는 엠마의 표정이 달라졌어요. 아주 밝았죠.


이 부분을 보다가 문득 어느때의 내가 생각났다. 내 감정을 숨기고 그와 우정을 지속하던 그때, 그때의 내 표정도 누군가에겐 달라 보였을까. 연애를 하면서도 애정은 우정의 상대에게 가있던 그때,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 속마음을 들켰을까.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그는, 자신과 함께 있는 내 표정을 유심히 봤을까. 내 표정이 밝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내가 그를 관찰했듯이 그도 나를 관찰했을까. 엠마가 덱스터의 한마디에 표정이 극과 극을 오갔듯이, 나 역시 그랬던 걸 그는 눈치챘을까. 그리고, 


덱스터의 청첩장을 받아든 엠마의 축하한다는 말, 


그것을 덱스터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때. 엠마는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도 우는 대신 축하해 준 적이 몇 번 있었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시절, 노래방에서 서영은의 《그 사람의 결혼식》 부르다가 목구멍 찢어질 뻔했었지.. 피를 토할뻔했어..이제는 그 노래 안부르고 묵묵히 보내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도 성장하니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행복이란 무얼까,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 생각했다. 더이상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테고. 예상치 못한 막판의 진행 때문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만약 극장에서 봤다면 눈물을 줄줄 흘렸을 것 같더라. 

오래 기다리면 결국 그는 내 사람이 될까? 그러나 내 사람이 꼭 연인으로 존재해야 하나? 그렇게 오래 기다리면 어차피 그 사랑은 더이상 사랑은 아니지 않을까. 내 사랑은 그렇게 길게 지속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그와 행복해지는 길이 지금의 우정이라면, 나는 그 우정을 계속 지켜나가는 방법을 택할 것 같다. 물론 이건, 지금의 내 생각이다. 사람은 앞으로 누구를 만나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엠마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결국 인생은 정해진 방향대로 흘러가는걸까...

엠마의 표정이 바뀔때마다 내 표정도 함께 바뀌었다. 엠마는 마음을 나에게 들켰고, 내 마음 역시 엠마에게 들킨 기분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심규선의 콘서트에 갔었다. 짙은과 함께 공연한다는 건 알았지만, 나는 짙은이 게스트의 형식으로 나올 줄 알았지, 2부는 짙은의 무대일줄은 몰랐다. 알았으면 콘서트를 안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오, 이게 뭐야. 짙은이 더 좋은거다! 나는 짙은을 모르고 노래도 몰랐는데, 아니 저사람 뭐야! 팬이 되기로 결심하고, 앨범을 다 사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 으흐흐흐흐.













그래서 사람일은 모르는거다. 지난 토요일까지 존재도 잘 몰랐던 짙은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내게 다가올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헐.

나 갑자기 눈 다래끼가 나기 시작하네? 완전 간지러운데 이를 어쩔...이게 뭔일이래 대체 ㅠㅠ

(13:47 추가: 다래끼 아닌가보다. 가라앉았어.. -_-)




덧. 1. 영화《원 데이》는 단 돈 천 원에 굿 다운로더 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꾸벅.

     2. '앤 헤서웨이' 주연의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도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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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4-04-0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래끼가 나다니! 아직 청춘이시군요. 나이드니까 안나던데. ㅎㅎ 잘 지내셨나요? ^^

다락방 2014-04-09 13:45   좋아요 0 | URL
이게 다래끼가 아닌가봅니다. 가라앉았네요. 뭐지..역시 나도(응?) 늙어버린 것인가....저도 초딩때 나고 다래끼는 처음이라 하하. 여튼 다래끼가 아니었나봐요. 이렇게 금세 사라지는 걸 보니. 밥 먹어서 없어졌나?

저야 잘 지냅니다. 야클님이야말로 잘 지내십니까. 종종 나타나주셔요, 좀!!

야클 2014-04-09 13:58   좋아요 0 | URL
지난 주에야 바쁜 시즌 겨우 끝나고 요즘은 시즌 후유증으로 골골거리고 있어요. ㅎㅎ

다락방 2014-04-09 16:02   좋아요 0 | URL
골골거리지 말고 기운내세욧!! ㅎㅎ

2014-04-09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9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조기후 2014-04-0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짙은을 모르셨구나.. 화창한 봄날 서럽게 녹아내리는 데는 제격이지 않던가요? ㅜㅜ 저도 아직 신보는 안 샀는데 노래 들어보니 역시 싶더라고요 어흑..

다락방 2014-04-09 15:25   좋아요 0 | URL
'화창한 봄날 서럽게 녹아내리는' 이라뇨, 건조기후님. 아..표현이 너무 시적이야! 건조기후님, 사랑합니다!

아무개 2014-04-0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우정을 빙자한 애정은 비.겁.한.거죠.
하지만 비겁할수 밖에 없는 그 심정은 차고 넘치게 잘알죠 저도..크흑...
분명 이 영화를 봤는데 왜 결말이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2. 어디 < 그 사람의 결혼식> 한번 들어 볼까요? 으흐흐흐흐흐흐흐

3.아참...사람들은 자신이 힘들때 자신 보다 더 힘든 사람을 찾아요.
그래서 제가 가끔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쿨럭~ =..=


다락방 2014-04-09 15:27   좋아요 0 | URL
1. 아니, 아무개님. 이 영화를 보셨다고요? 정말? 은근 영화 많이 보시는 것 같습니다!! ㅎㅎ
결말은 나중에 만나면 말씀드릴게요. ㅎㅎ

2. 그 사람의 결혼식은 더이상 부르지 않습니다. 다 철없던 때의 얘기에요..이젠 웃으며 보내줍니다. 세이 굿바이- 저거 이 나이에 부르다가 목젖 나가요..

3.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일전에 너무 우울하다고 생각되던 때에, 내 앞에 마주앉았던 회사 동료가 우울해하는 걸 보고 아...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싶어 오히려 생각지도 않게 위로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수이 2021-12-1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두나 전 애인이었네요 영화 속 남자 주인공!

다락방 2021-12-18 18:55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ㅋㅋ 내일 다시 볼거에요. 마침 넷플에 있으니까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