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반노동의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
케이시 윅스 지음, 제현주 옮김 / 동녘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1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케이시 윅스'의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다 읽었다. 서문부터 어려워 과연 내가 이번에도 완독할 수 있을것인가 걱정했는데, 같이읽는 멤버중 2등으로 완독할 수 있었던 걸 보면(1등인 블랙겟타님, 축하합니다!!), 역시 나는 짱인 것 같다. (네?)


서문도 어렵고 1장 2장도 어려웠지만 기본소득이 나오는 부분부터는 너무 재미있어서 짜릿했다. 기본소득에 대해서 사실 크게 관심없었는데 케이시 윅스가 말하는 기본소득을 읽노라니 너무 재미있는거야. 아니, 이렇게 좋은 기본소득을 왜 안하는거지? 그러나 그렇게 흥미롭게 읽었으면서도 '그런데 기본소득이 정말 궁극적인 답인가'하고 혼자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나는 노동윤리를 말끔히 내다버리지 못하고 있는건가, 스스로 돌이켜보고 있다. 어쩌면 노동윤리에 갇혀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에 관심이 없었던걸지도 모르고. 



기본소득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기본소득은 개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가족이나 가구 구성, 다른 소득 여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되는 소득이다.(van Parijs 1992, 3) 기본소득은 소득이 그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게끔 바닥 수준을 정립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임금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더라도 지금의 조건과 상태에 덜 의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p.217)



기본소득은 임금관계로부터 분리되고 거리를 둘 수단을 획득할 방법으로서 요구될 수 있다. 그 거리는 다시 삶의 질을 위해 더 이상 일에 그토록 완전히 쉼 없이 의존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이미 원하는 것을 하고자, 또는 원하는 존재가 되고자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기본소득은 다른 것을 원하고 행하고 다른 존재가 되는 삶, 다른 종류의 삶을 고려하고 실험할 수 있게 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27)




기본소득 요구는 더 많은 돈과 시간, 자유를 향한 욕망의 자극으로서, 가사임금 요구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선언에 접근하는 다른 많은 방식들과 차별화된다. 기본소득 요구는 검약과 저축의 윤리, 양보의 정치, 희생의 경제학을 설교하는 대신, 필요와 욕망의 확대를 촉구한다. 일을 칭송하고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정치적 분석과 전략의 좀 더 익숙한 스타일들과는 달리 기본소득 요구는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적게 원해야 한다는 통상적 지침을 거부한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원하고 요구해야 하는 것의 합리적 한계로 그어져 있는 것에 도전하며 과잉으로 나아간다. 기본소득 요구는 개인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연결 고리에 반기를 들고, 임금노동만이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누리도록 하는 합당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거부함으로써 일에 더 이상 종속되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p.228)




가사임금은 탈자연화의 효과를 일으켰을지는 모르지만, 가사임금에 대한 주부들의 요구는 이 노동이 가정 내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일이라는 점을 다시 확고하게 할 위협이 되었다.

기본소득 요구는 가정 내 특정 젠더 구성원을 잠재적 수혜자로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관점이자 자극으로서 훨씬 나은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기본소득 요구는 현실화된 젠더 범주를 재생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p.232)





케이시 윅스는 이 기본소득 요구를 가져오면서 페미니즘의 유명한 저자들, 가사노동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발언했던 '베티 프리단'과 '앨리 훅실드'의 저서를 가져와 비판한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고 요구한 것들에 대한 의미는 충분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과 가사임금의 한계를 비판한 것. 그러면서 기본소득 요구를 가져오는 거다. 가사노동과 그에 대한 임금을 책정하는 것은 젠더를 고정화시키고 이상적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 그러나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이것들로부터 더 한걸음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은 너무 재미있어서 열심히 밑줄 그으며 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은 앞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봐도 아주 좋을 것 같다.


제 5장 유토피아 부분 읽으면서는 다시 좀 어려워저 헤롱헤롱 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요지만은 알 수 잇었다. 유토피아를 차마 우리가 갈 수 없는 이상향이라 생각하고 비난하거나 무시하는대신, 우리가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음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 결국 상상해야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건 작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여자는 인질이다》의 결론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상상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곳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곳에 다다를 수 있겠는가. 얼마전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꼽았던 '부정적인 성격' 역시 통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우리가 싸울 수도 있음을, 싸워서 이길 수도 있음을,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상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젊은 여성들이 주장하는 탈코르셋도 그 상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라면 으레 화장해야지, 예쁘게 보여야지, 를 체화하고 살고 있다가 '아니, 우리가 왜 그래야하지?' 로 생각이 뻗어갔고, 그 생각은 결국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의 사회적 성을 지울 수 있는 도약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상상이라는 것도 내가 얼만큼의 개인적 자원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질 터. 언제나 어디서나 통하고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은 여기에서도 답이 된다. 더 많이 아는 사람, 더 많이 본 사람, 더 많이 들은 사람, 더 많이 경험한 사람이 더 많이 더 넒게 상상할 수 있다.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으면서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부정적 생각보다는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면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확실히 더 나은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이 책은 옮긴이의 말까지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이다. 유토피아 부분에서 막연하지만 확 정리되지 않았던 부분을 옮긴이 제현주가 제대로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다른 세상은 가능할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다른 세상이 가능한 듯이 요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존재할 때만, 비로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나는 이 책을 옮기면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 -옮긴이의 말, p.363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








노동 거부는 단순히 노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가장 고결한 소명이자 도덕적 의무로 보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것, 노동을 사회적 삶의 불가피한 중심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심 없는 소비"를 포함한 다른 모든 추구보다 일을 우위에 두는 이들-좌파에 있는 그런 이들까지-의 금욕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노동 거부의 당면한 목표는 두 가지로 제시되는데, 하나는 노동 감소로 노동시간을 줄인다는 의미이자 노동의 사회적 중요성을 줄인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적 조직화 방식을 새로운 협업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노동 거부는 착취당화는 노동, 소외되는 노동을 거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실성과 합리성의 원칙으로서의 노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Baudrillard 1975, 141) 이런 면에서 "해방된 노동은 곧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Negri 1991, 165) - P161

"노동 거부는 활동을 소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지배에서 벗어난 인간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Berardi 2009, 60) - P167

뮤어헤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두 가지 측면, 즉 노동의 내재적 가치를 긍정하는 것과 그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어긋나 버릴 수 있다고 인정한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뮤어헤드는 세 번째 요소를 더한다. 일이, 심지어 좋은 일이라도, 그 자리에 붙들어 둠으로써 삶 전체를 잠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74

더 나은 일에 대한 요구는 더 적은 일에 대한 주장을 손쉽게 압도해 버린다. 그리하여 내가 짚어 두려는 두 번째 주장은, 노동윤리의 수정된 버전을 내놓기보다는 이 윤리를 비판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더 적은 일에 대한 투쟁에 성공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 P175

가족 제도는 임금을 버는 이들의 임금을 벌지 않는 이들에 대한 사회관계로서(12) "실업자, 노인, 병자, 아이, 그리고 주부들"을 포함하는 포괄적 범주이다.(James 1976, 7)이런 면에서 가족은 분배 기제로 작동하는데, 가족을 통해 임금이 임금을 벌지 않는 자, 임금을 적게 버는 자, 임금을 아직 못 버는 자, 임금을 더 이상 벌지 않는 자로 가닿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은 사회적 재생산의 사유화된 장치로서 기능한다. 가족이 이처럼 기능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개인들은 가정 내에서 생산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상품화된 등가물을 통해 확보하거나 임금노동을 하고도 시간이 충분해 그런 재화나 서비스를 직접 생산할 것이다. 이 경우 임금은 더 높아야 하고 노동시간은 더 짧아야 할 것이다. - P192

이렇게 가족은 임금 시스템에 계속해서 결정적 요소로 기능하지만 여전히 숨어 있는 파트너로 남아 있으며, 가족 제도를 자연화하고 낭만화하며 사유화하고 탈정치화하는 모든 담론들이 그 역할을 은폐한다. - P193

델라 코스타는 가족을 임금 시스템과 연결 지어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이루는 한 축으로 설명함으로써(Dalla Costa and James 1973, 33)가족 제도가 노동 가격 인하를 흡수하며, 저렴하고 더 유연한 여성화된 노동 형태를 제공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국가와 자본에게 사회적 재생산 비용의 책임을 상당부분 면제해 주는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 P193

임금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권력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요소 중 하나이자, 그 조건을 놓고 벌어지는 투쟁의 가장 구체적인 대상 중 하나다. 가사임금을 옹호하는 두 학자 니콜 콕스Nicole Cox와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가 설명하다시피 "임금에는 언제나 두 편이 있다. 자본의 편은 임금을 올릴 때마다 생산성이 올라가게끔 하려고 노력하면서 노동계급을 조종하는 데 임금을 사용한다. 노동계급의 편은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 더 적은 일을 위해 점점 열띤 투쟁을 벌인다."(1976.11) 임금은 자본의 축적, 그리고 노동자가 잠재적으로 지닌 자율적 필요와 열망의 확대 양쪽을 모두 촉진할 수 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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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1-2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1장까지 읽었어요. 서문은 정말 어려워서 읽은 부분 다시 읽기를 몇번이나... 이론서를 오랫만에 읽으니 책 읽기의 색다른 경험이네요.

다락방 2020-01-29 07:55   좋아요 0 | URL
트윗 보니까 2장까지 다 읽으셨던데, 유부만두님. 이 책은 3장,4장이 특히나 재미있어요. 막 빨려들어가서 읽게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요. 밑줄 그을 준비도 하셔야 할거에요.

전 너무 짜릿했어요. 선배 학자들의 말을 가져와서 인용을 하고 또 어떤 건 비판을 하고 그 위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는게요. 너무 짜릿해서 더 많은 학자들이 말하고 연구하고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무쪼록 기쁘게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5장은 어렵지만.....킁킁.

단발머리 2020-01-28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제일 앞서가다가 이제부터 서두르고 있는 단발머리입니다. 저도 <제5장>이 저한테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답은 기본소득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새롭게 더 배워갔으면 해요.

상상한다는 것에 대한 문단 특히 좋아요. 여자가 재산을 갖는다는 것, 가정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의 일을 계속한다는 것, 혼자 여행한다는 것. 모두 예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더 나은 세상을 같이 상상해 봐요. 수고했어요, 다락방님! (찡긋)

다락방 2020-01-29 07:57   좋아요 0 | URL
5장 때문에 당황했네요. 선명하게 잡히진 않았는데 응 뭔지 알겠다, 이러면서 읽다가, 제현주 님의 옮긴이의 말로 한 방에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단발머리님, 상상이라는 것도 그러나 자기 자본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아요. 자기 경험, 자기 생각, 자기 지식이요. 이게 충분해야 상상도 더 멀리, 넓게 뻗어나가는 것 같아요. 답은, 공부라고 또 생각했어요. 늘 하는 말이지만, 계속해서 뭐가 됐든 읽고 쓰는 게 아주 중요한 자기 자본이 될 것 같아요. 우리 서로 격려하며 함께 나아갑시다!

- 2020-01-28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기본소득넘나 요구하는 저는 이렇게 한명의 동지를 얻은 것 같아 기쁩니다! 핫핫

다락방 2020-01-29 07:57   좋아요 0 | URL
나는 공쟝쟝님의 동지 ♡

공쟝쟝님, 일단 이를 악물고 2장까지는 읽어내봐요. 3장부터는 소리 지르면서 읽게 될 거에요. 후훗.

syo 2020-01-28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을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저는 많이 늦었지만 이번 달을 넘겨서라도 한 챕터 한 챕터 읽으면서 꼼꼼하게 읽으면서 페이퍼 남겨야겠어요.
으쌰으쌰

다락방 2020-01-29 07:58   좋아요 0 | URL
쇼님이 한 챕터 한 챕터 꼼꼼하게 읽는다면 정말이지 좋은 페이퍼가 나올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쇼님 안에는 많은 지식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으니, 이 책과 만난다면 완전 근사한 페이퍼를 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훗.
 

몇년만에 설에 집에 있는다. 집에 오신 할머니는 '너가 어쩐일로 집에 있냐' 라고 하셨고, 나는 할머니 보려고 아무데도 안갔어요, 했다. 그렇지만.. 친척들이 곧 들이닥쳐 번잡해질 게 또 너무 싫어... 조용함을 원한다. 어제부터 집에 있어본 결과 나는 오늘 식구들에게 말했다. '역시 명절엔 여행을 가야겠어, 다음부턴 여행 갈게' 했다. ㅎㅎ

아무튼 그래서 맥북과 책들을 가득 싸들고 집을 나왔다. 엄마, 밤에 들어올게, 하고 나와버렸어...  돼지갈비 잔뜩 먹고 나와 배고플 걱정 없으니 가져나온 책을 다 읽는게 목표인데, 그럴 수 있을까.




책읽기에 앞서 책 구매를 하려고 한다. (응? 왜?)

아니, 비연님도 책 구매 하셨고...(그게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0년에 다시 책구매 안하고 사둔 책만 열심히 읽으려고 했는데... 아니, 박완서 책을 사면 독서대를 준다는거다. 내가 딱히 굿즈 욕심 없는데, 독서대는 요며칠 계속 벼르던 아이템이다. 하나 사야겠어, 마음먹고 있었던 것. 

집에 와 계시는 엄마가 매일 성경책을 읽으시는데 내 독서대를 사용하시는 거다. 그래서 내가 독서대를 사용하려고 하면 엄마 책을 내려두고 내껄 올려두고 다시 내껄 내려두고 엄마 책을 올려두고...해야 하는데 얼마나 성가신가...상당히 귀찮은 일이잖아? 독서대 하나 더 있는게 낫잖아? 그런 참에 독서대를 준다고 알라딘이 똭- 그러니까, 아, 또 신이 나를 사랑해 힘들게 책 읽게 하지 않으시려고...



















페미니즘 도서를 여러권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 읽는 그 당시에 당장 이해되는 게 아니어도, 나중에 다른 책을 읽다가 '아 그 때 그 책에서 말한 게 그런 내용이었구나' 하는 별안간의 깨달음이 오는 순간. 비단 페미니즘 책에서만 그런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만, 최근에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그런 경험을 해서 너무 즐겁고 신났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내가 읽는 책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아도 좋겠다. 갑자기 다른 책을 읽다가 훅- 하고 과거의 책 내용이 '아 이 내용이었구나'하는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있어. 그렇다고 보면 책을 읽는 게 바로 내게 다 쌓이는 게 아니어도 어떻게든 내게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인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윤김지영 선생님의 역서.

















알라딘 책소개: 그린비 몸문화연구소 번역총서 두 번째 책. 프랑스 페미니스트 철학자 엘자 도를랑이 제시하는 페미니즘적 혁명 윤리의 태동. 지금까지 여성들에게 폭력의 활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몰수되어 왔는지, 왜 여성들에게 비폭력을 본질화해 왔는지를 역사적 소수자 운동의 계보를 통해 설명한다. 도를랑이 제시하는 호전적·전투적 자기윤리와 자기방어 전략은 지배자가 독점해 온 폭력의 구조를 깨뜨리고 다른 몸들을 발명해 내기 위한 혁명의 시론이 될 것이다.




내가 그간 읽어온 책들은 이 책을 읽는데 영향을 미쳐 이해를 도울 것이고, 또 이 책을 읽는다면 과거의 나의 독서를 끄집어내올 것이고 앞으로의 독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것이다. 책을 계속 읽는다는 것은, 그것이 전혀 다른 성질의 것들이라 해도 독서 근육을 키우는 일이다. 근육이 단단해지면 더 무거운 걸 들어올릴 수 있는 것처럼, 그간 읽지 못했던 분야의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여러분, 독서를 하자. 물론 알라딘에 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사실 독서는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페이퍼 제목은 '명절의 독서'지만, 아직 독서는 시작도 안했다는 사실... 오늘은 1월의 도서를 다 읽도록 하자. 해보자.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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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1-25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휴가 중에 또 피신을 가시다니 ㅎㅎ 이번 해에도 열심히 읽자구요 ㅎㅎ

다락방 2020-01-25 13:18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ㅋㅋㅋ 왜이렇게 집을 나오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 해에도 열심히 읽읍시다, 트랜님. 열심히 읽고 열심히 운동합시다. 저는 사실 2월에 요가 등록 끝나는데 연장 할까말까 생각중이거든요. 퇴근하고 요가 가는게 세상 귀찮아서... 그렇지만 요가를 해야 그나마 굳은 몸이 좀 풀리고.. 갈등중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읽고 열심히 마시고 즐겁게 삽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moonnight 2020-01-25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친척들 피해 도망가고 싶은데 조카들이 와 있어서 어쩔 수 없네요ㅎㅎ 좀아까 외갓집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선언하고 갔어요^^; 데리러 가야해서 술 한 잔 못 하고 북플에서 노닥거립니다. 다락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책 많이 읽으셔요♡

다락방 2020-01-27 19:25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는 여동생네 가족이 와서 오늘 돌아갔어요. 덕분에 조카들 실컷 안아주엇답니다. 조카들..정말 너무 좋아요. 조카들은 축복입니다. 우리 새해에도 복 맣이 받고 조카들 듬뿍 사랑하면서 살기로 해요. 문나잇님, 해피 뉴 이어!

비연 2020-01-27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락방님의 책구매에 한몫한 비연, 여기 있습니다. 책과 함께 새해 복 왕창!

다락방 2020-01-27 19:25   좋아요 0 | URL
좋네요, 비연님. 책과 함께 새해 복 왕창!! 꺅 >.<

얄라알라 2020-01-2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최대 2권(?) 정도 까페에서 쌓아놓아봤던 거 같은데, 제가 10분 간격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 하는 꼴이 스스로 염치없어져서 못 올려놓겠더라고요. 다락방님은 초집중하시나봐요^^ 요가로 정신수련을 하셔서 더 가능하신가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20-01-28 07:56   좋아요 0 | URL
얄라얄라북사랑님 ㅋㅋㅋㅋㅋㅋㅋ 요가로 정신수련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랑 너무 관계 없는 말이구요 ㅋㅋㅋㅋㅋ 저도 책 꺼내놓고 스맛폰 잘만 들여다보는걸요. 저 날도 저렇게 세 권 가져갔지만 한 권도 채 끝내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네시간이나 있었지만 실제 독서에 몰입한 시간은 얼마일지..

얄라얄라북사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작년보다 훨씬 더 즐거운 시간 많이 가지시길 바랄게요!

책먹는엔지니어 2020-01-2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엔 자고로 책 구매죠!ㅋㅋ

다락방 2020-01-28 11:20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ㅋㅋ
 
비 온 뒤
윌리엄 트레버 지음, 정영목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고즈넉하고 아름다우며 서늘하다. 특별한 악인이 나오는 게 아니어도 우리는 인간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데, 이 단편집 안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다. 중,노년의 이야기들로 가득한 건 윌리엄 트레버여서 할 수 있는 것 같다.
「데이미언과 결혼하기」는 특히, 싫으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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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펜시오네 체사리나에 혼자 있는 것은 연애가 끝났기 때문이다. - 「비 온 뒤」p.120


















연애가 끝나지 않았다면 해리엇은 그녀의 애인과 함께 그리스의 한 섬에 가 있었을거다. 그곳에서 애인과 함께 2주간 휴가를 보낼 계획이었으니까. 그러나 연애는 끝났고, 그녀는 혼자 이탈리아에 와있다. 어릴때부터 가족들과 해마다 왔던 곳이기에 익숙했고, 그 익숙한 곳에 혼자 와 머물고 있는 것. 그녀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와인을 마신다. 남은 와인은 침실로 가져가 마시기도 한다.



그녀는 내내 헤어진 애인을 생각한다. 연애에 있어서의 자기자신을 반성하기도 하지만 애인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던 그 당시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고야 만다. 그걸 어떻게 안떠올릴수 있겠는가.



그가 둘의 연애가 제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한 건 '렘브란트 시네마' 휴게실에서였다. 그녀가 "하지만 우리 행복하지 않았어?" 하고 외친 게 그때였다. 그들은 말다툼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중에, 왜 영화관 휴게실에서 그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었을 때조차. 모르겠다, 그가 말했다. 그냥 그 순간이 적당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어떤 단편적인 분위기 때문에. 만일 휴가 여행이 그렇게 이르지 않았다면 그들은 관계를 한동안 더 끌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게 훨씬 낫다, 그는 말했다. (p.134)




해리엇은 자신들이 행복한 연애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당신과 내가 만드는 관계에서 당신과 내가 진행하고 있는 관계에서 왜 나는 행복을 느끼는데 당신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느낄까. 이게 어디 해리엇의 이야기이기만 할까. 해리엇은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이별의 말을 듣고 의아하다. 우리 행복하지 않았어? 그 행복은 해리엇의 것이었으되 애인의 것은 아니었는가보다. 렘브란트 시네마 휴게실. 극장의 휴게실. 그는 왜 하필 거기에서 내게 이별을 말한걸까. 해리엇으로서는 당연히 궁금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거기에서 말했어? 그런데 왜 하필 그 때 말했어? 이건 아마도 이별통보를 받은 사람쪽에서는 그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수십번 수백번 물어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뭐가 달라질까. 렘브란트 시네마 휴게실이 아니었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렘브란트 시네마 휴게실에서 마침 그 때 얘기한 게 아니었다면, 그들의 관계는 유지될 수 있었을까. 하필이면 그 장소, 그 때가 아니라해도 언젠가는 '하필이면 그 장소, 그 때'가 오는 거잖아. 렘브란트 시네마 휴게실이 아니라 올림픽공원 이면 달라졌을까? 그 시간이 아니라 다음날 아침이면 달라졌을까?

이별하기에 적당한 장소와 적당한 시간이라는 게 있기는한가?



나는 한 번도 이별을 말했던 연인에게 '왜 하필이면 거기서 그 때'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그랬어야 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해리엇처럼 나는 우리가 행복하다고 믿었다. 우리는 완전하고 완벽하다고, 단단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깔깔 웃고 있는데 그는 이제 이 관계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우리는 몇 개월 후에 외국에서 만나기로 했고, 비행기표도 끊어두었고, 비자 발급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오전만 해도 깔깔대고 웃으며 좋았는데, 오후에도 그는 내내 다정했는데, 그런데 밤에 그는 이제 그만두자고 말했다. 하필이면 내가 거기에 있을 때, 하필이면 그 시간에. 나는 그래서 그 말을 잘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게와 정확히 그 뜻이 이해되기 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그 말인즉슨 그러니까, 내가 예약한 비행기표를 취소해야 함을 의미하는거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몇몇 친구들이 하필이면 그 때 그 타이밍에 이별을 말한 나의 애인에 대해 의아해했다. 아니, 왜 거기 있을 때 그랬대? 왜 어떤 기미도 없이 그 때 그랬대? 나는 그가 아니기에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나는 이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걸. 그러나 짐작해 친구들에게 그를 대신해 대답했다. 아마 내내 그러고 싶었겠지, 그리고 참고 참고 미루고 미루다가 그 때는 더이상 미룰 수 없었겠지.

아마 그런거겠지.

그러니, 거기에서가 아니었던들, 다른 장소였다해도, 뭐가 달라졌을까. 그날 밤이 아니라 다음날 밤이라고 하면 또 뭐가 달라졌을까. 어차피 그렇게 되었겠지. 그도 아마 몇월며칠 몇시에 어디에서, 라고 계획했던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마침내 입밖으로 내야겠다고, 그 때,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래서 궁금했다. 그렇다면 뭣 때문에 더는 안되겠다, 이쯤에서 그만두자, 그로 하여금 입밖으로 내게 했을까.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 돌이켜보고 돌이켜봐도 좋았던 기억 밖에는 없었는데, 오늘 우리 대화를 아무리 곱씹어 봐도 우리 좋기만 했는데, 우리 많이 웃었는데, 뭔 얘기만 하면 이렇게 잘 웃는걸까, 그런 생각도 했는데, 그건 다 뭐였을까.



나는 우리가 단단하고 안정적이라 믿었고 우리둘이 모두 행복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로부터 이별의 말을 들었던 것이 당황스러웠고. 그러나 놀랍게도 나 역시 이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몇개월 전부터 짐작했다는 걸 나중에 알게됐다. 나중에. 내 일기장을 들춰보다가. 웃으면서 즐거워했으면서 일기장에는 불안과 불만이 가득했다. 좋지 않은 예감들이 내 일기장에는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단단하다고, 안정적이라 믿었던 것은 그저 보이는 내가 그러는 것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마음이 크게 작용했는가 보았다. 이별할 당시에도 나조차 알지 못했던 것을, 그러나 일기장에서는 몇개월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짐작하고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니 그 장소가 아니었어도, 그 때가 아니었어도, 그 일은 일어날 일이었다. 이별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으로 아무리 바꿔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일기장 속의 나는 불안했다. 단단하지 못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해리엇은 자신에게 이별을 말하는 애인에게 우리 행복하지 않았냐 물었지만, 그리고 그렇게 물을 당시 해리엇은 자신은 내내 행복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러나 해리엇 안의 또다른 해리엇, 좀더 솔직하지만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 해리엇은 알고 있었을거다. 그 관계가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걸, 이런 순간이 올 거라는 걸. 해리엇과 나의 차이가 있다면, 내 안의 또다른 나는 그걸 들여다보고 일기를 썼다는 것. 해리엇이여, 일기를 쓰자... 일기를 쓰면 이렇게 자기 안의 또다른 나를 마주칠 수 있게 된다.


여러분, 일기를 써요. 일기를 쓰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일기를 쓰자.


이것이 나의 오늘 페이퍼의 결론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이게 아니고, 쓰다 보니까 갑자기 일기를 쓰자 이렇게 되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이거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이렇게 될줄 나도 몰랐어? 아 다시 우중충 분위기로 어떻게 끌고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 《비 온 뒤》에서 표제작 「비 온 뒤」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들 중에서 「비 온 뒤」가 특히 더 좋거나 하진 않다. 오히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재미나 감동 면에서 덜하달까. 그러나 해리엇이 놓여있는 상황이 몇해전 나의 이별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봄에 나는 이별을 맞닥뜨렸고, 나는 행복했는데 그는 아니었던건가, 수개월 아팠고, 그리고 나 역시 해리엇처럼 그와 함께 계획했던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대신 혼자 여행을 했다. 해리엇은 혼자 여행하면서 헤어진 그에게 엽서를 쓸까, 생각하지만 쓰지 않는다. 나는 혼자 여행하면서 헤어진 그에게 엽서를 보낼까, 하다가 엽서를 보냈었다. 이게 바로 해리엇과 나의 다른 점이었다. 해리엇은 이탈리아로 갔지만 나는 베트남으로 갔다. 해리엇은 이탈리아어를 조금 할 줄 알았지만 나는 베트남어를 할 줄 몰랐다. 해리엇은 애인과 함께 그리스로 가려고 했었지만, 내가 그와 함께 머물기로 했던 곳은 다른 섬나라 였다.




당연한듯 해리엇은 그가 다른 사람과 함께 그리스에 갔을지 궁금해한다. 왜 아니겠는가. 아직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설사 헤어진 후 시간이 오래 지났다해도 그런것들은 궁금해지지 않나.



해리엇은 그가 결국 거기에 갔을지, 런던에 남지 않고 오늘 거기에 있을지, 심지어 함께 갈 사람은 찾았는지 궁금하다. 그가 스키로스에 있는 모습, 이야기하던 대로 아트시트사 만에서 윈드서핑을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트시트사 만에서 복잡하지 않고 행복한 동반자, 그저 뭔지 알아보려고 치유를 받아보는 동반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선하다. (p.138)




내가 그때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그 시간에 거기 있기로 했던 계획들이 다 취소되었을 때, 그래서 내가 결국은 혼자 베트남에 가 있었을 때, 그때 그는 함께 머무를 다른 사람을 찾았었을까. 그래서 그 다른 사람과 거기에서 나대신 함께 있었을까. 그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서 그는 행복했을까, 행복한 동반자를 찾았다고 생각했을까. 행복한 동반자와 함께했을까. 그래서 좋았을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모두 '그렇다' 아니, 모두 '그랬다'. 우리는 그 후에 다시 만났고, 그는 나와 헤어진 뒤 다른 사람을 만나 함께 지냈다. 내가 갈 수 없는 곳에서, 그러니까 가지 못했던 곳에서 그는 다른 동반자와 함께 했더랬다. 그걸 나는 나중에 그를 통해 들어 알게 되었다. 해리엇의 애인은 아마도 다른 동반자를 찾아 그토록 좋아하는 해를 온 몸으로 받아가며 윈드서핑 중일것이다. 그런일들은,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아도 일어나곤 한다. 해리엇은 그에게 정말이지 작별을 고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작별을 고하기 위해 혼자 거기에 갔을 것이고. 그러나 혼자 거기에 갔어도 뭐 그게 그리 마음 먹은대로 잘 되나. 아마 거기까지가 끝이었을거다, 해리엇과 그와의 관계는. 그 시점에서는 해리엇이 돌아서는 게 맞았을 것이다.









어제 이 노래 왜케 생각나나 했더니 해리엇 때문이었구먼....





그녀가 사랑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자,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상황을 바꾸려고 더 밝은 현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래의 불변성을 강요하자,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물러섰다. (p.141)



이별후에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사랑에 많은 것을 기대했나? 아니면 내가 사랑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나? 내가 너무 관심이 많았나? 아니면 내가 너무 무심했나? 내가 너무 빈틈이 많았나? 아니면 내가 너무 빈틈이 없었나? 내가 너무 잘했나? 아니면 내가 너무 못했나?


그러나 내가 어느쪽이었던들 그 시간은 왔을 거다. 그 장소가 아니었어도, 그 시간이 아니었어도 왔을 거다. 뭐가 어떻게 되었어도 달라질 건 없었을 거다. 그랬을거다.




올해도 혼자 여행을 가야겠다. 하와이를 가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타이밍의 비행기표가 뜨지를 않네. 안되면 베트남 가야지. 하노이... 내 영혼의 안식처..... 쌀국수가 맛있는 곳. 호안끼엠 호수 근처도 걷고 더운 기운도 흠뻑 받아들이고 쌀국수도 배터지게 먹고 와야지. 와인도 주문해 마시고 남은 와인은 룸으로 가져가 더 마셔야지. 재작년인가 혼자 갔을 때도 호텔 레스토랑에서 와인 시켜서 마시다가 남은 거 룸으로 가져갔었는데.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하와이 안되면 하노이 가야지. 눈누난나. 그러면서 그에게는 이제 행복한 동반자가 생겼을까, 행복한 동반자와 함께 서핑하고 있을까, 이런거 생각해야지. 뭐, 인생 그런 거니까... 가서 타투도 해야지. 쇄골에다가 큼지막한 태양 그려 넣을까.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쌀국수 만세!

엘리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있는 것들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얼마 전의 과거에, 연애하던 여름에 살면서 오직 현재 알고 있는 것으로만 미래를 예상했다. 자신을 사랑한 여름 부제, 그녀가 여전히 사랑하는 그 사제가 기적적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는 엘리가 그의 자식에게 생명을 준 일조차 몰랐다. "그럴 수는 없어." 그는 지금은 감자밭이 되어버린 풀밭에 누워 있을 때 말했다. "절대 그럴 수 없어, 엘리." 그녀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제는 사제였다. 그는 보상을 하듯 다짐했다. 그의 온 생에 이런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거다. -「감자 장수」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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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1-23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쇄골 태양타투... 기대됨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23 12:16   좋아요 0 | URL
어딘라고 떠나면....타투를 하고 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ㅋㅋ

단발머리 2020-01-2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에서
쌀국수로의 이 자연스러운 안착!
키햐!!!! 좋아요 102개!!!!!

다락방 2020-01-23 15:00   좋아요 0 | URL
어휴... 편지 정말 가사가 절절하지 않습니까. 점심시간에 울면서 몇 번이나 따라부르고 그러면서 쌀국수 생각을 했습니다.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20-01-2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결국 베트남 쌀국수를 부르는 글. 지금 당장 먹고 싶어지는 부작용...

다락방 2020-01-25 12:2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베트남 쌀국수는 베트남 가서 먹으면 정말이지 진짜 맛있어서 천국에 온 기분입니다, 블랑카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쌀국수는 드셨을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블랑카님!
 

1월부터 5월까지 같이 읽는 도서 목록이 정해져 공유합니다.

앞으로의 같이읽기에 참여하실분, 참고하세요.


1월, '케이시 윅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2월, '낸시 폴브레', 《보이지 않는 가슴》

















3월,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4월, '베티 프리단', 《여성성 신화》
















5월,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해당월 오기 전에 다시 알려드리니 그 때 참여하겠다는 댓글 달고 참여하시면 되고요, 참여하실 분은

1. 해당도서를 읽고,

2. 말머리에 책 제목 달고 읽으면서 한달 동안 열심히 관련 글쓰기(한 번이상) 해주셔야 참여가 완료됩니다.

리뷰든 페이퍼든 형식은 자유롭게, 원하시는 대로 써주시면 됩니다. 




예: [흑인 페미니즘 사상] 오늘의 제목






참여했다고 무슨 특혜가 있거나 한 건 아니고, 그저 본인의 교양과 경험이 쌓이는... 거죠. 예.

6개월이상 열심히 참여해주시는 분들과는 연말에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강제성 X).



해당도서는 변경될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만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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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2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그램이 참 알차고 좋은 것 같아요. 책을 읽고 페이퍼만 쓰면 된다니 참여방법도 간단하고 쉽네요.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참여한다고 특혜도 없는데 왜 이렇게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요? 🤔

다락방 2020-01-21 13:48   좋아요 0 | URL
그 질문에 굳이 답을 드리자면, 그것은 아마도.... 본능적 끌림..... 같은 거 아닐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끼리 이러자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없네요 ㅋㅋㅋㅋㅋ)

- 2020-01-2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댓글을 달고 싶었다!
“다락방님 똥꼬까지 욕심이 가득하신데, 저도 욕심 한가드으으으으으윽!! 들어가는 목록이네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0-01-22 07:51   좋아요 0 | URL
쟝쟝님 우리는 왜이렇게 똥꼬까지 욕심이 가득한걸까요? 네? 왜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0-01-22 08:39   좋아요 0 | URL
하지만 이보다 더 보람찬 욕심을 전 알지 못합니다... ㅋㅋㅋ 공부 총량의 법칙ㅋㅋㅋ

다락방 2020-01-22 08:46   좋아요 1 | URL
공부총량의 법칙 때문에 저는 최근 몇년간 미친듯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교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어우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01-22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1월 도서 미리 구했는데 넘 어려워서 어흑 그래도 읽고 가능하면 1월에 꼬옥 완독하고 짧게나마 글 올릴게요. 열심히 관련 글쓰기 이게 좀 무섭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다락방 2020-01-22 14:14   좋아요 1 | URL
수연님, 이게 말이죠. 책을 읽고 그 책에 관련된 글을 쓰면 글을 쓰지 않을 때보다 뭐라도 확실히 조금 더 저에게 남는 것 같더라고요. 네, 쓰시라는 압박입니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같은책 읽고 쓰는 다른 분들의 글도 더 유심히 읽게 되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좋더란 말이죠? 네, 역시 압박입니다. 자, 화이팅입니다. 완독을 향하여, 그리고 글쓰기를 향하여. 빠샤!!

블랙겟타 2020-01-22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까지 꽉꽉 채운 일정이네요.
보는 것만 으로도 배가 부른. (˶′◡‵˶)
지금 막 제가 가는 도서관에 검색하니 전부 있네요!! 무기는 있겠다.. 제 의지만 챙겨가면.. 저도 6월이 되면 이 책들이 당연히 읽은 상태겠죠?

다락방 2020-01-22 14:16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 저는 1월과 3월과 5월 도서가 무지 어렵게 느껴집니다 ㅠㅠ 제가 완독할 수 있을지.. 일단 어떻게됐든 이해를 하든 못하든 읽기는 꼭 다 읽자고 결심합니다. 우리 6월에는 이 책들을 다 읽은 상태가 되기를 바랍시다.
아, 그리고 읽고 싶은거 있으면 또 말해봐요. 콜론타이를 어떻게 할지..이건 좀 생각해봅시다. 6월부터 10월까지 안읽은 책 찾아서 리스트업하고 11월에는 제2의성 다시 갑시다. 꺅 >.<

- 2020-01-24 11:35   좋아요 1 | URL
아니 진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니 이렇게 인류의 문제점 논쟁 최전선에 껴들다니... ㅋㅋ 환경보호까지 하죠! 에코페니즘 갑시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0-01-25 12:25   좋아요 1 | URL
에코페미니즘 관련 양질의 책을 찾아봅시다. 우리가 못할 게 뭐랍니까! 으르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