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무실에서 알라딘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어제 술(쑥부침개+와인)을 마신 탓인지 오늘은 꼭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었다. 출근길에 부러 맥도날드에 들러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를 주문해 가지고 와 사무실에서 마시는데, 으앗, 첫입부터 너무 썼다. 아니.. 이거보다 더 진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마시던 나인데..이게 왜 쓰지? 다시 마셔보았다. 역시나 썼다. 으앗. 이걸 어쩐담?

하는수없이 어제 사두었던 츄러스랑 같이 먹었다. (응?)


왜 이 아메리카노가 쓰게 느껴질까. 어쩌면 그간 사무실에서 커피메이커를 이용해 내려마시던 커피에 길들여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원두를 주문할 때 핸드드립용으로 분쇄 옵션을 선택하고 사무실에서 커피메이커를 이용해 내려마시면 맛이 진하지가 않다. 그래서 원두를 많이 넣는데, 아무리 그래도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같은 맛은 나지를 않아. 내심 아쉬워하며 그냥 마시던 터였는데, 아쉽다고 하면서도 그 맛에 길들여져버린 모양이었다. 맥도날드 아메리카노가 쓰다니...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사무실에서 내려마시는 원두로 돌아서야 하는걸까. 그래야 하는걸까. 그렇다면..... 흐음.... 핸드드리퍼 살까? (그거 아냐) 좀 저렴한 거 사서 기분이 꿀꿀할 때면 향을 음미하며 내리면 좀 낫지 않을까? (그러지마) 매번 하는 건 귀찮아도 어떤 날에는 핸드드립 하고 싶지 않을까? (어리석은 생각이야) 매번 하면 스트레스여도 어쩌다 하면 .... (너 니 성격 알잖아, 잘못된 선택을 하지마..)


그렇게 혹시 알라딘에서 드리퍼를 살 수 있나 검색해보았다. 나는 커피를 공부한 것도 아니고 공부할 것도 아니라서 좋은건 필요 없었다. 저렴한 게 있다면 갖고 있다가 어느날 내리고 싶다면 내려 마시면 되잖아?


















검색해보니 이 두 종류의 드리퍼가 나왔고 가격은 3,600원으로 저렴했다. 회사에는 이미 오른쪽(칼리타 드리퍼)용 여과지가 있으니까 드리퍼만 사면 되잖아? 했는데, 후기를 보니 왼쪽(하리오 드리퍼)이 훨씬 낫다는 게 아닌가. 응? 그래서 빨간 드리퍼 후기를 보니 그건 다 평이 괜찮았다. 저렇게 커피 나오는 부분이 넓으냐 좁으냐에 따라서 커피 맛이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 맛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값이면 후기가 좋은 걸 사는게 낫지 않을까.


저 원뿔형 빨간 드리퍼를 사도 내가 가진 여과지를 쓸 수 있나 보았더니, 저건 또 저것대로의 여과지가 필요했다. 흐음..


















왼쪽이 하리오 여과지 오른쪽이 칼리타 여과지.


아니, 저 드리퍼를 사면 여과지를 또 따로 사야한단 말인가... 흐음...... 나는 망설이기 시작한다.....이를 어쩌나. 기존에 사둔 원두는 산수유이고 아직 남았는데, 요즘 이걸 내리면 딱히 향이 잘 나질 않는다. 아마 로스팅한지 좀 되어서가 아닐까. 새로운 커피를 사서 새로운 향을 가득 맡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데, 여동생이 알라딘에 에티오피아 새로 나왔는데 산미 강하니까 참고해, 라는 말을 하는게 아닌가. 뭔데, 뭐가 새로나왔는데.


















사...사.....사고싶다. 나는 '마시고' 싶은 것인가, '사고' 싶은 것인가.

어쨌든 그래서 드리퍼, 여과지, 커피...를 넣었더니 '으응 드리퍼 저려미네~' 하면서 좋아했다가 갑자기 장바구니 금액 넘나 늘어나버리는 것.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소비란 무엇이죠? 구매란 무엇인가요????????? 갑자기 장바구니 금액 커지니, 아아, 이를 어쩌나, 아무것도 사지말까... 어차피 나란 여자, 핸드드립 하면서 온갖 스트레스 다 받을텐데, 그냥 커피 메이커에 내려 마시면 되고, 그러면 여과지도 안사도 되고, 남은 커피나 내려 마시면 원두도 안사도 된다. 어머님은 늘 내게 말씀하셨지, 돈은 안쓰면 모이는거라고....



엄마...



나 아직 동백 원두도 안마셔봤는데... 알라디너라면 동백 원두는 필수코스 아닌가요?


















그래서,

혼란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왜 알라딘에서 책지름에 대한 고민에 커피 지름에 대한 고민까지 더해야 하는것인가..

알라딘 탈퇴할까..




책이나 살까.



















아, 맞다. 나 어제부터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읽고 있는데, 읽기 싫다... ㅠㅠ

그렇지만 조카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고 싶으니 꾹 참고 읽기로 한다..


















그대 맘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대가 말한 온갖 작품을 가슴 속에 새기고 듣고 보고 외워도 우리의 거린 좀처럼 좁혀지질 않네요

얽매이는 기분이 들면 안되니까요

나는 다가서다가도 물러나요

보여주고 싶지만 드러낼 순 없기에

그대의 옷자락 끝만 붙잡고 있는걸


(심규선, 담담하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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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4-03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다락방님. 알라딘 탈퇴라뇨. 그냥 필터 하나 더 구매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걸로 사소서..
라고 말하다가 나도 혹 하고 있음... 하나 살까? 드리퍼랑 커피랑 필터랑...? ㅡㅡ+

다락방 2020-04-03 10:27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이게 이거 살까 그러면 이것도 사야되잖아, 다살까... 이러다보면, 으음, 탈퇴가 답인가? 이렇게 된다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또 막 다 비싼게 아니라서 더 고민돼요. 앗싸리 비싸면 뒤돌아서겠건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세상틈에 2020-04-0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반적으로 하리오는 신 맛을 더 좋게 하고 칼리타는 반대로 신 맛이 죽습니다. 에티오피아나 케냐 쪽 좋아하시면 하리오 추천욤. 참고로 내리는 거 자체는 하리오가 쉽고 편해요. 거의 들이붓는 수준.ㅎㅎ;;

다락방 2020-04-03 10:37   좋아요 0 | URL
하리오 후기에 안그래도 신맛이 더 좋아진다는 게 있더라고요. 너무 신기해요. 어떻게 드리퍼가 신맛을 조절할 수 있는지. 물 들이붓는 수준이라면, 하리오가 제게는 좀 더 낫겠네요. 후훗. 전 천천히 내려가는거 너무 못견디겠는 터라... 에티오피아, 하리오는 셋트로 가야겠네요. 사려면 이렇게를 셋트처럼 사야겠어요. 하하하하하.

로제트50 2020-04-03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맛나는 커피좋아하는데 칼리타드리퍼가 있고요 ㄱ-
오늘 구매는 에티오피아 셋트에 책 끼워서 *^^*

다락방 2020-04-03 11:10   좋아요 0 | URL
아 뭔가..여러분들 댓글을 읽으니 제가 에티오피아 셋트를 구매해야할 것만 같은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티오피아 셋트에 책 끼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티오피아 셋트... 아 어뜨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02moon 2020-04-0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젯밤에 알라딘 커피 원두 검색하고는 고민했어요. 책이랑 살까, 아침에 책 왔는데- 꽂을 공간 없는데 어디에 둬? 그래도 사고 싶은데 이러다가 알라딘 창 꺼버렸어요. 다시 고민해야 할까 봐요. 다른 지기님들 서재 돌아다니며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책들 찾아내고 좋아하다가 또 흠칫하기도 하고. 끝이 없는 듯, 정말 알라딘 탈퇴가 답인 걸까요. T-T

다락방 2020-04-03 12:10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얼마전에 컴백하신 글 봤습니다, 302문님. 오랜만이에요. 후훗.

저는 아침에 에티오피아 셋트와 책을 구매했다가 다시 결제 취소했어요. 다음주에 월급날이 있으니, 그 때 구매하자, 하고요. 왜냐하면 제가 월급날에는 꼭 책을 구매하는데, 이번에 구매하면 월급날 어차피 또 할거라... 이중으로 구매할 것 같아서, 꾹 참자, 꾹 참고 월급날 한 번만 하자, 하고는 결제 취소를 눌렀답니다? 하하하하하.
제가 뭐하고 사는건지 모르겠어요. -.-

blanca 2020-04-0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 맘 이해해요. 저도 한창 커피까지 같이 지르면서 알라딘의 호구가 되어가는가 싶더라니까요. 해피포터 ㅋㅋㅋ 저도 애 때문에 사실 억지로 시작하기 전에 엄청 읽기 싫은 거예요. 진짜 표지가 솔직히 비호감--;; 그런데 시작해 보세요. 분명 후회 안 하실 겁니다. 나중에 막 감동 받아서 울었어요. 작가가 진짜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이건 이야기가 내렸다, 싶더라고요.

다락방 2020-04-05 15:58   좋아요 0 | URL
저는 2권째 읽는데 아직까지 별 재미가 없거든요. 순전히 조카에 대한 사랑으로 끝까지 읽어보리라, 하는데 해리포터가 글쎄 뱀의 언어를 한다는거에요? 갑자기 이야기가 재미있어질 느낌입니다. 뱀의 언어라니요, 맙소사... 아무튼 저의 해리포터 완독을 응원해주세요! 으하하하하

- 2020-04-0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 칼리타 사야해요? 산미나는 커피 좋아하는 데.. (전 플라스틱 하리오 드리퍼로 마시고 있습죠. 산수유도 동백꽃도 제 입엔 산미가 아쉬웠는 데 ㅡ에티오피아 후기 궁금해요~)

다락방 2020-04-06 07:52   좋아요 0 | URL
산미는 하리오가 맞습니다, 쟝쟝님. 하리오를 가지고 계시다면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드리퍼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ㅎㅎ

에티오피아 방금 주문했어요. 마셔보고 말씀드릴게요. ㅋㅋㅋㅋㅋ

noomy 2020-04-1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 잘 들었습니다. 가사가 아우 진짜~

다락방 2020-04-13 10:33   좋아요 0 | URL
크- 월요일 아침, 노래 잘 들으셨습니까! 감성 충만해지셨나요? ㅋㅋㅋㅋㅋ
 
창궐 - 아웃케이스 없음
김성훈 감독, 현빈 외 출연 / 인조인간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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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너무 좋아, 영웅 짱이야, 영웅 남자들이 다하자!!
영웅 놀이에 푹 빠진 알탕 영화. 그들의 자의식 과잉 그리고 열등감이 화면밖으로 철철 넘쳐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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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6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싫다는 거 맞죠?ㅋㅋㅋㅋㅋ 근데 왤케 이 백자평이 웃기죠?ㅋㅋ 재밌으신 다락방님ㅋㅋㅋ

다락방 2020-04-06 07:52   좋아요 0 | URL
네 영웅주의 빠진 남자들 너무 싫다는 거였어요. 영웅을 지나치게 부각함으로써 오히려 열등감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었네요. 으하하하...
 
로마법 수업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 년의 학교
한동일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교양선택 강의 같다. 내 학창시절을 미루어보면 이 수업 여러차례 빠졌어도 어쩐지 시험 보면 잘 볼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저자의 전작인 [라틴어 수업]도 가지고 있는데, 음, 로마법 수업 읽어보니 라틴어 수업까지 굳이 읽진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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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는 "여자들은 교회 집회에서 말할 권리가 없으니 말을 하지 마십시오. 율법에도 있듯이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남편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십시오. 여자가 교회 집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수치가 됩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434~35) p.98









한동일은 이 책에서 여자들이 '미사보'를 쓰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종교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한 얘기였는데, 남자들은 머리에 무언가를 쓰면 자신의 머리,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지만 여자들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으면 남편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고. 남자는 하느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여자가 머리에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그것은 머리를 민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별 이상한 논리를 다보겠지만, 어쨌든 머리를 가리는 것이 남편을 그리고 신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는 것임은 잘 알겠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윤김지영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가 생각났다. 첫 책이 나오고 독자와의 대화를 하셨는데, 그 때 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미사보'라고 하셨다. 성당을 다니고 있었는데 여자들만 미사보를 쓰고 있었고 본인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써야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 왜 여자들만 써야하느냐 물으면 대답은 항상 '원래 그래' 였다는 거다. 원래 그런게 어딨어, 하다보니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철학을 공부하려다 보니 프랑스에 가서 하자, 하게 된 것. 그렇게 윤김지영 교수님은 지금 철학자가 되셨다.

 

 

성당 미사보에 윤김지영 선생님이 언제나 바로 생각나지만, 위의 인용한 구절을 읽고서는 대뜸 '남자가 더 모르는 게 많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은 교회에서 말도 하지 말고 궁금한 건 집에 가 남편에게 물으라는데, 그런데 남편이 모르면? 남편이 나보다 더 아는게 없으면? 그때는 어떡하나?? 왜 남편은 아내에게 모든 걸 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물론 저 당시에 저렇게 말할 수 있었던 까닭은 여성에게는 그만큼 교육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이 아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일테고.

 

 

그러나 교육이란 게 그렇다. 모두 알지 않나. 학교 교과서로 배운 거 달달 외워서 법대나 의대를 갈 실력이 된다해도 그것이 바로 지혜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 네이버용 지식을 머릿속에 가득 넣어서 얄팍하게 이것저것 아는척 할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이 스스로 호기심을 갖지 않고 의문을 갖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단순히 아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아는 것은 그저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응용으로 연결되어야 하지 않는가.

 

 

학창시절에 어느 과목 선생님이었는지 기억이 희미한데, 그 선생님이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해준 적 있다. 지금 당장은 국어가, 영어가, 수학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지만 이건 나중에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필요하다, 무언가 모르는 게 생겨서 그것을 알고자 할 때, '그렇다면 이것을 어디서 찾아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가 뭔가 모르는 게 생겼을 때 해결할 방법을 어디서 찾아야할지를 지금 우리의 교과 과정이 알려주는 거라고. , 이건 과학쪽에서 찾아볼 수 있겠구나, 아 이건 역사를 들여다보면 되겠구나, 하고. 그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렇게나 오래 기억이 난다.

 

로마의 여성은 공적 생활에 참여할 수 없었고 법적 지위도 없었습니다. 또 오늘날의 초등교육에 해당하는 교육 이외의 모든 고등교육에서 배제되었지요. 그러나 지배계층과 남자들이 정해놓은 틀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틀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해낸 여자들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p.103)

 

 

 

여성이 교육에서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게 생기면 남편에게밖에 물어볼 수 없는게 그 당시 여자들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배움은 짧아도 숱한 과정에서 '흐음,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라든가 '흐음, 이 사람이 말하는 게 다는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숱하게 하지 않았을까. 다시 말하지만 교과서를 달달 외워서 명문대를 간다는 것이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고 관찰하면서 호기심을 갖고 생각하고 깨닫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반드시 배움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니까.

 

 

 

아주 오래전에 <엄마의 바다>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너무 오래전이라 프로그램 제목이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맞는지 모르겠지만, 여자주인공인 고현정은 학원 선생님인 최민수와 오랜 연인관계였다. 김나운은 그런 고현정의 단짝 친구였는데, 김나운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최민수의 동생 허준호와 요샛말로 썸을 타게 된다. 고현정과 김나운의 직업이 뭐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이들은 대학까지 졸업했고 최민수도 졸업했지만 허준호는 그렇지 못했다. 허준호의 직업이 뭐였는지도 역시 생각나지 않지만 극중에서 배움이 짧고 좀 건달로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그가 김나운에게 호감을 갖게 됐는데, 어느날 허준호와 김나운이 같이 티비를 보면서 영어 대사를 알아듣는 김나운을 놀란 듯이 허준호가 보는 거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묻는다.

 

 

"너는 저 영어 알아들을 수 있어?"

 

 

이때 김나운은

 

 

", 고현정은 나보다 더 잘해."

 

 

라고 답했었는데, (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오래됐으니) 그 때 허준호가 한참이나 기가 죽었던 거다.

 

 

 

또 있다. 이것 역시 아주 오래전의 예능에서 꽁트처럼 해준거라 프로그램명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랑학개론>이엇을 거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됐고 결혼을 하게 됐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더 똑똑한거다. 어느날 뉴스를 보다가 남편이 뉴스에서 하는 얘기를 못알아 들으니까 아내가 '저거 몰라? 그거잖아~' 하면서 얘기를 해주는데, 남편이 버럭 화를 내는 거였다. 아마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이렇게 한 번 그런 일이 있고난 후로는 남편이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

 

 

 

 

위의 103페이지에서 인용한 것처럼 그 당시 로마에서 여성들을 고등교육에서 배제한 것, 그리고 '모르는 건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어봐라' 로 결국 이어지게 한 건, 바로 이런 부분에서 나왔던 게 아닐까 싶다. 남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안된다는 것, 남편의 기를 죽이면 안된다는 것. 남편은 아내보다 위에 있고, 그러므로 남편을 존중하고 하늘같이 받들어야 하는 것, 당연히 고개를 숙이는 것이 여자이자 아내의 도리임을 사실화 하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교육을 주면 안되는 거였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똑똑할 때, 그러니까 여자친구로서 혹은 아내로서 더 똑똑함이 드러날 때 그게 너무 신경질나서 예로부터 남자들은 그렇게나 자기보다 더 배운 여자들에 대한 경멸감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남자들이 그렇게나 이화여대를 싫어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어디 하나 꿀릴 데 없이 너무 잘난 여자들이어서.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이 얘기는 한 번 했던 것도 같은데, 남자 수학선생님이 여자 무용선생님 뒷담화를 수업시간에 한거다. 그러면서 말한게, '그 선생님이 이대거든' 이였다. '이대 나온 여자를 남자들이 싫어해', '그렇게 이대 나오면 싸가지가 없어' 였던 거다. 그렇게 남자 수학선생님은 이화여대 나온 무용선생님을 욕했지만, 이화여대 나온 무용 선생님이 남자 수학선생님을 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남자 선생님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를 모른다. 그러면서 이화여대에 대해서 '남자들이 싫어하는구나'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지. 그 때 그 말이 되게 강하게 남아있었는데, 그 수학선생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개머저리였음이 드러났다. 이것까지 쓰면 너무 길어지고...

 

 

 

영화 그을린 사랑에도 교육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여자는 종교가 다른 남자로부터 아이를 낳았다. 여자가 사는 곳에서는 종교가 다른 남자와 사랑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명예살인에 처해져야 했다. 이에 여자의 할머니는 몰래 여자가 아이 낳는 것을 돕고, 아이의 발에 표시를 한 뒤 다른 곳에 보낸다. 그리고는 여자에게 말한다. 도시로 도망가라고, 도망가서 교육을 받으라고, 교육을 받아서 다른 삶을 살라고.







아마도 여자들은, 아니 남자들도, 알고 잇었던 것 같다. 여자들이 교육을 받으면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것을. 그래서 여자들은 교육을 원했고 남자들은 여자들이 교육받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르는 건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어보라니.

 

 

스물다섯에 만났던 남자 친구 생각이 난다. 그 당시에 내가 먼저 좋아했고 내가 많이 좋아했었는데도, 사실 사귀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될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때 생각하면 내 가슴을 여러번 주먹으로 치게 되는데, 그를 기다리면서 도스트예프스키의 책을 읽다가 그가 와서 덮었더랬다. 그러니까, 그는 내가 책 읽는 모습을 여러번 보았다. 그는 그날 데이트를 하다가 나랑 사소한 말다툼(기분 나쁜 말다툼이 아니라 웃으면서 하는거였다)끝에,

 

 

"너 책 읽지마. 책 그만 읽어. 신문도 읽지마."

 

 

라고 했던 거다.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게 책을 읽어서라고, 이제 그만 읽으라는 거였다. 그 당시엔 웃으면서 넘어갔지만 지금 그 때를 생각하면 내가 진짜 자꾸 주먹으로 내 가슴을 친다..... 그는 그당시에 서갑숙의 책을 읽었더랬다. , 여러분이 아는 그거...나도 그가 읽길래 읽어보았다가........ 그만두자...... 어쩌다 읽는 책이 왜..................

(이보시게, 나는 책을 읽다 못해 쓰는 사람이 되었네.... )

 

내가 왜 그를 좋아했을까. 진짜 그를 좋아했던 나 때문에 가슴이 찢어진다 정말 ........ 하아- 그 당시에 나 좋다던 얌전한 남자 뻥 차버리고 이 마초를 만났는데 진짜 내 실수다 ㅠㅠ 내가 잘못했어 ㅠㅠㅠ 언젠가 별자리 보러 갔을 때 선생님이 그런 얘기 했다. 너 주변에 너 좋다는 얌전한 남자를 골라 사귀어라, 네 마음에는 흡족하지 않겠지만 그게 네 인생에 낫지 않겠냐, 안그러면 다시 마초가 온다, 마초 사귀면 너 자꾸 화난다....... 마초 뭐야 이것들아. 으윽...

 

 

..무슨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아무튼,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 너무 한심하다는 거다.

 

 

 

 

 

며칠전 퇴근길에 갑자기 벚꽃을 마주쳐서 깜짝 놀랐다. 그러고보니 여긴 항상 언제나 가장 먼저 벚꽃을 볼 수 있는 길이었다. , 언제 이렇게 핀거야. 분명 엊그제까지 못본것 같은데! 하면서 좋아했는데, 주말을 지내고 오니 더 활짝 피어 있었다. 스맛폰을 만지고 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의 장관을 마주하고, 아아, 내가 왜 스맛폰 따위나 보고 있었을까 이렇게나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하면서 멈춰서 바라보았다.








 

 

부러 어딘가를 찾은 것도 아니고 퇴근길에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이 이렇다. 매해 이맘때쯤 항상 이 길을 걷는걸, 그래서 나는 좋아했었다. 낮이면 낮인대로 밤이면 밤인대로 벚꽃나무 길을 걷는게 좋았다. 꽃이 피면 활짝 핀대로 지면 꽃잎이 떨어진대로 좋았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모든 것들이 예정대로 되지 않는다고 우울해 있는데, 이렇게 때가 되니 꽃은 피었다. 참 신기하지. 꽃은 대체 뭐길래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이토록 인간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걸까. 그저 좋았다. 어쩔 수 없이 좋았다.어쩔 수 없이 그리웠다









4

 

-이응준

 

 

 

내가 기차같이 별자리같이

느껴질 때

슬며시 잡은 빈손을 놓았다.

 

 

누군가 속삭였다. 어쩔 수 없을

거라고. 귀를 막은 나는

녹슨 피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너의

여러 얼굴들을 되뇌었다.

 

 

벚꽃 움트는 밤 아래

무릎 꿇었다.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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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 2020-04-01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죽지‘ 않고 겸허히 서로 모르는걸 나눌수 있는 남성동료들 소중합니다.. 회사에 마초빌런이 몇분 계셔서ㅠㅠㅋㅋ

다락방 2020-04-01 09:07   좋아요 1 | URL
저는 회사에는 죄다 맨스플레인 쩌는 무능력자 남자들 밖에 없어요. 스물다섯의 남친도 사내연애였다능 ㅎㅎ
오히려 사적으로 만나는 남자사람들 중에는 다정하고 현명한 남자들이 있지요. 그래서 친구로 잘 지내고 있고요. 후훗.

2020-04-01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4-01 11:02   좋아요 0 | URL
한국 천주교회의 여성 신자들은 아직도 상당수가 미사보를 쓰지만, 유럽 교회에서는 요즘에는 미사보를 쓴 여성 신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P.98


이 책에서도 한국이 아직도 미사보를 쓰는 여성 신도가 많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어차피 여자들은 써야 하는 것이니 이걸 쓰지 않겠다고 거부하기 보다는 쓰는 거 멋있잖아 라고 생각하는 게 쓰는 쪽에서는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댓글 읽고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머큐리 2020-04-0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거리미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죠.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는 이제 갓 신학대를 졸업한 분이었고 미사 집전을 도와 주시는 수녀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어요. 미사 후 미사를 참관하시는 중년의 신부님과 인사하게 되어서 묻게 되었습니다. 미사는 왜 신부만 하고 수녀는 하지 않느냐고. 신자들이나 일반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왜 꼭 신부여만 하느냐고 질문햇더니 굉장히 불쾌해 하셨습니다. 초면에 공격적인 느낌이셨나 봅니다. 그 거리미사는 아마 해고된 쌍차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였어요. 사회문제나 계급문제에 대해서는 나름 진보적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이 젠더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감각한 모습에 좀 충격이었어요... 다락방님 글 보니까 갑자기 생각난 에피소드...ㅎㅎ

다락방님의 꾸준한 여성주의 책읽기를 항상 응원하면서... 참고로 다락방님 소개한 책들을 저도 주의깊게 보고 독서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락방 2020-04-01 14:05   좋아요 0 | URL
종교에서도 중요한 위치에는 여자를 주지 않죠. 그저 보조자로서의 여성을 인정할 뿐. 어느 종교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종교는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정작 젠더감수성에 있어서는 아주 보수적인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종교에도 더 관심을 가져보려고 해요. 제가 신앙으로 믿는게 아니라, 여성학 쪽으로요. 한편 정희진 선생님이 종교학을 전공하셨는데 여성학자가 된 것도 그런 지점에서 시작된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머큐리님은 저의 글쓰기를 응원해준다 하시고 꾸준히 읽는다 하시지만, 저는 어제 오늘 고민이 좀 많았어요. ㅠㅠ 제가 어디에 정리해서 올리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저는 제 글이 어떻게 끝맺게 될지 저도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제 의도는 그렇게 여성주의적 시점으로 혹은 남성을 비난하는 의도 없이 처음엔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쓰다보면 저도 모르게 자꾸 여성주의적 글을 쓰는거에요. ㅠㅠ

오늘은 점심 먹으면서 어떻게 이걸 좀 조절할 수 있을까 ... 고민하다가, 그냥 먹는 얘기를 쓸까, 먹는 얘기를 쓰면 굳이 여성주의적으로 가지 않을 수 있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흑흑 ㅠㅠ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45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 갈무리 / 201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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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최고의 책
- 상반기 최고의 책
- 손에 꼽을만한 책

이라고 이 책을 완독한 세 명이 각자 저런 평을 들려주었다.
같이읽는 책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뿌듯해.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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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1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상반기 체고의 책 예약!

다락방 2020-04-01 09:08   좋아요 0 | URL
크- 좋구만 좋구만 좋다. 얼쑤~

단발머리 2020-04-0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겨진 분들의 순위 각축전이 치열하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결승전보다 3, 4위전에 이목이 더 집중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음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락방 2020-04-01 10:53   좋아요 0 | URL
뭐, 고만고만한 순위가 겨루어봤자 아니겠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한없이 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