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이 책의 제일 처음 단편,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을 읽었다. 재개발을 앞둔 곳에 사는 '나' 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다가 '너'를 만나는 걸로 시작한다. 길고양이의 밥을 챙기고 구조를 하는등의 따뜻한 행동을 보며 '나'는 '너'에게 조금 호감을 품지만, 낡은 곳은 어서 빨리 재개발 해야 한다, 재개발 될 곳을 찾아 수익을 챙겨야한다고 말하는 '너'에게 낯선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나'가 놀란 만큼 독자인 나도 놀랐다.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병원에 데려다주는 일들은 쉽게 말해 '선한'일일텐데, 그런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이사를 가지 않고 버티려는 재개발구역의 사람들을 어리석게 생각하고 '나'에게도 재개발 될 곳을 물색해 차익을 많이 남기라고 말하다니, 이것이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인거다. 그러나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픈 고양이들을 구출해 쉼터를 만들어주면서, 빈집에 혹여라도 고양이가 숨어들어있지 않을까 인기척을 내면서, 그러나 재개발 구역을 쫓아다니는 사람.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독자인 나에게도 궁금해졌다. 이것이 왜 한사람이 모두 갖춘 면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든걸까?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은 아파트를 팔아 수익을 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 안의 내 심리는 무엇인가. 이것이 왜 모순됐다고 생각하는가. 돈을 더 많이 갖고 싶어하면서 그러나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것은, 사실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성질들이 아닌가. 이것이 한 인간에게 모두 있다고 해서 그것이 대체 왜 낯선것인가.


'나'역시 혼란을 느낀다. 호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어?'하는 마음도 느낀다. 이 사람은 나랑은 좀 다른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그런 면에 끌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거기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생각이 있으면서 동시에, '나'가 '너'보다 일곱살이나 많은데도 '너'보다 돈이 훨씬 적다는, 재개발 되기전에 집을 빼 다른 집을 알아 봐야 한다는 열등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는데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가난하고 너는 그렇게 (재개발 수익으로) 가진 자가 된것일까. 너에게 느끼는 나의 이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나와 다른 모습의 '너'에게 이질감을 느끼지만 그러나 또 호감과 관심도 있다. 자주 만나면서 이 사이가 더 깊어질 것이 두렵고 그래서 이제 그만 만나야지 마음먹지만 매번 부름에 응답하고야 만다. '나'는 그것이 '너'에 대한 이끌림이라고 생각한다. 이끌림이란 게 그렇다. 상대가 선하다고 이끌리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못됐다고 생각해서 훌쩍 돌아서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뒤로 물러나려다가 어느틈에 다시 한걸음 내딛고 있는, 왜이럴까, 내가 왜 이럴까 하는 것. 그리고 '나'는 그렇게 이끌리고 싶지 않다. '너'와 친근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다. 이쯤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어지는 관계는 결국 힘들게 되니까. 그걸 아니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어떤 것들을 네가 똑같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면서도 반가웠다. 우리가 이 동네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오며 가며 틀림없이 한 번은 만났을 거라는 짐작. 그렇게 생각하면 네가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졌고 가깝게 여겨졌으므로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어떤 식으로든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게 한번 생겨나면 좀처럼 없애기 힘들다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는 나이였다. -<3구역, 1구역>, p.25




오늘 이 단편을 읽는데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마레 지구>라는 아주 짧은 단편 영화가 떠올랐다. 《사랑해, 파리》라는 옴니버스 영화에 등장하는 단편. 그 영화속에 단편이 여러편이지만, 나는 유독 이 단편의 제목만을 기억한다.

















마레 지구.


아마 기존에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마레 지구, 라는 이 단순한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벅차올랐다. 구스 반 산트가 대체 마레 지구로 무슨 말을 할까.


소년과 소년이 우연히 한 가게에서 만난다. 나는 가구를 파는 가게로 기억하는데, 그들은 어쨌든 거기서 처음 만난다. 그리고 호감을 품는다. 한쪽이 유독 호감을 표하고 그러나 다른 한쪽도 마찬가지여서 다른 사람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렇게 둘만있는 그 잠깐동안의 시간에 몇마디 말을 나누고, 그러다 손님으로 온 쪽이 짐을 챙겨 가게를 나가고, 뒤늦게 가게에 남아 있던 소년은 문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영화가 끝나는 거다. 나는 이 단편을 그렇게나 좋아했다. 마레 지구, 라고 떠올릴 때면 이 풋풋함과 설레임, 그리고 처음 만나는 것에 대한 모든 감정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이 단편이 그렇게나 좋았더랬다. 그 영화속의 다른 단편들보다 더.



가게 안의 소년은 달려나가 가게 밖의 소년을 마주치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치게 되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데이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그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결론에 닿을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간 살아오면서 내가 깨달은게 있다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살았다'는건  '처음 만난 순간부터 홀딱 반하는 일'이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살았다'는 건, 그보다는 '마음먹음', '작정'이 하는 일이라는 거다.


소년과 소년은 젊다. 찬란한 일들이 그들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주보고 웃고 설레이는 일들이 그들에게 분명히 있었고 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당분간' 일 것이다. 내가 비극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반함'이 하는 일이 거기까지기 때문이다.


그 끝이 어떨지 몰라도, 그러니까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첫만남의 강렬함은 매우 축복할만한 일이다.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나, 그 우연한 만남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끌릴 수 있다는 것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살면서 한 번도 오지 않을, 그런 일이다. 이 사람 뭐지, 왜 더 얘기해보고 싶지, 이렇게 무작정 끌려가도 좋은 것인가, 이 사람 더 알고싶다, 하는 생각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그리고, 나이들수록 더 적어진다. 나이들수록 경험치도 쌓이고 무수히 많은 인간들을 만나보기 때문에, 첫눈에 반하는 일? 거의 없다. 한 사람 안에 무수히 많은 면들이 담겨져있고, 굳이 드러내지 않는 면도 밖에서 보이기도 하거든. 인간에 대한 기대 자체가 옅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 우연히 마주쳐 그 첫만남에 서로에게 끌렸다면, 전화번호를 건넸다면, 그렇다면 마레 지구의 소년처럼 문밖으로 뛰어나가야 함이 옳다. 그런 경험은 살면서 그 때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은 사실 딱히 봄의 느낌이 아닌데, 이 봄의 느낌이 아닌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너무나 봄같은, 아니지, 찬란한 여름으로 막 넘어가는 듯한 마레 지구를 떠올렸다. 김혜진은 일전에 《딸에 대하여》를 읽어보았더랬는데, 이 책, 《소설 보다 봄 2020》에서 가장 처음의 단편이 김혜진이어서 반가웠다. 사실 이 책에서는 나는 김혜진만 기대하긴 했다. 그리고 아직 김혜진만 읽었고.


출근길에 마레 지구를 떠올린 일이 너무 좋았는데, 너무 오래전이라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지 자신이 없었고 또 다시 보고 싶기도 했다. 짧은 단편이니 어쩌면 유튜브에 있지 않을까, 하고 검색해보았더니, 오! 있었다. 6분의 영상이었다.


기억은 역시나 왜곡되어 있었다. '소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아침 다시 보니 소년 보다는 '청년'에 가까운 것 같다. '가게'라고 생각했는데 '작업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쪽은 끊임없이 말을 걸고 호감을 표시하는데 다른 한쪽은 이렇다할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다할 반응을 하지 않았던 청년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그는 상대의 전화번호를 받고, 그리고, 뛰어나간다. 그게, 마레 지구였다.






'나'가 매번 확인하게 되는 '너'라는 사람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며, 결코 '나'가 다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너'라는 사람에게 '나'는 점점 더 속수무책이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김혜진, p.46)



같아서, 어쩌면 달라서, 우리는 때로 속수무책이 된다. 나를 사로잡았던 그 때 그 순간은, 우리의 다름 때문에 생겨난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숱하게 많이 우리가 이렇게나 다르구나 생각했고, 우리가 너무 달라서 결코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한 날들이 수두룩하다. 낮에도 그리고 밤에도 나는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토록이나 자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내일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내가 속수무책이 되었음에 다름아니다.




4월이 다 가고 있다.

한 사람 안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고, 거기엔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모든 사람 안에는 자신이 상상하기 힘든 모습들이 잠재되어 있는 셈일 텐데요. 물론 제 안에도 저 스스로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하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원래 사람이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좀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것 같습니다. 당연하다고 말은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늘 얼마간은 체념하게 되는 것도 같고요.
그리고 한 사람의 모순적인 면면 혹은 이중적인 모습들이 드러나는 순간은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의 문제만으로는 해명하기 힘들다는 생각도 합니다. 시기와 상황, 처지와 형편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이전과 다른 선택과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그에 따른 결과나 책임의 양상도 달라질 테고요. 또 그걸 보는 사람들의 입장도 각자의 사정에 따라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김혜진)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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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20-04-2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단편 보고 김헤진 작가님 책 더 보고 싶더라고요.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ㅎㅎ

다락방 2020-04-24 09:05   좋아요 0 | URL
제가 가난과 선함을 함께 놓고 가는것 같단 생각을 이 작품 보면서 하게 되더라고요. 웽님, <딸에 대하여>도 봤어요? 그것도 괜찮거든요. 아직 다른 단편들 보기 전인데 이 단편 좋았어요. 사실, ‘나‘의 ‘너‘에 대한 이끌림에 크게 공감하진 못하겠지만요. ‘너‘가 저에게는 호감형 인간이 아닌지라 ㅎㅎ 아무튼 좋은 독서의 시간이었습니다.

잠자냥 2020-04-2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고양이 밥을 가끔 챙겨주는 저로서도 길고양이 밥주는 분들 ‘이미지‘에 약간의 클리셰랄까 편견이랄까 이런 게 머릿속에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의 그 편견을 깨는 분들을 만나면 좀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ㅎㅎㅎ암튼 흥미로운 단편이군요.

그나저나 마레 지구 저도 엄청 좋아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네요. 구스 반 산트는 어디서 늘 저렇게 예쁘장한 청년과 소년들을 발굴하는지 원 ㅎㅎㅎ 덕분에 잘 봤어요. 집에 가서 또 봐야지. =33

다락방 2020-04-24 09: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잠자냥 님. 저도 저라는 인간 자체가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맞닥뜨릴때면 당황스러워요. 게다가 제 안에 자리한 이 편견.. 잠자냥 님 표현대로 클리셰, 편견 이 적합한 표현인 것 같아요. 저는 왜 길고양이 밥 챙겨주는 사람이 부동산 투기와는 거리가 멀거라고 당연히 생각할까요? 당황스러웠어요.

잠자냥 님도 마레 지구를 좋아하신다니. 우앗. 너무나 반가워요 흑흑 ㅠㅠ
저 오랜만에 다시 보는데 오늘 아침 출근길이 얼마나 신나던지요! 물론 출근하고 나서는 똥같은 기분이 되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레 지구 좋아요! 막 마음이 살랑거려요. 후훗.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 창비세계문학 6
딩링 지음, 김미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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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책들이 있지만 제목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책들도 있다. '딩링'의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는 후자에 해당한다. 나는 이 책의 작가인 딩링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고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읽겠지 하고 준비해뒀던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들었을 때는, 대체 안개마을에 있을 때 뭐가 어떻게 됐다는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였다. 안개마을에서 안개라니, 은둔하기 좋아 쓴걸까, 그 마을에서 사랑을 한걸까, 그 마을에서 혁명을 한걸까.


표제와 같은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는 중국인 여성 위안부 '전전'이 등장한다. 그리고 위안부 전전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당연한 편견도.


오래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여옥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마을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자고 있는 집으로 마을 남자가 침입한다. 그리고는 '어차피 너는 버려진 몸'이라며 강간을 시도한다. 그러니까 이 정서. 다른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졌거나 성폭행을 당했던 여자에 대한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이 정서가,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에도 드러난다. 이 소설의 화자는 휴양차 안개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일 년전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 전전을 만나게 되는데, 전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위안부로 끌려가게 됐고 또 그렇게 중국 공산당의 첩자가 되기도 하는데, 나라는 그녀를 이용했고 마을 사람들은 남녀할것 없이 그녀에 대해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뻔뻔하게 낯짝을 들고다니는 여자가 되어 있었고, 상대적으로 다른 여성을 깨끗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그녀는 그렇게나 부당하게 가족들의 수치가 되었다. 우리가 진작 결혼했다면 그녀를 구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이라도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전전의 남자동창 '샤다바오'는 그녀를 구해주려고 하는 착하고 의로운 남자이다. 그러니까 여자는 끌려가고 강간당하고 이용당하고 있는데 그렇게 만드는 이도 남자이고 그런 여자를 구원해주고자 하는 것도 남자인 셈. 여자의 인생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더렵혀지고 혹은 구원되어 지는가.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숱한 영화와 책속에서 드러나는 바다. 그토록이나 여성을 혐오하던 남자주인공이 자신의 피부병을 지적받자 '이걸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 그걸 욕하면 어떡해' 라고 항변하는 영화 《히트》에서도 알 수 있고, '당신이 통제할 수 없었던 일로 평가받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니까' 당신을 돕겠다고 말하는 형사가 등장하는 책 《스틸하우스 레이크》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걸 안다고 해서 자신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가 끌려간 것이 자명한 사실이고 지금 나라로부터 이용당하고 있는 것 역시 자명한데도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구경하고' 또 '혐오한다'.


책 속의 화자는 이 마을에 처음 올 때 자신과는 다른 정치사상을 가진 여자와 함께였다. 그것은 딱히 즐거울 리 없는 동행이었지만, 그러나 전전의 삶 앞에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그들에게 공통된 감각이다. 전전의 삶은 전전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흘러갔고 그것이 부당하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 통제하지 못하는 여성 스스로의 삶에 대한 안타까운 감각은, 동시대를 살고 있던 다른 환경의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각인 것이다. 고통을 당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고통 앞에 통곡을 하는 여자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리고 통제하지 못한 삶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는다고 해서 전전이 무너지기를 선택하지도 않고, 남자에게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아픈 몸이 낫기를 원하고 그리고 나름의 살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사방에서 자신을 공격해오는데도 끝까지 버티려는 의지가 전전에게 있는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가고자 하는 길에서 그녀는 그녀의 동지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화자는, 그녀의 동지가 되어주길 자처할 것이다.



이렇게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여성은 그 다음 단편인 <병원에서> 에서도 등장한다. '루핑'은 산부인과 의사 공부를 했지만 자신에게 의사일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치대학에 들어가 정치공작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그렇게 공산당원이 되지만, 당에서는 그녀를 이제 막 개척하고 있는 병원의 의사로 보내버린다. 이 역시 그녀의 의지도, 의사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는 하기 싫은 일을 하러 갔는데, 그 병원의 상태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의사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 의사로 일하고 있고 온갖 기구들은 소독되지 않은 상황이며 그 누구도 청소를 하지 않아 더럽기만 하다. 일단 환자들을 낫게 하고 건강한 출산을 하게 하려면 환경부터 바꿔야 하기에 열성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해보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나 그녀의 열성적 태도로 환경이 바뀌기는 커녕, 사람들은 그녀를 음해하려고 한다. 이에 그녀는 처음의 의지를 잃게 되지만, 며칠 풀죽어 있다가 다시 의지를 다진다. 그녀는 삶의 매순간 고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고난 속에서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세번째 단편 <발사되지 않은 총알 하나>는 소년병이 주인공인데, 내전중인 자국의 군인에게 발견되어 총살 당할 위기에 놓였을 때, "총알 하나를 남겨두는 게 좋겠소. 남겨두었다가 일본 놈과 싸우시오! 나를 칼로 죽이고!" (p.97) 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군인들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고작 열세살의 소년이 자신이 죽을 위기 앞에 공통의 적인 일본을 죽이는데 총알을 쓰라고 말할 수 있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네번째 단편 <두완샹>은 읽으면서 가장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계모에게 학대받아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하다가 열세살에 시집을 가는 두완샹이, 그곳에서도 다른 며느리에게 뒤쳐지지 않으려고 미친듯이 열심히 일하는 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 세계의 전부인줄 알며 참전한 남편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쉬지 않고 이 대가족을 위하여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수고를 했다' (p.106)

그런 그녀의 마을에 해방군이 들어와 토지개혁을 하겠다고 하고, 그녀는 토지개혁 업무중인 중년의 부인과 매일밤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 가족과 마을보다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그녀는 이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넓은 세상에 헌신하고자 하는데,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과 이런 생각이 일치해 좋은 동지가 된다. 이 부부는 며칠간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는 개척지로 거주지를 옮겨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데, 그곳에서도 그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우 성실히 일하고 꼿꼿한 정신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된다. 그녀가 모범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보인건 아니었지만, 그녀의 오랜 진심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배움이 짧았지만 스스로 깨우쳐 다른 사람들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면서 이 소설은 끝나는데, 이 모든 삶의 굴곡에서 그녀에게 성장이 있었고 또 깨닫는 바가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존경도 받게 되지만, 이 단편 내내 '두완샹에게 삶의 기쁨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열심히 일하는 것, 모두에게 이로운 것, 그것이 그저 그녀 삶의 기쁨의 전부란 말인가. 왜 어릴 때부터 고생을 하고 또 하고 쉬지 않는 것이 궁극의 선이 된것일까.




이 책에는 이렇게 총 네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모든 단편들에서 중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핍박받고 고생이란 고생을 다하고 또 죽음의 위기 앞에 놓이는데도 결코 그들은 좌절속으로 혹은 절망속으로 끌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두 눈 가득 으르렁 거리는 불꽃을 품고 세상을 보는 의지가 단단히 새겨질 뿐.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 그들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후의 결론은 될 수 없다. 그 삶이 핍박이었던 것, 고통이었던 것은,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삶이 언제든 나라는 사람을 후려칠 수 있지만, 이토록이나 심하게 후려치는 것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시스템이 한 개인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으게 만들고 그렇게 방전되게 만들었는데, 그런데 그 의지를 다지는 것은 시스템의 도움이 아니라 나 개인의 몫이라니. 이 얼마나 피곤하고 한심한 일인가. 이들 모두가 후려치는 삶 앞에 꺾이지 않고 살려는 의지, 한 발 앞으로 어떻게든 나아가려는 의지는 분명 높이살만한 것이지만, 오히려 나는 그간 내 생각과 다르게 삶에 있어서 때로는 도망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어디로? 그건 모르겠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을 보노라면, 도시에서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자연으로 들어가게 된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을 괴롭히는 건 사회적 시스템이기도 하고, 자신을 찾아온 병이기도 하고, 자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그저 물과 나무가 있는 자연으로 숨어드는 것은 그들이 생각해낸 그들이 남은 삶을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딩링' 의 소설속 단편들은 이미 드넓은 땅 안에 있었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땅, 넓고도 넓은 땅에서, 게다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나를 괴롭히는 게 이 나라 전체를 둘러싼 어떤 사상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숨어들것인가. 정작 휴양을 위해 찾아간 안개마을에서도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과연 어디로 나를 숨길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어쩔 수 없이 내 눈에 이글거리는 독기를 품는 것 말고는 남은 방법이 없는 것일까.



사는 일은 이토록이나 고되다. 어쩔 수 없이 강함을 내 안에 욱여넣어야 비로소 버텨지기도 하는 것이다. 맞서려고 하는 강인한 자들 앞에서 나는 필연적으로 삶의 고됨을 느낀다. 고되고 고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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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moon 2020-04-2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으려고 했는데 잊어버린 책; 다락방 님 덕분에 떠올라 보관함에 담아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20-04-23 12:20   좋아요 0 | URL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라 당황했는데, 중국에서 이런 글을 썼던 작가가 있었구나, 반가웠어요.
:)
 

오늘 커피와 책을 주문하려다가, 사무실 내 책상밑에 이 박스들을 보고 참기로 한다. 인생은 ... 뭘까? 









시다모 난세보 사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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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3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에 스트레스가 많으셨나요... (쿨럭)

다락방 2020-04-23 08:41   좋아요 0 | URL
음.... 그냥......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그게 더 문제)

blanca 2020-04-2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합니다. ㅋㅋ 그리고 공감백배.

다락방 2020-04-23 11:34   좋아요 0 | URL
저를 이해하는 분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0-04-2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스나 쓰레기를 제때 제때 처분하신다는 다락방님이???? 저렇게 박스쌓기를 하고 계셨???
아....저런 견고한 박스 쌓기를 쳐다 보면서 소비를 멈출 수 있다는 건 또 모처럼 긍정적인 영향이네요^^ㅋㅋㅋ

헌데....커피를 참을 수 있을까요?
저도 커피가 떨어져 동네에 로스팅해서 파는 가게에 사러가야할지? 알라딘에서 유행하는 드립백을 사야할지?며칠 째 고민중입니다.
후자를 선택한다면 또 책을 마구 담아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 같아서....ㅜㅜ
그래서 계속 알라딘 커피는 못마셔 보네요~~ㅋㅋ
아....정말 인생 몰까요?
어떤 게 우선 순위인지 당최 감잡을 수 없는 인생!!!!

다락방 2020-04-23 11:37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맞습니다. 제가 잘 버립니다. 그런데 저렇게 쌓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것이 모두 최근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말인즉슨, 제가 최근 단시간내에 너무 많이 질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꺅 ㅠㅠ

저는 사실 커피를 내리면 늘 남기거든요. 제가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제가 커피 마시기를 그렇게 즐겨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렇다면 왜이렇게 커피를 사느냐! 저는 커피향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ㅠㅠ 굳이 안마셔도 되는데, 내릴 때의 향기가 저를 미치게 해요. 그것 때문에 자꾸 사고, 사고, 또 사고 ㅠㅠ 저를 어쩌면 좋은가요 ㅠㅠ


저도 단순히 커피만 주문하는거면 진작에 주문했을텐데, 무료배송 하려고 책을 한 권 넣게 되고, 그러다보면 3만원 적립금 사용하려고 한 권 더 넣게 되고, 그러다보면 5만원 채워 마일리지 받고 싶고.... 이렇게 되어버려서 걍 장바구니 집어던져버렸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20-04-23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4-23 11:37   좋아요 0 | URL
코로나 덕에 책 구매율이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코로나랑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이렇게 미쳐서 막 지르는 때가 있는것 같아요 ㅠㅠ

사둔 책 즐거이 읽으며 지냅시다!

302moon 2020-04-23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습니다. 책 상자 일곱 상자 넘었어요. ;

다락방 2020-04-23 13:57   좋아요 0 | URL
저 박스에 다 읽은 책 넣어 다시 팔아버리는 게 제 목표입니다만 책 읽는 속도가 느려서 그냥 박스 버려야겠어요. ㅠㅠ

막시무스 2020-04-2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택배입니다!ㅎ 맛점하십시요!ㅎ

다락방 2020-04-23 13:56   좋아요 0 | URL
왜 이런 거에 공감하시는겁니까! ㅎㅎ
덕분에 점심으로 쫄면에 김밥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후훗.

다락방 2020-04-23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문했다 ㅜㅜ

보슬비 2020-04-23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근 책구매율이 가장 저조해요. 대신 집에 있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새삼 5년전에 구입한 책을 읽으며 깜짝 놀랐지만, 20년전에 구입한 책도 있으니 이제 읽을때가 된것 같아요. -.-;; .
난세보는 드립백으로 마셨는데, 드립백 양은 평소 제가 내리는 양보다 양이 적어서 더 물을 적게 잡고 내렸더니 조금 어정쩡해요. 그래도 구수한맛이 느껴지긴했습니다. 다음에는 핸드드립용으로 양을 좀 많이 잡아서 마셔봐야할것 같아요

다락방 2020-04-24 08:40   좋아요 0 | URL
저도 구매한 책들을 읽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책장에는 언제 샀는지도 모를, 오래된 안읽은 책들이 너무 많아요. ㅠㅠ

알라딘 드립백이 양이 너무 적더라고요. 저도 다른 드립백 마시듯이 물을 부으면 너무 약해요. 뭔가 감질맛나요. 요즘은 원두 핸드드립용 갈아서 커피메이커에 잔뜩 넣고 내려마시는데, 이제야 좀 괜찮습니다. 알라딘 커피 드립백은 연하게 마시는 사람들에게 더 좋을것 같아요. 아무튼 저에게 오늘 또 커피와 책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진짜 그만 사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알라딘 커피 이것저것 마셔봤는데 난세보가 제일 좋아요!
 
에티오피아 구지 모모라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처음 알라딘에서 커피 사마실 때만 해도 ‘나는 아메리카노가 제일 좋아‘ 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신커피가 좋아졌을까. 이제는 이 신맛을 기대하면서 커피를 내리게된다..
정확히는 신맛이 날게 확실한 향.

커피 뭘까?
산미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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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04-2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디카페인으로

다락방 2020-04-22 16:06   좋아요 1 | URL
디카페인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ㅎㅎ
저는 이거 다 마시면 시다모 난세보 살거예요. 그게 제일 좋더라고요.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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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예전만큼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즐거웠다. 38년간 꾸준히 글을 써온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듣는다는 건, 언제까지고 읽고 쓰는걸 계속하고 싶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하루키의 의도가 독자에게 어떻게 전해졌다한들, 하루키 본인은 '결국은 선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어쨌든 '계속 살아나가자'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고, 선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물론 선하다는 것은 각자의 판단 기준에 따라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선함이 너의 선함이나 모두의 선함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한들 모두를 오래 속이는 것은 불가하다고 얘기한다. 


또한 문체와 문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문장을 예로 들어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문장을 쓰고자 계속 노력한다는데, 나 역시 글에 있어서 문장과 문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바, 크게 동의하며 읽었다. 아울러, 하루키가 늘상 인지하고 가는것처럼, 나 역시 챈들러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는 문장을 계속 저기 안쪽에 넣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용은 누가 쓰든 크게 달라질 바 없지만, 문체가 그 책이 더 재미있는 책이 될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는 하루키의 말은 틀리지 않다.


하루키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글을 쓰고 달리기 역시 꼬박꼬박 하는 것은, 하루키의 팬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하루키는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그런 매일의 기록을 숫자로 남기는 것은 끊임없이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오늘 달리기를 얼마나 했는지의 수치에 관한 기록.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하루키의 신념이다. 하루키는 자신이 '소설에 대해서는 근면한 편'이라고 하는데, 소설가가 소설에 대해 근면한 편이라는 것은 얼마나 마땅하며 근사한가. 이런 하루키의 생각을 읽는 것이 이 책의 기쁨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하루키의 영향을 어느 부분 받았거나 받게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건 하루키의 영향이라기 보다는 나의 성향 탓이겠지만, 매일매일 꼬박꼬박 글을 쓰고 읽고 앞으로도 계속 그걸 놓지않으려는 자세라고 해야할까. 그런 삶의 태도들. 그건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나 역시 하루키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아는만큼, 어떻게든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지금은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고작 이정도 뿐이지만, 나는 나중에도 일정시간을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에 내어주고 싶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니까. 이를테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하루를 온전히 내게 쓸 시간이 지금보다 더 늘어났을때, 과연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더이상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아도 좋을 때, 그럴 때에도 나는 하루중 어느만큼의 시간을 뚝 떼어내 글을 쓰는데 들이고 싶다. 내가 혼자 산다면 혼자 사는대로, 혹은 동거인이 있다면 있는대로, 그 동거인이 단순히 한 공간을 함께 이용하는 동거인이라거나, 아니면 나랑 함께 한침대에서 잠드는 이라해도, 그 성별이 남자이든 여자든 그러니까 어떤 형태로 존재한다고 해도, 내가 글을 쓰는 공간으로 들어가 어느정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내 동거인도 너무나 당연한듯이 받아들여주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쓰는 방이 있어야 할 것이고, 따로 쓰는 방도 있어야 할터이니, 큰 집에 살아야 한다. 역시 돈을 벌어야........ 돈이 최고되는 것이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가와카미 미에코'가 인터뷰한 기록이다. 가와카미 미에코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은 들어본 책, 《젖과 알》의 작가이다. 《젖과 알》은 출간 당시 독특한 문체로 유명했다 하고 하루키 역시도 그 문체를 극찬하는데, 정작 가와카미 미에코는 그렇게 쓰지 않기로 했다한다.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자'작가이기 때문에 문체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는 것. 인터뷰중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던데, 페미니즘을 알고 있는 여성 작가가 인터뷰어가 되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언젠가 한번은 꼭 거쳐야 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하던 바, 즐거이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고대하던 질문 역시 나온다. 가와카미 미에코는 하루키를 인터뷰 하기 위해 그의 책들을 한 번 더 읽기도 하고,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데아'를 파악하기 위해 플라톤을 읽기도 하며,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해 인터뷰에 임한다. 정말이지 성실한 인터뷰어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하루키에 대한 선망을 가진 터라 또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난 거라 하루키에 대해 등을 질 순 없는 자세를 베이스에 두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네 작품에서 여성들은 보조적이다, 왜 그렇게 그리느냐'라고 묻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었다. 가와카미 미에코는 자신의 친구들도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 그 점에 의문을 품었다 했고, 나 역시 여성을-특히나 소녀를-그런 식으로 다루는가에 대해 불만이 있던 터다.


하루키의 대답은 이 부분에서 실망스러웠다. 자신은 딱히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 자기는 남자든 여자든 그런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쓴다는 거다. 이 부분에 있어서 하루키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말은 그에게 진실이겠고 또 진심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구나, 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관심이 없어. 가와카미 미에코가 자신이 여자 작가이기 때문에 받는 부당함에 대해 토로하지만 하루키는 '그런가요?' 정도로 응시하는거다. 아 그래? 그렇구나, 그건 그대로 힘들겠구나, 하고 넘어간달까. 이 인터뷰를 하던 당시에 하루키의 나이는 68세였고 1949년생이다. 그래, 49년에 태어난 일본 남자에게 뭐 크게 여성문제에 대해 기대할게 있을까, 앞으로 딱히 바뀌는 것도 없겠지, 하게 되지만, 그래도 이 긴 인터뷰를 거치며 여성작가로부터 그런 생각, 그런 말을 들었으니, 그래도 아예 듣기 전으로 돌아갈 순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래해왔다는 것은 반드시 선은 아니겠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 글을 써오면서 굳은 독자층을 형성했다는 것은, 그의 이야기가 어느 지점에서 신뢰를 주고 있다는 뜻일테다. 하루키가 지향하는 그 결국은 선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도 알아챈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의 유머가 좋아서 그의 책을 읽곤 했지만, 돌이켜보건대, 그의 이야기가 악하거나 한심했다면 진작에 내치지 않았을까.


하루키는 이야기에 힘이 있다고 믿고, 이야기가 오래 버텨온만큼 앞으로도 이야기가 오래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이야기가 아닌가. 각자가 근면한 지점이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운동에, 누군가는 산책에, 누군가는 공부에 근면할 수 있을 것인데, 하루키는 소설에 있어서 자신이 근면하다 했다. 아, 달리기에 있어서도 그렇지. 소설에 대해 근면한 편이라고 말하는 하루키를 보면서 나는 나 역시 읽고 쓰는 일에 매우 근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봐, 얼마나 꾸준히 읽고 쓰고 있는가. 나 자체가 딱히 근면한 사람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아니겠지만(물론 게으른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읽고 쓰기에 있어서는 근면함을 발휘한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읽고 쓰고 있다. 게다가 굳이 덧붙이자면, 나는 사랑에 있어서도 그렇다. 어느 한 사람을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에 대해서도 쉽게 포기하지도 돌아서지도 않는 것 같다. 사랑을 꾸준히, 성실히, 근면하게 하는 편이다.



나 역시 그동안 보잘것 없는 많은 글들을 써오면서 그 안에 선함을, 그리고 옳은 방향을 담아내고자 했었다. 그 길이 맞다는 확신이 조금 더 들게하는 좋은 책읽기였다. 이 책을 읽고 하루키가 더 좋아진 건 아니지만, 38년이나 글을 써온 소설가의 글에 대한 생각을 읽는 것은 매우 좋은 책읽기가 틀림없다. 앞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 특히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것이다.




덧.

이들은 총 네 번에 걸쳐 인터뷰를 하고 그 때마다 장소를 이동하는데,  '신초샤 클럽'에서 두번째 인터뷰를 했다며 네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동안


'간식으로 나는 초콜릿, 무라카미 씨는 도넛 반 개를, 저녁으로는 모두 함께 가락국수를 먹었다' (p.77)


고 한다. 나는.... 너무 놀랐다. 간식으로... 초콜릿... 고작 그것을......아니 게다가 하루키는 뭐여...도넛 반 개라니.. 장난하나. 도넛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니고 반 개를 간식으로 먹다니.. 도넛이 지름 30센치는 되는 거였을까. 대체 도넛 반 개를 뭐하러 먹지? 너무 이해 안되는 부분인 것이다. 사실 사람들 다 간식..도넛 반 개로 끝내는건가요? 간식은 햄버거나 샌드위치, 치킨 두 조각... 정도 되야 하는거 아닌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었다............지나치게 적은 간식, 게다가 저 가벼운(!) 저녁은 또 뭐람?


엊그제도 퇴근길에 혼자 순댓국 시켜 소주 마신 사람으로서,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네. 일단 씁니다. 만약 친구가 와주지 않더라도 와줄법한 환경을 만들어둬야죠. 저쪽에 방석도 좀 깔아놓고, 청소도 하고, 책상도 닦고, 차도 내려두고.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그런 ‘밑준비‘라도 해두는 겁니다. 아무도 안 오니까 오늘은 실컷 낮잠이나 자볼까, 이러지는 않아요. 전 소설에 대해서는 근면한 편이라서요. - P82

링컨이 말했듯이, 아주 많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도 있고 얼마 안 되는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이기는 불가능해요. 그것이 이야기의 기본 원칙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P106

글쎄요. 꼭 해피엔드여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오히려 제 소설에는 해피엔드가 별로 없지 않나요. 『양을 쫓는 모험』도 왠지 쓸쓸하게 끝나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드랜드』의 주인공은 결국 그 세계에 남잖아요. 그림자와 헤어져서 혼자. 결코 해피하게 끝나지 않죠. 그래도 역시,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리라는 일종의 신뢰감 같은 것이 독자의 마음속에 생겨납니다. 살아남는 것, 혹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그건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요소죠. 적어도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픽션에는. - P178

제 생각에, 한 사람이 인생에서 정말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혹은 감명받을 수 있는 소설은 몇 편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걸 몇 번이고 읽으며 찬찬히 곱씹죠. 소설을 쓰는 사람이건 쓰지 않는 사람이건,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소설은 평생 대여섯 권 정도 만나지 않을까요. 많아야 열 권 남짓일까. 그리고 결국 그 몇 안 되는 책이 우리 정신의 대들보가 되어줍니다. 소설가의 경우는 그 스트럭처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바꿔 말하고 풀어 말하면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소설에 편입해갑니다. 우리 소설가들이 하는 일이란 결국 그런 게 아닐까요. - P197

다시 말해 여성 캐릭터가 성적인 역할만을 완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야기, 남성, 우물 등을 그릴 때는 그렇게 아낌없이 발휘되던 상상력이 ‘여자와의 관계‘에서는 발휘되지 않아요. 여자가 여자 자체로 존재하지 못하죠. 주인공이든 조역이든 이른바 주체성을 지니고 자아실현을 이루는 전개도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늘 남자 주인공의 희생양처럼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무라카미 씨 소설에서 여성 캐릭터는 왜 그런 역할이 많은가 하는 거죠. (가와카미 미에코) - P257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저는 어떤 등장인물에 대해서든 그리 깊이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그 인물이 어떤 세계에 관계되었는가, 요컨대 그 인터페이스(접면)가 주된 문제지, 존재 자체의 의미나 무게, 방향성 등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묘사하지 않으려 주의하는 편이에요. 앞서 말했듯이 자아에 대해서는 되도록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 P257

결국 말이죠. 소설에 직접적인 형태로 써넣으면 동기가 어쨌건 사건을 겪은 사람들을 소설적으로 이용하는 셈입니다. 가슴 아픈 일을 당한 사람들을 픽션의 형태로 이용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큰 사건뿐 아니라 일상생활도 마찬가지고요. - P348

인류 역사에서 이야기의 계보가 끊긴 적은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단 한 번도요. 레이 브래드버리 원작,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화씨 451>이라는 영화가 있죠. 아무리 책을 불태워도, 작가를 죽이고 묻어도, 책을 읽는 이들을 모조리 감옥에 보내도, 교육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아도, 인간은 깊이 숲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것이 좋은 이야기이기만 하다면. - P352

설령 종이가 없어도 인간은 이야기를 이어갈 것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역사라고 해봐야 아직 십 년도 되지 않았잖아요. - P352

그에 비해 이야기는 적어도 사만 년, 오만 년은 이어져 왔는걸요. 축적의 정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히 죽지 않아요.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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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4-2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전 예전에 읽다 말았는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하루키는 남자 주인공은 분명 의도를 갖고 쓰는 거 같은데....(본인 로망 실현 ㅋㅋㅋㅋ) 여성 캐릭터는 그렇단 말이죠? 흠....
딱히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꾸준히 쓰고 늘 달리는 것만큼은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입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ㅎㅎ

그나저나 저렇게 소주 한 병 주문하면 몇 잔이나 마셔요? 설마 한 병 다???

다락방 2020-04-22 10:44   좋아요 0 | URL
여성인권엔 딱히 관심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지만 1949년생 일본 남자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싶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꾸준히 쓰고 달리고 또 이야기의 힘을 믿는 것, 선한 의도를 담고자 하는 것들은 참 좋았어요. 괜히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니구나 싶고요.
잠깐 멈춰서, 가만, 내가 읽고 쓰는 건 어떠한가, 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책읽기 였어요.


저렇게 소주 한 병 시키면 보통 반병이나 그보다 조금 더 마셔요. 혼자 식당가서 시켜서 한 병 다 마신 적은 없어요. 집에서는 혼자 마셔도 한 병 다마시곤 하는데 밖에서는 한 병 다는 안마셔요. 엊그제는 소주 석잔쯤 남기고 온 것 같아요. 다 마시고 싶었는데 참았네요. ㅋㅋㅋㅋㅋ

감은빛 2020-04-2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북플 앱으로 길게 댓글 남겼는데, 자꾸 옆의 다른 자판이 눌러지는 불편한 폰 자판으로 힘들게 남겼는데, 등록 버튼을 누른 다음 순간 갑자기 북플 앱에서 로그아웃되면서 제가 남긴 댓글이 없어진 것 같네요. 분명 저는 댓글만 썼을 뿐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이런 버그는 왜 생기는 건지 따지고 싶네요.

암튼 퇴근길 순대국에 소주,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요새 계속 칼바람이 불어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 잔이 땡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새벽에 순대국( 수육)에 소주 마셨어요. 시간 차이는 있지만 같은 음식을 먹었군요. ㅎㅎ

하루키가 숫자를 기록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저도 따라해보고 싶네요. 지금 저는 습관 기록앱에 매일 그 활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만 체크하고 있어요.

독서, 글쓰기, 달리기, 맨몸운동, 케틀벨운동, 바벨운동 등으로 큰 틀에서 분류해 간편하게 기록하고 확인할 수 있는 건 좋지만, 나중에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네요.

요걸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지 고민해봐야 겠어요. 간편하게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다락방 2020-04-23 12:00   좋아요 0 | URL
북플 앱으로 긴 댓글을 시도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저는 북플앱에 들어가 스맛폰에서 댓글 남기는 거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앱으로 들어가면 댓글을 잘 안남기게 돼요. 넘나 아날로그 세대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

감은빛 님 운동 열심히 하시니까 하루키처럼 기록하시는 거 되게 좋을 것 같아요! 뭔가 스스로 성취감도 느껴질 것이고 또 나중에 어떻게 변화가 있었는지도 수치상으로 파악 가능하니까요. 도전 응원합니다!!

jeeinn 2020-04-27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말고) 에세이를 좋아하는 데, 이 인터뷰집은 계속 읽을까 말까 했어요.. 님의 평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하루키의 성실함은 이상하게 위안을 주는 거 같아요. 물론 재능도 있겠지만 성실함.이란 단어는 재능보다 성실.에 조금 더 무게를 주어, 성실하기만 하다면 나도! 라는 생각이 들게 하거든요. 자기 위안 일수도 있겠지만요. 어쨋든 서평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0-04-27 09:42   좋아요 0 | URL
저는 하루키의 소설도 참 좋아했어요. 하루키 특유의 유머가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 왔습니다. 이 인터뷰집은 저도 사놓고 안읽다가 최근에 읽었는데,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실함에 대해서라면 저 역시 높게 사는바, 그리고 그건 내가 따라할 수 있잖아, 하는 생각도 들어서, 꾸준히 성실히 글 쓰고 조깅하는 하루키를 만나는 것이 저에게도 위안이 됩니다. 특히나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인터뷰집을 읽는게 매우 도움이 될것 같아요. 즐거운 독서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