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이 책의 1 장을 재미있게 읽었고 기대에 차 2장을 읽기 시작했는데, 2장은 내내 불쾌했다.


'미카엘라 디 레오나르도' 와 '로저 랭카스터'의 <젠더, 섹슈얼리티, 정치경제>라는 장인데, 나는 읽는 내내 이들이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한쪽에 치우쳐 쓴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미카엘라 디 레오나르도'는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학 인류학 교수이며 『지식의 교차로에 서 있는 젠더Gender at the Crossroads of Knowledge』, s『종족 경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 Ethnic Experience』등의 저서가 있다고 한다.

'로저 랭카스터'는 조지메이슨대학 인류학·문화연구 교수이며 LGBT, 젠더/섹슈얼리티, 정치경제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저서도 많다.



이 두 저자는 여성의 성적 쾌락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한다. 대표주자로는 우리가 아는 캐서린 매키넌과 안드레아 드워킨이다. 나는 굳이 나누자면 반포르노 페미니스트 쪽이다. 나는 포르노에 반대한다. 포르노를 시청하는 대부분의 성별이 남성이라 할지라도, 결국 이성애가 판치는 세상에서 포르노 세상을 사는 건 여자들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여자들이 불쾌해하면서도 그걸 감수하면서 상대가 이걸 사랑이라고 하니까, 사랑하면 당연하다고 하니까, 굴욕적인 행위를 할 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 역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나는 캐서린 매키넌과 안드레아 드워킨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너무나 잘알겠고 또한 동의한다. 그러니 그 결에 대해서라면 나는 그들과 함께한다. 같은 이유로 '리얼돌'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이래저래 말하느니 기사 하나 첨부한다.)


"리얼돌 그냥 시체처럼, 강력 범죄 연상"



그러나 나는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포르노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포르노가 혐오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포르노를 검열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책,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첫번째 저자도 반포르노에 반대했고, 페미니스트로 너무나 유명한 '우에노 지즈코 역시도 포르노에 반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른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에노 지즈코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포르노는 안된다' 라고 했다. 그러나 포르노는 점점 더 자극적이 되고 점점 더 어린 연령을 성적 대상으로 만든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런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흐음, 여기에 대해서는 나랑 생각이 다르군'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떤걸 주장하고 어떤 쪽의 편을 드는지는, 내가 가장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면 된다. 나는 어린이를 비롯한 성인 여성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지금 여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에노 지즈코와 도로시 앨리슨(이 책 1장의 저자)에 대해서 흐음, 그렇군, 하고 넘어가다가 미카엘라 디 레오나르도와 로저 랭카스터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불쾌했다. 이들은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쾌락에도 신경을 안쓰고 다양한 여성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다른 문제는 일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 두 저자는 반포르노그래피 그룹은 어머니로 살아가는 삶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고 주장하고 문화 페미니스트들은 모성에 집착한다고 주장한다.



문화 페미니즘은 여성의 완전히 다른 본성을 고집한다는 점에서 여성을 혐오하는 나쁜 과학에 굴복한다. 문화 페미니즘은 젠더와 과학의 문제에 역사적으로, 지식사회학적으로 세심하게 접근할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성폭력의 다양한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며, 성별화된 섹슈얼리티에 인종이 기입되는 갖가지 변화무쌍한 방식을 포착할 수단도 제공하지 못한다. 인종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수많은 여성이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성적 쾌락을 추구하고 찾는다는 사실을 유념하는 것이 좋다. 신디 로퍼Cyndi Lauper가 노래했듯이, 여자들은 그저 즐기고 싶을 뿐이다. -p.120



문화 페미니즘에 대해서라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숱하게 주장하는 바가 나뉘고 갈리고 지향하는 바 역시 다르다. 문화 페미니즘은 이 두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 중 모성을 가장 우선시 하는것 같다. 문화 페미니스트의 대표를 '캐롤 길리건'이라고 이들은 말하는데, 나는 캐롤 길리건의 책을 아직 읽지 않았던 바, 이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문화 페미니스트들이 모성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격화해서 오히려 여성혐오를 고착시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반포르노그래피 그룹에 대해서는 저 비난은 옳지 않다. 반포르노그래피 그룹이야말로 여성혐오에 그리고 여성의 성적 행동에 대해 세심하게 접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두 저자는 '친섹스 페미니스트'의 말을 가져온다.


"한편에는 독선적인 여성의 검열의식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의 취약성을 최소한으로만 다루는 대범한 자유주의가 있다" -p.121, 『욕망의 힘』 재인용



그러니까 반포르노그래피 그룹은 '독선적인 검열'을 하고 있다는게 아닌가. 이 두 저자는 자신이 가져오는 이 '친섹스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학자들은 역사에 전념했기 때문에 문화 페미니스트들보다 지적으로 성실했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성 이데올로기가 시간의 흐름에 한 층위로 내장되어 있음을 간파했다 -p.122



물론 지적으로 '더' 성실한 누군가는 반드시 존재한다. 내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지적으로 더 성실할 수 있지만, 또 수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지적으로 성실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저자가 한쪽 그룹을 다른족 그룹보다 지적으로 더 성실하다고 이렇게 글로 표현하는데에는, 그들의 주장이 자기의 주장과 일치하기 때문이 아닌가. 자신의 주장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들을 지적으로 더 성실하다고 써내는 것이 나는 불편하다. 얼마전에 읽은 《포르노랜드》의 저자는 아주 오랜 시간을 포르노를 보며 포르노에 대해 연구하고 책으로 써낼 수 있었다. 반포르노 그룹이 지적으로 덜 성실하다고 누구도 말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누구보다 더 성실했다.

















게일 다인스:

30년 넘게 포르노 산업을 연구해 온 영국 출신의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반포르노 운동가로 미국 보스턴의 윌록 대학 사회학 및 여성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전역과 세계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대중문화와 미디어 속 여성 이미지, 포르노의 악영향과 우리 문화의 과잉성애화에 관해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쳐 왔다. 페미니즘 보건 교육 단체 '다시 만드는 문화Culture Reframed'의 설립자이자 단체장으로서 해로운 포르노 문화로부터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힘쓰고 있다. 포르노그래피: 불평등의 생산과 소비Pornography: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Inequality를 공동 저술했고 미디어와 젠더, 인종, 계급Gender, Race, and Class in Media을 공동 편집했다. -알라딘 작가소개
















캐서린 맥키넌

미시간대학 로 스쿨(law school)교수로,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법 정신을 지닌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녀는 성폭력 사건 소송 분야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으며, '성적 괴롭힘'과 '성적 불평등' 문제 전문가이다. 페미니즘 작가인 안드레아 드워킨과 함께 포르노를 인권 침해로 규정하는 반포르노법을 만들었다. 캐나다 대법원은 평등권에 그녀의 이론을 채택했으며, 현재 그녀는 세르비아의 성적 잔학행위에 대한 국제재판을 요구하는 크로아티아 및 이슬람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포르노를 '표현의 자유'라고 언급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강요하기 위한 구실이다." -책날개 중 작가소개




읽는 내내 두 저자(미카엘라 디 레오나르도, 로저 랭카스터)가 아주 오랜 시간 성적 물화 되었던 여성 당사자의 입장이 되는 것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장의 도로시 앨리슨도 그렇고 2장의 두 저자도 그랬다. 동성애 혁명에는 감탄하고 포르노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게 나로서는 나랑 결을 달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다른 길을 가는 걸로만 보였다. 그동안 '포르노를 검열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 라고 말하는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어조였다. 나는 싫었다.



《포르노에 도전한다》리뷰 → https://blog.aladin.co.kr/fallen77/11352112


《포르노랜드》리뷰 → https://blog.aladin.co.kr/fallen77/11638723



아무튼 계속 읽어볼 것이다. 3장에서는 그리고 4장에서는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봐야지.


















어쨌든 남자 헌팅 다니는 걸 포기하고 대학 스쿼드 회원들과 어울려 놀았다

스크롤-좋아요-채팅-초대-잠자리 세대의 일원으로 성인이 된 건 불행한 일이다, 이 세대 남자들은 첫 번째(그리고 딱 한 번의) 데이트에서 상대가 성적 욕구에 따라 움직이길 기대하고, 음모는 제모하여 하나도 없으며, 인터넷 포르노영화 속 여자들이 하는 역겨운 짓을 그대로 따라하려고 하므로.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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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17 11:0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오우 장문의 글이지만 내용정리가 잘 되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포르노와 예술의 경계 문제 같은게 워낙에 애매하고, 실제로 표현의 자유 문제도 있기 때문에 저는 사실 저 문제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고 있어요. 실제로 포르노를 금지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가져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 어디까지 포르노이고 어디까지 예술인가에 대한 너무도 폭넗은 경계 긋기가 개별 사람들에 의해 자유롭게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문화에 대한 통제, 간섭으로 이어질 것이 너무 불을 보듯 뻔해서요. 우리 사회가 마광수 교수를 용인하지 못했던 데서도 보듯이입니다. 저는 마광수 교수의 글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싫어해서 즐거운 사라 보다가 중간쯤 때려치고 그 이후로는 다시는 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개인이 마광수 교수의 글을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하는 문제와 국가나 사회가 그것을 금지하고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문제는 너무도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그렇다고 포르노에 대한 생각이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생각 전체를 단정하는 경계가 되는 것은 또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생각이라는게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만큼 단순하지 않으니가요.

다락방 2021-03-19 08:13   좋아요 0 | URL
모든 사안들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가진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죠. 그럴 수도 없고요. 저 역시도 성매매, 포르노 등에 대해 어떤 입장이라고 말하기를 보류했던 사람중 하나고요. 그래서 더 잘 알고 싶더라고요. 제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더 많이 읽고 접하려고 했던 부분이 여성에 대한 폭력 부분이었어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이요. 그래서 강간 관련 책들도 부지런히 읽었는데, 그렇게 성폭력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성매매와 포르노와 만날 수밖에 없더라고요. 다 연결되어 있어서요. 그래서 포르노 관련 책을 읽고 성매매 관련 책도 읽게 되고요. 그러다보니 저는 이제 입장이란게 생기더라고요. 제 입장은 표현의 자유의 손을 들어주기 보다는 포르노는 혐오 표현이다의 손을 들어주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페미니스트 중에도 그렇게 발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그런 저와는 다른 주장을 하는 글을 볼 때면 아 이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아닌데, 하고 넘어가거든요. 제가 다 따라다니면서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랑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또 그 사람이 알고 보고 이해하는 선에서 가지게된 사고일테니까요. 그런데 이 책에서 친섹스페미니스트들이 지적으로 더 성실하다고 하는걸 보고 너무 화가 났어요. ‘나랑 주장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니네는 멍청해서 그래‘하는 것 같아서요. 반포르노 관련 서적을 써낸 사람들은 그렇게 쓰기까지 어마어마하게, 트라우마 생길 정도로 그 영상을 반복해보고 피해자 혹은 범죄자와 이야기를 나눈건데요. 그런 단정, 너네보다 얘네가 더 똑똑해, 하는 그 단정이 저를 너무 화나게 만들었어요.

- 2021-03-17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대체 문화페미니즘이 뭔가 싶어서 읽다말고 딴거 읽다보니 아무것도 못읽어지고 있어요. ㅋㅋㅋ (망했다..) 그나저나 맥키넌 책은 언제 다시 나오남...! 나와랏!

다락방 2021-03-19 08:15   좋아요 0 | URL
아니 제가 지금 몇년째 페미니즘 책을 읽고 있는데, 꾸준히 읽고 있는데, 어째서 문화 페미니즘을 저는 모르는거죠? 물론 제가 세상의 모든 여성주의 책을 다 읽은건 아니지만 너무 생소해서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아무튼 저는 3장 월경전증후군 부분까지 읽었습니다. 엣헴-

맥키넌 책 다시 나와라, 나와라!!

난티나무 2021-03-17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되게 어려운 게 포르노 같아요. 반대 입장이지만 또 다른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견 맞는 말도 있는 거 같거든요. 18장에 포르노 다시 나옵니다. 저도 물음표 빵빵해요.ㅠㅠ

다락방 2021-03-19 08:23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포르노를 반대하지 않는 쪽이었거든요. 포르노로 성관계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부끄럽기 짝이없네요. 그건 제가 포르노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아주 나중에 알게 됐지요. 포르노는 제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에로틱한 섹스를 보여주는게 아니더라고요. [포르노랜드]에서 작가도 서문에 언급하는데, 기성세대들은 요즘 포르노가 얼마나 잔혹한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썼더라고요. 저 역시 그런 사람중에 하나였다는 자각이 그 때 들었어요. 게다가 그즈음 sns를 통해 여성학대 영상이(포르노로 올라왔어요) 무작위로 올라오고 저는 마구 신고를 눌렀고요. 그 짧은 영상들 속에서 얼마나 여자들이 학대 당하는지, 그건 굴욕과 수치인게 너무 온몸으로 느껴져서, 저는 이제 확고한 입장이라는 게 생겨버리고 말았어요. 18장에 포르노 얘기가 다시 나온다니, 어떻게 써져 있을까 궁금하네요. 부디 2장에서처럼 반포르노 작가들을 후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적으로 덜 성실한걸로 얘기하다니, 저는 너무 기가 찼어요. 포르노랜드의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를 30년간 연구했는데 말예요.

저는 3장 월경전증후군까지 읽고 또 빡이쳤답니다? 전쟁이 끝나면 여자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월경전증후군은 일하는데 적합한 몸이 아니게 한다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세상은 도대체 여자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건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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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품절


어휴.. 이거 뭐 이런 영화가 다있어.
나 보라고 만든 영화냐.

미국에 있는 남자와 영국에 있는 여자가 사랑하면 그 연애는 이벤트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사랑과 연애는 서로의 일상이 되는 것일테고, 그렇다면 그 먼 곳에서 사랑하며 위태롭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때 그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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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결혼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우리 둘 다 구원을 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둘 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서로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P110

















주인공 '이사도라'는 세상이 얼마나 기울어져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의 삶이란 것은 얼마나 불편한지를 알고, 세상이 남자와 여자를 어떻게 다르게 대하는지도 안다. 세상 그 누구보다 통찰력이 뛰어나고 똑똑한 여성인데, 읽는 내내 그녀가 남자로부터 구원을 찾으려고 해 짜증스러웠다. 남편과 애인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까, 이 남자도 좋지만 저 남자 너무 좋아, 이런 사랑 처음이야 하면서 갈팡질팡하고 그러다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걸 보면, 대체 왜이러나 싶어져서 중간에 책을 집어 던지고 싶어지는 마음이 수시로 생겨난다. 아니, 이렇게 다 잘 알면서, 잘 보면서, 그 누구보다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체 왜이렇게 남자한테 매달리는것인가.


물론 남자 없는 여자를 사회에서 어떻게 대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남자를 붙잡고 있으려고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이사도라 라는 자신은 자꾸 수도 없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진다. 이렇게 똑똑한 여자가 정작 어디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는게 진짜 짜증스러웠다. 이성애에 대한 환상도 맹목적이라 기차 안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 섹스하고 싶다는 열망도 그녀는 놓지 못한다. 이 남자로부터 버림 받고서는 저 남자가 나를 받아줄까, 하는 고민들은 정말 읽기에 힘들었다. 만약 그녀가 마지막까지도 어떻게든 누군가를 붙잡아 자기 인생을 구원받고자 했다면 나는 이 책에 별 셋을 주며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늦게라도 깨닫는다. 결국 자신을 구원해줄 남자는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남자로부터 구원 받는 다는 것 자체가 망상 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황당하게도 에이드리언이 내 영혼의 짝이라고 믿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그러나 나는 바로 그걸 원했다. 나를 완성시켜줄 남자를 원했다. 파파게노에 어울리는 파파게나. 그것이야말로 내 모든 망상 중 가장 심각한 망상이었다. 다른 사람은 결코 나를 완성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완성할 힘이 없을 때, 사랑을 찾는 건 자살 행위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기희생이 곧 사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P553

















영화 《러브, 비하인드》에서 여자는 전(前)남편과 친구처럼 지낸다. 여전히 같은 집에서도 지낸다. 그러나 전남편에게 새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제서야 그녀에게 이별은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매우 아팠고,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 모든 망가지는 일들을 한다. 술에 떡이 되고, 울고, 대마초를 피운다.


그런 그녀 앞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난다. 새로운 남자는 그녀에게 자신과 연애를 하자고 다가온다. 옛남자와 헤어지고 새 남자를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별의 고통 그리고 외로움 앞에 일단 자기 자신을 사랑으로 내던지기를 거부한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에게, 일단 내가 혼자 서는 걸 먼저하고, 이 이별을 극복하고 나서, 건강한 상태에서 너의 제안을 다시 생각하겠다고 얘기한다. 나는 이런 지점들이 매우 좋다. 결국은 혼자 서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전작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고 후속작 《일곱 번째 파도》를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에미 역시 그랬다.

에미는 결혼한 상태에서 레오를 알게 됐고 그 둘은 연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감정의 선을 넘나든다. 레오는 에미에게 마음이 있지만, 그러나 그녀가 결혼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농담을 하고 정을 쌓으면서, 그러면서 각자의 연애를 한다. 레오는 자신이 내내 마음에 에미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지만, 그 때까지는 어쨌든 현실의 여성들과 연애를 한다.

레오는 에미가 싱글이었다면 어쩌면 진작에 더 훅 다가왔을지도 모르고 또 그 사실을 에미도 알고 있지만, 그러나 에미가 싱글이 되고 나서, 에미는 레오에게 나 싱글이 됐다고 얼른 알리지 않는다. 에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싱글이 되었으니 이제 나랑 어떻게 해보자, 고 다가서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게 그리고 둘 모두에게 단단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던 터다. 나는 이런 지점들이 좋다. 내 처지를 내가 이용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 처지를 네가 이용하게 하지 않는 것.



자, 다시 이사도라의 얘기로 돌아가서,

이사도라는 자신이 로맨스에 대해, 이성애에 대해, 남자에 대해 망상을 가졌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 혼자 설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도 안다. 그토록 자신이 꿈꿔오던 기차 안에서의 낯선 남자와의 섹스가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그녀는 그것이 자신이 생각한것처럼 낭만적인게 아니라는 것을, 무섭고 두려웠고 자신과 둘만있는 상황을 상대가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그것은 성폭행임을 인지한다. 세상이 보여준 로맨스는 그러니까 현실에서 여성을 당당하게 서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남자가 이끄는대로 자신을 내던지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남자가 원할 때 옷을 벗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그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녀가 깨달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책을 읽고 한참이나 이렇게 똑똑한 여자가, 결국 스스로 깨닫긴 했지만, 왜 이렇게 늦게까지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까, 왜이렇게 오래 이남자에서 저남자로 다시 또 다른 남자로 자신을 맡겨가며 살았을까 생각했는데, 그건 이성애라는 것이 커다란 세뇌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주 커다랗고 아주 강한 세뇌. 아주 오랫동안, 세상이 창조된 이후로 내내, 세상은 끊임없는 주입을 시켜왔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야 해, 여자는 남자가 보호해주어야 해,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받는게 최고 가치를 이루는 길이야. 거기에서 '스스로' 빠져나온다는 것은, 그러므로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사도라는 기자이고 그러므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이사도라에게 언니는, 그따위 글을 쓰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아이를 낳는 기쁨을 너도 느껴보라고 얘기한다. 이사도라가 늦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주변 환경 모두가 이성애에 절여져있었기 때문도 크다. 가부장제와 이성애에 다들 푹 젖어 있는데, 거기에서 나 혼자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그녀가 늦게라도 스스로 깨달은 것은, 그녀가 자꾸 잃어버리는 와중에도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중심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읽고 쓰고 보고 생각하고 통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결국, 똑똑한 여자는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을 안다. 그것이 뭐가 됐든.



그건그렇고,

이사도라가 사랑에 빠진 얘기를 해볼까.

다시는 에이드리언을 만나지 않겠다고, 이제 다 끝이라고, 잠깐 일탈을 감행하긴 했지만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에이드리언을 보았고 나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어느 순간 사랑 노래의 가사와 유치한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한심한 작태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심장이 박자를 놓쳤다. 그가 다가올 때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는 나의 태양이었다. 우리의 심장이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가 나와 한 방에 있을 때면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로 초조해졌다. 일종의 광기였고 완전한 몰입이었다. 내가 쓰기로 되어 있던 기사도 완전히 잊었다. 그 사람 외에는 다 잊었다.- P226



살면서 누구나 이런 사랑에 빠져보지 않는가.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랑. 세상 모든 유치한 노래 가사가 내것이 되는 사랑. 한 공간에 있을 때 숨이 턱 막혀버리는 사랑.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은 살면서 한 번쯤 해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일이 사랑에 빠질 때마다 번번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겠지만(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 나의 경우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데, 그러니까 '그런 경험이 있다'는 정도로만 말할 수 있는데, 아아, 그런 경험은 결국 이별이 닥쳐오더라도 얼마나 소중한가. 그 후에 많은 것들을 그 날의 기억들과 경험들로 버텨나갈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일종의 광기였고 완전한 몰입! 마치 아니 에르노가 그랬던 것처럼!!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슈퍼마켓에 가고, 영화를 보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고, 책을 읽고, 원고를 손보기도 하면서 전과 다름없이 생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상마저 내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완전히 넑을 잃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나 문장, 웃음조차도 내 생각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입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듯했다. 게다가 나는 내가 한 행동, 내가 본 영화, 내가 만난 사람들을 또렷이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나의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내 의지나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동(예측하고, 찬성하고 반대하고, 결과를 짐작하는)은 오로지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p.11-12






내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나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 상대가 반드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게다가 그 사람이 나를 그만큼의 크기로 사랑한다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렇게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내 모든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상대가, 그러나 나랑 섹스할 때 풀죽은 고추를 가지고 있다면....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이사도라를 유혹하고 강한 마력으로 그녀를 휘어잡고 남편을 떠나라고 종용하는 이 남자, 이사도라가 강하게 사랑에 빠져버린 에이드리언은, 정작 이사도라랑 섹스만 하려고 하면 고추가 말을 안듣는다. 그가 원하는 건 '이사도라'가 아니라, '남의 여자'인 이사도라 였음에, 이제 자신에게 와버렸다고 생각하고 나니 딱히 섹스에의 능력이 발휘되지 않는 것.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모욕은 드러누운 페니스. 이성간의 전쟁의 최종 병기는 축 늘어진 페니스. 적진의 깃발은 불완전한 발기. 종말의 상징은 자폭하는 핵탄두 페니스. 그것이야말로 결코 바로잡을 수 없는 불평등이다. 남자가 페니스라고 불리는 근사하고 매력적인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자가 전천후 보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 비바람도 진눈깨비도 밤의 어둠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보지는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 그러고 보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증오하는 것도 당연하다. 남자들이 여자의 불완전함에 관한 신화를 지어내는 것도 당연하다. -p.174



섹스는 인생에 있어서, 아니지 사랑이나 연애에 있어서 필수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것일 수도 있고 없어도 크게 상관없을 수도 있다. 그렇게 숨이 턱 막히게 나를 긴장시키는 남성미 뿜뿜 뿜어대는데, 정작 시들어버리는 거시기라면, 내 사랑은 그 다음에도 계속, 여전히, 불에 타고 들끓어 오르고 초조하고 긴장할 수 있을까? 그 긴장감, 숨이 막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성적 매력에서 온 게 아닌가? 그런데 성적으로 어떻게 나랑 뭔가를 하지를 못해? 그렇다해도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계속, 지금 그랬던 것처럼? 한두번이야 그럴 수도 있지, 너도 긴장했나봐 할 수 있지만, 그런데 계속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이즈 포에버가 될 수 있을까?


이 역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막 만나서 열정이 들끓어올라 뜨겁게 사랑해 섹스섹스 좋아좋아 너도 좋고 섹스도 좋은데 좋은 너랑 섹스하니까 미치게좋다 할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나이까지 살아보니까... 꼰대의 입장에서 말을 해보자면, 그것은 어느 순간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뭐, 이것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구십살이 될때까지 섹스섹스 고추 파워업 울트라 만만세 섹스섹스 섹스가 최고야 만만세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고, 의외로 또 많을 수도 있겠지만, 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 이다. 섹스, 하게 되면 좋지만 안해도 그렇게 인생에 써운하지 않은 그런 시점이 기어코 찾아오고야 말아버려.... 할 수 있을 때 부지런히 해라, 젊은이들이여... 나중에는 욕망 자체가 사그라드는 날이 온단다.... 샤라라랑~ 슬프지만(어쩌면 안슬프지만) 그리 된단다. 샤라라랑~ 내게도 불붙었다가 상대가 사그라드는 바람에 실망했던 시간들이 분명히 존재하고(이 사랑이.. 지속될까? 나 바람피는게 낫지 않을까?), 섹스가 너무 좋아서 그냥 결혼할까?(정신적 유대는 다른 사람과 나누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시간들이 존재한다. 그 모두를 함께 만족시키는 상대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인류는 성별을 막론하고 친구로 지내야 합니다... 위 아 더 월드.. 피쓰! 우정을 나누자 얘들아!!



프렌쉽 이즈 뽀에버!! (아님)






여자가 혼자인 것은 언제나 선택이 아닌 포기의 결과로 간주된다. 그래서 최하층민 대접을 받는다. 여자가 품위 있게 혼자 살 수 있는 방법이란 도무지 없다. 물론 남자만큼은 아니어도 경제력이 있을 수 있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도 그런 여자를 평화롭게 살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친구들, 가족, 직장 동료들은 그녀가 남편이 없다는 사실, 아이가 없다는 사실, 한마디로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 없게 만든다. - P31

"제 생각엔요, 콜너 박사님. 박사님은 정신과 용어로 ‘소인 콤플렉스‘라는 걸 갖고 있어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받으면 갑자기 짜증을 내면서 욕을 하기 시작하잖아요. 물론 162센티미터의 키로 산다는 게 쉽진 않겠죠. 하지만 당신도 나한테 이렇게 분석당하면 그런 사실조차 한결 견디기 쉬워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막대로 지르거나 돌을 던져서 뼈가 부러지면 모를까, 난 말에는 상처받지 않아요."
콜너가 화를 내며 말했다. - P43

"진심이야. 넌 내 동생이고 난 네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 넌 글쓰기를 그만두고 아기를 가져야 돼. 아기를 갖는 건 글쓰기보다 훨씬 더 보람있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그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 애를 아홉이나 낳은 언니한텐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난 정말 애들을 갖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언니의 아이들이나 클로이, 랄라의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지금은 내 일에 만족하고 있고 다른 보람은 원하지 않는다고." - P92

아기를 갖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자를 위해 아기를 갖는 건 부당하다. 그들의 이름을 가질 아기를 갖는 것,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이 늘 기쁘게 해주어야 할 남자를 위해 아기를 갖는 것,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봉사해야 하는 남자를 위해 날 구속할 아기를 갖는 건 부당하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족쇄다. 가장 아프고 가장 오래가는 족쇄다. 그 속쇄에 나는 영원히 갇힐 것이다. 나 자신의 감정과 내 아기의 인질이 될 것이다. - P99

우리의 결혼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우리 둘 다 구원을 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둘 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서로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 P110

남자들의 세상에서 결혼 안 한 여자로 산다는 건 너무도 성가신 일이었고 그 어떤 상황도 그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결혼은 분명 독신보다 나았다. 그러나 훨씬 나은 것은 아니었다. 더럽게 똑똑한 놈들. 남자들이 독신 여성의 삶을 얼마나 견디기 힘들게 만들어놓았는지 나쁜 결혼도 독신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저임금 노동을 하면서 매력 없는 남자를 물리쳐가면서 틈틈이 매력 있는 남자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더 끔찍한 건 없었다. 물론 독신 남자들도 외롭겠지만 적어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진 않는다. - P151

"이봐요. 난 나 자신을 알기 때문에 당신을 아는 거예요." - P167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모욕은 드러누운 페니스. 이성간의 전쟁의 최종 병기는 축 늘어진 페니스. 적진의 깃발은 불완전한 발기. 종말의 상징은 자폭하는 핵탄두 페니스. 그것이야말로 결코 바로잡을 수 없는 불평등이다. 남자가 페니스라고 불리는 근사하고 매력적인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자가 전천후 보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 비바람도 진눈깨비도 밤의 어둠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보지는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 그러고 보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증오하는 것도 당연하다. 남자들이 여자의 불완전함에 관한 신화를 지어내는 것도 당연하다. - P174

다시는 에이드리언을 만나지 않겠다고, 이제 다 끝이라고, 잠깐 일탈을 감행하긴 했지만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에이드리언을 보았고 나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어느 순간 사랑 노래의 가사와 유치한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한심한 작태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심장이 박자를 놓쳤다. 그가 다가올 때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는 나의 태양이었다. 우리의 심장이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가 나와 한 방에 있을 때면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로 초조해졌다. 일종의 광기였고 완전한 몰입이었다. 내가 쓰기로 되어 있던 기사도 완전히 잊었다. 그 사람 외에는 다 잊었다. - P226

왜 나는 행복한 쾌락주의자가 되서는 안 되는가? 그게 뭐가 잘못인가? 역사상 삶으로부터 (그리고 남자들로부터)가장 많은 걸 얻어낸 여자들은 결국 가장 많은 걸 요구한 여자들이었다. 고귀하고 매력 있는 여자처럼 행동하면 남자들도 고귀하고 매력 있는 여자로 대접하고, 발닦개가 되기를 거부하면 그 누구도 밟지 않는다. 비굴한 여자는 짓밟히고 여왕처럼 구는 여자는 여왕대접을 받는다. - P240

정신분석이니 자기분석이니 그들이 했던 얘기들은 순 헛소리였다. 그들의 삶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사건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그 사실을 얘기조차 할 수 없었다. 타인의 삶은 얼마든지 분석할 수 있으리라. 누군가의 동성애적 욕망, 누군가의 오이디푸스적 삼각관계, 누군가의 간통은 분석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정작 그들 자신의 경험 앞에선 모두 할 말을 잃었다. - P276

두 사람의 결합은 영혼의 틈을 서로 메워주고 그로 인해 우리는 좀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그 결합이 반드시 섹스와 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부부, 혹은 거의 섹스를 하지 않는 나이든 동성애자들에게서도 그런 결합을 볼 수 있고 때로는 결혼한 부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마치 아치형 석조 버팀목처럼 서로를 떠받치고 있는 두 사람.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의 응석을 받아주고 서로를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두 사람. 단지 그런 결합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결혼은 온갖 불이익을 감수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결혼은 이 무정한 세상에서 단 한 명의 진정한 친구를 갖는 것이다. - P303

그는 지휘자 데뷔를 꿈꾸었다. 그러나 꿈꾸는 것 말고 딱히 하는 일은 없었다. - P403

모든 애정 문제는 결국 불균형 배분의 문제였다, 젠장. 사랑의 감정은 넘쳐나지만 항상 엉뚱한 장소, 엉뚱한 사람에게로 향한다. 사랑받는 사람은 더 사랑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더 사랑받지 못한다. - P419

요동치는 비행기 안에서는 누구도 무신론자일 수 없었다. - P431

마치 나의 모든 문제의 해결사처럼 베넷 윙이 내 삶에 흘러들어왔다. 그는 스핑크스처럼 말수가 적은데다 다정했다. 그는 구원자이자 정신과의사였다. 나는 유럽에서 침대에 쓰러졌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결혼에 쓰러졌다. 푹신한 침대 같았지만 그 밑에 못들이 숨겨져 있었다. - P460

"당신은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나요?"
최근에 여성운동에 열심인 남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요즘엔 그게 섹스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거든요."
그의 대답이었다. - P552

나는 황당하게도 에이드리언이 내 영혼의 짝이라고 믿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그러나 나는 바로 그걸 원했다. 나를 완성시켜줄 남자를 원했다. 파파게노에 어울리는 파파게나. 그것이야말로 내 모든 망상 중 가장 심각한 망상이었다. 다른 사람은 결코 나를 완성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완성할 힘이 없을 때, 사랑을 찾는 건 자살 행위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기희생이 곧 사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 P553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불행히도 지금껏 항상 그래왔다. 처음에는 건드리지도 못할 것 같은 마음의 멍들이 결국에는 무지갯빛 자국이 되고 고통이 멎는다. 우리는 그렇게 잊는다. 심지어는 다시 사랑을 만날 때까지 우리에게 심장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다시 그런 일을 겪으면 어떻게 그 기억을 잊을 수 있었는지 놀라워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번이 더 강렬해. 이번 사랑이 더 좋아."
예전의 사랑을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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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3-16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섹스섹스 고추 파워업 울트라 만만세 섹스섹스˝ 라는 문장을 이번 생에 읽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워업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16 10:11   좋아요 1 | URL
파워업은 관계유지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이만.

감은빛 2021-03-16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름을 지우고 읽어도 단번에 누가 쓴 글인지 알아볼 수 있는 글이네요. ㅎㅎ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의 속편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그런데 다락방님의 쓰신 내용만 읽어도 공감이 가고, 납득할만한 전개라고 여겨져요.

저도 다락방님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다락방 2021-03-17 09:03   좋아요 1 | URL
감은빛님, 새벽 세시 후속편에 대해 여기서 스포일러 당하셨네요. 죄송합니다 ㅎㅎ

감은빛님은 이미 저의 너무나 좋은 친구이십니다. 저는 감은빛님이 언제나 제 말에 귀 기울여주시고 제 편이 되어주신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십니다.
:)

붕붕툐툐 2021-03-1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너무 저같아서 깜놀했네요! 저에겐 필독서입니다. 우정이여 영원하라!!ㅎㅎㅎㅎ

다락방 2021-03-17 09:03   좋아요 1 | URL
섹스 따위 다 꺼져버려! 우정이여 영원하라. 우정 뽀에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이퍼는 하루에 하나씩만 올리기로 내가 스스로 정해두었기 때문에 아까 페이퍼 하나 다다닥 쓰고 감춰두었는데, 그렇게 오늘을 잘 넘기려다가, 친구들과 얘기하다보니 또 가슴이 사랑으로 들끓어올라 급하게 부랴부랴 하나 더 써보도록 한다.


















친구들과 이 책을 같이 읽고 있다. 이번주 일요일까지는 이 책의 7장부터 9장까지 읽기로 한터였다. 너무 바빠서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어기고 싶지 않은데, 하였는데 어쨌든 일요일 저녁까지 가까스로 읽어냈다. 본격적 이야기에 앞서, 두꺼비에 대해 얘기해보자.

두꺼비.

그렇다 바로 그 두꺼비다.

이 책은 참... 이상하게 갑자기 툭 뱀장어 나오더니(https://blog.aladin.co.kr/fallen77/12391312), 이제 두꺼비가 튀어나온다. 1800년대에 살던 사람들, 장난을 왜 뱀장어와 두꺼비로 하는거야?


그러니까 무도회에 가서 '다프네'의 오빠 '콜린'은 다프네가 제일 좋아하는 남자형제라고 스스로 칭한다. 이걸 듣게된 '사이먼'은 콜린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오빠라고? 묻자, 다프네가 이렇게 답하는 거다.



'Only because Gregory put a toad in my bed last night,' Daphne bit off, 'and Benedict's standing has never recovered from the time he beheaded my favorite doll.' -p.151



"그건 어젯밤 그레고리가 제 침대에 두꺼비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순위가 저절로 올라간 거예요."

다프네가 물어뜯듯 말했다.

"게다가 베네딕트 오빠는 내가 제일 좋아하던 인형의 머리를 잘라 버린 이후로 절대 상위 랭킹에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번역서 전자책 中



아니 얘네 대체 왜 이러고 놀지? 사이먼은 일전에 안소니의 침대에 뱀장어 떼를 넣어놓더니 그레고리는 누나 침대에 두꺼비를 넣어놔. 왜그러는거야?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장난이고, 이 브리저튼 남매들 귀족에다가 곱게 자라 우유 데우는 것도 하나 제손으로 못하는데 대체 그 빨래를...두꺼비가 들어갔다 나온 침대 빨래를.... 너무 남 일로 생각하는거 아닌가 싶다. 쯧쯧.. 두꺼비는 또 어디서 가져와서 넣었담? 뱀장어는? 참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



자, 두꺼비 얘기는 이쯤하고(개구리와 두꺼비는 어쩐지 나의 마음속에 어떤 무엇이다. 이만 총총.)



9장에서는 본격 썸을 타는 다프네와 사이먼이 나온다. 그들은 연인 행세를 하기로 했고, 그렇게 하면 '공작의 여인을 탐내는 구혼자들'이 다프네에게 청혼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나 '애인이 있다고 생각되는 공작에게 다가오는 엄마들'은 줄어들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이먼과 다프네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들은 세상이 그들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리든간에, 서로가 서로에게서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그들 사이에는 다정하고 따뜻한 기류가 흐른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커플 행세를 하기로 하였으므로 무도회에서 두번씩 춤을 추기로 하였는데, 그런데 이번 무도회에는 그가 오지 않겠다고 미리 말했었다. 이 무도회에 사이먼이 없다는 걸 안 다프네는, 아무리 자기에게 구혼하려고 하는 자가 있어도 이 무도회가 재미가 없다. 사이먼이 여기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결코 월플라워가 될 수 없을만큼 인기의 중심에 서있는데도, 사이먼이 없는 이곳이 비참하게만 느껴진다. 사이먼을 보고싶다. 사이먼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사이먼이 그립다.



And so Simon stayed away.

And Daphne was miserable. -p.147



사이먼은 여기에 없었고

다프네는 비참했다.

아무리 백명의 남자가 나를 원한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그 남자가 여기 없는데 그 비참함, 슬픔, 피 땀 눈물... 마지막 춤을.... (응?)



그런데 우리의 장난꾸러기 콜린 오빠가 와서는, 너는 왜 여기에 혼자 뿌루퉁하게 있니, 묻는다.


'I'm not skulking,' she corrected. 'I'm avoiding.'

'Avoiding whom? Hastings?'

'No, of course not. He's not here tonight, anyway.'

'Yes, he is.' -p.149



아아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를 보고싶지만 그를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내 우울했는데, 아무리 자기에게 사람들이 다가와도 하나도 신나지 않았는데, 내내 보고싶었던 그가 여기에 와있다고? 다프네는 언제나 여동생 골탕먹이기에 신이난 콜린이란 걸 알기에 이번에도 골탕먹이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아아, 이런 마음.



'He is?' -p.149


힝.. 어떡하죠 내 심장이 고장났나봐... 그가 여기에 있다, 그가 왔다, 내가 그를 볼 수 있다.. 아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두근반 세근반 내 심장..어떡하죠.


콜린은 그렇다고, 아까 입구에서 보았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어떻게 그를 보아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데, 아아, 오빠가 나한테 장난친다... 막 이러면서 어쩌지를 못하는데, 돌아서서 그를 찾아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오빠랑 얘기하고 있으면서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 어떡하죠 내심장이 고장났나봐, 다프네는 서영은의 노래를 목청껏 속으로만 부르고 있는데, 그런데 바로 그 때, 마법처럼, 무지개처럼(like a rainbow), 거짓말처럼! 사이먼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아아,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



'Daphne!' Simon's voice. Right at her ear. -p.151



아아, 웁니다. 마음으로 웁니다. 이걸 어떡하면 좋아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집니다. 기다리고 원하면 이렇게 다가옵니다. 사랑입니다. 이들은 썸을 타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영화 《비커밍 제인》을 떠올린다.
















제인은 부유한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가난한 남자 '톰'을 사랑하게 된다.

제인은 무도회에 왔다. 떠난다고 했던 남자 톰을 찾는다. 떠나버렸을테니, 그는 여기에 없어. 그렇지만 그녀는 그를 기다린다. 그를 보고싶다. 어쩔수없이 무도회의 일원으로서 다같이 춤을 추지만, 그녀는 하나도 기쁘지 않다. 여기에 그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그녀는 톰을 원한다. 톰을 원하는데 톰이 없다.




And so Tom stayed away.

And Jane was miserable.



그런데 기적처럼, 춤추던 중에 저기, 톰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틈에 톰은 내 뒤로 바싹 다가와있다. 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이거슨 기적이다. 미라클...miracle (스펠링 이거 맞나?)



사랑이..사랑이 시작됩니다.


자, 다시 브리저튼.

그리고 여차저차 이차저차 삼차저차 해서리 사이먼과 다프네는 테라스에 나가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그러다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욕망을 읽고, 다프네는, 위험하게도 정원에 나가자고, 나는 정원에 갈건데 너는 올테면 오라고, 하면서 아무도 없는 정원으로 가니까, 사이먼은 여자가 혼자 그런데 가있으면 안되니까 그녀를 보호해야 하니까, 이렇게 막 그런데 여자 혼자 가면 안된다고 할라고 혼내줄라고 다프네를 쫓아갑니다......



가 9장의 마지막인 것이다. 친구들과 나는 9장까지 읽기로 했는데, 아니 이렇게 끝나버리면 촉촉한 나의 마음 어떻게 잠을 자지요? 살짝, 살짝, 10장을 넘겼는데, 아니, 레이디 휘슬다운이, 많은 여성들이 단 한 번의 키스로 망한다고.. 썼어요? 그렇다면 그 뒤는? 나는 어쩔 수 없이 10장을 읽는다. 그냥 읽을라고 했더니 뭔가 에로틱 분위기 전개되는데 해석이 잘 안돼. 번역서를 옆에 펴두고!! 그렇게 한줄씩 따라 읽으면서 서서히 흥분한다. 그러니까 그의 근육들이 팽팽해지고 그의 허벅지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막 응? 막 피부에서 열이 나고 막 그녀의 숨결 바로 그의 앞에서 느낄 수 있고(마늘이나 양파를 먹진 않았나요? 전 개인적으로 김밥 먹고 하는 키스가 제일 토나와요), 점점 더 가까워지고 막 그렇게 되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정원에서 막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요렇게 고렇게 하다가 손이 막 등 뒤로 가가지고 막 올라가고 그렇게 목을 감싸고 막 그 손이 아래로 내려와서 막 옷을 내리고 그러면 .... 네.........



어휴 진빠져.



좋을 때다.

참 좋을 때야.

그 때가 좋을 때다.

얼마나 좋을 때니.

아이참 나 너 좋아해 너도 나를 좋아할까. 나는 너를 욕망해 너도 나를 욕망할까. 아아 네 눈빛... 네 눈빛에서 나를 갈망하는 걸 읽었어. 아아, 클리셰 범벅인 이 말, 클리셰 대마왕인 이 말. 그런데 나도 들어봤다. 네 눈에서 욕망을 읽었다고... 그래서 그렇게 해줘야 했다고. 그게 벌써 언젯적의 일이냐. 저기 아름다운 과거 뒷전에 묻어둔다. 그래, 내게도 욕망이 있었고, 그 욕망이 내 눈에서 이글거렸고, 너는 그걸 읽었지.

좋을 때였다.


But it's over now.



다 끝나버렸지만...




월요일 오전이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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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3-1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공자님 말씀에 ˝배우고 틈틈이 익히면 어찌 아니 즐거운가˝ 하는 말씀 있잖아? 배움은 즐거움이지. 근데 배움은 평생 배움이잖아? 그러니까 즐거움은 평생인거죠. 그러니까 좋을 때의 over는 한평생 없는 것이다?

다락방 2021-03-15 12:10   좋아요 0 | URL
응?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욕망하고 갈망하고 그러는거 평생 오고 막 그런다는 거에요? 안돼.. 나 개피곤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3-15 12:11   좋아요 0 | URL
일단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우자. 그러면 조금 덜 피곤하겠지? ㅋㅋㅋㅋ

잠자냥 2021-03-15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진빠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생각만으로 진빠지는 나이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16 08:0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잠자냥 님. 생각만으로도 진이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ㅋㅋㅋㅋㅋ
저는 평온한 몸과 마음의 상태로 살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3-1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당 챕터를 읽은 후에는 꼭 다락방님 페이퍼를 읽어야겠어요. 너무 실감나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좋으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16 08:02   좋아요 0 | URL
아오 재미있어요. 그다음에 또 언제 야한거 나올지 후딱 읽어야 알 수 있겠죠.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더 해도 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몸이 꼬입니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3-1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17433
이거 보니까 다락방 님 생각났어요. ㅋㅋㅋㅋㅋ 성경 통독 진도표 준대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16 08:03   좋아요 1 | URL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90일 통독 이면.. 하루에 읽어야 할 분량이 엄청 많을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제가 현재 성경읽기 79일째를 지나고 있으며 사사기를 읽는 중이라고 합니다. 엣헴-

psyche 2021-03-16 0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은 안 읽고 드라마 조금만 보았는데 다락방님 페이퍼가 훨씬 더 재미있어요 ㅎㅎㅎ

다락방 2021-03-16 08:1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드라마 다 보았어요. 근데 책에서는 브리저튼 남매 다 멋지게 나오는데 드라마 보면 남자형제들이 너모... 무매력이라서... 당황스럽다고 합니다. ㅎㅎ
 

주중은 일하느라 바쁘고 주말은 나름의 스케쥴로 바쁘다. 이번 주말에는 여동생네에 다녀왔다. 여동생은 큰 집으로 이사를 했고 그래서 식구들 모두가 염원하던 '각자의 방'을 갖추게 되었다. 여동생이 자기만의 방을 갖게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책상을 사는 일이었다. 식구들 모두의 책상이 있지만 그동안 여동생의 책상은 따로 갖추지 못하던 터였다. 이제 넓은 집에서 식탁은 식탁의 일을 할것이고 여동생방의 책상은 여동생 방에서 책상의 역할을 할것이다. 나는 여동생 집에 도착해서는 네 책상 볼래, 하고 여동생 방으로 갔다. 이전에는 언제나 안방이던 곳, 모두의 방이던 곳, 그리고 모두가 거쳐간 곳. 그러나 이제는 여동생이 집에서 제일 큰 방을 쓰면서 책상과 책장을 갖춰두었고, 거기에는 여동생이 보아야 할 그리고 보고싶은 책들이 꽂혀 있다. 아직 막내는 엄마방을 엄마와 제방으로 생각하고 잠 역시 엄마랑 함께 자지만, 여동생은 책상을 사두었다.



늘 벼르던 차에 화장대를 정리했다. 내 방의 화장대는 내가 고른 것이 아니었고 산 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다. 여닫이 수납장의 문은 언제나 세게 닫히고 서랍을 열고 닫을때면 손잡이가 느슨해지기 일쑤이며, 무엇보다 화장대가 좁다. 화장품을 늘어두고 의자에 앉아 화장을 하는 것이 크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언제나 좀 더 큰 화장대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터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나는 화장하는 화장품의 종류를 줄이고 줄여서 이제는 색조화장을 일절 하지 않으며 눈썹도 그리고 다니지 않는다. 출근할 때면 피부 화장에 볼터치에 눈썹도 그리고 립스틱도 발랐었는데, 이 과정들의 절반 이상이 생략되었다. 며칠전에는 좁은 화장대를 차지한 화장품들을 보면서 이것들 중의 절반 이상을 쓰지 않는데 이렇게 차지하게 둘 게 무어람?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어제는 대대적 정리에 들어갔다. 버릴 건 버리고 치울 건 치웠다. 여전히 립스틱 몇 개와 파우더는 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어쩌면 언젠가는 한번쯤 쓰게 되지 않을까, 하고. 그렇지만 그 때쯤이면 유통기한이 훨씬 지나가 있어 아마 새로 사는게 낫겠지. 일단 그런 마음으로 화장대 위에는 정말 사용하는 것만 올려두었다. 스킨, 에센스, 크림, 썬크림. 이게 전부였다. 그러자 화장대가 넓어졌고, 나는 이렇게 정리한 뒤에 놓아둘 독서대를 사둔 터라, 그 포장을 뜯고 독서대를 올려두었다. 화장대는 이제 내 침실의 책상이 되었다. 충분히 넓지 않지만, 그러나 책상의 기능을 충실히 한다.



지금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은 방이 세 개다. 남동생이 결혼해 집을 나간 후로 방 두 개를 내가 쓰고 있다. 그러니까 남동생이 쓰던 방은 나의 서재가 되어서 거기에 내 책들이 온통 가있고, 또 책상! 넓은 책상, 큰 책상이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집 식탁으로 쓰던 대리석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이거 버리게 되면 내가 책상으로 쓸거야, 하던 거였다. 엄마는 식탁을 새로 사고 싶어했고, 나는 집에 식탁을 새로 사두고는 기존의 대리석 식탁을 내 서재방으로 들여 책상으로 만들어두었다.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서재에 내가 사들이는 책이 쌓이고 쌓여서 책장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결국 자리를 찾지 못하는 수많은 책들은 책상 위에 쌓여가기 시작했고.. 책상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노동이 필요해졌다. 맥북을 열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전에 반드시 쌓여 있는 책들을 한쪽으로 치우는게 필수다. 게다가 겨울의 서재는 춥다. 발이 시려워. 그래도 서재에서 책 읽는게 좋아 읽다가는 멈추고 나와 양말을 신고 가디건을 걸쳐야 했다. 그런 참에 따뜻한 내 방에 책상을 사두고 싶어졌고, 그러려면 화장대를 버려야 하는데, 버리는데 돈들지 책상 사는데 돈들지... 하다가 그냥 화장대를 책상으로 바꿔버린 거다. 그렇게, 내게 책상은 두개가 되었다.



화장대를 깔끔하게 치워두고 책상으로 바꿔버린 뒤, 나는 이번달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를 펼쳤다. 그간 너무 바빠 읽기 시도를 못하고 있다가, 자 이제 각잡고 읽어보자, 독서대도 샀다, 내 방은 따뜻하다!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서문부터 읽기 싫어졌고 아아, 그래도 읽어야 해, 읽다가, 본격적인 본문에 들어가서 1장이 너무 재미있는 게 아닌가!


















1장은 '도로시 앨리슨'의 <계급의 문제>이다.



도로시 앨리슨의 빈곤한 과거와 성학대를 당했던 유년시절 그리고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온종일 열심히 일하는데 왜 우리는 항상 돈이 궁한지를. 그렇지만 공장이나 제철소에서 열심히 일하는 엄마의 형제자매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p.79



익명의 세계가 나를 감싸주었고, 사람들은 마지못해 인정하면서도 과연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궁금해했다. 그들이 이미 내 삶은 빈곤과 무기력으로 결정났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 -p.82



나는 가난하고 혐오스러운 아이로, 신체적이고 정서적이고 성적인 폭력의 희생자로 자라났다. 고통을 겪는다고 사람이 고귀해지지 않음을 안다. 고통은 사람을 파괴한다. -p.102






얼마전에 본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3] 에서는 '좀 더 견문을 넓히라'고 조언하는 언니를 둔 주인공이 나온다. 주인공 라라 진의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이고, 라라 진은 좋은 집에 산다. 라라 진은 견문을 넓히라고 조언해주는 어른(언니)이 있다. 게다가 진학하게 될 경우 학비를 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 라라 진은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확률이 크다. 당연한 얘기다. 나는 그것을 문화자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뉴욕에 총 세 번 갔었는데 그 중 한번은 매우 부유한 젊은 친구와 함께였다. 그 친구는 나이가 나보다 훨씬 어린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았고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줄 알았다. 그 친구는 공부든 유학이든 뭐든 하고자 했을 때 집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해주었던 것. 그 친구와 나는 인생의 시작점부터가 달랐다. 그 다른 시작점에서 한 명이 다른 한 쪽보다 더 유리하다고 해서 더 잘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러나 더 잘 될, 그러니까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더 좋은 환경에 속할 수 있을 확률은 훨씬 높음은 자명한 일이다.



요즘의 뉴스를 보면 누구나 다 알겠지만, 돈이 돈을 번다. 이미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게 된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시세차익으로 몇 억씩 챙길 수 있지만, 그러나 부동산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기존에 가진 돈으로 다시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더 외곽으로, 더 아래로(지하) 더 위로(옥탑) 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들은 매일 일찍 일어나 늦게까지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살겠다고 발버둥을 쳐도, 이미 자산을 충분히 가진 사람보다 아니, 그 사람들 만큼 풍족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한달에 이백만원씩 벌어서 아끼고 아끼고 산다고 해도 내년에 전세금 오천만원 올려주세요, 라고 한다면 그걸 대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아파트는 더 층수가 높게 올라가는데도 여전히 살아갈 곳이 없어 끙끙대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 도로시 앨리슨이 보기에 이건 너무 이상하다. 자신의 부모들은 정말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그런데 여전히 빈곤하고, 그 빈곤으로 혐오당하는 사람이 되고, 그 빈곤으로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멈춰버린 존재가 된다.'린다 티라도' 역시 자신의 책, 《핸드 투 마우스》에서 빈곤하게 태어난 사람은 계속해서 빈곤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수 밖에 없음을 얘기한 바 있다.





바닥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빈곤 상태와 빈곤을 아주 살짝 벗어난 상태를 주기적으로 오간다. 때때로는 괜찮지만 때때로는 물 밑에 잠기는 것이다. 연도에 따라, 직장에 따라, 또는 건강에 따라 변한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계층 하락은 모래 늪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완전히 휩쓸릴 때까지 당신의 선택권을 계속 제한한다는 것이다.- 린다 티라도, 《핸드 투 마우스》, P27











도로시 앨리슨의 친척들은 계속 가난하고, 진학이 막히고, 감옥을 왔다갔다할 때, 도로시 앨리슨은 가족들 중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와 처지에 대해서 이런 것의 불공평함과 부조리함에 대해서 글을 쓴다.




나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세상에 태어난 동성애자였고, 가난뱅이를 경멸하는 세상에 가난뱅이로 태어났다. 내가 산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그런 세상이 있음을 믿게 만드는 것도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 중 하나다. -p.73



나는 도로시 앨리슨이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와 꼭 같은 이유로 글을 읽는다. 나는 내가 살아온 환경밖에 볼 수가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더더욱 우물안 개구리였다. 나에게는 내가 볼 수 있는 미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가 제한적이었다. 나는 도로시 앨리슨처럼 빈곤하게 자란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유하게 자란 것도 아니었으며, 집 안 어른들이 견문을 넓히라 조언해준 적도 없다. 나 역시도 친척들 중에 드물게 대학에 진학한 케이스이고, 그것은 아빠의 자랑이었다. 나는 내 견문을 내 스스로 넓혀야 했고, 내가 모르는 것을 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했다. 글을 읽는 것은 매우 도움이 된다. 글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나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른 환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것도 좀 더 넓은 다른 세상을 만나는 방법이지만, 여행도 그렇고 책을 읽는 것, 영화를 보는 것도 역시 그런 방법이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은, 그래서 좋다.


글은, 그래서 좋다.

글은 그래서 좋다.



글은, 쓰는 사람에게는 정리와 해소와 위안과 기쁨과 정보가 되기도 하지만-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읽는 사람에게도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내가 글을 읽는 이유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또 써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도로시 앨리슨의 모든 부분에 내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포르노를 언급한 부분), 그러나 도로시 앨리슨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써준 것을 읽는 게 매우 좋았다. 극도의 빈곤을 이런식으로 마주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한걸까, 이것이야말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나 글로 읽지 않는다면 여전히 더 많이 모르는 채로 살아갈 것이다.



읽고, 쓰자. 부지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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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3-1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앨리스 먼로의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 나오는 ‘작업실‘이라는 단편이 생각났어요.
공유하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작업 공간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큰 것 같아요. 그 작업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락방님의 경우엔 물론 읽고 쓰는 일이겠지요. 더 좋은 글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길 기대합니다 ^^

다락방 2021-03-16 08:11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단편 읽었어요, 나인님!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주인공이 처음으로 작업실을 갖게 되는 과정을 썼던 것 같아요.
제가 얼마전에 한 친구에게 여동생의 자기만의 방과 책상 얘기를 했는데, 상대가 ‘결혼했는데 남편하고 각방 쓰다니 사이가 안좋냐‘ 면서 뜨악해 하더라고요. 저는 그 반응에 좀 충격을 받았더랬습니다.

더 좋은 글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저도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부지런히 읽고 써야 할 것 같아요. 감사해요, 나인님!!

syo 2021-03-15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돈을 해야해ㅋㅋㅋㅋ 안 그러면 방에다가 종합운동장을 들여놔도 글 쓰기 전에 정리하는 일은 늘 벌어진다? 물론 그 때는 정리를 포크레인으로 해야 되겠지만...

다락방 2021-03-16 08:12   좋아요 0 | URL
그거 알아요? 나한테 정돈 해야 한다고 제일 많이 말하는 사람이 쇼님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타미도 그렇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타미도 나한테 정리좀 하라고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전에 우리 친구가 60평 집들이에 다녀왔다는 말을 했는데, 그 때 그런 생각했어요. 60평 아파트 내게 줘도 나는 어차피 또 이렇게 만들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3-15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분의 방과 책상, 다락방님의 서재와 화장대책상을 응원합니다. 저도 오늘 작업(?) 공간을 무지 바라며 노트에 휘갈겼는데 말입니다. 창고라도 치우러 가야 겠어요.....

다락방 2021-03-16 08:15   좋아요 0 | URL
저는 자기만의 공간이 물론 크고 아름답다면 좋겠지만, 어디여도 좋을거라는 생각을 해요. 창고여도 다락이여도 온전히 나 혼자 있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 공간에 있을 때는 저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뜻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응원 감사히 받겠습니다, 난티나무님. 저 역시도 난티나무 님을 응원합니다. 부지런히 읽고 쓰도록 합시다, 난티나무님! 부지런히 읽고 쓰는게 더 좋은 글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