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의 거미줄》이후로 내가 원서를 완독한 건 이번이 두번째다. 그러나 샬롯의 거미줄은 분량도 적고 성인 소설은 아니었으니, 성인 소설로 완독한 건 이게 처음인것이다. 크- 이런 날이 내게 오다니. 감개무량. 내가 원서를 완독하다니.. 물론 이건 내가 기존에 번역본을 읽었었고, 드라마도 보았었고, 또 이번에 읽으면서도 번역본 나란히 놓고 읽어서 해낼 수 있었으며, 친구들과 함께 읽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혼자서 원서 읽겠다고 건드려본 적은 수차례이나 항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었다. 알지 못하는 영어를 읽고 이해할라 치면 갑자기 스트레스가 와서 다시 번역본으로 돌아가곤 했지. 그러나 친구들과 분량과 기한을 정해두고 여기까지 읽자, 하면서는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계속 읽었고, 그런식으로 진행하다보니 오오 할 수 있겠는데? 라는 기쁨이 슬며시 차올랐더랬다. 어쩌면 원서 완독이 되겠어, 하는 긍정적인 기운이 샤라라랑~

지난주 일요일까지는 이 책의 15장까지 읽는 거였는데, 같이 읽기로 한 친구 두 명을 토요일에 만났더니, 아니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이 친구들이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는 게 아닌가. 아니, 뭐야? 나는 14장 읽고 있었는데?


그렇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영어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데다가 원서 읽어본 경험도 없었고 게다가 요즘 회사 너무 바빠서 퇴근해 집에가면 떡실신 해버려서 도저히 진도를 뺄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여성주의 책도 못읽고 있었는데..

그러나 친구 둘이 다 읽었다고 하자 발등에 불떨어져버려서, 어제 하루종일 밥 먹고 앉아서 읽었다. 읽고 또 읽고, 소고기 구워 와인 마신 다음에 또 읽고 그렇게 밤 열두시까지 다 읽어버렸다. 으하하하. 읽다가 중간에 웃기도 하고, 야한 부분 나오면 아이참 어떡해 어떡해 침대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다가 나의 어떤 밤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사이먼이 나 같은 자식을 낳을까봐 두렵다고 했을 때는 눈물도 핑 돌았다.



사이먼은 분노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자기 자신을 버텨오고 스물두살에 영국을 떠나서 6년을 여행하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게 28살이었고, 거기서 다프네를 만났고, 자기 아버지의 대를 끊기 위해 결혼하지 않으려했고 사랑에 빠지지도 않으려 했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고 했는데,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것. 다프네라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을 느끼게 되고 여태 만난 사람들(모든 여남들!) 중에서 그녀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언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동안의 삶을 지탱해온게 분노라는 것을 깨닫게 된건데, 다프네를 만나지 않았다면, 다프네가 지적해주지 않았다면, 사이먼은 아마 남은 인생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삶의 방식은 자기 자신이 결정해야 하고 또 앞으로 남은 삶도 오로지 자기만의 몫이겠지만, 우리는 살면서 순간순간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싸우기도 하고 다정하게 지내기도 하고 돌아서기도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 작게든 크게든 영향을 받는다.


사이먼은 다프네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 본인이 바라던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다프네로 인해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다프네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싸우고 다투기도 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상대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자신을 가슴 아프게 했을지언정, 서로를 그리워한다. 어쨌든 이것은 로맨스 소설이니만큼, 서로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앞으로의 삶을 행복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닐지언정, 일정 부분에서는 진실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서 변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내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지금의 이 삶을 살아오게 된 것은 그동안 만난 다른 사람들 덕분이며 또 때문이다. 내 인생의 그 순간순간들에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 과정들이 당연히 사랑으로 혹은 우정이나 다정함만으로 가득찬 것은 아니었다. 순간순간 실망과 절망이 있었고 슬픔도 있었으며 아픔도 있었다. 많이 울기도 했고 분노로 주먹을 꼭 쥔 적도 있었다. 그 모든게 다른 사람들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답답한 적도 있었고 미움으로부터 나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긍정적이지 않은 감정들은 분명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이라고 해서 내게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아니다. 슬픔과 아픔 혹은 분노와 미움을 겪으면서 나는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고, 내가 너무 고지식하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러나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누군가 사라졌던 것처럼 누군가 생기기도 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해도 변화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뉴스를 읽는 일들로도 나는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안다. 이것은 내가 가진 큰 자산이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없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침체될 뿐더러,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된다면 거기에 끌려가게 된다. 나는 나의 어떤 지점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러나 어떤 지점들을 매우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다정하게 지낸 사람들이 또 지금의 나를 만든 것도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울과 절망과 슬픔과 미움이 찾아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내 스스로 이겨내자는 의지에 더해 그런 내 옆에 있어주고 나를 보아주고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내 편이라는 것을 안다. 대화를 하다가 '이 사람은 그냥 무조건 내 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느낄 때가 더러 있고, 그런 느낌은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나는 사랑도 느낀다.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네, 이 사람은 내게 애정을 갖고 있네, 하는 것을 깨달을 때면 온 몸에 힘이 솟는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지만 사랑 받을 줄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다정한 관계가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더 많은 행복을 가져온다는 것도 안다. 나는 혼자이고 싶은 사람이고 혼자가 익숙한 사람이고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누군가 다가올라치면 일단 신경부터 곤두세우고 보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다정함이 흐를 때면 그로부터 에너지를 받는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에는 나 스스로의 의지도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도 필요하다는 거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내 의지가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면 더 잘 나아갈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며 내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나로 있어도, 그저 내가 나로 살아가도, 충분하다. 내가 나인것 만으로도 나는 충족감을 느낄 수 있고, 내가 내 신념대로 사는 것,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그것 만으로도 누군가는 내게 다정한 마음을 품고 다정하게 다가오며 계속 다정하길 원한다. 다정함을 받고 또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함께 나아가는 것, 좀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쓰는 것은 행복하지 아니한가.




토요일에 친구들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와 이수정의 얘기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기 위해서는 굳이 나는 어떤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치 않다는 것, 그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게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그래서 나는 한나 아렌트와 이수정이 너무 좋다고 얘기했다. 어떤 사람이라고 수차례 말로 얘기하는 것이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보장하지 않는다. 말로는 별도 달도 딸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별도 따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정말 별을 따와야, 그 사람은 별도 따는 사람이 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친구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친구들이 보면, 그들이 스스로 판단을 한다. 아 너는 어떤 사람이구나 어떤 사람이구나, 하고. 나는 말보다 행동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수천개의 말로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일단 던져두는 사람이기 보다는 몇 개의 행동들로 보여주고 싶다. 나를 사랑해달라고 애걸하기 보다는, 내가 나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랑들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내가 나로 충족하며 살아가면 사랑과 우정은 자연스레 찾아오고 곁에 머문다.



친구들과 만나서 사랑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어쩌다보니 나의 어떤 연애에 대해, 그 처음과 끝에 대해-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얘기했다. 친구들은 마주 앉아 내 얘기를 들으며 꺅꺅 거렸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나는 어떤 부분들을 후회하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들이 너무 좋았는지 얘기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 얘기할때마다 훌쩍, 그 시간으로 돌아갔다. 슬펐을 때 슬펐고 벅찼을 때는 벅차서 말을 잇기가 힘들 정도였다. 과거를 떠올리면서 얘길 하노라면, 나는 그 순간 그 과거속에 들어가있다. 그 시간을 다시 산다. 친구들과 헤어져 돌아가는데, 오늘 이야기 들어서 좋다고 친구들이 말해서,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일어난다면, 얘기해주겠노라 말했다.

그 연애가 진행중일때, 나는 내 연애를 알고 있던, 내 연애를 보고 있던 한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아서 이게 지금 끝나도 버텨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 연애 충분해서 나는 이 연애 끝나고 그 다음에는 연애 안하고 살아도 될것같아." 그 때 내 말을 들은 친구 역시 연애중이었고 내게 답했다. "나도 알아, 나도 그래. 나도 이 연애 끝난다면 다음 연애를 하지 않고 살아도 충분해."

그런 연애를 했었다.




금요일날 늦게까지 빵을 만드는 바람에 토요일 아침 일자산을 못갔다. 가야지, 하고 눈을 떴지만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관두자, 하고는 쉬다가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고 집에 가서는 또 와인을 꺼내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친구들이 영어책 다 읽었대, 나만 못읽었어, 그런 얘기들 하면서 술을 마셨다. 엄마는 나에게 "네가 딸을 낳으면 그 애가 얼마나 똑똑하고 얼마나 잘날까, 너같은 엄마를 두었는데, 네가 딸을 낳지 않는게 너무 안타까워" 하셨다. 엄마, 그런 얘기는 그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 꼭 일자산 가야지, 하였지만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고싶지만 가기싫다...하는 마음이 되어서 침대에서 꼼지락 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꼼지락대다 거실로 나갔는데, 아아, 비가 오고 있었고..비가 오면 산에 못가지요? 나는 씐나버렸네. 움화화핫. 내 의지가 안가는게 아니라 날씨가 나를 못가게 한거야. 움화화핫. 그러나 너무 운동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길었다. 자, 그러면 운동을 해볼까. 가볍게 요가 한 판 갈까, 하고는 매트를 깔았다. 그동안 너무 요가 안해서 한시간 빡셀것 같고, 그렇다고 이십분 하자니 너무 적은 것 같아, 40분짜리 영상을 골랐다.





오랜만에 따라하는게 힘들기는 했지만, 아, 너무 좋았다. 움직이고 땀이 나는 모든 순간들이 좋았는데, 게다가 이 영상에서는 은은하게 음악까지 흘러나와서 너무 좋은 거다. 아,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나 좋은데 그동안 왜 안한거야,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어떻게 이렇게 고요한 음악 틀어두었을까. 선곡 센스 진짜 장난 아니야. ㅠㅠ

게다가 선생님 목소리 너무 좋고(일전에 오프에서 수업 받았더랬다), 설명도 천천히 잘 해주셔서, 부장가아사나 에서 등줄기의 힘이 느껴지는 건, 이 선생님 영상을 따라할 때만 가능하다. 이상하게 다른 영상들을 보고 따라하는 부장가아사나는 '도대체 이게 무슨 소용이람?'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라 쌤의 영상에서는 '아아, 등줄기 힘 느껴져 좋아좋아' 막 이렇게 되는 거다. 너무 좋다. 이 영상을 따라하는 지금이, 영상 속 음악이. 그렇게 40분 따라하고 매트에 누워 사바아사나 할 때는 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은 움직임이 준것인가 음악이 준것인가 생각했다. 음악은 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을, 음악이 꼭 좀 알았으면 좋겠다.

음악 덕분인지 사라쌤 요가 따라하고 나면 힘이 들면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마음이 고요해지는 느낌. 그러면서 그 고요한 마음속에 행복이 천천히 스며든다.


덕분에, 사라쌤의 다른 요가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된 음악을 재생해두고 일요일 오후에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고요하게.








엄마도 성경을 읽고 계신다. 일전에 성경을 모티브로 해 쓴 소설이 있고 그걸 재미있게 읽었다 얘기하니 엄마도 읽고 싶다 하셔서 며칠전에 권해드렸다.
















나는 이승우를 국내 작가중에서 제일 좋아하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섣불리 권하지는 않는다. 엄마께 이 책을 권해 드리면서, 그렇지만 이건 성경에 관한 거니까 엄마도 재미있게 읽으시겠지, 생각했는데, 절반도 안읽고 엄마는 불평을 쏟아내셨다.


야, 이 사람은 책 참 쉽게도 쓴다. 이래도 되냐. 왜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그러면서 종이 다 채우냐?


이러시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은 그들이 하려고 하는 악한 짓에 대한 의식이 없었고, 롯은 그 사실을 지적했다. 롯이 의도한 것은 구별하는 것이었다. 악과 악이 아닌 것,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나누는 것이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섬세해지는 것이었다. 잠든 그들의 윤리적 감각을 깨우는 것이었다. 윤리적 감각은 무분별,무차별의 함몰 상태를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똑바른지 휘어졌는지, 명중했는지 빗나갔는지, 선 안에 있는지 선 밖에 있는지 묻고 따지는 것에서 비롯한다. 롯은 몰려온 소돔 사람들에게 그것을 요구했다. 무엇이 악한 짓인지 아닌지, 선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구별해내라. 차이를 찾아내라.- P25



갑자기 눈이 어두워져 앞을 볼 수 없게 된 무리는 대문을 찾을 수 없었다. 볼 수 있을 때는 바로 앞에 있던 대문이 볼 수 없게 되자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되었다. 대문은 멀어지고 급기야 사라졌다. 사라졌으므로 그들은 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때리며 엉겨붙어 난장판을 벌였다. 누가 때리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든 때렸다. 대문이 부서질 때 그들이 대문 안의 나그네들에게 하려고 했던 일을 대문 밖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행했다.- P40



나는 너무 웃겨서 엄마, 나는 그래서 그 작가 좋아해, 했더니 엄마는 "야, 한두번이 아냐!!" 하시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 작가라면 계속 다르게 써야지 같은말만 쓰면 어떡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책을 읽다 그런건지 음악 듣다 그런건지 갑자기 gravity 라는 단어가 훅 떠올랐고, 어? 이거 왜 떠오르지? 하면서, 그렇다면 오랜만에 gravity 들을까, 하고 찾아 들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들었다.






그는 다프네가 돌아오길 바랐다.

다프네는 돌아왔다.

로맨스 소설은 그렇게 끝났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파엘 2021-03-29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글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보고 배울 수 있어서, 종종 글을 읽다보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원서 완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다락방 2021-03-30 08:23   좋아요 1 | URL
으하핫 원서 완독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 이런 날이 오기를 바랐지만 정말 올 줄은 몰랐는데 와버렸어요. 역시 간절히 원하면 이루는 삶을 살게 되는것 같습니다. 으하하핫.
제가 언제나 하는 말이 있는데, 저는 제가 좋아서 글을 쓰거든요. 저를 위해서요. 글을 쓰다보면 제 생각도 정리되고 제 기분이 좋아지고 제 마음이 풀어져서요. 그런데 그렇게 쓰는 글을 누군가가 읽어주고 거기에서 재미나 혹은 어떤 의미를 찾는다는게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싶어요.
라파엘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

2021-03-29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3-30 08:24   좋아요 1 | URL
엣헴- 나 이런 사람이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다보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며 궁극적인 행동은 나 스스로가 단단하게 잘 사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그렇게 스스로 단단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나 역시도 스스로 단단한 사람이 되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리 잘 삽시다, 잘 살자요!!
 














4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는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의 《200년 동안의 거짓말》입니다. 아아, 벌써부터 너무나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재미도 있겠지만 어쩐지 크게 분노하며 여기저기서 페이퍼가 쏟아져나올 것 같다...는 것은 저의 생각이기만 한걸까요. 여러분, 읽고 쓰자. 실천에 옮깁시다!


이번달은 너무 바빠서 책읽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래서 3월 도서인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아직 완독하지 못하엿습니다. 그런데 남은 시간이.. 아아, 고작 절반 읽었을 따름인데 저는 완독할 수 있을까요. 아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시작한 후로 처음 완독하지 못하는 책이 될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가. 내가 푸코 성의 역사 네 권도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도 끝까지 읽은 사람인데, 사회주의 페미니즘 왜때문에... 아니, 그러니까 왜 맥키넌 까고, 캐슬린 베리 까고, 드워킨 까고 그러지요? 내가 사회주의 페미니즘 논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튼, 완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어요. 흑흑.


여러분, 완독하신 분은 고생하셨고, 완독을 위해 달려가는 다른 분들 힘내요! 우리 힘내자. 읽고 쓰자. 여러분 뽜샤!!



우리는 4월에 4월 도서로 만나요. 자, 그리고 얼른 4월 도서 구매하세요. 밑줄 박박 그으면서 읽어야 돼.

예상하건대, 4월 도서 읽으면서 아마도 이 책들을 같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안녕.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1-03-29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강렬하네요. 500쪽의 위엄!!

다락방 2021-03-29 09:42   좋아요 1 | URL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흥분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3-2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지!!! 하다가 아 3일만 더 참아보겠습니다.

다락방 2021-03-29 10:56   좋아요 0 | URL
저도 사흘만 참았다가사야겠어요. 히히히히히. 쿠폰 나오면 오만원 딱 채워가지고 마일리지도 똭 받고!!

청아 2021-03-2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년동안의 거짓말>미리 사두었는데 사회주의페미니즘 읽으면서도 자꾸 눈길이(표지만요!ㅋㅋ)갔던 책입니다. 정말 재밌을것 같아요!!
다 읽고 아래 추천해주신 책도 읽을 수 있음 좋겠어요~♡

다락방 2021-03-29 10:56   좋아요 1 | URL
사회주의 페미니즘 왜케 재미없어요 ㅠㅠㅠㅠㅠㅠㅠ 절반이나 남았는데 미치겠어요. 오늘 벌써 29일이고 ㅠㅠㅠㅠㅠㅠㅠ 사회주의 페미니즘 재미없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아래 링크한 책들 중에서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만 읽었거든요. 진짜 너무너무 좋았어요!!

청아 2021-03-29 11: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때문에 저 댓글읽고 눈물 웃음터짐요!ㅋㅋㅋㅋ초반 서론이랑 선구자들까진 느낌이 좋았는데 아..<의사는 왜..>저도 너무 읽고 싶던 책이예요! 5월은 샤라라랑이 되길!!

수이 2021-03-29 11:01   좋아요 0 | URL
우리 마음 모두 일심동체의 그 일심입니까? 미미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03-29 11:02   좋아요 0 | URL
수연님 우리 다같이 울어요ㅠㅇㅠ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29 11:03   좋아요 0 | URL
저 사회주의 페미니즘 1장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저자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고 오 시작이 좋은데? 했다가 그 뒤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래는 예측불허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3-29 11:05   좋아요 0 | URL
1장은 누구나 이야기합니다. 좋은데_ 오, 그래 읽어보자! 제가 지금 휘리리리릭 읽으면서 진도를 빼려고 애쓰고 있지만 완독을 할 자신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오바.

청아 2021-03-29 11:05   좋아요 0 | URL
두 분 덕분에 안심입니다ㅋㅋㅋㅋㅋ😭

수이 2021-03-29 11:10   좋아요 0 | URL
하지만!!!!!!!!!!! 완독하고 4월 책 갑시다 미미님, 우리는 락방님 친구들이니까~ 락방님은 완독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완독합시다. 오바오바.

청아 2021-03-29 11:12   좋아요 0 | URL
노력해볼께요! 뽜샤!!ㅋㅋㅋㅋ

다락방 2021-03-29 11:23   좋아요 0 | URL
어머! 이 의욕 뿜뿜하는 멋진 분들. 흑흑. 그래요, 우리 한번 해봐요!! 빠샤!!

- 2021-03-29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주의 페미니즘 재미없어..... ㅜㅜ 나도... ㅜㅜ 읽다가 농땡이중...

다락방 2021-03-30 08:25   좋아요 2 | URL
너무 재미없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지만 반드시, 기필코, 어떻게든 다 읽어내겠다!!

난티나무 2021-03-30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월 책 꺼내놓을게요!!!!^^

- 2021-03-30 16:41   좋아요 0 | URL
삐삐 - 선행방지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 선행학습은 원칙적으로 금지입니다 - 책은 갖추기만 ——

다락방 2021-03-30 16:4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난티나무 님. 4월책은 4월 요이땅~ 하시는 순간부터 읽으시면 됩니다.
그나저나 저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아직도 다 못읽어서 지금 초조하고 미치겠어요. 오늘 퇴근 후에 열심히 읽어서 어쨌든 3월이 다 가기 전에 완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기다려욧! 내가 간다, 완독의 길로!!

난티나무 2021-03-30 16:51   좋아요 1 | URL
제가 또 선행 이런 거 디게 싫어하지 말입니다. ㅋㅋㅋ 똭 꺼내기만 할 꼬예요. 힛

얄라알라 2021-04-08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사는 ....] 이 책, 어디다 꽂아두고 안 찾으러 간지 10개월도 넘었네요. 누가 가져갔을 듯한데, 책 찾으러 가봐야겠어요. [호르몬의 거짓말] 어떤 의미에서 여성주의 책읽기 리스트에 올라가 있을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

다락방 2021-04-09 14:55   좋아요 1 | URL
호르몬의 거짓말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밝히는 책이라 알고 있어요. 분류도 여성학/젠더 로 되어 있고요. 목차를 보신다면 아마 내용은 짐작하실 수 있으실 거에요. 저도 아직 읽지 않은 책인데요, 제가 저 책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를 모르겠어요. 집에 가서 찾아봐야지. ㅋㅋㅋㅋㅋ
 

그러나 우리는 공동체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이 말하지 않고도 전달되어야 했고 너무 많은 감정이 그저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로맨스 혹은 사랑으로 시작한 것이 가족만큼 무거운 것이 되어선 안 된다는 비명을 엄마는 평생 질렀다. 아빠는 그 비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로맨스에 납치당해 삶을 걸머진 여자가지르는 크고 작은 비명을,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가 당연히 하는 잔소리나 푸념 같은 것이라고 온 세상이 이해했다. 엄마와 아빠 모두 왜 이렇게까지 삶이 무거운지, 미래가 두려운지, 실체도 없는 불특정인에게서 꾸중을 듣거나 경멸을 당할 거라는 환청을 들으며 사는지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 그렇게 사니까 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세월을 보내고 나서는 다음 세대에게도 다그렇게 산다’는 주문을 반복했다. 정확한 대상도 없는데 속도는 너무도 빠른 분노와 더께가 얹힌 억울이 질안 공기에 항상 흘렀다. 그걸 배운 나도 주변에 화풀이를 했다. - P56

나는 혼자 살기 전까지만 끊임없이 연애를 했다. 나의 안전이 온전히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실감한 후에는 남자와의 연애를 그만두었다. 지축을 뒤흔드는 로맨스의 기억들이 전생의 것이라는 듯이 나는 연애를 끊었다.
연애에 몰두하고 관계를 얻고 잃을 때마다 도파민이 온몸을 감아 나를 밀어올리는 경험만큼이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고통이 극심했다는 것을, 혼자가 되고 나니 냉정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 P61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3-25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6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6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3월도 벌써 24일이고, 오늘 아침 나는 아이쿠, 그런데 이 책의 아주 조금 밖에 읽지 못하였으니 어쩐담, 완독을 위해서라면 이 책을 출근길에 함께 해야 한다! 하고 들고 왔고, 그러나 지하철안에서 이 책을 꺼내 읽으면서 후회를 이천번쯤 하였다. 정말 무거워서..진짜 무거워서...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누가 날더러 이렇게 살라고 했나.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의 내 무릎 위 풍경..





내게는 좋아하는 작가가 몇 있다. 그 작가들의 책은 전부 다 읽고 싶고 차곡차곡 모으고 싶다. 그동안 이 서재를 방문했던 사람들이라면 아마 귀에 익숙한 이름들이겠지만, 줌파 라히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샤론 볼턴이 그렇다. 물론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라면 한나 아렌트에 대해 말하는 책들까지도 차곡차곡 모아볼 생각이다.


줌파 라히리의 단편집 《그저 좋은 사람》에는 <뭍에 오르다>라는 단편이 있다. '헤마'와 '코쉭'이 주인공인 단편인데, 헤마는 코쉭을 만나 사랑하지만, 이미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약혼한 상태이다. 코쉭은 왜 그 사람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약혼했냐고 묻고, 이 때 헤마는 대답한다.


 

"그러면 왜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그녀는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진실이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바로 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 《그저 좋은 사람》중 〈뭍에 오르다〉, 줌파 라히리, p.378

















나는 책 속 헤마와 꼭같은 이유로 결혼을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사회는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연애와 결혼을 강요하고, 그래야만 행복하다고 세뇌하고, 그래서 비연애나 비결혼인 상태의 사람에게 끊임없이 연애연애 결혼결혼 하게 만들므로(나는 너가 행복해지도록 연애했으면 좋겠어, 라는 십여년 전의 친구의 말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고 생각했다. 왜 연애 안하냐는, 왜 결혼 안하냐는, 결혼 언제 할거냐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더이상 그런 질문을 듣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서, 거기다 대고 늘 대꾸하는 일들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결심했었더랬다. 결국 그 관계는 결혼으로 이르지 못했고, 나는 상대에게 미안함만 가진채 끝내게 되었다. 일단 결혼을 해두면 세상이 내게 잔소리를 멈출 거라고 생각했고, 게다가 이 남자는 나를 좋아하니까 내가 살기에 나쁘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이 남자랑 결혼해 살면서 세상의 잔소리를 차단하고, 그리고 사랑은 내 마음대로 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가짐 이었으며, 그래서 동시에 상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책 속 헤마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이 답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결혼은 답이 아니다.

















우리의 결혼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우리 둘 다 구원을 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둘 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서로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비행 공포》, 에리카 종, P110


'에리카 종'이 자신의 책 《비행공포》에서 만들어낸 '이사도라' 역시도 연애와 사랑이, 함께해줄 남자를 찾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끊임없는 시행착오속에, 자존감을 개박살 내가면서 사랑(남자)를 찾아 헤매인다. 그러나 그녀가 그 모든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깨달은 것은, 내 인생을 구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황당하게도 에이드리언이 내 영혼의 짝이라고 믿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그러나 나는 바로 그걸 원했다. 나를 완성시켜줄 남자를 원했다. 파파게노에 어울리는 파파게나. 그것이야말로 내 모든 망상 중 가장 심각한 망상이었다. 다른 사람은 결코 나를 완성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완성할 힘이 없을 때, 사랑을 찾는 건 자살 행위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기희생이 곧 사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비행 공포》, 에리카 종, P553



그러니까 나는, 로맨스는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로맨스는 답이 될 수 없다. 로맨스가 답이기를 기대하지만, 로맨스는 답이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로맨스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로맨스가 답인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세상은 로맨스가 답이라고 얘기해왔고, 그래서 실제로 로맨스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답이라니까 그 길로 뛰어드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제 읽은 책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서는 스물 한살에 이미 아빠가 다른 세 명의 사생아를 낳은 여자가 나온다.
















여자는 잘 살고 싶었고, 이 남자는 좋은 남자일 거라고, 다른 남자랑 다를 거라고 생각하며 섹스하지만, 그러나 그 남자는 다른 남자랑 다르지 않은 남자였다. 첫번째 아이를 아버지 없이 낳았을 때 그녀는 열여덟 살이었고, 그 때 그녀와 섹스한 남자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


첫째 아이 제이슨이 태어났다, 드와이트의 아이였고 사고였다, 그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고 잘 빼겠다고 했지만, 분명 제때 빼지 못했다(제때 빼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녀에게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p.284


다행히도 엄마와 언니가 아이를 같이 돌보아 주기 때문에 그녀는 마트 점원으로 계속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두번째 남자를 만난다. 나이트클럽에서였다. 그는 풋내기였고, 노골적으로 성기를 비벼대지도 않았고, 그녀를 위해 문도 열어주는 남자였으므로, 그녀에게 한시라도 빨리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다고 귓가에 속삭이는 남자였는데, 그러나 콘돔 없는 한 번의 섹스 후 그녀는 임신이 되었고,



그러나 둘의 관계가 가져다준 유일한 결과는 잰텔이었고 그녀는 아직 아버지를 만나보지도 못했다, 마크가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없는 번호였다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p.291



세번째 남자는 예전 같은 반 친구의 오빠였다. 직업이 체육선생이고, 자신이 두 아이의 엄마인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자. 조용한 곳에서 식사하자며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남자, 결국 음식을 주문하기도 전에 사정해버린 남자. 그렇게 그녀는 또 임신했다.


그가 다음 주에 전화를 걸 거라고 반쯤은 기대했다, 잘 있었어? 너랑 정말 좋았다고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가버렸더라, 주말에 영화 보러 갈래?

그녀가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았고, 그녀에게 온 건 조던 뿐이었다.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p.295




내가 결혼이 모든 걸 해결해 줄거라고 생각했던 헤마를, 구원은 결국 자기 몫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이사도라를, 번번이 기대했지만 번번이 아이 아빠이기를 포기한 남자들을 만났던 라티샤를 떠올린 건, 오늘 출근길에 무겁게 들고 읽었던 책,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매 맞는 여성들의 운동에서 한 작업의 상당 부분은 이런 치명적인 로맨스를 저지하는 것, 즉 정서적으로 상처받은 남성들이라는 유혹에 관해 여성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남성 폭력의 근원에 자리한 고통을 탐색하고자 시도하는 순간, 여성들은 다시 파괴적인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은 흔히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 - <생존의 이야기: 계급, 인종, 가정폭력>, p.223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에 노출된 숱한 여성들이 처음부터 '나는 폭력당할 것이다'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라티샤처럼 그의 '다른 남자랑은 달랐던' 부분들을 보게될 것이고, '이 남자는 달라'로 생각하며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로맨스는 폭력으로 이어지고 그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그 폭력 안에 침몰 되어 체념하게 된다. 또한, 그 폭력 후에 다정한 순간이 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고 견디기도 한다.



이들은 때로 학대를 견디면서 남성 권력의식을 회복할 남자의 권리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때로는 폭력이 분출한 뒤의 '허니문' 기간에 남자들에게 권리 주장을 하기도 한다. 내 환자 중 한 명은 이 동학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그이가 가끔 폭발하면 저는 참고 견뎌요.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화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저를 도와줘요. 자기가 한 번 발끈했으니 이제 빚을 진 셈이죠." - <생존의 이야기: 계급, 인종, 가정폭력>, p.223



자, 한 번 빚졌으니 이제 내 차례야, 라며 권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관계를 감내한다는 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걸까. 폭력은 빚으로 퉁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견뎌내려면, 하루 또 하루 살아가려면 '빚을 졌으니 이제 내가 권리를 요구할 수 있지'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매 맞는 여성들의 운동에서 한 작업의 상당 부분은 이런 치명적인 로맨스를 저지하는 것' 이라고 했을 때, 바로 거기에 딱 맞는 책이 있다.
















나도 사두고 아직 읽진 않았지만, 일전에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의 이 책 내용에 관련한 테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하버드대를 졸업했고 뉴욕에서 직장을 다니던 젊은 시절, 자신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남자, 소울메이트라고 여겼던 남자로부터 여러번, 총으로 협박을 당했던 경험으로 강연을 시작한다.







남자의 여성폭력에 대해서라면, '토머스 J. 하빈'의 《비욘드 앵거》에 주옥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그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때리는 것은 결코 여자들의 잘못이 아니고 그 남자를 고치는 것도 여자들의 몫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남자들을 고치는 것은 그 남자들 자신의 몫이니 그를 떠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화가 난 남자들이 자기 삶에 존재하는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은 결국 그들 자신에게 고통과 슬픔, 죄책감을 가져다준다. 어머니부터 여자 형제, 여자 친구와 아내에 이르기까지 화가 난 남자들은 주로 여자들을 공격한다. 대체로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힘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렇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남자들은 제멋대로 세상을 휘둘러 왔다. 왜냐하면 남자가 여자보다 몸집이 크고 힘도 세서 여자를 강제로 복종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를 육체적으로 학대했을 뿐 아니라 정치, 종교 같은 모든 모든 권력 제도에도 성차별이 존재하도록 만들어놓았다.
화가 난 남자들 다수가 주로 여자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여자들이 남자의 행동을 참고 견딜 때가 많다는 데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여자들은 대체로 남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참고 인내하며 용서하는 경향이 있다.
-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104



일단 한 번이라도 폭력을 쓰게 되면 아주 획기적인 계기가 생겨 두 사람의 관계가 변하지 않는 한 언제라도 다시 폭력을 쓰게 된다. 과거의 폭력은 미래의 폭력을 예측하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변수이다. 더구나 거친 논쟁은 폭력을 부르는 전조이다. 만약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 자주 ‘한계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즉시 태도를 바꾸어야만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폭력을 쓰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122



삶을 통제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통제해야 한다. 늘 소파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운동을 하고 건강해져야 한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 우울증, 불안, 분노가 줄어든다. 자제력도 자존감도 높아진다. 신체가 건강해지면 정신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222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자기 통제의 문제이다. 특히 자제력의 문제이다. 여자를 때릴 때 자제력을 잃는 이유는 여자가 손쉬운 표적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조차 내팽개치고 덤비는 상황이 아니라면 남자는 절대로 상사나 경찰이나 자기보다 몸집이 큰 남자를 때리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위험한 상대여서 자기가 다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폭력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시도이다. 남성은 여성을 통제하려고, 논쟁에서 이기려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폭력을 쓴다. 하지만 남자에게 그럴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 하고, 남자처럼 폭력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한다. 논쟁을 끝내려고 폭력을 쓰는 것은 자제력이 없고, 자기에게 찬성하지 않는 사람을 공정하게 대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자기가 폭력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237



그나저나 이 두껍고 무거운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제 고작 1/3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언제 다 읽나... 무겁다....... 무거워......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3-2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1-03-2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나면 답일 그 간단한 문제를, 온세상이 로맨스를 하도 들입다 퍼먹이니까, 사는 건 또 힘들고 그르니까...

다락방 2021-03-26 12:21   좋아요 1 | URL
맞아. 연애가 또 재미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연애를 하면서 행복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나는 나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각자의 재미와 행복을 찾고 살아가자. 빠샤.

- 2021-03-2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맨스 유해해..

다락방 2021-03-26 12:21   좋아요 1 | URL
아 요즘 읽는 책들 때문에 로맨스 꼴도 보기 싫어졌다가 로맨스 소설(브리저튼) 읽으면서 아 재밌어.. 이러고 있어요. 인간 뭘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연애는 구경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1-03-26 17:30   좋아요 0 | URL
남연애의 스펙타클 구경🙄 ㅋㅋㅋㅋㅋ
 

우리 방식대로 한다.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P28

그녀도 학생회관 술집에 딱 한 번 가본 적 있다. 매일 밤 엄마들이 고함을 치며 욕조에 빠뜨리지 않는 탓에 학기가 지날수록 악취가 점점 심해지는 부류의 남자로 가득한 곳이런 부류의 남자는 강의실에서 왜 아무도 자기 옆에 앉으려 하지 않는지, 왜 아무도, 야, 너 냄새나, 라고 말하지 않는지 모르는까닭에 점점 기분 상한 표정만 짓는다.

대학에 가면 로맨스가 있을 줄 알았다, 꼴사납게 생기지 않고 그녀보다 키가 큰, 그녀 수준에 맞는 멋진 남자(전제 조건이다)
토요일 저녁이면 서로 끌어안고 일요일 아침이면 둘이서 침대에서 느긋하게 빈둥거리며 그녀가 <뉴요커> <옵저버> <갈덤> <더 루트> <디 애틀랜틱> <더그리오> 의 글을 챙겨보는 동안 같이 음악을 들을 누군가 - P79

어쨌든 남자 헌팅 다니는 걸 포기하고 대학 스쿼드 회원들과 어울려 놀았다.
스크롤 - 좋아요- 채팅 - 초대 - 잠자리 세대의 일원으로 성인이 된 건불행한 일이다. 이 세대 남자들은 첫 번째(그리고 딱 한 번의) 데이트에서 상대가 성적 욕구에 따라 움직이길 기대하고, 음모는 제모하여 하나도 없으며, 인터넷 포르노영화 속 여자들이 하는 역겨운 짓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하므로 - P81

버미는 오모페가 그렇게 빨리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옮겨가다니 놀라웠다 - P254

그런데 재미있게도 모건이 젠더인지 잔디인지 억지로 둘로 나누지 않는 머시기가 되었다고 한 뒤에도 고작 이름을 메건에서 모건으로 바꾸었을 뿐, 다른 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그 정도면 해티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적어도 그녀 이름을 레지널드나 윌리엄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건이 요구하는 대로 그녀 대신 그네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영합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모건은 여전히 똑같은 (남자) 모습이며, 행동도 여전히 똑같고(남자 같고), 모든 점에서 사실상 똑같았다(메건 그대로였다). - P4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