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Happy birthday to me 이벤트 :)

(웬디양님의 생일축하 이벤트 참여글입니다.) 

 

사람마다 이성을 마주하는 순간,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곳이 다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이라고 하는데, 나는, 눈은 좀 식상하다고 생각한다. 그 눈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으면서. 얼마전에 만난 남자에게 내 눈이 하는 말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엉뚱한 소리만 해댔다. 흥! 남자라면 여자의 눈이라고 대답하면서 사실은 가슴을 볼 수도 있고 뒤돌아 있는 엉덩이를 볼 수도 있으며 다리를 볼 수도 있겠지. 어제 읽은 하루키의 일큐팔사에서 덴고는 아오마메의 다리를 아주 아름답다고 말했다. 마음에 쏙 든다고. 여자의 경우에는 눈이라고 말하면서 엉덩이를, 손을, 뒤통수를, 어깨를 볼 수도 있을거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엉덩이를 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엉덩이를 본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보다는 입술과 코와 눈을 그리고 볼을(으응?), 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을 보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의 어느 신체부위가 마음에 든다면 그 순간 사랑에 빠진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을거다. 아니, 어쩌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잘 모르겠다. 사랑하니까 예뻐보이는 건지도. 아, 이런건 정말 어려워. 진짜 모르겠다니까. 어쨌든 한나는 미카엘을 사랑한다. 미카엘의 미소를, 미카엘의 손가락을. 아니, 다시 미카엘을. 나의 미카엘.  

 

   
 

나는 그의 미소와 손가락이 좋았다. 그의 손가락은 각각이 개별적인 생명을 갖고 있다는 듯이 찻숟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찻숟가락은 그 손가락에 쥐여 있는 것을 좋아했다. 내 손가락은 그의 턱을, 제대로 면도가 되지 않아서 수염이 삐죽 나와 있는 그 부분을 만져야만 할 것 같은 희미한 충동을 느꼈다. (p.9) 

 
   

 

후아- 한나는 아마도, 그가 만지작 거리고 있는 찻숟가락이 되고 싶었겠지. 그러니 찻숟가락이 가졌을 느낌을 고스란히 알 수 있었겠지. 후아- 그의 턱을, 제대로 면도가 되지 않은 그의 턱을 만져야만 할 것 같은, 그러니까 '만지고 싶은' 이 아니라 '만져야만 할 것 같은' 충동! 

 

 

 

 

 

 

 

 

 

그들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만나고 데이트하고 그리고 그들은 그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어쩌면 연애 (혹은 사랑)의 끝일지도 모르는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하고 나서도 한나와 미카엘이 달콤했다면, 처음 시작처럼 이렇게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마음이었다면 이 소설은 그저 한낱 연애소설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아모스 오즈는,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결혼은 현실이다, 라는 분명한 명제를 드러낸다기 보다는, 아모스 오즈가 얘기하는 건 결국, 

사랑이든 설레임이든 그게 뭐든, 영원한 것은 없다, 는 것. 인간은 결국은 혼자라는 것. 변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이라는 것. 

그것이다. 

 

미카엘은 여전히 미카엘이다. 미카엘의 손가락도 여전히 그대로 미카엘의 손가락이다. 미카엘의 턱도 여전히 미카엘의 턱이다. 미카엘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미카엘을 마주 보고 있는, 함께 살고 있는 한나의 마음은 변했다. 한나는 조금, 표독스러워졌다. 시간이 변하게 하는게 사랑이든 사람이든, 변하지 않는 진리는 그게 무엇이든 '변한다'는 것이다.  

 

 

   
 

난 당신과 함께가 아니에요. 우리는 두 사람이지 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p.289) 

 
   

 

이 소설은 아주 말랑말랑하게 시작한다. 두근거리게 시작한다. 마치 내가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렇게 쿵쿵거리면서. 그러나 이 소설은 점점 쓸쓸해진다. 그래 결국은 이렇게 될 거였어, 사랑이란 게 고작 이런거라니까. 그 쓸쓸함은 눈물을 흘리고 싶은 쓸쓸함은 아니다. 그보다는 입꼬리 한쪽을 치켜 올리며 피식, 웃게 되는 쓸쓸함 쪽에 가깝다. 그치, 영원한 건 없으니까, 하는. 

 

가끔 소설이 가져다주는 가장 완벽한 느낌은,  그것이 주는'현실성'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허구의 이야기이고, 만들어진 캐릭터였어도, 그 속의 삶은 정말 존재하는 진짜 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 그 안에 들어있는 달콤함과 쓸쓸함이 사실은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 그렇기에 읽으면서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  

여자에게 완전한 나이란게 있을 수 있을까? 여자는 언제나 지금의 나이가 아닌 다른 나이를 꿈꾸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미카엘]을 읽는 것은 삼십대가 가장 완전하다. 이십대는 뒤편의 쓸쓸함을 무시하기 쉽고, 사십대는 앞편의 살랑거림을 놓치기 쉬울테니까. 삼십대는 설레임과 쓸쓸함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이 책을 읽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나이대다. 나는 내가 이 책을 삼십대에 읽었다는 것이 아주 만족스럽다. 이십대에 읽었다면 별을 세개나 네개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삼십대에 읽었기 때문에 별 다섯을 줄 수 있었다. 온다 리쿠는 [밤의 피크닉]에서 '요는 타이밍이지' 라는 말을 했었는데,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게이지'의 『스타킹 훔쳐보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는 것보다 사랑을 잃는 쪽이 훨씬 낫다.
그런 오래된 격언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덧없는 위로, 허무한 지혜
.(하권, p.191)

 

그냥 갑자기 생각났다.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는 것보다 사랑을 잃는 쪽이 훨씬 낫다. 아..가슴 시려. 

 

웬디양님, 지난 생일 축하하고 앞으로의 생일도 계속 축하해줄게요. 나는 웬디양님의 마흔에도, 쉰에도, 예순에도, 일흔에도, 그리고 그 뒤의 모든 생일을 계속 축하해주고 싶어요. 가까이에서.  

그리고 웬디양님, 쑥스럽지만, 잘 말하지 않는 단어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어쩔 수 없이 말하고 싶어졌어요. 

 

>> 접힌 부분 펼치기 >>

 

 

진짜에요. 이 감정은 살아있어요! ㅎㅎ  

 

따뜻한 커피가 가장 완벽하게 들어맞는 계절이 왔다. 

 

아, 잊을 뻔 했는데,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성의 신체부위는 날 바라보며 웃어주는 그의 눈동자다. 식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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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9-2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이거 정말 오로지 웬디양님 한 사람만을 위한, 와닿습니다. 그래서 내가 젤 먼저 댓글 다는 게 왠지 미안;; ^-^

다락방 2010-09-29 09:48   좋아요 0 | URL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랑 같이 인터넷을 떠돌고 다니는 치니님 ㅎㅎ
에이, 뭐가 미안해요. 나와 웬디양님은 언제나 오픈된 마음을 갖고 있어요. 닫고 싶은 사람을 향해서는 빼고. 히히

치니 2010-09-29 10:00   좋아요 0 | URL
이것 봐요, 내 글 밑에 웬디양님 글이 올라오니까 아무래도 웬디양님만을 위한 페이퍼에 김칫국물 튀는 거 같잖아요. 으헝. 지우까 마까 막 고민. ㅋㅋ

다락방 2010-09-29 10:07   좋아요 0 | URL
지우지마요, 치니님! 지우면 나 진짜 치니님 미워할거에요!! 그리고 라면국물 보다는 김칫국물 쪽이 이백배쯤 낫잖아요!

웽스북스 2010-09-29 10:16   좋아요 0 | URL
지우면 치니님 미워할거에요!!! 2222222
저 김치국물 좋아해요

다락방 2010-09-29 12:40   좋아요 0 | URL
김칫국물에 밥 비벼 먹어본 적 없다면 감히 김칫국물을 논하지 마요!

웽스북스 2010-09-2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감동이에요 ㅜㅜ

[나의 미카엘]을 읽는 것은 삼십대가 가장 완전하다. 이십대는 뒤편의 쓸쓸함을 무시하기 쉽고, 사십대는 앞편의 살랑거림을 놓치기 쉬울테니까.

라는 추천, 너무 좋아요. 이 문장 때문에 제가 삼십대라는 게 기뻐졌어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전 아무래도 복이 많은 사람인가봐요 :) 나만을 위한 페이퍼도 받아보고 ㅜㅜ

다락방 2010-09-29 10:08   좋아요 0 | URL
책까지 슝- 하고 보내줄까 하다가, 그럼 내가 너무 멋지니까, 그럼 나한테 홀랑 빠질테니까, 그건 안할라고요. ㅎㅎ

웬디양님 복 더 많이 받아요!!
:)

비로그인 2010-09-29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편의 살랑거림을 놓칠 수 밖에 없는 저는 이 글에 서글퍼져서...흥~

다락방 2010-09-29 10:09   좋아요 0 | URL
으응? 서글퍼하지 말아요, 마기님. 놓치기 쉽다는 거지 반드시 놓친다는게 아니잖아요!
:)

2010-09-29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0-09-29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장바구니에 넣어요.
앞쪽의 살랑거림을 놓칠까 우려되지만~~~

아아아아아~좋아요.

다락방 2010-09-29 12:3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아아아아아~ 좋아요라니. 아, 양철나무꾼님의 아아아아아, 가 너무 좋아요!!
이 책 저는 참 좋았어요, 양철나무꾼님. 앞쪽의 살랑거림을, 그러나 양철나무꾼님이라면, 놓치지 않으실거에요!!

nada 2010-09-2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좋겠다. 이런 페이퍼 받으시는 분은.
락방님은 세상 모든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세요. :)

다락방 2010-09-29 12:40   좋아요 0 | URL
세상의 모든 책은 특별하니까요, 꽃양배추님.

(특별하지 않은 책은 빼고요! ㅎㅎ)

moonnight 2010-09-29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책부터 보관함에 넣고 ^^
웬디양님 너무 기쁘시겠어요. (스리슬쩍 다락방님께 얹혀서;;;) 생일 축하드려요. ^^
저도 다락방님처럼 섬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점점 더 책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읽어나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아쉬워지거든요. 이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흑흑. -_ㅠ;;;;;

다락방 2010-09-29 13:01   좋아요 0 | URL
예전에 문나잇님 막 한달 결산 하셨잖아요. 저는 그때 문나잇님 페이퍼에서도 많은 책들을 보관함에 넣어두고 읽곤 했는데요. 지금 딱 기억나는 건 수 몽 키드의 [인어의자]네요. 그 책 읽으면서 수도사가 섹시하구나, 이런 생각했었는데. 그때처럼 한달 결산 해보시는 건 어때요, 문나잇님? 저 그 페이퍼 좋아했어요, 정말!!

나의 미카엘이라면, 문나잇님도 정말 좋아하실거에요!!

poptrash 2010-09-2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리언 달라 베이비 보셨어요? 전 이 소설을 보면서 그 영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한 소녀가 만류에도 불구하고 권투선수가 되어 점차 성장해나가는 조금은 뻔한, 그렇지만 언제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가, 같다가, 같다가... (사실 절반 정도는 온전히 저 이야기가 맞아요.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나의 미카엘을 보면서 가장 좌절했던 건 아모스 오즈가 남자라는 사실. 말이 되는 겁니까 이게?

다락방 2010-09-30 08:34   좋아요 0 | URL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안봤어요. 지루하지 않은가요, 그 영화? 볼래요, 봐야겠어요. 볼게요!

아모스 오즈가 남자라는 사실은 정말 말이 안되죠, 안되고말구요! 표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당연히 여자작가가 쓴거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정말 그래요.

그런데, 볼은 좀 가라앉았어요?

비로그인 2010-09-2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긴 속눈썹과 긴 다리를 봤어요. 봐버렸어요.

다락방 2010-09-30 08:34   좋아요 0 | URL
나는 눈동자를 코를 입을 뒤통수를 손을 봤어요. 봐버렸어요.

... 2010-09-29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그러니까 저는 완전해 지기 위해서 <나의 미카엘>을 읽어야 겠습니다! 그러나 심정적으론 여전히 이십대인 제가 뒤쪽의 쓸쓸함을 놓칠것 같군요, 하핫 ^^;;
"당신의 눈이 아름다운 건 그 눈이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예요"란 진부한 대사를 이야기하려니, "내 눈이 아름다운 건 바로 당신을 보고 있기 때문이죠"라고 했던 것도 같네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생각이 안나요. 엉엉.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기 때문이예요.

글쎄 말이죠, 제가 이 페이퍼를 읽고 감동받아 땡스투를 한 후 <나의 미카엘>을 장바구니로 밀어넣었거든요, 그리고 나서 책장을 보니 떠~억 꽂혀있네요. 저는 저 책을 대체 언제 샀던 걸까요?

다락방 2010-09-30 08:3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내 눈이 아름다운 건 바로 당신을 보고 있기 때문이죠'가 맞는 것 같아요. 어디 나왔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ㅎㅎ

나의 미카엘은 브론테님이라면 읽으셨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안 읽으셨군요. 저는 정말이지 완전 엄청나게 좋았어요. 글쎄요, 브론테님이 그 책을 언제 사신걸까요? ㅎㅎ
저는 집에 나쓰메 소세키 책이 [그 후]며 [도련님]까지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네요. 도련님 살라고 했는데.. ㅎㅎ


추워요, 브론테님.

춘희 2010-09-3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 후반부, 196페이지 정도에 가을이 오는 풍경을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전 거기를 정말 좋아해요.

다락방 2010-09-30 12:49   좋아요 0 | URL
오늘 퇴근후에 집에가면 이 책의 196페이지를 펼쳐 읽어보겠어요!

2010-09-30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30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30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30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다니던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했는데, 그 때 내가 맡은 역할은 동박박사3 이었다. 아주 작은 교회였고, 나는 그 교회를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또 꽤 수줍음 타는 아이었기 때문에, 더 큰 역할이 주어지지 않은것을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동박박사3은, 아기예수가 태어났을 때 찾아가서 선물만 주면 되는 역할이었다.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늘 연극연습을 하러 교회에 갔는데, 공연을 며칠앞두고 마리아 역을 맡았던 6학년 언니가 마리아 역을 하고싶지 않다고 했다. 그 언니가 동방박사 역할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마리아 역을 단순히 하기 싫어했던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국 그 언니와 나는 갑작스레 역할을 바꾸게 됐고, 나는 6학년 H 오빠를 남편, 요셉으로 둔 마리아로 분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그 오빠와 좀 친해졌다. 크리스마스 이브, 그러니까 연극 당일,  평소에 교회에 다니지 않던 어른들까지 불러모아 연극을 무사히 마친 그날 밤에, 연극 후 예배를 보기 전의 그 약간 소란스러운 틈을 타, 3학년 남자아이 한명이 누나, 이러면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해주었다. H 형이 누나 주래, 라는 말과 함께. 나는 어 그래? 하며 카드를 막 열어보려는데, 6학년 언니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야, 걔가 준거야? 우리는 못 받았는데? 카드 받은 여자는 너 뿐인것 같아, 열어봐 열어봐 등등. (시끄러워..) 그런데 카드를 열자 이렇게 써있었다. 

소라에게. 

 

내 이름은 소라가 아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소라가 아니었다. 나는 대수롭잖게, 어, 카드를 잘못 보냈네 나는 소라가 아닌데. 소라한테 가야 할 카드가 나한테 왔네 싶어 다시 봉투에 카드를 넣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6학년 언니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야 소라래, 소라. 소라 아닌데. 하면서. 나는 H 오빠에게 카드를 돌려주며 오빠, 나 소라 아니야. 하고는 돌아서서 다시 내 자리로 갔다. 그리고 엄마 옆에 앉아 예배를 볼 준비를 하는데, 그 작은 교회안이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나는 고개를 들고 소리 나는 곳을 둘러보니, 오, H 오빠였다. 그가 울고 있었다! 으응? 왜 울지? 

 

그 때, 옆에서 그 오빠를 달래주시던 선생님 한분이 나를 손짓으로 부르셨다. 나는 쪼르르 달려가서 왜요? 이 오빠 왜 울어요? 했더니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구석으로 가시며 조용히 얘기해주셨다. 

H 가 너한테 카드보냈는데 이름이 잘못 써져 있었다며? 네. 나한테 네 이름을 묻길래, 쟤 장난이 심한 아이니까 또 무슨 장난을 치려나 싶어서 일부러 잘못 알려줬거든, 소라라고. 아, 네... 카드를 쓸 줄은 몰랐어. 네. 카드 들고 와서 니 이름이 소라가 아니라며 막 울기 시작했어. 아..........  니가 가서 괜찮다고 좀 달래주면 안될까? 네? 나는 울고 있는 오빠에게 가서 오빠 괜찮어, 울지마. 라고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집에 가는 길, 엄마랑 연극에 대해 얘기하다가 그 오빠에 대해 얘기했더니 엄마는 깔깔 웃으시며, 너 벌써부터 남자를 울리는구나, 하셨다. 어, 내가 남자를 울렸어. 뭐, 그게 그게 아니지만.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말은, 

 

그대의 이름만이 나의 적일 뿐이에요.
몬터규가 아니라도 그대는 그대이죠.
몬터규가 뭔데요? 손도 발도 아니고
팔이나 얼굴이나 사람 몸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에요. 오, 다른 이름 가지세요!
이름이 별건가요?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건
다른 어떤 말로도 같은 향기 날 겁니다.
로미오도 마찬가지, 로미오라 안 불러도
호칭 없이 소유했던 그 귀중한 황벽성을
유지할 거에요. 로미오, 그 이름을 벗어요.
그대와 상관없는 그 이름 대신에
나를 다 가지세요
  

 

이름이 별거 아닌게 아니라는 거다. 이름이 별건가요? 라고 묻는 순간, 줄리엣은 이미 로미오의 이름이 주는 고통을 깨닫고 있었다는 거다. 이름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왜 이름 대신에 '나를 다 가지세요' 라고 말하겠는가. 장미라 부르는 건 장미라 부르지 않아도 장미의 향기는 날 테지만, 장미의 향기가 나는 걸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장미는 더이상 장미가 아닌게 되잖아. 이름은, 그러니까, 

누군가의 이름은, 

특.별.하.다. 

고스란히, 온전히 의미가 되어 다가온다. 

 

 

이윽고 우편함 중에서 '가와나' 라는 이름을 발견한 순간, 아오마메 주위에서 모든 소리가 일시에 사라진다. 아오마메는 그 우편함 앞에 우뚝 선다. 주위의 공기가 갑작스레 희박해지고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그녀의 입술은 벌어져 가늘게 떨린다. 그대로 시간이 흘러간다. (중략) 하지만 아오마메는 그 우편함에서 자신의 몸을 떼어낼 수가 없다. '가와나'라는 한 장의 작은 이름표가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몸을 얼어붙게 한다. (pp.504-505) 

 

 

 

누군가의 이름을 '보는 것' 만으로도 주위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지 않을까. 그 이름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줄 알기 때문에. 혹은 그 이름을 가진 누군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헤어진 옛 연인의 이름을 보는것이 고통스러워 메신저에서 그 이름을 삭제시켰었고, 그 이름으로 오는 메일을 여는 것이 두려워 메일주소에서도 차단시켰었다. 그 이름은 내게 의미가 있으니까. 모두가 읽을 수 있는 단순한 글자의 나열이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나는 나의 메신저창에 로그인이든 로그아웃이든 누군가의 이름을 볼때마다 떨린다. 그냥 이름인데. 고작 이름일 뿐인데. 간혹 손 끝으로 모니터에 드러난 그 사람의 이름을 가만히 짚어보기도 한다. 마치 손끝에서 그 사람을 느낄 수 있을것 같다는 착각을 하면서. 그 이름에 손을 댄 순간 내가 느끼고 싶은건 모니터도 아니고 글자도 아니다. 물론, 그 이름이 잘 생겨서도 아니다. 나는 온전히 그 누군가를 느끼고 싶었던것 뿐이다. 그 이름을 가진 그 누군가를. 

 

언젠가 예쁜 여자후배와 밥을 먹으면서 나 참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 라는 말을 꺼낸적이 있다. 후배는 언니, 그 사람 이름은 뭐에요? 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기 싫다고 했다. 그 이름을 말해주기 싫다고. 왜요? 나는 언니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이 너무 궁금한데요? 나는 싫어, 내가 말하는 거랑 니가 듣는거랑 같지 않으니까.  라고 얘기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나 혼자만 알고 싶다. 물론, 그 이름은 세상 누구에게도 불려질 이름이지만, 그 사람이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 그 사람은 계속 그렇게 누구에게든 불려질테지만, 내가 부르는 이름은 그들이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나의 이런 마음은 마누엘 푸익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그에게서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그거야. 내 마음속으로 말이야.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날 위해서 이름만은 안 돼. 그걸 말할 수는 없어......」 (p.86)
 

 

 

 

 

 

 

출근길에 아오마메가 덴고의 이름을 발견하고 이성이 마비되는 걸 본 순간, 이름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다. 당신의 이름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지도 얘기하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H오빠는 내게 다시 카드를 줬다. 추우니까 내 잠바 입어, 라고 말하면서 카드를 잠바에 감춰서 줬다. 그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혼자서 읽어, 라고. 나는 아무도 없는 예배당으로 들어가 혼자 앉아 카드를 읽었다. 누구나 봐도 괜찮을 내용, 그러니까 정말이지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름 잘못 알고 보낸것 미안해, 크리스마스 잘 보내. 정말 그게 다였다. 그러나 카드에는 또박또박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며칠 후, 해가 바뀌면서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오빠는 중학생이 되었다. 교회에서는 더이상 H 오빠를 볼 수 없었다. 그 쪼끄만 교회, 나눌 게 뭐 있다고, 오빠는 중등부 예배에 참석해야 한단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그만뒀다. 내 신앙은 사실 고작 그만큼이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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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9-2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이야기는 정말 동화 소재거리여요.
"이 오빠 왜 울어요?"
라고 묻는 여자아이의 얼굴이 눈 앞에 막 보여요.

다락방 2010-09-29 09:25   좋아요 0 | URL
hnine님, 지금 그렇게 어쩌다 보니 시를 쓰시게 된 것 처럼, 동화 한 편 써주세요. 제가 아주 좋아라 하며 읽을게요. 눈 앞에 막 보이는 여자아이의 얼굴은 어떤가요, 예쁜가요? 전 예쁜 아이었어요(라고 과거형으로 얘기한다).

moonnight 2010-09-2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학년이면 제법 어른스러운 척 할 나이인데 다락방님이 카드를 돌려주었다고 울음을 터뜨리다니, 그 오빠는 참 순수하고 착했었나봐요. 그리고 다락방님을 참 많이 좋아했었나봐요. 예뻐요. 다락방님의 추억들은. ^^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같은 이름이 언급되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식은 땀이. ;;;; 누군가의 이름을 알게 된다. 이름을 부른다. 하는 건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10-09-29 09:26   좋아요 0 | URL
그쵸그쵸?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이름은 아주 특별하죠? 같은 이름이 언급되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벌렁..맞아요, 맞아요. 문나잇님은 역시 알아주는군요! 이름을 부른다는건 정말 큰 의미가 있어요.

찌질한 고백을 하자면, 저는 다른 여자가 제가 좋아하는 남자의 이름을 불렀을 때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은 경험도 했어요. 그런 제 자신이 그 누구보다 더 싫었지만요.

2010-09-28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0-09-2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살았다.
유난히 맛없는 밥을 먹다 반찬 떨어트려 옷을 버리고 물을 마시다 또 옷에 쏟고 심지어 화장한 얼굴에도 튀고..
괜찮아졌어요. 정말 나 괜찮아졌어. 다락방.

다락방이 날 살렸어. ♡

그리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김춘추의 시'꽃'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건 어쩌면 지금이 가을이라서..

아.. 좋다. :)

다락방 2010-09-29 09:29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그 시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의 이름을 다른 사람이 부르는게 싫어요. 다른 사람에게도 꽃이 될까봐. 나에게만 꽃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예요.

훌쩍.

가을은 가을인가봐요.
:)

마노아 2010-09-28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이 가을 날에 꼭 어울리는 글인 걸요. 그림이 그려지게 글을 쓰는 탁월한 재주. 무엇보다 감성을 울려서 좋아요. 그 순진한 H오빠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그이도 다락방님을 가끔 떠올리지 않을까요?

다락방 2010-09-29 09:33   좋아요 0 | URL
글쎄요, 기억이나 할까요? 전 기억력 젬병인 남자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어쩐지 화낸다 ㅎㅎ)
그리고 저한테 인상 깊었던 일이지만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수도 있으니까요. 가끔 떠올리려나, 글쎄요. 저도 이런 해프닝은 다 기억나지만 사실 그 오빠의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주근깨가 있었다는 것 밖에는. 헤헷

nada 2010-09-2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말하는 거랑 니가 듣는 거랑 같지 않으니까, 라니!
정말이지 대단한 성찰인걸요.
오, 전 락방님을 좋아하고 사랑스러워하고 얼마쯤 질투하지만
오늘은 존경하고 싶어졌어요!

다락방 2010-09-29 09:34   좋아요 0 | URL
오, 저를 얼마쯤 질투하나요? 대체 왜요? 무엇때문에요? 꽃양배추님처럼 미치도록 글 잘 쓰는 사람은 대체 어떤걸 부러워하나요? 꽃양배추님의 글빨이야말로 거의 세계최고수준이잖아요!!

대단한 성찰이라뇨, 별 말씀을.
:)

stefanet 2010-09-2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름다운 글이네요.
늘 서재 들락거리며 글 훔쳐보고만 있었지 댓글 한 번 안달았는데 이 글 보고는 꼭 잘 읽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

다락방 2010-09-29 09:36   좋아요 0 | URL
와, 고맙습니다, stefanet 님!!
잘 읽어주셔서, 그리고 아름답다고 칭찬해 주셔서요. 이렇게 낯선 닉네임을 뵙게 되니 설레여요. 뭔가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막 솟아납니다.

커피 드셨어요? 저는 이제 막, 한잔 다 마셨어요.
:)

... 2010-09-2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다락방님은 점심먹고 나면 이런 멋진 글을 쓰실 수가 있으신 거로군요! (글 올린 시각 13시 32분 ㅋㅋ) 동감 천만번 입니다. 누군가의 이름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특별해요, 그렇구 말구요.
근데 태그에 동방박사3은.... ^^;;

다락방 2010-09-29 09:37   좋아요 0 | URL
전 밥만 먹이면 아주 순해져요. 포악해지지 않습니다. 저는 제 기본적인 욕구만 채워주면 아주 부드러운 여자가 되요. ㅎㅎ 예전에 사귀던 남자한테는 소리지른 적도 있어요. "나 밥 좀 먹이란 말야!" 하고요. ㅋㅋㅋㅋㅋ 밥은 참 좋아요. 쓰잘데기 없는 놈씨들보다 밥이 훨씬 좋아요. 정말로요.

음..근데 왜 밥 예찬론을...

누군가의 이름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특별하죠. 정말 그래요!!

네꼬 2010-09-2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성탄절 연극 때 '불량소년 3'이었어요. 성당 가겠다는 애 꼬드겨서 오락실 가게 하는. 남자 역할 맡아서 되게 재밌어 했는데.. 음, 그건 딴소리고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저 부분은, [Go]에서도 멋있게 인용되잖아요. (책에서도 그랬는진 생각 안 나는데 영화에서는, 친구가 죽고 나서 주인공이 혼자 만담 극장에 가 훌쩍이며 그 말을 되새기는데...) 으응...? 왜 이렇게 횡설수설하지? 다락님은, 다락님이어서 좋아요. 어려서부터 남자를 울린 다락님. 그럴 줄 알았어.

다락방 2010-09-29 09:38   좋아요 0 | URL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를 말하는 건가요? 난 그거 엄청 울면서 읽었는데, 왜 저부분이 인용된 건 전혀 생각이 안날까요?
네꼬님은 불량소년 3이었구나. 나는 동방박사 3. 우리는 그렇게 크게 눈에 띄지는 않는 아이들이었나봐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나봐요. ㅎㅎ

어려서부터 남자를 울린 다락방은, 커서도 남자를 울렸을까요, 안울렸을까요? ㅎㅎ

머큐리 2010-09-28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난...왜 초등학교 때 여자에게 처음 받은 카드가 장난과 욕설이 뒤범벅 되어 웃지도 울지도 못할 카드였던 것일까요? 그 나이 또래의 여자들은 원래 그리 사악(?)한 것일까요? 왜 락방님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없는거냐구요..ㅎㅎ

다락방 2010-09-29 09:40   좋아요 0 | URL
사악...장난과 욕설이 뒤범벅 된것이 그 여자아이에겐는 사랑의 표현이 아니었을까요? 뭐, 저는 그런 적 없지만. 갑자기 6학년때 남자아이에게 받은 편지가 생각나네요. 너랑 좀 더 친해지고 싶어, 라고 쓰여있었던. ㅎㅎ

머큐리님, 제가요 글쎄, 남동생이 초등학교때 받은 편지를 읽어봤거든요. 저랑 5년차이가 나는데요, 글쎄 초등학생이 이렇게 썼더라구요. "니 생각 때문에 수업시간에 집중이 안돼!" 와- 정말 엄청나게 조숙하지 않았나요? 지금은 이보다 더하겠지만 말입니다. ㅎㅎ

poptrash 2010-09-2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on't wanna fake it
너를 알게 된 후 매일 기다린 phone call
I got to make it 어느새 알게 했어
매일 같은 식 또 아직 먼 듯한 내일 ahh
그렇다면 take it
아주 조금만큼 뭐든 되고픈 현실

너를 알게 된 후 매일 달라진 Fine Days

- 보아, My Name

다락방 2010-09-29 09:41   좋아요 0 | URL
아니 근데 요즘 왜들은 왜이렇게 노래에 영어를 넣고 난리래요, 난리가. 지들도 가사 뜻 알고 넣는거야 뭐야..(화낸다)

보아의 노래 밀키웨이 알아요, 팝님? 그 노래는 불후의 명곡이에요! ㅎㅎ

비로그인 2010-09-2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아름다운 추억이예요.
난 4학년 때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로 '허슬부'에 들었거든요.
알죠, 허슬?
뭐 에어로빅 비슷한거요.
밤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하다가 정전이 한 번 되었어요.
그러더니 자꾸 불이 꺼지는거예요.
엥~~몇 번 꺼지더니 누가 나를 확 끌어안았다가 가버리대요.
나중에 알았어요.
좋다는 말은 못하겠구 정전을 핑계로...푸히히~~
나도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둔 관계로 스토리는 거기서 끝이지만...그놈하고는 지금도 성당에서 마주치는데 ㅋㅋ쫌 어색해요.
어쨌거나 어릴 때 그런 추억은 참 좋아요.

지나간 사랑타령은 언제까지 할거예요?
현재진행형 좀 중계해주면 안되겠어요, 응?

다락방 2010-09-29 09:42   좋아요 0 | URL
오와, 교묘한 남학생이었군요. 정전을 핑계로...ㅎㅎ 에이, 마기님 짝사랑만 한거 아니라 짝사랑을 받기도 했었네요, 뭘!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짝사랑 대상이었을 수도 있는거에요.

현재진행형은 중계할 수도 없고, 중계할 것도 없네요. 또 한 2년쯤 지나면 어떤 말을 쓰게 될지 모르지만. ㅎㅎ

차좋아 2010-09-28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샥~~ 읽고,
프린트해서 천천히 읽었어요.
원래 샥 읽고는 휙 가는데...

보통 H들이 좀 멋지지요.


다락방 2010-09-29 09:43   좋아요 0 | URL
으응? 왜 프린트까지. ㅎㅎ 쑥스럽게. 난 누가 내 글 프린트 해서 읽었다고 하면 완전 쑥스러워가지고 몸이 막 베베 꼬여요. ㅎㅎ

보통 H 들이 좀 멋진지는 모르겠지만, 윤종신의 노래가 생각나네요.

H 에게..

2010-09-28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버림받았다. 그 생각이 몸 안에 꽉 차올라 터져버릴 것 같은  순간이 오면, 김을 먹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김을 한 조각 입에 넣으면 찝찔한 맛이 혀에 감기면서 사정없이 나부끼던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바닥이 날 때까지 자꾸만 집어먹게 된다. 나는 버림받았다. 나는 집이 없다. 이 공간은 집이 아니다. 집이란, 지켜야 할 어떤 것들이 모여 있는 곳. 여긴 지켜야 할 게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그저 김 하나, 나 하나. 김 둘, 나 둘. (pp.50-51) 

 

그러니까 언젠가 2월의 일요일 오전이었다.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집 앞에 가면 만나줄건가요? 라고 그가 물었다. 네, 그런데 너무 멀지 않아요? 그와 나의 집은 두시간도 더 되는 거리에 있었다. 네, 멀지요. 그런데 당신은 일요일에 주로 집에서 쉬고 싶어하니까 다른데서 만나자고 하면 안나올 것 같아서요. 하하 알았어요, 라고 말하고 나는 그를 기다렸다. 집 앞 지하철 역에서 그를 만나 차를 마셨고 밥을 먹으러 가는 길, 그는 나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걸으면서 무슨 얘기를 하다 그랬는지 우리는 김에 대해서 얘기했다. 김 먹고 키스하면 정말 기분 구린거 알아요? 내가 말했다. 아 그래요? 네. 아 정말 구려요. 몰랐어요! 예전에 김 먹고 온 남자와 키스한 적이 있었거든요, 김밥이었는지 김이었는지 아 진짜 키스하다가 뺨 때릴 뻔 했어요. 어디 감히 나를 만나는데 김을 먹고 와서 냄새를 풍기는지. 그러게요 그 남자 예의가 없네요 양치도 안한건가. 그러게 말이에요.  

밥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샤브샤브를 먹었고 소주를 한병 앞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했다. 샤브샤브를 다 먹으면 밥을 볶아줬다. 밥 위에는 부스러진 김이 뿌려져 있었다. 그는 숟가락으로 김을 걷어냈다. 뭐하는 거에요? 내가 물었다. 김 먹고 키스하는거 싫어한다면서, 김 너 다 먹어.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야 이 자식아 갑자기 왜 반말이야, 라고 따지지도 못했다. 그저 그 어색하고 긴장된 순간을 어서 빨리 날려버리고 싶다는 생각 뿐.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웃으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그때 내가 중얼거린 말이 뭔지는 모르겠다. 진짜 안먹어요? 응 나는 너랑 키스할거라니까. 아 근데 이 자식이 정말.. 어떻게 저러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저런 말을 하지? 나는 대체 밥을 다 먹고 식당 문을 나서면 그때부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 진짜, 뭐 이런 놈이 다있지? 어떻게 그냥 집에 가게 하지? 아 정말 어떡해야 하지? 그리고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추석 선물로 김을 받았다.  

김을 먹던 보라가 나오는 아프리카의 별이, 김을 먹고 키스했던 괘씸한 놈이, 아니 그보다는 사실, 나는 너랑 키스할거야, 라고 뻔뻔하게 말했던 남자쪽이 훨씬 더 많이 생각났다. 추석 선물로 김을 받아서. 

 

김 하나 나 하나, 김 둘 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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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0-09-2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 김에 이렇게 예쁜 추억을 갖고 있다니..
이 여자사람을 어째..! ^^

갑자기 기분이 말랑말랑 해졌어. 책임져욧!

다락방 2010-09-27 09:47   좋아요 0 | URL
ㅎㅎ 다음번엔 오징어튀김으로 써볼까 뭐 이런 생각도 하고 있어요. 꽃게찜은 어떨까. ㅋㅋㅋㅋㅋ
말랑말랑한 기분은 어째, 아침이 되니 나아졌어요? 응?

레와 2010-09-27 10:48   좋아요 0 | URL
응,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마음 끈을 잘 붙들고 있어요.

다락방 ♡

다락방 2010-09-27 13:11   좋아요 0 | URL
나도 마음 끈을 잘 붙들고 있어야 해요. 안그러면 무너지겠어. 우리 잘 견뎌봅시다!

꿈꾸는섬 2010-09-26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 하나 나 하나, 김 둘 나 둘...추석 선물 하나에도 추억을 떠올리는 다락방님, 정말 사랑스러워요.^^

다락방 2010-09-27 10:00   좋아요 0 | URL
김 하나 나 하나, 김 둘 나 둘.. ㅎㅎ
추억을 떠올릴 것은 아주 많아요, 꿈꾸는 섬님. 갈비살에도 떡볶이에도 족발에도 추억은 담겨있어요.
네, 그런겁니다.
:)

... 2010-09-26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 좋다. 가벼워서 운반하기 좋고 맛도 있고...
연휴가 끝나가고 있어요, 내일이 월요일이래요, 다락방니니이이임~

다락방 2010-09-27 10:0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브론테님.
김이 좋은건 먹는거라는 것, 운반하기에 가볍다는 것이죠.

브론테님. 월요일이에요. 긴 팔 옷을 입었고 스타킹을 신었고 이제는 샌들을 벗어던졌어요.
잘 보내고 있어요, 월요일?

웽스북스 2010-09-2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기름과 햄을 받았는데 떠올릴 기름진 남자와 육덕진 남자가 없네요. ㅋㅋ

LAYLA 2010-09-27 01:1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빵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0-09-27 10:01   좋아요 0 | URL
기름과 햄을 받고 떠올릴 기름지며 육덕진 여자가 있잖아요. 다락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LAYLA 님은 나쁜남자조성모 를 떠올리시면 되겠고! ㅎㅎㅎㅎㅎ

sslmo 2010-09-27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늘 장아찌 먹고는요?

전 호올스 아이스 블루도 괜찮던데...ㅋ~.

참고로,전 추석선물로 비누 세트를 받았고,금일봉을 드렸지만~
비누향기 어쩌구 해가며 떠올릴 추억 하나 없습니다.

다락방 2010-09-27 10:03   좋아요 0 | URL
호올스 아이스블루가 괜찮아요? 전 호올스를 비롯 사탕을 먹질 않아서 ㅎㅎ

저는 김과 커피 빼고는 다 괜춘한 것 같아요. 김과 커피는 최악이에요. 아 짜증나..
콜라와 초코우유는 좋았어요. 그리고 아직 안해봤는데 아이스크림 괜찮을 것 같아요. 이건 꿈을 꿔가지고...어떤 환상이.... ㅎㅎㅎㅎㅎ

마녀고양이 2010-09-27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예쁜 글이예요, 다락방님.
추석 잘 지내셨어요?

김은 묘하게 한번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지 않아요?
짭짤한 맛이 나를 자극해서 그런가..... ^^

어쩐지..... 너랑 키스할거야 라는 뻔뻔한 남자와 정말 키스를 했는지가 궁금한대요?

다락방 2010-09-27 10:05   좋아요 0 | URL
김은 너무나 근사한 맥주안주에요! 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마녀고양이님ㅋㅋㅋㅋㅋㅋㅋ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을 반드시 지키는 남자에요. 그에게 장소나 시간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죠. 남들의 시선따위는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는 그런 남자였어요. 뭐 이정도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레와 2010-09-27 10:49   좋아요 0 | URL
그 남자 멋지다!! +_+

다락방 2010-09-27 13:12   좋아요 0 | URL
그 남자가 멋지냐 멋지지 않느냐는 잘생긴거랑은 다른거더라구요 ㅎㅎ

프레이야 2010-09-2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
김 하나 나 하나... 따라서 해보다다 웃음이 ㅋㅋ
인용하신 구절도 다락방님 글도 귀여워 죽겠어요.
기름 바른 짭쪼름한 김, 안주로 좋죠.
혀에 착 달라붙는 느낌도^^

다락방 2010-09-27 13:13   좋아요 0 | URL
저는 말이 빠른편인데 김 하나 나 하나 김 둘 나 둘, 은 천천히 말하게 되요. 어쩐지 그렇게 되죠. 후훗. 프레이야님도 천천히 말하게 되시나요?
인용한 부분은 사실 고독하고 외로움이 느껴져야 하는 부분인데 제가 저의 허접한 에로경험에 인용해버려서 그 빛을 잃고 말았어요. 하하하핫

따라쟁이 2010-09-2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중요한건 그날 키스를 했나는거에요. 요새 다락방님 아주 미묘하게 중요한 점을 비켜가는 경향이 있어요!!!!!

다락방 2010-09-27 13:14   좋아요 0 | URL
내가 뭘? 뭘? 뭘 어쨌다고 그래욧!!

따라쟁이님이라면 어쩌겠어요? 젊고 열정적인 청년이 너무나 단호하게 너랑 키스할거야, 라고 말하는데, 안할 수 있었겠어요? 응?

따라쟁이 2010-09-27 14:39   좋아요 0 | URL
좋겠다. 나도 젊고 열정적인 청년이 너무나 단호하게 너랑 키스할거야. 라고 이야기 해줬으면. -ㅁ-;;;;
아.. 역시 나는 욕구불만이였군.. 정사소견입니다는 역시 내 마음이였던거야.

다락방 2010-09-27 17:32   좋아요 0 | URL
농담속에 뼈가있고 오타속에 욕망있는거죠. 알아요, 나도.

저는 그러니까 좀 그런거에 약해요. 적극적이거나 애교있거나. 그러면 그냥 무너져버려요. 후아-

치니 2010-09-2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아 -

다락방 2010-09-27 13:14   좋아요 0 | URL
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아-

blanca 2010-09-2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거꾸로 읽어서 다락방님이 드뎌! 라고 생각했잖아요. ㅋㅋㅋ 이쁜 넘 솔직한 과거네요. 진짜 냄새가 중요하죠. 아주! 사랑에 있어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지리멸렬한 일상이 되어 버리니까요.

다락방 2010-09-27 14:28   좋아요 0 | URL
아이쿠. 왜 거꾸로 읽으셨어요, blanca님!
제가 다 두근두근하네요. ㅎㅎㅎㅎㅎ

전요, blanca님.
사랑에 있어 감각이 좀 무뎌졌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둔해졌으면 좋겠어요. 느끼지도 못했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사랑을 느끼게 할 만한 그 대상들이 제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천국과 지옥을 한순간에 오가는 기분은 정말 어지럽거든요. 차라리 느끼지 않는 쪽이 나을것 같아요. 저는 평상심만으로 삶을 살고 싶어요.

2010-09-27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7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10-09-27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글이 멋져서 좋았지만, 이번엔 아무래도 웬디님 댓글이 윈!

다락방 2010-09-27 17:34   좋아요 0 | URL
흥. 아직도 웬디님과의 연대는 끝나지 않은거에요? 여전히 둘이 연대하여 나를 사랑하지 않기는 진행중인거에요?

그래봤자, 응? 당신들 둘, 집에 가면서는 각자 나한테 문자 보냈던 거 알아요? 응? 당신들은 함께 있을때만 연대했어요. 연대하지 않고 줏대있게 사랑하는게 편할걸요? 흥!!

moonnight 2010-09-27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다락방님. 주책스럽게 둑은둑은하는 제 맘 책임지세욧 ㅠ_ㅠ;
저는 이번 추석선물로 와인이 잔뜩 들어와서 흐뭇해요. 아무도 생각나는 사람은 없고요. -_-;;;; 혼자서 이 녀석들을 다 마셔주리라. 하는 욕심에 그만. ;;;;;

다락방 2010-09-27 17:35   좋아요 0 | URL
김을 하염없이 하염없이 먹었네요. 밥 싸먹으면 별로 맛도 없는 김이었는데 김 하나 나 하나, 김 둘 나 둘 하면서 하염없이 하염없이...

저도 와인 선물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어휴. 저는 그러면 정말 행복했을텐데. 와인이라면 저도 생각나는 남자 없어요. 와인을 남자랑 함께 마시는 건 위험하잖아요. 와인은 정말 사랑을 부른다니깐요. 욕망을 부추키고. 남자랑 와인마시지 않기, 는 제 생활의 모토에요. ㅎㅎ

moonnight 2010-09-27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리고 저는 김 걷어낸 그와의 일화가 현재형인줄 알고요. 추석선물로 김을 받았다는 말씀을 오해했다는. (이병헌 김태희 커플의 사탕키스에 이은..;;;;;)
아니, 우리 다락방님의 염장페이퍼인가! 하고 눈을 부릅떴... 죄송해요. ;;;;;;;;;

다락방 2010-09-27 17:37   좋아요 0 | URL
사탕키스 ;;
아 저는 이런걸 해봤어요, 하고 뭔가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제 서재 수위가 아슬아슬 19금인것 같아 자제해야겠어요.

그리고 문나잇님, 저는 현재진행형 남자에 대해서는 별로 글을 쓰지 않아요. 언제나 다 지나가버린 후에 씁니다. 현재진행형의 남자와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ㅎㅎ

그것은 사랑이었지요, 다 끝나버렸지만. 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It must have been love. But it's over now.

추석에 김 주는 남자라, 좋은데요! ㅎㅎ

차좋아 2010-09-27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기름하고 햄 받았어요!
받을 땐 몰랐는데 이상하게 기분 좋네~~~ 으하하하

다락방 2010-09-27 18: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뭐죠, 이 이상한 기분은? 뭐가 좋다는 거에요. ㅋㅋㅋㅋㅋ

차좋아 2010-09-27 18:35   좋아요 0 | URL
응...그러게요 뭐가 좋지?? 다들 좋아하셔서...아 점점 이상해지네...ㅋㅋ
아니 그게 아니라~~~ 받을땐 무겁고 귀찮았는데 여기서보니 인기있는 선물 같다 뭐 이런 얘기인거죠 ㅋ

다락방 2010-09-27 18:43   좋아요 0 | URL
뻥치지마요! 실은 본인이 기름지고 육덕진 남자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네? 네?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해봐요, 어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차좋아 2010-09-27 18:53   좋아요 0 | URL
우하하하하하...

제가 요즘 기름을 얼마나 뺐는데 그런 말씀을...(살코기만 남았다고요~)
그리고 제가 얼~마나 담백한데요. 우하하하 아, 미치겠네~ 뭔말을 해도 다 이상하고 웃기고 ㅋㅋ
다락방님하고 노니까 저도 웃겨지는데요 ㅋㅋ

다락방 2010-09-28 08:52   좋아요 0 | URL
차좋아님..

내가 웃겨요? 네? 웃겨요? 웃기냐구요!!!!!!!!!!

차좋아 2010-09-28 18:18   좋아요 0 | URL
웃기다 라는말이 얼마나 좋은건데요~~ 저는 그말 듣는거 엄청 좋아해요.
언젠가 다락방님도 웃겨주려고요 ㅋㅋㅋ

2010-09-27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illyours 2010-09-2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다락방 님, 나는 키스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는 페퍼민트 티를 마셔요 !

다락방 2010-09-28 09:55   좋아요 0 | URL
아이쿠, moon님! 이런걸 공개적으로 얘기하면 어떡해요! 다 들통났네! ㅎㅎ
나는........음.....나는........음....나는 키스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는 ( ). 비밀. ㅋㅋㅋㅋㅋ 아 몰라요! >.<

비로그인 2010-09-2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이 숟가락으로 김을 거둬낼 때 을매나 팔딱팔딱 조마조마 콩딱콩딱 하셨을까요?
읽는 나도 가슴이 오그라들 것 같은데...
아~~~~~~~~~~

다락방 2010-09-28 11:28   좋아요 0 | URL
밥이 식도로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ㅎㅎ
먹고 나서 소화는 아주 제대로 시켰습니다만. =3=3=3=3

비로그인 2010-09-28 11:48   좋아요 0 | URL
다락 님 덕분에 늘 대리체험을 해요~~
음~~난 맨날 짝사랑만 줄기차게 해서리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경험이 읍써요~ㅠ
어흑~~다락 님 방에만 오면 간? 가심이 떨려~~~^^

다락방 2010-09-28 12:06   좋아요 0 | URL
maggie님, 그러나 결국은 연애에 멋지게 성공해서 지금 예쁜 아이들 낳고 잘 살고 계시잖아요!!

앞으로 더더욱 분발하여 maggie님 가슴을 화악- 터뜨려 버리겠어요! ㅎㅎ
 

 

나는 가끔 하루키카 내 일기를 읽고 혹은 내 생각을 듣고 글을 쓰는게 아닐까 싶을때가 있다. 이 책의 1권에서 아오마메의 고환 걷어차기로 내 마음을 쥐락펴락 하더니, 이 책 3권에서의 아오마메가 가진 덴고를 향한 그리움이 꼭 나의 것과 같다.  

남들 다 쉴텐데(흑) 혼자 출근하는 것도 쓸쓸한데, 게다가 여름옷을 입고 출근하면서 나는 머저리, 추워라, 이러면서 이 책을 읽는데, 왜 이렇게 춥고 쓸쓸한 가을날에 아오마메는 그리움을 토로하는건가, 대체 왜! 나더러 어쩌라구!  

 

 

   
 

만일 덴고가 그때까지 공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의 얘기지만, 이 수수께끼로 가득한 1Q84년이 끝을 맞이하기까지 나는 이런 단조로운 생활을 고엔지 동네 한귀퉁이에서 계속 이어가게 된다. 요리를 하고, 운동을 하고, 뉴스를 체크하고, 프루스트의 책장을 넘기며 덴고가 공원에 나타나기를 계속 기다린다. 그를 기다리는 것이 내 생활의 중심과제다. 현재로서는 그 가느다란 한 줄기 선이 나를 가까스로 살아가게 해 주고 있다. (pp.57-58) 

 
   

 

그를 기다리는 것이 내 생활의 중심과제다. 현재로서는 그 가느다란 한 줄기 선이 나를 가까스로 살아가게 해 주고 있다. 캬~ 어쩐지 차디찬 소주 한잔을 입에 넣어야 할 것 같다. 이때의 안주는 삼겹살이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기름지고 육덕진 걸 안주로 삼는 것은 쓸쓸하고 고독한 기다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때의 안주는 치킨을 시킬때 딸려 나오는 무여야 한다. 혹은 고추장을 푹 찍은 멸치라든가.  

 

   
 

하지만 만일 두 번 다시 그를 만날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오마메의 마음은 파르르 떨린다. 덴고와의 현실적인 접점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일이 훨씬 단순했다. 어른이 된 덴고를 만난다는 건 아오마메에게는 그저 꿈이고 추상적인 가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실제 모습을 목격한 지금, 덴고의 존재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절실하고 강력한 것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 온몸 구석구석 애무를 받고 싶다.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과 몸이 한가운데서 쩍 갈라져 두 동강이 날 것만 같다. (p.111)  

 
   

파르르 떨리는 아오마메의 마음도, 마음과 몸이 한가운데서 쩍 갈라져 두 동강이 날 것만 같은 마음도, 누군가를 향한 기다림으로 온 낮을 까맣게 태워본 사람이라면, 온 밤을 하얗게 지새워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파르르 떨리는 마음이라니, 두 동강이 날 것 같다니. 덴고, 아오마메가 두 동강이 나지 않도록 어서 나타나줘.  

아오마메는 덴고가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  

   
 

그녀는 딱딱한 총신을 입에서 빼내고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죽는 건 못한다. 베란다 앞에 공원이 있고 공원에 미끄럼틀이 있고 덴고가 그곳에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는 한, 나는 이 방아쇠를 당길 수 없다. 그 가능성이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그녀를 붙잡는다. (p.112-113) 

 
   

아오마메를 죽지 않게 하는 덴고는 희망일까, 그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게 해주는 덴고는 차라리 절망인걸까. 결국 아오마에의 마음속 부르짖음은 내가 내뱉는 비명과도 닿아있다. 아오마메의 이 절절한 마음은. 

   
 

덴고, 너는 어디 있어? 그녀는 생각한다. 입 밖에도 내어본다. 덴고, 너는 어디 있어? 빨리 나를 찾아줘. 다른 누군가가 나를 찾기 전에. (p.121) 

 
   

만나기로 운명지어진 사람들은 결국 만나게 될까? 사랑에 운명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 걸까? 아오마메랑 덴고는 결국 만나게 될까? 그들은 사랑하게 될까? 나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지는 않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다른 누군가가 나를 찾기 전에 나를 찾아줘, 라고 나 역시 외치고 있는데, 그는 내가 찾는 건 니가 아닌 걸, 할 지도 모를 일이니까. 내가 원한 사람이 나를 원한다는 그 기적같은 일이 살면서 몇번이나 있게 될까?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러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로 채워진 『뉴욕, 아이 러브 유』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데, 특히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는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내게 된 남자와 여자의 사연이다. 그 둘은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다시 만나기를 약속한다.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남자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어디가서 술 한잔 하고 가는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여자는 예뻤는데, 담배 한대를 피우고 갈까, 그녀가 나올까? 남자를 만나러 가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평소엔 안이랬는데 왜이러지, 나를 쉬운 여자로 보지 않을까, 그가 없으면 어떡하지, 그래도 좋았는데. 그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머릿속에 오백만개쯤의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결국 그 둘이 만나서 한 일이라고는 키스였으며, 키스 사이사이로 이가 드러날 만큼 환하게 웃는 일이었다. 결국은, 그럴거면서.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키스할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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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한 금요일, 연휴는 끝났다. 나는 이제 뭘 기다리면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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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9-2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락방님 출근하자마자 페파 하나 뚝딱!
오늘 저도 혼자 출근하면서 투덜투덜, 마음이 좀 울적했는데 이 글을 보니 기운 나네요. 고마와요. :)

연휴는 끝나가고, 전 이제 9월30일을 기다리며 살아효. ㅎ

다락방 2010-09-24 10:47   좋아요 0 | URL
추석연휴중에, 그리고 오늘까지도.
저는 글을 쓰면 와줄 사람이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그냥 쓰고 싶은 글을 썼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치니님이 오셨어요. 저는 외롭지 않아요, 치니님 덕분에. 그러니 고맙다는 말은 제가 해야 할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저는 아직 아무런 계획도 없는 크리스마스나 기다릴래요. 그래봤자 토요일이지만.
:)

무해한모리군 2010-09-2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출근했어요.
정말 하기 싫은데 출근했더니 큰 사무실에 덜렁 한 열명 앉아있나.
게다가 출근한 여자사람은 저 뿐이예요!
그런데 다락방님 글을 읽으니 참좋다.

그래도 금요일이니까 주말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요.

다락방 2010-09-24 10:50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그래요, 금요일이라는 사실이 아주 많은 위로가 되요. 그치요?
휘모리님 사무실에 출근한 여자사람은 휘모리님 뿐이지만, 저희 회사는 전 여자사람직원들이 전부 출근했어요. 그러니 외로워말고 우울해도 말아요. 알았지요?

아주 간단한 말인데, 다락방님 글을 읽으니 참 좋다, 란 휘모리님의 말이 오늘따라 유독 따뜻해요. 제가 뭔가 해낸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네요.
잘 보냅시다, 휘모리님!
:)

푸른바다 2010-09-24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글을 읽다보면 고독해서 소주와 삼겹살을 먹기보단 소주와 삼겹살을 먹기위해 고독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ㅎㅎ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금요일도 이젠 오후네요. 남은 시간 잘 보내시고, 즐거운 금요일 저녁, 주말 보내길 기원할께요.^^

다락방 2010-09-24 15:0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그렇네요. 저는 아마도 소주와 삼겹살을 먹기 위해 고독해지려는가 봐요. 남들 다 쉬는데 일하러 나왔다고 생각하니 일하기 참 싫으네요. 뭐 남들 일할때도 하기 싫었지만. ㅎㅎ 네, 푸른바다님도 즐거운 금요일 저녁과 주말 보내세요!

다락방 2010-09-2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100, 총 95358 방문

오, 100명이나 방문! ㅎㅎ

... 2010-09-24 15:15   좋아요 0 | URL
저는 105번째 방문!

다락방 2010-09-24 15:20   좋아요 0 | URL
앗 12분만에 다섯명이나 왔다갔다니! 저 완전 인기서재 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10-09-2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퇴근해요~ ^^*
하도 느끼한걸 먹어됐더니 김치찌개 먹어야겠어요 오호호

다락방 2010-09-24 17:56   좋아요 0 | URL
8분 일찍 퇴근인가요? 저는 여섯시 땡 하면 가려구요. ㅎㅎ
아 배고파요, 휘모리님!
맛있게 식사하세요.

sslmo 2010-09-25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어느분의 댓글에 이 책이 언급되어 왕 궁금했었는데...이런 내용이었군요.
일단 급한 마음은 다독이고...

연휴가 끝나면요,월급날을 기다리며 살죠.(나만 그런가?ㅠ.ㅠ)

저는 그런 삶을 살고 계신 다락방님이 왕 부러울 따름입니다~^^

다락방 2010-09-26 18:14   좋아요 0 | URL
월급날이 저는 너무 많이 남았어요.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난번 월급이 남아있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구요.

제가 무슨 삶을 살고 있길래 저를 부러워하시나요, 양철나무꾼님. 저는 아주 평범하다 못해 찌질한 삶을 살고 있는걸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해놓은 것도 없는걸요. 양철나무꾼님의 삶이 저보다 스물세배쯤은 더 풍족할거에요.

하루키는 제가 엄청나게 사랑하는 작가죠. 물론 이 책에서도 덴고(남자주인공)는 저를 또 살짝 실망시키고 있지만 흑, 그쯤은 괜찮습니다.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양철나무꾼님!

2010-09-25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6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0-09-25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만남을 기다리자구요! 아자! ^^

다락방 2010-09-26 18:15   좋아요 0 | URL
레와님! 몹시 만나고 싶어요. 좀전에 마트를 가서 치즈매대 앞을 서성이면서 빨리 레와님 만나서 치즈를 함께 먹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레와 2010-09-26 20:33   좋아요 0 | URL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어요.
다락방을 만날 수만 있다면 월요일쯤 가~비엽게 맞이 할 수 있는데.. 응!

다락방 2010-09-27 08:36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정말이지 비 맞아서 쫄딱 젖는 월요일 아침을 맞이했어요. 흑 ㅜㅡ

다이조부 2010-09-25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능시험 전 날 에도 하루키 의 빵가게 재습격 을 읽을 정도로


학교 공부를 소홀히 했어요~ ㅋ

한 시절 하루키 가 낸 책이라면 어지간히도 읽어냈는데 해변의 카프카 이후에는 예전만큼 열정이 일지가 않네요~
이 소설 무진장 좋은가봐요? 게을러서 아직 읽지 못했는데 말이죠

다락방 2010-09-27 17:43   좋아요 0 | URL
저는 시험기간중에도 소설을 읽을 정도로 학교공부를 소홀히 했었는데요. ㅎㅎ

저도 해변의 카프카부터 예전의 사랑만큼은 줄 수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키가 싫다고 말할수는 없어요. 저는 [댄스댄스댄스]와 [상실의 시대]가 훨씬 좋아요. 아직 읽지 못했으면 어떤가요, 나중에 읽으면 되지.

주말, 잘 쉬시고 계십니까?

차좋아 2010-09-2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의 부록같은 주말입니다. 연휴엔 정말 푹 쉬시는군요 ㅋㅋ
화제의 서재에 다락방님 글이 없어서 심심해요^^

다락방 2010-09-26 18:17   좋아요 0 | URL
아 이런. 글쓰고 싶게 만드는 댓글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이러저러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넷북을 통 켤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주말엔 좀 퍼져 있는것도 사실이구요. 므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흣

2010-09-26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6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언제나 슬퍼하는 사람, 약한 사람, 우는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곤 한다. 왜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꼭 그런다. 사랑을 이루고,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하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 뒤돌아 눈물 흘리는 사람한테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무지하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에서도 그랬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지는 않는 남자를. 둘은 가끔 둘만이 아는 숲에 가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여자에겐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 자꾸 웃게된다. 그런데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다른 여자를 이 공간에 데리고 온다. 이 둘만의 비밀 장소에.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 얘기했더니 보고싶어하길래 데리고 왔어." 라고 말하면서. 

이런 무정하고 무심한 놈.  

물론, 여자는 남자에게 '여기는 우리 둘만의 비밀 장소이니 다른 사람에게 알려줘서는 안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또한, '나는 너를 사랑해' 라고도 말하지를 않았다. 그러니 남자가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온다 한들 딱히 잘못했다고 혼내줄 수도 없다. 싸울 수도 없다. 그러니까 여자도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배신감을 느끼고 서운해하는 거다. 눈물이 나는거다. 나는 여기가 너랑 나의 둘만의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여길 아는 건 우리 둘 뿐이어야 하는건데.. 이 상황에서 나는 이 여자에게 감정 이입이 되지, 도무지 남자가 사랑하는, 그래서 남자의 비밀의 장소를 궁금해하고 거길 결국 알게 되는 여자의 감정에 대해서는 굳이 알고 싶어지질 않는거다. 그건 기쁨일테고, 행복일테니까. 내가 이입해주지 않아도 충분하잖아. 

  

시트콤 [볼수록 애교만점]에서의 이선호. 나는 이선호를 엄청 예뻐라 하고 좋아라 하는데, 극중에서도 이선호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있다. 한명은 간호사 정주리인데, 재벌집 딸이다. 이선호는 정주리에게 마음이 없다. 또 한명은 이선호가 과외를 해주고 있는 고3 수정이다. 이 시트콤을 매일 보지는 않는데, 그러니까 어쩌다 칼퇴하고 약속도 없는 날 집에 가면 보기 때문에 놓치는게 훨씬 많은데, 이선호가 고딩은 여자가 아니라며 고딩의 마음을 받아주지는 않는 것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고딩은 많이 많이 속이 상한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아 시무룩해지는 고딩을 볼 때마다 나는 또 가슴이 아파서 고딩이 된다. 이선호는 이제 정주리랑 연인 사이가 되었는데, 고딩은 어느 날 우연히 정주리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이선호를 보게된다. 그때 고딩의 한숨은 나의 한숨이다. 그렇게 나는 이선호를 좋아하는 고딩에게 한껏 감정이입을 하고 슬퍼하는데, 그렇다면 정주리를 미워하거나 부러워하느냐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이선호가 정주리랑 사귀는 사이기는 하지만, 이선호는 아직 정주리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정주리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계랄까. 그래서 정주리가 팔짱을 끼고 이거 해요, 여기 가요, 하면 그대로 해주지만, 아직 그의 눈과 마음에 사랑은 없고, 나는 그걸 볼 때, 그때는 정주리가 된다 ㅠㅠ 그는 날 사랑하지 않아, 다만 노력할 뿐이야, 하면서. 슬픈 정주리가 된다. 아니 대체 왜? 이선호를 좋아하는 고딩이었다면, 정주리를 그냥 미워하면 되잖아?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라고 하는 정주리한테도 감정 이입을 하는거지? 대체 왜? 병인가.. 

 

오늘은 이선호가 논문 준비 때문에 공부하느라 수염을 깎지 않은 상황에서 고딩을 만나 공부를 했다. 고딩은 이선호가 수염을 기른것이 못마땅했다. 쌤, 수염 깎아요. 쌤 수염이 쌤 잘생긴걸 가리는 것 같아서 속상해요. 신경 쓰여요. 이번 모의고사 망치면 쌤 때문이에요! 이선호는 그 얘기가 떠올라 수염을 깎는다. 고딩은 말끔하게 수염깎은 이선호를 보고서는 신이나서 뛰어와 이선호를 안으려고 한다. 이선호는 고딩이 자기를 안지 못하게 고딩의 머리를 막고 민다. 너가 시험 못본다고 했으니까, 신경쓰인다고 했으니까, 라고 말하지만 그가 떠올렸던 건 사실 '잘 생긴걸 가리는 것 같아 속상해요'는 아니었을까?  

얼마전 읽은 [사랑 받을 권리]에 보면 한 남자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자를 짝사랑하는 사례가 나온다. 그는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러 와서는 그여자는 날 남자로 보지 않아요, 라고 얘기한다. 닥터는 그에게 그여자가 당신을 남자로 보지 않는게 아니라 당신이 그녀를 여자로 인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거 아니냐고 한다. 결국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고 있었고 남자랑 이뤄진다. 갑자기 이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건, 이선호 역시 그런게 아닐까 했던 것. 이선호가 고딩이라며 자꾸만 고딩을 밀쳐내는 건, 자신에 대한 최면이 아닐까? 자신에게 주입시키는 건 아닐까? 고딩을 여자로 보게 될까봐 자신이 겁나는 건 아닐까? 

 

오늘, 친구랑 메신저를 하다가 고딩과 정주리에 감정이입을 한다는 얘기를 했다. 친구는 [볼수록 애교만점]이란 시트콤을 검색해서 고딩이 누군인지 찾아봤다. 그러더니 내게 그랬다.  

어머 다락방님, 이렇게 예쁜 애한테 감정이입을 하시는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미처 몰랐다. 예쁘다는 걸. 그러니까 예쁜데, 내가 예쁜 여자한테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는 걸. 어쩔. 그러니까 그 고딩은 이렇게 예쁘다. (오른쪽 묶은 머리의 여자)

 

어쨌든, 

이선호가 수염을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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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9-2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엥, 내 눈엔 저 고딩보다 다락방님이 더 이쁘구만요! (난 저런 타입 넘 별로에요)
글구 이선호보다 정주리 좋음, 정주리 탐나는 도다에서 완전 연기 짱! ㅎㅎ
이 시트콤, 예상보다 디게 오래 하네요.
명절, 잘 보내고 있죠? 부디 스트레스 받지 말아요 ~ 울 다락방님.

다락방 2010-09-22 16:29   좋아요 0 | URL
저는 가끔 아무도 안보는 프로그램에 올인하는 경향이 있어요, 치니님. 일전에 [김치치즈스마일]에 완전 집중했었고, 아무도 안봐서 시청률 3프로 나온다던 [세잎클로버]도 혼자 봤었어요. ㅎㅎ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매일 챙겨보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 [볼수록 애교만점]은 다른 캐릭터들은 다 별론데 저는 고딩하고 정주리랑 이선호한테 완전 꽂혀가지고. 이선호 엄청 좋아요! 특히 고딩한테 떡볶이 사줄때는 백마탄 왕자보다 더 멋져요! >.<

에이, 치니님. 고딩보다 제가 더 예쁘다는 건 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고딩이 막 살랑살랑 웃을 때 얼마나 예쁘다구요! ㅎㅎㅎㅎㅎ

오늘 대부분의 알라디너들은 추석을 분주하게 보내고 있는가봐요. 저만 조용~ ㅎㅎ


LAYLA 2010-09-23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은 추석인가보네요. 다락방님 페이퍼에 온니 추천2개 댓글2개라니!!!!@_@

다락방 2010-09-24 08:1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추석은 추석이지만, 그래도 올 사람은 다 오네요. 위에 치니님도 오셨고, LAYLA 님도 오셨고!
:)

서재 퍼스나콘, apouge 님 퍼스나콘하고 완전 분위기 비슷해요!!

레와 2010-09-25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강동원을 가질테니, 이선호는 다락방해요! ㅋㅋ

다락방 2010-09-26 18:12   좋아요 0 | URL
응, 레와님은 강동원을 가지고 나는 이선호를 가지고 우리 넷이 만나요. 이 좋은 가을날 넷이 만나서 우리 낮에는 바닷가를 거닐고 밤에는 술을 마셔요. 술이 취해 정신이 몽롱해지면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레와님은 강동원과 나는 이선호와.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만나요! 므흐흐흐흐흐흐흣

레와 2010-09-26 20:34   좋아요 0 | URL
강동원하고 있는데, 과연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 ㅋㅋ

다락방 2010-09-27 08:37   좋아요 0 | URL
일어날 수 있어요, 레와님. 나 예전에 꿈에 송승헌하고 호텔갔는데 그때도 새벽에 옷 들고 도망갔어요. 가능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ropby 2010-10-0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딩은 f(x)의 크리스탈입니다. 앞으로해도 정수정, 뒤로해도 정수정이죠ㅎㅎ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다락방 2010-10-06 08:30   좋아요 0 | URL
크리스탈 예뻐요. ㅎㅎ 앞으로해도 정수정, 뒤로해도 정수정, 맞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