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 스티븐 딕슨이 [에스콰이어]에 <당신 나이치고는……>이라는 제목으로 짤막한 소설 같기도 하고 시나리오 같기도 한 글을 썼다. 부제는 <MID LIFE의 악몽>이다. 미드 라이프는 처음 접하는 말이다. 중년이라고 번역하면 좋을까. 어딘지 모르게 ‘빼도 박도 못한다’라는 느낌이 든다.
내용을 보면, 42세의 독신 남성 작가가 주인공인데, 그는 금연과 조깅 등으로 젊음을 유지하려 애쓴다. 한편 그의 연인인 21세의 대학생은 꽤 오래 사귀었던 그와 헤어지고 뉴욕으로 가서 출판사에 취직하려고 마음먹는다. 출판사에서 경력을 쌓은 후 작가가 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헤어지자고 말하지만 남자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두 사람의 대화가 한없이 계속되는데, ‘정말 지겹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묘사가 추하고도 실감난다.
이를테면 남자는 “내가 그렇게도 아저씨처럼 보이냐?”라고 묻고, 그녀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대답하며 덧붙인다. “하지만 당신이 젊게 보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난 창피해요.
그녀의 말인즉, 당신은 운동을 해서 몸을 단련시키고는 있지만, 그래도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체형이 망가지고 있으며, 그걸 보고 있으면 당신이 노력하는 만큼 나는 더 슬퍼진다.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해도 스무 살짜리 보통 남자의 근육이 당신보다 더 탄탄하고 고환도 위에 붙어 있는 것(자세히도 관찰했군)이 사실이며, 게다가 당신은 벌써 머리가 벗겨지고 있지 않은가. 머리가 벗겨지는 것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당신은 음모에도 흰 털이 있지 않는가. 그걸 보면 난 정말 기가 막히다. 섹스만 해도 그렇다. 당신은 잘하긴 하지만, 젊은 남자는 사정은 빨리 할지 몰라도 그만큼 금세 회복된다. 당신은 사정한 후 15분후에 다시 사정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그런 남자와 자고 싶단 말이다.
그러자 남자는 “내 발에서 냄새는 나지 않았어? 입 냄새는 안났어?”라는 정도의 말밖에 하지 못한다. 결국 남자는 “그럼 앞으로는 그냥 친구로 지내자”라고 애원하지만, 이것 역시 거절당하고  깨끗하게 차이고 만다. 이런 일은 악몽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젊은 여성과 사귀고 있는 45세 이상의 남성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꼴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지 않을까. 미리 대비하고 있지 않았다가는 충격이 클 테니까.
(중년의 악몽, PP.52~53)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회사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안의 난 혼자였다. 난 내내 내게 없는 것들을 생각하며 오고 있던 길이었다. 쌍커풀과 보조개와 눈웃음. 왜 이 세가지가 내게 없는걸까, 하면서. 쌍커풀 진 깊은 눈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웃을때마다 보조개가 들어간다면? 눈웃음을 칠 줄 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거울을 본다. 그리고 씨익 웃어본다. 눈웃음을 좀 연습해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눈 주변에 주름이 자글자글. 그리고 땡긴다. 흑. 서러워졌다. 눈웃음은 무슨. 내가 아이크림을 너무 안발랐나? 이제 눈주름 관리 좀 해야할까? 아이크림이 너무 저렴했나? 백화점 가서 명품으로 하나 사서 발라볼까? 그러나 뭘 쓴다 한들 이미 생긴 이 자글자글자글자글자글한 주름들은 없어지질 않겠지.  

난 내가 나이들어 가는 것을 몹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텔레비젼에 나오는 아줌마들처럼 보톡스를 맞는다거나, 화장을 진하게 한다거나, 굳이 옷을 젊게 입으려거나 하는 애를 쓰지 않고 늙어가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안간힘을 써가며 반항해봤자, 그것이 나이들어 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고, 오히려 추해질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아, 나도 이제는 막고 싶다. 그만 나이들고 싶다. 『아마추어 메리지』에서도 나이 들면서 좋았던 머릿결이 푸석해진다고 했었는데, 나도 그걸 느낀다. 이제 한달만 더 있으면 한 살 더 먹는다.

늙어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흑. 

다시, 눈가의 주름으로 돌아가서,

좋은 아이크림을 하나 장만해야 할까.
 

나는 이제 젊은 남자를 더이상 만날 수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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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0-11-1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쌍꺼풀,보조개,눈웃음 다 없어요.흑흑
전 제가 나이가 든다고 밍크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저 캐시미어 코트가 로망이었는데, 요즘은 코트까지는 바라지 않고 그저 밍크쇼울이라도 하는 생각을 한다니까요.점점 더 추위를 타서 그런거겠지요? 나이 때문이 아니라 ? 흑흑

저는 좋은 목크림을 하나 장만해야 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락방 2010-11-17 09:25   좋아요 0 | URL
'노라 에프런'의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인가 하는 책에서 목주름 얘기를 하도 반복해 들어서 저도 겁이 다 나더라구요. 파비아나님, 좋은 목크림 하나 장만하시면 제게도 추천해주세요. 저도 한번 써보게요. 목도 미리부터 관리를 해야겠죠? 그래야 나중에 목 주름 보면서 윽 진작 관리할걸 이런 생각 안하겠죠? 그런데 목크림이라는 게 있기는 있나요? 존재하는 건가요?

비로그인 2010-11-15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왜 스키니 진을 입고 양털 무통을 입고, 8센티 짜리 힐을 신었냐면요!
하루라도 상대적으로 젊을 때 다 해보고 죽자,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이건 플러스 알파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전 그의 눈가 주름을 사랑합니다. 그를 생각할 때 딱 떠오르는 것이지요.

다락방 2010-11-17 09:26   좋아요 0 | URL
저는 눈가에 주름이 없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데, 그에게 주름이 있었다면 저는 역시 그 눈가의 주름을 사랑했을 거에요. 그게 뭐든 대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안그래요?
아, 쓰다보니 심장이 막 뛰어요.

Mephistopheles 2010-11-15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책임져 알피...의 거의 마지막 장면.. 이여자 저여자에게 박살나신 바람둥이 알피(주드 로)가 최후의 보루(?)인 수잔 서랜든을 찾아가 위로를 받죠. 하지만...그녀의 침실엔 이미 왠 남정네가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죠. 알피는 절규합니다. '왜! 왜! 내가 저 놈보다 못한게 뭔데..!' 라고요. 수잔 서랜든...간단 명료하게 정리해버립니다. '갠 너보다 젊어!' 아...그 영화 내내 알피라는 캐릭터가 정말 얄미웠는데..그 대사 한마디에 연민이 생기더군요.

다락방 2010-11-17 09:29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얼핏 그 장면이 기억나는 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고.
제가 그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친구 애인의 bar 에서 친구의 애인과 둘이 당구치던 장면이에요. 영업이 끝난 새벽, bar 의 문을 닫고, 음악을 틀어두고 술을 마시면서 둘이 당구를 치잖아요. (포켓볼이겠죠;;) 그러다 멜랑콜리 분위기가 되가지고 삐리리 하잖아요. 그게 완전 이해가 되더라구요. 저 밤에, 그러니까 저 시간에, 단 둘이서, 술을 마시면서, 음악을 들으면 어떻게 안그러겠어, 어떻게! 하면서 말이지요. 하하하핫 ;;
결국 아이까지 낳았죠.

루쉰P 2010-11-1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가 나이를 먹어서 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나이를 먹으면 추한 것 같아요.ㅋㅋㅋ 젊은 남자, 젊은 여자야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희망이겠지만 대화가 되는 사람, 풋풋한 사과 향기 같은 향이 나는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예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들은 없지만 예쁘지 않아도 자신에게 자신을 가지고 항상 유쾌하고 발랄하고 옆에 있으면 자신도 기분이 업 되는 그런 여성을 남성들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회라는 거친 들판에 피는 멋진 꽃과 같다고 할까요? 물론 제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안나 카레리나'의 키티 역시 레빈이 마음에 든 것은 바로 그런 면이었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내년이면 32살이 되고 말아요.ㅋㅋㅋ 20살이 엊그제 였던 것처럼 느껴지는데 말이죠. 남자라서 그런지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불안과 멈춤 보다는 저의 덜떠어짐을 멈추고 싶더라구요. 레빈처럼 인생을 살고 싶어요. 왠지 저는 제 인생을 평가할 때 혹시나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NHK에 어서오세요'의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사는 듯 해서요. 전 시간이 흐를 수록 인생 알차게 살지 못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

다락방 2010-11-17 09:31   좋아요 0 | URL
제가 추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이먹는 것에 대해 굳이 애써서 반항하는 거였거든요. 그런 노력들이 부질없고 헛되지 않나 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저는 이제 그런걸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죠.
그나저나 노신파님 아직 32세 밖에(!)되지 않으셨군요. 닉네임이나 대화에서 어쩐지 조금 더 나이든 분을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NHK에 어서 오세요]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에 봤던 일큐팔사의 NHK 수금원이 생각나는 댓글이네요.

루쉰P 2010-11-17 18:03   좋아요 0 | URL
댓글을 달면 닉네임 때문에 그렇게 보시는 분들도 계신데 사실 노신(루쉰) 선생이라는 중국 문학자를 많이 알지 못 하시는 면도 있고, 제가 고전을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32살 밖에 라니 의외네요. 전 제가 나이가 많이 먹은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나봅니다. 일큐팔사의 NHK 수금원은 아주 집요하고 무언가 꽉 막힌 주인공의 아버지인데 제가 말씀드린 'NHK에 어서오세요'는 일본 애니로서 'N' 닛폰(일본) 'H'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K'쿄카이(협회) 한마디로 일본 은둔형 외톨이 협회의 약자입니다. ㅋㅋㅋ 1년 간의 백수 시절 저의 사상의 근본을 마련한 애니였죠. 이 단체는 재미난 일본 애니를 많이 만들어 그것에 빠진 일본 청년들이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 버리고 일본 애니에 빠져 현실 도피를 만들게 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게 만든다는 음모 단체로서 이 애니의 주인공은 그 단체와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애니의 주인공의 나이와 제 나이가 같아 더욱 애착을 가지고 봤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나이에 대한 반항은 이미 포기했어요. 왜냐면 워낙 겉늙어 그리 나이에 신경 쓸 정도로 외모가 뛰어나지 못하거든요. 고등학교 때 생김새는 서른살의 생김새나 비슷해서요. 저도 20대 초반 부터 제 나이에 대한 반항보다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치니 2010-11-15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다락방님이 이러시면 나는 어쩌라고용 ~

다락방 2010-11-17 09:31   좋아요 0 | URL
같이 잘 늙어봅시다, 치니님.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을 주면서. ㅎㅎㅎㅎㅎ

moonnight 2010-11-15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는데도 이십대때의 건강과 피부는 역시, 아쉬워요. ㅠ_ㅠ;;;
청바지에 운동화차림이 좋아서 하는 것 뿐인데 어려보이려고 노력하는군. 라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고요. 나이들면 좋아하는 옷도 못 입는단 말인가!!! 하면서요. 역시 젊음은 권력이로군요. 흑흑.

다락방 2010-11-22 10:05   좋아요 0 | URL
전 있어요, 문나잇님.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있어요. 전 스물아홉으로 돌아가서 그때부터 다시 살고 싶어요. 당신 스물아홉일때 부터 알았어요, 라고 말했던 남자에게 내가 먼저 가서 우리 지금부터 알고 지냅시다, 라고 말하고 싶구요, 나는 아직 이십대라며 여기저기 떠벌리고 싶어요. 삼십대가 주는 어쩔 수 없는 연륜이 전 좀 슬퍼요. 흑 ㅠㅠ
젊음은 권력이죠, 특권이고. 저는 젊고 예쁜여자들만 보면 아주 그냥 부러워 미치겠어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0-11-15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제가 웃고 있는 사진을 봤어요. 코주름과 입가 주름을 보곤...
그게 나라는 걸 인정할 수가 없었어요 --;;

다락방 2010-11-17 09:34   좋아요 0 | URL
전 엘레베이터 안에서 제 자글자글한 주름을 보고, 오오, 이렇게 늙어가는 것인가, 하고 잠시동안 패닉에 빠졌었어요. 제 안에는 제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주 많은 제가 있네요. ㅠㅠ

blanca 2010-11-1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배철수가 그러더라구요. 청춘이 정말 그 자체로 얼마로 좋은 건지 그때는 모른다고 하지만 그걸 알아도 이제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격하게 동감햇어요. 거울 속에 어떻게 해도 얼마간은 칙칙한 내 모습을 보다 근처 여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해들의 고운 피부결을 보면 제 자신이 참 초라하게 느껴진답니다. 그런 기분을 아마 올해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봐요. 이젠 화장을 안 하면 다들 아프냐고 해요....

다락방 2010-11-17 09:35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그런 여자가 될 줄은 몰랐는데, 화장 안하고 어디 잘 못나가겠더라구요. 어쩐지 챙피하고 부끄럽고.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건지. 이십대때는 화장 좀 하면 어, 오늘 화장했네, 이런말을 들었는데 이제는 화장 안하면 민폐란 얘기나 들을 것 같고.
아니라고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시간은 흐르고 역시 늙어가는 것 같아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ㅠㅠ

2010-11-15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5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urnleft 2010-11-16 0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인용한 부분 보면서 정말 슬펐어요 ㅠ_ㅠ

다락방 2010-11-17 09:41   좋아요 0 | URL
그쵸, 엄청 슬프죠? 저게 웃으면서 울게되요. ㅠㅠ

BRINY 2010-11-16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원짜리 스킨토너를 쓰면서, 어제 2만원짜리 앰플을 샀습니다...

다락방 2010-11-17 09:42   좋아요 0 | URL
화장품에 쓰는 돈이 늘어갈수록 우리는 나이드는 걸 실감하는가 봐요. 후아..

자하(紫霞) 2010-11-16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전 나이 서른에 이미 위의 사실을 깨달았죠~
어쩔수 없는 여자라서 뭐 아직도 눈주름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신경쓰고 살고 있습니다만...ㅜ.ㅜ

다락방 2010-11-17 09:43   좋아요 0 | URL
전 별로 신경안썼던 것 같은데 요즘엔 부쩍 신경쓰게 되네요. 어쩌면 계속 신경쓰고 있었을까요? ㅜㅜ
나이 먹는걸 누가 붙잡아줬으면 좋겠어요. 아니, 제가 좀 붙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후..

2010-11-16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11-17 14:49   좋아요 0 | URL
어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머!
상상도 못했는데, 완전 멋져요! 존경합니다! >.<

L.SHIN 2010-11-1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눈웃음은 고사하고... 하도 평소에 잘 안 웃어서 안면근육이 굳은 건지..
가끔 웃다가 무심코 거울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어색한 얼굴이 거기에 있거든요.-_-

다락방 2010-11-17 11:59   좋아요 0 | URL
으응? 엘신님 잘 안웃어요? 나는 엘신님이 잘 안웃는 사람 같지는 않은데?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질 않아요. :)

깐따삐야 2010-11-16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노화의 원인은 스트레스인 것 같아요. 이십대 때 스트레스의 폭풍우에 휘말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학생들이 저보고 아줌마 같다고 하더라구요. 영달이 낳고 나서 출근도 안 하고 자주 웃으니 이렇게만 살면 도로 젊어지겠다 싶어요. 하지만 이렇게는 살 수 없으니 또 늙을 날이 머잖았죠. 결국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요, 노화의 주범인 것 같아요.ㅠ

다락방 2010-11-17 12:01   좋아요 0 | URL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면 모든 나쁜상황의 원인이죠. 스트레스가 당연히 노화를 가져올 것이고 푸석한 머리와 눈가의 주름과 미간의 주름과 뱃살과 뭐 기타등등 다 가져오지 않겠습니까.
깐따삐야님도 저도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그걸 잘 알고 있는데, 왜 그런데도 스트레스 받으며 살고 있는걸까요?
예쁜 아가 낳고 출근도 안하고 자주 웃으면 네, 젊어질 것 같아요. 이미 생긴 주름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최소한 주름이 더 생기지는 않겠죠. 자꾸 웃으면서 살 수 있을까요? ㅠㅠ

이리스 2010-11-16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팍삭 늙은것 같아서 우울했는데 최근 일 때문에 만나는 몇몇 사람들이 나이에 대해서 비행기 태워줘서 좀 기뻤어요. 어차피 세월은 흘러가고 그 흔적은 남는건데 편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한 즐겁게 관리하는 것 밖에는.(말은 쉽죠. -__-)

다락방 2010-11-17 12:03   좋아요 0 | URL
그게말이죠, 저는 왜 여자들이 외모나 나이에 대해 비행기 태우면 기뻐할까, 그건 그냥 하는 말이잖아, 라고 늘 생각했었는데요, 이게 진짜 함부로 말할게 못되는게 제가 그러더라구요. 동안이란 말 한번 듣고 완전 며칠을 기쁨에 날뛰고 댕겼어요. 전 제가 동안이 아닌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말이죠. 동안이란 말 태어나서 처음 듣는건데, 그러니까 동안이 아니라서 동안이란 말은 들어볼 수가 없었는데(전 좀 늙어보이는 스타일;;), 뻔히 거짓말인줄 알면서 며칠동안 아~~ 나는 동안이었어, 나는 캡이야 뭐 이러고 다니더라구요. 하하하핫.

네네, 편하게 받아들이고 즐겁게 관리해야죠.
그리고 제가 이리스님의 사진을 봐서 아는건데요, 이리스님은 지금보다 나이 들어도 계속 미모로울거에요!

이리스 2010-11-17 13:34   좋아요 0 | URL
어흐흑... 감사합니당.(눙무리...)
저도 요 몇주 바쁘다는 핑계로 스킨케어를 하도 안했더니 피부가 엉망이 되어 반성중입니다. 들떠서 막 허옇게 일어나고 난리여요. 수분공급도 하고 모공케어도 하고 링클케어도(헉헉...)

락방님은 분명 동안이실것 같아욧! ㅎㅎ

다락방 2010-11-17 14:51   좋아요 0 | URL
전 진심 동안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순간도 동안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노안이죠. 하핫 ;;(비참...)

제 생각에 저는 술만 안마셔도 좀 덜 늙을것 같아요. 하하하핫 ;;

sslmo 2010-11-17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과 너무 적조하였다 싶어 밍기적거리면서 들어왔는데...
흠,흠...우리 서로 교묘히 비껴가서 락방님의 새글들을 읽을 수 없었던 거네요~^^

좋은 아이크림도 좋은데,
족발도 콜라겐이 끝내주고,
닭 날개도 괜찮대요~'속닥'

다락방 2010-11-17 14:50   좋아요 0 | URL
아, 그렇다면 저는 지금처럼 지내도 좋겠네요. 족발과 닭 날개는 제가 이미 넘치게 사랑하여 넘치게 먹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양철나무꾼님!
정호승 시인이 그렇게 좋나요? 네?

2010-11-17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8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브론스키와 올림픽공원

친구와 『안나 카레니나』를 함께 읽고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친구와 같은 책을 동시에 읽어 간다는 건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짜릿함을 준다. 그 책 내용이 슬펐든 어쨌든간에.  

친구와 나는 수시로 자신이 인상깊었던 장면을 문자메세지로 찍어준다. 우리는 같은 책으로 읽고 있기 때문에 쪽수를 써준다. 서로가 밑줄 그은 부분이 같다고 환호를 하기도 하고, 톨스토이는 천재라고 자꾸만 문자 사이로 얘기한다. 

톨스토이는 여자가 됐다가 남자가 됐다가 엄마가 됐다가 아빠가 됐다가 아이가 됐다가 개도 됐다가 하고, 톨스토이는 사랑했다가 사랑을 잃었다가 질투를 했다가 행복했다가 불행해 하기도 한다. 이 모든걸 이 작가가 다 해낸다. 1권에서는 레빈과 키티가 절망하고 브론스키와 안나가 빛났다면, 2권에서는 레빈과 키티가 빛이 나고 브론스키와 안나가 절망한다. 그 둘도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빛남으로, 열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던 그 때가 있었는데! 

 

   
 

요즘 들어 더욱더 자주 그녀에게 일어나는 이런 질투의 발작은 그에게 두려움을 품게 했고, 자연히 그녀에 대한 그의 감정을 식게 했다. 질투의 원인이 자기에 대한 사랑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런 느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도 쓰긴 했지만, 그는 몇 차례나 그녀의 사랑은 행복이라고 자기에게 타일렀는지 모른다. (p.241) 

 
   

질투를 해본 사람, 혹은 질투하는 연인을 두어본 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처음, 연인으로 발전할 그때, 질투조차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기뻤는지. 그러나 좀 오랜 연인이 된 후에는 질투가 얼마나 나의 목을 조르는지. 브론스키와 안나에게도 주변의 여건이 그리고 시간이 찾아든다.  

   
 

그녀는 이제 전혀 그가 처음보았을 무렵의 그녀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쁜쪽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온몸이 턱 퍼져버렸고, 방금 전 그 여배우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는 얼굴에 미모를 찌그러뜨리는 앙칼스러운 표정이 나타날 정도였다. 그는 아름다운 꽃을 사랑한 나머지 꺾어서 못쓰게 만들어놓고 나서야 겨우 그 아름다움을 깨닫고, 이제는 자기의 수중에서 시들어버린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p.242) 

 
   

처음의 그녀가 아니라니. 슬프다. 더할나위 없이 슬프다. 슬프다. 

400쪽을 넘어가면 안나와 브론스키는 드디어 바라던 삶을 산다. 안나는 브론스키를 바라보며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그가 얼마나 빛나는지, 사랑이 멈출 생각을 않고 점점 더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그를 잃는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브론스키는, 

   
 

한편 브론스키는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 완전히 실현됐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행복하지는 않았다. (p.445) 

 
   

 

그녀는 그가 원한 모든것이었는데! 그의 모든 지위와 명예를 포기하게 할 만한 그 무엇이었는데! 슬프다. 

 

점심을 먹는데 반찬으로 호박전이 나왔다. 나는 테이블에 놓여진 호박전을 초토화 시켰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물론 숙주나물도, 김치도 다 먹었다. 제육볶음은 말할것도 없고 ;; 사무실에 들어와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 슬프디 슬픈 사랑을 읽다가, 그리고 레빈과 키티의 반짝거리는 이야기를 읽다가, 보았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반값이라는 것을! 나는 이때다 싶어 장바구니에 책을 쓸어 담는다. 

 

 

 

 

『연을 쫓는 아이』를 선물 받아 가지고 있는데, 영화로 이미 보았던 나는 그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도 늘 찜해두고 있었는데, 오, 반값이라니!  

『전태일 평전』은 지난주 시사인과 경향신문에서 자꾸만 전태일 기사가 나와서, 아 나도 제대로 몰라, 이젠 좀 알아야 겠어 싶은 마음으로 주문. 

『유리망치』는 남동생을 위한 것. 이자식은 다른 책 주면 잘 안읽고 추리,미스테리만 읽을라고 해서 ;;  일전에 재밌다는 리뷰를 보고 기억해 두고 있던 터였는데, 오, 사랑해, 반값이다. ㅠㅠ 알라딘은 내사랑 ♡

『톰소여의 모험』은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를 읽고 꼭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담아뒀는데, 근데, 내가 한권을 사긴 샀는데, 허클베리를 샀는지 톰소여를 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결재시에 이전에 구매한 상품이라고 뜨지 않았으니, 지난번에 산게 허클베리가 맞겠지? 그러니까 사두고 안읽어서... 얼마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결제하다가 이전에 구매한 상품이라는 말을 보고 깜짝 놀라서 내가 언제, 하고 사무실을 막 뒤졌더니 있었다, 그 책이. 만약 그 문구가 뜨지 않았다면 난 또 샀을거야. ㅠㅠ  어쨌든 톰소여의 모험, 이 책은 30프로 할인. 아 좋아.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는 '니콜 크라우스'의 책. 그녀는 '조너선 사프런 포어'의 아내다, 아내다, 아내다.

원래 3만원어치만 담아뒀는데 4만원이상 1,500원 할인 쿠폰이 있어서 다시 4만원을 채우고 신한카드 사이트에 가서 3프로 할인받아 결재를 했는데, 결재를 다 하고 나서야 내가 쿠폰을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윽. 내가 4만원을 왜 채웠는데! 다시 급 취소하고 쿠폰 써서 재결재하는 삽질을. 후아-  

 

그리고 이 책들은 방출. 읽고 싶은 분 공개댓글로 말씀하시면 그냥 보내드릴게요. 다 제가 읽은 책들이고, 한권씩만 선택해 주세요. 그래야 다섯분께 드릴 수 있으니까요. 

김려령, 우아한 거짓말 (매버릭꾸랑님)
죠반니노 과레스키, 까칠한 가정부(미르비님)
히가시노 게이고, 11문자 살인사건(파비아나님)
야키모토 야스시, 코끼리의 등(베리베리님) 
김사과, 미나(이리스님)

 

 

 

내일부터는 『안나 카레니나 3』을 읽을 예정이다. 그런데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의 2권은 정말 무겁다. 많이 무겁다. 아주 무겁다. 뭐, 정말 팔이 떨어지진 않겠지만 팔이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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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5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5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5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5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1-16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잘 받았습니다. 잘 보겠습니다 ^^

얼마전에 친한 후배 가방에 책을 두고 와서 소포로 부치라고 하니까 이 녀석이 착불로 부쳐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생면부지의 다락방님도 책도 선물하고 착불로 안 부치는데, 제 후배녀석은... ㅋㅋ 그 녀석을 원망할게

아니라 제 소심함을 탓해야겠죠. 그 친구가 그래도 택배붙이면서 공기 빵빵하게 하는 책 다치지 않게 하는

장치는 했더군요. 귀엽게도~

아무튼 고맙습니다 잘 볼께요 ㅎㅎㅎ

다락방 2010-11-18 10:01   좋아요 0 | URL
저는 보고싶은 사람에게 선물하려는 의도였으니 착불로 안한게 당연한거고,
매버릭님의 후배분은 본인의 실수도 아닌데 소포를 부치는 행위까지 더해져야 했으니 착불로 하는게 당연한 것 같은데요. 저였어도 그런 경우엔 착불했을거에요.
네, 재미있게 읽으세요.

자하(紫霞) 2010-11-1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잘 받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사이즈의 책이어서 정말 좋았어요.
가방에 쏙 들어가니...
감사해요!다락방님*^^*

다락방 2010-11-19 18:22   좋아요 0 | URL
일본 여행갈 때 챙겨갈건가요, 베리베리님?
잘 다녀와요!
:)

차짠 2010-11-29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받은 지 한참 됐는데 이제야 댓글 남기네요 죄송합니다 ㅠㅠㅎㅎ
그동안 여러 일이 있어서 정신이 없어서요..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좀 마무리가 된 듯 하네요
책 정말 감사하구요^^ 지금은 까칠한 가족 읽고 있어요! 내일이면 드디어 가정부 읽을 수 있을 듯!
기대되네요 달콤한 선물 감사합니다:D

다락방 2010-11-29 14:43   좋아요 0 | URL
제가 읽어본 감상을 말씀드리자면, [까칠한 가족]쪽이 좀 더 재미있었습니다. ㅎㅎ
네, 까칠한 가정부도 재미있게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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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톨스토이는 정말이지 천재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그 소설속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된다. 안나가 되었다가 브론스키가 되었다가 레빈이 되었다가 한다. 안나가 보는 브론스키, 안나에게 보여지는 브론스키, 그리고 실제로 생각하고 있는 브론스키, 그 모두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톨스토이는 알고 있고,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심지어 톨스토이는 안나의 감정을 얼마나 섬세하게 철저하게 묘사했는지, 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안나가 행복한 이유, 안나가 절망하는 이유, 그 모두가 아주 고스란히 와 닿는다. 톨스토이는 정말 천재인가! 아니면 그는 전생에 안나로 살았던가! 

 

사실 톨스토이를 만나서 천재라고 감탄하기 전까지는 친구와 내내 '다니엘 글라타우어'가 얼마나 천재인가에 대해 얘기했다. 그도 역시 에미가 되었다가 레오가 되었다가 한다. 길고 다정하고 장황하게 이메일을 보내는 에미, 그러나 그럴때는 간단하고 조금은 사무적이기까지 한 톤으로 답장을 보내서 가슴을 후벼파는 레오. 표독스러워지고 집착하는 에미, 그럴때는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입안의 혀'처럼 구는 레오. 다니엘 글라타우어도 전생에는 사실 에미였던게 아닐까. 어떻게 여자가 느낄 수 있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이렇게 지독하게 잘 표현했을까. 

오늘 일기예보에서 어제보다 8도정도 기온이 내려갔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무장을 하지도 않았는데(부츠를 아직 못꺼냈다.....귀차니즘....), 안추웠다. 안추운거다! 난 안추웠다고. 오히려 조금 웃었다. 그냥. 웃고 싶어서. 그리고 이 책의 이 부분이 생각나서 히죽히죽했다.  

 

2분 뒤
Aw:
에미, 말문이 막혀버렸어요. 내가 몹시 놀랐다는 소리예요. 당신 목소리와 말투를 전혀 다르게 상상하고 있었거든요. 당신, 정말로 늘 그렇게 말해요? 아니면 목소리를 일부러 꾸민 건가요? 

45초 뒤
Re:
제 목소리가 어떤데요? 

1분 뒤
Aw:
끝내주게 에로틱해요! 포르노방송 진행자처럼. 

7분 뒤
Re:
그거 칭찬이죠? 한시름 놓았어요! 당신도 나쁘지 않은걸요. 당신은 글보다 말이 훨씬 대담해요. 목소리가 아주 허스키하게요. "내가 줄곧 이런 사람이랑 얘기하고 있었던 거야?" 이 대목이 마음에 들어요. 뭐랄까, 무척 방탕하고 섹시한 느낌이 나요. 그런 목소리라면 비아그라 같은 정력제 광고에 써도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p.304) 

와우- 후아- 정말이지, 

'끝내주게 에로틱'하며 '포르노방송 진행자'같은 목소리는 대체 어떤 목소리일까!!!!!!!!!!!!!!!!!!!!!!!!!!!!!!!!!!!!!!!!!!!!! 그런 목소리는 연습하면 되는걸까? 아, 나도 '네 목소리는 포르노방송 진행자처럼 에로틱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내가 살아생전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나는 「Harlem Blues」를 부르는 'Cynda Williams'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싶은데, 정말 그러고 싶은데, 그런 목소리를 가지게 된다면 그때는 나도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끝내주게 에로틱해요, 포르노방송 진행자처럼! 후아- 그러나 목소리는 타고나는 거겠지. 에로틱한 목소리 훈련법, 뭐 이런건 없잖아? 오늘은 정말이지 끝내주게 에로틱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입도 좀 컸으면 좋겠다고, 입술도 좀 두꺼웠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래야 은교씨처럼, 무재씨로부터 섹스해볼까요, 라는 말을 좀 듣게 되지 않을까. 

 

 

 

 

 

 

 

섹스 말인데요, 그게 그렇게 좋을까요.
좋지 않을까요.
좋을까요.
좋으니까 아이를 몇이나 낳는 부부도 있는 거고.
글쎄 좋을지.
궁금해요?
그냥 궁금해서요.
여기서 나가면 해 볼까요.
나갈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고 숲이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고 싶은데요.
좋아하면 되지요.
누구를요.
나를요.
글쎄요.
나는 좋아합니다.
누구를요.
은교 씨를요.
농담하지 마세요.
아니요. 좋아해요. 은교 씨를 좋아합니다. (pp.22-23) 

 

나는 원나잇은 어림도 없고,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한테도 섹스 앞에서는 '노'를 말하는 좀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여자사람인데, 무재씨라면, 그러니까 궁금하다고 말하니까 그럼 해볼까요, 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음, 그러니까, 이 책속의 무재씨처럼 따끈한 국물 먹으러 갑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음, 음, 음.......... 

아 패쓰. 

쓰다보니까 어째 간질간질해졌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톨스토이도 천재, 다니엘 글라타우어도 천재, 레오는 나쁜놈(응?), 은교씨는 무재씨와 섹스를 해도 좋겠다, 이며 그보다는 끝내주게 에로틱한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것 쯤이 되겠다.  

사과나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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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0-11-0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다락님 방통대 등록해요. 씨씨해봐야지.

다락방 2010-11-09 10:02   좋아요 0 | URL
방통대는 학교에 잘 안가지 않아요? 그런데 씨씨가 가능할까요? ㅠㅠ 여대는 나빠요!

비로그인 2010-11-09 11:04   좋아요 0 | URL
통대도 씨씨 가능합니다 다락님 :D

다락방 2010-11-09 11:52   좋아요 0 | URL
윽, 바람결님까지!
흐음...방통대.....저도 들어갈까요? 근데 무슨 공부를 선택해야 할까요? 그저 목적은 씨시인데. ( '')

무스탕 2010-11-09 12:25   좋아요 0 | URL
씨씨가 목적이면 남자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과를 선택하셔야 가능성이 좀 더 올라가겠네요. ㅋ

비로그인 2010-11-09 12:58   좋아요 0 | URL
음 다락님.. 일단 입학을 하시고, 목적달성후 무기한 휴학은 어떠실까요?

다락방 2010-11-09 13:11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남자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과는..어떤 과일까요? 전 여대를 다녀서 여자만 바글거렸던 생각밖에 안나요. 어떤과에 남자들이 많을까요? 이참에 국문학 수업 좀 들어볼까요? 저 문학과 글쓰기 공부 좀 하고 싶은데. 흐음..


바람결님/ 그러니까 저는 씨씨를 위해서 등록금을 지급해야 하는거로군요! 아, 돈이냐 씨시냐, 그것이 문제로다. orz

마늘빵 2010-11-09 13:32   좋아요 0 | URL
씨씨를 하기 위해 가장 싼 등록금을 내려면, 방통대가 결론이에요. 일단 캠퍼스에 들어가야하잖아요.

다락방 2010-11-09 13:39   좋아요 0 | URL
아, 방법은 방통대인가요. 저는 정녕 그곳에 가야하나요..orz

비로그인 2010-11-09 23:24   좋아요 0 | URL
음.. 다락님(쉿!) 국문과는 여초현상이 매우 두드러지는.. 아 그리고 통대 등록금 환불도 가능한 듯 합니다. 1학기 등록금 환불까지의 기간은, 다락님의 씨씨의 추억을 간직하는데는 짧지 않은 기간!

근데 정말 궁금한데.. 왜 다락님은 댓글에 씨씨를 두번이나 "씨시" 로 적은 거예요? ( ")..
씨시가 씨씨의 진화형인가.. 좀 궁금해집니다. ^^

다락방 2010-11-10 09:23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 저 바람결님 댓글 읽고 제 댓글 다시 봤더니 정말 씨시라고 썼네요. 이건 진화의 형태도 아니고 의도된 것도 결코 아니지요. 단순히 '손병신 모드'였을 뿐입니다. 하하하핫;;

방통대는 으음, 생각 좀 해봐야 겠군요. 국문과..여초현상.. 음.....

새초롬너구리 2010-11-10 11:43   좋아요 0 | URL
방통대 안가고 대학원가셔도 씨시하실 수 있잖아요 (여대의 대학원일 경우일지라도 서로 연계학점 주는데 있어요).

다락방 2010-11-11 08:55   좋아요 0 | URL
대학원을 저도 생각 안해본 바는 아니지만요, 숙제도 해야 하고 ㅠㅠ 등록금도 비싸고 ㅠㅠ
씨씨를 하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로군요! 흑흑 orz

다이조부 2010-11-09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의 댓글을 보면서 한동안 즐겨하던 오락이 생각났어요 오디션이라고 ㅋ

다락방 2010-11-09 11:52   좋아요 0 | URL
전 오락도 즐겨하지 않고(오락실 한번도 안가본 1人) 그래서 오디션이 뭔지도 모르네요. 오디션은 천계영의 만화로만 알고있어요. 하핫

무스탕 2010-11-09 12:28   좋아요 0 | URL
민해연(진산)의 소설 '오디션'도 있어요 :)

다락방 2010-11-09 13:12   좋아요 0 | URL
저 그거 읽었어요, 무스탕님!!!! >.<
그 3부작 시리즈중 커튼콜이 가장 좋았어요. 커튼콜만 가지고 있답니다! 우히히

무스탕 2010-11-09 15:02   좋아요 0 | URL
전 3부작 다 갖고 있지롱요~~ :)

다락방 2010-11-09 15:39   좋아요 0 | URL
안부러워요, 무스탕님! 저는 그보다 줄리아 퀸 시리즈를 가지고 있다면 엄청 부러울 것 같아요! 줄리아 퀸 아세요? 저 [마지막 춤은 콜린과 함께] 랑 [나를 사랑한 바람둥이] 엄청 읽고 싶은데 못읽었거든요. 근데 죄다 품절이에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신사와 유리구두]만 간신히 종종 꺼내 다시 읽어요. 흑. 되게 야한데 ㅋㅋㅋㅋㅋ

2010-11-09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1-0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 바보천치.

다락방 2010-11-09 13:14   좋아요 0 | URL
나도 바보천치에요. 난 바보천치등신이죠.

깐따삐야 2010-11-0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 중에 거창이 고향인 친구가 있는데 그 덜 자란 애기 같은 목소리로 사투리 섞어가며 꿀벌마냥 앵앵거리기 시작하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 쓰러집니다. 얼굴도 예쁘장한데 얼굴만 예뻤다면 파급 효과가 좀 덜했을 것 같아요.

다락방 2010-11-09 14:05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깐따삐야님. 덜 자란 애기 같은 목소리가 꿀벌마냥 앵앵거리는게 바로 제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아는 사람들중에 목소리 섹시한 사람이 누가 있나 막 이런거 떠올려보고 있는데 선뜻 생각나는 남자나 여자가 없네요. 엄청 에로틱한 목소리를 갖고 싶지만 또 듣고 싶기도 한데 말예요!! 악!

2010-11-09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0-11-09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며칠 전에 처음 만난 학생이 EBS 강사냐고 물었어요. 닮은 사람 있냐고 물으니까 목소리가 EBS 강사 같대요. 목소리 더 듣고 싶다고, 교과서라도 더 읽어달래요.ㅎㅎㅎ 그러다 결론은 동화책 읽어주는 느낌이라고 났어요. 자주 듣는 얘기에요. 정작 저는 동화구연 들어본 적 없는데...

다락방 2010-11-10 09:24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그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말투도, 표정까지도 동화구연의 느낌이 들어요. 다정하고 생글생글하고 따뜻하죠. 분노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에도 눈빛이 늘 따뜻해요. 그럴때는 좀 차가워지고 날카로워져도 좋을텐데, 라고 생각이 들만큼 말예요.

목소리 더 듣고 싶다고 교과서라도 더 읽어달라니, 와, 너무 멋지잖아요! 기분 정말 좋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흔히 하는 칭찬이 아닌 것을 누군가로부터 듣게 됐을때, 정말 기분 캡이잖아요! 히히

poptrash 2010-11-1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개그콘서트 슈퍼스타 KBS에 나오는 세레나 허 알아요? 전직 에로배우 출신이라는 컨셉인데 보통 그런 유머는 너무 과장되고 오버해서 싫어하는데 그 사람은 좋아요. 보면 너무너무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당거래에서 검사로 나오는 류승범이 "다들 열심히들 사는 구나 열심히들" 비슷한 대사를 하는 게 있는데 그런 느낌이에요. 한 번 보고 연습해보세요.

다락방 2010-11-10 11:06   좋아요 0 | URL
저 그거 알아요. 본적 있어요. 보면서 웃었어요. ㅎㅎㅎㅎㅎ
음, 그거 보고 연습하면 목소리가 에로틱해져요? 연습한다고 목소리가 에로틱해 지는거에요? 정말요? 되는거에요? 되는거냐구욧!
입술이 좀 더 옆으로 커졌으면 좋겠는데, 그런건 어떻게 해요? 이것도 뭐 방법 있어요? 알려줘봐봐요!

poptrash 2010-11-10 12:10   좋아요 0 | URL
그럼요. 결국은 분위기니까요. 부단한 연습!!!
입술이 좀 더 옆으로 커지는 건... 엄마말 안들으면 되요.
엄마말 안듣고 편식하면 입 양끝이 간질간질해지면서 입이 조금씩 커질 거예요.

다락방 2010-11-11 08:56   좋아요 0 | URL
분위기..섹시한 목소리는 분위기에서 온다, 그거죠? 그렇다면 분위기는 이미 저한테 충분한데요. ( '')
제가 그나마 입이 이정도 되는건 그동안 엄마 말 안들어서 그렇군요. 편식해서. 그치만 이제는 별로 편식을 안하니까 이지경으로 된 거군요! 옆으로 0.5센치씩만 찢고 싶어요. 큰 입이 좋아요!

레와 2010-11-10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어제 소소한 인터뷰(?) 했어요.
확인하는 과정에서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었는데, 아주 그냥 카메라 들고 옥상가서 던져버리고 싶었...;;


어떤 사람이 새벽 한시 넘어서 통화할 때 섹시하다고 한 것 같은데....( ") 먼산~ ㅎ

다락방 2010-11-11 08:58   좋아요 0 | URL
무슨인터뷰, 무슨인터뷰?
전시회 때문에 인터뷰 한거에요?
녹음된 내 목소리는 정말 마음에 안들죠? 저도 노래방에서 제가 노래 부른거 녹음한 적 있는데 완전 헉 스러웠어요. 테이프 던질뻔;;

새벽에 잠을 깨워 통화하면서 목소리 아주 섹시하다고 했던 경험은 나도 있기는 해요. 그 뒤로 뻔질나게 새벽에 깨우더군요. 그 목소리를 듣겠다고. 하하하하. 자다 깨면 조금쯤은 섹시한 목소리를 갖게 되는가봐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10-11-10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11-11 08:58   좋아요 0 | URL
고기 많이 먹으면 어떡할라고!

유부만두 2010-11-1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 아- 는 어떤 톤으로 들어야 하나요? ^^;;

다락방 2010-11-11 08:59   좋아요 0 | URL
음...그러니까, 음....후아-는 가슴 깊숙한 저 밑에서 끌어져 나오는 깊은 한숨같은 톤으로 들어야 해요. 이건 섹시한 톤이 아니라, 어떤 자기 원망? 자기 비하? 그 정도의 톤인겁니다, 유부만두님. 하하.

모닝커피는 하셨어요? 전 한 잔 더 마실까 싶어요.
:)

2010-11-10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1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브론스키는 키릴 이바노비치 브론스키 백작의 아들인데, 페테르부르크의 젊은 귀공자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표본 중 하나야. 난 그자를 트베리에서 알게 됐어. 내가 거기에서 근무할 때 그자가 신병 징집을 하러 왔었거든. 재산도 상당하고 미남인 데다 발도 넓고, 시종무관 이겠다, 게다가 또 무척 귀엽고 착한 사내란 말야. 아니, 그저 단순히 착하기만 한 게 아니야. 내가 이곳으로 돌아와서 알게 된 바로는 교양도 있고 아주 총명한 사내야. 말하자면 뭐랄까,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전도양양한 사내야." (p.85) 

그러나 브론스키는 내게 그다지 매력있게 다가오질 않는다. 착한 사내? 귀여운 사내? 흐음, 글쎄. 아직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브론스키는 정말이지 매력있는 남자가 아니다. 전혀 내가 사랑에 빠질 만한 남자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는 내게 평범한, 세상의 모든 다른 남자들과 다르지 않은 남자인데, 그런데 그를 다른 남자들과 구분 지어주는 특징이 있다. 단 한가지의 특징, 그는, 안나를 건드린다. 안나의 내면을 건드리고 안나의 눈빛을 건드린다.  

그런데 갑자기 거기서 또다시 전혀 새로운, 뜻밖의 여자가 돼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안나에게서 그녀 자신도 경험이 있는 성공에서 오는 흥분의 빛을 발견했다. 그녀는 또 안나가 스스로 불러일으킨 환락에 도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키티는 이 감정과 이 조짐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안나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 눈 속에서 떨리며 불타오르는 광채를, 저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지게 하는 행복과 흥분의 미소를, 그 동작에 나타나는 한층 또렷한 우아함과 확실함과 경쾌함을 보았던 것이다. (pp.164-165)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 구분지어주는 특징은 바로 그런데서 오는 것 같다. 나를 움직이는 사람, 나를 빛나게 하는 사람. 그러니까 나를 자꾸 웃게 만드는 사람, 나를 자꾸 설레이게 만드는 사람. 다른이들이 보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데, 그다지 다를바가 없는데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그 한가지의 특징.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를 완벽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드는 게 아닐까. 게다가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더할나위 없이 적극적이다. 이미 남편이 있고 사교계에 명성이 자자한 안나에게.  

"난 당신이 이 기차에 타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어째서 돌아가세요?" 그녀는 승강구의 난간을 붙잡으려던 손을 내리고 말했다. 억누를 수 없는 기쁨과 되살아난 생기로 그녀의 얼굴이 빛났다.
"어째서 돌아가느냐구요?"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되물었다. "내가 당신이 계시는 곳에 있고 싶어서 왔다는 것은 아실텐데요. 난 이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p.206) 

후아- 난 이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 당신의동작 하나하나도 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잊을 수 없습니다‥‥‥" (p.207) 

아이쿠야, 이 고백을 듣는 안나가 "그만하세요, 이제 그만하세요!" (p.207) 라고 밖에 대체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브론스키의 이런 행동은 꽤 부럽기까지 하다. 

그는 자기 객차 옆에 멈춰서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 번 더 봐야겠다.' 그는 저도 모르게 히죽 웃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 걸음걸이, 그 얼굴을 봐야겠다. 틀림없이 무슨 말을 하겠지.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그리고 어쩌면 생긋 웃어줄지도.' (p.210) 

어릴적에 한 남자사람에게 '여자는 먼저 고백하기 힘들잖아요'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남자도 힘들어요'라고 말했더랬다. 그때야 나는 비로소, 아 그렇지, 남자라고 먼저 고백하는게 쉬울리가 없어, 라는 생각을 했던게 문득 생각났다. 누구든 상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일이, 그러니까 상대에게 어쩌면 거절을 당할지도 모르면서도 고백을 한다는 행위가 남자라고 쉬울리 없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고 애태우는 마음에 대해서도 같을거다.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 무언가 내게 말을 건네주길 바라는 마음.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고 있다면 남자든 여자든 모두에게 솟아나는 마음이 아닐까.  

그러나 사랑은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가. 게다가 자신의 처지가 약하게 느껴질수록 불리하게 느껴질수록 더 그렇다. 

"만약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녀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제발 내 마음이 안정되도록 해주세요." (p.277) 

안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거다. 안나가 기혼자여서, 아이가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는게 아니라, 사랑을 시작할때, 그리고 사랑을 진행해 감에 있어서 우리 모두는 조금쯤 불안하지 않을까. 상대가 나에게 확신을 주기를, 안정되도록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마찬가지. 나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내 마음이 안정되도록 해달라고.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우리는 친구가 되자고 말한다. 그러나 오, 브론스키, 그는 얼마나 용감한가!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도 알고 계시잖아요. 우리 두 사람은 그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되든지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되든지 둘 중 하나예요.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p.278)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니, 오!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단호함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오전중에 아주 기분 나빠지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분명하게 이 통화가 싫고 그렇게 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상대는 끝까지 본인의 말을 들으라고 했다. 그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나보다 직급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그사람이 끊기 전까지 전화를 끊을수가 없었다. 그 전화를 끊고 나서는 내내 기분이 나빴다. 산책을 가자는 동생들에게 너희들끼리 다녀오라고 했다. 아침부터 텔레비전에서 기사식당 돈까스를 보고 먹고싶다고 노래를 했었는데, 산책을 다녀오던 동생들이 전화로 불러낸다. 돈까스 먹자고. 나는 나가서 돈까스를 함께 먹으면서 이 기분을 어떻게 달랠까, 너무 답답하다, 돈까스를 씹으며 고민하다가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올림픽공원으로 갔다.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한적했고 바람이 불었다. 나는 잠깐 멈춰서서 사진을 찍었다. 

올림픽 공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은행잎도 단풍잎도 아주 예쁜 색깔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은행잎들을 두 발로 꾹 밟아보았다. 

 곳곳의 벤치에는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올림픽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아주 많았는데, 나는 아주 예쁜 여자사람을 보았다. 그녀는 구두를 신고 있었고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도 예뻤고 머리도 예뻤고 몸매도 예뻤다. 그녀는 한 남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나란히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는 그 커플은 보기에 아주 좋았는데, 나는 문득 저 남자는 저 여자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렇게 예쁜데, 저렇게 예쁜 여자와 이렇게 좋은 곳을 함께 걷다니. 지금 저 남자는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내 맘대로 추측을 해봤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벤치에 홀로 앉아 책을 좀 읽어야지 싶어졌다. 오늘 내가 준비한 것은 맥주 대신 『안나 카레니나 2』였다. 은행잎이 수북하게 쌓인 바로 앞의 벤치에 앉아 자전거를 세워두고 책을 읽으면 기분도 나아지고 집중도 잘되서 후딱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다섯장정도 읽고 나니 손이 시려웠다. 몹시 추웠다. 이빨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나는 후다닥 책을 가방에 넣고 다시 자전거를 몰아 집에 왔다. 집에 와서도 내내 추워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초저녁 잠을 조금, 잤다. 

다시는 추운데 혼자 나가서 책 읽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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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나 그리고 호박전
    from 마지막 키스 2010-11-11 17:05 
    친구와 『안나 카레니나』를 함께 읽고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친구와 같은 책을 동시에 읽어 간다는 건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짜릿함을 준다. 그 책 내용이 슬펐든 어쨌든간에.   친구와 나는 수시로 자신이 인상깊었던 장면을 문자메세지로 찍어준다. 우리는 같은 책으로 읽고 있기 때문에 쪽수를 써준다. 서로가 밑줄 그은 부분이 같다고 환호를 하기도 하고, 톨스토이는 천재라고 자꾸만 문자 사이로 얘기한다. 
 
 
... 2010-11-0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요일부터 읽으신다더니 많이 읽으셨네요, 다락방님. (태그를 보며) 톨스토이는 천재 맞아요 ㅋ. 전 부활이랑 다른 중단편도 많이 읽었는데 천재가 맞더라구요. 말씀드렸듯이 알라딘 책상자에서 사은품으로 비비안 리가 주인공인 안나 카레니나 DVD가 나왔는데 이게 무슨 사은품인지 당최 모르겠네요... 우선 왔으니까 받아두긴 했지요, 크~

내일은 오전에 비가 온다고 하고, 일요일은 저물어 가고 있어요.

다락방 2010-11-08 13:10   좋아요 0 | URL
진짜 천재인것 같아요, 브론테님. 안나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걸 그대로 표현해낸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 안나고 하고 싶은 말들을 그러니까 안나가 느끼고 생각하는 사랑과 지겨움과 죄책감과 하는 그 모든 것들을 그렇게 잘 써놓았을까요? 아, 감탄하고 있습니다. 얼른 읽고 싶은데 어제는 술마시고 자느라 못읽고 지금은 회사라 못읽고..답답해요.
저는 안나 카레니나를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로 먼저 보았거든요. 대학시절에요. 처음에 안나가 기차 타고 오는 장면만이 생생하고 그 다음부턴 줄곧 졸았던 것 같아요.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보면 느낌이 정말 다를것 같아요!

월요일이 가고 있습니다.

2010-11-07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8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ptrash 2010-11-0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자전거 타고 싶어요.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일 거다, 하고 남자가 여자에게 말해주면서 ("저기 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은 마피아인데, 떼인 돈을 받지 못해 보스한테 혼나고 여자친구 한테도 이별을 통고 받아서 씩씩 대면서 삼겹살을 먹으러 가는 중인데 혹시 모르지, 가다가 오소리라도 만나면 즉석에서 잡아 먹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잘 지켜봐" 라는 식으로) 시시덕 대는 영화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요. 밤을 샜더니 졸려서 자야겠어요.

다락방 2010-11-08 13:13   좋아요 0 | URL
추웠어요, 팝님. 이 날씨에 자전거는. 귓가로 바람이 슝슝 부는건 기분이 좋은데 이 날씨의 이런 바람은 아휴 추웠어요. 손도 시렵고 춥고 이빨이 달달 떨려요.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추워가지고 ㅠ0ㅠ

지금쯤 잠 잘자고 있어요? 와타야 리사 꿈 말고 니콜 크라우스 꿈 꿔요!

2010-11-08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8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0-11-0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신발 속에 숨어있을 다락방의 하얀발.

오늘은 새로운 날!

다락방 2010-11-08 13:14   좋아요 0 | URL
저 신발 속에 숨어있을 다락방의 못생긴 발 ㅋㅋㅋㅋㅋ
그 새로운 오늘도 이미 지나가고 있습니다. 히융~
저녁은 뭘 먹을까나...( '')

깐따삐야 2010-11-0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저 한 마디에 찬 바람과 뜨거운 바람이 동시에 휑-

저도 어제 앳되고 예쁜 아가씨를 봤는데 남자친구가 단풍나무 아래에 그 아가씨를 세워놓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더군요. 고와 보이는 한편 니들도 어디 결혼해봐라, 하는 비뚤어진 마음도 있었답니다. 그러는 제가 참 흉했는데 사실은 사실이니까, 애써 합리화.ㅠ

다락방 2010-11-08 13:15   좋아요 0 | URL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진짜 대박 아닙니까? 저 시대에 저런 대사를 내뱉을 수 있는 상황이라니! 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상대가 누구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제가 가슴에 품은 상대라면, 아이쿠야, 이러지 마세요, 하면서 좋아 죽었을지도 모르겠어요. ㅠㅠ

전 말이죠,
요즘엔 젊은 여자들이 아주 예뻐요. 그냥 막 예뻐요. 젊다는 것 만으로도 큰 매력요소이니 웃고 발랄하게들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더 예뻐지니까요! 저, 나이 드나봅니다. ㅠㅠ

2010-11-08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8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1-0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은 진짜인가요?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다락방 2010-11-08 13:16   좋아요 0 | URL
오늘은 눈이 온다고, 일기예보에서 그랬다고, 우리 엄마가 나 출근길에 말해줬는데,
만약 정말 눈이 온다면,
저는 최소한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리거나,
콱- 죽어버릴랍니다.

치니 2010-11-0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던 거 같은데 브론스키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이런 제길.
뭘 읽으면 뭐하나 맨날 까먹는데.

눈이 올 거 같지 않아요. 그러니 울지도 죽지도 말아요. ^-^

다락방 2010-11-08 14:49   좋아요 0 | URL
ㅎㅎ 그건 저도 마찬가지죠! 게다가 안나 카레니나 같은 작품은 말입니다, 치니님. 저는 지금 읽으면서 지금 읽기에 얼마나 좋은 작품인가 싶어요. 만약 이 작품을 고등학교때 읽었다면, 이십대 초반에 읽었다면, 아마도 톨스토이가 천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 거에요.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책도 영화도 타이밍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잠깐 외근 다녀왔는데 비가 내렸어요. 울지도 죽지도 않을겁니다. 힛 :)

무스탕 2010-11-0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은행 갔다왔는데 비왔어요. 째끔씩 날리더라구요. 누구도 우산을 쓰는 사람은 없었어요. 바람도 많이 불었어요. 그래도 모두 앞으로 걸어가더라구요. 난 뒤돌아서서 뒤로 걷다가 가로등에 부딪힐뻔 했는데 2cm간격으로 피했어요.

여자가 먼저 고백하기 힘든거 진짠데, 그래도 먼저 했는데 반응이 없으면 그 남잘 어떻게 할까요? 죽여버릴까요? ㅋㅋ

다락방 2010-11-08 14:51   좋아요 0 | URL
저는 나가려고 했다가 비 오는 걸 알게 되서 우산을 가지고 나갔어요. 사람들은 정말 우산 없이 걷더군요. 그런데 저는 꿋꿋하게 우산을 들고 걸었어요. 이것이 비여서 다행이야, 눈이 아니여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면서요.

그쵸, 고백하기 힘들죠. 그리고 고백하지 않고 내내 끙끙대며 가슴앓이 하기도 힘들구요. 이러나 저러나 반응이 없다면, 그것이 상대의 죄는 아니잖아요, 그쵸?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상대를 죽일수가 있나요. 콱- 내가 죽어버릴래요. 흑흑 ㅠㅠ (신파댓글)

L.SHIN 2010-11-0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하군요.
다락님의 부지런함과 점점 더 깊이 있었지는 글솜씨는 매번 감탄스러워요.
잘 지내고 계시죠? ^^
사진이 참 예쁩니다. 저도 가끔은 제 발(정확히는 신발,ㅋ)을 사진에 담아보기도 하죠. 혼자 보곤 하지만..^^;

마태우스 2010-11-09 06:31   좋아요 0 | URL
앗 엘신님이다!

다락방 2010-11-09 09:06   좋아요 0 | URL
컴백한게 언젠데 이렇게 뜨문뜨문 얼굴을 보입니까, 엘신님!
저도 제 발을 카메라에 잘 담아요. 물론 혼자보긴 하지만 말입니다. 누구에게 보여줄만한 발이 아니어요. 하하하하
바깥이 많이 추워요, 목도리 하고 다녀요!

마태우스님은 몸이 좋아질때까지 가급적 외출을 삼가해주세요!

2010-11-09 0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불현듯 생각한건데, 내가 고단한 일상을 사는 건 스스로 삽질을 잘해서가 아닌가 싶어졌다. 그러니까 어제도 평소와 다름없이 술을 마시고(응?) 강남역에서 열차를 탔다. 술은 많이 안마셨다. 그래서 취하지도 않았다, 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너무 피곤해서 (월요일도 술, 화요일도 술...) 눈을 감았다. 이제 잠실쯤 됐으려나 싶어 눈을 떴는데 오, 눈앞에 사당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아주 찰나의 시간동안 패닉에 빠졌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본다. 여전히 사당이다. 대체 나에게 무슨일이 일어난건가. 나는 후다닥 내린다. 그리고 반대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당연히 집까지 도착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렸고, 집에 도착하니 기진맥진. 아 젠장. 힘들어 ㅠㅠ 

집에 도착해서 아빠가 받아둔 알라딘 택배박스를 뜯어 밀레니엄 여섯권을 피아노 위에 쌓아두고, 시집을 펼쳐 들었다. 난 시집안의 시들을 천천히 음미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래서 시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시집을 주문해 두고서도, 어제 친구가 어떤 시집을 샀냐는 말에 제목이 기억 나질 않아 말해주질 못했다. 시인이 누구인지도, 시집의 제목도 생각이 나질 않아서.. 무슨 생각으로 주문을 하는걸까, 나는? 

어쨌든 이 시집을 어제 '훑어본' 결과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는 거다. 내가 산 시집이라고 해봤자 몇 권 안되는데, 만족도가 가장 큰 시집은 '박연준'의 시집이었다.  

물론, 이 시집 안에도 몇개의 눈에 띄는 시가 있다.  

 

 

오후 

빛줄기에서 떨어져
멀어져 ‥‥‥ 가는 
가는,
햇살 

오후의 느낌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낯익은 그림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그러다
당신의 맘속에
자리를 틀겠어요
 

아, 당신의 맘속에 자리를 틀겠어요, 라고 말하면 자리가 틀어지나. 이 시 때문에 이 시집을 사기로 결정했었다. moon 님이 페이퍼에 이 시를 올려주셔서.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라니. 그러다 당신의 맘속에 자리를 틀겠어요, 라니. 정말 후아- 스럽다. 또, 

사랑이 익다 

꽃들은 수증기처럼 피어올랐다 땅속으로 스며들어
버리고
우린 아늑한 저녁을 위해 무작정 길을 걸었다 

아! 사랑이 익어갈 때 무작정 길을 걸으면 아늑한 저녁을 만날 수 있구나. 아늑한 저녁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무작정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가능하구나. 사랑이 익어갈때 쯤엔. 후아- 

 

오늘 아침. 여느때와 다름없이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정말이지 피곤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몇개의 노래들을 들으며 잠실에서 눈떠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그런데 여기는 어디쯤일까 하고 잠깐, 눈을 떴는데!  

오! 눈 앞에 그가 있었다. 그로 말하자면, 고등학생이다. 교복을 입고 있다. 아마 1학년이나 2학년쯤 된 것 같다. 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오늘 벌써 세번째 만난다. 아니, 만난다고 하면 안되지, 나 혼자 '봤다'. 그 학생이 버스 안에서 유독 눈에 띈 건 내가 아는 누군가를 엄청 닮아서인데, 나는 그를 닮았다는 것에서 오는 짜릿함과 반가움 때문에, 맨 처음 그를 봤을 때는 버스 안에서 안아버리고 싶었다. 확 끌어안고 뭔가 반갑다고 말해버리고 싶었던거다. 

스물 두살때, 어른 남자를 막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지하철이나 길에서 만나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그 사람은 어릴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저기 저 학생처럼 옷을 입었을까, 저기 저 학생처럼 앉아 있었을까 등의 생각들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저 아이는 자라서 어떤 남자가 될까, 혹시 이러이러하진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버스안에서의 그 학생을 보면서는, 너도 잘 자라면 '그' 처럼 될 수 있어, 하는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드는것이다. 후훗. 피곤에 찌들었던 나는 그 뒤로 눈을 감지 않고 계속 그 학생을 흘끔거렸다. 그냥 베시시 웃음이 나왔다. 그 사람 많은 버스 안에서 아마 누군가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봤다면, 그리고 내 시선이 닿는 곳에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면, 아마도 나를 변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내가 그 학생에게서 본 건, 그 학생이 아니라구요, 아니에요! 

자꾸만 실실 쪼개다가 '박희정'의 만화 『호텔 아프리카』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나는 그 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가슴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턱, 막혀버리게 했던 바로 그 장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가 있었다.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그가, 있었다.
마법처럼! 

아, 난 정말 이 장면 좋아했는데! 

 

사람들은 우연한 계기로 만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고 이 만화에서는 말한다.

정말 그렇다.  

 

술 끊어야지. 다시 마실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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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0-11-0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쿵-. 쿵-. 쿵-. 쿵-. 쿵-.

정확하게 다섯번. 오늘 다락방 페이퍼를 보며 내 가슴이 뛴 숫자. 다섯번.

:)

다락방 2010-11-03 13:34   좋아요 0 | URL
자꾸만 자꾸만 가슴 뛰게 해줄게요, 내가. 그렇게 해줄게요, 레와님. 므흣 :)

2010-11-03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1-0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앞에서 청소하던 아델라이드가 생각나요.

다락방 2010-11-03 13:36   좋아요 0 | URL
아델라이드라면, 저 여자의 아들이었나요? 전 저 장면 말고는 이 만화가 전혀 기억나질 않아요. 저주받은 기억력이죠. 하핫 ;;

Kir 2010-11-0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다시 마실 때까지 술 끊으신다는 거 찬성입니다.
속 버리셔요, 그리고 속 버리시면 커피와 술을 즐기기 힘들어요.
그러니 커피와 술을 장기적으로 즐기기 위해서(?)
당분간이라도 조절하심이 좋을 것 같아요.

다락방 2010-11-04 08:30   좋아요 0 | URL
그쵸, Kircheis님? 한 이틀만이라도 술을 안마시고 견뎌봐야 겠어요. 그런데 어제 술을 안마셨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싶어지네요. 흑흑 ㅠㅠ
커피는 내려 마시고 있어요. 그런데 커피 마시기 전에 사과를 반쪽 먹었으니, 음, 괜찮겠죠? (뭐가..)

저 건강하게 잘 지낼게요.
:)

마노아 2010-11-0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가 완전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박희정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았어요. 그리고 이번에 완결된 마틴&존은 왜 대체 아직도 안 오는 걸까요.ㅜ.ㅜ(결국 1일에 주문한 녀자..;;)

다락방 2010-11-04 08:31   좋아요 0 | URL
저는 저 작품을 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지요'라는 이름을 따서 자신의 닉네임을 정했던 남자를 알고 있어요. 전 저 작품보다는 그 남자를 더 사랑했어요. ㅎㅎ

저도 1일에 이미 주문한번 끝냈고 오늘 전태일 평전을 살까 어쩔까 계속 망설이고 있답니다.

sslmo 2010-11-04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을지로 순환선을 아주 아주 싫어해요.
술만 마셨다 하면 마냥 순환을 하는 누군가를 알아요~^^

다락방 2010-11-04 08:32   좋아요 0 | URL
저는요, 양철나무꾼님..술 안마셔도 그래요. ㅠㅠ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기도 하고 반대방향 타기도 하고. 멀쩡한 정신에도 그래요. ㅠㅠ
길치 방향치..후아- 네비게이션을 사다가 엉덩이에 달고 다닐까봐요. 흑.

sslmo 2010-11-07 04:55   좋아요 0 | URL
가슴에 보이는 빨간 단추를 달아놨으면 싶어요.
아니다,RC장치를 달아놨으면 좋겠어요.
아니다,연어를 한마리 가슴 속에 키우는 건 어떨까요?^^

다락방 2010-11-07 11:09   좋아요 0 | URL
네비게이션 역할을 해주는 잘생기고 젊은 청년을 데리고 다니는건 어떨까요, 양철나무꾼님? 으흐흐흐흐흐(음흉하게 웃는다)

카스피 2010-11-0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술을 안먹어도 차만 타면 졸아요.아마 어려서 차멀미가 심해서 생겨난 버릇인듯한데 잘 안고쳐지네요^^

다락방 2010-11-04 08:46   좋아요 0 | URL
지하철안에 유독 조는 사람이 많은건 지하철 공기가 나빠서라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나요. 저도 지하철 안에서 꽤 잘 졸거든요. ㅎㅎ
물론 졸아서 잘못 내린건 아니지만 ㅜㅡ

stillyours 2010-11-0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아요. 나도 딱(!?) 세 편!
<오후>, <사랑이 익다>와 <낯익은 그림>!

다락방 2010-11-04 09:08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다른 시는 와닿질 않더라구요. 하하하핫
짧은 시들만 후두둑 와서 때리고 가죠.

다이조부 2010-11-0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 하면 푸웃 하고 웃겠지만, 나이를 먹는걸(?) 실감하는게 20대때는

고딩들 을 봐도 감정몰입이 되고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냥 꼬맹이 애들처럼 보여요.

근데 며칠 전 눈에 부실정도로 훈훈하지도 않은데 계속 집중하게 하는 고딩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뚫어지게 쳐다봤네요. ㅋ

다락방 2010-11-04 15:47   좋아요 0 | URL
저는 [볼수록 애교만점]에서의 고딩에는 엄청나게 이입해요. ㅎㅎㅎㅎㅎ

자하(紫霞) 2010-11-0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남자사람 다리(만화)가 너무 길어요!
저런 훈남은 세상에 없어 없어!!
아사히를 저번 주말에 사놓고 냉장고에 박아놓고 있는 1人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죠.ㅋㅋ)

다락방 2010-11-06 00:19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 너무 취해가지고 오면서 우동 한그릇을 먹었어야 했는데 우동집에 사람이 너무 많아 빈 자리가 없는 관계로 그냥 들어왔더니 머리가 팽팽 돌고 눈이 핑핑 돌아요. 아놔...
그런데 시원한 맥주로 한모금 입가심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 미친 생각은 왜 드는걸까요?
(여기까지 치면서 오타 이백번 난 1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