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 (사랑합니다!) 의 단편집 『축복받은 집』을 읽고 있다. 첫번째 단편부터, 오,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아주 마음에 든다. 첫번째 단편 「잠시 동안의 일」은 유산으로 아이를 잃은 삼십대 초반의 젊은 부부가 주인공이다. 이 둘은 사이가 좋았으나 아이를 잃고 난 후로 같이 식사하는 일도 없고 대화도 줄어들었고, 서로 한 공간에 있기조차 불편해지고 만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동안 저녁 여덟시에 정전이 될 거라는 공지를 보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둘은 정전이 되기때문에 촛불을 켜두고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게 되고, 그 어두운 곳에서 아내는 그에게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얘기 해보자고 한다. 그의 아내가 먼저 얘기한다. 

"당신의 아파트에 처음 들어갔을 때, 당신의 주소록을 살짝 들추어 보았어요. 내 이름을 적어 놓았나 싶어서요. 그때가 만난 지 2주쯤 되었을 때예요." (p.30) 

그러자 남자는 처음 데이트 했을 때, 자신이 왜 레스토랑의 웨이터에게 팁 주는걸 잊었었는지 얘기한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나는 당신과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묘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
그는 그녀에게는 물론 그 자신에게도 처음으로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생각 때문에 나는 정신이 산만해졌어." (p.33)
 

어우, 정신이 산만해졌다니. 비슷한 표현으로는 정신 사납다 쯤이 있겠다. 나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지다니. 정말 근사하다.
그 다음날의 정전. 여자가 얘기한다. 

"당신의 어머니가 지난번 우리 집에 다니러 왔을 때의 일이에요."
그녀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야근이 있다고 말하고서 질리언과 함께 마티니를 마셨어요." (p.38)
 

남자가 얘기한다. 

"나는 대학 다닐 때 동양문명사 시험에서 커닝을 했어." (p.39) 

 

사실 이 이야기는 위에서 인용한 문장들이 보여주는 달콤한 분위기의 이야기는 아니다. 또 나는 사랑하는 남자 여자가 서로에게 백프로 솔직해질 필요는 없다고도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겐 저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몇가지쯤은 가지고 있고,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숨김없이 모든걸 다 얘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는, 한번쯤 이렇게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불을끄고, 대신 촛불을 켜두는거다. 그리고는 그동안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해보는거지. 

당신에게 처음 연락이 왔을 때, 엄청 기뻤어요. 아닌 척 했지만 사실 나,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푹 빠졌거든요. 

반드시 촛불만 있어야 한다. 이런말, 불 켜놓고 하면 얼굴 빨개지잖아?  

한번도 그런적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테지만, 당신 핸드폰에 나는 단축번호 몇번인지 궁금해서 핸드폰 뒤져보고 싶어요.  

나는 단축번호를 지정하지 않고, 단축번호에 의미도 두지 않고, 단축번호로 전화걸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단축번호는 어떤 의미가 있는건 아닐까.  

매일 잠들기전에 잘생긴 남자연예인 생각한다는 거, 뻥이에요. 당신 만난 뒤로 당신 생각만 했어요. 

뭐, 이런 말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때 하는것도 좋을 것 같다. 아, 물론, 나 잠들기 전에 잘생긴 남자 연예인 생각하고 뭐 그러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단 둘이 정전속에 몇시간을 함께 있는다고 해도 내 모든 비밀을 말할 수는 없을거다. 이 소설속의 여자도 가장 중요한걸 내내 숨기고 있었으니. 아무리 어둠속에 있어도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끝내 할 수 없지 않을까. 음, 글쎄. 잘 모르겠다. 음, 역시 모르겠다. 음, 진짜 모르겠다. 암튼 줌파 라히리는 좀 짱인듯. 

 

이 책은 '40자평'을 쓰면 적립금5만원을 주는 이벤트 중인데, 그래서 뭔가 근사한 40자평을 쓰고 싶었는데, 아, 정말이지, 내가 이 책을 읽고 뭘 느껴야 할지를 모르겠다. 뭔가가 느껴질 듯 느껴질 듯 하는데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고, 그 희미한 느낌조차도 좀 헷갈린다.  

 

이 책은 하드커버도 아닌데 엄청나게 무겁다. 그리고 밀실살인인데 뭐가 이렇게 복잡해. 어느 통로로 침입이 가능하고 어디로 왔다갔다 하는게 가능하고 하는 설명들을 계속 하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머릿속에 전혀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이건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읽었을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책속에서 아파트에 대해 엄청 설명을 해줘도 대체 이 아파트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없는 거다. 뭐 별로 그리기도 싫고. 그러니까 나는 공간적인 감각이라고 해야하나, 공간 파악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엄청 모자란 인간인건데, 길치에 방향치, 그것도 모자라서 내가 지금 있는 층수가 몇층인지도 에스컬레이터 몇번 내려가면 도무지 종잡지 못하는 인간인데, 이런 (건물)구조적 설명이 가득한 책은 어휴, 완전 나를 미치게 한다. 밀실 살인이면 그냥 꽉 막힌 밀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만 하면 좋았잖아. 왜 천장을 뜯어보고, 화장실 천장과 연결되어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방 저방 막 연결되고 아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 토요일.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내게 그랬다. 우리 한달에 한번씩은 만나고 살자고. 처음 만난 사람이 또 만나자고 하는것, 가끔 보는 사람이 자주 보자고 하는 것, 만났다가 헤어지면서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것. 이런건 쫌 좋다. 그러니까 뭐랄까. 괜찮은 사람 인증쯤 된달까. 나를 보고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건 참 괜찮은 기분을 안겨다 준다. 음, 참 괜찮은 기분. 

- 1월1일. (나의)이십대부터 나를 알던 친구를 만났는데 갑작스레 그리고 우연히 삼십대부터 나를 알게된 친구와 합석하게 되었다. 그러자 삼십대때부터 날 알던 친구가, 이십대때부터 날 알던 친구에게 물었다. 

"다락방님은 이십대때 어땠나요?" 

아, 무슨 이런 질문을 하지? 이런게 궁금했나? 열나 참신한데? 어떻게 이런 예쁜 질문을 하지? 난 그 자리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했다. 예쁜 사람들은 원래 예쁜짓만 하는구나..  

- 어제. 후버까페로부터 카드를 받았다. 술과 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카드에는 쓰여져 있었다. 나는 나한테 술과 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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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든것들의 처음, 그 부질없음
    from 마지막 키스 2012-11-08 09:46 
    어느날 문득 다시 읽고 싶어졌을 때,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를 읽는것이 가능하다는 게 단편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장편소설이라면 책장에서 꺼내어 침대로 가 앉아 아무곳이고 펼쳐야 하고, 부분만을 읽어야 하지만(다 읽으면 잠 못자요), 단편소설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 완전한 이야기를 잠깐동안 만나볼 수 있다. 나는 장편소설을 좋아하지만, 잠들기전 문득 어떤 단편들이 떠오르는 때가 있다. 어제는 아침부터
 
 
2011-01-12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2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1-1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여. 반가워여.
제가 가끔 와서 다랑방님 페이퍼 되게 열심히 읽는 거 아셨어여?
몰랐죠? 아하하.
문득 생각난 건데, 어느 날 다락방님 페이퍼에 등장하는 책을 하나하나 다 담아둔 적이 있었어요.
구매로 이어졌는지 어떤지는 비밀.^^
오늘 기분이 되게 좋아서 몰래 왔다가 한마디 적고 갑니당.
노하지 마시기를.^^

다락방 2011-01-12 18:22   좋아요 0 | URL
저도 가끔 아이리시스님 서재에 갔었답니다. 서재 퍼스나콘 사진을 크게 확대해 보기도 했는걸요. 아이리시스님도 몰랐죠?

아이리시스님이 오셨는데, 오셔서 이렇듯 말도 걸어주셨는데 제가 왜 노합니까.
:)

레와 2011-01-1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몇살때 만났더라..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다락방은 한번도 날 실망 시키지 않았어요.
알면 알수록 당신 참 괜찮은,은 부족하고 제대로 진국인 사람이라. ^^
다락방 덕분에 내가 꽤나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 같아요.


그나저나 옛날엔 나만 좋아한다고 그러더니, 이 여자사람 이젠 바람둥이가 되어 버렸어. 에힝~

다락방 2011-01-13 08:11   좋아요 0 | URL
우리는 20대에 만났어요, 그쵸? 그러고보면 우리도 알아온 시간이 꽤 되었어요.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히 좋다니, 정말 신나지 않아요?
레와님은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고, 또 그랬을거에요.

전 여전히 레와님을 가장 좋아해요. 창원에 사는 사람들 중에선.. ( '')

=3=3=3=3=3=3=3=3=3=3=3=3=3=3=3=3

2011-01-12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3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3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3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3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2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3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1-1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정전이 공포의 소재가 아니라 이렇게 로맨틱한 이야깃거리가 되다니 참 근사해요.
정전이 되어서 뭔가 하나씩 털어놓을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도 두근거리고, 무언가를 묻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것도 막 설레어요. 전 다락방님이 더 짱인 것 같아요.^^

다락방 2011-01-13 08:14   좋아요 0 | URL
그쵸, 그쵸? 유치하게 진실게임 이런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서로의 비밀들을 하나씩 어둠 속에서 고백하다니, 아우, 근사해요!
상대가 어떤 말을 하게 될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설레이고 두근거려요. 정말 그래요. 그가 말하기 직전까지, 숨을 참게 되지 않을까요?
마노아님도 짱이에요!
:)

브론테 2011-01-1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줌파 포에버~ !!!
'40자평'을 쓰면 적립금5만원을 주는 이벤트 ==> 그렇답니까! 그럼 빨리 뭐라도 느껴보세요!!!

다락방 2011-01-13 08:14   좋아요 0 | URL
저 이 댓글 읽고 완전 빵터졌어요. '뭐라도 느껴보세요' 라니요!
그나저나 현빈 군대 보내고 우린 어떻게 살수 있을까요? 아,,,,한숨나.....

외국소설/예술MD 2011-01-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녕하세요. 청소년MD입니다.
<1월 0일> 이벤트는 일반 리뷰 및 40자평..입니다. 그러니 길게 쓰셔도 됩니다.;
맘에 드셨으면 좋았겠..는데요 ㅎ. 저는 좋았어서요.

아, 우주로부터의 귀환은 결국 읽으셨는지?

다락방 2011-01-13 08:15   좋아요 0 | URL
저 어제 메모장에다가 40자평을 멋지게 막 밤에 써놨는데, 아침이 되니까 도무지 올릴 수가 없네요. 음...밤에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왜 아침엔 부끄러워지는지....에휴.

[우주로부터의 귀환]은 사놓기만 했습니다. 네, 사놓기만 했어요. 사놓기만 한겁니다. orz

섬사이 2011-01-13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크릿 가든을 보니까, 현빈은 식탁에 촛불을 켜놓던데요..
요즘은 좀처럼 정전이 되질 않으니까,
다락방님이 두꺼비집만 내려놓으면 될 것 같아요. ^^

그런데 현빈이 군대를 간대요?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다락방 2011-01-13 10:51   좋아요 0 | URL
해병대에 자원했대요. 1982년생, 184cm, B형의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자가 해병대에 ㅠㅠ
너무 가슴이 시려요. 전 이렇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나라에 또 빼앗기고 마네요. 저같은 일개 국민은 나라와 대항해 싸워 이길수가 없군요. 이 나라는 왜 .... 히융 ㅠㅠ 전 현빈을 군대에 보내고 대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하아- 한숨만 나와요.

두꺼비집 내리고......촛불.......아우 막 간질간질하네요, 섬사이님. 히히

비로그인 2011-01-13 19:36   좋아요 0 | URL
걱정마세요. 해병대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지원해도 탈락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아마도 육군 보병으로 가겠지요.(난 여자인데 왜 이런 걸 아는건가)

다락방 2011-01-16 20:25   좋아요 0 | URL
쥬드님,
해병대든 육군보병이든 뭐든 군대에 가는게 싫어요, 현빈이.
그렇지만 아마도 그를 보내게 된다면, 저는 아마 쉽게 잊겠죠. 여자의 마음은 갈대니깐요. ( '')

치니 2011-01-1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40자평 쓰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난 몰랐구만요. ㅋㅋ 그래도 써봐요, 다락방님이 어떻게 느꼈나 궁금증이 더해지네.

다락방 2011-01-13 11:34   좋아요 0 | URL
음....저 80바이트 딱 맞추기는 했는데 뭔가 좀 ..... 흡족하질 않아요, 치니님. 음...... 음....좀 마음에 안들어서..... 수정의 과정을 거쳐보고.....하핫 ;;
 
송 오브 루나 (Song of luna) - 그댈 향해 노래하는 새
송 오브 루나 (Song of luna) 노래 / 미러볼뮤직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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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목소리, 조용한 피아노, 예쁜 가사, 무엇보다 슬픔의 강 때문에 완전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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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1-0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다락방님 ㅜㅜ 이거 사셨구나 ㅜㅜ 내가 선물해드릴걸 ㅜㅜ

다락방 2011-01-09 20:49   좋아요 0 | URL
저 무려 이 시디를 선물도 할 예정입니다! ㅎㅎ

마노아 2011-01-0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사가 그대로 시예요.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담백함이 그대로 묻어나요. 자연의 맛인걸요.

무스탕 2011-01-08 21:14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의 표현이 진국이세요!! ^^b

다락방 2011-01-09 20:49   좋아요 0 | URL
이런 앨범을 내줘서 고마워하고 있어요, 전. 요즘 어디나 후크송이 대세인지라. ㅠㅠ

차차 2011-01-09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열심히.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노래하겠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 ^ㅡ^

다락방 2011-01-10 08:52   좋아요 0 | URL
아이쿠야, 40자평에 방문이라니. 제가 고맙습니다. 노래 좋아요! :)

다락방 2011-01-1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요.

2011-01-12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2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키시리즈 6권을 읽고있다. 5권인줄 알았는데 책 뒷날개를 보니 6권이더라. 이 책을 시리즈 나올때마다 번번이 읽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수키가 듣게되는 남자들의 달콤한 멘트 때문이다. 세상에, 작가인 샬레인 해리스는 정말로 이 책속의 모든 말들을 들어본건지, -그렇다면 그녀에겐 남자란 남자는 모두 빨아들이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거다- 아니면 상상인건지, -그렇다면 그녀의 상상력은 로맨틱한것으로는 최고봉이다- 알 수가 없지만 멘트들이 나를 기절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번 책도 읽으면서 아주 그냥.. 훅간다. 다른 로맨스 소설에서 남자들의 멘트를 읽으면 사실 오글거리거나 거북하거나 하기 쉽상이었는데 왜 수키시리즈의 모든 멘트들은 그냥 흘려 넘기기가 어려울까. 

자, 퀸. 퀸은 민머리의 키크고 건장한 남자다. 그는 수키가 일하는 바(bar)로 수키를 찾아온다. 그전에 그들은 한번 만난적이 있었다. 이 바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수키에게, 그는 당신을 만나러 왔다고 말한다.  

그는 눈을 감고 나를 빨아들일 듯이 깊은숨을 들이켰다.
「이제 나는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서도 당신을 알아볼 겁니다.」
(p.34) 

아이쿠야.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서도 나를 알아볼 수 있다니, 오와, 정말? 진짜? 그게 가능해? 그런데 나는 자신이 없네요.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서도 당신을 알아볼 자신이 없다. 사실 이런말을 듣는다면 멍때리고 그의 눈을 보다가 정신이 나가버리겠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며 그에게 말할것 같다. 

뻥치지마. 

하하. 

이제 퀸(다시 말하지만 남자다. 퀸, 이라고 여자가 아니다)은 수키에게 애인이 있는지를 묻는다. 

「당신은 얼마 동안 알시드와 데이트를 했죠.」
(중략)
「그럼 그는 당신의 애인이 아닌가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당신은 사귀는 사람이 없나요?」
「네」 
「내가 감정 상하게 할 사람은 없는 건가요?」
「난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요.」
(중략)
「감정 상한 전 남자 친구 몇 명 정도는 제가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랑 사귈래요?」
(p.41) 

아, 멋져! 전 남자 친구 몇 명 정도는 제가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남자 친구 몇 명 정도는 제가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멋져. 자기가 다룰 수 있대! 꺅 >.< 응, 당신이 다루도록 해요. 감정 상할 전 남자 친구 따위, 없지만. 아무려면 어때요. 당신이 다 다루시구랴. 히융.  

퀸과 수키는 데이트를 한다. 얼레리꼴레리~ 데이트로 함께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위험을 느낀다. 민머리의 키크고 건장한 퀸. 그는 바다 하리 같이 생긴걸까, 나는 잠깐 생각한다. 

그는 방해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복 코트 단추를 왼손으로 풀었다. 그는 손가락을 구부려 주먹을 쥐었다. 강력한 보호본능을 가진 남자였기 때문에, 그는 나보다 먼저 내 앞으로 나갔다. (p.134) 

아우 ㅠㅠ 강력한 보호본능 ㅠㅠ 코트 단추를 왼손으로 풀고, 손가락을 구부려 주먹을 쥐다니. 나는 자꾸만 바다 하리를 생각한다. 나보다 먼저 내 앞으로 나가다니, 아 멋져 ㅠㅠ 강력한 보호본능을 가진 남자는 진짜 짱 멋진 것 같다. 코트의 단추를 한 손으로 풀고, 손가락을 구부려 주먹을 쥐고, 강력한 보호본능 ㅠㅠ 아 멋져 ㅠㅠ 

 

우울한 밤과 아침을 보내는 중인 수키, 혼자 베란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퀸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안녕, 예쁜이」
맞은편에서 따뜻한 목소리가 말했다.
「퀸이군요.」
나는 너무 기쁜 티를 내지 않으려 하면서 말했다. 내가 감정적으로 이 사람한테 많은 것을 쏟아부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게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기뻤다. 그리고 퀸은 강력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뭐 하고 있었어요?」
「아, 가운 차림으로 앞 베란다에 앉아서 커피 마시고 있었어요.」
「그곳에 가서 당신과 커피 한 잔 같이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흐으으음. 한가한 소원일까, 아니면 진지하게 <오라고 해줘>일까.
「주전자에 커피는 많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난 댈러스에 있어요, 아니면 그곳으로 번개같이 갈 텐데.」
그가 말했다. 김빠져라.
(pp.175-176) 

아놔. 이자식. 올것도 아니면서 말을 왜 이따위로 하고 난리야. 주전자에 커피가 많다는 사소한 말을 하기 위해서 머리 싸맸구먼, 아놔 이자식. 댈러스에 가있고 난리야. 그래도 퀸이라면, 번개같이 올 그런 사람일거다. 지금 댈러스라서 못오는거지, 댈러스가 아니라면 정말 번개같이 와 줄 그런 남자일거다. 뭐, 댈러스에 있다고 하니까 김이 빠지긴 했지만. 아 자식. 진짜.  

아니 그런데, 안녕, 예쁜이 라니. 예쁜이는 원서에 뭐라고 써져있지? 예쁜이, 라니.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좋을까? 나쁠까? 잠깐 상상해보자. 누군가 나에게 예쁜이라고 하는걸. 

음. 

음. 

음. 

음. 

잘 상상이 안되는데?  

 

아직 절반정도 밖에 못읽었다. 나머지 절반에는 어떤 달콤한 말들이 적혀 있을까? 읽으면서 몸이나 베베 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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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맨스 소설을 추천해 달라는데...
    from 엄마는 독서중 2011-01-08 12:41 
    로맨스 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내 서재 카테고리만 봐도 내가 로맨스 소설과 친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텐데...  저한테 어쩌란 말입니까?^^  지금 딱 떠오르는 건, 불혹이 된 분들만 읽으라고 강력추천하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요. 요건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봤는데, 그래도 주옥같은 글발에 반해 복사해서 노트에 붙여 뒀어요. 왜냐면 언젠가 써 먹을 수 있을까 해서~ ㅋㅋㅋ
 
 
무스탕 2011-01-07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106, 총 114444

일단 이거 먼저 잡아놓고.. ^^

다락방 2011-01-07 15:08   좋아요 0 | URL
앗 저는 숫자4가 참 좋아요. 히히히히히

무스탕 2011-01-0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누가 저보고 '안녕, 예쁜이' 라고 불러주면 전 당장 그에게 달려가 꽃이 되겠어요 :)
그에게 과거 몇 명의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전 차라리 모르는게 나을것 같아요. 그저 막연히 있었겠지.. 해야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으면 부르르~~ 떨것 같아요.

다락방 2011-01-07 15:54   좋아요 0 | URL
전 어떤 기분을 느껴야될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진짜 들어봐야 알 것 같은데, 제가 앞으로도 그런말을 들을일은 없을것 같아요. 누가 감히 저에게 '예쁜이' 라고 하겠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아마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못할것 같은데요.
저도 그의 과거의 여자친구에 대해 알고싶지 않아요. 아는 순간 화르르 질투가 생기더라구요. 그의 과거와 싸워봤자 이길수도 없는데 말예요.

레와 2011-01-0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냥, 오늘 118, 총 114456 방문 잡아 놓고 싶었어요.^^;;

이번에 또 새로운 남자친구 등장이네요, 수키는 좋겠다. 부럽잖아~ 아흥!

다락방 2011-01-07 16:44   좋아요 0 | URL
아주 그냥 난리가 났습니다, 레와님. 이 뱀파이어 저 뱀파이어 저 늑대인간 이 변신인간 ㅎㅎ 인기폭발 수키네요. 부럽습니다. ㅎㅎ 게다가 남자들이 어쩜 다들 그렇게도 멋진지! 멋진 남자 하나 만나기도 힘든 이 세상에 수키는 책 한권 바뀔때마다 만나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치니 2011-01-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안녕 예쁜이,가 뭐에요 뭐야뭐야뭐야! 영어로 어떻게 적혀 있던지, 안녕 예쁜이는 다락방님이 설명한 그 모든 퀸의 멋진 면모를 부숴버리고 맙니다. 아아아아아.

다락방 2011-01-07 17:49   좋아요 0 | URL
웃기죠? 저도 막 상상해 보는데 상상이 안돼요. 예쁜이라고 말하면 정말 좋아해야할지 짜증내야할지 모르겠어요. ㅋㅋㅋㅋㅋ 예쁜이라니, 진짜 웃기죠? ㅋㅋㅋㅋㅋ 근데 이게 막연하게 상상하면 웃긴데 만약 누군가 정말 그렇게 말해준다면 어떻게 느끼게 될지 모르겠어요. 아 진짜 상상안돼요, 예쁜이는. ㅋㅋㅋㅋㅋ 이건 말하기에도 오글거려요. 안녕 예쁜이 ㅋㅋㅋㅋㅋ

... 2011-01-0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그만 빨려 들어가세요! 이러다 아주 책 한 권을 다 옮겨놓겠어요!!!

다락방 2011-01-09 21:30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다 읽었습니다. 로맨스 소설을 읽어도 생각이 많아져서 큰일이에요, 브론테님. 어휴.

카스피 2011-01-07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말하지만 남자다. 퀸, 이라고 여자가 아니다.ㅎㅎ 맞는 말이지요.제가 아는 퀸중에 가장 유명한 퀸은 바로 앨러리 퀸이랍니다^^

다락방 2011-01-09 21:30   좋아요 0 | URL
아, 앨러니 퀸을 잊고 있었네요. 그러고보니 안소니 퀸도 있었지요! 다들 남자였네요! 하핫

비로그인 2011-01-07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 책은 원서로 읽어도 좋겠군요. 영어의 벽을 넘어 술술 읽힐 것만 같아요. ㅎㅎ

금요일 저녁이에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1-01-09 21:31   좋아요 0 | URL
앗, 그러게요. 저 대화부분은 원서로 좀 보고 싶네요. 따라해보게 말입니다. ㅎㅎ

순오기 2011-01-0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나한테 로맨스 소설을 추천해달라는 메일이 왔는데~~~~~~
로맨스든 뭐든 소설은 다락방님이 타의추종을 불허할 분이라서 먼댓글로 연결해도 괜찮겠죠?
내가 읽은 로맨스 소설이라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밖에 생각나지 않아요.ㅜㅜ
나는, 다락방님 페이퍼 자체가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해피 뉴 이어~~~~ 다락방님!^^

다락방 2011-01-09 21:31   좋아요 0 | URL
앗, 순오기님, 페이퍼 읽었습니다. 제가 그 밑에 가서 로맨스 소설 몇권 더 추천해드릴게요.
:)

순오기 2011-01-10 21:5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로설 추천해주셔서 고마워요.
저한테 메일보냈던 분이 서재에 와서 확인하고 댓글을 남겼네요~~~~ ^^

2011-01-08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9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0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0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11-01-17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니 갑자기 배가 고파서 저도 베베 꼬여요.
몰아서 읽고 추천하는 다락방표 글 맛!(때문에 배고파요.)

다락방 2011-01-17 09:14   좋아요 0 | URL
앗 저도 배가고파요, 이 댓글 읽으니까요.
동료가 준 리얼초코케익을 먹어야겠어요. 초코가 가득가득 초코 투성이에요! 므흐흐흐흐

산사춘 2011-01-18 16:3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그런 거 마이 먹으면........... 저처럼 예뻐져요.

다락방 2011-01-18 16:34   좋아요 0 | URL
점심엔 보쌈정식을 먹었습니다! 움화화핫
 

 

-사랑 따위, 돈 없고 걱정거리 많은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런 때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좋을것을.
사랑 따위, 착실한 남자친구도 있고 직장내에서 인정도 받고 있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런 때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좋을것을.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영화속의 남자와 여자는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좋았을 상황이었다. 오히려 선택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라는게 조금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각자의 상대가 있는 여자와 남자가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한다는 생각보다는 육체적으로 끌리는 것에 충실하다가, 뒤늦게 서로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조경란이 [혀]에서 말했지. 한쪽은 원하고 다른 한쪽은 원하지 않는 일. 나는 그게 슬픔일 거라고 생각한다, 고. 결국 그녀는 그에게서 선물받은 귀걸이를 빼는 쪽을 선택한다.  

40자평을 쓰고 싶었는데 알라딘에 이 영화가 검색이 안된다. 1월1일에 찾아간 고깃집이 문을 닫았고, 1월1일에 찾아간 소세지집이 문을 닫았고, 1월1일에 본 이 영화가 알라딘에서 검색이 안되다니. 알라딘 바보, 알라딘 빵꾸똥꾸.  

 

 

 

 

 

 

 

 

-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고 알랭 드 보통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말했다. 고작 그 작은 기계 하나가 고문 도구가 될 수 있다니, 고작 그 작은 기계 하나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마법의 지팡이도 될 수 있다니. 아, 사랑에 빠진 이들에겐 이 세상 모든것들이 얼마나 의미로 가득차있는가.  

Hellish days. Jack Kennison didn't call, and she didn't call him. 
잭이 전화를 하지 않았고 그녀도 그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지옥같은 날들인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잭이 슬픔을 나눌 다른 사람을 찾은거라고 생각한다. (왜 안그렇겠는가!)
She thought he'd probably found someone else to listen to his sorrows.   

데이트는 어땠냐는 아들과의 통화해서 그녀는 what date? 라고 심드렁하게 답할 수 밖에 없는데, 그랬는데, 그랬는데, 

And then―like a rainbow―Jack Kennison called.  

아! like a rainbow, 라니. 무지개는 비가 온 뒤에야 뜨지. 그러나 금세 사라지지. like a rainbow. 전화 한통화도 무지개 같을 수 있는 것,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는 일이지.  

1월1일 외출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시크릿 가든』1회를 보게됐다. 길라임과 김주원이 아직 사랑하기 전, 길라임이 오스카라는 대스타를 동경하는 상황. 오스카같은 사람이 나를 기억해줄리 없지, 라는 생각을 하는 길라임에게 오스카는 처음 만났던 순간을 기억해 얘기해준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해내서 길라임을 놀라게 하더니, 결국은  

"길라임 씨!" 

라고 이름을 기억해내어 길라임을 감동시킨다. 오스카는 단순히 머리가 좋았던 것일뿐인지도 모르는데, 오스카를 동경하는 길라임에게는 그 순간이 천국이다. 오스카는 천국의 문을 열어준것이 아닌데, 길라임은 이미 천국으로 들어가있다. 의미란 언제나 더 사랑하는 쪽에서 만드는 법. 

 

 

- 아주아주아주아주 먼 나라에 머무르고 있는 이로부터 오늘, 뜻하지 않게 편지를 받았다. 받을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낯선편지. 성급하게 봉투를 뜯어 읽는 내내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계속 웃었다. 만약 그 편지를 읽는 모습을 누군가가 봤다면, 아마 내가 천국에 들어가있다고 오해했을거야. 내 이름의 앞과 뒤에는 하트를 그려 보낸 센스라니! 아 예뻐. 그곳에서 사슴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서투른 영어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아 좋아 죽겠다. 편지를 받고 이렇게 기뻐 죽다니. 이게 대체 얼마만인가! 나도 답장을 써야지. 편지지를 꺼내어 답장을 써야지. 

당신이 있는 곳이 너무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당신이 빨리 여기, 내가 있는 곳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나는 당신하고 술을 마시러 갈거라고. 그리고 내 옆자리를 톡톡 손으로 쳐서 옆자리에 앉힐거라고. 서투른 젓가락질로 안주를 집어서 당신의 그릇에 놓아주겠다고. 술잔이 비기가 무섭게 채워주겠다고. 내내 당신의 옆에서 당신의 손을 잡아주겠다고. 원한다면 안아주겠다고. 많이 많이 예뻐해주겠다고. 또 원한다면 뽀뽀도 해주겠다고. 내가 해주는게 싫으면 당신이 해줘도 된다고. 그렇게 써야지. 당신이 오고나면 한동안 나는 당신꺼라고, 그렇게도 말해야지. 내 사랑을 받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써야지. 아 좋아.

 

- 나는 오늘 회사근처 우체국의 첫손님이었다. 개인적으로 우체국에 볼일이 있었는데, 우체국 앞에서 종종거리고 기다리다가 우체국 문이 열리자마자 쪼르르 들어가서 번호표를 뽑아들었다. 첫손님인데 왜 번호표는 2번일까. 우편물을 접수하며 창구직원에게 물었더니 아 그건 아까...하면서 말을 얼버무린다. 아까 뭐? 아, 듣고싶었는데..더이상 말해주지 않아서, 재차 묻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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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1-01-05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나 이거 보고 싶은데, 씨네큐브 하더라고요.

다락방 2011-01-05 18:00   좋아요 0 | URL
네, 나도 씨네큐브에서 봤어요. 포스터에 끌려서... ( '')

차좋아 2011-01-09 21:31   좋아요 0 | URL
포스터에 끌려서... 자꾸 다락방님 서재에 오게 되요(..)

다락방 2011-01-09 21:33   좋아요 0 | URL
차좋아님,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참..끌리는 포스터가 아닙니까?! ㅎㅎㅎㅎㅎ

치니 2011-01-05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다락방님이 막 뽀뽀해주고 와 - 그 분 누군지 몰라도 복 터졌네요.
"I AM LOVE"도 봐요, 1/20 개봉이래요, 어쩌면 비슷한 소재일 지도 모르는데 다른 느낌일 거에요. 강추!

다락방 2011-01-06 09:49   좋아요 0 | URL
제가 어제는 너무 좋아가지고 감정이 격해졌네요. 뽀뽀라니. 음, 지금 살짝 뽀뽀는 거두어들일까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
I am love. 알겠어요. 히히

무스탕 2011-01-05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혹시 멀리멀리 가게되면 편지 보낼게요. 그럼 막 좋아하고 페이퍼도 쓰고 그러셔야해요 :)

우체국 번호표요, 아침에 전원 넣으면서 시험가동 하느라고 1번은 직원이 눌러서 뺐을지도 몰라요. 그랬을거야.

다락방 2011-01-06 09:59   좋아요 0 | URL
네, 그러니까 무스탕님, 멀리멀리 가도 저를 잊지 말고 편지 써주셔야 해요!! 아셨죠? 히히.

우체국 번호표는, 음, 무스탕님 말씀이 맞을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 1번 뽑고 싶었단 말이에요. 첫 우체국 손님인데! 1번하고 싶었는데! ㅠㅠ

2011-01-05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6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1-01-0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쫌 야할 거 같아요, 꼭 봐야쥐~^^
우리말 제목 보고,영어 제목 보고...한참 버벅거렸어요.

이름을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우리는 날아오를 수 있을거예요, 그쵸?^^

다락방 2011-01-06 10:03   좋아요 0 | URL
미성년자 관람불가인데 의외로 안야하더군요. 새해부터 야한걸로 뼈와살이 불타는 밤을 보내주리라, 뭐 이런 결심하고 찾아 본 영화인데 말입니다. 영어 제목은 what more do i want 인데 왜 이게 [사랑하고 싶은 시간]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네, 양철나무꾼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당연히 날아오르지요. 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제 이름을 불러주는게 정말이지 자지러지게 좋아요. 제 이름을 사랑하게 되죠, 그 순간만큼은. 최근에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렸던 기억을 떠올려보노라니, 어휴,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양철나무꾼님.
:)

... 2011-01-0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들여 진지하게 잘 읽었습니다. 몇가지 지적할 거리가 있군요.
1. 씨네큐브에서 하는 저 영화를 포스터에 끌려서가 아니라 미성년자 관람불가이기 때문에 본 게 아닙니까?
2. 고깃집은 이해가 가는데 소세지집은 또 뭡니까? 매니아다운 선택이라, 평범한 사람은 어리둥절하군요;;
3. "아주아주아주아주 먼 나라에 머무르고 있는 이" ==> 극지방 거주자 입니까?
4. 우체국 1번 손님은 그 창구직원이었을 겁니다. 자기가 부칠게 있었던 거죠, ^^

다락방 2011-01-06 10:10   좋아요 0 | URL
1. 음.....어떻게 아셨습니까, 미성년자 관람불가라 제가 선택했다는 것을?
2. 종로에 Uncle Joe 라는 소세지집이 있습죠. 저는 그곳의 찬모듬소세지를 매우 많이 사랑합니다. 앱솔루틀리, 러블리 안주에요. 술이 아니라 그 소세지 때문에 가죠. 후훗.
3. 극지방은 아닌데 거긴 많이 춥다고 하더라구요.
4. 그럼 그렇다고 말하면 될거 아닙니까! 왜 사람 궁금하게 얼버무리냐고요, 대체 왜! 나 그렇게 얼버무리며 상대해도 좋을 사람 아닙니다.

마노아 2011-01-0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고 싶은 다락방님, 이미 사랑하고 있는 다락방님! 아, 사랑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내 옆에 있다면 막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요. 아니면 등을 쓸어주던가요. 따뜻하게, 포근하게요~
우체국 1번 손님은 그 직원이 기념으로 먼저 뽑은 게 아닐까요? 하루의 스타트는 내가~ 막 이러면서요.^^
소세지집 어딥니까? 담에 같이 가요.^^

마노아 2011-01-05 23:16   좋아요 0 | URL
참, 지금 CAN'T STOP LOVING YOU을 듣고 있는데, 다락방님의 이 글을 읽는 내 심장의 고동소리와 비슷한 음악 소리였어요. 막 기대되고 막 신나고, 하여튼 너무 좋아요.^^

다락방 2011-01-06 10:22   좋아요 0 | URL
(에미버젼으로) 마음껏 사랑해주시구랴. ㅋㅋㅋㅋㅋ

소세지집은 종로와 광화문 사이입니다. 있죠, 마노아님. 종로는 데이트하기에 최적의 장소 아니에요? 전 종로랑 광화문이 너무 좋아요. 그냥 좋아요. 남자랑 단둘이 데이트 하는데 강남은 음, 좀 별로에요. 그런데 종로랑 광화문이라고 하면 아 뭔지 모르게 그냥 좋아요. 종로나 광화문에 뭐 특별한것도 없는데! 그렇지만 인사동은 별로에요. 전 인사동이 별 재미가 없어요.

마노아님이 또 막 신났다니까 저도 좋아요. 마노아님 신났다니까, 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2집을 좀 줘볼까 싶어져요. 히히히히히

Mephistopheles 2011-01-06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다락방씨!

(한 번 불러보고 싶었다는..)

다락방 2011-01-06 10:23   좋아요 0 | URL
네, 메피스토씨!

(ㅋㅋㅋㅋㅋ 간질간질하네요. ㅋㅋㅋㅋㅋ)

레와 2011-01-0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2011-01-06 10:23   좋아요 0 | URL


레와 2011-01-0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원서를 사야겠군요!
"And then―like a rainbow" 라니..
그리고 "의미란 언제나 더 사랑하는 쪽에서 만드는 법"

이 두 문장이 미치도록 좋아요.

다락방 2011-01-06 10:39   좋아요 0 | URL
번역된 올리브 키터리지에도 저 표현은 분명히 있는데, 갑자기 like a rainbow 를 보는순간 막 좋아지잖아요!! 원서를 읽은건 아니고(당연히 ;;) 올리브가 일흔 넘어 사랑하는 부분이 너무 좋아서 원서 배송 받자마자 들춰봤는데, 저런 표현이 눈에 띄었어요. 좋아요.

그나저나, 우리 레와님, 내가 쓴 문장에 너무 꽂히는 경향이 있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stefanet 2011-01-06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 곳에 들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락방님은 어떻게 그렇게 늘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실 수 있는 건가요?
게다가 이렇게 멋지게, 따뜻하게 사랑하시다니. 표현도 맘껏 하시면서...
부러울 따름입니다. 전 속칭 연애세포가 다 말라 죽어버린듯...;;;

다락방 2011-01-06 10:40   좋아요 0 | URL
아, 정말이지,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지만, 흑흑, 먼나라에서 편지를 보낸 사람은 저랑 '연애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어쩌죠 ;;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면요, stefanet님, 일흔 넘은 올리브가 남자때문에 설레이고 전화를 기다리고 이메일의 답장을 기다리는 장면이 나와요. 연애세포는 말라죽지 않아요. 말라 죽었다고 느껴질 뿐이죠.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고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올겁니다.
:)

Arch 2011-01-06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먼나라에서 미치도록 예쁜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아, 닌가? 맞을거야...

저도 레와님처럼 두 구절이 참 좋았어요. 레와님도 찌찌뽕^^

다락방 2011-01-06 10:42   좋아요 0 | URL
하하 아치, 아치가 짐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지만, 그 사람은 아니에요. 아치한테 열권의 책과 쪽지를 건넨 그 사람은 나한테 편지를 보내지 않아요. 하핫. 다른 사람이에요, 아치는 아마도 알지 못하는(아나? 모르나? 모르겠네요). 아치 틀렸다. 메롱. 히히

아니 근데 아치, 왜 여기저기 찌찌뽕 하고 사람 꼬집으면서 다니는거에요, 응? 찌찌뽕하는 아치라니, 귀엽잖아요! 아우 좋아 >.<

Arch 2011-01-06 10:49   좋아요 0 | URL
그럼 내가 아는 다른 사람인가? 저는 다락방 알라딘 인맥의 반의 반도 잘 모르니 뭐, 쳇^^

다락방은 '밀가루 반죽' 안 했으니까 말할때마다 한대씩 맞는거에요. 안 예쁘면 귀엽다고 하더라.
다른과 지원 나와서 컴퓨터할 수 있어요. 일하면서 즐기는 댓글 맛은 참 찰지다.

다락방 2011-01-06 10:56   좋아요 0 | URL
아 찰지대. ㅎㅎㅎㅎㅎ 찰지다는 표현은 아치랑 참 어울려요. 찰지다니, 표현 정말 찰지네요.
일하면서 즐기는 댓글 맛은 맞아요, 찰지죠. 저는 지금 회장님이 언제 나오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스릴을 만끽하면서 댓글 다는중. ㅋㅋ
앗, 저 지금 낯선번호로부터 문자왔어요. 이런 문자에요.

[고객님은 최저이율조회기록없이당일천백만원가능합니다(연체자/주부가능㈜대한저축]

돈도 없는데 천 백만원 빌려볼까요? 대한저축은 어디야.....연체자, 주부 가능하다는데 나는 노처녀인데.....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대한저축은 나를 어떻게 알고 돈 빌려준다고 문자를 보내는걸까요? 내가 기다리는건 rainbow 인데 이런 쓰잘데기 없는 문자가...후아 orz

Arch 2011-01-06 11:27   좋아요 0 | URL
다락방은 연체자도 아니고 주부도 아니기 때문에 못빌릴걸~

아, 나 문자 보낼만한거 생각났어요.

다락방 2011-01-06 11:38   좋아요 0 | URL
아치한테 받는 달달한 문자라니. 실실 웃게만드는군요, 아치. 히히히히히

Arch 2011-01-06 11:55   좋아요 0 | URL
이 여자 사람 웃음 소리 바뀐건가요. 전엔 하하하였던 것 같은데! 다락방 점심 야무지게 드세요^^

다락방 2011-01-06 12:14   좋아요 0 | URL
실실 웃는데 하하하하 할 순 없잖아요. 실실 웃으려면 히히히히 해야지.
아치도 점심 많이 먹어요. 배터지게. :)

moonnight 2011-01-0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저도 멀고먼 나라로 가고 싶어지네요. 다락방님께 이토록 격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 (뭐, 사람 나름이겠지만요 ㅠ_ㅠ)
저는 지난 주말에 '황해'를 보고 식겁했어요. 자르고 토막내고 하는 걸 아무렇지 않아하던 저였지만 좀.. 힘들더군요. ;; 사랑하고 싶은 시간. 보고 싶은데, 제가 사는 곳에는 개봉할지 모르겠어요. -_-;;;;;

다락방 2011-01-06 12:16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은 지금도 멀고 먼 곳에 계시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사랑하고 싶은 시간은 개봉하는 곳이 없나보더군요. 그리고 [엘 시크레토]도 마찬가지고. 왜 좋은 영화는 늘 상영하는 곳이 없는지 슬퍼요. ㅠㅠ
점심시간인데, 점심 드시고 계실까요? 맛있는걸로 많이 많이 드세요, 문나잇님. 날 추워서 많이 먹어야 돼요. 물론 더울때도 많이 먹어야 되지만. 훗 :)

nada 2011-01-06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다락방님 이제 원서도 읽는 여자사람?
다들 새해라고 너무 의욕충만이셔요.ㅠㅠㅠㅠㅠㅠㅠ
시크릿가든은 좀 재미있어 하다가 식상해졌는데,
다른 것보다 길라임이란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어쩜 그렇게 예쁜 이름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요?
제 이름이 길라임이라면, 성이랑 이름 붙여서 불러도 기분 안 나쁠 것 같아요.

다락방 2011-01-07 08:47   좋아요 0 | URL
일단 꽃양배추님, 오해는 금물입니다. 저는 원서도 읽는 여자사람이 아니에요.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올리브가 일흔이 넘어서도 사랑하는게 너무 좋아서 원서를 사서 그 부분을 뒤적뒤적한겁니다. 대체로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가득가득한 가운데, Hellish days. Jack Kennison didn't call, and she didn't call him. 같은 읽을 수도, 해석할 수도 있는 문장이 나와서 형광펜으로 밑줄을 좀 그었습죠. 게다가 저는 새해라고 의욕충만하지 않는 여자사람입니다. 전 2011년 새해에 결심한게 아무것도, 한개도 없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블로그 여기저기 기웃대다보면 사람들은 모두들 뭔가를 결심하던데 저는 어쩜 이렇게 되는대로 살고 있는건지, 원.
길라임, 이름 정말 예쁘죠? 진짜 예뻐요. 제 여동생은 지금 아이를 하나 낳아 키우고 있고, 둘째는 낳지 않겠다며 버럭버럭 하더니 시크릿 가든 보고 나서 "셋째 낳으면 아이 이름을 라임이라고 해야겠어." 라고 하더군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전 성이랑 함께 부르든 함께 부르지 않든 어떤 이들이 이름 불러주면 완전 자지러져요.

2011-01-10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0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2월31일 출근길. 버스를 탔는데 버스안에 사람이 별로 없다. 평소의 절반도 안된다. 사람들이 오늘 다 쉬는가 보구나, 나만 출근하는군, 하면서 외로이 자리에 앉아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잠실역에 내렸다. 잠실역,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들어서서 걷고 있는데, 그 때 마침 이어폰에서는 '별'의 [12월32일] 이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가 가기전에 꼭 돌아온다고, 

하는 첫 가사를 듣는데 나는 그만 두 손을 모아 잡고 꼭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마치 내가 기다리고 있는것처럼. 그렇게 잡은 나의 두 손을 입에 가져다대고 혼자 속으로 말하는데, 그 모아진 두 손에서는 아침 출근전에 내가 뿌린 향수 냄새가 났다.  

아이고, 좋아. 

그래서 바보같이,  니가 올 때까지는 나에게 1월1일이 없다고 말하는 이 슬픈 노래를, 12월 32일이고 33일이라고 말하는 이 서러운 노래를, 듣다가 조금 웃어버리고 말았다.  

 

지하철을 탔다. 내내 노래를 들었다. 나는 서 있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여자는 이십대 중반쯤 되어보였다. 얼굴이 작고 하얬다. 와, 작고 하얗고 예쁘다, 라고 생각했다. 지하철 창으로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앗. 이런 얼굴이라니. 이런 얼굴이 오늘 하루가 지나면 한살 더 먹기까지 한다니! 나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놀라서. 그러자 반짝, 반지가 보였다. 또 기분이 좋았다. 

 

단 하루라도 너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하는 맨디 무어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좀 웃었고, 그래 난 너를 잊을수가 없어, 라고 말하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들으면서는 아주 씩씩하게 걸었다.  

 

가끔, 아주 가끔, 제시카 알바가 웃는 모습을 본다거나 할때 나는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오늘, 다시 태어나도 역시 여자로 태어날거라고, 순간의 고민도 없이 나는 여자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여자여서 너무 좋다. 향수 냄새가, 반지가, 그리고 내가 한 말에 대답해주는 남자가 좋다.

 

12월 31일이다.  

돌아오겠다고 말한 남자들은 돌아와야 한다. 돌아오겠다는 말을 믿고 기다리는 여자들이 있으니까. 약속은 남자의 모든것. 여자들에게 12월 32일을 만들어줘서는 안된다. 32일을 만들고, 33일을 만드는 남자들을 내가 다 부셔버리겠어.  

 

나에게 12월 31일 다음은 1월1일이다.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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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1-05 10:33   좋아요 0 | URL
다락방 흉내낸건데 잔소리라니, 흑!
알겠어요. 저도 완전 열심히 쓸게요.

다락방 2011-01-05 10:49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치, 좀 한가해요? 좋으네. 흐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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