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일하라 - 성과는 일벌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제이슨 프라이드 &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 지음, 정성묵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품절


글을 쓸 때는 여러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한 사람만 생각해라. 그 한 사람만을 위해서 써라. 다수를 위해 글을 쓰면 두루뭉술하고 어색해진다. 반면에 특정한 대상을 생각하며 글을 쓰면 의도가 분명해진다.-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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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4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4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디 2011-04-14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다락방 2011-04-14 09:30   좋아요 0 | URL
^______________^
 

오늘 타부서에 젊은 남자 직원이 입사했다. 타부서 과장이 인사차 데리고 왔다.  타부서의 y씨에게 신입사원은 몇살인지 물었다. 그러자 84년생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뒤에 y 씨와의 사이에 오고 간 말들은 밝히지 않겠다. 꽃뱀에 관련된 농담이었다.

 

위의 일과는 정말이지 아무 상관도 없는 말인데,
어제부터 시작한 책, '엘프리네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런데 클레머는 그녀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좀 떨어져 걸어가면 좋으련만! 호흡이 거친 젊은 남자의 육체를 바로 곁에서 느낀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p.104) 

 

 

 

 

 

 

 

두장째부터 숨이 막히는 소설이고, 때로는 힘들게 읽히고 있고, 아직 절반을 채 읽지 않아서 포기할까 말까 갈등중인데, 책 소개중에는 '노골적인 성애묘사'라는 부분이 나온다. 뒤쪽에 나오려나 보다. 그래서 포기를 못하겠다. 끝까지 읽어야지.

 

어쨌든, 젊은 남자 사원이 봄에 입사한다는 건 기쁜 일이다. 삶을 살아가는 혹은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 일어나는 작은 기쁨이라고나 할까. 세상의 모든 젊은 남자들이 우리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젊은 남자들로 회사가 미어 터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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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1-04-1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능에 솔직한 페이퍼군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1-04-11 12:33   좋아요 0 | URL
늘 그랬듯이 ㅎㅎㅎㅎㅎ

에디 2011-04-1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악하악....

다락방 2011-04-11 12:34   좋아요 0 | URL
아, 에디님. 저는 에디님의 댓글에 정말 달고 싶은 댓글이 있지만,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는 법,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전 신중한 여자니까요. ㅎㅎ

에디 2011-04-11 13:04   좋아요 0 | URL
앗 궁금해요. 제 서재에 비밀로라도+_+

다락방 2011-04-11 16:25   좋아요 0 | URL
ㅎㅎ 싫어욧!

차좋아 2011-04-1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다락방님은 마돈나의 분위기가 좀 있지 않나 하는 뒤늦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ㅋ
마돈나를 신디로퍼보다 좋아하다니... 생각할때마다 좀 아쉽지만 저도 마돈나 꽤나 좋아해요.ㅋ 오늘은 Vogue 뮤직비디오가 생각나네요^^

다락방 2011-04-11 12:55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 차좋아님. 마돈나의 분위기, 라뇨! 우하하하하 뭔가 신나요! 음, 내게 마돈나의 분위기가? 거울 한번 봐야겠네요. 하하하핫
마돈나는 가수 라기 보다는 전사 같은 느낌을 줘요. 그래서 정말 존경해요. 전 마돈나의 노래중에서 you'll see 를 가장 좋아합니다. 흣 :)

섬사이 2011-04-11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상했어요. 젊은 남자들로 꽉찬 엘리베이터에 다락방님이 타고 계신 모습.
다락방님은 꼭 엘리베이터 가운데 서 있어야해요.
다락방님 주위를 빽빽하게 둘러싼 젊은 남자들은 다 키가 크고 잘 생기고 깔끔해야 해요.
꼭 그래야 해요.
그래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작은 기쁨'이 될 수 있거든요.

다락방 2011-04-11 16:28   좋아요 0 | URL
그렇지만요, 섬사이님. 그렇게 젊은 남자들로 꽉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저는 음, 좀, 음, 수줍어하지 않을까요? 어쩔줄을 몰라 어색해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때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까요? 앞에 서있는 남자의 넓은 등판에 두어야 할까요? 머릿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요? 어휴. 몸이 부르르 떨리네요.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다 잘생기고 깔끔해야 해요. 매너와 예의를 얼굴에서부터 갖추어야 하죠. 그래야 제가 기쁘죠. 므흣 :)

blanca 2011-04-1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동감해요. 갑자기 밑에 남자직원 들어와서 제 전화 대신 받아주던 아름다웠던 풍경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네요. 든든하더라구요. 그러니 신입여직원 들어오면 입에 거품물던 나이든 아저씨들도 이해해 주기로 했어요. 저라면 더했을 것 같아서요^^

다락방 2011-04-11 16:29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도 아시는군요! 저는 저보다 키가 큰 남자직원들이 지나가면서 고개를 깍듯이 숙여 저한테 인사하거나, 제가 부를 때 '네 과장님' 하고 공손하게 대답하면 아주 이뻐 미치겠어요. 저에게는 마쵸의 피가 흐르는가봐요. 내 안에 마쵸있다. 므흐흐흣.

moonnight 2011-04-1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치는여자. 책도, 영화도 좋긴 좋았는데 뭔가 굉장히 힘들게 하더군요. -_-; 책 속 여인네와 그 엄마처럼 나이들까봐 저는 공포에 떨었답니다. 흑. ㅠ_ㅠ;

다락방 2011-04-11 16:30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를 하도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거의 안나는데, 책을 읽다보니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 영화를 볼 때 엄마와 딸의 관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거든요. 딸의 편집증적인 성향만이 두드러지게 기억에 남아있는데 제가 놓친게 무언지 영화를 다시 보면서 찾아보고 싶어요.
네, 만약 제가 자식을 낳는다면 그런 엄마가 되진 않을까 소름 돋고 있어요. 휴-

무스탕 2011-04-1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부서의 y씨에게 신입사원은 몇살인지 물었다. 그러자 84년생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포기를 못하겠다.

암요. 어떻게 포기를 하겠어요. 저라도 못하죠. ㅋㅋㅋ
(읽고싶은 글만 골라 읽는 재주를 가진 탕이)

다락방 2011-04-11 16:31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이 읽고 싶은 글만 읽으신 게 므흣,므흣, 저는 뭐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미지 관리라는게 있으니 좋다고까지는 말하지 않을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루쉰P 2011-04-1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젊은 여성분들이라도 주변에 미어터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어요. 다락방님과 저는 성별은 다르지만 그 사상은 일치한다는 점이 페이퍼를 읽으면 읽을수록 강하게 느낍니다. 아~봄에 새롭게 오는 풋풋한 신입사원들 그 단어만들어도 감동의 대 파도가 가슴을 치네요. 막판에 다락방님의 '젊은 남자들로 미어터졋으면 좋겠다.'는 구절은 읽는내내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만드네요. 저도 다락방님의 회사에 입사해 회사를 꽉 채워드리고 싶지만 80년생이에요. 푸훗.

다락방 2011-04-11 16:32   좋아요 0 | URL
사실요 루쉰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쪽에 있어서는 대부분 사상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그 부작용으로 젊고 예쁜 여자들을 질투하고 시기해요. 흑흑. 젊은 여자들은 그 자체로도 빛이 나니까요. 밝고 사랑스럽고 예쁘죠. 제가 아무리 가지려고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에요. 휴.

루쉰P 2011-04-13 01:44   좋아요 0 | URL
음 저도 그 부작용은 있는 듯 합니다. 하기사 젊은 친구들은 자체 발광을 하죠. 저도 그런 때가 있나 돌이켜 보면 없다는 것 사실에 더욱 씁슬합니다. 겉늙어서 20대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거든요. 음...다락방님이 가지려고 해도 노력해도 가질 수 없다는 그 젊은 여자분의 매력을 상쇄시킬 만한 힘이 있으실거라 여겨집니다. 뭐 이런 비유는 좀 그럴수도 있으나 '단풍도 예쁘게 물드면 꽃보다 아름답다'는 문장을 어디서 들었는데 생각나네요. 그리고 원래 남성은 무조건 젊은 여성만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 이렇게 알라딘에서 폭발적 매력을 발산하시며 뭇 남성들을 휘잡고 계시는 '알라딘 꽃뱀' 다락방님이라고 한다면 일상 생활에서도 그 본능적 매력을 발산하시며 수 많은 젊은 귀요미 남성들 심장에 봄꽃 피게 하실거야 추측합니다. 화이팅! 다락방!

다락방 2011-04-13 11:56   좋아요 0 | URL
루쉰님도 제게는 '젊은 친구' 인데요. 자체발광하는. ㅎㅎ

치니 2011-04-1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그럼 y 씨는요? 밀린 거에요 벌써?

다락방 2011-04-11 16:32   좋아요 0 | URL
네? y 씨요? y 씨가 누구에요? 흥. 81년생 올드보이라니. 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가방 2011-04-1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남자 만날일이 지극히 부족한 전업주부에겐 부러운 일이네요..ㅋ

큰아이 담임샘이 81년생이라더군요.
학부모총회때 뵈었었는데 어찌나 귀엽던지...ㅋ
중3 담임을 그런 귀요미 샘한테 맡겨도 되는건지 원..
거기다 체육샘이라는...ㅋ

다락방 2011-04-11 18:38   좋아요 0 | URL
아 책가방님 하하하. 저 책가방님 댓글 읽고 완전 웃었어요. 퇴근해야 되는데 웃느라 퇴근을 못하겠어요. 중3담임인데 81년생이면 가만보자, 16살 소녀에게 30대아저씨네요. 중3아이들은 귀요미라고 생각하지 않을것 같은데요? 81년생을 귀요미라고 생각하는건 책가방님과 저뿐만인건..아닐까요? 하하하하.
귀요미 샘이라니. 아 너무 웃겨요 책가방님. 귀요미 샘 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귀엽네요. 하하하하.

2011-04-11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2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벌 2011-04-12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저와는 다른 부서의 사람들은 (저희팀은 제 밑으로 후배가 셋뿐임을 알아두셔요. ㅡㅡ;;;) 85 84 년생들입니다. 아주 귀여워 미치겠음. <피아노 치는 여자> 는 몇년전에 선배님께 받았어요. 체게바라와 같이 받았는데 내내 후회했어요. 다른 책으로 받을 것을......... 미안한 일인데 제가 이렇게 성의 없게 책을 읽어본 것도 처음인지라. ㅠㅠ

다락방 2011-04-12 14:29   좋아요 0 | URL
저 책장 잘 안넘어가서 미치겠어요. 친구가 중간부터는 괜찮아 질거라는데 아직 중간이 아니라 그런가..암튼 노골적 성애묘사를 반드시 읽겠다는 일념하에 오늘도 최선을 다할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저도 여직원들은 더 어려요. 그런데 관심없어요, 제가. 패쓰.

Arch 2011-04-1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사무실엔 무려 86년생이 앉아 있답니다. 84쯤이야^^ 인사도 격식있게 안녕하십니까, 이래요~ 세상의 모든 젊은 신입사원이 다락방 회사에만 가길 기도해줄게요. 그리고 시간나면 에디님한테 달려다만 댓글 나한테 비밀로 남겨봐요. 다락방은 신중한 여자지만 가끔 신중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을테고 그럴때면 내가 있다는걸 잊지말아요^^

피아노 치는 여자를 읽는군요!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읽어볼거에요


다락방 2011-04-12 14:31   좋아요 0 | URL
아 글쎄 저희 사무실에는 87도 있지만 여자라구요. 관심 없다구요. 무조건 패쓰. 안중에도 없단 말입니다. 여자직원들이 과장님 하고 불러봤자 저는 그다지 대꾸하고 싶지도 않아요. 인생은 뭐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우리 사무실에만 오길 기도하면 어떡해요, 아치한테도 가끔 가주고 그래야지.
그리고 에디님한테 달려다 참은 댓글은 내 마음속의 영원한 비밀이에요. 제 이미지 망가져요. 내가 왜 아치한테는 말할거라고 생각하죠? 네? 네? 왜요? 왜요? ㅋㅋㅋㅋㅋ

피아노 치는 여자는 읽으면서 생각한건데, 나보다는 아치님이나 쥬드님이 더 좋아하실것 같아요.

Arch 2011-04-12 17:47   좋아요 0 | URL
물론 남자죠!
내가 있다는걸 기억하라는거지~ 치이~

다락방 2011-04-13 10:12   좋아요 0 | URL
아치. 왜 방명록에 내가 하트 그린거 무시해요? 응? 왜 무시해요? 무려 하트인데!!

노이에자이트 2011-04-1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알라딘 녀자들이 난리가 났구만요....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다락방 2011-04-13 10:13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런 참으로 잡스런(?)글이 추천을 열두개나 받아서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부끄러워요. 당황했습니다. ㅠㅠ
 
라스트 나잇 - Last N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것이 어떻게 찾아오는 것인지는 모른다.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거의 대부분의 경우, 꽤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라는 오태호의 노래 가사가 그걸 뒷받침 해주고 있지 않는가.  

여자와 남자는 4년간 연애하고 결혼해서 또다시 3년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여자는 남자에게 가끔 무엇을 잊지는 않았는지 수시로 챙겨줘야 한다는 걸 안다. 남자는 여자가 다 됐다고 말하지만 아직은 덜 됐다는 것을 안다. 남자는 여자가 화났을 때 맛있는 음식으로 풀어지기도 한다는 걸 알고, 그리고 여자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보는 시선에 호감이 들어있다는 것을 안다. 말하지 않아도 그쯤은 그냥 안다. 짐작이지만, 그것은 단지 짐작이 아닌 것. 일전에 나도 내 애인 주변의 여자사람들 중에 한명이 유독 마음에 걸렸던 적이 있다. 그 일에 대해 한번 언급했을 때 애인의 대답은 당연히 No, 였는데 나는 그 말을 들어도 이 영화속의 여자처럼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영화속의 남자가 사실은 그렇다고 인정했던 것 처럼, 나 역시 내 애인과 그녀가 겉으로는 친구라고 말하면서 뒤돌아서는 함께 밤을 보내는 사이이기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됐다. 물론, 나랑 사귀기 전의 만남이지만. 때때로 여자들의 (좋아하는)남자를 향한 감각은 본인에 대한 그 어떤 예감보다 정확할 때가 있고, 나는 이것이 무섭고 슬프다.   

 

영화속의 여자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오래전의 연인인 A도 사랑하고 있다. 2년만에 우연히 길에서 A를 만난 여자는, 오후에 그와 만날 약속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 예쁜 드레스를 꺼내 입는다. 드레스에 맞춰 구두를 고르고 화장을 한다. 그리고 속옷장의 서랍을 열고서는 어제 남편과 함께 있었을 때는 입지 않았던 셋트 속옷을 꺼내어 입는다. A의 동료가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리고 그녀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임을 알게 되자, 그 동료가 묻는다. A의 존재에 대해 남편에게 얘기했냐고. 그녀는 안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 동료는 왜 안했냐고 묻는다. 여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떤 이야기는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 여자는 알고 있었다. 여자가 주변의 남자, 혹은 과거의 남자에게 번호를 붙여 칠십명을 얘기해도, 거기에서 '뭔가 다른' 분위기를 가진 남자 17번에 대해서는 남편도 신경쓰게 되리라는 것을. 눈치채리라는 것을. 그리고 여자에게는 A를 이대로 두고 늘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A 가 남편에게, 세상에게 드러나는 날, 그 날 부터 바로 여자는 A 를 잊어야 하고 지워야 하니까. 그런걸 강요받게 될테니까. 그녀가 A 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그녀가 A 를, A와 자신과의 관계를, 그리고 여전히 A 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A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랑했다고 말한다. 여자도 A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 둘은 만나지 못하고 연락하지 못하던 시간이 길었다. 2년이었다. 여자는 A 에게 묻는다. 왜 내 이메일에 답장하지 않았지? 그러자 A 는 답한다. 

나는 더이상 이메일로는 만족할 수 없었으니까. 

A는 프랑스의 파리, 여자는 미국의 뉴욕에 있었다. 이메일은 그 둘을 연결하는 수단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멀리에 있고 우리가 이메일이라는 수단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는데,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남자가 답장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처음에는 바쁜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만 며칠 지나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내리는 결론은 하나다. 그는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는 것. 내게 답장 보낼 의향은 없고, 그것은 곧 답장을 보낼 다른 여자를 만났다거나 혹은 나와는 그만 연락하고 싶어 한다는 걸. 그래서 이 영화속에서 이 남자가 말해준 '나는 더이상 이메일로는 만족할 수 없었으니까' 라는 대답이 신선하고 놀라웠다. 한번도 그런식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연락을 하지 않는 이유가 더 많은 것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사랑함에 있어서 취하게 되는 태도에는 단지 하나의 이유만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 안에는 아주 많은 생각이 들어있고 아주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상대방이 짐작도 할 수 없는 많은 이유들. 

 

여자와 A 는 여자의 남편이 출장가 있는 동안 함께 밤을 보낸다. 새벽 두시까지 신나게 얘기하고 한 침대에 눕게 되지만 그들은 옷을 벗지는 않는다. 여자는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과 계속 함께 살것이다. 남편의 눈을 바라보지 못할것 같은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그 밤이 흐르고 여자와 A는 이별을 한다. A 가 떠나면서 흘리는 것은 눈물이고, A를 보내면서 여자가 흘리는 것도 눈물이다. 

 

남자는 아내가 의심하던 여자동료와 출장을 갔다. 그녀와 술을 마신다. 밤이 깊었다. 그녀는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녀와 한침대에 눕는다. 남자와 동료는 옷을 벗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남자는 동료에게 말을 건다. 동료는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말리지만 남자는 결국 사과의 말을 내뱉는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내가 무슨짓을 하는지 몰랐다고. 실수였다고. 그러자 동료는 말한다. 

어젯밤, 두번째 것도 실수였어요? 

남자의 말은 변명이 될 뿐이고, 남자는 동료를 그곳에 둔 채 일정을 취소하고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남자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결코 좋은 기분이 아니다.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자 아내, 여자가 울고 있다. 남자는 여자를 안고 위로한다. 그리고 그녀가 벗어둔 예쁜 구두를 본다. 이제 곧 가운 속에 입고 있던 셋트 속옷을 보게 될 것이다. 남자와 있을 때는 입지 않았던-아니, 과거에는 입었을- 예쁜 속옷. 이제 남자는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짐작하게 될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짐작했던 것 처럼. 그 후의 날들을 함께 살아가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한 침대에서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누웠던 일을 그들은 잊을 수 있을까? 그때의 기분과 그때의 감정을 지운채로 살 수 있을까? 한쪽은 감정적인 외도였고 한쪽은 육체적인 외도였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더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남자와 여자는 헤어질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는 그 일들을 잊은 '척' 함께 살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살면서 또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언젠가는 남자가 아내를 깨워 맛있고 뜨거운 요리를 해주는 것이 더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는지도 모르고, 여자가 남자의 와이셔츠에 넣어둔 쪽지가 효력을 발휘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들이 어떤 삶을 따로, 또 같이 살게 돼도 그들의 그 지난밤을 죄책감만으로 덧칠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 하룻밤의 많은 것들-사랑한다고 말했던 것 혹은 말하지 않았던 것, 옷을 벗었던 것 혹은 벗지 않았던 것-을 그들은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은 그 순간 자신의 선택이었으니 만큼 자신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그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각자 저마다의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너희들이 한 짓은 잘못이야' 라고 말하겠지만, 용서는 타인의 몫이 아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라는 생각이 드는 숱한 밤들중에 어떤 밤들은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라고 그들 자신이 그들을 조용히 용서하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죄책감을 가지는 것도 본인의 몫이고 그것을 다독이는 것도 본인의 몫이다. 결코 타인의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특별할게 하나도 없는 영화다. 굳이 만들어지지 않았어도 좋았을 영화. 세상에 이런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토록 자주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건,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겪고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남일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 대부분의 '남의 일'은 자신의 일이기도 하다.  이 영화속에는 내가 그리고 내 친구가 또한 우리 모두가 들어가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감정을 확인하거나 혹은 미처 몰랐던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도 역시, 음,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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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4-10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서는 타인의 몫이 아니다.
오늘 읽은 최고의 명문장이에요.
뻔할 수도 있는 내용을 이렇게 특별하게 들려주시네요. 영화는 재미가 없었어도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겠어요.^^

마노아 2011-04-10 20:13   좋아요 0 | URL
참,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이승환의 노래이기도 해욧!!

다락방 2011-04-10 22:30   좋아요 0 | URL
아, 제목이 [한사람을 위한 마음]이었던가요? 맞아요, 이오공감 노래에요. ㅎㅎ

뻔한 내용이긴한데 보면서 참 여러가지 일들이 생각나더라구요. 그리고 알렉스(A)가 '더이상 이메일 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고 한게 참 인상깊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들은 그날밤을 마지막밤으로 만든거겠죠.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마노아님.

방금 반짝반짝빛나는 보고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ㅎㅎ 그런데 다음주 예고보니까 김현주가 김석훈 집에 가나봐요. 아우, 난몰라 진짜. ㅎㅎ

마노아 2011-04-1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내가 원했던 '독립'이 나왔어요. 김현주가 금방 독립을 안 할까 봐 무척 걱정이었어요.
오늘 내용은 무척 화가 났지만 다음주는 내용도 더 희망적일 것 같고, 김석훈과의 무언가도 더 생길 것 같아요.
어휴, 마지막 예고편에서 김석훈을 보면서 또 한숨을 쉬었어요. 제기랄! 저런 남자를 언제까지 TV에서만 봐야 할까요. 어휴..;;;;

다락방 2011-04-11 10:1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김석훈 같은 남자는 드라마에만 존재하는...orz
김석훈과 김현주가 확실한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김석훈의 어머니가 이유리를 좋아하셔서 앞으로 어떻게 될런지.. 김석훈은 김석훈의 어머니와 쇼부친 것 같던데요. 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내버려둔대신, 신부는 엄마가 고르기로 했던거 잊지마라, 라고 얘기하는 걸 들었거든요.

에디 2011-04-10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역시 남자가 몸이 우선(?)하는군요?

다락방 2011-04-11 10:15   좋아요 0 | URL
그러나 그들에겐 반드시 '상대'가 있었죠. 그러니 꼭 남자가 몸이 우선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몸이 우선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우선하는 사람도 있고. 뭐가 됐든 어쨌든 뭔가를 했죠.

poptrash 2011-04-11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 싶지 않은, 알지 않아도 좋은 일을 역시 알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떨까요.

다락방 2011-04-11 10:16   좋아요 0 | URL
그거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원하는 이야기에요. 전 제가 알고 싶지 않은 많은것들을 저절로 알게됐어요. 맹세컨대, 그런것들을 알고 싶지는 않았어요. 정말로요.

버벌 2011-04-11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때로 여자들의 (좋아하는)남자를 향한 감각은 본인에 대한 그 어떤 예감보다 정확할 때가 있고, 나는 이것이 무섭고 슬프다.> 우잉~ 다락방님~ 저 지금 엄청 무서워 하는 중이에요. ㅠㅠ

다락방 2011-04-11 10:16   좋아요 0 | URL
전 엄청 슬퍼하는 중이구요. ㅠㅠ

레와 2011-04-1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생각이 범벅..;

이 영화는 패스할라요. ㅎ

다락방 2011-04-11 12:33   좋아요 0 | URL
레와님, 패스해도 전혀 아깝다거나 아쉬운 영화가 아니에요. ㅎㅎ

moonnight 2011-04-1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스트 나잇 봤어요. 줄거리보다는 비내리는 뉴욕의 풍경 같은 게 좋더군요. 어쨌든 배우들도 선남선녀이고. ^^
제작사가 Gaumont이던데, 파리 배경으로 프랑스배우들을 쓰면 오히려 더 어울리겠다 싶기도 했어요.

다락방 2011-04-11 16:26   좋아요 0 | URL
전 배우들도 그다지 선남선녀라고 느껴지지가 않더라구요. 말씀하신대로 프랑스 배우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는 하네요. 음, 그러면 분위기가 또 달라졌을 것 같아요. 비 내리는 뉴욕은 좋죠? 저도 비 내리는 뉴욕이 좋더라구요.

무스탕 2011-04-1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은 세 개 밖에 안 줬으면서 리뷰는 왤케 길게 쓰신거야요?

그렇습니다. 남이 모르길 원한다면 절대 입 밖으로 내서 말하면 안된답니다. 꼭 내 속에서만!!

다락방 2011-04-11 16:2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영화를 보면서도 또 보고나니 생각이 많아져서, 재미는 없는데 자꾸 이것저것 할말만 많아지고. 사실 남편이 바람핀 여자의 입장에 대한 글도 쓰고 싶었는데 그랬다가는 리뷰가 한도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서 여기서 그만..

네, 저도 뼈저리게 실감합니다, 무스탕님. '둘만 아는 비밀' 따위는 없대요. 비밀은 혼자 알고있을때만 비밀이라고. 저도 꼭 내 속에서만!!

Doribari 2011-04-1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메일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라니요. ㅠ_ㅜ 그럼 나는 뭐, 이 메일에도 만족하고 있었던 거냐! 발끈 생각했는데 3초 정도 흐르니까 과연 그렇군요. 아아 이런. 그 분의 답장이 뜸해지면, 오늘의 교훈으로 저를 위로 하겠어요. 위로도 따지고 보면 타인의 몫이 아니라 자신의 것!

다락방 2011-04-14 16:35   좋아요 0 | URL
위로도 역시 자신의 몫이죠. 자신만이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족하지 못하겠는 기분을 저는 너무나 잘 알아요. 그러나 '그래서' 그거라도 더 붙잡고 싶은게 제 심정이라면, '그래서' 그만두는 게 이 영화속 A 의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거였는데.

저는 아마 앞으로도 말할 일은 없겠지만, 말할 수 없겠지만,
이메일을, 문자메세지를, 전화를, 만남을, 옆에 있기를 그러니까 둘이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원해요.

푸른바다 2011-04-17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극장에 갔다가 시간이 맞는 영화를 본다는 게 그렇게 됐는데 웃기는 건 다락방님이 페이퍼에 썼던 그 영화라는 걸 제가 처음엔 몰랐다는 겁니다.^^ 이 페이퍼를 읽으면서 제목을 눈여겨 보지 않았고 아마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설정, 대사인데 하는 느낌이 들어 생각해 보니 다락방님 페이퍼에서 봤던 것 ㅎㅎ 영화를 보고 다시 이 페이퍼를 읽어보니 정말 실감나게 잘 쓰셨습니다. 저라면 기억하지 못했을 대사, 장면들을 생생하게 잘 옮겨 놓으셨군요. 하지만 영화는 말씀하신 대로... 재미없었습니다.ㅎㅎ

다락방 2011-04-17 22:36   좋아요 0 | URL
굳이 만들어지지 않았어도 될 영화였던 것 같아요. 뭐 특별한 의미가 있지도 않았고 말이죠. 결정적으로 별로 재미도 없었어요. 다만 제가 여러가지로 생각을 많이 했고 그래서 결정적으로 하고 싶은 말들이 꼭 있어서 리뷰를 쓰게 됐죠.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썼기 때문에 실감났는가 봐요.
대사는 그러나 정확하게 인용된 건 아닐거에요. 제 기억에만 의존한거라.. 하핫;;
 
라스트 나잇 - Last N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당신을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의 옆에 눕는다는 것. 눈치챌 수 있는 일, 눈물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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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1-04-10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얘기네요. 어디에도 쓸모없는 눈치따위 없는 게 나으련만.

다락방 2011-04-10 01:50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눈치있어서 콱 죽어버리고 싶을때가 있어요. 이놈의 미친 눈치.

비로그인 2011-04-1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의 눈치 없음이 고맙다가, 밉다가.
상대방의 눈치 있음이 저주였다가, 축복이었다가.

다락방 2011-04-10 19:34   좋아요 0 | URL
저는 모르겠어요.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마노아 2011-04-1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40자평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걸요! 감각적이에요!

다락방 2011-04-10 19:34   좋아요 0 | URL
남자와 여자에게 모두 해당하는 걸로 쓰고 싶었어요, 마노아님. 히히

무스탕 2011-04-11 13:51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의 댓글로 봐선 마노아님도 이 영화를 보셨단 말씀?

다락방 2011-04-11 16:27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이 영화를 대체 누구랑 본걸까요, 무스탕님? ㅎㅎ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해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다.   
   

엊그제 친구가 왓섭으로 보내준 문장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온 문장이라며. 나는 저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랬으니까. 일전에 우울이 극을 달리고 있을 때, 친구가 보내준 일회용 드립커피의 향을 맡고 흐물흐물 풀어져 버린 기억이 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딸기가 그랬다. 

 

딸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아닌데, 이상하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도 봄이 왔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식탁에 딸기 바구니가 보였다. 엄마는 먹기 좋게 꼭지를 다 따두셨다. 으악, 딸기다. 그리고는 밥을 먹는 내내 흥분해가지고 이 수다 저 수다 떨고 있으려니 엄마는 쟤가 아침부터 딸기를 보더니 흥분해서 정신이 나갔다고 하셨다. 하하하하. 어제까지 완전 기분 엿같아서 술을 퍼마시는 나날들이었는데, 밤에는 잠도 오질 않았는데, 그 모든 고통들이, 젠장, 딸기 하나로 풀어지다니.  

 

그리고 오늘 점심. 동료와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잔 마시느라 까페에 앉아있다가 문득 창 밖을 보았는데, 오! 꽃이 피고 있었다. 막, 마아악, 피려고 하고 있었다. 맙소사. 너무 좋잖아! 

 

조금 있으면 활짝 필걸 생각하니 신난다. 올림픽공원에도 그리고 어린이 대공원에도 가야지.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사자랑 호랑이를 보고 와야지. 낙타 똥 냄새를 맡고 와야지. 타조도 보고 곰도 봐야지. 많이 걸어야지. 힐을 신고 걸을거야. 두 발이 부르트도록.

그리고 사진을 찍어야지. 활짝 핀 꽃사진을, 무서운 호랑이 사진을.   

 

 

 

'렌조 미키히코'의 『연문』을 읽었을 때도, 나는 그가 다루는 화려하지 않은 사람들, 부족하지만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퍽 만족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책 『회귀천 정사』에도 그런 인물이 나온다. 

두번째 단편, [도라지꽃 피는 집]의 주인공 남자인데, 그는 스물 다섯인데 머리숱이 별로 없다. 그래서 외모에 자신이 없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을때마다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나 역시 꽤 긴 시간을 외모 컴플렉스에 시달렸었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너무 되서 이걸 결코 남 이야기로 읽어 낼 수가 없다. 그런 그가 걸어가던 길, 한 소녀가 도라지꽃을 창위에서 뿌린다. 

 

 

신발 끈이 잘 묶이지 않아 쇼후칸을 뒤늦게 나서는데, 히시다 형사의 등은 이미 골목 귀퉁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뒤를 쫓아가려고 서둘러 막 뛰어나가려 할 때, 바로 그때였다. 무언가가 내 얼굴을 스치며 바닥에 떨어졌다. 문득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발끝을 보았다. 신발 끝이 물웅덩이에 떨어진 그것을 밟고 있었다. 진흙 범벅이 되어 짓밟힌 그것은 이미 형태를 잃었지만, 그래도 도라지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불쑥 고개를 들었다. 내가 서 있던 곳은 스즈에의 방 창문 아래였다. 창문의 반은 커튼에 가려져 있었고 인기척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걷기 시작하자 다시 도라지꽃이 떨어졌다.
(p.93) 

이 소녀가 도라지꽃을 떨어뜨린 이유를 밝히고 싶은데, 그것은 엄청난 스포일러가 된다. 아, 정말 좋은데. 그 꽃을 떨어뜨린 이유는. 나도 창가에서 누군가를 향해 꽃을 떨어뜨려 보고 싶은데. 이 소녀와 같은 이유로. 열여섯 살 소녀만이 떠올릴 수 있는 동기, 바로 그 이유로. 

 

퇴근까지 이제 두시간, 나는 이제 일을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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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08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 딸기와 가장 좋아하는 꽃인 벚꽂과 (저거 벚꽃 맞죠?) 가장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 추리소설인 <회귀천 정사>가 있으니, 완벽합니다.

회귀천 정사, 짱 아닙니까! 정말 모든 이가 읽었을때, 그 때가 되면 제가 각각의 단편에 대해 다 쏟아붓고 싶은 말들을 해버려도 될까요? 정말 제 취향에 딱!!!!! 맞는 책이었어요. 빨리 속편 <저녁싸리 정사> 내달라고 출판사에 전화하고 싶어졌거든요.

다락방 2011-04-08 16:18   좋아요 0 | URL
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뭔지를 모르겠네요. 전 뭘 좋아할까요? 예전엔 귤 좋아하는것 같았는데 이젠 아닌것 같고..뭐 딱히 생각나는 과일이 없어요. 저는 그보다는 마늘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꽃은 벚꽃 맞아요, 브론테님. 아직 제대로 다 피질 않았어요. 필 준비들을 하더라구요. 빨리 폈으면 좋겠어요! >.<

회귀천 정사, 저는 뭐 짱 까지는 아닌데 말이죠. 저 도라지꽃을 소녀가 떨어뜨린 그 마음, 남자의 선배가 보낸 편지를 인용하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요. 그걸 넣어야 이 페이퍼가 진짠데. 흑 ㅜㅡ 저 아직 단편 두개 남은 것 같아요. 다 읽지는 못했어요. 요즘 심신이 고달파서 저녁마다 술을 퍼 마시느라고 책을 읽을 수가 없었거든요. 하하하핫;;

Forgettable. 2011-04-0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얘기 쓰라니까....................

다락방 2011-04-08 16:18   좋아요 0 | URL
자라니까 왜 안자고 여길 또 들어왔어요............왜이렇게 말을 안들어!!

레와 2011-04-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은 무슨, 여기 있어요!! 우리랑 놀아요!! ㅋㅋ


브론테님 페이퍼에서 저 책보고 보관함에 담아 뒀는데.. 아웅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못 읽어내리고 있어요.
미드를 끊어야 책이 눈에 들어올텐데, 깁스를 버릴수가 없어!! (NCIS 짱!!)

다락방 2011-04-08 16:31   좋아요 0 | URL
안돼, 나 못놀아요, 놀면 안돼, 일해야 된단 말예요! (라고 쓰고 또 여기 와있기 ㅋㅋ)

저 책은 레와님 취향일 것 같아요. 그리고 금방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그러니까 제 말은, 사셔도 구석에 처박아 두지 않고 읽게 될만한 책이다, 라는 말씀이외다. ㅋㅋㅋㅋㅋ
NCIS 저도 몇번 본 적 있는데 저는 토미 웃겨요. ㅋㅋㅋㅋㅋ 그리고 깁스반장 좋아하는 그 메탈릭한 여자연구원? 과학자? 분석가? 암튼 그 여자도 웃겨요. ㅋㅋㅋㅋㅋ

푸른바다 2011-04-0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귀천 정사>라.. 참 낯선 제목이군요. 언젠가 다락방님의 소설편력기를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방사성 비와 황사 사이에 낀 모처럼 봄다운 봄 날씨입니다. 침묵의 봄으로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불안감도 있지만 아직도 봄은 여지없이 찾아오긴 오는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놀이터였던 어린이 대공권 이야기를 읽으니 문득 가보고 싶어지네요. 못가본지 도대체 몇년이 지난건지 헤아리기도 힘들군요.^^ 이제 퇴근 30분 전이네요? 한주 일 마무리 잘 하시길.

다락방 2011-04-08 18:39   좋아요 0 | URL
아니, 제 소설편력기는 대체 왜요? ㅎㅎ
오늘은 정말 봄이었어요.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분도 저절로 좋아지더라구요. 저는 어린이 대공원 매년 가요. 봄 되면 어린이대공원을 꼭 가줘야 할 것 같아요.
아, 저는 이제 퇴근합니다. 푸른바다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푸른바다 2011-04-11 10:38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다락방님이니 그 소설 사랑에는 무언가 남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죠^^ 전 정말 어린이 때만 어린이 대공원을 갔던 것 같아요. 그 앞을 지나가 보긴 한 것 같은데 들어가 보진 못했죠. 다른 일 때문에 그 근처에 갔을 테니까요. 제가 어린이 대공원에 마지막 갔을 때도 청룡열차가 있었던 것 같으니 그 후로 대략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다락방 2011-04-12 14:38   좋아요 0 | URL
오늘 출근길에 보니 이제 피었구나 했던 벚꽃들의 잎이 벌써 떨어지기 시작하더라구요. 꽃의 생명은 너무 짧은 것 같아요. 어린이대공원에는 벚꽃이 많이 피었을 것 같은데, 제가 갈 시간을 낼 때쯤이면 꽃을 보기는 틀린것 같아요. 안타까워라.

푸른바다님 주변은 다 이과적인 사람들이라 그런가봐요. 저는 뼛속까지 문과적인 사람인 듯;;

푸른바다 2011-04-13 10:20   좋아요 0 | URL
전 문과적이니 이과적이니 하는 표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사람에 성향이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제가 다락방님 서재에 자주 오는 이유는 제목도 처음들어본, 저는 읽을 것 같지 않은 소설책들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나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도록 너무 재미있게 쓰시는 것 같아요. 결국 읽은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읽지 않을 책에 대한 생생한 독후감을 읽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도 경험이 확대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로쟈님 서재에서는 결국은 구매하고 읽게 될 책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고 다락방님 서재에서는 결국은 읽지않게 되지만 이런 책들도 있고 읽으면 재미있겠구나 하는 책들을 발견하는 게 제 기쁨입니다.^^ 다락방님 계속 건필하시길~^^

다락방 2011-04-13 13:2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푸른바다님, 칭찬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쓴다 하시니, 읽지 않을 책임에도 불구하고 제 글을 읽으신다니 뭔가 뿌듯해요. 어쩐지 잘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하핫.
건필, 까지는 거창하고 하던대로 열심히 계속 하겠습니다. 으쓱하네요. 히히.

꿈꾸는섬 2011-04-08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낮에 다락방님 서재에 들어왔다가 울 딸이 딸기 사진 보고는 딸기 내놓으라고 야단이었답니다.ㅜㅜ
3월에 내내 딸기 먹어서 청포도랑 오렌지 사과...요것들을 사다놓았는데 요것이 안 사온 딸기를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려 살살 달래느라 고생한 오후였어요.ㅎㅎ 하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르고 쿨쿨 자고 있네요.

다락방 2011-04-10 01:53   좋아요 0 | URL
아 이런. 하하하하. 제가 테러했네요, 딸기 사진으로. 그렇지만 사진속의 저 딸기는 그렇게 맛있지는 않더군요. 딸기보다는 청포도가 훨씬 맛있어요, 저는.

버벌 2011-04-0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왜 이러세요. ㅠㅠ 이 전에는 도넛이더니 이제는 딸기로. 아 정말 왜 이러세요~~~~~~

다락방 2011-04-10 01:53   좋아요 0 | URL
제가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저는 이럴 수 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에요. ㅎㅎ

Mephistopheles 2011-04-09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를 보고 광분(?)하셨을 다락방님을 위해 노래 하나 틀어드립니다.

삐삐밴드의 "딸기"

아주 적절한 선곡이죵..?

다락방 2011-04-10 01:54   좋아요 0 | URL
딸기가 좋아~ 하는 그 노래 말씀이십니까? ㅎㅎ 저 지금 새벽 두시인데 커피 두잔 마셨어요. 히히

마노아 2011-04-09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감을 다 저릿하게 만드는 페이퍼예요. 이곳에 봄이 먼저 도착했군요.
저는 내일 봄을 만나러 외출합니다. 봄에 흠뻑 취할 거예요.^^

다락방 2011-04-10 01:55   좋아요 0 | URL
그래서, 마노아님, 봄에 흠뻑 취하신 겁니까? 혹시 술에 흠뻑 취하시고 들어오시진 않으셨을까요? 저는 따뜻한 커피를 두 잔 마셨습니다. 음, 그런데 졸리네요. 하핫

Kir 2011-04-09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 딸기군요!
딸기는 딸기만 먹어도 맛있지만 홍차나 와인 마시면서 먹어도 맛있어요, 헤헤^^
물론 씻기 귀찮아서 안 먹고 말지, 할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요;

다락방 2011-04-10 01:56   좋아요 0 | URL
저도 모든 과일을 잘 안먹는게 씻기도 귀찮고 깍기도 귀찮아서에요. 엄마가 깍아서 썰어주지 않으면 사과나 배는 먹을 생각을 안해요. 하하하하. 게으른 인간. 앗 이 새벽에 딸기가 먹고 싶어요. 전 딸기는 잘 먹는데 딸기로 만든 다른건 못먹겠어요. 딸기 아이스크림이라든가 딸기 우유라든가 하는 것들요. 미친거짓말 같아요, 그런 것들은.

pjy 2011-04-0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는 올케가 좋아하긴 하지만 저는 그닥이었는데 요번엔 올케가 쌍둥이를 임신하면서 주구장창 사다 먹이고, 옆에서 주워먹고~ 덕분에 평생동안에 먹어본 딸기보다 더 많이 먹었습니다ㅋㅋ; 딸기처럼 예쁜 쌍둥이가 봄에 태어날 예정입니다...이제 저도 조카자랑할 수 있는 '고모'가 됩니다ㅋ

다락방 2011-04-10 01:57   좋아요 0 | URL
어므낫. 이 봄에 딸기처럼 예쁜 쌍둥이라뇨! 복숭아처럼 예쁜 제 조카와 배틀 붙읍시다! ㅎㅎㅎㅎㅎ
아직 조카가 이모 라고 불러주지는 않는 상황인데, 저는 그 작은 아이가 꼬물꼬물 제게 이모라고 부르면 녹아버릴 것 같아요. 꿈에도 나오는 절대미모에요. 흑흑 ㅠㅠ

루쉰P 2011-04-0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문체의 산뜻한 글을 다락방님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왠지 다락방님과 경재을 하는 느낌을 받아여. 제가 댓글 올리는 것보다 빠르게 글이 올라오기에 오늘은 지지않아라며 서재를 찾지만 항상 저보다 빠르가 글이 올라와요. 역시나 오늘의 명문장은 '힐을 신고 걸을거야, 두 발이 부르트도록'입니다. 글쓴 작가 한 없는 방황하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문장이라 여깁니다. 응용 문장하나 쓰자면 '슈트 입고 걸을거야, 등에 땀 나도록'입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푸훗

다락방 2011-04-10 01:58   좋아요 0 | URL
등에 땀나는 거 참지 말고, 그럴땐 마이를 벗어 손에 들고 걸으세요, 루쉰님. 땀 많이 나면 냄새나요. ㅎㅎ
경쟁하시는 루쉰님께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저는 주말에는 거의 글을 올리지 않아요. 주말의 저는 조용합니다. 아저씨모드로 돌변해서 숙취로 고생하며 빌빌거리거든요. ㅎㅎ

무스탕 2011-04-09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숭아가 더 좋아요, 아님 딸기가 더 좋아요? 것도 아님 삼겹살에 소주? =3=3=3

다락방 2011-04-10 01:59   좋아요 0 | URL
복숭아는 아우 너무 좋아요. 짱이죠. 삼겹살에 소주도 짱이에요. 딸기는 보면 기분은 좋지만 짱은 아니고.. 일단 딸기는 3등이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