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인 러브 판타 빌리지
로라 위트콤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이야기와 문장은 서투르고 산만하며 여자주인공은 바보같고 도무지 이해불가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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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1-08-17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신랄한데요!

다락방 2011-08-17 18:09   좋아요 0 | URL
저는 원만한 성격을 가진 신랄한 여자에요. (응?)

다락방 2011-08-17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영화쿠폰 안 쓰시는분, 저 좀 주세요!

2011-08-17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8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7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8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08-18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쿠폰 그만주세요. 충분히 받았습니다! 므흣
 

어제는 조금 걸었다. 걸으면서 나는 임태경의 '이음악 향기롭다' 코너를 들었다. 임태경은 '오페라의 유령'을, '글렌 굴드'를 이야기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아, 이토록 나직한 목소리라면 책을 읽어주어도 좋겠다, 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나는 여태 살아오면서 누군가 내게 책을 읽어주었던 경험이 전무했단 걸 깨달았다. 어릴적에 엄마가 읽어주었을 것 같지도 않고. 친구도 연인도, 그 누구도 내게 책을 읽어준 적이 없었다. 아 이런 젠장. 물론 나는 그 누군가가 내게 책 한권을 통째로 읽어주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조용한 목소리로 당신이 인상깊었던 부분을 읽어준다면, 내게 들려주고 싶은 부분을 속삭여 준다면, 그건 정말로 짜릿하지 않을까. 임태경의 것과 같은 그런 목소리라면, 듣는 내내 마음이 조용조용할것 같다. 심장도 격하게 뛰지 않을 것 같고. 내가 아직 젊을 때, 침대 위에 벗은 육체를 기대어 누웠을 때, 그때 옆에 있는 사람이 읽어주어도 좋겠지만, 내가 아주 많이 늙었을 때, 그러니까 아주 오랜 후에 더이상 글자들을 읽는일이 힘들어 질 때, 그때 누군가 읽어주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아주 예쁜 할머니가 되어서 젊고 낭랑한 목소리,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그 책들을 만나고 싶다.  

그 때 나에게 책을 읽어줄 젊은이는 여자일 수도 있고 남자일 수도 있을테지. 나의 손자일지도 모르고 이웃집에 사는 마음씨 좋은 청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읽어주는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그려보다가 가끔은 오늘은 책 읽는것 대신 이야기를 해볼까, 하고 그들과 대화를 할수도 있을거다. 나는 그때의 그들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나는 한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을 선물해 준 적이 있었단다. 내 책꽂이에 꽂혀있던 그 책은, 어느 순간 그의 책장에 꽂히게 됐지. 그런데 지금은 그 책이 어디에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구나.  

혹은, 

나도 한 때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었었단다. 내가 읽은 부분은 성인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부분이었어. 나는 읽어주다가 얼굴이 붉어졌었지. 나는 중간에 멈춰야 했어. 끝까지 다 읽었다가는 내 얼굴이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내 얘기를 듣고 그들이 당장 집으로 뛰어가 자신의 책장에서 가장 소중한 책, 많이 읽은 책을 뽑아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건넬 수 있기를. 내 얘기를 듣고 그들이 당장 집으로 뛰어가 자신의 책장에서 가장 격정적인 책을 뽑아 들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그 부분을 읽어줄 수 있기를. 그리고 다음날 그들이 내게 왔을 때의 얼굴은 복숭아빛이기를, 오렌지 향기나는 공기를 뿜고 있기를.   

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며 미소지을 수 있는, 아주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책을 읽고 있다. 별로 재미는 없는 책. 절반 이상을 읽었지만 아직까지도 주인공에게 도무지 몰입이 되지 않는 책. 주인공은 울지만 나는 전혀 울고 싶지 않아지는 책. 그래서 미안하다. 헬렌, 미안해. 네가 울 때 내가 울어줘야 했는데, 네가 사랑할 때 내가 같이 흥분해줘야 했는데, 그런데 나는 좀처럼 네가 될 수 없었어. 그렇지만 제기랄, 제임스가 네게 청혼을 하고, 책을 읽어주겠다고 했을 때, 그 순간에는 네가 부러워 견딜 수가 없었어. 

"결혼하면, 같이 여행 다녀요."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실치 않았지만,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기차 타고."
"배도 타고, 영국도 가보고."
"중국에도."
"아프리카에도."
제임스가 내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밤마다 서로에게 책을 읽어줄 수도 있을 거예요."
(p.272) 

 

 

 

 

 

 

 

제임스와 헬렌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되고, 그리고 헬렌이 하룻동안 그를 피해 있었을 때, 그 다음날 제임스는 그가 묻고 싶은 말을 노트에 적어 그녀에게 보여준다. 

"어디 갔었어요?" (P.33) 

아. 나는 이 물음이 지독하게 달콤하게 느껴졌다. 어디 갔었어요, 다음에 나올 그 무수한 말들이 기다려진다. 어디 갔었어요? 이제 다시는 내 옆을 떠나지 말아요. 어디 갔었어요? 한참 찾았잖아요. 어디 갔었어요? 내내 기다렸어요. 어디 갔었어요, 다음에는 좀처럼 계속 꺼져있어, 라는 말이 나오기는 쉽지 않으니까. 

이 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사랑할 수 밖에 없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노력을 한것 같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마치 세상에서 유일하게 날 이해해 줄 사람이 당신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 당신이 이렇게 날 바라보고, 나와 얘기 하고 있어요."
그가 수화기에 대고 아주 비밀스럽게 말했다.
"기적 같아요."
(P.49) 
 
   
   
 

"우리가 이 지구 위에서 같은 언어로 말하는 단 두 사람, 혹은 단 두개의 종인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서로 떨어져 있을 수 있겠어요?" (p.84) 

 
   
   
 

그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브라운 씨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연구할 때처럼, 다음 페이지로 넘겨달라는 나의 아우성과는 상관없이 브라운 씨가 그 페이지의 좋아하는 표현만을 내리 쳐다보고 있을 때처럼. (p.91) 

 
   

기적 같다고 말하는데, 지구 위에 존재하는 단 두개의 종인 것 같다는데, 책의 좋아하는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것 처럼 바라본다는데(이건 정말 근사하다! 언젠가 나도 써먹어야지!!), 그런데도 이 모든 문장들이 아,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는 느낌으로는 다가오질 않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은 궁금하다. 유령인 그들이 존재하게 된 그 몸 안에 그들은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것인지, 그들의 가족은 여전히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할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결국 어떻게 마무리 될 것인지. 

 

나는, 어디 갔었어요, 뒤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어졌다. 

돌아올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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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7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
난 다락방님 문체가 어느 작가보다도 좋아요.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출판사 차리면 제일 먼저 섭외할게요.

다락방 2011-08-17 15:40   좋아요 0 | URL
왜 나중이에요? 지금 차려요, 지금!! ㅎㅎ

알겠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

레와 2011-08-1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 갔었어요?'



울컥해요. 말이..

다락방 2011-08-17 17:02   좋아요 0 | URL
책의 뒷부분에 이 말이 한번 더 나와요. 같은 여자가 듣는데 처음에 그걸 물었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묻죠. 그때도 잠깐 좋았어요. 그런 잠깐 건드리는 대화들이 없었다면 이 책은 별 한개였을 거에요.

비로그인 2011-08-17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귀여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어린 아이들한테 둘러싸여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중요한 뒷얘기는 다음에 해줄게, 하면서 애태우고는 안달볶달하는 애들 표정을 즐겁게 지켜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수 많은 이야기를 쟁여놔야할텐데, 그저 듣는게 좋을 따름이니...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네요. 저는 지금 필립 베송 (다락방님 서재에서 알게 된)의 [이런 사랑]을 읽고 있는데 지금 막 녹아들고 있어요. 30쪽 가량 남겨놓고 잠깐 심호흡하고 있답니다 ㅎㅎ

다락방 2011-08-17 17:04   좋아요 0 | URL
우앗, 수다쟁이님! [이런 사랑] 빌려 읽으시는 거에요? 저는 알라딘에서 사려고 했는데 품절이더라구요. 그것만 읽으면 국내에 번역된 필립베송 전3종셋트(라고 마음대로 이름붙이기)를 다 읽는건데 말이죠. 흐음. ㅠㅠ 저도 이런 사랑 다른 인터넷서점 막 뒤적여봐야 겠어요. ㅠㅠ [이런 사랑]은 안읽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문장 참 좋지 않아요? 전 포기의 순간이 황홀했어요. 문장이 아름답고 힘이 있어요.

수다쟁이님이 되고 싶은 할아버지도 근사한데요. 수다쟁이님은 그런 할아버지가 되고, 저는 제가 원하는 할머니가 되어서, 우리 실버타운에서 친구 먹어요!!

비로그인 2011-08-17 17:36   좋아요 0 | URL
그래요그래요 ㅋㅋㅋㅋ (실버타운에서 빵 터졌어요 ^^) 그런데 실버타운에 어린아이들도 살까요? 이왕이면 이야기타운을 만들어보는거 어때요? 빨간머리 앤이 이야기클럽 만들듯이, 이야기타운을 누군가가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요새 아파트들처럼 방문객들이 경비실에 먼저 검사받지 않아도 되고, 누구든지 부담없이 드나들 수 있는 그런 마을이요. 나이 들어서 이런 말 하면 왠 청승이냐고 놀림 받으려나요?

다락방 2011-08-18 09:21   좋아요 0 | URL
실버타운에 어린이가 거주하지는 않더라도 찾아오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린이도 청년도 모두 찾아오는 실버타운인 거죠. 찾아와서 수다쟁이님 같은 귀여운 할아버지와 다락방 같은 어여쁜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주는거죠. 언제나 바베큐 파티가 벌어지는 그런 곳으로 만들어봐요.. ( '')

poptrash 2011-08-1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한** 님은 도대체 어디 가신 걸까요. 흑흑

다락방 2011-08-18 09:2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꽤 오랫동안 안보이시네요, **철님은. 흑흑

hnine 2011-08-17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간 페이퍼에 황경신이 있다면 알라딘 서재에는 다락방이 있다'
뭐 이런 말이 들리더군요...(^^)

'어디 갔었어요' 와 '어디 갔어요'
한 글자 차이인데 완전 다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이네요 ㅠㅠ

다락방 2011-08-18 09:35   좋아요 0 | URL
hnine님, 아이쿠, 무슨 그런 말씀을.

어디 갔었어요, 란 말은요, hnine님,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물을 수 없는 말인 것 같아요. 관심도 없는데 어디 갔었는지를 물을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치요?

오늘은 오랜만에 날이 맑아요.
:)

... 2011-08-18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또 어디서 어떻게 발견하고 읽게 되셨나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1-08-18 09:38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참..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그러니까, 반값 할인하는 책은 뭐가 있나 하고 둘러보다가 딱 걸린. 그러나 제목때문에 망설였던..결국 두달 이상을 고민하다가 에라이, 하고 넣었던 책이었....답니다. 하핫

발견, 이랄것 까지는 없는거죠, 그러니까. orz

달사르 2011-08-1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좋아하는 페이지만 쳐다보는 느낌으로 누군갈 바라보는 일. 꺅. 저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받고 싶어요. ^^
다락방님, 언젠가 이 문구를 누군가에게 써먹게 되면 그때, 여기에 살짝 알려줘요. 들으면 두근거릴 거 같거든요.

다락방 2011-08-18 13:31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면 저는, 좋아하는 페이지의 문구만 쳐다보는 그런 시선으로 누군가를 본 기억은 있어요. 다만, 상대가 그걸 알아챘느냐....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제가 받은 기억은 전혀 없네요.

음, 제가 언젠가 이 문구를 그대로 써먹게 되는 날이 온다면, 후훗, 네, 살짝 알려 드릴게요. 함께 두근두근해요. 히히.

2011-08-18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8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따라쟁이 2011-08-21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나도요. 돌아올 줄 알았어요.

다락방 2011-08-21 21:58   좋아요 0 | URL
오늘은 일찍 자요, 따라쟁이님.
 
내가 훔친 여름 김승옥 소설전집 3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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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순간이라도 당신에게 여름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그러니까, 훔치고 싶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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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1-08-1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오래전부터 보관함에 담아뒀는데..

다락방 2011-08-16 16:14   좋아요 0 | URL
난 책장에 오래전부터 꽂혀있었어요. 2년 넘었나 ㅎㅎㅎㅎㅎ
 
무덤의 침묵 블랙 캣(Black Cat) 11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미정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끔찍한 시간을 넌 너무 오래견뎠어. 넌 잘못한게 아냐. 이젠 좀 네자신을 놓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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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5 0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6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벌 2011-08-16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구나....ㅎㅎ

다락방 2011-08-16 09:55   좋아요 0 | URL
이거 좋았어요. 아마도 제가 읽은 아이슬란드 소설로는 처음이자 유일한것 같아요.
 

 

 

 

 

 

 

 

 

책, 『나무소녀』의 역사적 배경은 '과테말라 내전'이다. 세상에. 대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내가 너무 역사에 무지하기 때문일까. 과테말라 내전은 들어본적도 없는 것 같은데. 소녀가 혼자서 그 시간들을 견뎌내며 성장하고 하는 이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가슴 아파하는데, 이 책의 마지막, 과테말라 내전에 대한 짧은 설명이 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책, 『사라의 열쇠』는 처음부터 울컥거리게 했고, 마지막, 사라의 일기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지만, 이것은 그러나 내게 충분히 만족할만한 소설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것 같아서 아쉽다. 

영화, 『사라의 열쇠』는 중간 이후까지 책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이미 책을 다 읽은 후라 결말까지 다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처음부터 내내 눈물을 흘렸다. 동행은 중간부터 계속 눈물을 흘리고. 그러나 마지막의 어떤 장면에서 나는 집중력이 확 떨어지고 말았다. 아, 이 영화에 왜 저 장면을 저렇게.. 그게 너무 아쉬웠다. 책보다 나은 영화잖아, 라고 중간까지는 내가 얼마나 흥분햇었는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저렇게 나이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근사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이 긴머리를 잘라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단발로 가자고. 
 

 

지난주였나, 밤에 하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를 잠시 시청했더랬다. 늘 보아 오던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줄거리는 모르지만, 아마도 여자는 남자를 혼자 좋아했었고 남자는 여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었던건지, 어쨌든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기를 그만두었었는가 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하늘을 보며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남자는 소원을 빌었냐며, 무엇을 빌었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비밀이라고 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너는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다. 남자는 처음에 비밀이라고 말하더니 이내 자신이 빌었던 소원을 얘기해준다. 

니가 나를 다시 좋아하는 것. 

 

다시 좋아하는 것은 여자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 순간 놀랐던 그녀는 이제 그와 함께다. 물론, 그 뒤의 일들에 대해서는 나는 더이상 알지 못하지만. 

 

여름밤의 올림픽공원에 갔었다. 비가 온 후여서인지 평소처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나와 나의 동행말고는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참 좋았다. 귀뚜라미가 울었고 매미가 울었다. 앞에는 호수가 있었고 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완벽한 순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자꾸만 다리에 벌레들이 붙어서 그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방해했지만, 그럴때마다 손으로 그 벌레들을 치워댔다. 물론, 신경질을 내면서. 

 

 

아, 맞다. 임태경이 라디오 다시 진행하는데, 들어봤어요?  

라고 나는 동행에게 말하며 주섬주섬 가방에서 아이팟을 꺼냈다. 일전에 주변에서 모두들 팟케스트를 그리고 나는 꼼수다를 추천하던 터라 다운받아 놓으면서, 그러나 내가 이걸 듣게 될 날이 올까, 갸웃하면서, 이왕 다운 받는거 임태경이 한다는 라디오도 한번 받아볼까, 했던터였다. 나도 아직 안들어봤는데 우리 잠깐 들어볼까요? 하면서 나는 재생시켰다. 그 여름 밤, 귀뚜라미와 매미만 울어대는 밤에, 아이팟에서는 음악이 흘렀고, 그리고 임태경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비올리스트 킴 카쉬카쉬안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아. 좋았다. 킴 카쉬카쉬안, 이라는 비올리스트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된건 임태경의 라디오를 들었기 때문이고,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임태경의 목소리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설명하는 임태경의 목소리는 또 그의 모든 발음은 아주 조용했고 아주 기품있었다. 클래식을 임태경처럼 잘 소개해주는 남자를 나는 더 알지 못한다. 심지어 나는 클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는 클래식을 듣는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임태경이 라디오를 진행하며 소개해주면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지는 것이다. 나는 그 밤에, 그 음악과 그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동행에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아, 어떡해. 다시 좋아지려고 해요. 심장이 두근거려. 

나는 언제부턴가 임태경을 멀리했었는데,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도 안했는데, 그날 밤, 나는 다시 그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건 그래, 이런 것 때문이었지. 이러니까 내가 과거에도 이 사람을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래, 아주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났을 때, 무심하던 마음으로 나갔다가 몇마디의 말들과 웃음들을 공유한 뒤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 이 사람은 역시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어. 이래서 좋았던거야. 과거에 좋아했던 것을 다시 좋아하는 것,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사랑하는 것, 그것은 쉽지도 않겠지만 그러나, 어렵지도 않다.   


어제 장소를 이동하기 위해 갈아탄 지하철 안에서 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오는 전화가 너무 오랜만이라 어어, 뭐지, 하고 잠깐 설레였다. 080이나 번호없음도 아니고 꽤 멀쩡해 보이는 번호였다. 뭘까,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보세요, 라고 전화를 받았더니 뭔가 잔뜩 녹음된 말이 나오고, 이내 또다른 녹음된 말이 나왔다. 

방금 들으신 것 처럼 음성 자동인식 내비게이션을 구입하고 싶으시면 전화기의 버튼을... 

하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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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11-08-14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팟케스트를 드디어!(앞으로 많은 추천을 해드릴께요)

다락방 2011-08-15 00:03   좋아요 0 | URL
그렇지만 제가 별로 들을것 같지는 않아요. 하핫. 저는 사람들이 대체 언제 그 많은것들을 -이를테면 드라마라든가 라디오방송이라든가 하는것들요- 보고 듣고 하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겠어요. 하핫.

레와 2011-08-14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이별하기로 한 사람은 다시 만나면 안되요. 다시 빠질게 불보듯 뻔하니깐.

지나간 사랑도 사랑.

다락방 2011-08-15 00:05   좋아요 0 | URL
응 그게 미칠노릇인 것 같아요. 그래, 다시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은 다시 사랑하지 말자, 뭐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게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서 그사람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도, 다시 만나니까 참 다시 마음이 스멀스멀..해지기 쉬운 것 같더라구요. 뭐, 내가 최근에 그랬다는 건 아니에요.

마노아 2011-08-14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소녀를 읽으면서 살바도르 아옌데가 떠올랐어요. 미국은 전 세계에 걸쳐 저런 식의 만행을 참 많이 저지른 것 같은데 남미 쪽은 가깝기 때문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나쁜 짓을 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ㅜ.ㅜ

오늘 충무아트홀에서 뮤지컬을 보았어요. 계단을 오르면서 처음 다락방님을 만났던 게 생각났어요. 그때 먹었던 아주 맛났던 호두파이도 같이요. 커튼콜을 하는데 여배우 하나가 감독님의 와이프더라구요. 문득 또 임태경과 그의 전부인 생각도 났더랬죠. 여러모로 다락방님 생각이 났는데 여기서 겹치네요.^^

다락방 2011-08-15 00:10   좋아요 0 | URL
처음에 책을 읽는데 너무 전형적인 느낌이 나더라구요. 교훈적이랄까, 암튼 교과서적인 느낌이었는데 읽다보니 좀 괜찮아졌어요. 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꾸 울컥 거리게 하고 눈물나게 하잖아요. 소녀가 나무 위에서 강간하는 것들을 목격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을 느끼고 하는 것들이 참 가슴 아프더라구요. 어휴..

앗. 제가 마노아님 처음 본 그곳이 충무아트홀인가요? 마노아님이 저 만났다는 댓글 안달아줬으면 저는 충무아트홀 한번도 안가봤어요, 라고 했을거에요. 틀림없이. 전 제가 대체 어디에 갔다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을 못해요. 그쪽으로는 뇌가 거의 작동을 안하고 멈춰있는 듯 ㅜㅜ

2011-08-1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무 소녀도 사라도 임태경도 킴 카쉬카쉬안도 전부 모르는 이름 투성이지만요, 그래도 잘 읽었어요. :)

poptrash 2011-08-15 00:02   좋아요 0 | URL
근데 왜 댓글이 이렇게 달렸을까요? 나는 분명히 로그인을 하고 있었는데.

다락방 2011-08-15 00:05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 완전 뿜었어요. 누구지? 누굴까? 막 그렇게 생각하고 위에서부터 댓글 달고 있는데 그 순간 팝님이 펑, 하고 나타났네요. ㅋㅋㅋㅋㅋ

잘 읽어줘서 고마워요. 하하하하하

비로그인 2011-08-15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였나요. 각 나라의 내전 이름과 지도상의 위치를 외우던 기억이 나네요. 내전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그걸 열심히 외워댔다니 좀 민망하네요.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은 언제 읽어도 가슴 아파요. 얼마 전부터 [사랑의 리퀘스트]를 다시 보고 있는데, 예전 같았으면 너무 마음 아파서 채널 돌려버렸을 일을 이제는 전화기 붙들고 잠깐이나마 보고 있어요. 이것도 이기적인 행위일 수 있지만 (괜히 그런 거 보며 안심하게 되고 고마워하게 되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웅산의 재즈 프로그램 이후로 라디오를 안 들었는데...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이번엔 클래식으로!

다락방 2011-08-16 08:46   좋아요 0 | URL
아, 각 나라의 내전 이름과 지도상의 위치를 외우던 교과 과정이 있었나요? 저는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모두 다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서 어떤 교과 과정이 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네요. 전 그쪽으로는 정말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거든요. 하핫.
임태경의 목소리는 말없는수다쟁이님처럼 감성이 풍부하신 님께 참 좋을것 같아요. 씨익 :)

2011-08-15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6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1-08-1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임태경이 무슨 라디오를 다시 진행하나요? 저는 세음을 임태경이 진행할 때 진정으로 행복했는데 그리고 임태경이 부르는 '지금 이 순간'도 너무 좋았고요!!! 과테말라는 베프가 살았던 곳이라 관심이 가는데 그런 비극적인 일이 있었군요. 기억난 김에 메일이라도 보내 봐야 겠어요.

다락방 2011-08-16 08:44   좋아요 0 | URL
CBS 에서 아침 9시에 하는 [아름다운 당신에게]인가 하는 클래식 방송 진행해요. 저도 전방송을 들어본 적은 없구요, 팟케스트로 '이 음악 향기롭다' 코너만 들어봤어요. 저도 세음할때 엄청 좋아했어요. 잔잔하게 그 방송을 틀어두면 일할때도 혹은 다른일을 할때도 지장이 없더라구요. 저 거기에 사연 보내서 임태경이 읽어준 적도 있어요. 꺅 >.<

메일은, 보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