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침대 위에서 책을 읽다가 이젠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끄기 전, 이불이 엉망으로 되어있는 걸 보고는 제대로 폈다. 이불을 들어올려 펼치고 다시 똑바로 놓는 그 과정에서 이불과 침대 사이 혹은 이불이 접혀 있던 그 어느 사이에서 나의 스카프와 스타킹이 엉망으로 구겨진채로 튀어나왔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튀어나왔다. 어어? 이게 왜 여기있지? 나는 이것들이 사라지고 없었다는 사실을 그동안은 알지도 못했다. 이게 대체 왜 여기에..언제부터.. 하긴, 이렇게 이불을 다시 펴다가 침대 위에서 튀어나온 건 비단 스카프와 스타킹뿐만은 아니었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침대는 마치 마법상자 같달까. 그러다가 자기전까지 읽었던 책에서의 그림블이 생각났다. 

그림블은 정원에 가서 왼발 페널티킥을 43골 날리고는 침대를 정돈하기로 했다. 침대 정돈은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그림블에게는(사실상 웬만큼 상식적인 사람 누구에게든) 침대가 각 맞춰 딱딱 정리돼 있는 것보다는 시트가 둘둘 말려 있고 바닥에 베개 한두 개 떨어져 있는 게 보기는 더 낫다. 게다가 몸이 빠져나온 그대로 놔두면 다시 잠자리에 들기도 훨씬 편하다. 하지만 어른들은 정리정돈에 대해 무지하게 유난 떠는 사람들이므로 그림블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침대를 정리했다. 이건 꽤 괜찮은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잃어버려서 찾다 찾다 포기한 물건(잠옷 바지 같은 것)을 침대에서 종종 발견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까먹고 있던 땅콩버터 샌드위치가 베개 밑에서 나온 적도 있다. 침대란 좀 웃기는 냄새가 나는 물건인가 보다 했건만. (p.144) 

세상에. 내가 열 살쯤 먹은 그림블과 별 다를 바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니. 끙. 그러나 한가지 위안이라면, 나는 최소한 침대에서 음식을 발견한 적은 없다. 그러니까 내 침대에서는 '좀 웃기는 냄새'가 난 적은 없다는 얘기다. 

 

 

 

 

 

 

 

이 책의 제목은 [픽션-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이다. 내가 좋아하는 닐 게이먼과 조너선 사프런 포어가 참여한 이 작품집을 내가 읽어봐야 하는건 당연하다. 물론 조금 늦은감이 있지만. 제목 덕분에 내가 기대를 한껏한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닉 혼비의 작품도 닐 게이먼의 작품도 그저 그랬다.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조너선 사프런 포어의 작품은 내 생각만큼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센트럴 파크와 맨하튼을 얘기해줘서, 그리고 연결할 수 있는 실이란 실은 죄다 연결해서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해, 라고 말해주는 소년과 소녀가 나와서 역시 포어가 짱이구나, 하기는 했다. 그런데 인상 깊은 작품은 '조지 선더스' 의 글에 '줄리엣 보다'의 그림이 삽입된 「라스 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아마도 나는 몇가지의 강박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이 소설속의 아버지를 절절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나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이 되는 나머지 그 누가 보기에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소심한 아버지. 그런 그가 깨달아가는 사랑과 두려움에 관한 진리. 

 

그는 알았다. 사랑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그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두려움을 없앤다는 것은 곧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음을 반드시 수반한다는 것을. (pp.51-52) 

아. 그는 분명 어리석었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식구들을 보호 통을 만들어 가두어 두는 그 행위를 대체 누가 용납할 수 있을것인가. 그러나 그가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 관심을 끊기로 결심한 것은 나 조차도 여러번 시도해보았던 일 아닌가. 나는 가장 강한 두려움은 가장 강한 사랑에서 온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사랑과 두려움 사이를 잘 조율해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두려움이 커지면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오고야 마니까.  

그리고 소심한 아버지는 결국 또 하나의 명백한 진리를 깨닫는다. 

거울 속 그의 모습은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머리카락은 산발에 눈에는 냉랭함이 서려 있었다. 누구도 그에게 수염을 정리하란 얘기를 해 주지 않았기에 수염은 거의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고, 누구도 그의 수염을 보고 슬쩍 헛기침하며 지적해 주지 않았기에 수염에는 빵 부스러기, 캔디 바, 그리고 납득이 안 가겠지만 고무로 만든 문 버팀쇠도 붙어 있었다.
그때 파프는 '파프 가설'보다는 덜 우아하지만 똑같이 진실한 '파프 추론'을 발견했다. 사랑 없이 산다는 것은 수염에 너절한 것들을 달고 다니는 거라는 것을.
(p.55) 


역시, 너무 사랑하지 않는 쪽이 세상을 사는데 좀 더 수월한 것 같다. 물론, 사랑하는 것도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것도 노력한다고 되는건 아니지만.

 

- 오전에는 엽서를 받았다. 시 한편이 적힌 엽서. 아, 너무 좋아. 나도 엽서를 꺼내어 답 시를 적어 보내야지. 우표를 붙여서 퇴근길에 우체통에 쏙 넣어야지. 내게는 시를 적어 엽서를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 오늘 나의 메신저 대화명은 '포크찹 스테이크' 였다. 점심을 먹던 남동생이 자신이 간 식당에서 본 메뉴라며 맛있겠다고 언제 여기서 술을 한잔 하자고 메세지를 보낸 것. 그 메세지를 읽자마자 눈앞에 포크찹 스테이크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걸 먹어야 해, 반드시 먹어야 해. 그래서 나는 남동생에게 오늘 당장 가자고 했더니, 동생은 오늘 선약이 있단다. 아, 나 이거 먹기 전에는 계속 이거 생각만 날 것 같은데. 그래서 당장 내일, 다른 곳으로 가서 스테이크를 먹자고 친구랑 약속해 두었다. 그런데 회사의 동료 직원인 y 가 말을 건다. 폭찹 스테이크(나는 포크찹이라 쓰고 그는 폭찹이라 썼다)는 자신도 많이 만들어 먹었었다며, 요즘은 게을러서 만들어 먹은지 오래라고. y는 내 메신저 대화명에 예민한데-아마 다른 사람들의 메신저 대화명에도 그럴 것 같지만-, 특히나 술이나 술안주가 들어가 있으면 더더욱이 말을 건다. 평소에는 잘 말을 안거는데..그러고보니 얼마전에는 돼지국밥 사진을 메신저로 보내주며 같이 먹으러 가자고 했었는데, 생각난김에 조만간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해야겠다. 내게는 맛있는 술안주를 보면 내 생각을 하는 직장 동료가 있고, 남동생이 있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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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1-11-07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요일 모임은 어쩌면 평범한 모임였는지도 모르는데, 저는 좀 평상시보다 말을 많이 한듯한 자괴감을 토요일 아침에 몹시 느꼈어요. 그건 그 모임의 한 사람을 잃을까봐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그랬던거죠. 오늘, 늘 그랬잖냐는 답변에 저는 아주 평온하게 됐어요. 강박은 간혹 이렇게 뜻밖으로 찾아와 식은땀을 흘리게 해요.

다락방 2011-11-08 14:10   좋아요 0 | URL
강박은 정말이지 나 혼자만 느끼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안하는데 말이지요. 강박 때문에 저는 정신은 물론이거니와 몸이 피곤할때도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무엇보다 제가 그런 순간들에 '이것은 나의 강박이다' 하는걸 인식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괴로워요. 그러니까 잊어버려 잊어버려 하면서 말이지요. 윽.

비로그인 2011-11-07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더러 그가 그랬어요.
아프게 될 것 같은 사람...
이라고.
날 아프게 하겠다는 말이겠죠.
기꺼이.

다락방 2011-11-08 14:10   좋아요 0 | URL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괘씸하니 만나지 말자,
라고 결심하고 그렇게 실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쥬드님.
그래도 자꾸만 흔들리지 말고.

비로그인 2011-11-08 15:09   좋아요 0 | URL
for 다락방님
아프게 하니까, 이제 안볼거에요.
만약에 만나면 때릴거에요. 진짜 주먹으로, 세게 한 번.

다락방 2011-11-08 15:12   좋아요 0 | URL
반지 낀 손으로 얼굴 때려버려요.

2011-11-07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8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7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8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1-0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다락방님! 마법 상자와도 같은 침대에서 꿈나라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시가 적힌 엽서를 받는 것도 그렇고, 메신저 대화명을 보고 같이 밥 먹자고 말 거는 사람이 있는 것도 그렇고, 정말 부러워요.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었는데, 백영옥 작가가 그런 말을 했어요. 부러워할 줄 아는 것도 용기라고. 아, 이건 그냥 잡설이구요. 방금 집에 들어와서 아주 노곤하고 띠용띠용 머리에 빛 바랜 별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는데, 이 글 읽다보니까 왠지 기분이 들뜨네요. 혹시 몰라 컴퓨터 옆에 있는 이부자리를 살펴보니, 이불과 베개가 단정하게 층층이 쌓여있네요. 어, 근데 책상 위에 노란 털실이 있어요. 지금 발견했어요! 오... 아침에 엄마가 수세미를 뜨고 계시던데, 반짝거리는 게 꼭 마법의 털실 같네요.

오밤중에 왠 수다를 이렇게... 그래도 좋네요 ㅎㅎ
포크찹 스테이크 먹고 어땠는지 말해주세요. 저는 급식에 나오는 '폭찹'은 질색했었는데. 그거랑은 다르겠죠?

다락방 2011-11-08 14:16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이런 수다라면 언제든지 더 길게 떨어도 되요. 수다쟁이님은 수다도 예쁘게 떠네요. 수다쟁이님은 댓글도 귀여워요. ㅎㅎㅎㅎㅎ

머리에 띠용띠용 떠다니던 별은 이제 좀 사라졌어요? 점심은 맛있게 먹었고?
저는 오늘 너무 피곤해서 방금 막 캬라멜마끼아또를 흡입했어요.

mira 2011-11-0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 국밥 부산의 음식인데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 먹던 음식인데 반갑네요 이글을 읽으면서 위글의 소설내용보다 아랫글의 음식이야기가 유난히 더 댕기는 것을 보니 전 참 먹는 것을 좋아하는 먹보인가 봅니다 ㅎㅎ

다락방 2011-11-08 14:17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음식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것을 보면 먹보 대마왕인가 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백하자면 저는 돼지국밥을 한번도 안먹어봤어요. 꼭 먹어보고 싶! 습니다!!

돼지국밥 2011-11-08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랑 국밥먹으러 부산가요. 비행기타고.

다락방 2011-11-08 16:28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 네.

moonnight 2011-11-0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 제목 진짜였네요. ^^; 저는 진짜 침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네. 했던 적 있었어요. 조카가 침대에 앉아서 뭐 먹다가 남은 거 살그머니 침대 옆 공간에 끼워놓는다는 =_=; 그나저나 폭찹 스테이크 맛있겠어요. 맥주 안주 하면 좋겠...;;; 아니오. 저 술 끊었어요. 흑. -_ㅠ

다락방 2011-11-08 17:05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진짜죠, 그럼. ㅎㅎ
저는 술 못끊겠어요. 문나잇님 끊지마요. 나랑 술 마시면서 즐겁게 살아요! 네?
제가 우리동네 폭찹 스테이크 먹고 나면 맛있는지 어땠는지 말씀드릴게요. 후훗
전 소주안주로 생각하고 있어요. 룰루~

레와 2011-11-0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네 돼지 국밥도 맛있는데..

다락방 2011-11-09 15:57   좋아요 0 | URL
그럼 뭐해요. 레와님과 함께 먹을수도 없는데.
 
엘리자베스타운 - Elizabethtow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나를 선택하면 당신의 인생행로는 달라지겠지만, 그 길은 웃음이고 행복일거야,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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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1-11-0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보고 지나간 영화예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는데. 다락방님이 좋게 보셨다면 꼭 봐야겠네요.

다락방 2011-11-07 16:31   좋아요 0 | URL
막 좋지는 않은데 보는 내내 유쾌하기는 해요. 삶과 죽음은 때로 단 한명의 누군가 때문에 결정지어지기도 한다는 게 새삼스럽게 뭉클하기도 하구요.
:)

가을의 바다로 2011-11-06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영화[동감]을 보고 있다. 명화극장이다. 티비 영화는 반복해서 해준다. 나는 그럴때마다 반복해서 본다.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나는 그 느낌을 즐긴다.

다락방 2011-11-07 16:32   좋아요 0 | URL
김하늘과 유지태가 나오는 영화였나요? 아주 오래전에 본 기억이 있네요. 다시 보고 싶지는 않지만요.

longcountry 2011-11-0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임파인

다락방 2011-11-07 16:32   좋아요 0 | URL
땡큐.

비로그인 2011-11-07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네요! 저는 [레스트리스] 보려고 했는데, 그거 지금 상영중인가 확인해봐야겠어요.
사랑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그런 교훈을 끌어낼 수 있는 영화 같아요 ^^;;
물론 배운다고 다 되는 그런 교훈은 아니지만 흙.

다락방 2011-11-07 16:33   좋아요 0 | URL
레스트리스 꼭 봐요, 수다쟁이님!!!!!
그러고보면 사랑은 정말 운명인 것 같지 않아요? 여자가 어느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나서 그를 웃게 하고 울게 하고 그리고는 살게 했죠. 이런게 운명이 아닐 리 없잖아요?
:)

Kir 2011-11-07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흥행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저도 이 영화가 꽤 괜찮았어요.
커스틴 던스트를 보면서 처음으로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했고요^^

다락방 2011-11-08 14:07   좋아요 0 | URL
저는 커스틴 던스트 캐릭터가 싫었어요 ㅠㅠ 저라면 친해지지도 사랑하지도 않았을 캐릭터에요. 사람 귀찮게 하는 스타일이랄까;;
그렇지만 이 영화는 좋았어요.
 

일전에 '스테파니 메이어'의 『브레이킹 던』을 예약주문해서 받았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전까지 사실 예약구매를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1人이었는데, 저 책은 왜했지? 여하튼 했는데, 판매 시작 된 뒤에 주문한 우리 사무실 다른 직원이 예약 주문한 나보다 책을 먼저 받아서 크리스마스 전에 읽었더랬다. 나는 그때 대체 예약주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싶어지면서 그래, 예약주문은 역시 나랑 안맞아. 예약해서 사는거 아니라고 책이 어디 도망가나, 그냥 해왔던대로 서점에서 팔기 시작하면 그때 사서 읽든가 하자 라고 생각했었다. 또 남들보다 '먼저' 읽는것에 나는 그다지 흥미도 없으니 그냥 살던대로 살자, 이런거다. 그런데! 

 

이 책이 예약주문 걸려있다. 

 

 

 

 

 

 

 

알라딘에서 이 책이 나올거라는 문자메세지를 받아도 흥, 했다. 친구는 이 책을 예약 주문으로 사면 적립금을 주고 달력을 준다고 하니까 사야된다고 하는데 난 달력은 -아무리 하루키라도- 크게 관심 없고, 적립금도 안 받으면 그만, 예약 주문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 하면서 11월 1일을 보내고, 2일을 보내고, 3일을 보내고, 4일을 

보내지 못했다. 방금 전 막 주문한 상황. ㅠㅠ 이게 예약 주문해서 내가 받아본다고 한들, 그 즉시 내가 읽을것인가? 아닐텐데. ㅠㅠ 또 지금 질러놓고 괜히 질렀나 싶고. 1일에 책을 사지 않았다. 신한카드 6프로 할인 가볍게 무시해줬다. 흥, 난 이제 책 안살거니까. 그렇지만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는 놀이는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ㅠㅠ 3프로 할인인데 질러버렸어. ㅠㅠ 이럴거면 1일에 지를걸 ㅠㅠ 병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어쨌든 나는 또, 

 

쌀을 받는다. ㅠㅠ 

쌀만 아니었어도 나는 더 참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놈의 쌀 때문에.. ㅠㅠ 나는 왜 쌀 준다고 하면 미치겠지? 왜 꼭 받아야 될 것 같지? 나 다른거 주면 완전 쿨하게 넘기는데. 그 무슨 수납하는 가방인가 뭐 이런거 쳐다보지도 않는데.  쌀은..무시가 안돼. orz 

 

오늘 주문한 책 중에는 오전에 아프락사스님의 밑줄긋기를 보고 급하게 장바구니에 넣었던 이 책이 있다. 

 

 

 

 

 

 

 

내가 완전 쑝간건 아프락사스님이 밑줄 그으신, 이 책 7페이지의 인용문. 

“결혼을 곧잘 복권에 비유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복권 중에는 맞는 복권도 있기 때문에.”(버나드 쇼)
“머리가 좋은 남편이란 존재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머리가 좋은 남자라면 결혼을 안 할 테니까.”(프랑스 소설가 앙리 몽테를랑)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이 소중한 때란 남편이 없을 때”(도스토예프스키)
“굉장한 적을 만났다. 아내다. 너 같은 적은 생전 처음이다.”(시인 바이런)– 7쪽 

 

아, 버나드 쇼님. 진정 멋지십니다. 앙리 몽테를랑님은 누구신가요? 뭐 여튼 짱입니다. 도스트예프스키님, 님은 언제나 천재이셨어요. 바이런님, 오, 아내는 적이었습니까? 

 

이거 인용문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막 친구들한테 메세지로 보내주고 그랬다. 버나드 쇼 짱이죠, 이러면서. 훗.
아..완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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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1-04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기자가 버나드 쇼한테 "금요일에 결혼하면 불행하단 말을 믿으십니까?"하고 물었대요. 버나드 쇼 대답이 뭐였게요? "물론이죠. 금요일만 예외일 순 없죠."」 - 드라마 <천일의 약속> 한 장면, 이거 보고 빵- 터졌더랬죠.^^

다락방 2011-11-04 16:45   좋아요 0 | URL
아, 멋져요. 멋집니다. 어떻게 '금요일만 예외일 순 없죠' 이런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천일의 약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버나드 쇼는 어쨌든간 멋지군요. 알라딘에 검색해서 전기문이나 자서전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어지는 그런 분이네요. 흑흑

... 2011-11-04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나드 쇼 이분이요, 가끔씩 입바른 소리 잘하시죠.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줄 알았지"란 묘비명을 가진 분이시니 어련하시겠어요 ㅎㅎ.

하루키잡문집 하루만 늦게 주문하시지, 어젯밤에 땡투 할곳 없던데...

다락방 2011-11-04 16:49   좋아요 0 | URL
우앗. 하루만 늦게가 아니라, 일찍..주문해야 브론테님께 땡투를 받을 수 있는 거였군요.ㅎㅎ
저는 제가 이걸 예약 주문할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정말 안하려고 했다구요. 그런데 정신차려보니 저는 이미 결제를 완료했더라구요. 뉴트로지나 포밍클렌져와 함께.. 오늘 8,900원이라고 해서..( '')

... 2011-11-04 23: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일찍 ㅎㅎㅎ 아, 저 요즘 맨날 이래요. 이상하게 생각과 손가락이 따로 움직여져서 키보드를 쳐요. 두뇌에 이상이 있나...

순오기 2011-11-04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쌀에 약한 다락방님을 어쩔~~~~~~ㅋㅋㅋ
다락방님,인용문을 완벽하게 동감하려면 반드시 기혼자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저런 정의를 내린 저 위의 양반들~ 진정한 천재십니다~~~~ ^^

다락방 2011-11-04 16:51   좋아요 0 | URL
저는 굶주림에 대해 정신적으로 두려움을 가진 여자사람인지라(ㅠㅠ) 쌀에 집착하는가 봐요. 하아-
그래도 나름 위안을 해보자면, 이것저것 다 약해지는건 아니니까...과소비를 덜할테니까...쌀에만 움직이니까.....괜..괜...괜찮을 것 같아요. orz

2011-11-04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4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1-11-0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께서 인용하신 글 보자마자 바로 친구에게 문자로 보냈습니다 ^^;;

다락방 2011-11-04 16:5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우리를 어쩌면 좋습니까. 저런 인용구 보고 흥분해서 막 문자 보내니 말이죠. 하하하하하. 이래도 되는걸까요?

이진 2011-11-04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버나드 쇼님의 글을 읽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ㅋㅋㅋ 앙리 씨도... 하ㅏㅏ 정말 명문장들이군요

다락방 2011-11-04 18:03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뭔가 짜릿하지 않습니까? ㅎㅎㅎㅎㅎ

2011-11-05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7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 2011-11-0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책 저도 예약주문 할거예요 .후후후

다락방 2011-11-07 16:36   좋아요 0 | URL
후훗. 아 빨리 읽고 싶어요! >.<

Kir 2011-11-0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과 비슷한 이유로 과연 예약구매를 해야하는 것인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쨌든 나는 또, 쌀을 받는다. ㅠㅠ
쌀만 아니었어도 나는 더 참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놈의 쌀 때문에.. ㅠㅠ 나는 왜 쌀 준다고 하면 미치겠지? 왜 꼭 받아야 될 것 같지? 나 다른거 주면 완전 쿨하게 넘기는데. 그 무슨 수납하는 가방인가 뭐 이런거 쳐다보지도 않는데. 쌀은..무시가 안돼. orz> 저 부분 읽으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다락방님, 실례지만 정말 귀여우세요^^;

다락방 2011-11-07 16:36   좋아요 0 | URL
저는 하긴 했지만, 사실 예약 구매에 아직도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요. 대체 예약 구매는 왜 생긴걸까요? 전 진짜 의미 없는 것 같아요. -_- 예상 판매부수 때문인가..흐음.

그리고, Kircheis님, 저는 귀엽지 않아요. ㅠㅠ

말없는수다쟁이 2011-11-05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재밌네요.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한 나날들]이라는 책은... 정말 아이러니군요.
책도 읽고 밥도 먹고~ 달력도 받고~~ 예약판매, 나쁘지 않은데요? 돈이 좀 더 나가더라도...( '')!

다락방 2011-11-07 16:38   좋아요 0 | URL
저 지금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검색해 봤네요. ㅎㅎ 전 작가와 함께 하는 삶은 꿈꾸어 본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꿈꾸지 않을 예정이지만, 좀 궁금하긴 하네요. 이 책 속에서는 도스트예프스키가 어떻게 보일것인가, 하고 말이지요. ㅎㅎ

토니 2011-11-05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의 리뷰를 읽고 있으니 멀리 이곳에서도 책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미국 경제 정치 Policy만 잔뜩 읽고 있답니다. 예전엔 몰랐던, 아니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는 몰랐던, 강자를 위해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이제 조금은 알것 같네요. (몸은 늙었지만 정신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

그립네요. 마우스 클릭과 함께 실시간 배달되는 책들.. 건강하시고 좋은 리뷰 계속 올려주세요.

다락방 2011-11-07 16:38   좋아요 0 | URL
네, 토니님. 시간 날때마다 종종 들르세요. 멀리에서도 꼬박꼬박 읽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훗 :)

섬사이 2011-11-05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라.. 책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네요.
바이런의 말은 아내들에게도 적용될 것 같아요.
가끔 옆지기에게 제가 그러거든요.
"음.. 44년만에 만난 강적이군!" 이라고요.

다락방 2011-11-07 16:3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저 책 지난주 토요일에 왔어요. 그런데 다른 책 읽느라 내팽개쳐두었어요. 아, 얼른 읽어야 될텐데. 혹시 압니까,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말들이 가득해서 또 제가 갑자기 결혼한다고 선언할지 말이에요. 하하하하.
물론, 저랑 함께 살 상대가 제 적..은 아니었으면 합니다만. 훗

따라쟁이 2011-11-05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일등짜리 복권에 당첨된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 ")

다락방 2011-11-07 16:40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이라면 그럴 것 같아요. 그 남자라서가 아니라 따라쟁이님이라서요. 혼자라서 완벽하고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둘이라서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따라쟁이님은 결단코 후자이니까요. 늘 사랑하고 살고 싶어하는 따라쟁이님께 결혼은 복권에 당첨된 것이 맞을 것 같아요.

mira 2011-11-05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를 좋아라해서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ㅎㅎ 결혼에 관한 책이라 저도 확 댕기네요

다락방 2011-11-07 16:41   좋아요 0 | URL
저는 이미 저 결혼에 관한 책을 배송받았습니다. 읽고 나면 어땠는지 또 쓸게요. 히히.

moonnight 2011-11-0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쌀 받는 거 너무 좋아하는데 쌀 이벤트 이제 끝났나봐요. 두 번밖에 못 받았는데 흑. ㅠ_ㅠ
어제밤에 술 마시고 들어와서 다락방님 페이퍼보고 (또!) 확 질러버렸어요. 하루키라면, 예약해놓고 기다려야지요. (__);;;

다락방 2011-11-07 16:41   좋아요 0 | URL
으응? 아직 하던데요, 문나잇님? 해당도서를 선택하지 않은거 아니에요? 저는 며칠내로 쌀 한번 또 받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어요. 쌀은 소중하니까요!!

자하(紫霞) 2011-11-0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쌀이라...다락방님에 비하면 전 물욕이 없나봐요.ㅋ
그 어떤 사은품(?)도 저의 관심을 끌지 않습니다...=3
바이런 참 마음에 드네요!^^

다락방 2011-11-07 16:43   좋아요 0 | URL
전 제가 보기엔 물욕..보다는 식욕..이 가득한 것 같은데요? ( '')

가연 2011-11-0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이런은 명언을 정말 많이 남겼죠ㅎㅎ 결혼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바이런이 신학시험을 칠 때 일화가 정말 멋졌던 기억이 나네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에 대한 영적, 종교적 의미를 서술하라는 시험이었는데 바이런은 단 한 줄을 쓰고 최고점을 받았었대요.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지만..ㅎㅎㅎ

물이 그 주인을 만나 얼굴이 붉어졌도다.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

다락방 2011-11-14 16:14   좋아요 0 | URL
어머. 몰랐어요. 처음 들어요. 완전 짱 멋진데요. 좋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 얼굴이 붉어졌도다. 좋아요, 가연님. 바이런은 언어의 마술사로군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을 읽다보면 주인공인 '미카엘'이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를 읽기 시작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으음, 이건 내가 제목만 아는 그 책인가 보군, 하며 읽다보니 미카엘이 인어의 노래를 다 읽었다고 하면서 결말에 대해 언급한다. 그때 미카엘이 '결말이 섬뜩했다'고 한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된소리가 들어가는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섬뜩이 맞는걸까),  나는 대체 그감정이 어떤건지,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이길래 그가 그러는건지 싶어서 핸드폰의 메모장에 메모해 두었었다. 읽어보자, 하고.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데, 미카엘이 표현한 감정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밀레니엄을 뒤적여 봤지만, 인어의 노래를 읽었다는 문장을 찾을수가 없다. 아...신경질나. 패쓰. (섬뜩인..걸까?) 

 

 

 

 

 

 



 

아직 절반 밖에 읽지 못해서 결말이 어떨지는 짐작을 못하겠다. 내가 미카엘같은 그런 느낌을 받게 될까? 그런데 이 책, 꽤 재미있다. 연쇄살인의 범죄자를 프로파일 하는 그 과정보다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 그 둘의 관계가 아주 마음에 든다. 일로서 만났지만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 그들은 서로를 '여자'와 '남자'로 대하는게 아니라 '동료'나 '이제 막 알게 된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춘 사이'에서 으레 그렇듯이 처음 만나서는 악수를 한다. 

   
  토니는 미소를 짓고 한 손을 내밀었다. 매력적인 미소군, 캐롤은 특징 목록에 더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악수도 좋아. 수많은 경찰 관료들처럼 상대의 손을 부술 것 같은 마초 느낌이 없으면서 단단하고 마른 손길이었다. (p.46) 
 
   


악수도 좋아.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나는 웃었다.  나는 연인이 아닌 남자에게는 곧잘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하곤 하는데, 그때 악수하는 느낌이 좋은 남자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물론이다. 악수가 가진 힘은 묘한것이어서, 일단 내가 악수를 권하면 상대는 악수를 거절하지는 않는다. 그점에서 나는 내가 거부당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또한 악수만으로는 내가 상대에게 이성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들키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악수 후에 생기는 경우도 많고. 악수는 손과 손으로 호감을 전해줌과 동시에 또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예의와 반가움이 있지만 성적 호기심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몇년전 여러 남자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평소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한 남자와 너무 손을 잡아보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에 여러명이 자주 모이는 사이었고, 거기에 여자사람이라곤 나 하나 뿐이라서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는거다. 그래서 술자리가 파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면서 헤어지는 그 순간에, 그가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나는 잘 들어가요, 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고. 그때 그는 내 손을 마주잡고 나와 악수를 했는데, 오, 신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그는 좀처럼 악수한 손을 풀지를 않았다. 이쯤되면 이 악수는 끝나야 하는건데, 그는 꽉 쥐고 그 손을 놓지 않았고, 나는 깜짝 놀라 눈이 커져서는 그를 마주 쳐다보았고, 그리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모두가 서로 작별인사를 하느라 왁자지껄 하지만, 곧 모두가 이 악수한 손에 시선이 머무를텐데, 손을 빨리 놔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놓기가 싫었다. 어쩌지. 결국 나는 웃으면서 뭐라고 말한뒤에 악수를 풀 수 있었는데, 그때 내가 대체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 우리는 여러차례 모임에서 잠깐 둘이 나갔다 오는 사이가 되었고(응?),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기도 했으며(응?), 모임이 파한뒤에 둘만 포장마차에 가서 우동을 먹기도 했다. 음, 지금 생각났는데, 그 우동값 내가 냈다..

  

호감은 있으나 고민중인 상대가 있다면, 혹은 그렇게까지 호감을 가지지 않았던 상대에 대해서라도, 우리는 무장해제되는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가지를 충족시켜줬을 때 일수도 있지만, 내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줬을 때 일수도 있다. 이 책 속의 여자에게는 커피가 필요조건인 상태에 이르렀을 때, 커피를 준 남자에 대해 무장해제 되어버렸다. 

   
  토니는 커다란 서모스 주전자를 캐비닛에서 꺼내 사라졌다. 그는 5분만에 김이 오르는 머그컵과 주전자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캐롤에게 머그컵을 건네주고 주전자 쪽으로 손짓했다.
"제가 채워 왔습니다. 언젠가 또 마실 것 같기에. 마음대로 드십시오."
캐롤은 고마운 듯 한 모금 마셨다.
"저랑 결혼하실래요?"
캐롤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토니는 속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을 감추려고 웃었다. 별거 아닌 장난에도 익숙한 반응이었다.
(p.107) 
 
   


여자가 남자에게 저랑 결혼하실래요, 라고 저 순간에 물었던 것은 '장난스럽게' 였긴 해도 장난이었던 것은 아니다. 장난스럽게 물었던 것은 상대의 반응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지, 자신의 감정이 장난이었기 때문은 아닌것이다. 저 순간 여자에게 그 남자와의 결혼은 가장 충만하고 완벽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순간에는. 그러니 그 다음 그들에게 어떤일이 벌어지고 서로에게 어떤 감정이 찾아온다 한들, 저 순간의 저 말은 농담이 아니고, 장난이 아니고, 진심인 것이다. 

 

내가 아는 '키가 작으면서 멋있는' 남자는 이 세상에 '탐 크루즈'밖에 없는 것 같은데, 이 책속의 남자가 추가될것 같다. 그는 173센티인데, 내가 까무러치게 좋아할만한 유머를 구사한다. 오오-  게다가 싱글.

   
  "당신처럼 괜찮은 사람이라면 한참 전에 여자가 데려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리는 듯한 말투는 토니가 원했던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아, 당신은 좋은 측면만 본 겁니다. 보름달이 되면 제 손바닥엔 털이 나고 달을 향해 울부짖지요."
(p.256) 
 
   


아, 나 이런거 너무 좋아. 보름달이 되면 늑대인간이 된대. 하아- 으르렁 거려줘요, 토니. 흑흑. 너무 좋아. 이 농담을 하던 순간의 여자와 남자는 마주앉아 커리를 먹고 있었는데, 만약 내가 남자의 앞에서 커리를 먹고 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커리 대신.........그만두자. 

  

이 책의 나머지 절반을 읽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하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직장인..하아-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고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저녁을 먹고 조용히 방안에 들어가 이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여자와 남자가 앞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몹시 궁금하다. 그리고 그 둘은 어떤 관계가 될지. 빨리 퇴근하고 싶다. 빨리,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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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02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잘 어울리는 대단한 남정네와 아가씨네요. 어떻게 커리를 먹으면서 저런 명문장(?)을 만들어낼 수가 있을까요? 부러워요, 진짜! 그런데 다락방님 퇴근하시려면 아직 네 시간 정도 남았네요. 저는 두 시간 뒤면 집에 가는데 ㅎㅎ 집에 가는 길에 토니처럼 유머 있는 말대답을 연구해봐야겠어요. 카레가 맛있군요, 같은 밋밋한 대답을 피하려면!

다락방 2011-11-03 18:18   좋아요 0 | URL
오늘은 여섯시가 넘었는데도 보쓰의 눈치를 보느라(흑) 퇴근을 못하고 있어요. 친구가 소주 한잔 하자고 오고 있는데. 흑흑
전 유머있는 남자가 너무 좋아요. 특히 늑대인간 유머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유머죠. 후훗. 저는 실제로 보름달이 떴을 때 나는 늑대로 변신한다고 농담하고 다니고 그랬는데, 이 지구상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니, 신나서 미치겠어요. ㅎㅎㅎㅎㅎ

moonnight 2011-11-0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미카엘이 인어의 노래를 읽는다는 대목이 밀레니엄에 나왔었던가요. -_-;;; 이런 일이 (종종) 있을 때면 좌절하게 됩니다. 좋아한다. 아주 좋아하는 책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었는데, 이런 중요한 대목을 기억도 못하다니. 크릉!!!!

저는.. 저는.. 인어의 노래를 사놓고 아직 못 읽고 있어요. (그런 책이 한둘이냐. ㅠ_ㅠ) 지금 김어준의 책을 (막 괴로워하면서) 읽고 있는 중인데 얼른 이 책 읽고 싶어요. 어쩌나. ㅠ_ㅠ;;

다락방 2011-11-03 18:22   좋아요 1 | URL
기억할만한 중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는 결말이 섬뜩하다는 문장 때문에 대체 왜지, 뭐지, 이런 생각이 들어가지고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메모장에 인어의노래-미카엘 이렇게 적어두었었어요.

인어의 노래는 이제 거의 다 읽어 가는데 흑흑 399페이지에서 저는 이미 먹먹해져가지고 ㅠㅠ
재미있어요, 문나잇님. 인어의 노래 말입니다. 잘 읽힐 거에요. 어서 읽어보세요!

2011-11-02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3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벌 2011-11-02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저도 생각이 잘 안나요. 미카엘이 이걸 읽었었나요? "인어의노래"는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 읽지 않는 소설 중 하나에요. 사고 싶은 책이 많은데 아직 읽지 않은 책도 한참이니... 엄마는 더이상 책을 사선 안된다고 못을 박았어요. 결혼하고 사라고. 하지만 전... 언제 결혼할지 알 수 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럴수 없다고 엄마에게 저도 못을 박았어요. (버뜨 요즘은 책을 사지 못하고 있어요. 주머니 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졌거든요. 쓴게 없는데 다 어디로 갔을까요?)

에디 2011-11-02 19:37   좋아요 1 | URL
저도 미카엘이 이걸 읽었는지 완전히 모르고 있었네요. 그러고 보니 무슨 책을 읽긴 한것 같은데...

버벌님, 저도 그렇긴 한데 카드 영수증에 진리가 있습니다. 아멘!

버벌 2011-11-03 18:50   좋아요 1 | URL
믿씁니다 ㅣOOㅣ

다락방 2011-11-04 08:28   좋아요 1 | URL
저도 엄마가 제발 책 다 들고 시집 가버리라고.. ( '')
그래서 요즘엔 책을 사면서 자꾸 그만큼 바깥으로 내보내요. 중고샵에 팔기도 하고 방출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고. 쌓이기만 하면 내쫓길까봐 --;;
그래서 이제는 안사기로 결심, 또 결심하였답니다. ㅎㅎㅎㅎㅎ늘 다음 책을 사기 전까지는 잘 지켜져요. 후후.

인어의 노래는 재미있어요. 버벌님도, 에디님도 재미있게 느끼실 것 같아요.

무스탕 2011-11-03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도 늑대도 손바닥 발바닥엔 털이 안나요. 손 등이나 발 등에 털이 나지요 =3=3=3
만약 저렇게 보름달 뜨는 밤의 비밀을 털어 놓는 남자를 만나거들랑 꼭 다락방님의 비밀도 털어 놓으세요.
'전 외따로이 떨어진 호젓한 집에 혼자 살고 있고 보름달이 뜨는 밤 자정이면 스윽스윽 칼 을 갈고 꼬리가 아홉개가 나와요' 하고요 =3=3=3

아.. 오늘도 끝내주는 날씨겠어요~♡

다락방 2011-11-04 08:29   좋아요 1 | URL
맞네요 무스탕님 ㅋㅋㅋㅋㅋ 손바닥 발바닥에는 털이... 안나네요. 손등과 발등에 난다고 했어야 되는건데, 그쵸? ㅎㅎㅎㅎ 그렇지만 저는 구미호보다는 뱀파이어가 더 되고 싶어요, 무스탕님. 뱀파이어 되서 영생을 누렸어면 좋겠어요. 하아-

주말에 서울은 비온다네요. 그리고 금요일 아침인 지금은 날씨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화창할 것 같아요.
:)
 
[㈜세계로] 별이 뜨는 지구본 220-HGS/세계를 한눈에/인테리어소품/학습용/
국내
평점 :
절판


새벽에 잠에서 깼다가 이 지구본에 불이 들어와있는 걸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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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1-11-0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밤중 램프 불빛은 참 포근해요..

다락방 2011-11-02 10:16   좋아요 0 | URL
제가 제 생각보다 지구본을 좋아하더라구요. 이거 처음 받은날 너무 좋아서 막 끌어안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낮에는 수시로 빙빙 돌려가며 여기 미국, 이렇게 짚으며 혼자 놀아요. 태평양은 여기구나, 여긴 대서양이야, 이러면서.
그리고 밤에는 술에 취했어도 이걸 켜놓고 잠들어요. 새벽에 깨서 보면 너무 좋은거에요! 그래도 처음 며칠만 켜놓고 이제는 안켜놔요. 우울한 밤에만 켜놓으려구요. 왜냐하면 전기료...나가니까......

버벌 2011-11-02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밑에 답글 달린 전기료에 빵 터졌어요. 전 내년 생일 선물로 이걸 사달라고 할거에요. 별자리가 보이는게 아니라 스탠드용으로 나온걸루요.

다락방 2011-11-02 14:13   좋아요 0 | URL
전기라도 낭비하지 않아야 지구를 살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흑흑. 전 고기도 많이 먹으니까 지구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다른 것에서 찾아야 해요. ㅎㅎ

제가 가지고 있는 지구본은 별자리에 불이 들어오기 때문에 스탠드용입니다. 버벌님이 찾으시는게 바로 이것이 맞을 것 같아요.

버벌 2011-11-02 18:26   좋아요 0 | URL
웁 그런가요? 밝아요?

다락방 2011-11-02 18:27   좋아요 0 | URL
많이 밝지 않고 아늑해요, 버벌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