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드는 것이 두려웠다. 하루 하루 그리고 일 년 이 년, 자꾸만 내가 늙어가는 것 같아서 초조했다. '필립 베송'은 자신의 책, 『이런 사랑』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이 젊음은 참을 수가 없다. 젊음과는 맞서 싸울 수가 없다. 우리는 같은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순식간에 우리 사이에 불균형이 자리를 잡는다. 더 무슨 말과 행동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말한다 해도 핵심을 비켜가게 될 것이다. 갑자기 메울 수 없을 만큼 거리가 너무 많이 벌어져버렸다. 늙고 한물가고 지친 기분이 든다. (p.208)  

 
   

 

 

 

 

나 역시 젊음과는 맞서 싸울 수 없다고, 그렇게만 늘 생각해왔다. 늙어가는 건 좋을거 하나 없다고, 두렵고 초라해지는 거라고. 물론 젊음과는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추상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려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전, 나는 나보다 젊은 사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나이 든 내가 가진 '다른 무기'가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나는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와 나 사이에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얼마전에 누군가의 '지나친' 혹은 '끔찍한' 행위를 접하고 나서, 나는 그것은 그런 사람을 선택한 사람이 감당할 몫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는 젊고 아름다운 걸 선택했지만, 그러나 그사람의 그 모든 침범의 행위들을 감수해야 해. 그것조차 사랑하든가 혹은 그것때문에 멀어지든가, 그것은 니가 결정할 일이지. 나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
그러나 내가 시간을 돌려 만약 그 끔찍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의 나이로 돌아가 같은 상황애 처했다면, 나 역시 똑같은 행동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잘못된 것인줄 모르고서. 그것이 마땅히 나의 권리라고 생각하면서. 새삼 내가 저런 행동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건, 그런것이 끔찍하다는 것 쯤은 알게됐다는 건, 그동안 내가 해왔던 실수들과, 경험들과, 그리고 그러면서 쌓여갔던 시간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참에, 경향신문에서의 '브래드 피트' 인터뷰를 보게됐고, 거기에서 브래드 피트가 마지막에 한 말이 아주 인상깊었다.  

"나이 드는 게 좋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지기 때문이다. 젊음과 지혜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물론 지혜다." (2011년 11월 16일 경향신문 33면, 브래드 피트 인터뷰中) 

온다 리쿠는 그녀의 책 『밤의 피크닉』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어, '요는 타이밍이지' 라는 말을 했었더랬다. 루이스의 소설 『나니아 연대기』를 만났던 타이밍이 중요했다고 말하는 대목이었는데, 정말로 그렇다. 타이밍이다. 마침 나는 이런 생각을 했는데, 마침 브래드 피트의 저런 말을 나는 신문기사에서 읽은것이다. 가슴속에 안도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가 아주아주 근사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서 그걸 알고 있었군요, 나이 드는게 '좋다'는 경지에까지 이르렀군요. 나는 아직 나이 드는게 '좋다'고 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젊음과 지혜중에 선택하라면 단번에 '지혜'라고 말하지도 못하겠지만, 그렇지만 이제는 단번에 '젊음'이라고도 말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나는 아마도 이렇게 나이드는 것 같다. 그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에서 나는 무라카미가 한 말에 밑줄을 긋게 된다. 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걸까. 어째서 하루키씨, 당신도 이 시점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나이를 먹어서 좋을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거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전보다 전체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혹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에 불현듯 눈뜨게 됩니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는 기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은 인생에서 하나를 얻은 것 같은 흐뭇함에 젖어들게 합니다. 물론 반대로 젊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나 문학도 있지만요. (p.114)    
   

 

 

 

 

아. 나는 이대로 나이 들어도 좋겠다. 눈가의 주름이 늘테면 늘어나라지, 흰머리 따위, 생길테면 생기라지. 온 몸에 붙는 나잇살따위, 그래 올테면 오라지.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고 나이를 먹어줄테다. 내가 가지지 못한것, 이미 놓쳐버린 젊음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가지게 된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렇게, 이제는 초조함보다는 여유를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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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 2011-11-2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나이들수록 생기는 '씩씩함'이 좋아요.

가끔 거울보고 의기소침(?)해 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젊음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브래드 피트가 그렇게 얘기했다면 졸리를 닮으신 다락방님에게는 피트의 그 말이 진실인 겁니다. ^-^b

다락방 2011-11-24 12:10   좋아요 0 | URL
엄청 근사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신문을 읽는데 정말 쑝갔어요. 멋진 놈들은 멋진말만 하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왜, 예쁜사람들이 예쁜짓만 골라하는 그런거 있잖아요. ㅎㅎ

전 이제 나이들어가는 것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고 또 맞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해도 젊음은 언제나 부러워요. 젊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생각해보니, 저는 제 가장 첫 연인을 제가 젊었을 때, 제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사귀었어요. 이런거, 지금은 못하겠어요. 피곤해요. ㅎㅎㅎㅎㅎ

moonnight 2011-11-2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른 신문이지만;) 브래드 피트의 그 인터뷰기사 읽고 너무 멋진 사람. 이라고 생각했더랬어요. +_+;;;
저는 나이 들어서 더 지혜로와진 것 같지는 않지만 (ㅠ_ㅠ;) 어렸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어떻게 그 시기를 헤쳐나왔는데 말입니다!!!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좋아요. ^^

다락방 2011-11-25 16:16   좋아요 0 | URL
히융. 멋있죠? 예쁜 사람은 예쁜짓만 하고 멋진 사람은 멋진말만 하는건가봐요. 멋져. ㅎㅎ
저는 나이 들어서 더 지혜로워진 것 같진 않지만, 어렸을 때의 제가 굉장히 편협했다는 생각은 들어요. 고집도 셌구요. 물론 고집은 지금도 세고..
전 어떤것들은 다시 돌아가서 바꿔보고도 싶어요. 이를테면 추악한 과거..같은건 좀 지우고.......그렇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전 어김없이 또 그렇게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은, 지금대로 좋아요, 문나잇님.
:)

비로그인 2011-11-24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덧글을 어떻게 남겨야 하나... 이런 마음으로 추천만 누르고 가셨나보네요.
저 역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브래드 피트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지혜를 선택할까? 살짝 의심해봤어요.
저는 젊어서는 지혜를, 늙어서는 청춘을 선택할 것 같아요.

다락방 2011-11-25 16:17   좋아요 0 | URL
비탈리의 샤콘느는 들어봤어요, 수다쟁이님? 그거 들으면 굵은 눈물 방울이 또르르~ 떨어질 것 같지 않아요? 응?

현명하네요, 수다쟁이님. 젊어서는 지혜를, 늙어서는 청춘을.
:)

이진 2011-11-2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저는 아직 젊음이라는 것에도 도달하지못한 초젊음 상태인듯 합니다...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속에서 여유를 배운다는 것은 힘들고, 지혜와 젊음을 따질 수가 없지요... 일단 저는 아직 젊음이라고 외칠 것만 같습니다ㅋㅋ

다락방 2011-11-25 16:18   좋아요 0 | URL
초젊음.....초샤이어인인가요............ㅋㅋㅋㅋㅋ
소이진님. 젊음 속에 깊이 들어가있을 때는, 그 상황을 즐기는 것이 현명한 것 같아요.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재미있는 것들, 모두 다 누리세요.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 ㅠㅠ 공부를 열심히 안했더니 어른되서 무식한게 너무 싫고 부끄러워요. ㅠㅠ

jungmin17 2011-11-2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계속늙었단소리를들어서젊음이머가좋은지별생각안해봤지만체력이좋고열정있단것빼곤다부질없죠특히가난한게서럽죠지혜가모든것을이깁니다!

다락방 2011-11-25 16:19   좋아요 0 | URL
흐음, 지혜가 모든것을 정말 이길까요? 미모가 이기는거..아닌가요? 미모가 짱인것 같지만, 네, 그렇지만 저도 미모와 지혜중에선 지혜를 선택할 것 같아요...아닌가? 미모를 선택하려나? 뭐, 어쨌든 제가 묻고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ㅎㅎ

sweetrain 2011-11-25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물 아홉인데; 아침에 버스타고 가는 길에 학생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괜히 기분이 좋더라구요. ㅋㅋㅋ
저도 종종 20대 초반이 그립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남은 제 인생 중에서 가장 젊은시기니까,
지금을 즐기려고 해요.

다락방 2011-11-25 16:20   좋아요 0 | URL
오! 멋져요. 학생..이라니. 저는 삼십대 중반인데 대학생이냐는 소리를 몇달전에 듣고 마치 이 지구를 다 얻은듯한 기분에 휩싸여서 제 덩치가 크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날아다녔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
 
질리안 마이클스 파워피트니스 30일 - 30일 동안 10kg까지 체중 감량 파워 피트니스 프로그램
질리언 마이클스 출연 / KBS 미디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한 남자와 데이트 중이었는데, 그 남자에게는 이미 애인(혹은 아내)이 있었다. 이 남자가 누구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바, 우리는 불륜을 진행중인 사람들답게 외진 곳으로 데이트를 하러 갔다. 언덕위의 집이었는지, 산 속 별장이었는지, 어쨌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갔는데, 그 남자는 잠시 볼 일이 있다고 자리를 비워 그 쓸쓸하고 적막한 집에는 나 혼자가 되었다. 그 때, 한 젊은 여자 배우가 내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꿈에서는 알았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안나고, 그녀는 내가 데이트 하던 남자의 여자이거나 혹은 처제이거나 암튼 그와 관계있는 여자였는데, 그래서 나를 처벌하기 위해 온 것. 그녀는 커다란 스태플러로 내 손과 발을 찍어댔고 나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지만 그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내 비명소리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고 나는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너무 고통스러워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뭔가 묵직한걸로-그녀의 다리였는지 망치였는지- 내 허벅지를 강타하기 바로 직전, 한 남자가 그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남자는 역시 꿈에서는 누구인지 알았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나고, 어쨌든 나를 구하기 위해 들어온 것인데 나는 이미 죽기 직전, 그녀는 나의 허벅지를 강타하고 나는 그녀가 나를 죽이는 범인임을 알기 위해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비명을 질러 그녀를 범인이라 칭하며 거친욕을 한다. 그 거친욕이 무엇인지는 내 이미지 관리상 말할 수 없고, 다만 수키가 자주 하는 욕임을 밝힌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하면 별거 아닌 꿈인데, 새벽에 꿈을 꾸다 깼을때는 왜그렇게 무서운걸까. 나는 무서워하다가 진정시키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꿈을 꿨다. 

꿈에서는 엄청난 자연재해가 찾아왔다. 태풍이었는지 폭풍이었는지 홍수였는지 뭔지 모를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라졌고 집들도 사라졌다. 그나마 몇 남지 않은 집 중에 우리집이 있었는데, 그래서 우리집에는 동네에 집잃고 부모 잃은 아이들 몇몇이 와서 임시로 지내고 있었다. 세상은 어두웠고 사람들이 갈 곳은 없었다. 그런참에 나의 친구인 여자사람1人과 남자사람1人이 연락을 취해왔다. 자신들은 더 나은 살 곳을 찾아 아주 먼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하룻밤만 우리집에서 재워줄 수 있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그러마고 했다. 나는 그 둘을 보는것이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갔지만, 방 하나에는 동네 아이들이, 방 하나에는 식구들이, 그리고 방 하나에는 나와 여자사람1人이 자야해서 남은 공간이 부엌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엌에 남자사람1인의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내 방으로 돌아갔는데, 아무래도 부엌에 그의 잠자리를 마련해둔게 신경쓰이는 거다. 그래서 다시 나가서 괜찮겠냐고 묻는데, 그는 초라한 속옷을 입고 일어서서는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가 앞으로 먼 곳으로 떠날 것이라는 사실과, 그가 초라한 속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를 우리집 부엌에서 자게 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내가 그를 향한 오랜 연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마음으로 애틋하게 그를 쳐다보다가 아련한 마음을 담아 그를 포옹했다. 그는 나를 마주 포옹하며 키스해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의 키스를 받으며 설마 이게 꿈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키스를 끝내고 내 귀에 속삭였다. 

내가 오랫동안 꿔 온 꿈이 실현됐네요, 라고. 

내가 당신의 꿈이었다고? 당신은 나의 꿈이었는데? 나는 감격에 겨워 왈칵 울음을 쏟아낼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 J 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고 싶었다. 내가 그의 오랜 꿈이었대요, 라고. 그러나 그 문자를 보낼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내 감격에 겨워있었던 상황. 그에게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고 싶었고, 그렇게 그의 옆에 나란히 눕고 싶었는데,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집안의 아이들과 식구들과 여자사람1人 모두 내가 챙겨야 되는 상황. 나는 그 달콤함만을 간직하며 다시 사람들을 살피다가 잠을 깼다. 

 

『질리안 마이클스 파워피트니스 30일』에는 30일동안 10kg 을 감량할 수 있다고 쓰여져 있고, 그래서 나는 30일동안 한 뒤에 "놀라운 효과에요, 정말로 10kg 을 감량했어요!" 라는 구매자 40자평을 쓰고 싶었고,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제 단 하루를 했을 뿐인데 오바이트가 쏠리고 팔다리가 후달리고, 팔다리에 스태플러가 박히는 꿈을 꿨다. 단 하루만 했을 뿐인데 내 몸은 비명을 질렀고 악몽과 달콤한 꿈 사이를 오락가락 했다. 맙소사. 이래가지고 30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30분도 채 안되는 시간을 따라했을 뿐인데 나는 마치 젖은 휴지처럼 널브려저 침대에 내팽개쳐진 기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루, 단 하루였을 뿐인데!!  

그러나 이 DVD를 재생시키고 본인의 뼈가 타는 고통을 감수하며 30일간 따라한다면, 감히 단 하루만 해본 사람으로서 말하건데, 정말 10kg 감량은 찾아올 것 같다. 그녀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따라하기를 재촉하며 말한다. 

부상은 안돼요, DVD 를 지금 끄고 싶죠? 자 조금만 더해봐요, 이렇게 따라해봐요, 이 명품 복근을 여러분도 갖고 싶지 않나요? 여기까지 해왔잖아요 조금 더해요, 조심해요 부상은 정말 안돼요, 여러분이 지금 힘들다는 것 알아요, 장시간의 운동과 식이요법은 많이 힘들었죠? 전 여러분의 근육과 심장을 모두 운동시킬거에요. 

그녀는 정말로 그렇게 했고, 그리고 그녀가 시키는대로 부지런히 한다면, 그녀가 보장하는 체중감량과 근육은 내게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말이다. 이건 단 하루만 해봐도 안다. 그녀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것은 나의 의지문제가 아니던가. 나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30일간 30분씩 온 몸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어가면서 밤이면 악몽과 달콤한 꿈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명품 복근을 만들것이냐, 편안하게 지내고 편안하게 자면서 뚱뚱하게 살아갈 것이냐. 일단, 지금은, 오늘은, 더이상 이 DVD 를 재생하기를 멈추려한다. 며칠 쉬어야 겠다. 그러니까 단 하루 하고 이러는 거, 맞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질리안 마이클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의 의지는 언제나 나를 배반하기 때문에.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요가매트와 덤벨을 가지고 DVD를 재생시키는 순간, 내 근육들은 움직이고 땀방울은 온 몸으로 흘러 옷을 적신다. 그건 의심할 필요가 없다. 정말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그러나 만만치 않다. 

부작용 1. 30분간의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에 침대로 돌아가 책을 읽으려고 했더니 책장을 한장도 넘길 수가 없었다. 곧바로 잠이 쏟아졌다. 

부작용 2. 평소보다 기상시간이 늦어졌다. 아..일어날 수가 없었어. orz 

부작용 3. 식욕이 대박, 밥맛이 꿀맛이다. 아침부터 밥 한그릇을 뚝딱 비우고 김치왕만두 하나까지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야 말았다(그런데 이건 평소에도 좀 그렇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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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11-22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1-11-22 10:02   좋아요 0 | URL
피트니스 DVD 리뷰 이렇게 잘 쓰는 사람 봤어요, 웬디양님? ㅋㅋㅋㅋㅋ한순간에 후다다다닥 ㅋㅋㅋㅋㅋ

2011-11-22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2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 2011-11-2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세상에. 푸훗.

다락방 2011-11-22 10:22   좋아요 0 | URL
쌍코피가 터질것 같아요, 하루님. ㅜㅜ

버벌 2011-11-2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 저 이거 사야할까봐요. 위에 댓글에 이미 락방님이 썼지만.. 휘트니스 비디오에 대해 이리 리뷰를 잘 쓰는 사람은 없을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니까 전 그 리뷰에 넘어간,,,움 느껴볼까. 스태플러가 온 몸에 박히는 꿈을.

다락방 2011-11-22 14:27   좋아요 0 | URL
버벌님.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여서 '꾸준히' 이 DVD 대로만 한다면 정말 몸짱이 될 것 같아요.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꾸준히' 해내기가 벅차다는 것. 흑흑.
와 전 지금도 몸이 부서질 것 같아서 집에 가고 싶어요. ㅎㅎㅎㅎㅎ

무스탕 2011-11-2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모든걸 감수하고 별이 다섯개!
30일후,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다락방님의 다른 후기가 올라올지 기대해 볼게요 ^^

다락방 2011-11-22 14:28   좋아요 0 | URL
네. 이건 단 하루 했는데도 성능이 짱이거든요! 물론 몸무게가 줄어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근육들이 다 깨어난 느낌이에요. 제가 조금 더 부지런하다면, 조금더 의욕적인 사람이라면 효과를 엄청 볼 것 같아요. 그러나 전 게으르고 게으른 여자사람. 흑흑.
크리스마스 즈음이라....전 연말이라 매일 고기와 술을 마시며 백키로 찍을것 같아요. 흑흑 ㅠㅠ

twoshot 2011-11-2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줄 대박이네요..그런데 이건 평소에도 좀 그렇긴 했다,,,땡스투와 추천을 한방씩 날리고 갑니다~~

다락방 2011-11-22 14:29   좋아요 0 | URL
잊지마세요, 투샷님. 자신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요. 하루만 해봐도 몸이 달라지는 걸 느끼실 거에요. 그러니까 겉으로 보기에 달라졌다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근육들이 다 깨어났어요. ㅎㅎ
식욕은, 에, 뭐, 늘 그랬으니깐요. ( '')

레와 2011-11-2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

다락방 2011-11-22 14:30   좋아요 0 | URL
난 참...애가 여러모로 짱이야. ㅋㅋㅋㅋㅋ

... 2011-11-22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vd 활용팁에 "초보자는 아니타를 따라하시고 경험이 있으신 분은 나탈리를 따라 하세요" 라고 나와 있어요. 다락방님이 나탈리를 따라 하신게 아닐까요? 아니타를 따라 해야 하는데? ( '')

다락방 2011-11-22 15:46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브론테님. 아니타를 따라했어요. 아니타를 따라하는 것도 완전 죽을듯한 고통을 동반해요. 흑흑.
(게다가 반복해서 질리안이 말해줘요. 초보자는 아니타를 따라하고-이러면서 아니타에게 가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나탈리를 따라하라고-이러면서 나탈리에게 가요. 헷갈릴 수가 없어요. ㅠㅠ)

자하(紫霞) 2011-11-2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피트니스 DVD 보고 일주일에 3일 따라하다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살빼기를 소망하는 아는 동생에게 그걸 빌려줬더니 그날 밤 이런 문자가 오더군요.
진짜야? 이거 사람이 하는 거 맞아?라고...
아~복근 대박 부럽네요!

다락방 2011-11-22 15:47   좋아요 0 | URL
이걸 정말 따라만 한다면!!!!! 복근은 문제 없을듯한데 말입니다.
이건 사람이 하는건 맞긴 맞는것 같은데, 그런데 제가 할 건 아닌것 같아요. 포기의 경지에 이르러서 저는 울어야 하는지 웃어야 하는지. 흑흑.

moonnight 2011-11-2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다락방님답게 막 사고 싶게 만드시는 리뷰예요!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어디 가서 하는 건 귀찮고, 집에서 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러나, 의지박약인 저로서는 열심히 따라할런지 걱정 -_-;;;;;;;;

다락방 2011-11-23 15:38   좋아요 0 | URL
저도 의지박약이라 어제는 또 음식을 폭풍흡입하고 그냥 잤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고 있지만 슬픈...기필코 또다시 따라하리라, 라는 마음은 먹고 있는데 그게 대체 언제가 될지. orz
아직도 등과 엉덩이의 근육이 울고 있어요. ㅜㅜ

sweetrain 2011-11-2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껏 본 피트니스 비디오 리뷰 중에 최고에요!! 저도 갑자기 사고싶어지네요..
이거 샀다가 혹시 나중에 저도 몸에 스테이플러 박히는 꿈 꾸고 제 서재에서 울부짖을지도 모르지만요;;

저는 평소에도 식욕이 엄청나 피자 한 판을 앉은 자리에서 먹는데;;
식욕을 얼마나 억제할지가 걱정이에요..;

다락방 2011-11-23 15:39   좋아요 0 | URL
저도 식욕이 대박. 식욕은 억제가 안되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제가 그다지 식욕을 억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질 않는다는거에요. 전 욕망이란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것을 왜 억제해야 하느냐..라고 생각하는 쪽이라. ( '')
그래서 이 dvd 를 산건데, 어휴, 근육들이 놀라가지고 지금 어쩔줄을 모르네요. 그렇지만 열심히 한다면 정말로 몸의 라인과 근육의 움직임은 달라질것 같아요.

메르헨 2011-11-2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건 다 뒤로하고...얼마전에 이소라디비디 3일하고 멈춤 상태에요. 땀을 비오듯 쏟으며 하다가
내가 이 방안에서 뭔 짓인가 싶더이다.ㅜㅜ그래도 운동은 해야해요.

다락방 2011-11-23 15:4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러니까 그게 뭐든 역시 자신의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헬쓰장을 다니든 조깅을 하든 이런 dvd 를 재생시켜서 따라하든.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사실 뭘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의지라는것이 제게는 통 없는가봐요. orz

이진 2011-11-22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아, 다이어트의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지요...
저도 조혜련의 태보다이어트 DVD를 근 나흘동안 아주 열심히 하다가
한달넘게 뒹굴뒹굴의 끝을 보이고 있답니다...
살..살이 정말 ㅠㅠㅠ

다락방 2011-11-23 15:41   좋아요 0 | URL
다이어트는 고통이죠. 이렇게 운동해서 땀흘리는 것도 고통이지만 먹을걸 참는 건 더 고통이잖아요. 그래서 전 애초에 다이어트를 한다고 생가한다해도 음식을 안먹는걸로는 아예 생각을 안해요. 먹는 기쁨은 제게 정말 엄청나기 때문에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어요. ㅠㅠ
조혜련 태보다이어트 보고 따라하세요, 소이진님. 저도 질리안 마이클스를 다시 따라해볼랍니다. 불끈!

마노아 2011-11-2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뉴스보면서 훌라후프 30분 돌렸어요. 아니타에 비하면 훌라후프는 그야말로 율동이에요. 전 그냥 율동이나 할까봐요..;;;

다락방 2011-11-23 15:42   좋아요 0 | URL
율동도 꾸준히 하면 효과를 보잖아요. 그런데 아니타 따라하다가 저는 지금 근육들이 우는통에 미칠지경. ㅎㅎ 그렇지만 오랜만에 근육들이 우는것도 사실 나쁜 기분은 아니에요. 몹시 피곤하지만 살짝 뿌듯하달까. 조만간 또다시 해볼거에요. 전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30일에 10kg 라면 60일엔 20kg 감량인가.......
 

이 영화는 난해하다고 말하기엔 좋고 좋다고 말하기엔 난해하다. 어쨌든 난해한것 보다는 좋다는 쪽에 더 점수를 주고 싶긴 한데, 그렇다면 그 '좋다'는 것은 대체 어떤 종류의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을것인가 하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를 명확한 단어로 설명할 수가 없는것이다. 슬픈가? 아름다운가? 안타까운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좋고, 그래서 난해하다. 

우스개소리로 친구들과 지인들과 혹은 식구들과, 부자로 살기 위해서는 부자로 태어나거나 사기를 쳐야만 한다고 대화하곤 했었는데, 이건 그저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님은 틀림없다.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을 받고, 그것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집을 사고 재산을 불리고 넉넉한 돈을 쌓아두는 일이 가능할까? 아니,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월급이 오르면 물가는 더 올라있다. 내 월급은 십년전에 비해 두배가 되었지만, 그렇다면 지금 월급에서 십년전 월급을 뺀 차액을 모으고 있는가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중국에서도, 그곳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그 삶을 피해보자고 스페인에 왔지만, 여기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가난하다. 지하실의 창고 하나에 열명도 넘는 사람이 다같이 함께 모여서 잠들고, 그들은 하루중 열여섯시간을 일한다. 그렇게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데 그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돈이 모이게 될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들은 게다가 그 지하실 창고에서 자신들이 죽는지도 모르는채로 죽음을 맞게된다. 그들은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는다. 게다가 그 죽음에는 어떤 애도도 없었고 제대로 된 장례조차 없었다. 그들의 시신은 스페인의 파도를 맞으며 쓸쓸하게 떠 있을 뿐이다. 

이 영화속의 또 하나의 이야기는 '죽은 영혼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것인데, 이 영화를 다 보고나서 아니, 사실은 그 전부터 나는 어떤이들에게 그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누군가는 할 것 같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죽은자의 영혼이 하늘로 가기전 내뱉는 말들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듣고 있지 않을까? 

 

 

사실 다른 책들을 읽다가 자꾸만 멈춰서, 그것들을 다 읽기전까지는 하루키를 집어들지 말자고 내심 혼자 아무도 모르는 결심 따위를 해보았는데, 어쩔수 없겠더라, 나는 일요일 오후, 조카를 집에 보내고 낮잠을 잔 후 일어나서 이 책을 펼쳤다. 그리고 조금, 아주 조금 읽었다. 

얼마전, 마노아님의 영화 [도가니] 리뷰에서, 마노아님의 친구는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게 맞다면)왜 그 소설은 영화보다 힘이 없었는가, 왜 그정도밖에 하지 못했는가 하는 뉘앙스로 얘기를 하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문학의 힘은 모두를 혹은 세상을 바꾸는데서 나타나는 건 아니라고 보여진다. 각자의 매체가 가진 힘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하게 되는 일이 다를텐데, [도가니]를 예로 들자면, 그 영화의 파급 효과는 분명 책보다 컸지만, 그 영화 자체가 책에서 나온 것임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독자나 관객이 그것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데 무리가 없다면, 그것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 할일을 하고 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주 제대로 써줬다. 역시 하루키로구나. 

 

문학은 대부분의 경우 현실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 일례로 전쟁이나 학살이나 사기나 편견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제지하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무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역사적인 즉효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문학은 전쟁이나 학살이나 사기나 편견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거꾸로 그런 것들에 대항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치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물론 거기에는 시행착오가 있고, 자기모순이 있고, 내분이 있고, 이단이나 탈선도 있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문학은 인간 존재의 존엄의 핵을 희구해왔다. 문학이라는 것 안에는 그렇게 계속성 안에서(그 안에서만)언급되어야 할 강력한 특질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pp.29-30)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그의 소설 대부분을 두번 이상씩 읽었지만, 노벨문학상에 하루키가 거론될 때마다 갸웃했었다. 그의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을만큼(그것의 권위가 절대적이든 아니든) 그정도의 어떤 문학성을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것을 어떻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동안 읽은 책들과 그것들에 대한 느낌만으로 판단하자면 내가 보기에는 코맥 매카시는 문학상에 근접하고 하루키는 그렇지 못하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키의 이 잡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내 생각이 잘못되있음을, 적어도 나는 내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서 나름대로 판단해왔음을 느꼈다. 하루키는 하루키대로 (왜 아니겠는가!) 문학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글을 쓰고 있었다. 그의 '잡문집'에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새삼 놀랍고 또 믿음직스러웠다. 아, 물론 아직 나는 하루키의 잡문집을 50페이지도 채 읽지 않았고, 그러면서 생각한거긴 하지만. 

 

금요일에는 종로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 앞에서 약속이 있었다. 나는 '자난 탄'의 『내 이름은 피라예』와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를 들고 가서 팔았다. 꺄울. 퇴근길의 만원버스에 시달리면 책들을 들고 가는건 정말 오바이트 쏠리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들고 간 책을 팔고 돈을 받는 일은 무척 신났다. 흐흐. 재미있어. 온라인으로 팔 때도 재미있었는데, 오프라인에서 바로바로 결제가 되는것도 재미있다. 게다가 『독거미』는 무려 4,900원! 움화화핫.
그리고 약속시간이 아직 조금 남아있어서 당연히 나는 또 알라딘 중고서점을 구경했는데...하다가 '크리스 클리브'의 『리틀비』와 '레베카 밀러'의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를 샀다. 앞의 것은 5,400원, 뒤의것은 무려,무려,무려,무려 2,000원이었다!!!!! 상태 완전 양호한데 단돈 2,000원!!!!!  

그걸 들고 돌아다녔기 때문인걸까, 오늘 조카를 안으려는데 팔이 너무 아팠다. ㅠㅠ 

 

 

 

 

 

 

움화화핫. 토요일 극장에서 만난 예고편. 12월 개봉이란다.

 

  

우리 재이슨의 영화가 자꾸 개봉하는구나. 이러다 너무 유명해지는건 아닐까. 너무 유명해져도 좋아하는 사람은 나 뿐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내 주변에 재이슨 스태덤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까. 훗. 

그리고 또 본 예고편 하나가 탐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4』였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두바이의 빌딩에서 그가 대역없이 액션촬영하는 장면이었다. 아..진짜..눈돌아가..완전 멋있어. ㅠㅠ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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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벌써 일요일 밤 열시야. ㅜㅜ 나는 또 초조하고 안절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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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0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0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1-11-20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벌써 일요일밤 열한시지말입니다 ㅠㅠㅠㅠ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직 제게 안 맞는거 같아서 못 읽고있는데 저 문단 너무 좋아요 ㅠㅠ 이래서 사람들이 하루키하루키 거리는군요!

그나저나 다락방님 손이 완전 이쁘십니다 ㅎㅎㅎ

다락방 2011-11-21 11:24   좋아요 0 | URL
오옷, 지금은 벌써 월요일 오전 열한시 반입니다. 삼십분만 있으면 점심시간이라고, 그러면서 저는 기운을 내고 있어요.

제 손은, 그러니까, 제 얼굴보다 낫긴 합니다만. ( '')

이매지 2011-11-20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껏 받은 하루키 잡문집이 파본 ㅠㅠ 엉엉엉 ㅠㅠ

다락방 2011-11-21 11:24   좋아요 0 | URL
헉. 그런일이. ㅠㅠ 울지마요. ㅠㅠ

버벌 2011-11-21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손가락 완존 이쁘다. 왕왕 부럽네요. 전 구석구석 살이 쪘는데. 손가락들도 그래요. 반지를 못 껴요. ㅡㅡ;;;
저는 프랭클린 캐주얼 다이어리를 구입했고, 지나가다 영풍문고에서 포켓용 다이어리도 샀는데. 그래도 또 다이어리가 가지고 싶어요. 이것도 병..입니다 "피파리의 특별한 로맨스" 는 영화로 봤는데. 책으로도 다시 한번 봐야겠네요. 최근에 전 헌책방과 하루키 두 단어를 많이 보고, 말하고, 듣고 있어요. 하루키의 책이 너덜 너덜 해질때까지 읽어라. 라는 뜻인가? ㅡㅡ?

다락방 2011-11-21 11:27   좋아요 0 | URL
근데 저 사진에서는 손가락 별로 예쁘게 나온것 같지가 않은데..완전 두껍기만 한데..그래서 사진을 세로로 좀 더 줄여볼까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 말았어요. 반지는요, 버벌님, 이것 저것 다 끼워보면 굵은 손가락에 어울리는 반지가 나타나더라구요. 저도 제 친구가 낀 반지 보고 너무 이뻐서 그런거 사려고 갔다가 제 굵은 손가락에 끼워진거 보고 울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하지 못했던 디자인의 반지를 껴보게 됐는데, 그게 나름 괜찮았어요.
피파리의 특별한 로맨스를 버벌님도 보셨군요. 좋지 않든가요? 전 키에누 리브스가 피파 리, 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완전 부러워가지고 ㅜㅜ
하루키를 읽읍시다. 훗

버벌 2011-11-22 02:57   좋아요 0 | URL
네 좋았어요. 락방님 방에서 영화 발견하고 본거에요. ^^ 전 좋았어요. ㅎㅎ

다락방 2011-11-22 09:10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았어요!! 특히 엄마랑 사이 안좋던 딸이, 엄마가 젊은 남자친구를 사귀는 걸 알고는 엄마의 편이 되어주는 게 좋았어요. 특히 자신이 그동안 지고 있던 죄책감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는 피파 리를 보는게 좋았어요. 물론 가장 '특히'라고 말할만한 건 위에도 썼던 것 처럼, 마트에서 키에누 리브스가 피파 리, 하고 부르는 장면이지만 말예요.

2011-11-21 0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11-21 11:27   좋아요 0 | URL

2011-11-21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11-21 11:36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ㅎㅎ

마늘빵 2011-11-2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축복받은 남자는 누구에요?

다락방 2011-11-21 11:28   좋아요 0 | URL
저는 그를 애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

레와 2011-11-21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이후의 얘기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다.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니니까. 꼬치꼬치 따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말이다. 그러면 우울해지니까.' - 호밀밭의 파수꾼 중에서 -


다락방의 이 페이퍼 제목을 보곤 어젯밤에 읽은 이 책 구절이 떠올랐지요.
:)

다락방 2011-11-21 11:29   좋아요 0 | URL
어젯밤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어요? 어땠어요? 지금 처음 읽은거에요, 레와님? 아니면 두번째 혹은 세번째에요? 레와님은 홀든이 어땠어요? 피비는? 센트럴파크의 사라진 오리들은? 레와님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니 너무 좋아요!! >.<

레와 2011-11-21 13:17   좋아요 0 | URL
작년에 처음 읽었다가 중간에 멈춤. 어젯밤엔 그냥 이 책이 읽고 싶더라고.. 아무곳이나 펼쳐들었는데, 저 구절이 있었어요. ^^

2011-11-21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 2011-11-2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저 문장은 단연 최고예요. 책을 통 틀어서.

다락방 2011-11-21 11:29   좋아요 0 | URL
하루키 정말 좋아요. 얼른 뒷부분을 읽어보고 싶어요. 그의 또다른 생각들을 알고 싶어요.

음. 2011-11-2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루키는 에세이가 갑.

다락방 2011-11-21 11:29   좋아요 0 | URL
전 그의 소설도 무척이나 사랑한답니다.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어요, 전.

2011-11-21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1-11-21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그럼 나도 잡문집 살까.

다락방 2011-11-21 11:33   좋아요 0 | URL
일본의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고 수상연설을 써둔 부분이 있는데요 치니님, 하루키는 그 상을 받은 것에 대해 마구 감격하지도 않고 마구 고마워하지도 않아요. 뭔가 시니컬하게 이런건 처음 들어보지만, 혹은 어쨌든, 이러면서 고맙다고 해요. 전 그 점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히히.

비로그인 2011-11-2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거미.
내겐 진짜 아픈 책이 되어버렸어요, 다락방님.

2011-11-21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11-21 12:40   좋아요 0 | URL
아픈걸 곱씹으며 책장에 꽂아두느냐, 혹은 내다 팔아버리느냐. 선택은 쥬드님의 몫이네요. 언제나 그랬듯이 말입니다.

비연 2011-11-2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 앉아 있는 남자라...흠....부럽!

다락방 2011-11-21 12:51   좋아요 0 | URL
옆에 앉는게 좀 더 좋은것 같아요, 비연님. :)

비로그인 2011-11-2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글을 옮겨 적어주는 손은 그 모양이 어떻든 간에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에요. 제 생각은 그래요 ㅎㅎ

다락방 2011-11-21 13:5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수다쟁이님 이 댓글 되게 귀여워요!! >.<

야클 2011-11-21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다닐때 수업시작 전 저의 탁월한 과제물을 베끼던 뭇 여성들의 손이 생각나는 사진입니다. 아무튼 '애인'이라 칭할 수있는 남자사람이 생기셨다니 경하드립니다. 고기를 잘 사주시는 분인가 봅니다. ^^

다락방 2011-11-21 14:29   좋아요 0 | URL
오, 야클님. 여학생들에게 과제물을 보여주던 그런 캐릭터의 남자사람이셨습니까? 오! 멋지네요. 저는 그런 학생이 되고 싶었어요. 남학생들에게 과제물 보여주는 그런 학생. 그렇지만 죄다 여학생들 뿐이라 저도 과제를 하지 않았죠.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여대냐 남녀공학이냐로 결정되어지는 것 같아요. 적어도 제게는요... ( '')

pjy 2011-11-2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로알라딘은 무겁게 가져가서 팔고, 더 무거운 책들로 들고오고^^; 실제 사례가 다들 그렇더군요~~ 그래서 전 똑똑한척? 가볍게 카드만 들고 빈손으로 가서 무겁게 들고오나봐요~~ㅋ

다락방 2011-11-21 17:1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전 제가 그러면서도 왜이렇게 미련스럽나 싶기도 해요. 무겁게 왔다갔다 ㅠㅠ 바보에요 바보 ㅠㅠ 지금도 팔이 아파요. 흑흑. 왜 이러고 사는걸까요?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ㅠㅠㅠ

Arch 2011-11-2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 쓰는 손도 이쁘지만 종이 넘어가지 않게 손가락으로 꼭 누르는 손은 더 예쁘네요. <--이 말 누군가 해줄 것 같아 조바심 내면서 댓글 달아요.^^

다락방 2011-11-22 09:07   좋아요 0 | URL
어머. 아치는 섬세하기도 하지. 새 수첩이라 자꾸만 페이지가 팔락팔락 넘어가더라구요. 히히

sweetrain 2011-11-2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서도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셨지만 다락방님 손 정말 예쁘네요.
저는 손이 워낙에 통통한 데다 양손 다 검지손가락은 좀 휘어져 있어서,
(이건 그냥 보면 모르고 손을 쫙 펴야 휘어진 게 보이긴 하지만;)
손 예쁘신 분들이 정말 부럽더라구요.

다락방 2011-11-22 09:08   좋아요 0 | URL
에..그게 그러니까..제 손은 뚱뚱해요. 사진이 잘나왔나 봐요. 저 사진도 들여다보면 손 뚱뚱한거 다 티나는데....저도 검지손가락은 휘어져 있구요 새끼손가락은 자라다 말았는걸요.

당고 2011-11-2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미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지만,
얘기 안 할 수가 없군요.
손이 예쁘세요!
그리고 위에 쓰신 분 말씀처럼 종이 넘어가지 않게 누르는 손이 압권!

다락방 2011-11-22 09:09   좋아요 0 | URL
어머, 압권! 이라니 ㅎㅎㅎ 완전 좋아서 입이 찢어질것 같아요, 당고님. ㅎㅎㅎㅎㅎ 그렇지만 아마도 카메라가 좋아서가 아닐까요. 산지 얼마 안되는 최신형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찍은거라...하하하하하(겸손겸손)

마노아 2011-11-2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사진의 구도가 참 좋아요. 스카프랑 만년필, 반지와 팔찌가 조화롭게 보여요. 그리고 수첩에 글씨까지도요.
어제는 야곱과 맥주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하다가 가위 눌린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러다가 영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귀신과 대화하는 것 등등, 요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어요. 며칠 전에 제가 무섭게 가위 눌렸거든요. 무겁드만요..;;;;

다락방 2011-11-23 15:44   좋아요 0 | URL
저도 가위 가끔 눌려요. ㅠㅠ 고통스럽죠. 싫어요. 누가 좀 깨워줬으면 좋겠는데 저는 제 방에서 문 닫고 혼자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orz
사진은 저도 보고 만족스러웠어요. 분위기있게 나와서요. 아마도 연출된 사진이 아니기 때문인가봐요. 훗
:)
 
비우티풀 - Biutifu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내가 당신곁을 떠나게 된다면 당신을 지켜줄 작은 돌맹이 하나를 당신손에 쥐어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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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20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40자평을 읽으며 항상 느끼는 거... 역시 다락방님다워 :>
남자 배우 눈이 꼭 소 같아요. 순한 소. 황소.

다락방 2011-11-21 11:09   좋아요 0 | URL
하비에르 바르뎀은 제가 그동안 봐온 영화에서 완벽하게 다 다른인물들이었어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이건 제목이 이게 맞나...)]에서도, 그리고 이 [비우티풀]에서도 그는 전혀 다른 인물이에요. 참 독특한 배우에요.

2011-11-20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1-11-21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생각나진 않는데 돌멩이가 나오는 영화가 있었어요. 일본 영화고 염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찾아봤는데, 굿바이에요.

저도 이 영화 보고 싶었는데. 이분이 그분이에요? 익숙한 얼굴인데 기억이 안 나더라구요.

다락방 2011-11-22 09:14   좋아요 0 | URL
이 영화는 아치가 봐도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어쩌면 내가 짚어내지 못했던 지점에 대해서 아치가 짚어줄지도 모르겠어요. 이 영화 좋아요, 아치! 기회된다면 봐요. 알았죠?
 
비상구 계단이 필요한 이유

11월의 어느 쌀쌀한 아침, 나는 지하철 2호선안에서 82퍼센트 남자아이와 엇갈린다.
솔직히 말해 그다지 잘생긴 남자아이는 아니다.
눈에 띄는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멋진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은 제법 길어 뒤로 묶었고 모자사이로 묶은 머리를 빠져나오게 했다. 나이도 적지 않다. 벌써 서른 살에 가까울 테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남자아이라고 할 수도 없으리라. 물론 남자아이가 아닌 쪽이 더 낫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미터 떨어진 그의 옆에 서서 그의 모습을 관찰한다. 그는 나에게 있어 82퍼센트의 남자아이이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땅울림처럼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버린다. 아침에 양치를 하지 않고 나왔다는 사실도 아프게 떠올린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좋아하는 남자아이 타입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팔에 타조알같은 알통이 불룩 튀어나와 있다든지, 역시 가슴에 털이 났다든지, 뒤통수가 절대적으로 동그랗다든지. 잘은 모르겠지만 육회를 먹는 남자에게 끌린다든지와 같은식의. 

나에게도 물론 그런 기호가 있다. 까페에서 차를 마시다가 만화책을 보며 킬킬거리는 옆테이블에 앉은 남자아이의 두꺼운 입술에 반해 코피를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82퍼센트의 남자아이를 유영화하는일은 아무도 할 수가 없다. 그의 입이 어떻게 생겼었나 하는 따위는 전혀 기억할 수가 없다. 아니, 입이 있었는지 어땠었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가 없다.
내가 지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다지 미남이 아니었다는 사실뿐이다. 웬지 조금 괴상하기도 하다.  

"어제 82퍼센트의 남자아이와 지하철을 같이 탔어."
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흠. 잘생겼어?"
라고 그녀가 묻는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럼 좋아하는 타입이었어?"
"글쎄. 생각나지 않아. 기억할 수 있는건, 그는 모자를 썼고, 머리를 묶고 있었고, 큰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고 오바마의 연설장면을 뚫어지게 봤었다는 것 뿐이야."
"그래서, 무슨짓을 했나? 가령 전화번호를 땄다든가, 여기서 내려요 했다든가."
"하긴 뭘해. 단지 지하철을 함께 탔을 뿐이야." 

그는 나와 같은 강남역에서 내렸다. 그러나 나와 다른 출구로 나갔다.
제법 쌀쌀한 11월의 아침이다. 나는 그를 따라가고 싶었다. 무작정 따라가서 그와 30분이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의 신상 이야기를 듣고도 싶고, 나의 신상 이야기를 털어 놓고도 싶다. 아까 보던 그 오바마의 연설은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묻고 싶다. 오바마를 좋아하느냐고 묻고 싶다. 오바마 말고는 또 다른 누구를 좋아하느냐고도 묻고 싶다. 나는 재이슨 스태덤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고, 존 쿳시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11년 11월 어느 쌀쌀한 아침에, 우리가 지하철 2호선을 함께 타기에 이른 운명의 경위 같은 것을 밝혀 보고 싶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씹는 순간 입안에 흘러 넘치는 육즙처럼, 따스하고 안락한 비밀이 가득할 것이다. 

 

- 11월 17일의 목요일 아침, 지하철2호선에서 내 옆에 서있던 젊은 청년을 생각하며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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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11-1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런, 질문...무척 한심한 줄은 알지만...음, (못 참고) 왜 근데 82%에요? 18%의 모자람은 왜???^-^;;;

무스탕 2011-11-18 11:25   좋아요 0 | URL
앗-! 치니님 글을 보고 갑자기 생각났어요. 혹시 키가 182cm정도 되는 남자아이일까요? ㅎㅎㅎ

다락방 2011-11-18 11:5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치니님, 그 남자아이는 100프로가 될 남자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뭔가 분위기가 예술적 기운이 넘치는데, 저는 예술적인 남자를 백프로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여자사람인지라...게다가 다시 볼 것도 아니고 우연히 지하철을 함께 탔을 뿐인데 100프로 주면 좀...많이 아깝잖아요. ㅋㅋㅋㅋㅋ 사실 딱히 이유같은 건 없어요.

무스탕님, 아마도, 178정도였던걸로......기억은 됩니다만 잘은 모르겠네요. 잘생겼던데 ㅎㅎㅎㅎㅎ

비로그인 2011-11-1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글보고 품은 낭만이 댓글 보고 현실로 되돌아왔어요.
잘 생겼냐는 질문에 '아니, 그렇지 않아'라고 한 대답, 순 엉터리 -3-...

그런데 상상이 잘 안 가요. 82%의 소년... 모자를 쓰고 묶은 머리를 뒤로 뺀... 음...

다락방 2011-11-18 13:1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ㅋㅋㅋ 글은 글이고 현실은 현실이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글을 조금 잘생겼던데로 고칠까 어쩔까 ㅎㅎㅎㅎㅎ
소년은 아니고 성숙한 남성이었어요. 전 머리 긴 남자를 늘 싫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남자는 정말 괜찮더라구요. 어쩌면 오바마의 연설장면을 보고 있는 분위기에 취한걸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큰 손이라든가. 뽀얀 피부였을지도 모르고. 뭐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순간에는 반했었어요.

아, 그런데 저 지금 수다쟁이님 서재 가서 츠바이크 글 보고 왔는데. 그 책 저도 읽어볼래요. 불끈!!

poptrash 2011-11-1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82%라고 하니 어쩐지 이름으로 보는 궁합이 생각나잖아요. 다 한 락 수 방 철, 이렇게 써놓고 획 더해서 궁합 퍼센티지를 뽑아내는 신기의 과학...

다락방 2011-11-18 14:5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완전 뿜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 한 락 수 방 철 ㅋㅋㅋㅋㅋㅋ 이거 진짜 퍼센테이지 뽑아볼까요? ㅋㅋㅋㅋㅋ

2011-11-18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weetrain 2011-11-1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경 쓰고, 마른 남자가 좋아요. 손가락이 길면 더 좋구요.
저도 종종 버스 안에서 80%쯤 되는 남자를 보곤 합니다. ㅋㅋㅋ

다락방 2011-11-21 11:15   좋아요 0 | URL
저는 고기와 술을 잘 사주는 남자가 좋아요. 외모는 처음순간만 중요하지, 고기와 술 앞에서는 뒷전으로 밀리더군요. 물론 저의 경우에는 말입니다. ㅎㅎ

이진 2011-11-18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잘생긴 입술을 보고 코피까지 흘리시다니, 다락방님은 이렇게 순수하신 분이셨습니까 ㅋㅋㅋㅋㅋㅋ그리고.. 육회를 먹는 남자가 끌리는 것은 혹시 다락방님?? ㅋㅋㅋ

다락방 2011-11-21 11:16   좋아요 0 | URL
저는 원래 해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아직 아무도 그사실을 모르는데, 소이진님은 이제 눈치채셨군요. ㅋㅋㅋㅋㅋ 육회를 먹는 남자에게 끌리는건, 네, 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벌 2011-11-19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를 열었어요. 움. 움. 움.

다락방 2011-11-21 11:18   좋아요 0 | URL
어때요, 좀 괜찮습니까?

마태우스 2011-11-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궁합 봐주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수치인 줄 알았습니다. 글을 읽고 난 느낌은요, 잘생기지 못한 그 남자에겐 님이 너무 과분합니다. 잘생기고 키도 클 뿐 아니라 책을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데다 손등과 가슴에 털이 없는 남자가 아니라면, 무조건 반대할 거예요!

다락방 2011-11-21 11:19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저는 마태우스님 생각을 하면 언제나 든든합니다. 제가 만약 제 신변에 어떤 안좋은 일이 있거나 누군가 제게 막대하는게 느껴질때는 마태우스님 생각을 할거에요. 마태우스님이라면 내 편이 되어주실거야, 하고 말이지요.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말입니다.
그런 남자를 제가 사랑한다고 하면 꼭! 반대해주세요, 마태우스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