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함께 읽기 책은 '캐런 윌슨-부터바우'의 [아기 퍼가기 시대] 입니다.

이 페이퍼를 쓰기 직전에야 제가 이 책을 아직 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어 부랴부랴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두부스낵과 함께.. 샤라라랑~
















3월은 '조앤 스콧'의 [젠더와 역사의 정치] 입니다.
















4월은  '수지 오바크'의 [몸에 갇힌 사람들] 입니다.

















5월은 '클레어 혼'의 [재생산 유토피아] 입니다.


 















음, 아마도 5월이 우리가 여성주의 책을 같이 읽는 마지막 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자, 함께 읽는 동안 열심히 읽어봅시다.

여러분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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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1-31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진짜요??? 😱😱😱😱😱

잠자냥 2025-01-31 15:09   좋아요 0 | URL
웅 이제 혼자 읽어!!🔥

다락방 2025-01-31 15:21   좋아요 0 | URL
네, 현재 계획은 그렇습니다!!

햇살과함께 2025-01-3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지금 구매해요. 두부스낵과 함께…

다락방 2025-01-31 15:57   좋아요 1 | URL
두부스낵이란 무엇인가.. ㅎㅎ

단발머리 2025-02-0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구매 전입니다. 고백 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부 스낵도 같이 올 거에요. 지난번에도 주문했는데 저는 맛도 못 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2-03 08:48   좋아요 1 | URL
저는 구매했습니다. 두부 스낵과 함께 제게 오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긴 설연휴동안 부지런히 달려서 48kg 의 몸무게를 만들겠다는 다짐은 축농증 이슈 때문에 무너졌다.

지난 주말 산에 다녀온 뒤부터 기침과 가래가 시작됐는데 병원가 사흘치 약을 받아 먹었지만 낫지 않았던 것. 연휴 시작과 동시에 동네 내과를 찾았는데 축농증이라고 했다. 흐음. 사실 그런가 싶긴 햇지만 어쨌든 기침과 가래가 고민인데 기침 가래약을 받았으니 걍 먹어보기로 했다. 

약국에서 약 처방을 받는데 항생제를 6일.. 이나 주어서, 저기요 선생님, 혹시라도 그걸 중간에 빼먹으면.. 건너뛰면 안되겠지요? 물었는데 약사 선생님은 왜 빼먹으려고 하시죠? 물으셨고 나는 작게, 술.. 마셔야 해요.. 라고 했다. 선생님은 술을 마셔도 약은 먹으라고 술 마시는 것도 몸에 나쁜데 약까지 안 먹으면 어떻게 나으려고 하냐, 약도 먹고 술도 마시라고 했다. ㅎㅎ 


그리고 토요일, 친구랑 일자산에 갔다.

날이 아주 좋았지만 가래가 심해서 걷는동안 목구멍에서 가릉가릉 했다. 힝 ㅠㅠ




목구멍에 가래가 끓어 걷기가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쩼든 무사히 올라갔다 내려와 친구랑 오리 로스구이를 먹고 2차로 닭똥집 튀김을 먹고 헤어졌다.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다른 친구와 일자산을 갔다. 이번엔 전날보다 더 추웠다. 날씨가 별로였다. 목 상태는 전날보다 나아서 중간중간 평지에서 뛰었다. 친구는 오르막인데도 아주 잘 뛰더라.





이 친구랑은 1차로 소고기를 4인분 먹고(맛없었다) 2차로 만두전골을 먹었다(네?) ㅋㅋㅋㅋ


하여간 48kg 만들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친구는 그렇다면 몇 kg 을 감량해야 하냐 내게 물었고, 음, 아마도 수십키로? 라고 나는 말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화요일날 남동생네가 오기로 했었는데 월요일에 여동생 혼자 하루 먼저 와서 우리는 함께 백화점을 쇼핑하고 요가센터에서 같이 요가도 했다. 저녁도 맛있게 같이 먹고 새벽 두시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었다.

다음날은 남동생 식구들과 여동생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집이 왁자지껄 시끄러웠는데, 다섯살 조카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진짜 너무 좋았다. 이 아이들이 같이 모여 노는걸 보는게 너무 좋아서 나는 기꺼이 명절 여행을 포기하고 있다.



아오, 저 작은 손 좀 봐.. 얘네들 같이 노는거 너무 예쁘다 진짜!!


신나게 같이 놀고 먹고나서는 잠들지 않은 몇 명만 거실에서 <중증외상센터>를 같이 보고, 그리고 거실에서 나랑 여동생이랑 타미가 함께 잤다. 자다보니 타미의 손이 내 얼굴에 얹어져있고 타미의 발은 내 종아리에 걸쳐져 있었는데, 이게 왜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자다 깨서 웃었다. 이불을 다시 제대로 덮어주고 자는데, 이런 순간조차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서 잠든 사람이 나에게 발을 얹었을 때 웃음이 날 확률은? 


후훗.


이번 설에 특별히 음식을 내가 준비한 건 없었는데, 그래도 저녁에는 아이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어 루꼴라부라타치즈 샐러드를 만들었다. 다섯살 조카는 맛없다고, 치즈는 노란 치즈만 맛있다고 했는데 타미랑 둘째조카는 너무 맛있다고 했다. 다 먹고나서 이모가 해준 샐러드 또 먹고 싶다고, 다음에도 오면 해달라고 했다.



다른 재료는 있었지만 방울토마토는 없었는데, 마침 일요일에 일자산 같이 간 친구가 집에 가면서 미리 준비해온 방울토마토 두 박스를 선물해주었다. 식구들과 같이 먹어요, 하고. 덕분에 샐러드에도 넣어 맛있게 먹었다. 스테비아 토마토였는데 망고맛과 청포도 맛이었다.


설 당일날엔 모두 모여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조카들에게 주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세뱃돈을 받지 못했지만 나가는 건 많이 나갔다. 부모님께도 내가 드리고 조카들에게도 내가 주고.. 나이들어 싱글이라는 건 세뱃돈이 나가기만 한다는 걸 뜻하는것 같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통장이 텅 비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식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집안 대청소를 하고 뛰러 나갔는데, 바람이 너무 찼고, 5km 만 달려보자, 하고 나갔지만 중간에 기침이 계속 나오는 바람에 3km 에서 멈췄다. 달리기를 멈춘 후에도 한참동안 발작적 기침이 나서 너무나 힘들었다. 어휴, 그래서 이번 연휴에 달리기는 그만두자, 생각했다. 48kg.. 안녕.. 기침 때문에 달성 못했어. 정말 기침 때문이었어...



연휴동안 책을 많이 읽자고 생각했지만, 사실 잠을 정말 많이 잤다.

기침약 먹으면 잠이 쏟아져서 잠을 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잤다. 자고 또 잤다. 일어나서 먹고 또 잤다. 그래서 48kg 를 만들 수가 없었다. 다 기침 때문이라니까?


책을 샀다.


















잭 리처 시리즈인 [처단]은 연휴때 읽을라고 급박하게 샀는데 읽지 못했다. 아아, 나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단발머리 님 서재에서 자주 보았던 책이지만 과연 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한참을 미루다가 한 번 사봤다. 어쩌면, 조금쯤은...


[폴란드인]은 존 쿳시의 신작이라 샀다. 오래전에 [추락]을 읽은 후로 존 쿳시의 책들을 계속 읽고 사고 있다.


[아픈 몸을 살다]..를 샀는데, 박스를 열고 책을 꺼내보니 익숙한 책의 모습... 집에 어쩌면 이 책이 있을 것 같아 겁나지만, 정말 있을까봐 애써 찾아보거나 뒤져보진 않았다.



















이번 연휴에 추리 미스테리 쪽 소설을 죄다 조져버리겠어! 라고 결심하고 [존재의 모든 것을]을 샀지만, 건드리지도 못했다.


남동생이 온 김에 그간 읽은 책 추려고 준비해놨는데 내 책장에 놓인 이제 막 새로 산 책 [한밤중의 마리오네트]를 보더니 누나, 이거 재미있겠다, 하고 내가 읽지도 않았는데 가져가버렸다. 그래, 먼저 읽고 줘... 


[십자군, 성전과 약탈의 역사]는 구매자평에도 썼지만, 국힘 전의원이 법원 폭도들을 향해 십자군이라 칭해서 뭐라고?? 하고 읽게 되었다. 나는 국사,세계사에 엄청 무지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어떤 이슈가 있을 때 어디 한 번, 하고 보는 편이다. 



하도 많이 잤더니 어제는 잠이 오질 않아서, 이번달 여성주의 책은 [제국주의와 남성성]도 다 읽었고, [외국어를 공부합니다 영어는 아니고요] 도 꺼내서 다 읽고 내친김에 [십자군, 성전과 약탈의 역사]도 다 읽고 잤다. 덕분에 잠을 못잤다. 뭐, 출근 하기 싫어서 못잔걸지도 모르겠다. ㅋㅋ


그렇게 나는 출근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익숙한 양재천,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양재천. 저기, 개를 산책하는 사람이 보인다.

일을 시작할 준비를 했고, 보쓰에게 보고할 자료를 출력해 두었고, 커피를 내렸고, 그리고 예의 책과 함께한 사진을 찍었다.




오늘 일하면 다시 주말이라는 건 좋지만 시간이 빨리 가는것 같아 너무나 아쉽다. 벌써 1월이 다 가버리다니.


2월에 해야할 일, 5월에 해야할 일, 그리고 가급적 5월 안에 해야 할 일을 계획했다. 이루고 싶은 일과 연습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정말로 48kg 가 되고 싶은건 아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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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1-3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침 한 번 하면 잘 안 낫는 사람으로서 그릉그릉 기침 너무 괴롭잖아요. 얼른 나으셔야 하는데ㅠㅠㅠ 일단은 너무 기침 날 때는 커피도... 목 안을 건조하게 한다 해서 저는 그 기간에 커피를 끊었습니다. 그 때는 일할 때라 기침하면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요. 너무 기침 나면 함 고려해 보세요. 그리고 따뜻한 물 많이요.

존 쿳시는 저는 <포>랑 <철의 시대>만 읽었는데 <추락>을 꼭 읽어봐야겠군요. 신작도 나왔네요.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연휴가 휘몰아쳐 끝나고 이제 남은 건, 마저 읽어야할 책들과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잭 리처. 책만 남았습니다^^

다락방 2025-01-31 10:35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닥터가 커피는 가급적 마시지 말라고 해서 연휴 동안에는 가급적 안마셨는데 회사에 나오니까 또 그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낫긴 해요. 그렇지만 여전합니다. 이놈의 기침 가래 너무 싫어요 ㅠㅠ 아 맞다, 닥터가 따뜻한 물도 많이 마시라고 했어요! 단발머리 님은 닥터십니까?

존 쿳시는 포랑 철의 시대를 저는 안읽었는데 단발머리 님과 이렇게 어긋나나요. 후훗. 죄다 읽어볼 작정입니다.
저도 잭 리처 읽을 생각에 너무 씐나요! 그리고 .. 네, 책이 남았습니다. 책들이요.. 흠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1-3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오빠랑 엘사 퍼즐 맞추기 할 때 아가 조카가 얼마나 행복할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상상이 너무 잘 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1-31 10:40   좋아요 1 | URL
다섯살 아가가 까르르까르르 웃을 때마다 진짜 얼마나 심장이 녹아들어가는지 모릅니다. 얘네들 보는 재미에 살아요. 이런게 바로 나이들어가는 것인가 봅니다. 흑흑 ㅠㅠ

비공개 2025-01-3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동안 감기 앓은 사람으로서 운동 조금 덜하시고 약 잘 챙겨드시기를 바래봅니다!
조카들 보며 웃는 다락방님을 생각하며 저도 웃어봅니다 ㅎㅎ 감기 다 나으시면 연락주세요!! 문자로…
(48kg 다락방님을 어찌 만나야할지 고민하다 마지막줄에 안심한 사람..)

다락방 2025-01-31 13:40   좋아요 1 | URL
제가 운동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연휴 좀 왔다고 할랬더니 이렇게 기침이.. 하아.. 그리고 약 먹기는 왜이렇게 지겨운가요? 항생제 다 먹었습니다. 만세!!
우리는 곧 보도록 합시다.
48kg 라뇨, 저는 싫습니다. 그렇게 힘없(어 보이)는 여자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하하하하.

blanca 2025-01-3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농증 당첨되셨군요. 항생제 끝까지 잘 드시고 나은 것도 꼭 확인하셔야 해요. 저 재작년에만 거의 네 번 걸렸었는데 작년부터 서서히 회복되더라고요. 코로나 후유증으로 걸리기 시작하더니 감기 끝에 항생제 매번 먹었어요. 아그들이 너무 예뻐요. 저는 아기 조카가 독감에 걸리고 동생은 노로 바이러스 걸려서 못 봤어요. --;; 빨리 나으세요.

다락방 2025-01-31 13:41   좋아요 0 | URL
기침 가래는 빨리 낫지 않네요. 병원에서도 닥터가 가래가 목에 붙어서 그게 아주 오래 가고 고질일거라고 했는데딱 그렇습니다. 항생제는 다 먹었어요. 오늘 아침 마지막 항생제를 다 먹고나서 만세!! 했습니다. 항생제 처방은 정말 싫어요. ㅠㅠ
아가도 아프고 동생도 아프고.. 명절인데 못보셨네요. 저는 볼 수 있어서 또 실컷 안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

잠자냥 2025-01-31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48kg 되려고 마음먹은 거 아니야?!🤣🤣
그래도 친구랑 찍은 사진은 그림자가 매우 길어서 48kg으로 보입니다!🤣🤣🤣
저도 싱글 아닌 싱글이라 조카들에게 세뱃돈 펑펑 나가고 내 자식들은 6마리나 되는데 ㅋㅋㅋㅋ 다들 집에서 쿨쿨 자느라 세뱃돈 회수 실패 ㅋㅋㅋㅋㅋ🤣🤣🤣

전 그래도 엄마가 세뱃돈 줬어요. 그걸로 책 사러 들어옴… ㅋㅋㅋㅋㅋ 폴란드인 땡투할게!! 새해에도 부자 되렴!

다락방 2025-01-31 13:43   좋아요 1 | URL
저거 그림자가 마침 길게 나오길래 ㅋㅋ 그래서 찍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그러면 저도 안찍었을 겁니다. ㅋㅋㅋㅋㅋㅋ하여간 명절에 돈 훅 나가서 미치겠어요. 명절이 일 년에 두번이라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아하하하하.
저희 엄빠는 세뱃돈도 안주십니다.. 저는 지갑에서 돈만 나가는 사람... 그나마 잠자냥 님의 땡투 덕에 먹고 삽니다. 흑흑 ㅠㅠ 제가 파산하지 않는건 잠자냥 님 덕입니다!! 잠자냥 님 만세만세!!

망고 2025-01-31 15:51   좋아요 1 | URL
그림자만 보면 2미터 48킬로그램으로 보입니다ㅋㅋㅋㅋ

다락방 2025-01-31 15:5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다리 길이만 1미터 50센티 다락방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2-0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축농증이요? ㅜㅜ 저희둘째도 축농증 진단 받고 한참 항생제 먹었는데.. 그와중에 등산까지?? 기침가래 좀 나아지셨나요?
아가조카 손 정말 귀여워요…❤️❤️❤️ 아이들 같이 노는 거 보면 참 흐뭇하죠. 자다가 나한테 발 올려도 기분좋은 누군가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ㅎㅎ
1월이 벌써 가버리다니… ㅠㅠㅠㅠ

다락방 2025-02-03 08:49   좋아요 1 | URL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4km 느리게 뛰엇습니다. (피에스 9분대 ㅋㅋㅋㅋㅋㅋㅋㅋ) 5킬로 채우고 싶었는데 힘들었어요. 어휴.. 속도에 대해서 저는 욕심을 버려야할 것 같아요. 실력이 안됩니다.. 히융
자다가 발 올리는 존재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행복합니다 ㅠㅠ
 

빅토리아 시대의 언론은 인도 항쟁에 관한 단편적인 기사와 과장된 현장 소문을 보도하여 대중들 사이에 집단적인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사실 기사와 소문은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 P133

하지만 매춘에 대한 국가의 통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1869년 전염병 예방법 폐지를 위한 두 개의 단체38)가 결성되고, 그후 10년간 이 법을 폐지하라는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구빈 운동을 하다가 우연히 매춘부의 실태에 접근하게 된 조세핀 버틀러 Josephine Butler(1828-1906)가 이 캠페인의 지도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버틀러는 매춘 여성들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했는데, 이러한 생각은 매매춘에 대한 최초의 페미니즘적 설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매춘 여성이 곧 매매춘이었던 등식에서 벗어나, 버틀러는 매매춘에 관련된 남성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여성이법적 차원뿐만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차원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매매춘이 생겨났으며, 책임과 애정이 없는 섹스를 추구하는 남성들의 부도덕성이야말로 매매춘을 낳게 한 본질적인 원인이라고 버틀러는 주장했다. - P174

피터 게이Peter Gay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포는 태곳적부터 있었지만, 그것이 대중 소설이나 의학 논집의 두드러진 주제로 부상한것은 19세기라고 주장한다. 특히 19세기 후반부에는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힘이 드러나면서 남성들에게는 더 큰 위협이 되었다는 것이다. 8) 이런 상황에서 여성에게 성욕과 <오르가슴>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은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성을 둘러싼 엄청난 권력을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르가슴>을 통해 여성은 남성의 성적 능력을 <객관적으로 비교, 평가하며 위계를 매길 수 있는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인> 지표들은 종종 <도덕>이라는 더욱 강력한 요소에 의해 그 권위가 전복되거나 굴절, 은폐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기존의 성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도덕>으로 <과학>을 제압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 P181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소년의 개별적 정체성과 집단적 삶 사이에는 늘 긴장이 존재한다. 상급생이 하급생을 마구 부려먹는 패깅fagging 제도에 대하여 톰은 끊임없이 반항한다. 그러면서도 결국그 불합리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톰이 선택하는 방법은 또다른 <팀 스피리트>의 창출이다. (8장) 다수의 저학년 패그들이 단합하여 자신들을 괴롭힌 상급생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를 꾀한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제국주의 시스템 속에서 식민지들이 선택하는 저항의 기제조차도 중심부에서 만들어낸 방식 자체를 차용(모방)할 수밖에 없는 제국주의의 본질 자체와 일맥상통한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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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 주어와 동사가 온전히 갖추어진 문장으로 말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그렇지 않으면 언어는 성장할 수 없어요"라고 말해 주었다.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장인데 조금 더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낑낑거리는 사람에게는 "쉽게 생각하세요. 쉬운 문장들이 바로바로 나올 수 있는 실력이 돼야 복잡한 문장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자주 이처럼 말했다.
"이 수업에서는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실수의 권리는 초보에게만 있습니다. 그 권리를 마음껏 누리세요. 언어에는 왕도가 없어요. 최대한 많이 실수하며 이야기하는 수밖에는."
실수의 권리를 누리라니, 왕초보의 설움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탈리아어에 있어서 3세 미만의 어린이인 것이다. 무엇을 해도 내 잘못이 아닌 시기, 조금 있으면 훅 지나갈, 미숙해도 좋은 잠깐의 시기. - P92

"인텐시브 수업을 들으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같은 내용이라도 너무 짧은 시간에 진도를 빼면 절대 오래 남지 않습니다. 그게 언어예요. 언어는 시간을 들여야만 실력이 늘어요. 내가 본 인텐시브 학생들이 대부분 같은 어려움을 겪었답니다. 빨리 배우면 빨리 잊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순간 머릿속에 불이 하나 켜지는 기분이었다. 랑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확한 지적이었다. 지난 학기 도무지내 이탈리아어가 늘지 않던 이유와 이제 조금씩 편해진이유가 그 안에 있었다. 시간이었다. 20대 내내 프랑스어를 체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나는 잘 알고 있다. 언어는 운전면허 시험처럼 속성 마스터가 가능한 공부가 아니다. 하나의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헤엄쳐가는 일과 같다. 지속해서 이탈리아어를 감각하고 생각하 - P99

며 지낸 지난여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느리고 지루하게 흐르던 그 시간 동안 조금씩 이탈리아어가 내 몸으로 흡수되었던 것이다. - P100

지난 2주간 들리지 않는 소리와 쉽게 나오지 않는 단어들에 절망하며 보냈는데,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니 사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말들을 잘 듣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렇게해서 될까?‘ 하며 깊은 한숨을 쉬던 볼로냐의 새벽들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아 한없이 작아지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칠흑 같은 시간에도 노력의 흔적들은 소복소복 쌓여 갔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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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1-3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료나 스파게피 먹고 싶네요. 저자분은 이탈리아어를 배우셨던가 봐요. 이탈리아어 멋지죠~~ 오페라의 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1-31 10:02   좋아요 1 | URL
이 분은 한국에서 살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미친듯이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프랑스 남자 만나 결혼해 일하면서 사는데 그러다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싶어지는 바람에 일주일(?) 볼료나 어학연수도 다녀오십니다. ㅎㅎ 그러면서 당연히 오페라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요. ㅋ ㅑ ~ 취미는 있어야 하는것 같습니다.
 

십자군전쟁은 교황의 주도하에 서유럽 기독교세력이 소아시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이슬람세계를 공격한 종교전쟁이므로 당연히 왕성한 교세와 강력한 교권을 전제로 했다. 말하자면 십자군전쟁을 위해서는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힘도 요구되었지만 ‘십자군‘ 전쟁을 발의하고 추진하는 데 요청되는 광범위한 ‘종교적‘ 열정과 강력한 ‘종교적‘ 지도력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 P8

교권(權)과 속권(俗權)의 보편적 제휴 또한 교권이 승리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중세 유럽의 한 특징은 게르만국가와 기독교의 제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중세를 ‘로마적 요소와 게르만족 요소의 결합‘으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중세사회는 기독교 성직자와 게르만족 전사(戰士)들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사회였다. 중세의 지배계급은 고위 성직자와 귀족이었다. - P13

그레고리우스 7세는 부르군드의 윌리엄백(伯)에게 "로마교회의 자유를 방어할 군사적 힘과 필요하다면 성베드로를 돕기 위해 군대를 이리로 보내주려는 그대의 사려와 열망을 요망합니다"라는 편지를 썼다(1074. 2). 교황은 같은 해 3월의 한 연설에서도 이교도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도제국을 구원할 것을 호소했다. 동년 12월에 독일황제 하인리히 4세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교황은 비잔틴제국의 기독교도들이 이교도들에 의해 전에 없이 매일 죽어가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기독교도와 성지를 구하기 위해 교황청이 적극적으로 행동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 P15

이슬람 측이 소아시아, 시칠리아, 이베리아반도 등 지중해세계를 장악하고 기독교세계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그레고리우스7세는 성지탈환을 위한 성전이야말로 기독교계의 숙원인 동.서교회 재통합을 구현할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 P16

교황 우르바누스 2세(1088~1099)가 십자군운동을 발의한데에는 그의 야망도 한 몫을 했다. 그레고리우스 7세의 이상을 계승했다고 자부한 우르바누스는 십자군운동을 통해 기독교세계에 대한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특히 교황청의 과세권을기독교세계 전체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교황은 그것을 로마교회와 결별한 그리스정교회를 로마가톨릭교회 아래로 통합하는 기회로 삼으려 했다. - P16

특히 기독교세계의 통일이라는 원대한 꿈은 교황의 십자군운동 발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지하듯이 로마제국의 동·서 로마제국으로의 분열(395), 서로마제국의 멸망(476), 동로마(비잔틴제국의 로마 계승권 주장 등과 함께 로마교회와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교회 사이의 기독교세계 주도권 다툼이 격렬해지고 거기에 필리오케논쟁과 성상(聖像)파괴문제 등 신학상의 문제까지 겹쳐 로마교회와 비잔티움교회는 1054년에 서로 상대 교회를 파문하고 갈라섰다. 그레고리우스 7세도 기독교세계의 재통합을 위해 노력했지만 우르바누스 또한 동·서교회를 다시 통합하여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하나의 기독교세계를 만들려 했다. - P17

결국 소아시아의 대부분을 장악한 셀주크 투르크족은 니케이를 수도로 하는 새로운 이슬람제국을 창건했다. 그리고 1092년에 투르크족 토후들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도 자신들의 영역에 편입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여타의 아바스조 영역 - P20

에도 진출했다. 그리하여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 셀주크 투르크족은 유럽 기독교도들의 성지순례와 동방무역을 방해하는가 하면 예루살렘의 기독교도들을박해했다. 투르크족의 진출은, 위에서 지적했듯이 유럽 기독교세계 전체를 움직이게 할 일을 벌여 자신의 웅지를 펴려던우르바누스 2세에게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 P21

교황의 설교에 감동한 청중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고 외쳤다. 많은 지원자들은 엄숙하고 자랑스럽게 서약하고 십자가를 자신들의 옷에 붙였다.11) 교황은 이어 프랑스 각지를 순회하면서 십자군전쟁의 당위성을 설파했고, 많은 열성적 설교자들도 곳곳을 누비면서 십자군으로 출전할 것을 독려했다. - P22

십자군전쟁에 나선 유럽인들은 물론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신의 부름에 응해야 하는 기독교도들이었다. - P23

십자군은 위로는 군주와 영주로부터 아래로는 농민과 걸식부랑자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었고, 남성은 물론 여성도 원정대에 참가했다. 광의로 볼 때 십자군전사(戰士)는 어깨나 가슴에 ‘십자장‘을 단 사람들을 의미했지만- 십자군은 싸우려나갈 때에는 십자장(十章)을 가슴에 붙이고 귀향길에는 두어깨 중간의 등에 십자장을 붙인다고 했는데 이는 「누가복음」14:27의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는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를 연상케 한다- 전사들만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 - P26

그처럼 가난과 압박의 일상에 시달려온 농민들은 실제의 예루살렘과 천상의 예루살렘을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피에르같은 인사들의 달콤한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 그들은 ‘꿀과 젖이 흐르는 팔레스타인‘이란 환상에 젖어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실상 풍요와는 먼 거리에 있었지만 민중십자군은 동방을 꿈의 땅으로, 나아가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신천지로 여겼던 것이다. 물론 민중십자군의 과도한 기대는 환멸로 끝났다. 제2회 십자군 이후 유럽 농촌사회에서 성지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 P29

제4회 이후의 십자군은 후기 십자군으로 불리는데, 후기 십자군은 몇 가지 점에서 전기 십자군과 달랐다. 즉, 예루살렘이 아닌 이집트가 십자군의 공격대상이 되었고, 이전에 비해 세속적, 경제적 동기가 더 강하게 작용했으며, 교황청이 보다 적극적으로 십자군을 주도했던 것이다.
사실 12세기말 이후 십자군정신은 크게 약화되었다. 십자군의 연이은 실패는 일부 유럽인들로 하여금 "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P43

몽골족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겨준 1260년의 나불루스전투는 마메루크조와 이슬람교에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그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마메루크조는 생존할 수 있었고, 이슬람교또한 계속하여 동지중해세계에서 번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가능성은 크지 않았지만 서유럽이 바라던 대로 몽골이 기독교세계로 개종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다. 기독교보다 이슬람교를 더 강력한 종교로 여긴 몽골족은 오히려 이슬람교도가 되었다. - P54

한편 루이 9세가 병사한 사실을 인지한 바이바르스는 계속 전진하여 트리폴리를 차지하고 1291년에는 동쪽으로 눈을 돌려 아크레를 점령했다. 그에 앞서 교황 그레고리 10세가 유럽 군주들에게 십자군에 참여하도록 호소했지만 그는 자신의 호소가 받아들여지기 전에 타계했다. 뒤이어 티레, 베이루트, 하이파, 아틀리트 등도 이슬람 측에 함락되었다. 그때 이슬람교도들의 보복으로 6만여 명의 기독교가 학살되었다고 한다. 그후에도 지역 차원의 소규모 원정군이 조직되기는 했지만 제8회 십자군을 끝으로 중세의 십자군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 P55

사실 십자군전쟁은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성공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사가들은 십자군전사들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다 무장마저 허술했던 것(오합지졸의 농민십자군이 더욱 심했다), 당시의 교통통신 수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먼 지역으로 원정한 것, 국왕과 대영주들의 참전해 지휘부가 대립한것, 중동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데다 십자군의 성격마저 변화한 것 등을 실패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 P57

은자(隱)피에르가 십자군을 모병한 모습은 십자군이 성공하지 못한 사정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십자군운동이 발의된 클레르몽 종교회의 후 십자군전사들을 모으는 데 적지 않게 이바지한 사람은 피에르였는데, 맨발에 헙수룩한 옷차림을 한그 노인은 프랑스와 독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무지한 농노들과 그들의 아들 등 기율 없는 군중을 모았다.
대부분 기아선상을 넘나들던 농민십자군들은 피에르가 우유와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해줄 것으로 믿었다. - P57

요컨대 로마교회나 십자군전사들은 중동에 관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갖지 못했고, 따라서 중동에 대해 심각한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11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은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세계였다. 기독교 또한 유럽의 폐쇄성에 이바지했다. - P62

유럽 기독교도들의 십자군운동은 성지회복이라는 당초의 목적 달성에 실패하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상업적 성격의 전쟁으로 변질되어 십자군이란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었지만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서히 작용했지만 그것의 영향은 결국 중세의 문을 닫고 근대의 문을 열게 했다. 사가들이 십자군운동을 정점에 도달한 중세 유럽의 소산물이었으되 중세를 붕괴의 길로 이끈 운동으로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 P65

십자군운동은 참전한 봉건귀족들로 하여금 장기간 영지를 떠나 있게 함으로써 왕권의 강화와 정치적 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우리는 국왕들이 십자군원정 전비(戰) 마련을 위해 직접 세금을 징수한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국왕들로 하여금 제한적이나마 중산층은 물론 귀족에게도 세금을 징수하는 선례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한 것은 십자군전쟁이었다. - P69

하지만 십자군운동으로 인해 군주들이 제한적이나마 귀족에게도 과세할 수 있게 된 것, 상업의 부활로 화폐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 봉건귀족의 경제적·정치적 지위가 동요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민족주의적 의식이 보다 강화된 것 등을 고려할 때 십자군운동이 중세 말의 정치적 발전에 끼친 영향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 P70

무엇보다도 십자군의 연이은 실패가 교황의 권위에 악영향을 끼쳤다. 교황이 신의 가호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십자군전사들은 줄곧 가혹한 시련과 죽음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십자군의 동기도 종교적인 것에서 세속적인 것으로 바뀌어 갔다. 또한 위에서 지적했지만 유럽인들은 점차 성지와 동방세계에 대한 환상에서도 깨어났다. 시야가 넓어진 일부 십자군전사들은 교회가 강조한것과 달리 아랍 무슬림들이 야만적이고 야수적인 사람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패가 거듭되면서 교황과 성직자들의 무능과 허상은 보다 명확히 드러난 반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보다 현실적으로 사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 P71

이슬람교도에 대한 십자군의 필요 이상의 만행은 그들의 기독교와 기독교세계에 대한 적대의식과 중오감을 크게 증대시켰다. - P73

둘째, 십자군은 투르크족 무슬림들로 하여금 결국 성전의식으로 무장하게 했고,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도에 대한 관용을 포기하게 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아랍 무슬림들은 지중해세계 도처에서 오랫동안 기독교세계와 싸웠지만 기독교도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이었다. 하지만 아랍과 투르크족 무슬림들은 십자군과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거기다 아랍과 투르크족 무슬림 모두 십자군의 지나친 만행에 분노했다. 십자군전쟁을 겪으면서 무슬림들은 기독교도에 대한 이전의 관용적 태도를 버렸다. 그리하여 십자군전쟁 이후 이슬람세계와 기독교세계는 이전보다 더 격렬하게 대립하게 되었고, 특히 동지중해세계는 두 세계의 첨예한 대립의 무대로 변했다. - P77

봉건적 질서와 기독교정신의 결합물로 평가받는 십자군운동이야말로 기독교정신이 낳은 것이었다. 십자군전사들이 꿀과 젖이 흐르는‘ 팔레스타인이란 환상에 자극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십자군은 본질적으로 신앙심이 불러온 원정이었다. 십자군 전체가 그러하지만 특히 농민십자군과 소년소녀십자군은 종교적 열정이 십자군운동의 추진력이었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세월과 더불어 십자군에도 물질주의의 때가 끼어갔지만 적어도 초기의 십자군에는 상업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십자군은 또한 기사도(道)의 소산물이기도 했다. 십자군의 지휘부를 구성한 기사들 및 성묘기사단과 병원기사단 기사들이 입증해주지만, 십자군에 참전한 기사들은 신앙심에서나 용맹성에 있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비잔티움을 약탈한 제4회 십자군전사 등 예외가 없지는 않았지만 십자군 기사들은 중세의 기사도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P90

200여 년에 걸친 십자군원정은, 유럽 기독교세계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지중해를 되찾게 했지만, 기독교세계와 이슬람세계의 대립을 심화시키고 증오심을 증대시켰다. 전술했듯이 원래 무슬림은 그들이 정복한 땅의 기독교도와 유대교도들에게 비교적 관용적이었다. 하지만 십자군전쟁 동안 무슬림의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은 최고조에 달했고, 이후 두 종교는 화해는 커녕 서로 상대의 존재마저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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