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주 가끔은 세상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만 빼고 다정한 사람들을 보노라면, 나 역시 파트너는 필요한건가 싶어지는거다.
그 파트너가 연인의 형태이든 친구의 형태이든, 그러니까 내 단짝 같은건 역시 필요한게 아닐까. 주변엔 연인과 단짝인 사람도 있지만 친구와 단짝인 사람도 있고, '선생님'과 단짝인 사람도 있다. 내 친구중 한명은 선생님과 서로 개인적인 일까지 진하게 공유하고 함께 여행도 다니는데, 그건 친구가 선생님을 '리스펙트'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 관계에 바탕이 되는것이 리스펙이든 우정이든 뭐든, 단짝은, 파트너는 필요한게 아닐까.
그러다가도 이내 고개를 젓는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면, 나 역시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줘야 단짝이, 파트너가 될 수 있을테니까. 과연 내가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나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연인으로도 결코 상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줄 수 없다고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그건 친구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자가 원하는 여자가 될 수 없고 상대를 외롭게 할것이다. 친구라고해도 별다를 바 없다. 나는 상대를 외롭게 할것이고 서운하게 할것이다. 그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내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잘하려고 하겠지만, 내가 그 노력을 항상 할 수 있는 사람이 못된다는 걸 내가 알고 있다. 툭, 툭,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튀어나올테고 어김없이 상대는 그 때마다 상처받고 서운해할것이다. 나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없다. 내가 상대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없으면서 상대가 내게 좋은 파트너가 되어주길 바라는건 이기적이다. 욕심이다. 가능하지 않다. 이런 나에게 외로움과 고독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겠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이 필연적인 고독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그냥 나와 함께 오래, 쭉 갈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사람들을 올해 '새로' 사귀었다.
무려, 대만에 사는 대만인을 친구로 사귀었다니까? 심지어 그 일은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났다.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고 어느순간 면접관이 되기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력서를 보게됐고, 언젠가부터 그 이력서가 너무나 화려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입사 지원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해외어학 연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력서들을 보면서, 와, 내가 지금 취업하려고 했다면 원서도 못내겠구나, 싶을만큼 젊은이들의 이력서는 화려했다. 나는 어학연수 경험도 없고 외국인 친구도 하나 없는데, 라는 생각을 곧잘 해왔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대만인 친구를 사귀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에기치 못하게 일어난 일이었다. 나와 말레이시아에 함께 간 친구는 숙소에서 자기를 택했고, 나는 바쿠테를 먹기를 택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바쿠테 파는 식당으로 향했고, 마침 혼자 온 다른 사람과 합석을 하게 됐고, 그리고 그 사람과 친구가 된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우연들이 작동했다. 하필 내 친구가 가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내가 혼자였다는 것, 하필 그 친구도 혼자였다는 것, 그런 우리가 합석했다는 것. 우리는 함께 바쿠테를 먹고 서로의 메신저에 친구로 추가했다.
그 후 몇 개월 뒤 대만에 갔을때, 그 친구는 나를 만나러 내가 머무는 호텔 로비로 와주었다. 선물을 가득 들고. 우리는 함께 차를 마셨고, 서로의 서툰 영어들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이 관계가 너무 좋아서 인생은 꿀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을 놓기로 선택할 때 그러나 어떤 사람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관계이고 삶인 것 같다.
아주 좋은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과 공통점이 많기란 쉽지 않다. 어떤 단 하나의 공통점이 우리를 묶어주기도 하고, 사실 그다지 공통점이 없어도 좋은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혹은 알려고 노력하면서 이어지는게 그 관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공통점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비슷한 나이대에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 쓰기를 좋아하며 술과 고기를 매우 좋아하고 운동하는 것도 좋아해서 좋은 콜레스테롤이 넘치게 많은 같은 성별의 여자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이 올해 내게 일어났다. 우리에겐 책도 글쓰기도 대화의 소재가 되지만 운동도 소재가 되고, 심지어 콜레스테롤 수치도 소재가 될 수 있다. 그 소재들을 가지고 대화하면서 고기와 술을 먹을 수도 있어. 나이가 들수록 관계가 축소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운명은 나를 그렇게 두지 않을 셈인 것 같다. 어떤 관계들이 새롭게 그리고 진하게 스며들기도 한다. 인생은 꿀잼이라고 여길 수 있을 만큼.
그러나 인생을 꿀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철저하게 나 자신이 한 일이다.
그 사람들을 새로이 인생에 들이기 위해 행동한 건 나다. 내가 움직이고 내가 말하고 내가 듣는다. 내가 무언가 얻고자 한다면 움직여야 함이 당연하지만, 그러나 내가 딱히 원한게 아니어도 움직이니 운좋게 얻어지기도 했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야 해.
2024년에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 인생에 달리기는 없을거라고 생각해왔다가 이제는 필수가 되어버렸다.
2024년 3월 31일, 런데이를 이용해 1분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그 후에 나는 대만에서, 몰타에서, 로마에서, 하노이에서 달렸다.
다른 도시에서 달리면서 인생은 꿀잼이라고 생각했고, 특히나 몰타에서 지중해를 옆에 두고 달릴 때는 인생 진짜 살아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이 할 줄 아는게 생기니 새로운 목표도 생긴다. 2025년에는 12개의 낯선 도시에서 달려보고 싶다. 12개는 너무 많은가? 목표를 얼마나 이룰 수 있을까? 나이를 먹으면 할 수 있는게 감소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게 늘어나기도 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나는 어떤 가능성 하나를 받아들게 되었다. 여기에서 거기까지 걸어서 갈 수도 있고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뛰어서 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 하나 더 추가.
그렇게 퇴근후 집까지 뛰어보기도 했고 며칠전에는 양재역에서 회사까지 뛰어오기도 했다. 뛰는 시간은 고작 5분이었지만, 내가 이걸 방법의 하나로 염두에 둘 수 있고 실행할 수도 있다는 데에서 큰 만족을 느꼈다. 어떤 것들을 잃고 어떤 것들을 얻는게 삶인 것 같다.
어제 동생들과 나이 한 살 추가된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음, 그래도 내가 할 수 없는 것만 생기는 건 아니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사람을 들이고 새로운 운동을 들이고. 새로운 것들을 들이는 것이 반드시 참이거나 선이랄 순 없겠지만, 그러나 나는 새로운 사람이나 새로운 어떤 것을 받아들일 때마다 늘어나는 가능성을 환영한다. 삶에 있어서 어떤 가능성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 너무 좋지 않은가.
지난주에도 책을 샀다.
선물받은 커피를 내려 사진을 더 찍어보았다.
빵은 파스키에 브리오슈 식빵인데 토스터에 구웠다.
[셰리]는 내가 안좋아할 책 같아서 안사려다가 그래도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구매했는데, 하아, 읽기 너무 힘들었다. 책장 너무 안넘어가고 책장 넘기면서 내내 이해가 안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프랑스 로맨스 .. 나랑 안맞아..
[블라인드 웨딩]은 [히든 픽쳐스]의 작가가 쓴 책인데, 히든 픽쳐스에 대해서는 평이 좋아 이미 사두었지만 안읽고 있었고, 같은 작가라니 그렇다면 사보자, 하고 블라인드 웨딩 사서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흐음, 히든 픽쳐스 먼저 읽을걸 그랬나, 이 책 읽다보니 히든 픽쳐스에 대한 기대가 떨어진다.
[제국주의와 남성성]은 1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이다.
2018년 말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온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났지만 꾸준히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는 분들도 계시다. 매달 말일이 될 즈음이면 완독 감상이 슉슉 올라오는데, 그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계속할 힘을 얻는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드립니다.
아, 어제는 인스타그램으로 쪽지도 받았다. 나의 덕후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로부터 답장을 받은 것을 계탔다고 표현하는 분이신데, 여성 연대에도 내가 힘이 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감사한 말씀이다. 새해 처음 받아 읽게된 쪽지가 나를 사모한다는 내용이라니, ㅠㅠ 행복이 ..
[성폭력과 힘의 악용]은 중고로 등록해두었다가 이번에 알림 떠서 샀는데, 사서 받아들고 나니, 흐음, 나 이거 어쩐지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나 애써 찾아보지는 않기로 한다.
[영원한 우정으로]는 친구의 선물.
오래전에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로 넬레 노이하우스를 만나적 있지만, 내게 그렇게 인상 깊은 작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책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른 책 더 찾아 읽지 않았던 걸 보면. 친구는 내가 매주 많은 책을 사는 걸 알고 있는데, 그래도 이 책은 없을거라 생각했다며(정말 그랬다!) 연말 선물로 주었다. 이거 얼른 읽고 싶다. 책장 겁나 빨리빨리 넘어갈 것 같아.
[포도 꿀꺽]은 일전에 샀다가 '페도' 라는 단어가 나와 내가 크게 실망하며 조카에게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창비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다음쇄부터 '페도'는 '패도'로 수정됐다는 거였다. 괜찮다면 '패도' 로 수정된 책을 보내주고 싶다고 해서 냉큼 받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 책이, 그림이 정말 환상적이거든!
이 얼굴에 씨 잔뜩 붙은 그림, 너무나 조카 보여주고 싶다고!!!!!
[포도 꿀꺽], [꼬마 의사와 사나운 덩치], [푸른 날개 어니스트] 모두 조카를 위한 선물이다. 이번 주말에 조카 생일이라 만나게되는데, 그 때 가져가야지.
2024년 한 해 정리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생각나는게 이렇게 새로 만난 사람과 달리기밖에 없다. 아, 듀오링고로 영어랑 스페인어도 공부 시작했고. 음, 사실 투자하는 시간이 몇 분 남짓이라 그걸 공부를 시작햇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네? 하여간 이게 전부다. 그런데, 그거 말고 또 뭐가 중요한가 싶기도 하네. 가끔 외로움의 공격을 당하면서 그러다가도 불쑥 설레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는 것, 그게 나의 삶이었고 2024년이 삶이었으며, 아마 2025년에도 그러할 것 같다.
바라건대, 2025년에는 책을 지금보다 덜 샀으면 좋겠다. 덜 사는 일? 그것도 내갸 해야할 일이다. 제발, 사둔 책들을 좀 읽고 처분하면서 살아가자. 사둔 책들 중에서 읽는 것도 내가 할 일이다. 다른 누가 해주지 않는다. 책 덜 사고 사둔 책들 중에서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