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일상 토크쇼 <책 10문 10답>
1) 당신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을 알려 주세요.
가장 먹어보고 싶던 것, 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이 책에서 수키는 뱀파이어와 사랑을 하고 점점 더 예뻐지고 점점 더 섹시해지고 점점 더 활기가 넘친다. 그래서, 나도 뱀파이어처럼 피를 빨아보고 싶다. 죽은피가 아니라 살아 있는 피, 살아 끓는 피.
사실은 정확히 말하자면, 뱀파이어와 섹스를 하고 싶달까.
2) 책 속에서 만난, 최고의 술친구가 되어줄 것 같은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뭐, 이건 말할것도 없이 필립 말로. 나는 그의 비딱한 말들과 유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병이고 맥주를 비울 수 있을 것 같다. 필립 말로라면 소주도 잘마시지 않을까? 와인이든 양주든 양주에 맥주를 풍덩 빠뜨린 폭탄주든 뭐든 나는 그와 단둘이 나란히 앉아 이 더러운 세상에 침을 뱉으며, 가끔인 성적인 농담을 하며 술을 마시고 싶다.
3) 읽는 동안 당신을 가장 울화통 터지게 했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이건 뭐 그냥 화난다. 막 화난다. 왜 화가 나는지 정확하게 이유를 말할 수 없는데 여튼 막 화난다.
브리오니. 그녀가 오해를 하던 그 순간부터 정말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것에 대해 그토록 확신을 가지는지, 그 확신이 다른 인간의 삶을 어떻게 망쳐버렸는지 나는 그 어린 브리오니의 어깨를 붙잡아 마구 흔들고 싶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글쎄 그게 아니라구요, 아니라니깐요!
4) 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표지는 책의 얼굴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표지/최악의 표지는 어떤 책이었는지 알려 주세요.
-딱히 표지 디자인 때문에 책을 고를때 무언가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얼굴이 대문짝하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모든 자서전들이 맘에 안든다. 워낙에 자서전을 읽지 않기는 하지만, 나는 그들의 얼굴을 들고 지하철안에 서(혹은 앉아) 있고 싶진 않다. 정말 그렇다.
5) 책에 등장하는 것들 중 가장 가지고 싶었던 물건은? (제 친구는 도라에몽이라더군요.)
이 책을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구름'. 이 구름을 가지면 나는 당신의 눈에 띄지 않는채로 당신의 벌거벗은 엉덩이를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물론 나는,
당신의 눈에 보이고 싶다.
보이는채로 매혹적이고 싶다.
6) 헌책방이나 도서관의 책에서 발견한, 전에 읽은 사람이 남긴 메모나 흔적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없다.
7) 좋아하는 책이 영화화되는 것은 기쁘면서도 섭섭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화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로 남겨둘 수 있었으면 하는 책이 있나요?
이 책은 절대,절대 영화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헐리우드에서 만들면 분명 결말을 헐리우드엔딩으로 바꿀테니까, 그 결말은 결코, 내 맘에 들지 않을테니까. 나는 이 책의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 한동안 먹먹했을지라도.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책장을 넘기면서 설레였던 기분을 영화로 만들면 절반정도도 전하지 못할 것이란 걸.
8) 10년이 지난 뒤 다시 보아도 반가운, 당신의 친구같은 책을 가르쳐 주세요.
『렉싱턴의 유령』의 「일곱번째 남자」가 나를 하루키의 세계로 풍덩 빠지게 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하루키-일곱번째 남자,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일곱번째 남자」에서는 어릴적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남자가 나온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그가 고향에 다시 방문했을 때 가슴속의 상처가 씻겨져 버림을 느끼게 된다. 그 장면을 읽는데 갑자기 가슴속이 뻥 뚫리면서 내 상처도 씻겨져 버리는 것 같았다. 아, 이런거구나, 이게 하루키구나. 나는 하루키에게 흠뻑 빠지게 되서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었고, 그 뒤로 하루키의 책들을 좋아하게 됐다. 하루키의 책들이 책장에 꽂혀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그저 위안이 된다. 음, 참 괜찮은 삶이야, 뭐 이런 생각도 사실 한다.
물론, 내가 가진 몇권 안되는 책들도 때때로 친구같음을 느끼곤 한다. 10년이 지난다고 변할리는 없다고 본다.
9) 나는 이 캐릭터에게 인생을 배웠다!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고 싶은 인물이 등장하는 책이 있었나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이렇게 말하는 홀든을 대체 미워할 수가 없다.
그 애가 죽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그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니? 그래도 좋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죽었다고 좋아하던 것까지 그만둘 수는 없는 거 아니야? 더군다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천 배나 조은 사람이라면 더욱 말이야.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나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인생을 배웠다, 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여튼 아아 이런거지, 했달까. 물론 오스카도 빼놓을 수 없다.
"전 평화주의자예요." 그리고 내 또래 아이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거라 생각하고 아이들 쪽으로 몸을 돌려 이렇게 말했다. "남의 불알을 터뜨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말로요."
나도 평화주의자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은 남의 불알을 터뜨려야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만큼 어른이다.
10) 여러 모로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 가서 살고픈, 혹은 별장을 짓고픈 당신의 낙원을 발견하신 적이 있나요?
"우리가......이러는 게 아니었는데......." 로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행복했잖아."
할과 로라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후에 센트럴파크에서 '우연히'재회하고 마치 운명이었다는 듯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 우연히 만나는 장소인 센트럴파크에 흠뻑 빠져서-아마두 중학교시절 혹은 고등학교시절-센트럴 파크에 가고 싶었다. 나도 센트럴파크에 가면 운명의 상대가 찾아올 줄 알았거든. 벤치에 예쁘게 앉아있으면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줄 거라 믿었다고.
그런데,
아무도 안 오더라 -_-
먼 훗날 혹은 가까운 어느 날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면, 약소국 그랜드펜윅에 가 살고 싶다. 불필요한 것은 없고 필요한 것은 있는 나라. 그곳에서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뉴욕도 침공하고 월스트리트도 공략했는데, 달나라도 정복했고 석유시장도 쟁탈했단다. 아주 훌륭한 약소국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에서 자라는 아이는 분명 근사한 어른이 될거야!
그리고 여기.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뚜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것들이 생각난다.
깊은 숲 속의 한적한 여관, 적극적으로 대쉬해오는 젊은 남자.
이런곳이 낙원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가 낙원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