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소년의 시체가 발견됐다.
이 소년은 누가봐도 영양결핍인듯 말랐다. 그리고 배는 봉합한 자국이 있다. 부검결과 간의 절반이 잘렸다는 걸 알게 됐고 봉합한 자국이 어설픈걸 봐서는 이 수술이 잘못돼 죽은걸로 보인다. 이에 이 소년의 신원을 파악하고 이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누구인지 형사들은 수사를 시작한다. 가까스로 이 소년이 중국인이며 얼마전에 입국했다는 걸 밝혀내 중국어를 하는 형사가 중국에 가 아들의 죽음을 알리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소년의 엄마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다 먹여살릴 수가 없어 일본의 부유한 집안에 입양을 보냈다는 거다. 거기가서 아들만이라도 잘 먹고 잘 살라고. 그러나 이 엄마의 말은 거짓이었음이 곧 드러난다. 그것은 입양을 빙자한 장기매매였고 거기에 따른 돈을 엄마가 받았다는 것.
이렇게 장기 이식 수술을 하다 죽게된 어린 소년들의 시체가 연달아 발견되면서 연쇄 살인이 되는데, 죽음에 이른 피해자는 모두 공통적으로 장기의 일부가 잘렸으며 수술 자국이 어설펐고 건강상태가 안좋았다. 또한 집이 너무나 가난해서 학교 급식비 낼 돈도 없을 지경이고 부모가 빚에 시달리거나 부모가 자식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다. 집에는 온건지 왜 안들어온건지도 모를 정도인 가족도 있었다. 이 아이들은 모두 너무나 가난한 집에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를 매매하기 위해 팔렸다. 간을 일부 잘라내도 살 수 있다고 장기매매 브로커들은 말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죽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됐는데, 중국에서는 사형수들이 장기를 매매하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 사형수가 죽으면 장기를 가져가고 그걸 필요한 사람에게 주며 그에 해당하는 돈은 유족에게 준다는 것. 이에 장기매매가 활성화 되어 있다고 한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 본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장기 이식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한다. 장기를 이식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증여자는 거의 없기 때문에. 게다가 장기매매가 불법인 경우 그것은 음지에서 일어나 돈이 필요해 장기 매매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돈을 가져다주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장기매매는 합법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가해자의 변이다. 너네 형사들은 나를 잡아서 사회에 크게 이바지한 줄 알겠지만, 이제 장기를 이식받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팔아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장기 알선 루트를 알아내서 우쭐하다면 알려주지. 당신이 한 일은 해결이 아니야. 그 반대지. 당신은 이제 혼돈을 만들 거야."
"무슨 뜻이지?"
"우리 브로커들이 잡히면 중간에서 장기를 알선할 사람이 없어. 알겠나? 공인이건 음지건 브로커라는 존재는 시장에 장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기여하고 있지. 지금까지 장기가 고가로 거래된 이유는 우리 브로커들이 중개해서 가격 폭락을 억제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우리가 사라지면 안정됐던 시장은 반드시 덤핑될 거야. 당연한 일이지.이 나라에는 장기를 팔고 싶은 가난한 사람이 산더미처럼 많으니까."
이누이카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앞으로 뒷돈으로 거래되는 장기 가격은 폭락하고 가난한 집은 간 하나 파는 정도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될 거야. 다 일본 형사의 책임이고, 전부 당신 책임이지." -P.386
실제로 브로커들이 잡히고 뉴스에 나면서 장기가 필요한 사람이 장기를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이로 인해 담당 형사는 자신이 이 범인들을 잡아 넣은 것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얼핏 보면 저 브로커의 말은 맞는 말로 보인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니, 그건 더 나빠진 걸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애초에 돈이 없다고 장기를 적출하게 되는 일이, 말이 되는 일일까?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이고 뭐든 팔 수 있다지만, 그래서 내 장기도 팔고자 나서는 일이, 이게 맞는 일이냐 그 말이다.
책속에서 가해자들은 그것이 모두 그들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즉, 장기를 팔겠다고 싸인한 자들의 선택. 다시 말하자면, 이렇게나 지독하게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다는 거다. 그러다 운 나쁘게 죽긴 했지만, 간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건, 아이 부모의 선택이었고 아이의 의지였다는 것. 이게 말이 되는걸까? 그 사람이 '선택'했기 때문에, 그러면 다 괜찮아지는 걸까? 그로 인해 일어난 죽음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하는걸까? 우리가 여기서 제시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선택이라는 말이 아니라, 선택이란 그렇다면 무엇일까, 가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이 선택이, 며칠동안 굶어야 하고 학교도 갈 수 없는 이 가난하고 가난한 자들의 '선택'이 선택일 수 있을까? 그걸 선택이라고 말해도 되는걸까?
"이 세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들은 전부 자신의 의사로 장기 일부를 적출해 매매하는 데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방금 당신은 본인이 동의하고, 수혜환자가 기뻐하고, 이식수술 건수가 많아지면 장기매매는 나쁘지 않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죠. 이 세 소년도 그것에 해당합니까?"
이 - P252
"그래서 가난한 아이들이 희생돼도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아까부터 듣고 있자니 계속 희생, 희생 노래를 부르는데 도대체 그들이 무슨 불평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이들이라고 해도 만족할 만한 대가를 받았어. 본인이 동의해서 수술대에 오른 자를 희생자라고 할 수 있나? 스스로의 의사로 신체 일부를 판 것에 불과해." - P396
애초에 돈이 있었다면 받지 않았을 선택지였다. 그 누가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장기를 팔지 말지 선택해'라는 선택지를 줄 수 있을까? 그 누가 트럼프 에게 '너 장기 팔면 돈줄게'를 말할 수 있을까? 그 누가 이재용에게 '님 간 절반만 주시면 돈 드릴게요' 할 수 있을까? 설사 그들이 그 선택지를 받아들었다해도 그걸 선택할 가능성, '이걸 해볼까' 라고 생각이라도 할 가능성이 있을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선택지가 아닌데, 그게 어떻게 당사자의 선택일 수 있을까. 선택이라는 건, 순댓국에 들깨가루를 넣을지 말지나 할 때 선택하는 거 아니야?
성매매에 몸담았던 여성은 자신이 앞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때 그걸 또다시 해결방법으로 선택할까봐 두렵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만약에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았는데 그 애기가 백혈병이나 무슨 병에 걸려서 막 되게 아파요. 그런데 내가 만약 업소 생활이나 이런 생활을 모르면 그런 쪽으로 생각도 하지 않을 테지만 내가 이미 이런 거를 알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을 때는 분명히 그쪽에서 돈을 벌려고 생각할 거란 말이죠. 그럼 '나, 참 내가 몰라도 될 거는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하고 그러는데. -레이디 크레딧, 김주, <다혜> -p.282
애당초 '너 장기를 팔면 돈을 줄 수 있어' 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 어린 아이들이, 부모의 보살핌도 제대로 못받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먹고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조차 없었던 그 아이들이, 거기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들었기 때문에 가능성의 하나가 되고, 가능성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선택을 하게 된다. 이 때의 선택은, 정말 선택일까?
물론 가난한 부모라고해서 이런 제안에 언제나 모두 예스를 말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당연히 아니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선택지가 주어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가능성의 하나로 염두에 둘 수 있다는 것. 이미 그걸 듣고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또 빚쟁이들이 찾아오고 오늘 또 굶어야하고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몰라 지옥같이 여겨진다면, 그렇다면 '그때 그거....' 하고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이게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가난이 있는 곳에서 악이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악은 가난이 있는 곳에 쉽게 그리고 자주 찾아온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쉬지 못하는 가난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매번 찾아오는 악을 막아낼 힘은 없다.
최근에 읽은 일본 미스테리 소설들에서는 일본의 빈곤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가난한 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도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아 실제 그 혜택을 받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소설이 자꾸 나오는만큼 가난한 자들을 향한 시선과 그리고 복지에 대해서 일본은 다른 식의 대응이 필요할 것 같다. 뭐, 내가 한국에 대해서는 또 얼마나 잘 안다고 일본 얘기를 이렇게 하나 싶지만, 그 가난의 피해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에게 너무 크기 때문에 정말 심각하게 느껴진단 말이다. 오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물이 났는지. 살아생전에도 가난에 허덕였는데 결국 그러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막 미치겠는거다. 그래놓고 그들에게 선택을 말하다니, 그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고 그 사람들을 그렇게 몰고간 사회에 일조한 사람들의 빠져나가기 위한 말이 아닌가. 걔네가 선택했잖아. 이러면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해. 그런데 선택은 그런게 아니다. 그래서는 안된다. 들깨가루를 넣을까 말까는 선택이 될 수 있지만 내 간을 팔까 말까는 선택이 될 수 없다. 그건 강제다. 돈 없는 나에게 주어진 강제다. 돈 없는 나에게 어디 좀 더 생명을 연장하겠냐고 묻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악은 가난에 질척거리고 가난은 그걸 방어할 힘이 없다.
다른 얘기지만, 역시 소설이 재미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같은 넘나 재미없고 잘 안읽히는 책 읽다가 소설 집어드니까 어휴 얼마나 책장이 팔랑팔랑 넘어가는지.
그런데 나에겐 아직 읽어야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과 세계끝의 버섯.. 이 남아있다. 어휴.. 다들 어마어마하네요.
화이팅!! (이러고 소설 읽으러 가기)
덧. 책탑 페이퍼는 내일 쓸게요! 오늘 연차였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에게는 수사권이 있습니다. 체포권도 있고요. 그런 우리가 어렵다든가 상대가 경제계 거물이라든가 그런 이유로 포기하면 세상을 떠난 아이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주어진 무기는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릴 겁니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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