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안사고 버티다가 애플워치를 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애플워치를 산 날, 호카 매장에 가서 발 사이즈를 측정하고 신발도 신어보고 구매했다. 내가 구매한 건 트레일러닝화. 달리기를 하다 보면 달리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고 달리기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트레일러닝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물론 트레일러닝의 존재를 그전에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일전에 [아무튼, 산]을 읽으면서 저자가 트레일 러닝도 한다는 걸 알았었는데, 산이 너무 좋으면 그렇게도 되는구나, 해서 트레일 러닝에 대해 뭐라고 썼었는지는 기억은 안난다. 최근에 트레일러닝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아무튼 산, 다시 읽어봐야겠네, 한다. 거기에서 뭐라고 했더라.
















나는 5킬로를 간신히 달려내는 사람이다. 간신히 40분 안에 들어오는 사람. 그러니 그보다 더 격한 운동인 트레일러닝은 아직 내가 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일테다. 그런데 나는 그걸 꼭 경험해보고 싶었다. 비포장도로를, 산을 달리는 일을 꼭 해보고 싶었던 거다. 해보기도 전부터 기분이 정말 끝내줄 것 같은거다. 나는 오르막길을 달릴 능력은 아직 안된다. 내리막길과 평지를 달리는 걸로 트레일러닝을 경험해보자! 달릴 때 미끄러우면 다칠 확률 있으니, 그래, 트레일러닝화를 사는거야! 그렇게 애플워치와 트레일러닝화를 갖췄던 거다. 그리고, 내가 달리기로 결심한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머리에 수건을 두건처럼 동여매고 일자산으로 향했다. 일자산까지 걷는건 제법 시간이 걸려 그 뒤에 달리려면 체력을 좀 아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일자산 입구에 내렸다. 워치와 핸드폰의 런데이앱을 작동시킨 후, 나는 일자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오르막이라 뛸 수가 없어, 걷는다. 걷기만 하는데도 오르막은 힘들다. 경사가 심한게 아닌데도 오르막은 힘들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이제는 내가 뛸 수 있을만한 곳이 나왔다. 나는 달렸다. 신나게 달렸다. 오르막이 나오면 다시 걷고 내리막이나 평지가 나오면 다시 뛰었다. 나는 그렇게 숲길을 달렸다.





와- 정말이지 기분이 끝내줬다.

내 몸은 내 통제를 벗어나 잇었다.

내리막길을 달리면 가속이 붙어 이어지는 평지까지 빠르게 뛰게 되고 내리막길을 달리면 가속이 붙어 이어지는 오르막에서도 몇 걸음쯤은 뜀박질로 오를 수도 있다. 사실 절반 이상은 걸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뛰는 내내 너무나 짜릿했다. 이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다 넘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찾아들었지만, 와 너무나 신나고 짜릿했다.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은 시원했고 비포장도로를 밟는 느낌은 끝내줬다. 온 몸의 근육이 모두 아우성치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아드레날린은 과다분비 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은 시원했고 숲의 향기는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와, 정말 끝내줘, 끝내준다!! 그러다가도 이내 달리는 나에게로 생각이 돌아온다.


세상에, 내가 산을 달리고 있어.

내가,

무려,

산을,

달리고 있어!!



내가 이럴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는데. 내가 산을 달릴거라고 나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산을 달리다니, 내가! 

산을 달리는 내내 모든게 좋았다. 오르막길에서 어쩔 수 없이 걸으면서 허벅지가 땡기는 걸 느꼈다. 그러다 뛰노라면 팔은 격하게 흔들렸다. 정말, 정말, 끝내주는 기분이다!!



아 너무 보람찬 하루였다.

뛰고 집까지 걸어왔는데 샤워한 후에도 몸에서 에너지가 솟는 것 같았다. 정말, 정말 너무 좋았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와 너무 좋아!! 나는 앞으로 종종 이 산을 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기분, 포기할 수 없어!! 이 느낌, 정말 짜릿해!! >.<



산을 달리고 와서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에너지가 남아돌아, 계란을 먹자, 계란을 먹자! 하고 계란샌드위치도 만들었다. 만세!!



엄마 아빠도 엄청 맛있게 드셨다. 껄껄. 난 .. 좀 짱이야.




책을 샀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알게된 작가 '클레어 데더러'의 책을 읽어보려고 검색했는데, 원래 읽고 싶었던 책은 검색되지 않고 [POSER] 란 에세이가 검색되는게 아닌가. 어? 표지.. 뭐야? 요가야? 존재도 몰랐던 책이어서 책 소개를 잠깐 본 뒤, 요가라니 좋아쒀! 하고 바로 주문 때려버렸다. 요즘 요가를 통 안하고 있긴한데 내가 요가를 버릴 사람은 아니어서 어디 한 번 읽어보자, 한 것. 책을 받고 한 번 후루룩 보니 글씨가 너무 작다. 아, 글씨 너무 작네 옛날책인가... 하다가 첫 페이지를 읽었다. 



중년에 요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누군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드는 일인 것 같다. 그속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나에 관한 정보가 잔뜩 적혀 있다. -p.11



우엇. 백프로 동의 전적으로 공감!! 나는 이 첫문장이 너무나 좋아서 그 뒤로는 읽지도 않고 바로 한 권을 더 주문해 여동생에게로 보냈다. 첫문장만 읽고 바로 선물해버린 것. 내가 처음 요가  수업 듣고, 아니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내 몸에 대해 새로운 걸 알게 됐단 말이지. 그런데 그건 내가 결코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내가 비틀기가 안된다는 것, 한 발로 서기가 안된다는 것, 팔이 짭다는 것, 어깨가 펴지지 않는다는 것 등등.. 내가 이것도 안된다고? 이것도? 하는 날들로 그 시간들을 보냈었는데, 아아, 클레어 데더러도 그랬구나!! 진짜 너무 좋았다. 아직 그 뒤는 안읽어서 어떤지 모르겠다.



요술복 저 분홍색 책은 존재를 알던 책이었는데 뭔가 너무 뻔해 보여서 관심도 안주고 있다가, 얼마전 ㅇㅅ 님 서재에서 인용문 보고 오오~ 하고 바로 구매했다. 껄껄. 



아무튼 어제 아침의 서투른 트레일러닝으로 인해 엉덩이에 근육통이 왔다. 껄껄.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4-09-30 1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박 다락방 ㅋㅋㅋㅋ 아니 진짜 산을 달린단 말이에요?!
이 인간 진짜 나중에는 뭘할지 궁금해지네....
제가 다른 인간 앞날이 궁금한 적이 거의 없는데 다부장은 좀 궁금해지네...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9-30 15:25   좋아요 1 | URL
사실 어설프고 서투른 달리기.. 지요. 오르막길은 걸었으니까요. 껄껄. 그렇게 트레일러닝 흉내만 낸건데도 너무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계속 달리다보면 언젠가는 좀 잘 달리게 되겠지요? 하여간 제 앞날은 매우 밝고 활기찰 것이며 그 앞날에는 잠자냥 님도 계속 계실 것입니다. 후훗.

독서괭 2024-09-3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다락방님 너무 멋져요!! 그런데 무릎걱정이.. 원래 산에서 걸어 내려가는 것도 무릎 조심해야 하는데 뛰는 건 더 조심해야 할 듯요.. 오래 뛰려면 무리하면 안 되니까요😣
이번주 책탑 소박하네요!! 워치를 산 여파이실까요 ㅎㅎ

다락방 2024-09-30 15:24   좋아요 1 | URL
아직 무릎밴드는 착용 안하는데.. 해야할까요? 제가 이번에 호카 매장가서 발 스캔해보니 제가.. 평발이더라고요. 평발인데 달리느라 애쓰는 다락방 입니다. 흑흑 ㅠㅠ

네 당분간 돈 아껴야 합니다. 워치 할부는 3개월... (먼 산)

건수하 2024-09-30 15:5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내리막길 뛰는 거 무릎에 좀 무리가 될지도... ^^ 저도 좀 걱정했어요

잠자냥 2024-09-30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오늘 오전에 조용해서 이 인간 오늘부터 연차인가 했다능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9-30 15:23   좋아요 1 | URL
오늘 말일이라 제가 회사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외근도 다녀오고 그랬다능. 저.. 직장인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4-09-3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하산할 때 내리막 흙길에서는 뛰는데 기분 좋아요! 발이 혼자 막 갑니다 ㅎ 너무 많이 뛰면 무릎이 아프지만. 돌부리 나무뿌리 조심해야 합니다.

다락방 2024-09-30 23:07   좋아요 1 | URL
맞아요 햇살과함께 님! 발이 저 혼자 막 갑니다. 제 몸이 통제가 안돼요. 그런데 그게 짜릿합니다. 또 하고 싶은 운동이 있다는 건 너무 좋은 일인것 같아요. 후훗. 햇살과함께 님, 파이팅!!

단발머리 2024-10-0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기보다 계란 샌드위치 부러운 나는...... 누구인가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저도 아래 페이퍼 해진이형 좋아하는데, 뭐랄까요. 사람의 주는 편안함이라는 건 참 특별한 거 같아요. 저는 임영웅이랑 유해진씨가 논두렁길 달리는 거 봤는데 참 좋더라구요. 참고로 저는 달리는 거 별로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는 거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걸 발견한다는 거 그거 참 좋은거 같아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만 찾을 수 있잖아요.
앞으로 다락방님이 어느 도시, 어느 나라의 멋진 길을 달리게 될지 기대됩니다.

다락방 2024-10-03 00:20   좋아요 1 | URL
오오 임영웅이랑 유해진이 같이 달린다고요? 최근에 새로 시작한 삼시세끼 에서 그 장면이 나오는가 보죠? 오오, 내일 술마시면서는 그거 다시 보기 해야겠어요. 껄껄. 요즘은 남들 달리는 거 보는게 제일 재미있습니다. ㅋㅋ
천천히 오래 달리면서 달리기 실력 늘려서 정말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뛰도록 하겠습니다. 필! 승!
 

어제 블랑카 님이 알려주신 링크의 영상을 보았다. 




2편까지 있길래 다 보았는데, 그러고보면 진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야.. 유튜브 안보는 내가 이걸 찾아서 보고 있다니, 세상에. 이런거 있다는 거 처음 알고 유해진이라서 봤네. 아니, 그것도 그렇지, 내가 유해진에 관심 생겨서 그의 영상을 볼 줄 누가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는가.. 하여간 달리기 생활을 시작한 후에 내 인생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로 인해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e 는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며 나에게 달리기를 알게 해주어 고맙다고 선물도 보내줬더랬다. 그리고 요즘 e와 나는 함께 하는 시간동안에는 90프로 이상 달리기 얘기를 한다. 그리고 달리기 관련 영상을 본 얘기를 하고. 아,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다른건데,

영상속에서 유해진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유해진이 나랑 참 비슷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신조라고 해야 하나 인생에 대한 생각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나랑 비슷한 것 같은 거다. 나중에 병들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지니 지금 하라고, 지금 시작하라고 하면서 just do it 이 정말 좋은 말이라고 그는 말하는데, 아침에 달리고 등산도 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그는 자신의 몸으로 경험하는 걸 즐기는 것 같은거다. 여행가서도 여기저기 뭔가 관광하러 다니는게 아니라 한 도시 안에 머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루틴을 반복하는 걸 그는 즐겨한다고 했다. 작품이 끝나면 훌쩍 스위스로 가서 그곳에서 달리고 스키를 타고 수영을 하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얼마간 지내다 온다고. 그런 한편, 그러나 자신이 살고 싶은 곳은 한국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나고 자라 여기의 생활이 몸에 다 익었는데 다른데에서 어떻게 사냐, 다른 데에 다녀오는 삶을 살고싶다고 하는거다. 완전 나랑 똑같음.. 아, 그런데 내가 정말 똑같다고 느끼는 건, 그는 자신이 언제나 한템포 늦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에 있었다.

그는 딱히 비혼주의도 아니고 결혼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결혼을 하기 싫어 안한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보통의 사람들 사이클보다 한템포씩 늦어지고 있고 그러다보니 놓치게 됐다는 거다. 데뷔를 하는 것도 좀 먹고살만해진 것도 다 남들보다 한템포 늦었다는 거, 뭐든 느렸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그렇다고 지금의 삶을 싫어하는게 아니라 그는 충분히 지금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몇 번이나 글에서 언급했지만, 나는 남들보다 느렸다. 나는 그걸 늦되다고 포현했더랬다. 나는 첫 연애도 보통 또래보다 늦었고 그래서 첫 이별도 늦었다. 첫 이별 후에 너무 아파서 '와 다른 사람들은 이걸 다 어떻게 견뎌낸거지?'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니, 그런데 고등학교때도 공일오비의 <떠나간 후에> 노래 들으면서 그 처절함에 공감했는데, 이별도 안해보고 그거 어케 공감했지???????????????? 첫 여행도 늦었고 첫 요가도 늦었고 첫 달리기도 늦었고.. 그래서 깨닫는 것도 늦었다. 페미니즘의 필요성도 늦게 알았고 그래서 공부도 늦었다. 나는 나보다 어린데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로부터도 많이 배웠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 걸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빨리 깨달을까 하는 생각을 수차례 했다. 나이가 많다고 더 똑똑한 건 정말 아니다. 나이가 많다고 더 지혜로운 것도 분명 아니고. 나는 많은 것들을 나보다 젊은 친구들로부터 알고 배우고 깨닫곤 했다. 나같은 늦된 사람은 그래서 계속 읽고 보고 해야되는 것 같다. 하여간 참 늦된 사람이다, 내가. 

나는 이런 나의 삶의 방식을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똑같이 요구하게 되기도 한다. 
일전에 남동생네 집에 가면서 이탈리아 갔을 때 사온 피스타치오 크림을 가져갔더랬다. 남동생도 맛보고 맛있다고 했는데, 내가 그걸 치아바타에 발라 네살 조카에게 주자 네살 조카는 '난 이거 싫어해' 라고 하는거다. 

"조카야, 조카 이거 안먹어봤잖아. 그치?"
"응. 안먹어."
"그러면 일단 한 번만 먹어보자. 먹어보고 맛이 없으면, 그러면 먹지말자. 어때?"
"응"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는 조심스레 내가 피스타치오크림 발라준 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그러더니 나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괜찮아.먹을게."

하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귀요미(뜬금 조카자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뿌듯하게 나는 부엌으로 갔는데, 잠시후에 조카가 큰 소리로 이러는거다.

"고모! 또 발라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네 살 조카는 확실히 나랑 다른 성격의 사람인 것 같기는 하다. 아직 어린데도 '그건 위험하니까 하면 안돼'라고 하면 정말 안한다! 그래서 아, 이 아이는 굳이 경험하지 않고도 피해갈 거 피해갈 수 있겠구나,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싶은거다. 나와는 달리.....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골드문트는 세상 돌아다니고 사람 여럿 만나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면서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가 깨닫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자신이 어릴 때 떠나왔던 수도원에 다시 방문했을 때, 거기에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던 나르치스가 역시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때 그 책을 읽고 내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나르치스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생각했었는데, 지금 곰곰 되짚어보면 나는 골드문트 쪽이었던 것 같다. 어느게 더 좋다고 할 순 없겠지만, 굳이 경험으로 깨닫는 나는, 늦되다. 경험으로 깨닫는 사람이 반드시 늦된 것은 아닐 것이다. 더 빠른 경험과 더 빠른 깨달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경우엔, 늦었고 느렸다. 그래서 유해진의 '한 템포씩 늦었다'는 말은, 내게로 와 닿았다. 그래, 나도 늦었지. 






언젠가부터 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내 자신에게 수차레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는가' 를 묻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거야, 라는 답을 얻고 행동에 옮기려고 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때 그런 결정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 때 이런 선택을 해야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어떤 지점들에 대해 후회가 남는다.


아쉬움도 남는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그리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이를테면 나는 뉴욕이 너무 좋아서 세 번이나 갔었고, 당연히 그때마다 센트럴 파크를 갔었다. 그런데 한 번도 센트럴 파크에서 달려본 적이 없어. 달리기를 시작한지 6개월차인 지금, 아아, 센트럴파크를 세 번 이나 갔는데 한 번도 달려보지 않았다니, 아아 너무나 아쉽다.. 하게된 것. 그러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다시 가자. 다시 가면 되잖아. 뛰러 가자. 이번에 가면 센트럴파크를 뛰자!



어휴 갈 데도 많아가지고 돈도 계속 벌어야 되고 건강해야 돼... 



나보다 빨리 먼저 알고 먼저 깨닫는 사람들에 대해 언제나 부럽고 존경의 마음이 든다. 그럴때면 왜이리 나는 늦된가..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뭐, 어쩌겠나. 이게 나인걸. 하여간 열심히 돈벌고 건강하게 살도록 해야겠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4-09-2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좋죠, 좋죠? 막 강요. ㅋㅋ 너무 좋더라고요. 유해진의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몸을 움직이는 일에 대한 생각이 정말 좋아서 친구하고 싶다 ㅋㅋ 또 나름 헛된 망상도 해보고..아, 그리고 다락방님 덕분에 저 어제 애가 학원에 뭐 다시 가져다 달라 했는데 귀찮다 하다 운동화 신고 반바지 입고 문제집 안고 뛰었습니다. ㅋㅋ 언덕도 막 뛰어올라가서 덕분에 꿀잠 잤네요. 다락방님 달리기 떠올리면서...그리고 늦는다는 거, 전 그 어감이 왜 이리 좋죠? 막 빠르고 선두에 서고 그런 거 인생 길게 볼 때 별로 안 좋은 거 같아요. 종착점은 다 같지 않나요. 그렇다면 천천히 주변도 좀 둘러보고 즐기면서 한 템포씩 늦는 게 더 좋을 것도 같아요. 오늘도 날씨가 환상입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다락방 2024-09-27 09:37   좋아요 1 | URL
네 좋았어요 블랑카 님!
자기만의 루틴을 짜놓고 움직이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저는 무엇보다 달리기 하는 사람이면서 술도 좋아한다는 게 특히 좋았어요. 제가 그런 사람이라서.. 다들 달리기하면서 술을 끊었다 줄인다 이러는데, 무슨말인지 너무 잘 알지만, 그런데 유해진은 술 먹고 다음날 달리는 사람이라서 너무 좋았어요. 저도 진짜 친구하고 싶더라고요. 매력적인 유해진 입니다. 뜬금없게도 김혜수가 틀림이 없는 선택을 했었구나, 라는 생각도 했고요. 하하.

달리기 시작했다는 e 양도 고양이 사러 뛰어갔다 왔대요. 하하하하하. 천천히 뛰면서 삽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24-09-27 09:39   좋아요 0 | URL
헉, 김혜수 생각 완전 같아요. 저도 완전히 똑같은 생각 했어요. 저라도 반하겠던데요? 정말 알겠다, 이런 남자였구나..했어요.

다락방 2024-09-27 09:4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김혜수가 아무나 사귈 리 없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였어도 반했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9-27 10:35   좋아요 0 | URL
덕분에 저도 좋았어요!
감사해요^^

다락방 2024-09-27 11:04   좋아요 0 | URL
오 자목련 님도 즐겁게 보셨습니까!! 좋네요!!

독서괭 2024-09-27 13:15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e양이 고양이 사러 뛰어갔다고요..? 😳

다락방 2024-09-27 13:48   좋아요 0 | URL
하아- 증맬루 제가 싫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양이 간식 사러 뛰어갔다 왔다고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9-27 13:55   좋아요 1 | URL
사료나 간식일 거라 생각은 했는데 혹시 진짜 고양이 분양받게 되어 너무 좋아서 뛰어갔을 수도 있으니.. 여쭤봤습니다 ㅋㅋㅋ

망고 2024-09-2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나간 후에˝ 무슨 노랜지 몰라서 듣고 왔어요^^근데 처절함에 공감 못 하고 끝까지 들었습니다ㅋㅋㅋㅋ다락방님 고딩때 감수성이 풍부하셨나봐요 상상하니 귀여워요😊

다락방 2024-10-03 00:21   좋아요 0 | URL
ㅋ ㅑ ~
그 감성.. 공감 못하시나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아픈 가슴 감추며 살아가지만~ 가끔식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떨리는 마음~ 그대이길 바라며 수화길 들지~~ ㅋ ㅑ ~
아니, 눈물이 안납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나의 인스타 피드에는 달리기 관련 영상이 많이 올라온다. 음.. 진짜 사람 일, 한 치 앞도 모른다고. 내 인스타 피드에 달리기가 뜰거라고 작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아무튼 그렇게 나는 모델 '홍태준'의 존재를 알게 된다. 수많은 달리기 영상들 속에서 그는 유독 미모가 돋보였는데, 으응? 뭐지? 했더니 모델 홍태준이 아식스로부터 협찬을 받고 지큐의 지원을 받아 호주의 골드코스트 하프마라톤에 참여한다는 것. 중간중간 지큐가 주는 미션이 있는데 그것도 해내야 한다는 거다. 오오, 좋아쒀, 한 번 볼까? 그렇게 나는 어제 점심때 혼자 밥을 먹으면서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호주에 도착하고 미션을 완수하고 사이사이 자신이 즐기는 서핑도 하고 자신이 달릴 때 어떤 옷과 신발을 입을지도 소개를 한다. 아마,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거나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게 된다면 세상 지루하다고 볼 일 없을 것 같다. 달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자극적인 영상은 아니지만, 그런데 달리기 영상 보는 사람들은 그저 달리기가 좋아서 보는거니까.. 하여간 그래서 이 영상을 다 보았는데,

중간에 자신이 입는 옷과 신발 소개하면서 달리기 할 때 두건을 쓰는게 크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하는거다. 아직 달리기 꼬꼬마인 나는 정말이지 모르는게 너무나 많아, 오오, 두건이 도움이 된다고? 흐음..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면서 보는데, 그는 두건을 어떻게 쓰는지 직접 보여준다. 일단 두건 쓰기 전에 두건을 들고 이케 둘러가지고 이렇게 쓴다, 하는 것. 내가 그거 보고 크게 감탄해서 캡쳐를 했다. 페이퍼 쓸라고. 왜냐하면, 두건 쓰기 전이나 두건 쓰고난 후에도 , 아니 두건을 써서 머리를 다 가린게 어쩌면 더 미모가 빛나버리는거다. 이렇게 두건을 쓰는데 이런 미모가 나온다고?

요랬는데



요래됐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두건 사서 써봐야지. 두건 써도 내 미모 그대로인지, 나도 나 자신을 통해 확인해봐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상속에서 그는 해변가도 달리고 마라톤 경기하면서도 달리고 까페왕복도 달린다. 서핑도 좋아한다고 하면서 서핑도 막 해. 진짜 찬란하다 찬란해.. 그런한편 호주의 경치 너무나 아름다운 것, 게다가 길은 달리기 좋게 너무나 넓은 것, 나도 꼭 저기를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홍태준이 참가한 건 하프 코스였고 나는 아직 5킬로도 두려운 꼬꼬마.. 내년에는 나도 골드코스트 마라톤에 도전해볼까? 일년 뒤면.. 하프 도전이 가능해질까?


인스타 피드에 올라오는 수많은 달리기 영상들을 보노라면 자신이 '런린이'라 달린지 얼마 안됐다고 하면서 세상에 10킬로 이상씩을 엄청 빠른 페이스로 막 뛰더라. 나는 6개월차인데 5킬로도 잘 안되는데, 어떻게 여러분은 두 달만에 10킬로 이상을 빠르게 뛰시나염.. 쩝.. 아무튼 5키로를 목표로 계속 연습하다보면 언젠가 7키로가 되고 10키로가 되고 하프가 될까?


런데이 앱을 통해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마라톤 같은 건 생각이 없었는데, 왜 나는 골드코스트 하프마라톤을 생각해보게 되었나. 하여간 열심히 달려볼 일이다.


어제도 30분을 달렸다. 평소보다 조금 페이스가 빨랐는데, 어, 이런식이면 30분가기 힘들텐데, 하고 좀 느리게 조절하려고 했지만, 느리게 조절하는 법을 알지 못해... 이게 달리다 힘들어서 저절로 느려지는 건 되는데 왜 내가 좀 천천히 달리자, 하고 변경하려고 하면 안되는걸까. 아니나다를까 나중에 호흡 엉망진창 되고 허벅지 힘 풀려서 겨우겨우 30분을 달려냈다. 휴.. 그래봤자 내 페이스는 7분대여.. 여러분 어떻게 5분대를 달리나요? 어떻게 3분대로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나요? 이 세상엔 어메이징한 사람이 넘나 많아버려..


저 위의 홍태준 영상을 보기 전에는 유튭에 <유해진 달리기>를 넣고 검색해보았다. 아니, 유해진이 그렇게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게 아닌가. 예상외로 달리기 영상은 많이 없었지만, 그가 <스페인하숙>프로그램에서 매일 아침 달렸다는 사실을 최근에 유튭 영상을 보고서야 알게됐다. 스페인 하숙이라면 내가 가끔 보았던 프로그램인데, 나는 그가 거기에서 달렸었는지를 전혀 모르겠네? 사람이 아는만큼 보이고 관심이 잇으면 보인다고, 그 때는 그가 달리는 줄 몰랐다가 이제는 그가 30년간 매일 달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그의 달리기 영상 보고 있으니 유해진이 좋아지더라. 음.. 내가 일전에 그 뭣이냐, 젊고 잘생긴 한 남배우와 함께 나온 영화를 보고서도 유해진이 더 좋다고 했더랬지. 어쩌면 나.. 유해진을 좀 좋아하는걸까?



인스타 피드를 통해 김새롬도 달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와, 자기가 좋아하는 코스가 있고 달리기 시작하니 김새롬도 7킬로 이상을 달려버려.. 대단하다.. 그래, 나도 7킬로 도전해보자! 지금은 5킬로도 힘들고 30분도 힘들지만, 좀 천천히 오래 달리는 걸 연습해서 7킬로 정도는 그냥 가보자. 유해진도 매일 7킬로 달린다고 하고 김새롬도 7킬로 달려버리니, 다락방도 7킬로 달려버리는거야!! 천천히 오래달리기, 명심할 것!! 그래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제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제 나를 상대한 직원은 남자사람이었는데 자신도 매일 운동한다면서 또 나랑 수다떨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중에 나 갈 때 "관절 꼭 조심하세요, 무릎보호대 꼭 하시고요!" 해서 네!!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왜 이런거 좋아할까... 

12개월 할부로 사고 싶었지만 무이자 할부는 3개월이라고 해서 3개월로 샀다.

사실.. 이거 사러 가기 전에 향수.. 질러놓은게 있었는데, 워치도 사고 호카에서 신발도 사는 바람에, 아이코 내가 오늘 쓴 돈이 얼마냐, 하면서 자기 전에 헐레벌떡 향수 주문한 걸 취소했다. 이것도 직원이 나를 보니 이게 어울리겠다고 추천해준 지중해 향수였는데... 지중해라는 단어에 내가 마음을 빼앗겼는데... 그렇지만 과소비 금지! 향수야, 나중에 만나.. 워치 할부 다 갚으면 .. 그때 다시... (운다 ㅠㅠ)


최근에 <무쇠소녀단>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처음으로 5킬로 달려본다면서 6분대로 일정하게 달렸던 유이를 보며 감탄했더랬다. 그 뒤로는 '나 달릴 때 내가 유이다, 생각하며 달려야지!' 했는데, 요즘에는 달릴 때 머릿속으로 유이도 떠올렸다가 유해진도 떠올렸다가 어제는 홍태준 달리는 거 생각했다. 왜, 임신했을 때 예쁜 아가 사진 보면 예쁜 아가 낳는다는 말이 있잖나. 그것처럼 머릿속에 잘 달리는 사람들 떠올리면 나도 그렇게 될거같아서 떠올리면서 달린다. 유이가 이렇게 일정하게 달렸지, 하면서. 그래봤자 거울보면 거기엔 다락방이 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두건 사야겠구먼. 껄껄. 
두건도 사고 골드코스트도 내년 목표로 해보자. ㅋㅋㅋㅋ 과연 ㅋㅋㅋㅋㅋ 이렇게나 달리기 실력이 더디게 발전하는데..아니 과연 발전하고 있기는 한가... 골드코스트 하프를 목표로 살아보자. 내년에 안되면 후년에 하지 뭐. 근데 골드코스트는 또 어떻게 가는거냥. 어휴 여기저기 다녀야돼서 바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만 총총. 내년이나 후년에 .. 안되면 그 후라도........
골드코스트에서 찾아뵙겠습니다!! 빨빨룽~





댓글(5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다락방 2024-09-30 14:07   좋아요 0 | URL
어쩌다보니.. 🙄

blanca 2024-10-25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다락방님 달리기 글만 추려 읽고 있어요. 교본처럼...달리기 관련 추천해주신 책들도 다 상호대차 신청..나중에 다락방님 달리기 관련 책 한 권 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락방 2024-10-28 09:31   좋아요 0 | URL
저 달리기 책들 중에는 제가 안읽은 책들도 있어서 저도 계속 읽어보려고 합니다.
달리기 글 즐겁에 읽어주시는 분들 덕에 글 쓰는 맛이 납니다. 하하.
블랑카 님, 달리기 시작하신건가요? 아무튼 화이팅 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칵테일, 러브, 좀비 (리커버)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 이 장르는 뭐지? 판타지? 호러?
그동안 읽었던 한국 문학과는 좀 다른데?
좀비와 환생, 유령등의 판타지적인 요소를 섞어서 날카롭게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하긴, 좀비도 환생도 유령도 모두 인간의 이야기이긴 하지.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특히 더 인상적인데, 내 아들도 잠재적 범죄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레어 맥킨토시'의 소설 [나는 너를 본다]에는 자매가 등장한다.

언니는 동생이 당한 강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동생이 그 일로 아플까봐, 트라우마에 시달릴까봐, 자신이 더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동생이 강간범에 대해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걸 알고 혼란스러워한다. 왜, 그 놈을 잡아야지, 그 놈을 잡아 족쳐야지, 어째서 너는 그 일이 있는데도 마치 없는것처럼 살아가려는거야. 이 일로 사이좋은 자매는 수시로 긴장감을 형성하는데, 시간이 흐른 후에 비로소 언니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범죄자를 쫓으려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에 더 기쁜 일들을 떠올리며 그 일을 잊고 싶어한다는 것을.


소설의 이 부분에서 내가 크게 놀랐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강간 생존자에 대해 책 속 언니와 같은 생각을 늘 가졌던 사람이다. 강간 피해에 대해 누구나 트라우마를 가질 것이고 그걸로 인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계속 갖고 갈것이라고. 그런데 누군가는 그 일이 마치 내게 없었던 일인것처럼 잊고 살아가고자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거다. 범죄자를 잡아서 그 일에 대한 벌을 내리는 것보다 그런 일이 일어난 적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것을 택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강간범을 잡아 족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로 나와는 다른 사람들, 그냥 없던 것처럼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잊지 못하고 어떻게든 응징하고 싶어한다면 내 안에 분노가 있겠지만, 그저 잊고 살고자 한다면 가슴 속에 분노는 달고 살지 않을 수 있겠구나.


내가 이 책의 이 장면에 대해 생각한 건, 이번달 여성주의 같이읽기 책인 [교만의 요새]에서 이 부분을 읽었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들은 강간으로 큰 트라우마를 얻어서 법적 정의에 호소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지만, 또 다른 이들은 직장, 친구들, 치유 과정, 혹은 그저 삶에 몰두하는 일이 법적인 투쟁보다 낫다고 느낀다. -p.150











그래, 맞아, 그렇지.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했어. 클레어 맥킨토시가 그랬다, 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서 새삼 소설 읽기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 누누이 말해왔지만 나는 책을 재미있어서 읽어왔고 앞으로도 재미있어서 읽을 것이다. 내 독서의 아주 많은 부분은 소설이었다. 사실 전부가 소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비소설 분야도 좀 더 읽기 시작했지만, 나는 소설만 계속 읽었던 사람이다. 


때로 어떤 영화에서나 혹은 어떤 사람들이 소설을 그리고 소설을 읽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걸 종종 보아왔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언제나 생각해왔다. 소설은, 그 안에 아주 많은 이야기와 생각들을 품고 있고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걸 읽으면서 독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가져가느냐는 독자에게 달린 것이다. 소설은 한심해, 소설은 유치해, 소설은 시간낭비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불쌍하게도 소설을 읽으면서 아무것도 찾아내지도 가져가지도 못하는 사람들이고. 이거 봐봐, 마사 누스바움이 자신의 책 교만의 요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나는 이미 몇 해전에 소설에서 읽고 알고 있었다니까? 그러고보면 내가 필요한 모든건 대부분 소설에서 얻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필요한 건 모두 소설이 주었다.


그렇다는건, 마사 누스바움도 이미 자신의 책 [시적 정의]에서 말한 바가 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고 함양된 능력들이 사실 경제학 및 도덕·정치 이론 없이는 불완전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물론 이러한 능력의 함양 없이 추상적 이론은 맹목적인 것이 되기 쉽고, 동기를 부여하는 데 있어서도 무력해지기 쉽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소설 읽기의 경험은 함축적으로 인간의 어떤 활동이 가장 중요한지, 어떻게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활동이 그러한 활동을 뒷받침해주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등에 대한 성찰을 내포한다. 이는 소설이 우리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는 뜻이다.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p.106


소설 읽기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주며, 우리를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치 판단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p.110


소설은 삶의 질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형태의 정보를 제공해주며, 독자로 하여금 평가를 내리는 과정에 참여하도록 이끈다. 그리하여 이는 이후의 양적인 평가에 근거한 단순화된 모델이 형성되어야 할 범위 내에서, 공적인 업무에 적합한 종류의 상상력의 틀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공적인 삶뿐만 아니라 사적인 삶에서도 그러한 평가를 현명하게 하기 위해 필수적인 상상력의 능력을 길러주면서 동시에 그 한 예를 제시한다.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p.119



나는 시적 정의를 쓴 마사 누스바움을 좋아한다. 마사 누스바움의 책이라면 다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던 건, 그녀의 시적 정의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만의 요새]에서는 조금 당황스럽다. 처음 '교만'에 대해 설명해주고 결국 여성을 혐오하는 일이 남성들의 교만이란 감정에서 오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바로 이게 마사 누스바움이지, 했다. 그간 읽어온 여성주의 책 번역서들 중에 가장 잘 읽히기도 했고. 

그런데 교만과 교만의 요새-여성들과 젊은 남성들이 일상적으로 학대받는 곳 p.154-에 대한 개념을 말해주는 것도 좋았고 성희롱 만연한 곳이 직업적 환경이 되는걸 짚어준 것도 좋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뒷부분에 숱한 사례들은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겠지만 읽기가 싫더라. 게다가 마지막 결말 부분에 가면 내 불안함과 불만이 전혀 해소되지 않는데, 처음부터 시종일관 사랑을 말했던 마사 누스바움이,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과 대화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네?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마사 누스바움은 이렇게 숱한 사례를 직접 경험하고 듣고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사랑과 대화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나 역시 머리로는 안다. 동의한다.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과 깊은 대화를 한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 이해를 수반한다면 다른 태도를 기대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너 참 힘들었겠구나, 그렇지만 그건 안되는 거 아니겠니, 하는 식으로 그 다음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개인적으로 복수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지만, 그리고 세상엔 마사 누스바움이 말하기 전부터 개인적인 복수심을 버리고 법의 처벌을 바라거나 혹은 위의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다 잊고 눈 앞의 행복만 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졸라 복수하고 싶고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 새끼들과 대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가 된다고 순간적으로 생각할 수도 잇지만 뒤돌아서면 그 놈들은 '내가 반성한 줄 알았지?' 하며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낼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성학대와 강간등의 성범죄를 저지르는 모든 놈들은 악이고, 악은 게으르고 무지함에서 온다. 물론 그건 마사 누스바움이 재차 말했듯이 환경이, 그리고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환경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고. 사랑과 화해라니, 나는 결말 부분에 크게 실망했다. 아아, 내가 원하는 건 이런게 아니야. 쎈언니들의 말이 듣고 싶다! 세상을 파스텔톤 필터 하나 더 가지고 보는 사람의 선한 글이 아니라, 쎈 언니들의 글을 보고 싶다. 성폭력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등장할 줄 알았고 그래서 교만으로 성폭력을 데려왔을 땐 역시 마사 누스바움이야! 했는데, 막판에 사랑 대화, 이러는데 당황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사실 궁극적으로는 그게 맞겠지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효용이 있을까요? 


미성년자들의 얼굴에 나체사진을 합성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친족들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여자들을 약먹이고 강간하는 이들에게 글쎄 .. 사랑과 대화가 뭘 어떻게 바꿔줄 수 있을까?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인간이고 구원도 인간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마사 누스바움 님.. 나보다 훨씬 인간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 선한 사람이라서 선하게 보는걸지도... 나는 아마도 마사 누스바움이 그렇게는 되지 말라고 하는, 그런 페미니스트가 될 것 같다. 정희진 쌤이 페니스트라 인정하지 않는, 그런 페미니스트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내가 페미스트가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페미니스트가 아닌 거라고 해도 나는 상관없다. 



마사 누스바움의 이 책은 선하지만, 나는 좀 실망했다.




매키넌은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대상화라는 것은 너무나도 편만해 있어서 여성들은 대상화에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도 거기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매키넌은 "모든 여성들은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성적 대상화 속에 살아간다."라고 기발한 은유를 사용하여 말하는데, 이는 대상화가 여성들을 둘러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바로 그 대상화로부터 양분과 지속성을 끌어내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P41

남성과 여성의 성적 상호 관계에는 애매함과 잠재적 갈등이 따르기는 하지만 몇 가지 오해를 넘어서는 자명한 사실이 분명 존재한다. 섹스가 강요될 때의 인식 속에서 젠더 격차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젠더라는 수렁이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원치않았던 성적인 행위를 남성으로부터 강요받았다고 말하는 많은 여성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극소수의 남성만이 여성에게 강요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여성과 남성을 젠더 이슈로 몰고가는 차이점과 여성과 남성의 섹스 경험에서 나오는 상이점이 보여 주는 사실은 이것이다. 바로 두 가지 분리된 성적 세계, 그의 세계와 그녀의 세계가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라우만, Sex in America) - P51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문화는 이러한 문제들을 확대시키면서 여성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너무나도 쉽게 부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인터넷 포르노는 겉보기에도 완전 교환 가능한, 고분고분한 여성을 무수히 재현하고 그 모든 동작과 표현들은 남성의 통제감과 권력 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여성 재현물들에는 여성의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여성은 남성의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며 남성의 사양에 맞춰 제작된 가짜 주체성을 띤다. 이는 분명 ‘진짜 세계‘에 여파를 미친다. 그 규모에 대해 누군가 반박할지라도(그리고 누군가는 어떤 포르노는 페미니스트에게 필요하다 주장한다 해도) 말이다." 인터넷 문화 역시 오랫동안 광고나 포르노 인쇄물 및 다른 매체들 속에서 여성을 묘사해 온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여성을 재현한다.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는 불안할 정도로 차이가 있다. 인터넷 포르노는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 P53

(계속) 시청자가 완전히 몰두해서 그의 요구에 맞춰 줄 준비가 된, 오로지 재현된 여성만을 바라보는 세계. 오늘날 많은 남성들이 이 세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 P53

교만은 습관적으로 자신이 타인들 위에 있다는 생각과 다른사람들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수반하는 특성이다. 교만에는 많은 형태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교만의 한 가지 형태만 갖기도 한다. (인종적 교만을 보이는 사람들이라도 계급적 교만은 없을 수 있고, 그 계급적 교만 대신에 인종적 교만에 매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들이 미국 내 위계질서 어디에 위치해 있든 간에, 오랜 전통들은 그들에게 여성은 충분히 중요하지 않으니 깔봐도 괜찮다는 젠더적 교만을 공급해 왔다. 교만은 탐욕과 질투 같은 다른 나쁜 성질들에 부추김 당하기도 하는데, 이 다른 성질들이 교만함과 결합하면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유독해진다.
일반적으로 교만은 여성 종속의 근원이다. - P56

흄은 교만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덧붙이는데 일반적으로는 자아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개인의 성격이나 외모, 재산과 같은 것들이다. 똑같은 성질들을 타인에 대입하거나 타인의 소유물로 상상할 때는 교만이 발현되지 않는다. 게다가 교만은 보통 평범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특유한 것이거나 적어도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것들에 의해 발현된다. 흄이 제시하는 이유는 교만이 대상의 내재적인 면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기서 요점은 교만이 발생하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당신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미지의 대상이 모두가 가진 것이라면 당신은 교만을 느끼지 못한다. 흄이 보기에 사회적 판단이란 어떤 경우에서든 내재적이기보다는 상대적인 것이고, 교만의 핵심은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 위에 놓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훌륭한 만찬이 차려진 곳에 수백 명의 손님들이 와 있고 그들이 모두 기쁨을 느낄 수는 있으나 오직 그 ‘자리의 주인‘만이 교만을 느끼게 된다. - P60

(계속) 그만이 "자화자찬과 자만심이라는 부가적인 정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60

남편들은 분명 수백 년 동안자기 부인에 대해 교만을 느껴 왔고, 그 태도 또한 여성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꾸준히 자각하는 것과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여성을 전투에서 승리해 얻을 수 있는 트로피로 여겼던 호메로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우리 역시 ‘트로피와이프‘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여성의 아름다움(혹은 아내다운 미덕)이 그녀를 ‘획득한‘ 남성의 남성성에 위신을 가져다 준다는 교만의 대상으로써 말이다. - P61

감정으로서 교만은 이미 수단화를 수반하고 있으며, 완전한 자율성과 주체성을 거부하는 경향은 물론 대상화마저 동반한다. - P61

그들 상상 속의 경쟁 목표는 사회적 지위를 향하는데,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성공한 다른 남성을 겨냥한다. 일례로, 웹사이트 오토어드밋 (AutoAdmit.com)의 경우 경쟁은 전문적인 영역에서 벌어졌지만 질투는 여성들 자체에게로 꽂혔다. 이 웹사이트는 원래 로스쿨 입학을 조언해 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가 순식간에 포르노 사이트로 타락했다. 이 사이트에 글을 쓰는 익명의 남학생들이 여성 법학도들의 이름을 대면서 ‘창녀들‘이라고 묘사하며 포르노적인 시나리오들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단순히 높은 성취를 보인 동기들을 창녀라고 묘사함으로써 여성들에 대한 우월성을 선언한 데서 그친 게 아니라, 피해 여성들이실제로 구직을 하는 현실 세계에서도 피해를 입었다는 데에 있다. 잠재적 고용주들이 그 이야기들을 믿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미 오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 P79

그 사이트는 심지어 어떻게 하면 해당 여성의 이름이 명시된 위조된 이야기를 구글 첫 페이지에 띄울 수 있는지 조언하기도 했다. 이 사이트는 강의실 내에 긴장을 조성했을 뿐 아니라(익명의 게시물을 올린 이들은 여성들의 이름과 신체적 특징까지도 알고 있었다.) 실제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예일대학교에서 높은 성취를 보였던 두 여성은 명예훼손 및 감정적 피해로 가해자들을 고소했다. 인터넷의 익명성은 큰 장벽이었다. 연루된 많은 이들 중 세명의 남성들만이 추적되었고, 소송에 제기된 이름들은 다 가명이었다. 결국에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그 조건은 밝혀지지 않았다. - P79

많은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표현이든 승낙을 받아야 하는게 성적 열정을 삭힐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성적인 친밀감에 대한 의사 표현만큼 개인의 자율성을 드러내는 표현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 P141

모든 주가 법정 강간으로서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금하는데, 그러한 성관계는 ‘좋다‘는 말이 있든 없든 그 자체로 위법이다. - P143

어떤 여성들은 강간으로 큰 트라우마를 얻어서 법적 정의에 호소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지만, 또 다른 이들은 직장, 친구들, 치유 과정, 혹은 그저 삶에 몰두하는 일이 법적인 투쟁보다 낫다고 느낀다. - P150

선한 남성들은 악한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종종 충격을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악인을 붙들고 말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를 전혀 모르고, 설상가상으로 그런 대화는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많은 경우, 이러면서 생각 없이 고발자의 이름을 발설한다.) 좋은 의도를 가진 남성들이 주저하는 것을 보면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유명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최선의 인간들은 확신을 잃었고, 최악의 인간들은 강렬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 P157

일터에서의 성희롱은 즉 착취적인 권력의 사용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희롱을 어떻게 이론화하더라도 결국 성희롱은 권력 남용이다. 교만에 대한 분석대로 법정이 인식해 온 성희롱의 두 종류는 ‘대가성‘과 ‘적대적인 환경‘이다. 둘 다 비대칭적인 권력을 수반한다. ‘대가성‘ 괴롭힘에서 원고는 성적인 최후통첩을 받는다. ‘적대적인 환경‘에서는 성적 관계에 대한 압박이 얽혀 있든 업무 관계에서 보다 확산되어 있는 성애화가 얽혀 있든 간에, 원치 않는 무언가를 견뎌 내야 한다는 압박이 퍼져 있다. 두 경우 모두 여성이 실제 덫에 걸리기 전까지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우리는 알 수없다. 그녀는 폭력적인 상황을 견딘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녀의 고용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 P180

상술한 요인들을 검토하면서 고서치 판사는 성희롱을 비롯한 여러 차별에 있어서 첫 번째 요인이 되는 독자성의 중요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고용주를 상대로 한 성희롱 건에서 승소하기 위해 고용주가 모든 여성을 혹은 대부분의 여성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차별에 있어 자신의 성별이 주요한 요인이었다는 것, 똑같은 상황에 놓인 남성이라면 그런 식으로 대우받지 않았으리라는 것만을 드러내면 된다. 그녀와 고서치 판사는 자기 앞에 놓인 사실 관계들을 본다. 그 사실 관계들은 딱 보기에도 실질적으로도 단도직입적이다. - P194

교육과 사법 판단 모두에 있어서 술과 관련해 주의가 필요한또 다른 문제는 의식을 잃은 사람 혹은 그 직전 단계의 사람과의 섹스는 폭행이라는 의식이다. 이는 적극적 동의라는 기준에 대해 내가주장해 온 것으로,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 - P206

그의 수많은 농담처럼 그것이 농담이었다는사실 자체가 그에 대해 많은 것을 폭로한다. - P230

일단 유명해지면 많은 것들이 유명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돌아간다. - P276

어린 미식축구 선수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좋은 대학 스포츠 프로그램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들의 교만은 그들이 특별하다고 독려하는 다년간의 사회적 훈련과 그 교만을 더욱 악화시키는 선발 과정에 의해 증폭됐다. 그들에게 타인은 온전한 실재가 아니다. 특히나 여성은 실재하지 않는, 자신들의 자부심을 높여 주는 소품 같은 존재일 뿐이다. 윈스턴의 룸메이트인 캐셔가 잘 알지도 못하는 여성들과의 섹스 장면을 종종 영상으로 찍어서 공유했다고 했을 때,
"그건 미식축구 선수들이라면 해도 되는 그런 일"이었던 것이다. - P355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4-09-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390쪽에 대한 긴 답변 잘 들었습니다.
이 책은... 누스바움 언니의 얼굴처럼 너무 선했던 거 같아요. 저는 누스바움 언니 팔뚝(근육) 같은 책이길 바랐는데... 또르륵...

독서괭 2024-09-24 18:27   좋아요 0 | URL
응? 팔뚝 사진 찾아봐야겠네요 ㅋㅋ

다락방 2024-09-25 07:47   좋아요 0 | URL
네 다 맞는 말이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해결해가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런데 그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부터 좀 착하긴 했어요. 반복적으로 착한 남자도 있다, 좋은 남자도 있다.. 라고 말하면서 모두 끌어안고 가려는 포용력과 선함...
첫부분은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 오타도 넘나 많아요..

독서괭 2024-09-24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잠자냥님이 지적하신 부분 다락방님도 같은 걸 느끼셨나보군요. 너무 착한 누스바움 언니…
전 지금 함달달도 막 밀리고 있어서 큰일입니다 ㅜㅜ

다락방 2024-09-25 07:48   좋아요 1 | URL
독서괭 님, 천천히 천천히 진행하시길 바랍니다.
이 책은 그간 여성주의 책들에 비하면 아주 잘 읽힙니다. 그러니 한 번 손에 잡으면 술술 읽게 되실거에요. 힘내세요 독서괭 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