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강원도에 있는 청태산에 다녀왔다.
막 트레일러닝에 흥미를 보이는 e 와 새로운 곳에서 한 번 트레일러닝 시도해보자, 했던거다. 나는 쪼꼬미 동산 일자산 몇번이 전부이고 e 역시 집 근처 낮은 동산 몇 번 다녀봤던터라 우리는 기대반 두려움반으로 출발했다. 오르막은 아예 뛰지 못할테니 등산중 나오는 평지와 경사가 심하지 않은 내리막을 뛰자, 하고 청태산으로 향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2코스는 경사가 아주 심하고 1코스는 완만하다며 올라갈 때 2코스 내려올 때 1코스를 추천한다고들 했다. 산에 도착해 입장료와 주차비를 내고 안내인분께 지도를 받으며 코스에 대해 여쭸는데 안내인분은 2코스로 갔다 3코스로 내려오기를 더 추천한다셨다. 1코스도 완만하지만 3코스가 더 내려오기 나을거라는 말씀이셨다. 우리는 어차피 오르막에 뛸 수 없으니, 그렇다면 1코스로 올라가고 3코스로 내려오자 쇼부를 쳤다. 등산부터 하산까지 아마 한시간 반정도 걸릴텐데, 굳이 물은 없어도 될 것 같고, 음 망고젤리나 준비할까, 하고 휴게소에 들렀을 때 샀던 망고젤리를 각자 주머니에 몇 개씩 넣었다. 그리고 1코스 앞으로 가, 우리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어..근데 경사가 완만하다는 1코스가.. 내 생각과 우리의 생각과 완전히 너무나 달랐다. 경사 심한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는 거다. 뛰는게 다 뭐야, 나는 이 등산 자체를 포기하고 싶어졌다. 분명 걷는데도 이 산을 오르는 일은 심박수를 굉장히 높게 만들었고, 귀에서 계속 맥박 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멈추어서 잠시 숨을 고르며 맥박이 진정되길 기다렸고 그러다 다시 오르면서 맥박소리를 듣고 또 진정되길 기다렸다. 이렇게 몇차례 하는동안 e는 세상에, 저기 멀리 앞서 가더니 숫제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나는 너무 힘들어 헉헉대는 이 오르막을, 그냥 평지 걷듯 다다다닥 걸어가는게 아닌가. 세상에. 일전에 이효리가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청계산을 오른다면서 그런데 날다람쥐처럼 잘 오르는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은 전지현이다, 말한 적이 있었다. 전지현은 청계산 날다람쥐라는 거다. e 는 청태산 날다람쥐였다. 청계산에 전지현 있다면 청태산에 e 있다..
경사가 심해 줄이 설치 되어 있는 부분도 있었다. 하아- 내가 저 줄을 잡아가며 올라야 하는것인가. 산은 정말 풍경도 아름답고 공기도 좋고 냄새도 좋고 다 좋은데, 그래서 정상에 기어코 오르고 싶은데, 그런데 이 오르막.. 언제 끝나요? 산을 오른지 20분이 지나도 40분이 지나도.. 아직 정상은 나오질 않았다. 아름다워, 좋아, 그런데 이제 정상이 나와줬으면 해. 경사가 너무 심해서 나 힘들다고 ㅠㅠ 처음엔 뛰지 못할까봐 초조했는데 이젠 오르고 내리는 것 자체를 할 수 있을지 초조해지고 두려워졌다. 그런데 이미 이만큼 올라왔는데 그대로 돌아 다시 내려갈 순 없었다. 왜냐하면 이 경사 다시 내려갈려면.. 너무 무서워 ㅠㅠ 3코스가 이보다 더 낫길 바라며 가던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어. 저기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e 에게 말했다. "내 목표는 이제 트레일 러닝이 아니야. 무사히 오르고 무사히 살아서 내려가는게 오늘의 목표야."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몇 번이나 맥박 소리가 들려 멈추었다가, 드디어 정상에 닿았다. 만세!!
사실 청태산.. 이름 들어본 적도 없었고.. 그러니 산을 잘 타는 사람들에게는 난도 높은 산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일자산만 다니던 등산 쪼렙은 울고 싶어집니다.. ㅠㅠ
정상에 올라 시뻘개진 얼굴로 흥분하며 e와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 젊은 여성분이 조용히 정상에 오셨다. 전혀 힘들어보이지 않는 얼굴로 오셨어. 나는 그 분을 보자마자 "인증사진 찍어드릴까요?" 물었다. 잠깐 망설이던 그분은 "감사합니다!" 하고 베시시 웃으셨다. 그래서 나는 그 분 찍어드렸다. 그러자 그 분이 "두 분 같이 찍어드릴까요?" 해서 우리 사진도 찍고. 어디로 올라오셨어요, 물으니 2코스로 올라오셨대. 아니, 거기 너무 힘들다던데요? 화들짝 놀라며 물었더니 "괜찮았어요." 하셨다. 아마도 이분은 등산 경험이 좀 있으신 분 같았다. 그 뒤로 몇 마디 더 나누다가 헤어졌는데 그 분이 먼저 내려가시며 조심히 내려가세요, 했고 우리도 조심히 내려가세요, 했단 말야? 그리고 바로 우리가 그 뒤를 따라갔는데 그 분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 분도 날다람쥐... 하아. 뭐야, 왜이렇게 날다람쥐가 많아.
그리고 3코스는 완만하기를 바라면서, 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아니, 여기 뭐가 완만하다는거야 ㅠㅠ 나는 또 쫄아서 내려간다. 트레일러닝화는 미끄럽지가 않아서 산을 다니기 참 좋은데, 그래서 일자산에서 호카 트레일러닝화 신고 사길 잘했다 싶었는데, 아무리 신발을 믿으려고 해도 이 경사에 너무 쫄려. 그렇게 내려가다가 기어코 넘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슬라이딩 해서 손으로 땅을 짚고 엉덩방아를 찧었어. e 가 놀라며 다가와 손잡아주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어떨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괜찮은 것 같아, 하고 다시 하산하기 시작했다. "있지, 나는 나의 넘어짐을 받아들이고 있어. 안넘어지려고 하니까 두려운건데, 나는 넘어졌으니까 이제 괜찮아." 그러자 e 는 소리내어 웃었다. 아아 나는 세상없이 겸손해진다. 내가 무슨 트레일러닝이냐, 나는 딱 일자산 맞춤한 사람이다. 나는 앞으로 일자산만 걷고 뛰고 걷뛰 하자. 산? 트레일러닝? 그건 감히 내가 넘볼 부분이 아니야... 나는 날다람쥐가 아니다. 나는 일자산의 멧돼지야.. 하아-
산을 오르기 시작하고 두시간 이십분이 지나서, 우리는 하산을 마치고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발이 제멋대로 움직이려고 해. 이 체중을 싣고 다니느라 내 다리여, 고생 많았다. 산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냄새도 너무 좋고 나 산 좋아하네, 싶었지만, 그런데 나는.. 일자산만 걷고 달릴래. 나는 날다람쥐가 아냐. 트레일러닝.. 내 영역이 아니다. 와, 사람이 그렇게 원래 맥박 뛰는 소리가 귀에서 막 들리고 그러는건가염?????
아니, 단풍진 산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왜 내가 찍은건 험난하고 앙상한 길사진 뿐인가.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정상에 올라서도 풍경 사진을 안찍었네. 껄껄.
산을 내려와 머물기로 한 리조트에 체크인을 하고 리조트 까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들어가 샤워를 한 후에 옷을 갈아입고 오늘의 등산을 축하하기로 했다. 그렇게 소고기 먹으러 가긔!!
와- 진짜 맛있게 먹었다. 맛있고 배부르게 먹은 뒤 숙소 들어와 2차를 했다. 오늘 너무 즐거웠다, 좋은 시간이었다, 도란도란 술도 마시고 안주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e 는 다음날 아침에 뛰지 않겠느냐 물었고, 나는 오늘 상태로 보아 내일 일어나 뛰는건 무리다, 너는 뛰고 와라, 했는데 ㅋㅋㅋ 다음날 아침 내가 일어나보니 e 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에 일어나 씻고 짐 챙기고 리조트내 식당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리조트 식당이니 비싼건 감당하고 받아들였지만, 아니,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9,000원 짜리 고등어구이정식 좀 보실래여, 여러분??
고등어 반마리 실화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진짜 딥분노. 저 계란후라이는 한 개 천오백원 돈 주고 시킨거고, 아니 저 고등어 무슨 일이야. 고등어 한마리 구워 나오는게 정석 아닌가요? 그게 정식 아닙니까? 어떻게 반마리 이렇게 떠억- 내놓을 수가 있죠. 반찬도 맛있었고 된장찌개도 맛있었고 e 는 어차피 한 마리 배불러서 다 못먹는다고 별로 분노하지 않았는데, 나는 딥빡이 옴. 어떻게 반마리 구워주냐. 나머지 반마리의 행방은 어떻게 됩니까? 하아- 이거 보고 e 는 전혀 같이 흥분해주지 않았지만, 윗부분 좋아하는가봐? 얘기했지만, 내가 거길 좋아하고 말고와 상관없이 고등어 반마리 내어주는 것 자체가 강호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집에 와서 엄마한테 보여주고 여동생한테 사진 보여주고 엄마랑 여동생은 흥분해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 ,이렇게 반마리 주는데가 어딨냐! 나는 e 가 전혀 흥분하지 않길래 이 친구는 반마리 고등어구이 를 많이 사먹었나 싶어서 내가 그동안 특별했던건가, 무리한 요구인건가 싶어서 인스타그램에 #고등어구이정식 검색해봤는데, 무슨소리야, 죄다 한 마리더구만 ㅠㅠ 저렇게 반토막 주는 건 집에서 자식들 밥 차려줄 때 내놓더라. 냉동고등어, 비비고 고등어 그런거 ㅠㅠ
휴.. 뭐 흥분하고 빡쳤다고 내가 뭘 한 건 아니고 그냥 빡친게 전부였지만 하여간 빡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 샀다.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는 책의 존재를 알고는 있어지만 제목이 전혀 내 관심을 끌지 못했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번호 정희진 오디오 매거진에 이 책의 저자 조형근 사회학자 님이 나오신거다. 이 분의 이야기를 듣는게 참 좋았는데, 대학에 관한 얘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대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정규직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조형근은 대학에 대해 당연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대학의 효용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는데, 지방대학에 대한 얘기는 그간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부분이었다.
서울과 달리 지방대학은 그 대학을 제외하고 그 지역에 그만한 지적인 공적인 인프라가 없다는 얘기였다. 학생, 지식인, 장비, 시설등의 인프라를 갖춘 그런 공간은 지역에 대학이 유일하다는 거였다. 특별히 더 큰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유일한 장소. 지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역량을 갖추고 문제를 문제로 알고 해결한 인재를 배출해내고 시민, 주민의 교육과 훈련 모두 다 갖춘 곳은, 대학이 제일 좋은게 아니라 대학 빼고 없다는 것. 지역에서 제일 압도적으로 큰 기관이라는거다. 정희진 선생님은 정말 그렇다며 그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는 것도 언급하셨다.
와- 너무 재미있는거다. 그러니까 그간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누군가 말해주는 걸 듣는 것 말이다. 이런거 너무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분의 책을 사게된거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구간인데 이렇게 구입하게된 게 뜬금없지만, 사실 나는 김연수라는 작가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신간이 나오거나 베스트셀러거나 해도 특별히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몇 권 읽었더라, 하여간 나는 꽂히지 않은 작가였는데, 얼마전에 알라딘에서 누군가 [지지않는다는 말]의 몇 부분을 발췌해둔 걸 보니 얼라리여~ 달리기 얘기를 하는거다. 아니, 김연수 작가님, 달리기 하십니까? 갑자기 이 책이 궁금해져서 급박하게 구매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책들은 왜 샀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이번주에는 이렇게 소박하게 샀다. 흠흠.
이제 점심 먹으러 갈거다. 슝 =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