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자의 문제
하워드 제이콥슨 지음, 윤정숙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괜찮은 책이지만, 그걸 알기 위해서는 지루한 책읽기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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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덩치 큰 여자와 사랑한다는 건
    from 마지막 키스 2012-06-21 13:57 
    퓰리처상에 『깡패단의 방문』이 있다면 부커상에는 이 책, 『영국 남자의 문제』가 있다. 둘다 괜찮은 책이지만-좋아할 수는 없다- 책을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한다. 어찌나 책장이 안넘어가는지...영국 남자의 문제는 깡패단 보다 더 안 넘어가더라. 나는 영국 남자의 문제를 시작하고 너무 책장이 안넘어가서 도중에 다른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옆 무덤의 남자』와 『집착』. 그리고 다시 영국 남자의 문제로 넘어왔는데, 아, 포기할까 말까를 엄청 망설였다
 
 
 
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십대 중반에 사귀던 남자는 자신이 대학을 졸업하고 선을 봤던 여자에 대한 얘기를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그녀와의 만남은 몇 번에 그쳤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는데, 나는 쓸데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의 그 과거의 여자를 질투했다. 왜 나는 좀 더 일찍 그를 만나지 못했던걸까, 왜 그녀와 선을 보게 둔걸까, 하고. 그러나 이런 생각을 입밖으로 내는 것은 쉽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상대로 하여금 나는 집착에 쩔은 여자로 보일지도 모르고 스토커적으로 느껴질테니까.


내 안의 스토커적 기질에 대해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뿐 어느 한 대상에 대해서는 다들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아니 에르노가 애인의 동거녀에 대해 이름과 직업을 궁금해하고 하루종일 그녀에 대해 생각했던 것처럼, 나 역시도 그런 궁금증을 가진바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는 많은 비윤리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어느 연인들에 대해서는 헤어지기를 바랐고, 어느 연인들에 대해서는 그가 그녀에게 질려버리기를 바란적이 있다. 언젠가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고백을 한다고 했을때는 그가 그녀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기를 속으로 얼마나 기도했던지.


그러나 이런 마음이 들때마다 나는 나를 타이르기에 바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바란다니, 이건 너무 못됐잖아. 그만둬. 그런 마음을 없애. 그런 마음을 가진 나는 나쁜년이야, 하는 자책들을 동시에 수반하는 이런 감정들에 대해서,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니,



젠장, 왜 안된단 말인가. 그저 생각이고 그저 내 감정인데!


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만 그런게 아니니까, 다들 그러고 사니까. 그리고 내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무언가 행동으로 옮긴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그런 마음을 좀 품었다고 한들, 뭐, 굳이 고해성사까지 해야하는거야? 억지로 웃으면서 축하해, 라고 말하는게 더 나쁘잖아?



일전에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고 내가 불편했던 건 그녀가 '지나치게 솔직'하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도 지나치게 솔직하긴 마찬가지인데, 그러나 이제 불편함보다는 인정을 먼저 한다. 내가 불편했던 건, 내 안의 그런 마음을 자꾸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내 안의 그런 마음을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가 자꾸 건드리니까. 그러나 이제 다시 읽는 아니 에르노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내가 내 안에 이런 마음들과 이런 생각들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쿨한 척 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쿨한 사람은 없는 것처럼, 사실 우리는 속으로 아주 많이 찌질한 인간들이 아닌가. 그것이 연애에 있어서는 극으로 치닫고.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집착도 어느 순간 끝났던 것처럼, 내가 누군가의 연애에 있어서 실패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의 연애가 끝장난다고 해서 나의 연애가 더 찬란히 빛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나는 이제 자책의 끝을 달릴때마다 아니 에르노를 찾을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때때로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당신한테 말 안 했던가?"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최근 자신의 생활에 일어났던 일을 주워섬기며 일과 관련된 소식을 알려왔다. 이 질문 아닌 질문에 내 표정은 곧 어두워졌다. 그가 그 여자에게는 이미 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곁에 있기 때문에, 평범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일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은 그 여자였다. 나는 늘 두번째로 -그것도 잘해야-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즉각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긴 상태였는데, 그것이야말로 연인 사이를 공고히 하고 지속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한테 말 안했던가?" 라는 말은 나를 가끔씩 만나는 친구나 친지 그룹으로 분류해넣었다. 이제 그는 매일매일 자신의 삶을 털어놓기 위하여 더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도, 나를 가장 먼저 찾지도 않았다. "내가 당신한테 말 안했던가?"라는 말은 가끔씩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의 역할임을 일깨웠다. "당신에게 말 안했던가?"는 곧 당신에게 그걸 말할 필요가 없었지라는 소리였다.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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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2-06-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ㅠ_ㅠ 다락방님 덕분에 저를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나 좋을대로 해석 -_-;;;;;;)
맞아요. 왜 안 되는가 말입니다. 내 마음인데 내 멋대로 하겠어요!!!(라고 절규;;;;)

다락방 2012-06-18 17:31   좋아요 0 | URL
내 마음을 봐줄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는데 거기에다대고 자꾸만 못됐다 안된다 하는것도 참 못할짓인것 같아요. 제 마음인데 앞으로 제 멋대로 하겠어요! 흥!!

아무개 2012-06-18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찌질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건 정말 쉽지 않은거 같아요.

치맥을 포기하는 것 만큼 제겐 어려운 일입니다 ㅡ..ㅡ:::::::

날이 더우니 머리속엔 온통 치맥생각뿐~

다락방 2012-06-18 17:31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찌질한 인간이란 걸 곧잘 인정하곤 하는데, 그만큼 또 제가 잘난 인간이라고 자뻑에 빠지기도 해요. 그래서 아마 보통의 인간인가 봅니다. ㅎㅎㅎㅎㅎ

전 배탈났어요, 마중물님. 설사 ㅜㅡ

아무개 2012-06-18 21:09   좋아요 0 | URL
설...........사..............는 좀 어케 진정이 되셨남요?

혼자 또 뭐 맛나는거 드신거죠? 그렇죠???

설마 치맥? @..@

다락방 2012-06-19 09:16   좋아요 0 | URL
마중물님 ㅠㅠ 진정이 안되어가지고 저 진짜 지금 죽을맛이에요. 밤새 잠도 못자고 오늘 출근에도 한시간 반이 걸렸어요. 지하철 역마다 내려서 쉬느라고. 아파요 ㅠㅠ

달사르 2012-06-18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질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쿨한 척하려니, 것도 고역..차라리 찌질한 본모습을 보이자! 싶다가도...
여전히 쿨한 척..ㅠ.ㅠ

아..나도 다락방님 따라 아니 에르노 책 읽어야겠어염!

다락방 2012-06-18 17:32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 쿨한 사람은 세상에 없는것 같아요. 다만 쿨한척 하는 사람만이 있을뿐.

아니 에르노는 달사르님도 좋아하실거라 생각됩니다. 흣 :)

2012-06-18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9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2-06-19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를 읽으면?
자신의 내면속에 숨겨진 남에게 보이기 싫은 구석을 들여다 보게 되는군요.
음~
그러니 조금씩 땡기군요.
음~
나도 한 스토커 하는데..ㅋㅋ
나도 한 찌질녀 이기도 한데..ㅠ
그래서 슬픈 책(?)일 수도 있겠어요?ㅋ



다락방 2012-06-19 09:36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나 스토커 기질과 찌질한 기질은 있지 않을까요? 다만 그것을 겉으로 얼마만큼 표현하느냐의 차이인것 같아요. 그걸 어느정도는 자제할 줄 알아야 되는데 그걸 못하는 순간 '스토커다', '찌질하다' 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것 같아요.

네, 그래서 슬픈 책이죠. 또 그래서 무섭기도 한 책이구요. 아..너무나 솔직한 글이에요, 책나무님.

2012-06-19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0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2-06-19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책이 있었어요? 저 지금 <탐닉>이랑 <단순한 열정>이랑 이 책이랑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건지 헷갈려요. <탐닉> 읽고 느낀 거랑 지금 다락방님 느끼신 거랑 많이 겹쳐서 고개가 끄덕여져요. 아니 에르노 정말 설명하기 힘든 강점이 있는 작가 같아요. 저도 질투쟁이랍니다.^^;;

다락방 2012-06-20 13:22   좋아요 0 | URL
전 블랑카님 리뷰 보고 [탐닉] 읽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품절이더라구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사서 읽게 된거에요. 역시 이 여자는 참 솔직해요. 지나치게 솔직해서 불편하다가 위로가 되다가 해요.

저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병적으로 질투가 심해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기억의집 2012-06-2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쿨하다기보다 미리 포기하는 사람은 있는 것 같아요. 미련은 남으면서도 아니다 싶으면 거리를 두고 관계를 딱 자르는 사람이요. 그건 사람의 성향이라서요. 집착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12-06-21 14:13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제가 그런 성향의 사람이에요. 전 미리부터 포기도 잘하고 관계 끊기도 잘하죠. 아니다 싶은데 계속 가서 뭐하나, 빨리 다른 사람 만나게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라서요. 이건 말씀하신대로 쿨하다기 보다는, 제 경우엔, 저 역시도 상처를 덜 받고 싶은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흐음.
 
핸드형 비닐접착기

평점 :
절판


뒷 부분이 자석이라 냉장고에 찰싹 달라붙는다. 꽤 쓸모있는 깜찍한 녀석이라 생각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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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6-18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상품이 있었나요?@.@
일단 보관함에 넣어놔야겠어요.

다락방 2012-06-18 11:0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런 상품이 있더라구요. 그동안 먹다 남은 새우깡이 눅눅해지곤 했는데 이거면 이제 끄떡 없겠어요! ㅎㅎ

네꼬 2012-06-20 14:22   좋아요 0 | URL
말도 안돼. 새우깡이 어떻게 먹다 남을 수가 있어요?

다락방 2012-06-20 14:31   좋아요 0 | URL
아, 네꼬님이 날 아직 잘 모르는구나. 내가 먹는걸 별로 안좋아해요. 입이 짧아요.

=3=3=3=3=3=3=3=3=3=3=3=3=3=3=3=3=3=3=3=3

moonnight 2012-06-1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뭐에 쓰는 물건인고 했더니! 이거 좋아보여요. +_+

다락방 2012-06-18 11:03   좋아요 0 | URL
네네. 아주 유용하리라 생각됩니다. 훗.

가넷 2012-06-18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상품이네요. ㅋㄷ 보니까 생각보단 제법 유용할 것 같아요. 사용해보시니 괜찮은가요? 저도 한번 살까 싶네요. ㅋ

다락방 2012-06-18 11:03   좋아요 0 | URL
일단은 위생팩인가 하는 그 얇은 비닐에 해봤는데 잘 되긴 하는데 비닐이 너무 얇아서인지 끊어지네요. 그래도 안열리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새우깡 봉지에 한 번 해보겠어요!!

하루 2012-06-1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마음에 들어요. :)

다락방 2012-06-18 13:00   좋아요 0 | URL
네. 쓸모있는 녀석입니다. 흐흣

기억의집 2012-06-2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마트에서 만원인데 여긴 더 싸네요. 그러나 배송비 더하면~ 헐.

다락방 2012-06-21 14:13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그것이 알라딘의 꼼수. 책과 함께 사면 무료배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igur Ros - Valtari [3단 에코 디지팩]
시규어 로스 (Sigur Ros) 노래 / 워너뮤직(팔로폰)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그냥 막 사지 말것. 유령나올것 같은 음악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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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2-06-1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를 어쩌나. -_ㅠ;;;;

다락방 2012-06-18 11:16   좋아요 0 | URL
중고샵에 팔아야지요.. ( ")

비로그인 2012-06-17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궁금하네요 어떤 음악인지!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할 때 마음은 조금 아프지만... 그래두 확실히 다 똑같을 수는 없나봐요. 좋은게 좋은거라는 말은 거짓말 '~'

다락방 2012-06-18 11:16   좋아요 0 | URL
시디 리핑해서 좀 전에 친구에게 줬는데 친구는 자기 취향이라고 좋다고 머리를 식혀준대요. 하하하하핫

웽스북스 2012-06-1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규어로스의 굴욕이네요. 왜 별을 두개를 줘요 엉엉 내가 다섯개로 덮어버릴거야.

다락방 2012-06-18 11:17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별을 더 줄 수가 없었어요. 흑흑. 미안해요.

dreamout 2012-06-17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도 저는 구입 예정~! ^^

다락방 2012-06-18 11:17   좋아요 0 | URL
시규어 로스가 국내에 팬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것 같아요. ㅎㅎ

댈러웨이 2012-06-1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도 들릴 수 있는 음악이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울고 가요, 다락방님. ㅠ.ㅠ

다락방 2012-06-18 11:18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지 못한 많은 능력중에 하나가 '가사 없는 음악 듣기' 입니다, 댈러웨이님. 멍-해져요. 이게 뭐지..싶어지는 그런 기분이요. 그러니 울지마요, 댈러웨이님. 흑흑.

레와 2012-06-18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여기서 처음 보았어요! ^^;;

다락방 2012-06-18 11:18   좋아요 0 | URL
어쩐지 레와님도 좋아할 것 같아. 팬이 될 듯 ㅋㅋ
 
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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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소를 묘사하기 위해선 대중가요의 환상적인 노랫말 속에 빠져들어야 한다. 그 속에는 따사로운 햇볕과 산딸기, 새의 지저귐, 그리고 산 위 호수에 비친 그림자가 모두 들어 있었다. 산림조합원 남자는 서툴게 포장한 생일 선물을 내미는 아이처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내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내 입꼬리는 여전히 귓가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사이로 무지개 같은 환한 빛이 솟아올랐다. (p.24)

 

사랑에 빠지는 순간 상대의 미소에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상대도 나에게 똑같은 감정을 갖게 될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사실, 쉽지는 않은 일이니까. 그런데 남자의 미소를 저렇게 생각한 여자도 남자에게 같은 느낌을 줬다.

 

마치 방학을 맞은 여자아이, 혹은 처음으로 산 자전거를 보며 즐거워하는 꼬마 같았다. 그리고 옆 무덤 앞에서 분홍색 물뿌리개를 가지고 노는 어린 소녀처럼 완벽하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p.30)

 

그 둘이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들은 상대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었고 또한 상대에게 완벽한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 여자는 죽은 전(前) 남편에게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오르가슴을 느꼈고 그를 생각하거나 볼 때마다 자신 안에서의 난자의 요동침을 느꼈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그녀와 언제나 꼭 붙어 있고 싶었고 단 1분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 둘은 그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렬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라캉을 몰랐고 여자는 소 젖짜는 법을 몰랐다. 여자의 집에 있는 거라곤 책 뿐이었고 남자의 집에는 책이라곤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긴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여자가 미트볼을 요리해 차려두고 자신을 기다리길 원했고, 여자는 미트볼을 만들 줄 몰랐다.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가기 위해서는 일을 마친 뒤에 시내로 나가야했고 여자가 남자의 집에 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한 번 있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난 그녀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녀를 묶어두고 싶었다. 그녀가 가끔씩만 날 원하는 것 같아 그녀에게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었고, 그런 사실은 내게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때로는 그녀에게도 집안일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은가. (pp.134-135)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지내고 싶고 함께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함께 사는것은 생각처럼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많은 취향을 존중하며 가끔은 양보하며 살아가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지만, 그렇다한들 서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에 대해서는 일치하는 쪽이 좋다. 그러니까 한 방향을 바라보는 것은 기본 전제로 깔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결말은 남자가 자신의 농장과 수십마리의 소들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 살기 위해 도시로 나가기로 선택하는 거였고, 마찬가지로 여자가 자신의 열정을 바쳐서 승진하기도 하는 직장을 때려치고 시골로 옮겨서 미트볼을 만드는 거였다. 나는 당신과 함께 살기 위해 그동안 내가 이루었던 것과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모두 버리겠어, 라고 말하는 것. 그게 가장 끔찍한 결말이었다. 사랑은, 내가 생각하는 유일하게 가치있는 것은 아니니까. 사랑을 위해서 어느 한 쪽을 희생하는 것은 희생을 한 쪽도 그리고 그 희생을 받아들이는 쪽에도 결코 좋을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희생에 대한 불편함을 가슴 어느 한 구석에 안고 갈 테니까. 만약 이 책에서 어느 한 쪽이 기꺼이 자신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상대방의 방식에 맞추기로 했다면, 그것은 낭만적인 로맨스는 될 수 있었겠지만 현실과는 좀 동떨어지게 되는건 아닐까.

 

 

여자와 남자 모두 상대를 뜨겁게 사랑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상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상대가 내 쪽으로 와주기를 바랐다. 여자가 도시와 직장을 포기하기를, 남자가 시골과 농장을 포기하기를. 그러나 서로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상대에게 포기를 바란다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남자도 자신이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여자 역시 자신의 삶을 바꿀 생각은 없다. 사랑은 사랑이고 삶은 삶이니까. 그 둘이 일치한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우리는 어느 한 쪽을 반드시 선택해야 하니까.

 

 

나는 그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언제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p.157)

 

 

크리스마스 선물을 매일 받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삶을 평온하게 지켜내기 위해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가슴속에만 품고 살아가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반드시 가장 행복하게 사는 법은 아니니까. 행복은 저마다에게 다른 형태로 존재하니까.

 

 

책장을 넘기면서는 이 책이 전혀 특별하지 않았는데, 책장을 덮고나서는 가슴이 싸해진다. 기대 이상의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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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2-06-1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살게 되면 미워하게 될지도 몰라요. 라고 생각하는 비관주의자 일인. ㅠ_ㅠ

다락방 2012-06-18 11:18   좋아요 0 | URL
저도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문나잇님.

글샘 2012-06-17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요한 건 뜨겁게 사랑하는 거죠. 함께 사는 게 아니라...

다락방 2012-06-18 11:1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글샘님. 꼭 함께 사는건 아니어도 좋은 사람, 그런 관계라는게 있으니까 말이죠.

... 2012-06-17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영화로도 나왔다던데요 ==> http://www.imdb.com/title/tt0298351/
살까말까 하다가 패쓰한 책인데...

다락방 2012-06-18 11:19   좋아요 1 | URL
지금 링크 따라가보니 2002년도에 만들어졌네요?!!!!!

2012-06-18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8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2-06-18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캉과 소젖짜기는 도저히 양립할수가 없을 것 같네요, 풋. 더 뭐라 끄적거리기가 어렵네요. 아쉬운 일이네요.

다락방 2012-06-19 09:37   좋아요 1 | URL
미트볼 먹고 싶었어요. ㅜㅜ

무해한모리군 2012-06-20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물 같은 사랑을 해본 사람과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은 분명 다르겠지요?

다락방 2012-06-20 13:23   좋아요 0 | URL
네, 아마도 다르겠지요. 그리고 선물 같은 사랑은 자주 오지도 않는 것 같아요. 한 사람에게 한 번씩만 오는거 아닐까요? 음...너무 짠가요?